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83자)

잔칫상에 올릴 놈

잔칫상 돼지가 산신령 시험에 붙었다 · 차무겸

두름은 코부터 깼다⁠. 눈꺼풀은 아직 짚에 붙어 있는데 콧구멍 두 개가 먼저 벌름거렸다⁠. 쌀겨⁠, 삶은 고구마 껍질⁠, 할머니 행주에 밴 들기름⁠. 날마다 오는 냄새였다⁠. 오늘은 뒤따라 낯선 냄새가 둘 더 왔다⁠. 하나는 경유와 새 가죽 구두였고⁠, 하나는 박하사탕이었다⁠.

박하사탕은 이장이었다⁠. 이장은 마을 방송 마이크 앞에 앉기 전에 늘 박하사탕을 깨물었고⁠, 깨문 사탕 냄새를 하루 종일 입에 달고 다녔다⁠. 경유와 구두는 처음 맡는 사람이었다⁠. 점퍼 가슴에 「⁠터널 공사 현장⁠」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고⁠, 겨드랑이에 노란 안전모를 끼고 있었다⁠.

“⁠이놈입니다⁠. 순종은 아니어도 털 보세요⁠. 까맣게 윤이 나잖아요⁠.⁠”

이장이 우리 판자 너머로 손가락질을 했다⁠. 두름은 일어나 판자 앞으로 다가갔다⁠. 손님이 오면 인사를 하는 것이 이 집 법도였다⁠.

“⁠안녕하세요⁠. 두름입니다⁠.⁠”

현장소장이 한 발 물러났다⁠.

“⁠꿀꿀거리네요⁠. 순하네⁠.⁠”

사람 귀에는 늘 그렇게 들렸다⁠. 두름은 사람 말을 다 알아들었다⁠. 새끼 때부터 부엌 라디오와 할아버지 혼잣말을 듣고 자랐다⁠. 사람은 두름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두름이 “⁠배고파요⁠” 해도⁠, “⁠추워요⁠” 해도⁠, “⁠할아버지 바지 앞섶 열렸어요⁠” 해도 사람들은 아이고 꿀꿀거리네⁠, 하고 웃었다⁠.

“⁠몇 근이나 나갈까요⁠?⁠”

“⁠이백 근은 넘지요⁠. 안 그래요⁠, 형님⁠?⁠”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우리 문고리를 한 번 흔들어 보았다⁠. 할아버지 손에서는 늘 짚과 쇠 냄새가 났다⁠. 젊어서 사북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캔 손이라고⁠, 할머니가 닭들 앞에서 자랑하듯 말한 적이 있었다⁠. 닭들은 들은 말을 마을 끝까지 옮겼다⁠.

“⁠회사에서는 넉넉히 하라고 했습니다⁠. 안전기원제 상에도 올리고 잔치 고기도 하고요⁠. 발파 앞두고 산신님한테 잘 보여야지요⁠.⁠”

현장소장이 웃었다⁠. 이장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이백⁠.⁠”

“⁠이백만 원이요⁠?⁠”

“⁠시세 두 배는 쳐 드려야 동네 말이 안 나요⁠. 이 집 손녀가 이번에 서울 대학 붙었거든⁠.⁠”

부엌문이 열렸다⁠. 할머니가 행주를 쥔 채 문턱에 나와 서 있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행주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댓돌을 적셨다⁠. 현장소장이 점퍼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도 「⁠터널 공사 현장⁠」이 찍혀 있었다⁠.

“⁠계약금으로 오십 먼저 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봉투를 받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받는 손이 빨랐다⁠. 빨리 받아야 덜 무겁다는 듯이⁠.

“⁠잔칫날 아침에 데려가소⁠.⁠”

현장소장이 떨어뜨린 종이 한 장이 판자 틈으로 들어왔다⁠. 옆 칸 염소가 목을 빼 종이를 물었다⁠. 「⁠동지 지나 첫 토요일⁠, 마을 산신제 겸 터널 안전기원제⁠」까지 씹어 먹고⁠, 「⁠잔치에 모두 오세요⁠」에서 멈췄다⁠. 염소는 원래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을 가리지 않았다⁠.

*

손님들이 가고 나서 닭장이 시끄러워졌다⁠.

