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55자) · 스무 마지기

밟게 시키는 자

무공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있다 · 구슬안

네 해째에 이 일이 났다⁠.

남쪽 읍에서 부자 하나가 땅을 스무 마지기 샀다⁠.

사서 사람을 서른 붙였다⁠.

서른이 하루에 두 시진씩 밟았다⁠.

한 사람이 한 마지기씩 못 맡았다⁠. 스무 마지기에 서른이면 남는다⁠.

남는 열이 교대를 했다⁠.

한 달 뒤에 스무 마지기가 다 서늘해졌다⁠.

부자가 이 터에서 초식을 썼다⁠.

부자는 무공을 배운 적이 없다⁠.

배운 적이 없는데 나왔다⁠.

터에 서면 누구든 나온다⁠.

부자가 이것으로 읍을 잡았다⁠.

부자 이름은 갈치원이다⁠.

읍에서 삼 대째 미곡을 다뤘다⁠.

갈치원이 산 스무 마지기 가운데 열둘이 윤벽 것이었다⁠.

윤벽이 가을에 밭값으로 넘긴 것이다⁠.

윤벽이 이것을 팔면서 갈치원한테 한마디 했다고 한다⁠.

“⁠이건 사람이 밟아야 사는 물건이오⁠.⁠”

갈치원이 물었다⁠.

“⁠밟을 사람은 있소⁠?⁠”

윤벽이 말했다⁠.

“⁠…있기야 있지요⁠.⁠”

이 말을 하고 윤벽이 읍을 떠났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갈치원의 셈은 이랬다⁠.

사람 서른을 붙이면 한 달에 밥값이 스무 냥쯤 든다⁠.

스무 마지기 터에서 나오는 것은 콩이 아니다⁠.

읍에서 값을 정하는 자리다⁠.

터에 서면 누구든 초식이 나오니⁠, 갈치원이 이 터 안에 서 있으면 아무도 이 앞에서 값을 깎지 못한다⁠.

한 달 스무 냥으로 읍의 쌀값을 잡는다⁠.

싼 셈이다⁠.

갈치원이 이 셈을 남한테 말한 적이 없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읍 사람들이 알아서 갈치원 앞에서 값을 안 깎았다⁠.

연오가 이 소식을 들은 것은 겨울이다⁠.

도갑이 나무패를 놓으러 갔다가 보고 왔다⁠.

“⁠…연오야⁠, 거기는 나무패를 못 놨다⁠.⁠”

연오가 물었다⁠.

“⁠왜 못 놓으셨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들어가니 문을 잠갔다⁠.⁠”

“⁠…⁠”

“⁠나가려는데 밟고 가라고 했다⁠.⁠”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도갑이 말했다⁠.

“⁠…이틀 밟고 나왔다⁠.⁠”

연오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도갑이 말했다⁠.

“⁠나는 사십 년 밟은 놈이다⁠. 이틀이 뭐가 대수냐⁠?⁠”

“⁠…⁠”

“⁠그런데 거기 밟는 사람들은 안 괜찮더라⁠.⁠”

연오가 물었다⁠.

“⁠어떻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발이 터졌다⁠.⁠”

연오가 물었다⁠.

“⁠…치료는 해 줍니까⁠?⁠”

도갑이 말했다⁠.

“⁠해 주지⁠. 안 해 주면 못 밟으니까⁠.⁠”

“⁠…⁠”

“⁠약도 주고 밥도 준다⁠. 하루 세 끼 준다⁠.⁠”

연오가 물었다⁠.

“⁠…그러면 나쁜 데는 아니지 않습니까⁠?⁠”

도갑이 이 말에 연오를 봤다⁠.

“⁠연오야⁠.⁠”

“⁠예⁠.⁠”

“⁠나는 사십 년을 무영곡에서 밟았다⁠. 밥 세 끼 먹고 밟았다⁠.⁠”

“⁠…⁠”

“⁠거기가 나쁜 데였나⁠?⁠”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도갑이 말했다⁠.

“⁠나쁜 데는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 잘 먹고 잘 잤다⁠.⁠”

“⁠…⁠”

“⁠다만 사십 년 뒤에 알고 보니 내가 남의 밭을 다지고 있었다⁠.⁠”

도갑이 제 발을 봤다⁠.

“⁠거기 그 사람들은 그걸 알고 밟는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알고 밟는 게 더 나쁘다⁠.⁠”

“⁠…왜 그렇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나는 사십 년 동안 내가 세지는 줄 알았다⁠. 그건 속은 거지만 신은 났다⁠.⁠”

“⁠…⁠”

“⁠저 사람들은 신날 게 없다⁠.⁠”

“⁠…⁠”

“⁠맨발로 두 시진씩 하는데 겨울이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도갑이 말했다⁠.

“⁠그중에 열둘이 무영곡 사람이었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무영곡이요⁠?⁠”

도갑이 말했다⁠.

