1화(5,323자)
재밌네
신들이 내 방송에 후원을 끊었다 · 한도윤
2031년 7월 9일 밤 열한 시, 부산 해운대구 중동의 반지하 투룸에서 나는 동시 시청자 스물일곱 명을 앞에 두고 좀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오른쪽 문 열면 죽어요. 제가 장담해요. 왜냐면 제가 어제 거기서 세 번 죽었거든요.”
채팅창이 느리게 올라왔다. 「삼십대백수: 그럼 열지 마」 「해운대불주먹: 열어」 「왼손잡이: 오른쪽이 어느 쪽임」. 나는 오른쪽 문을 열었고 죽었다. 창밖에서 빗소리가 한 겹 더 두꺼워졌다. 반지하 창은 보도블록 높이에 붙어 있어서, 장마철이면 지나가는 사람 발목과 튀는 빗방울만 보인다. 그 창 위로 사흘째 하늘이 이상했다.
사흘 전 저녁, 구름 위에 화면이 하나 떴다. 부산 하늘 전체를 덮을 만큼 큰데 테두리가 없어서, 처음에는 다들 구름이 유난히 판판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다음에 숫자가 떴다. 72:00:00. 숫자는 일 초씩 줄었고 뉴스는 사흘 내내 그 숫자를 틀었다. 정부는 침착하라고 했고, 편의점에서 생수와 라면이 사라졌고, 나는 그 사흘 동안 하늘 숫자를 배경으로 깔고 방송을 했다. 구독자가 열한 명 늘었다. 그래서 312명이 됐다.
“민아야, 라면 물 좀.”
“됐고, 네 손으로 끓여.”
옆방에서 키보드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동생 민아는 스무 살이고 내 채널의 편집 담당이다. 월급은 없고, 대신 내 영상 썸네일에 내 얼굴을 제일 못생기게 잘라 넣을 권리가 있다. 한 시간 전부터 우리는 라면 물 때문에 싸우는 중이었다.
화면 구석의 시계가 열한 시 사 분에서 오 분으로 넘어갈 때, 하늘 숫자가 0이 됐다.
소리가 먼저 왔다. 창문 유리가 낮게 웅 하고 울렸고, 책상 위 컵 속 보리차가 동그랗게 떨었다. 반지하 창 너머 빗줄기 사이로 하늘이 갈라지는 게 보였다. 한 장이던 화면이 바둑판처럼 쪼개졌다. 수십 칸, 수백 칸, 수천 칸. 칸마다 사람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놀란 얼굴, 자다 깬 얼굴, 먹다 만 떡볶이를 든 얼굴. 그리고 그중 한 칸에, 모니터 불빛에 퍼렇게 뜬 내 얼굴이 있었다.
“어?”
내 얼굴 옆에 빨간 불이 하나 떠 있었다. 진짜로 떠 있었다. 탁구공만 한 붉은 빛이 내 오른쪽 어깨 위 공중에서 천천히 돌며 나를 보고 있었다. 손을 뻗자 빛이 한 뼘 물러났다. 하늘의 내 얼굴도 똑같이 손을 뻗었다.
채팅창이 미쳤다. 「삼십대백수: 형 하늘에 나옴」 「해운대불주먹: ㅋㅋㅋㅋ 형 개못생김」 「민결이엄마아님: 이거 무슨 컨텐츠야」. 동시 시청자 숫자가 27에서 140으로, 140에서 900으로 뛰었다. 나는 숫자를 봤다. 하늘보다 그 숫자를 먼저 봤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하늘 화면 맨 아래로 글씨 일곱 줄이 떠올랐다. 1단계 첫 밤, 2단계 길, 3단계 분배, 4단계 물길, 그 밑으로 더 있었는데 빗물에 번져 잘 안 읽혔다. 맨 끝 줄만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7단계 해방. 그 옆에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지만 그때 나는 그걸 읽지 않았다. 구름 위로 다른 글씨가 흘러가고 있었다.
붉은 글씨였다. 누런 글씨도 있었다. 고딕도 아니고 붓글씨도 아닌, 쇠를 긁어서 쓴 것 같은 글자들이 구름 사이를 미끄러지며 칸에서 칸으로 옮겨 다녔다. 그 글자들이 내 칸 위에서 멈췄다.
「재밌네」
「‘붉은 뿔의 왕’ 님이 후원했습니다」
그 순간 몸에 불이 들어왔다. 목 뒤에서 뜨거운 것이 척추를 타고 내려가 손끝과 발끝에서 터졌다. 의자 팔걸이를 쥐었더니 플라스틱이 빠각 소리를 내며 내 손 모양으로 우그러졌다.