“⁠들었어⁠? 이백만 원이래⁠.⁠”

“⁠이백만 원이면 우리가 몇 마리야⁠?⁠”

“⁠우린 잔칫상에 안 올라가서 다행이다⁠.⁠”

“⁠우린 너무 작아⁠. 작은 게 복이야⁠.⁠”

두름은 짚 위에 엎드렸다⁠. 잔칫상이 무엇인지 두름은 알았다⁠. 작년 가을 이장네 아들 장가가는 날 고개 아래에서 올라오던 냄새가 있었다⁠. 큰 솥에 삶는 고기와 새우젓⁠, 장작 연기⁠, 사람들 웃음소리⁠. 냄새는 사흘이 지나도 바람에 남아 있었다⁠. 두름은 사흘 동안 밥맛이 없었다⁠.

두름은 빚을 코로 셌다⁠. 처음 빚은 할머니였다⁠. 두 해 전 봄⁠, 아직 눈이 덜 녹았을 때 두름은 부엌 아궁이 앞 고무 대야에서 젖병을 물었다⁠. 데운 우유와 할머니 손목의 파스 냄새가 한데 섞여 있었다⁠. 다음 빚은 할아버지였다⁠. 해마다 겨울이면 할아버지는 말없이 판자를 새로 대고 마른 짚을 깔았다⁠. 새 짚에서는 햇볕 냄새가 났다⁠. 갚을 것은 많았고 갚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백만 원이면 다 갚고도 남겠지⁠?⁠”

두름이 혼잣말을 했다⁠. 닭 한 마리가 횃대에서 고개를 뺐다⁠.

“⁠갚긴 뭘 갚아⁠. 잡아먹히는 거지⁠.⁠”

*

오후에 군내버스 냄새가 마을 어귀로 들어왔다⁠. 히터에 데워진 먼지⁠, 남의 외투에 밴 담배⁠, 그리고 딸기⁠. 두름은 벌떡 일어났다⁠. 딸기 핸드크림은 연지였다⁠.

연지는 집보다 우리에 먼저 왔다⁠. 늘 그랬다⁠. 배낭을 멘 채 판자에 매달려 손을 쭉 뻗더니 두름의 귀 뒤를 긁었다⁠. 두름은 버티려고 했는데 다리가 먼저 풀렸다⁠. 귀 뒤를 긁히면 돼지는 옆으로 쓰러지게 되어 있었다⁠. 두름은 짚 위에 털썩 쓰러져 배를 내놓았다⁠.

“⁠두름아⁠, 나 붙었어⁠. 서울 간다⁠. 진짜야⁠.⁠”

연지가 휴대전화를 판자 사이로 들이밀었다⁠. 두름은 글을 못 읽었지만 화면 냄새는 맡았다⁠. 연지 손가락 기름과 버스 히터 냄새가 났다⁠. 연지는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가 두릅 바구니에 새끼 돼지를 담아 들고 왔을 때⁠, 열여덟 살이던 연지가 바구니를 들여다보며 두릅 바구니에서 나왔으니 두름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두릅을 늘 두름이라고 불렀고⁠, 연지는 할머니 말을 따라 했다⁠.

연지가 배낭에서 종이를 꺼내 판자에 대고 폈다⁠.

“⁠근데 이거 봐⁠. 등록금이 이만큼이야⁠. 할머니 감자 판 돈으로는 이백만 원 모자라⁠. 대출받으면 돼⁠. 나라에서 학생한테 싸게 빌려주는 거 있어⁠. 할아버지한테는 비밀이다⁠.⁠”

“⁠대출은 안 된다⁠.⁠”

연지가 펄쩍 뛰었다⁠. 할아버지가 장작을 한 아름 안고 뒤에 서 있었다⁠.

“⁠들었어⁠?⁠”

“⁠빚지고 학교 가는 거 아니다⁠. 할아비가 다 해 놨다⁠.⁠”

“⁠뭘 해 놨는데⁠?⁠”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장작을 처마 밑에 내려놓았다⁠. 두름은 판자 틈으로 코를 내밀어 연지의 손등을 밀었다⁠. 연지가 두름의 코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너 살쪘다⁠. 할머니가 또 고구마 많이 줬지⁠?⁠”

두름은 그렇다고 했다⁠. 연지 귀에는 꿀⁠, 하고 들렸다⁠.

해 질 녘 마을 방송이 켜졌다⁠. 지직거리는 소리 끝에 박하사탕 깨무는 소리가 먼저 나왔다⁠.