“⁠문 닫고 흩어진 놈들이다⁠.⁠”

“⁠…⁠”

“⁠밟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거기로 갔다⁠.⁠”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도갑이 말했다⁠.

“⁠연오야⁠.⁠”

“⁠예⁠.⁠”

“⁠나도 그럴 뻔했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자네가 콩 한 말 반 준다고 안 했으면 나도 거기 갔을 거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연오가 봄에 남쪽 읍에 갔다⁠.

가서 이 터에 들어갔다⁠.

문지기가 막았다⁠.

“⁠…누구요⁠?⁠”

연오가 말했다⁠.

“⁠밟으러 왔습니다⁠.⁠”

문지기가 들여보냈다⁠.

연오가 들어가서 밟았다⁠.

이레 밟았다⁠.

이레 동안 옆에서 밟는 사람들하고 말을 했다⁠.

말하면서 밟으면 두 시진이 짧다⁠.

이렛날 오전에 감독하는 자가 왔다⁠.

감독은 셋이다⁠. 셋이 돌아가며 마당을 본다⁠.

감독이 연오 앞에 섰다⁠.

“⁠…자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연오가 말했다⁠.

“⁠이레 됐습니다⁠.⁠”

“⁠어디서 왔나⁠?⁠”

“⁠북쪽에서 왔습니다⁠.⁠”

감독이 연오의 발을 봤다⁠.

“⁠발이 멀쩡하구먼⁠.⁠”

연오가 말했다⁠.

“⁠…밟은 지 오래됐습니다⁠.⁠”

감독이 말했다⁠.

“⁠그럼 한번 해 봐라⁠.⁠”

연오가 물었다⁠.

“⁠…무엇을요⁠?⁠”

감독이 말했다⁠.

“⁠여기 터에서 초식이 나오나 보자⁠. 나오면 위쪽으로 보내 준다⁠. 위쪽은 하루 한 시진만 밟는다⁠.⁠”

옆에서 밟던 사람들이 이 말에 멈췄다⁠.

하나가 낮게 말했다⁠.

“⁠…해 봐라⁠. 위쪽은 편하다⁠.⁠”

연오가 손을 뻗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감독이 말했다⁠.

“⁠…다시⁠.⁠”

연오가 다시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감독이 웃었다⁠.

“⁠…밟은 지 오래됐다면서 이것도 안 나오나⁠?⁠”

연오가 말했다⁠.

“⁠…안 나옵니다⁠.⁠”

감독이 갔다⁠.

가면서 혼잣말을 했다⁠.

“⁠쓸모없는 놈이 하나 들어왔네⁠.⁠”

연오가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옆에서 밟던 사람이 물었다⁠.

“⁠…괜찮소⁠?⁠”

연오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 사람이 말했다⁠.

“⁠나도 안 나오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이 사람이 말했다⁠.

“⁠여기서 스무 달 밟았는데 한 번도 안 나왔소⁠.⁠”

“⁠…⁠”

“⁠그래서 나는 위쪽에 못 가오⁠.⁠”

연오가 물었다⁠.

“⁠…어르신⁠, 발이 서늘하십니까⁠?⁠”

이 사람이 물었다⁠.

“⁠…서늘한 게 뭐요⁠?⁠”

연오가 말했다⁠.

“⁠신을 벗고 서면 발이 시린 것 말입니다⁠.⁠”

이 사람이 말했다⁠.

“⁠겨울이니 시리지⁠.⁠”

연오가 말했다⁠.

“⁠그런 시림 말고요⁠.⁠”

이 사람이 한참 생각했다⁠.

“⁠…정수리까지 오는 거요⁠?⁠”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오십니까⁠?⁠”

이 사람이 말했다⁠.

“⁠오오⁠. 어릴 때부터 그랬소⁠.⁠”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그러면 어르신은 터를 찾아내실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물었다⁠.

“⁠…그게 뭐가 좋소⁠?⁠”

연오가 말했다⁠.

“⁠밟은 데가 됐는지 안 됐는지를 아십니다⁠.⁠”

“⁠…⁠”

“⁠그걸 아는 사람이 강호에 몇 없습니다⁠.⁠”

이 사람이 제 발을 봤다⁠.

“⁠…나는 이게 병인 줄 알았소⁠.⁠”

이렛날에 연오가 물었다⁠.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십니까⁠?⁠”

하나가 말했다⁠.

“⁠…갈 데가 없소⁠.⁠”

연오가 물었다⁠.

“⁠밭이 있으십니까⁠?⁠”

“⁠…없소⁠.⁠”

연오가 말했다⁠.

“⁠밭을 만드시면 됩니다⁠.⁠”

이 사람이 웃었다⁠.

“⁠…땅이 있어야 만들지⁠.⁠”

연오가 말했다⁠.

“⁠임자 없는 땅이 있습니다⁠.⁠”

“⁠…어디요⁠?⁠”

연오가 말했다⁠.

