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09자) · 무영곡이 문을 닫다
마당에 콩을 심는다
천하제일 농부 · 한도윤
세 해째 봄에 무영곡이 문을 닫았다.
문하가 백이십에서 스물둘이 됐다.
스물둘로는 마당을 못 지킨다.
두 마지기를 스물둘이 지키려면 하루에 네 시진씩 해야 한다.
문주가 마을로 내려왔다.
와서 연오를 찾았다.
“연오야.”
“예.”
“우리 마당을 사겠느냐?”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사요?”
문주가 말했다.
“두 마지기다. 삼백 해 다진 것이다.”
연오가 물었다.
“…얼마에 파십니까?”
문주가 말했다.
“한 마지기에 스무 냥.”
연오가 물었다.
“…밭값입니까?”
문주가 말했다.
“밭값이다.”
연오가 물었다.
“터값은요.”
문주가 말했다.
“…안 받겠다.”
연오가 물었다.
“왜 안 받으십니까?”
문주가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말했다.
“…터값을 받으면 내가 이태 전에 한 짓이 된다.”
연오가 그 말을 들었다.
문주가 말했다.
“이태 전에 나는 네 터를 밭값 반에 사겠다고 했다.”
“…그러셨습니다.”
문주가 말했다.
“그때 네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아느냐?”
연오가 말했다.
“…뺏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문주가 말했다.
“그 말이 삼 년 동안 안 잊혔다.”
연오가 사흘 생각했다.
사흘 뒤에 말했다.
“…사지 않겠습니다.”
문주가 고개를 들었다.
연오가 말했다.
“대신 빌리겠습니다.”
문주가 물었다.
“…빌려서 뭐 하느냐?”
연오가 말했다.
“콩을 심겠습니다.”
문주가 그 자리에 섰다.
“…마당에 콩을 심어?”
연오가 말했다.
“삼백 해 다진 땅입니다. 물이 안 빠집니다.”
“…”
“콩이 아주 잘될 겁니다.”
문주가 웃었다.
웃는데 소리가 났다.
한참 웃었다.
“…삼백 해를 밟았는데 콩밭이 되는구나.”
연오가 말했다.
“콩밭이 되면 안 됩니까?”
문주가 말했다.
“…된다.”
“…”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알면 뭐라 할지 모르겠다.”
연오가 말했다.
“삼백 해 전 그분은 아마 밭을 만드신 걸 겁니다.”
문주가 물었다.
“…무슨 말이냐.”
연오가 말했다.
“한 사람이 한 달 밟아서 만드셨을 겁니다.”
“…”
“그때 그분이 왜 밟으셨겠습니까?”
문주가 대답을 못 했다.
연오가 말했다.
“저는 밭을 늘리려고 밟았습니다.”
“…”
“그분도 그러셨을 겁니다.”
문주가 그 자리에 앉았다.
연오가 말했다.
“그다음 사람들이 그것을 수련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 아니겠습니까?”
문주가 말했다.
“…그러면 삼백 해가 헛것이냐.”
연오가 말했다.
“아닙니다.”
“…”
“덕분에 그 땅이 아직 있습니다.”
문주가 고개를 들었다.
연오가 말했다.
“하루만 안 밟으면 없어지는 것을 삼백 해 지키셨습니다.”
“…”
“그건 아무나 못 합니다.”
문주가 그 말에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해 여름에 무영곡 마당에 콩을 심었다.
무영곡 문하 스물둘이 심었다.
심으면서 밟았다.
밟는 것은 하던 일이라 잘했다.
심는 것은 서툴렀다.
스물둘 가운데 콩을 심어 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연오가 가서 가르쳤다.
“한 구멍에 셋씩 넣으십시오.”
하나가 물었다.
“…왜 셋입니까?”
연오가 말했다.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안 나고 하나가 납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그러면 둘은 버리는 것 아닙니까?”
연오가 말했다.