“⁠아⁠, 아⁠. 이장입니다⁠. 군청에서 알려 왔습니다⁠. 요새 산 너머 공사 때문에 멧돼지가 자주 내려온답니다⁠. 집에서 키우는 돼지는 절대로 우리 밖에 내놓지 마시고⁠, 밭둑에 먹을 거 흘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잔치 날 전 부칠 분들은 회관으로 기름 한 병씩 들고 오세요⁠. 이상⁠, 이장이었습니다⁠.⁠”

*

밤이 깊어 우리 지붕에서 양철이 울렸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은 소리였다⁠. 까마귀는 짐승 말로 크게 외쳤다⁠.

“⁠들어라⁠. 산신령님이 물러나신다⁠. 해 뜰 녘 산신 바위 앞에 선 짐승은 누구든 후계 시험을 친다⁠. 산신령님 말씀이다⁠.⁠”

닭장이 뒤집혔다⁠.

“⁠산신령 시험이래⁠!⁠”

“⁠닭도 돼⁠?⁠”

“⁠짐승이면⁠.⁠”

까마귀가 날개를 털었다⁠. 염소가 판자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시험이 먹는 거야⁠?⁠”

까마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날아갔다⁠. 두름은 다시 엎드렸다⁠. 산신령은 산짐승 일이었다⁠. 잔칫상에 오를 돼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바람이 돌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었다⁠. 두름의 콧구멍이 저절로 열렸다⁠. 곶감이었다⁠. 처마에 매단 할머니 곶감이 아니었다⁠. 할머니 곶감은 아직 덜 말라 떫은 냄새가 섞였다⁠. 산에서 오는 것은 깊고 달고 오래된 냄새였다⁠. 끝에 늙은 개 냄새가 한 가닥 붙어 있었다⁠.

두름의 코는 두름에게 묻지 않았다⁠. 앞발이 판자 구석을 긁기 시작했다⁠. 거기는 두름만 아는 자리였다⁠. 흙이 무르고 판자 밑이 한 뼘 떠 있었다⁠. 가을 내내 밤마다 파고 나가 감자밭 이랑 끝까지 다녀왔다가 새벽 전에 들어와 흙을 덮었다⁠.

“⁠또 판다⁠, 또 판다⁠.⁠”

닭들이 속삭였다⁠. 닭들은 비밀을 지켰다⁠. 마을 끝까지 옮길 만한 비밀이 아니어서였다⁠.

두름은 판자 밑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배가 끼어서 한참을 꿈틀거렸다⁠. 가을보다 살이 올라 있었다⁠. 고구마 껍질 탓이었다⁠. 겨우 빠져나와 언 감자밭을 가로질렀다⁠. 밭둑에 닿자 코가 매웠다⁠. 늙은 개 오줌 냄새가 밭둑을 따라 한 줄로 길게 깔려 있었다⁠. 산짐승들은 여기를 못 넘어온다고 닭들이 말했다⁠. 금줄이라고 했다⁠. 두름은 재채기를 한 번 하고 줄을 넘었다⁠. 마을에서 산으로 나가는 걸음은 막히지 않았다⁠.

*

산신 바위 앞은 눈빛으로 파랬다⁠. 해 뜨기 전이었다⁠. 넓적한 바위 앞 눈밭에 짐승들이 둥글게 모여 있었다⁠. 고라니 셋⁠, 너구리 한 쌍⁠, 오소리⁠, 담비⁠, 산토끼 몇⁠. 그리고 바위 바로 앞에 멧돼지들이 있었다⁠. 스무 마리 남짓이었다⁠. 썩은 도토리와 진흙과 묵은 피 냄새가 한 덩어리로 몰려왔다⁠.

맨 앞의 멧돼지가 고개를 돌렸다⁠. 덩치가 두름만 했고 등 갈기가 하얗게 셌다⁠. 한쪽 귀가 반쯤 찢겨 있었다⁠. 멧돼지가 두름 앞까지 걸어와 코를 들이밀었다⁠. 콧김이 두름의 뺨을 데웠다⁠.

“⁠비누 냄새⁠. 사람 냄새⁠. 집돼지가 여긴 왜 왔어⁠?⁠”

“⁠곶감 냄새가 나서요⁠.⁠”

짐승들이 웃었다⁠. 고라니들은 웃다가 발을 헛디뎠다⁠. 멧돼지 뒤에서 젊은 암컷 하나가 고개를 쭉 뺐다⁠.