“⁠물 안 오는 데는 다 임자가 없습니다⁠.⁠”

이 사람이 물었다⁠.

“⁠…물이 안 오면 소용없잖소⁠.⁠”

연오가 말했다⁠.

“⁠밟으면 안 빠집니다⁠.⁠”

이 사람이 이 자리에 섰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들⁠, 여기서 밟는 거나 거기서 밟는 거나 두 시진입니다⁠.⁠”

“⁠…⁠”

“⁠여기는 남의 땅이고 거기는 어르신 땅입니다⁠.⁠”

이 사람이 물었다⁠.

“⁠…그걸 왜 말해 주오⁠?⁠”

연오가 말했다⁠.

“⁠제가 그렇게 했으니까요⁠.⁠”

이레 뒤에 연오가 나왔다⁠.

나오고 한 달 뒤에 이 터에서 서른 가운데 열아홉이 나갔다⁠.

부자가 사람을 더 구했다⁠.

못 구했다⁠.

같은 해 여름에 이 스무 마지기가 없어졌다⁠.

열하나로는 못 지킨다⁠.

부자가 읍에서 힘을 잃었다⁠.

연오가 이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도갑이 물었다⁠.

“⁠…좋은 일 아닌가⁠.⁠”

연오가 말했다⁠.

“⁠열하나는 아직 거기 있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왜 안 나오나⁠?⁠”

연오가 말했다⁠.

“⁠밭을 못 만들 사람들입니다⁠.⁠”

“⁠…⁠”

“⁠늙었거나 아픕니다⁠.⁠”

도갑이 물었다⁠.

“⁠…몇이나 되나⁠?⁠”

연오가 말했다⁠.

“⁠열하나입니다⁠.⁠”

“⁠…다 늙었나⁠?⁠”

연오가 말했다⁠.

“⁠넷은 늙었고 넷은 발이 상했습니다⁠. 셋은 눈이 어둡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눈이 어두우면 왜 못 만드나⁠?⁠”

연오가 말했다⁠.

“⁠열 자 네모를 못 잡습니다⁠.⁠”

“⁠…⁠”

“⁠밟다 보면 조금씩 밀립니다⁠. 밀리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안 됩니다⁠.⁠”

도갑이 이 자리에 앉았다⁠.

“⁠…줄을 치면 되지 않나⁠.⁠”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줄을 치면 되지⁠.⁠”

연오가 말했다⁠.

“⁠…말뚝이요⁠?⁠”

도갑이 웃었다⁠.

“⁠말뚝이 남 보라고 박는 거라고 누가 그랬지⁠.⁠”

“⁠…문주님이요⁠.⁠”

도갑이 말했다⁠.

“⁠그건 남의 터에 박을 때 이야기고⁠.⁠”

“⁠…⁠”

“⁠제 밭에 박는 건 제가 보라고 박는 거다⁠.⁠”

도갑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는 그 열하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데려오면 되지⁠.⁠”

연오가 말했다⁠.

“⁠데려와서 뭘 합니까⁠? 밟을 힘이 없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밟는 것 말고 할 게 없나⁠.⁠”

연오가 이 말에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콩 고르는 건 앉아서 한다⁠.⁠”

열하나를 데려오는 데 두 달이 걸렸다⁠.

한 번에 못 데려왔다⁠. 걸어서 오는 데 엿새 길인데 발이 상한 사람은 하루에 십 리를 못 간다⁠.

넷씩 나눠 왔다⁠.

첫 넷이 왔을 때 마을이 술렁였다⁠.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연오야⁠, 저 사람들 밟을 수 있냐⁠?⁠”

연오가 말했다⁠.

“⁠못 밟습니다⁠.⁠”

“⁠…그럼 뭘 하냐⁠?⁠”

연오가 말했다⁠.

“⁠콩을 고릅니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콩 고르는 건 우리도 한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희 마을에 콩 고르는 데 하루에 몇 시진 듭니까⁠?⁠”

“⁠…한 시진쯤 들지⁠.⁠”

“⁠그 한 시진을 누가 합니까⁠?⁠”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저녁에 다들 하지⁠.⁠”

연오가 말했다⁠.

“⁠저녁에 하시니까 밟는 걸 낮에 하십니다⁠.⁠”

“⁠…⁠”

“⁠낮에 밟으면 밭일을 못 하십니다⁠.⁠”

둘째 집 어른이 이 셈을 했다⁠.

연오가 말했다⁠.

“⁠저분들이 낮에 콩을 고르시면 어르신들은 저녁에 밟으시면 됩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첫째 집 어른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덕을 보는 거네⁠.⁠”

연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나는 저 사람들 밥값 걱정을 했는데⁠.⁠”

연오가 말했다⁠.

“⁠밥값은 드셔야지요⁠.⁠”

“⁠…⁠”

“⁠일하시는데⁠.⁠”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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