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08자)

안녕, 나의 친구...

고별운행 · 이수

성원폐차장은 열 시 정각에 문이 열려 있었다⁠.

마당이 넓었다⁠. 한쪽에 차들이 쌓여 있었다⁠. 쌓여 있다는 말이 맞다⁠. 세워져 있는 게 아니라 위아래로 포개져 있었다⁠. 지붕이 눌린 차⁠, 문이 없는 차⁠, 앞이 접힌 차들이었다⁠.

정재복은 이 앞에 차를 세웠다⁠.

전화로 통화했던 젊은 사람이 나왔다⁠. 목소리로 알았다⁠. 생각보다 어렸다⁠. 서른이나 됐을까⁠?

“⁠아버님이시죠⁠? 아⁠, 이거예요⁠?⁠”

젊은 사람이 트럭을 봤다⁠. 그러다가 앞유리에 붙은 종이를 봤다⁠.

“⁠…이게 뭐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젊은 사람이 종이를 읽었다⁠. 다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읽으면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예⁠.⁠”

“⁠이거 떼실 거예요⁠?⁠”

정재복은 대답을 못 했다⁠. 뗄 생각을 안 해 봤다⁠.

“⁠…놔두세요⁠.⁠”

“⁠예⁠.⁠”

*

서류는 오 분 만에 끝났다⁠.

등록증을 냈다⁠. 스물아홉 해 동안 갈색 봉투에 들어 있던 이 종이를⁠. 신분증을 냈다⁠. 젊은 사람이 뭘 적고 도장을 찍었다⁠.

“⁠번호판 떼겠습니다⁠.⁠”

“⁠…예⁠.⁠”

앞뒤 번호판을 뗐다⁠. 드라이버로 나사 네 개를 풀었다⁠. 오래돼서 하나가 잘 안 풀렸다⁠. 젊은 사람이 힘을 줘서 풀었다⁠.

번호판이 떨어진 자리가 파랗다⁠. 이 자리만 색이 덜 바랬다⁠.

정재복은 이걸 봤다⁠.

젊은 사람은 번호판 두 장을 겨드랑이에 끼고 짐칸 쪽으로 돌아갔다⁠. 뒤판을 내리더니 나무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어 봤다⁠. 상자 폭만큼 반들반들하게 닳은 자리였다⁠.

“⁠이거 뭐 실으셨어요⁠?⁠”

“⁠빵⁠.⁠”

“⁠…빵이요⁠? 빵이 나무를 이렇게 깎아요⁠?⁠”

“⁠스물아홉 해 실으면 깎아요⁠.⁠”

젊은 사람이 바닥을 한 번 더 쓸었다⁠. 이 손이 닳은 자리 끝에서 멈췄다⁠. 정재복은 아무 말 없이 뒤판을 올리고 손을 바지에 닦았다⁠. 닦으면서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였는데⁠, 이게 정재복한테 한 것인지 짐칸한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아버님⁠, 그럼 이제 저희가 안으로 옮길게요⁠.⁠”

“⁠…예⁠.⁠”

“⁠열쇠 주시겠어요⁠?⁠”

정재복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열쇠고리에 아무것도 안 달려 있었다⁠. 스물아홉 해 동안 아무것도 안 달았다⁠.

건네줬다⁠.

젊은 사람이 받았다⁠. 그러고는 잠깐 서 있다가 말했다⁠.

“⁠…인사 하시겠어요⁠?⁠”

“⁠…예⁠?⁠”

“⁠시간 괜찮으니까요⁠.⁠”

정재복은 트럭 쪽을 봤다⁠.

감청색 트럭이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번호판이 없어서 앞이 좀 허전했다⁠. 앞유리에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아침 해가 거기 비쳐 있었다⁠.

정재복은 몇 걸음 걸어갔다⁠.

손을 들었다⁠.

*

다음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아무리 되짚어 봐도 이 일 분이 통째로 비어 있다⁠.

손을 들어서 어디를 짚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문짝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짐칸 모서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등을 두드려 주려고 했던 것은 확실하다⁠. 사람한테 하듯이⁠, 손바닥으로 두 번쯤 두드려 주면서 잘 가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지게차 소리가 났다⁠.

누가 뭐라고 소리쳤다⁠. 안쪽에서 쇠 자르는 소리도 났다⁠.

정재복은 몸을 돌렸다⁠.

돌리고 나서 그냥 걸어 나왔다⁠.

*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버스를 마지막으로 탄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났다⁠. 스물아홉 해 동안 늘 자기 차가 있었다⁠.