“⁠정말 비누 냄새가 나요⁠. 무슨 비누예요⁠?⁠”

“⁠봄비야⁠, 뒤로 가⁠.⁠”

젊은 암컷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봄비 옆에 줄무늬가 거의 바랜 올봄 새끼 넷이 붙어 있었다⁠. 새끼들 옆구리에 갈비뼈가 줄지어 드러나 있었다⁠. 두름은 저도 모르게 제 배를 내려다보았다⁠. 배가 눈밭에 닿아 있었다⁠.

멧돼지가 짐승들을 둘러보았다⁠.

“⁠구릉이다⁠. 다들 들어라⁠. 내가 산신령이 되면 금줄을 걷는다⁠. 밭을 연다⁠. 이 겨울에 우리 새끼들이 굶는데 저 아래 사람들 감자 움에서는 감자가 썩어 나간다⁠.⁠”

멧돼지 무리가 한꺼번에 콧김을 뿜었다⁠. 눈발이 흩어졌다⁠. 두름은 입을 열었다⁠.

“⁠밭을 열면 우리 할머니 감자는요⁠?⁠”

“⁠사람 감자다⁠.⁠”

“⁠할머니가 저 먹으라고 남겨 둔 것도 있는데요⁠.⁠”

구릉이 두름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머리로 두름의 어깨를 밀었다⁠.

“⁠내려가⁠. 우리 짐승은 낄 데가 아니다⁠.⁠”

두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릉이 다시 밀었다⁠. 이번에는 온몸으로 밀었다⁠. 두름의 발이 눈 위에서 미끄러졌다⁠. 백오십 킬로그램이 넘는 몸이 눈썰매처럼 비탈을 미끄러져 바위 바로 앞⁠, 짐승들이 밟아 다진 동그란 자리 한가운데에서 멈췄다⁠.

바위 위에서 무언가 씹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고개를 들었다⁠. 바위 위에 늙은 누렁개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털은 군데군데 빠졌고 수염이 허옜다⁠. 앞발 사이에 곶감 꼬치가 놓여 있었다⁠. 누렁개는 곶감 하나를 빼서 잇몸으로 오래 씹었다⁠. 두름이 맡은 곶감 냄새가 거기서 나고 있었다⁠.

“⁠호랑이는요⁠?⁠”

산토끼 하나가 물었다⁠. 누렁개가 눈을 끔뻑였다⁠.

“⁠어험⁠. 호랑이는 내가 강아지일 때도 벌써 없었다⁠. 내가 산신령이다⁠. 세 판이다⁠. 두 판을 이기는 놈이 내 자리를 받는다⁠. 해 뜰 녘 이 바위 앞에 선 놈은 다 친다⁠.⁠”

구릉이 앞으로 나왔다⁠.

“⁠저건 사람 우리 돼지입니다⁠.⁠”

“⁠내가 짐승이라고 했냐⁠, 산짐승이라고 했냐⁠? 까마귀야⁠, 내가 뭐라고 했냐⁠?⁠”

나뭇가지 위에서 까마귀가 대답했다⁠.

“⁠짐승이라고 하셨습니다⁠.⁠”

능선 너머로 첫 햇살이 넘어왔다⁠. 햇살은 동그란 자리 한가운데에 엎어진 흑돼지 등부터 비췄다⁠. 구릉도 같은 자리 안에 들어와 있었다⁠. 두름을 밀다가 따라 들어온 것이었다⁠.

“⁠됐다⁠. 둘 다 들어왔다⁠.⁠”

산신령이 곶감 꼬치를 앞발로 끌어당겼다⁠.

“⁠첫 판은 냄새다⁠. 내가 이 산에 묻어 둔 것을 찾아 오너라⁠.⁠”

“⁠뭘 묻으셨는데요⁠?⁠”

두름이 물었다⁠. 산신령은 곶감을 한참 씹었다⁠.

“⁠그걸 알려 주면 시험이 되냐⁠?⁠”

산신령은 바위 위에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금방 코를 골았다⁠. 구릉이 두름의 귀에 대고 콧김을 뿜었다⁠.

“⁠집돼지⁠. 네 코가 얼마나 좋은지 보자⁠.⁠”

짐승들의 입김이 한꺼번에 올라가 바위 위에서 하얗게 엉겼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고양이발2026.10.31· 1화

    두름이 냄새로 사람을 다 알아보는 게 너무 웃겨요. 이장님은 평생 박하사탕인가요?

    • 차무겸작가2026.10.31

      평생 박하사탕입니다. 이장님이 사탕을 끊는 날이 마을에 큰일 나는 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