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52자) · 스무 마지기

밟게 시키는 자

천하제일 농부 · 한도윤

네 해째에 그 일이 났다.

남쪽 읍에서 부자 하나가 땅을 스무 마지기 샀다.

사서 사람을 서른 붙였다.

서른이 하루에 두 시진씩 밟았다.

한 사람이 한 마지기씩 못 맡았다. 스무 마지기에 서른이면 남는다.

남는 열이 교대를 했다.

한 달 뒤에 스무 마지기가 다 서늘해졌다.

부자가 그 터에서 초식을 썼다.

부자는 무공을 배운 적이 없다.

배운 적이 없는데 나왔다.

터에 서면 누구든 나온다.

부자가 그것으로 읍을 잡았다.

부자 이름은 갈치원이다.

읍에서 삼 대째 미곡을 다뤘다.

갈치원이 산 스무 마지기 가운데 열둘이 윤벽 것이었다.

윤벽이 가을에 밭값으로 넘긴 것이다.

윤벽이 그것을 팔면서 갈치원한테 한마디 했다고 한다.

“이건 사람이 밟아야 사는 물건이오.”

갈치원이 물었다.

“밟을 사람은 있소?”

윤벽이 말했다.

“…있기야 있지요.”

그 말을 하고 윤벽이 읍을 떠났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갈치원의 셈은 이랬다.

사람 서른을 붙이면 한 달에 밥값이 스무 냥쯤 든다.

스무 마지기 터에서 나오는 것은 콩이 아니다.

읍에서 값을 정하는 자리다.

터에 서면 누구든 초식이 나오니, 갈치원이 그 터 안에 서 있으면 아무도 그 앞에서 값을 깎지 못한다.

한 달 스무 냥으로 읍의 쌀값을 잡는다.

싼 셈이다.

갈치원이 그 셈을 남한테 말한 적이 없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읍 사람들이 알아서 그의 앞에서 값을 안 깎았다.

연오가 그 소식을 들은 것은 겨울이다.

도갑이 나무패를 놓으러 갔다가 보고 왔다.

“…연오야, 거기는 나무패를 못 놨다.”

연오가 물었다.

“왜 못 놓으셨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들어가니 문을 잠갔다.”

“…”

“나가려는데 밟고 가라고 했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도갑이 말했다.

“…이틀 밟고 나왔다.”

연오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도갑이 말했다.

“나는 사십 년 밟은 놈이다. 이틀이 뭐가 대수냐?”

“…”

“그런데 거기 밟는 사람들은 안 괜찮더라.”

연오가 물었다.

“어떻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발이 터졌다.”

연오가 물었다.

“…치료는 해 줍니까?”

도갑이 말했다.

“해 주지. 안 해 주면 못 밟으니까.”

“…”

“약도 주고 밥도 준다. 하루 세 끼 준다.”

연오가 물었다.

“…그러면 나쁜 데는 아니지 않습니까?”

도갑이 그 말에 연오를 봤다.

“연오야.”

“예.”

“나는 사십 년을 무영곡에서 밟았다. 밥 세 끼 먹고 밟았다.”

“…”

“거기가 나쁜 데였나?”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도갑이 말했다.

“나쁜 데는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 잘 먹고 잘 잤다.”

“…”

“다만 사십 년 뒤에 알고 보니 내가 남의 밭을 다지고 있었다.”

도갑이 제 발을 봤다.

“거기 그 사람들은 그걸 알고 밟는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알고 밟는 게 더 나쁘다.”

“…왜 그렇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나는 사십 년 동안 내가 세지는 줄 알았다. 그건 속은 거지만 신은 났다.”

“…”

“저 사람들은 신날 게 없다.”

“…”

“맨발로 두 시진씩 하는데 겨울이다.”

연오가 그 자리에 앉았다.

도갑이 말했다.

“그중에 열둘이 무영곡 사람이었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무영곡이요?”

도갑이 말했다.

“문 닫고 흩어진 놈들이다.”

“…”

“밟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거기로 갔다.”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도갑이 말했다.

“연오야.”

“예.”

“나도 그럴 뻔했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자네가 콩 한 말 반 준다고 안 했으면 나도 거기 갔을 거다.”

연오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연오가 봄에 남쪽 읍에 갔다.

가서 그 터에 들어갔다.

문지기가 막았다.

“…누구요?”

연오가 말했다.

“밟으러 왔습니다.”

문지기가 들여보냈다.

연오가 들어가서 밟았다.

이레 밟았다.

이레 동안 옆에서 밟는 사람들하고 말을 했다.

말하면서 밟으면 두 시진이 짧다.

이렛날 오전에 감독하는 자가 왔다.

감독은 셋이다. 셋이 돌아가며 마당을 본다.

감독이 연오 앞에 섰다.

“…자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연오가 말했다.

“이레 됐습니다.”

“어디서 왔나?”

“북쪽에서 왔습니다.”

감독이 연오의 발을 봤다.

“발이 멀쩡하구먼.”

연오가 말했다.

“…밟은 지 오래됐습니다.”

감독이 말했다.

“그럼 한번 해 봐라.”

연오가 물었다.

“…무엇을요?”

감독이 말했다.

“여기 터에서 초식이 나오나 보자. 나오면 위쪽으로 보내 준다. 위쪽은 하루 한 시진만 밟는다.”

옆에서 밟던 사람들이 그 말에 멈췄다.

하나가 낮게 말했다.