“버리는 게 아니라 나눠 주는 겁니다.”
문주가 그 말을 옆에서 들었다.
“…연오야.”
“예.”
“그거 누가 가르쳤느냐?”
연오가 말했다.
“어머니가요.”
문주가 말했다.
“…그 어른은 무서운 분이시다.”
연오가 웃었다.
심고 사흘 뒤에 문하 하나가 뛰어왔다.
“…나옵니다!”
연오가 물었다.
“…무엇이요?”
“싹이 났습니다!”
스물둘이 다 마당으로 나왔다.
나와서 싹을 봤다.
싹이 손가락 한 마디쯤 나 있었다.
문하 하나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게 콩입니까?”
연오가 말했다.
“콩입니다.”
“…이렇게 작습니까?”
“작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이걸 처음 봅니다.”
연오가 물었다.
“…콩을 안 드셨습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먹었지요. 그런데 밥상에서만 봤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문주가 말했다.
“…우리가 삼백 해 동안 이걸 안 봤구나.”
그 사람이 물었다.
“문주님, 이거 언제 먹습니까?”
문주가 연오를 봤다.
연오가 말했다.
“…가을에요.”
그 사람이 말했다.
“…그때까지 밟습니까?”
연오가 말했다.
“밟으시면 됩니다. 밟으면서 김을 매시면 됩니다.”
문주가 웃었다.
“삼백 해 만에 밟는 까닭이 생겼다.”
가을에 두 마지기에서 콩이 스물여섯 말 났다.
연오네 밭보다 잘됐다.
삼백 해 다진 땅이라 그렇다.
문주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이게 제일 많이 나온 해다.”
연오가 물었다.
“…전에는 얼마 나왔습니까?”
문주가 말했다.
“한 톨도 안 나왔다. 안 심었으니까.”
그해 가을에 강호에 말이 하나 돌았다.
「터는 밟으면 생긴다.」
이 말이 도는 데 세 해가 걸렸다.
세 해 동안 아무도 안 막았다.
막을 수가 없다.
밟는 것을 어떻게 막는가.
말이 돌고 나서 강호가 셋으로 갈렸다.
하나는 밟는 쪽이다.
하나는 안 밟는 쪽이다.
하나는 남이 밟은 것을 뺏는 쪽이다.
안 밟는 쪽이 제일 조용했다.
조용한데 수가 적지 않았다.
안 밟는 까닭이 셋이다.
하나는 밟을 땅이 없어서다.
하나는 밟을 몸이 없어서다. 늙었거나 아프다.
하나는 안 밟겠다고 정해서다.
셋째가 이상했다.
연오가 그런 사람을 하나 만났다.
동쪽 골짜기에 살았다. 마흔쯤 된 사내였고 밭이 세 마지기 있었다.
“…어르신은 왜 안 밟으십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밟으면 우리 밭에서 아무나 초식을 쓰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이 말했다.
“터는 임자를 안 가리지 않소. 서면 나오지 않소.”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 밭에 남이 들어와 서면 그놈도 나오오.”
“…”
“지금은 우리 밭에 들어와도 아무것도 못 하오. 그게 낫소.”
연오가 물었다.
“…그러면 콩은요?”
그 사람이 말했다.
“콩은 덜 나지.”
“…”
“덜 나도 밤에 발 뻗고 자오.”
연오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돌아오면서 도갑한테 말했다.
“어르신, 저 어른 말이 맞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그러면 자네가 틀렸나?”
연오가 말했다.
“둘 다 맞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그러면 자네는 어느 쪽인가?”
연오가 말했다.
“저는 밟는 쪽입니다.”
“…”
“그런데 저는 밟아도 안 나옵니다.”
도갑이 웃었다.
“…그럼 자네는 넷째 쪽이구먼.”
셋째가 제일 골치였다.
뺏는 것은 쉽다. 가서 서 있으면 된다.
밟은 사람이 없으면 하루 만에 없어지니, 뺏은 쪽이 밟아야 한다.