올라타서 지갑을 꺼냈는데 카드가 없었다⁠. 천 원짜리를 두 장 꺼내 들고 어디에 넣어야 하나 두리번거리자 기사가 턱으로 요금함을 가리켰다⁠. 정재복은 지폐를 반으로 접어서 넣었다⁠. 접어서 넣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기사가 한숨을 쉬고 손가락으로 지폐를 밀어 넣어 줬다⁠.

“⁠어르신⁠, 카드 하나 만드세요⁠.⁠”

“⁠…예⁠.⁠”

“⁠요즘 현금 내는 분 거의 없어요⁠.⁠”

“⁠…예⁠.⁠”

앉을 자리가 있었는데 앉지 않고 서서 왔다⁠. 손잡이를 잡고 창밖을 봤다⁠.

두 정거장쯤 지나서 버스가 신호에 섰다⁠. 길 건너 편의점 앞에 작은 탑차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다⁠. 젊은 사람 하나가 노란 플라스틱 상자를 내리고 있었다⁠. 셔터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 낮이니까⁠.

상자 셋을 문 앞에 쌓더니 젊은 사람은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 덮개는 안 덮었다⁠. 하늘이 맑았다⁠.

정재복은 손잡이를 쥔 채로 이걸 봤다⁠. 비 안 오는 날에도 덮어 놔야 한다고⁠, 그래야 오는 날 안 잊는다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입안에서 이 말이 굴렀다⁠.

신호가 바뀌었다⁠. 탑차가 먼저 출발했다⁠. 시동을 걸고 나서 운전석의 젊은 사람이 계기판을 치는지 안 치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정재복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딱딱한 것이 손끝에 걸렸다⁠. 사흘 전 조수석 서랍에서 꺼낸 방향제 껍데기였다⁠. 레몬 냄새는 오래전에 다 날아갔다⁠. 그래도 이걸 꺼내지 않고 주머니 안에서 엄지로 한참 문질렀다⁠.

집에 와서 아내가 물었다⁠.

“⁠…끝났어요⁠?⁠”

“⁠어⁠.⁠”

“⁠밥 먹었어요⁠?⁠”

“⁠…아니⁠.⁠”

아내가 밥을 차렸다⁠. 정재복은 밥을 먹었다⁠. 다 먹었다⁠.

먹고 나서 정재복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다⁠.

오후 내내 앉아 있었다⁠.

*

저녁에 딸이 왔다⁠.

현관문을 열면서 딸이 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아빠 차 인터넷에 나왔어⁠!⁠”

“⁠…뭐⁠?⁠”

“⁠아빠 차⁠. 편지 붙인 거⁠.⁠”

정재복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딸이 신발을 벗다 말고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 사진이 하나 있었다⁠. 감청색 트럭의 앞유리⁠, 이 위에 붙은 흰 종이⁠, 손글씨⁠.

「⁠고 별 운 행⁠」

“⁠…이게 왜 여기 있냐⁠?⁠”

“⁠누가 찍었나 봐⁠. 아빠⁠, 이거 지금 엄청 퍼졌어⁠.⁠”

“⁠…누가⁠?⁠”

“⁠몰라⁠. 그냥 사람들이⁠.⁠”

정재복은 화면을 봤다⁠. 자기가 쓴 글씨였다⁠. 아래로 갈수록 오른쪽이 처진 이 글씨⁠.

“⁠…이거 남한테 보여 주려고 쓴 거 아닌데⁠.⁠”

“⁠알아⁠.⁠”

“⁠…차한테만 쓴 건데⁠.⁠”

딸이 아무 말도 안 했다⁠.

*

이 아래에 댓글이 많이 달려 있었다⁠.

딸이 화면을 내리면서 몇 개를 읽어 줬다⁠. 정재복은 다 안 들었다⁠. 절반쯤 듣다가 그만 읽으라고 했다⁠.

그런데 딸이 한참 내리다가 손을 멈췄다⁠.

“⁠…아빠⁠.⁠”

“⁠어⁠.⁠”

“⁠이거 좀 봐⁠.⁠”

파란 동그라미가 붙은 계정이었다⁠. 이 차를 만든 회사였다⁠.

「⁠차주님⁠,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저희가 꼭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2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해 주신 마음이 정말 깊이 와닿습니다⁠. 혹시 차주님을 아시는 분이나 본인이시라면 저희 공식 계정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정재복은 이걸 두 번 읽었다⁠.

“⁠…나를 찾는 거냐⁠?⁠”

“⁠응⁠.⁠”

“⁠왜⁠?⁠”

“⁠…인사하고 싶다잖아⁠.⁠”

정재복은 소파에 앉아서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스물아홉 해 동안 아무도 정재복에게 인사한 적이 없었다⁠. 새벽 네 시에 나가서 서른두 군데를 돌고 오는 동안⁠, 잘한다고 한 사람도 없고 고생한다고 한 사람도 없었다⁠. 진주식품 아주머니가 조심해서 가라고 한 것이 제일 가까운 인사였다⁠.