“…해 봐라. 위쪽은 편하다.”

연오가 손을 뻗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감독이 말했다.

“…다시.”

연오가 다시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감독이 웃었다.

“…밟은 지 오래됐다면서 이것도 안 나오나?”

연오가 말했다.

“…안 나옵니다.”

감독이 갔다.

가면서 혼잣말을 했다.

“쓸모없는 놈이 하나 들어왔네.”

연오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옆에서 밟던 사람이 물었다.

“…괜찮소?”

연오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나도 안 나오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이 말했다.

“여기서 스무 달 밟았는데 한 번도 안 나왔소.”

“…”

“그래서 나는 위쪽에 못 가오.”

연오가 물었다.

“…어르신, 발이 서늘하십니까?”

그 사람이 물었다.

“…서늘한 게 뭐요?”

연오가 말했다.

“신을 벗고 서면 발이 시린 것 말입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겨울이니 시리지.”

연오가 말했다.

“그런 시림 말고요.”

그 사람이 한참 생각했다.

“…정수리까지 오는 거요?”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오십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오오. 어릴 때부터 그랬소.”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그러면 어르신은 터를 찾아내실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물었다.

“…그게 뭐가 좋소?”

연오가 말했다.

“밟은 데가 됐는지 안 됐는지를 아십니다.”

“…”

“그걸 아는 사람이 강호에 몇 없습니다.”

그 사람이 제 발을 봤다.

“…나는 이게 병인 줄 알았소.”

이렛날에 연오가 물었다.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십니까?”

하나가 말했다.

“…갈 데가 없소.”

연오가 물었다.

“밭이 있으십니까?”

“…없소.”

연오가 말했다.

“밭을 만드시면 됩니다.”

그 사람이 웃었다.

“…땅이 있어야 만들지.”

연오가 말했다.

“임자 없는 땅이 있습니다.”

“…어디요?”

연오가 말했다.

“물 안 오는 데는 다 임자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물었다.

“…물이 안 오면 소용없잖소.”

연오가 말했다.

“밟으면 안 빠집니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섰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들, 여기서 밟는 거나 거기서 밟는 거나 두 시진입니다.”

“…”

“여기는 남의 땅이고 거기는 어르신 땅입니다.”

그 사람이 물었다.

“…그걸 왜 말해 주오?”

연오가 말했다.

“제가 그렇게 했으니까요.”

이레 뒤에 연오가 나왔다.

나오고 한 달 뒤에 그 터에서 서른 가운데 열아홉이 나갔다.

부자가 사람을 더 구했다.

못 구했다.

그해 여름에 그 스무 마지기가 없어졌다.

열하나로는 못 지킨다.

부자가 읍에서 힘을 잃었다.

연오가 그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도갑이 물었다.

“…좋은 일 아닌가.”

연오가 말했다.

“열하나는 아직 거기 있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왜 안 나오나?”

연오가 말했다.

“밭을 못 만들 사람들입니다.”

“…”

“늙었거나 아픕니다.”

도갑이 물었다.

“…몇이나 되나?”

연오가 말했다.

“열하나입니다.”

“…다 늙었나?”

연오가 말했다.

“넷은 늙었고 넷은 발이 상했습니다. 셋은 눈이 어둡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눈이 어두우면 왜 못 만드나?”

연오가 말했다.

“열 자 네모를 못 잡습니다.”

“…”

“밟다 보면 조금씩 밀립니다. 밀리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안 됩니다.”

도갑이 그 자리에 앉았다.

“…줄을 치면 되지 않나.”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줄을 치면 되지.”

연오가 말했다.

“…말뚝이요?”

도갑이 웃었다.

“말뚝이 남 보라고 박는 거라고 누가 그랬지.”

“…문주님이요.”

도갑이 말했다.

“그건 남의 터에 박을 때 이야기고.”

“…”

“제 밭에 박는 건 제가 보라고 박는 거다.”

도갑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는 그 열하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데려오면 되지.”

연오가 말했다.

“데려와서 뭘 합니까? 밟을 힘이 없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밟는 것 말고 할 게 없나.”

연오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콩 고르는 건 앉아서 한다.”

열하나를 데려오는 데 두 달이 걸렸다.

한 번에 못 데려왔다. 걸어서 오는 데 엿새 길인데 발이 상한 사람은 하루에 십 리를 못 간다.

넷씩 나눠 왔다.

첫 넷이 왔을 때 마을이 술렁였다.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연오야, 저 사람들 밟을 수 있냐?”

연오가 말했다.

“못 밟습니다.”

“…그럼 뭘 하냐?”

연오가 말했다.

“콩을 고릅니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콩 고르는 건 우리도 한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희 마을에 콩 고르는 데 하루에 몇 시진 듭니까?”

“…한 시진쯤 들지.”

“그 한 시진을 누가 합니까?”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저녁에 다들 하지.”

연오가 말했다.

“저녁에 하시니까 밟는 걸 낮에 하십니다.”

“…”

“낮에 밟으면 밭일을 못 하십니다.”

둘째 집 어른이 그 셈을 했다.

연오가 말했다.

“저분들이 낮에 콩을 고르시면 어르신들은 저녁에 밟으시면 됩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첫째 집 어른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덕을 보는 거네.”

연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나는 저 사람들 밥값 걱정을 했는데.”

연오가 말했다.

“밥값은 드셔야지요.”

“…”

“일하시는데.”

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