그런데 뺏는 자들은 밟기 싫어한다.
밟기 싫어서 뺏는 것이다.
그래서 뺏은 터가 사흘 만에 없어지는 일이 여러 번 났다.
값이 무너진 것은 그해 가을이다.
윤벽이 스물두 터를 사 놓고 있었다.
산값이 한 마지기에 스물다섯에서 예순까지였다.
가을에 그 값이 스물로 떨어졌다.
밭값이다. 터값이 없어진 것이다.
없어진 까닭은 하나다.
밟으면 생긴다는 말이 강호에 돌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에는 값이 안 붙는다.
윤벽이 마을에 왔다.
이번에는 종이를 안 들고 왔다.
“연오.”
“…오셨습니까?”
윤벽이 밭둑에 앉았다. 옷이 좋은데 흙에 그냥 앉았다.
“내가 스물두 터를 가지고 있네.”
“…압니다.”
“산값이 이천 냥이 넘네.”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윤벽이 말했다.
“지금 팔면 팔백이네.”
“…”
“서른 해 모은 것이 한 해에 갔네.”
연오가 물었다.
“…제 탓입니까?”
윤벽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 탓이 아니야. 내 탓이지.”
“…”
“나는 값이 어디서 오는지 알면서 샀네. 안 묻게 해야 한다고 자네한테 말까지 해 놓고 샀어.”
윤벽이 웃었다.
“물을 사람이 자네 하나인 줄 알았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윤벽이 말했다.
“연오, 하나 묻겠네.”
“…물으십시오.”
“자네는 이걸 왜 말하고 다니나?”
연오가 말했다.
“…말하고 다닌 적은 없습니다.”
윤벽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퍼졌나?”
연오가 말했다.
“밟으면 콩이 잘됩니다. 그러면 옆집이 묻습니다.”
윤벽이 그 말을 오래 들었다.
“…그게 다인가?”
“그게 답니다.”
윤벽이 일어섰다.
“나는 서른 해 동안 남이 안 묻게 하는 일을 했네.”
“…”
“자네는 다섯 해 만에 다 묻게 만들었어.”
윤벽이 밭을 봤다.
콩이 서 있었다.
“연오, 내 스물두 터를 자네가 사겠나?”
연오가 물었다.
“…얼마에요?”
윤벽이 말했다.
“밭값에.”
연오가 말했다.
“안 사겠습니다.”
윤벽이 물었다.
“왜?”
연오가 말했다.
“밟으면 생기는데 뭐 하러 삽니까?”
윤벽이 웃었다.
한참 웃었다.
“…그 말을 내가 들으려고 왔네.”
연오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도갑이 물었다.
“…왜 웃나?”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이건 뺏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없지.”
연오가 말했다.
“강호에서 뺏어도 소용없는 게 처음 아닙니까?”
도갑이 그 말을 오래 들었다.
“…그러네.”
연오가 말했다.
“땅은 지고 갈 수가 없고, 안 밟으면 없어집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러면 세상이 좀 조용해지겠구먼.”
연오가 말했다.
“…글쎄요.”
도갑이 물었다.
“왜?”
연오가 말했다.
“뺏는 대신 시킬 겁니다.”
도갑이 그 자리에 섰다.
연오가 말했다.
“밟기 싫은 자가 밟게 시키면 됩니다.”
도갑이 물었다.
“…누구한테 시키나?”
연오가 말했다.
“밭이 없는 사람한테요.”
도갑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연오가 말했다.
“하루 두 시진에 밥 세 끼면 할 사람이 있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그러면 그게 뭐가 되나?”
연오가 말했다.
“종입니다.”
도갑이 그 자리에 앉았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는 그게 제일 무섭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막을 수 있나.”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
“다만 하나는 압니다.”
도갑이 물었다.
“무엇인가?”
연오가 말했다.
“밟는 사람이 밭 임자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