그런데 정재복이 혼자 쓴 편지를⁠, 차한테만 쓴 편지를⁠,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읽고 있었다⁠.

*

아내가 부엌에서 나왔다⁠.

“⁠뭔데 그래요⁠.⁠”

딸이 휴대폰을 보여 줬다⁠. 아내가 안경을 끼고 봤다⁠. 한참 봤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글씨가 삐뚤어⁠.⁠”

“⁠엄마⁠.⁠”

“⁠아니⁠, 잘 썼는데 아래가 처졌잖아⁠.⁠”

아내는 안경을 벗었다⁠. 벗고 나서 앞치마로 눈을 한 번 닦았다⁠. 그러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

밤 아홉 시에 아들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 그거 아버지 차죠⁠?⁠”

“⁠…어⁠.⁠”

“⁠회사 동료가 보내 줬어요⁠. 이거 너네 아버지 아니냐고⁠. 글씨 보고 알았어요⁠.⁠”

“⁠…글씨가 그렇게 삐뚤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들이 웃다가 말았다⁠. 저쪽이 조용했다⁠. 늘 하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오늘은 안 났다⁠. 다른 일을 안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버지⁠.⁠”

“⁠어⁠.⁠”

“⁠저 휴가 나왔을 때요⁠. 같이 탔던 날⁠.⁠”

“⁠…어⁠.⁠”

“⁠일곱 번째 집 앞에서 제가 무슨 말 하다가 말았잖아요⁠.⁠”

정재복은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열세 해 전 이 새벽이 생각났다⁠. 대시보드에 닿던 아들의 무릎이⁠.

“⁠그때 저 이거 매일은 못 하겠다고 하려고 했어요⁠. 하루 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저는 못 해요⁠.⁠”

“⁠…⁠…⁠.⁠”

“⁠근데 아버지는 했잖아요⁠. 그 말이 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그게 말이 안 나왔어요⁠.⁠”

정재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틀 전에 이 아들한테 「⁠끊는다⁠」 한마디로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도 이 말이 먼저 입까지 올라왔다⁠. 정재복은 이 말을 삼켰다⁠.

“⁠…밥은 먹었냐⁠?⁠”

“⁠먹었어요⁠.⁠”

“⁠…그래⁠. 잘 자라⁠.⁠”

아들이 먼저 끊지 않았다⁠. 정재복도 먼저 끊지 않았다⁠. 둘이 한참 아무 말 없이 수화기만 들고 있다가⁠, 아내가 거실 불을 끄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전화를 내려놓았다⁠.

*

이날 밤 정재복은 잠이 안 왔다⁠.

낮에 있었던 이 일 분이 자꾸 생각났다⁠.

손을 들었던 것까지는 생각이 난다⁠. 다음이 없다⁠. 지게차 소리가 났고⁠, 누가 뭐라고 소리쳤고⁠, 정재복은 몸을 돌렸다⁠.

두드려 주지 못했다⁠.

잘 가라는 말도 못 했다⁠.

스물아홉 해를 같이 다녔는데⁠, 마지막 일 분에 이 두 가지를 못 했다⁠. 이 일 분을 위해서 편지를 썼는데⁠, 정작 이 일 분에는 아무것도 못 하고 몸을 돌려 버렸다⁠.

정재복은 어둠 속에서 천장을 봤다⁠.

그러고는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

너는 제철소로 가서 다시 태어난다더라⁠.

쇳물로 녹아서 뭐가 되든 다시 나온다고⁠. 그거 들으니까 좀 낫더라⁠.

그런데 친구야⁠, 나는 이제 여든이다⁠.

나는 「⁠다시⁠」라는 말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 너는 다시가 있는데 나는 없어⁠. 너하고 나하고 정말 마지막 순간⁠, 이 일 분도 안 되는 시간에

너의 등을 두드리면서 잘 가라 소리를 못 하고

경황 중에 몸을 돌려 버린 것이

이것이 마음이 아파⁠.

잘 가라⁠.

더 좋은 사람 만나라⁠.

안녕⁠.

*

새벽 네 시 십 분에 눈이 떠졌다⁠.

정재복은 어둠 속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왼쪽 어깨가 뻐근했다⁠.

옆에서 아내가 자고 있었다⁠. 아니⁠,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이십삼 년 동안 정재복은 이 시간에 늘 깨어 있었다⁠.

정재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서⁠, 손등으로 이불 위를 한 번 툭 쳤다⁠.

시동을 걸 때 계기판 옆을 치던⁠, 이 자리를⁠.

― 끝 ―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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