「‘술 취한 달’ 님이 후원했습니다」 「‘졸린 거북’ 님이 후원했습니다」 「‘어린 번개’ 님이 후원했습니다」
창밖 빗줄기가 느려졌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보였다. 맞은편 편의점 간판의 ‘ㅍ’ 받침에 낀 날벌레 날개까지 보였다. 나는 일어섰고, 너무 세게 일어서서 의자가 뒤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오빠, 뭐 부쉈어?”
“아니, 내가, 그게, 신이……. 민아야, 나 지금 신한테 후원받았어.”
“됐고, 의자 값 네가 내.”
그때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거꾸로 올라오는 소리였다. 반지하에 오래 산 사람은 안다. 큰비가 오면 하수구가 숨을 들이쉬듯 꾸르륵거리다가 짠내 섞인 물을 뱉는다. 그 소리가 세 배쯤 길게 났다. 그리고 화장실 문틈 아래로 검은 물이 번져 나왔다.
물속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왔다.
처음엔 아주 큰 갯강구인 줄 알았다. 다리가 많았고 등이 번들거렸다. 크기는 다 자란 진돗개만 했다. 몸통 앞쪽에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그 빈자리가 고개처럼 이쪽저쪽으로 돌았다. 복도 바닥에 붙어 꿈틀거리는 그것과 나 사이의 거리는 다섯 걸음이었다. 그것과 민아의 방문 사이도 다섯 걸음이었다.
“민아야, 방에서 나오지 마.”
“왜?”
“나오지 말라고. 문 잠가. 진짜로.”
딸깍, 하고 잠기는 소리가 났다. 민아가 내 말을 한 번에 들은 건 2029년 이후 처음이었다.
어깨 위의 붉은 빛이 그것을 따라 돌았다. 하늘 화면에 그것이 크게 잡혔고, 구름 위 글씨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오」 「크다」 「싸워」 「싸워」 「싸워」. 후원 알림이 연달아 울렸고 그때마다 몸이 더 뜨거워졌다. 나는 맨발로 바닥을 차고 나가 그것의 등을 걷어찼다. 발등에 젖은 타이어를 찬 느낌이 왔다. 그것이 벽에 처박혔고 벽지가 찢어졌다.
“와, 와, 여러분 보셨어요? 제가 찼어요. 제가!”
“오빠 지금 누구랑 싸워?”
“갯강구랑! 큰 거! 나오지 마!”
나는 신이 나서 카메라 쪽, 그러니까 어깨 위의 빛 쪽으로 이두박근을 접어 보였다. 팔에는 원래 없던 핏줄이 지도처럼 돋아 있었다. 군대에서 이 년 동안 턱걸이를 세 개 이상 못 했던 팔이었다. 채팅창에 「해운대불주먹: 형 팔 왜 그럼」 「삼십대백수: 성좌님 저도 좀」 「왼손잡이: 근데 왼팔임 오른팔임」이 올라왔고, 나는 오른팔이라고 대답하다가 그게 왼팔이라는 걸 알았다. 머릿속까지 뜨거워서 왼쪽 오른쪽이 잘 안 잡혔다. 그런 건 상관없었다. 사흘 동안 하늘만 쳐다보던 사람들이 지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동시 시청자가 4,000을 넘었다. 사람 시청자 채팅이 너무 빨라서 글자가 아니라 무늬로 흘렀다. 「형 미쳤다」 「이거 합성 아니지」 「구독 눌렀음」. 그 사이로 하늘의 붉은 글씨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다른 글씨들이 길을 비켜 주는 게 보였다.
「동생 있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 문 열어 봐」
「열면 백 배」
화면 너머에서 우리를 구경하는 다른 신들, 사람들이 나중에 성좌라고 부르게 된 것들의 글씨가 그 밑에 줄줄이 붙었다. 「오 좋다」 「보여 줘」 「동생 얼굴」. 숫자 하나가 내 칸 옆에 떴다. 지금까지 받은 후원 합계. 그 옆에 회색으로, 문을 열면 받게 될 숫자가 미리 떠 있었다. 백 배. 내 몸에 든 불을 백 배 하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몰랐다. 모르는데 손이 움직였다. 민아 방 문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쇠가 뜨거운 손바닥에 닿아 치익 소리를 냈다.
“오빠?”
문 너머에서 민아가 불렀다. 그 목소리에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때야 봤다.
벽에 처박혔던 그것이 일어나 있었다. 빈 눈자리가 내 쪽을 보지 않았다. 내 어깨 위 붉은 빛이 문손잡이를 비추는 동안, 그것은 정확히 민아의 방문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었다. 빛이 천장을 비추자 그것이 천장을 봤다. 빛이 다시 문을 비추자 그것이 다시 문으로 기었다. 다리 끝이 장판을 긁는 소리가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처럼 길었다.
화면이 보는 쪽으로 간다. 하늘에서 신들이 보는 쪽으로.
「열어」 「열어」 「열어」
나는 어깨 위 빛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이번엔 빛이 물러나지 않았다. 손안에서 그것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고, 갓 깐 삶은 달걀처럼 미끈했다. 하늘 화면의 내 칸이 내 손바닥 속살로 빨갛게 가득 찼다. 구름 위 글씨가 일제히 멈췄다.
부엌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싱크대 옆에 전기밥솥이 있었다. 엄마가 이사 올 때 사 준 열 인분짜리, 뚜껑 안쪽에 삼 년 묵은 누룽지가 눌어붙은 밥솥이었다. 나는 그 안에 빛을 처넣고 뚜껑을 닫았다. 딸깍. 보온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하늘 화면에서 내 칸이 검게 꺼졌다.
그것이 멈췄다. 나중에 사람들은 물에서 올라오는 그것들을 물것이라고 불렀다. 빈 눈자리가 이쪽저쪽을 헤맸다. 민아의 방문 앞에서 한참 머뭇거리더니, 그것은 장판 위를 미끄러져 화장실 하수구로 되돌아갔다. 검은 물이 꾸르륵 소리를 내며 그것을 삼켰다.
조용했다. 빗소리와 밥솥이 보온하는 소리만 났다.
그다음에 몸이 무거워졌다. 목 뒤로 들어왔던 불이 거꾸로 빠져나갔다. 한 번에 다 빠지는 게 아니라 젖은 빨래를 짜듯 비틀리며 빠졌다. 무릎이 꺾였고 나는 밥솥을 끌어안은 채 장판에 주저앉았다. 노트북 화면 구석에 알림이 차례로 떴다. 「‘술 취한 달’ 님이 후원을 거두었습니다」 「‘졸린 거북’ 님이 후원을 거두었습니다」. 하나 뜰 때마다 손끝이 한 마디씩 식었다.
문이 열렸다. 민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반바지에 내 군대 시절 티셔츠를 입고, 머리에는 연필을 꽂고 있었다. 민아는 찢어진 벽지와 벽에 박힌 의자와 바닥의 검은 물과, 밥솥을 끌어안고 우는 지 오빠를 차례로 봤다.
“밥솥에 뭐 했어?”
“신을 넣었어.”
“미쳤나?”
노트북에서는 사람 시청자 채팅만 남아 흘렀다. 방송 눈이 밥솥에 들어간 뒤 하늘은 끊겼지만 내가 원래 방송하던 사람용 플랫폼 파도TV 쪽 송출은 노트북 웹캠으로 넘어가 있었다. 동시 시청자는 4,000에서 빠르게 빠져나가 300 언저리에서 멈췄다. 「삼십대백수: 형 밥솥 ㅋㅋㅋㅋㅋ」 「해운대불주먹: 밥솥에 신 넣은 사람 최초」 「민결이엄마아님: 민아 씨 무사함?」 「왼손잡이: 근데 밥솥 보온 눌림」.
민아가 노트북을 보고, 나를 보고, 다시 노트북을 봤다.
“사람들 아직 있네.”
“어. 312명 중에…… 거의 다.”
“구독자보다 시청자가 많은 날도 있네.”
민아는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수건으로 바닥의 검은 물을 닦기 시작했다. 짠내가 났다. 그 사이로 누룽지 냄새가 났다. 밥솥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보온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하늘에서 붉은 글씨 하나가 내려왔다. 반지하 창 너머로, 꺼진 내 칸 자리에 천천히 새겨졌다.
「방송 사고」
그 밑에 한 줄이 더 새겨졌다.
「‘붉은 뿔의 왕’ 님이 이 채널을 처형 방송으로 지정했습니다」
밥솥 뚜껑 가운데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플라스틱이 녹는 냄새가 누룽지 냄새를 덮었다. 뚜껑에 동그란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으로 붉은 빛이 기어 나왔다. 아까보다 컸다. 탁구공이 아니라 야구공만 했고, 가운데에 세로로 길쭉한 검은 동공 같은 금이 나 있었다. 빛은 내 어깨 위로 돌아와 앉았다.
하늘 화면에 내 칸이 다시 켜졌다. 이번엔 테두리가 붉었다. 그리고 수천 칸 사이로 흘러다니던 구름 위의 글씨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내 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청자 여러분, 이 채널은 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