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63자) · 다섯 해째

땅을 한 뼘 더 밟는다

무공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있다 · 구슬안

다섯 해째 가을에 연오는 스물여덟이 됐다⁠.

마을이 서른네 채에서 쉰둘이 됐다⁠.

늘어난 열여덟 가운데 열하나가 남쪽 읍에서 온 사람들이다⁠.

열하나는 밟지 않는다⁠.

콩을 고르고 새끼를 꼬고 아이를 본다⁠.

마을에서 밟는 것은 쉰두 집이 나눠 한다⁠.

한 집에 반 시진이다⁠.

연오네 마을 터가 쉰 마지기가 됐다⁠.

강호에서 제일 넓다⁠.

그런데 아무도 이것을 세지 않는다⁠.

도갑이 두 해 전에 세는 것을 그만뒀고 이후로 아무도 안 센다⁠.

나무패도 안 놓는다⁠.

대신 도갑이 다니면서 밟는 법 다섯을 외워 준다⁠.

다섯 해 동안 외워 준 데가 백 몇이라고 하는데 도갑도 정확히는 모른다⁠.

세지 않으니까 모른다⁠.

같은 해 가을에 강호 아홉 문파 가운데 여섯이 문을 닫았다⁠.

셋이 남았다⁠.

남은 셋은 밭이 있는 문파다⁠.

문파가 밭을 갈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것을 두고 「⁠문파가 망했다⁠」고도 하고 「⁠문파가 밭이 됐다⁠」고도 한다⁠.

남은 셋이 같은 해 여름에 한자리에 모였다⁠.

모여서 금령을 하나 냈다⁠.

한 자리를 여럿이 오래 밟는 것을 금한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연오가 못 알아들었다⁠.

도갑한테 물었다⁠.

“⁠…어르신⁠, 이게 무슨 말입니까⁠?⁠”

도갑이 말했다⁠.

“⁠사람을 사서 밟게 하지 말라는 말이지⁠.⁠”

연오가 물었다⁠.

“⁠…그러면 좋은 것 아닙니까⁠?⁠”

도갑이 말했다⁠.

“⁠좋지⁠. 그런데 한 번 더 읽어 봐라⁠.⁠”

연오가 이 말을 다시 들었다⁠.

한 자리를 여럿이 오래 밟는 것⁠.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저희 마을이 그렇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렇지⁠.⁠”

연오네 마을은 쉰두 집이 나눠 밟는다⁠.

한 자리를 여럿이 밟는다⁠.

오래 밟는다⁠.

도갑이 말했다⁠.

“⁠저 사람들이 자네 마을을 잡으려고 낸 거다⁠.⁠”

연오가 물었다⁠.

“⁠…왜 잡으려고 합니까⁠?⁠”

도갑이 말했다⁠.

“⁠자네 마을이 제일 넓으니까⁠.⁠”

“⁠…⁠”

“⁠그리고 저 사람들은 자네 마을이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를 아직도 모른다⁠.⁠”

연오가 물었다⁠.

“⁠…모릅니까⁠?⁠”

도갑이 말했다⁠.

“⁠모르지⁠. 저 사람들은 여럿이 밟으면 흩어진다는 걸 모른다⁠.⁠”

“⁠…⁠”

“⁠자네가 알아낸 거고 자네 마을만 안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도갑이 말했다⁠.

“⁠저 사람들 눈에는 자네 마을이 쉰둘을 부려서 쉰 마지기를 만든 걸로 보인다⁠.⁠”

연오가 말했다⁠.

“⁠…저희는 부린 게 아닙니다⁠.⁠”

도갑이 말했다⁠.

“⁠부린 게 아닌 걸 어떻게 보이나⁠?⁠”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도갑이 말했다⁠.

“⁠밟는 사람이 밭 임자면 부린 게 아니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어르신⁠, 제가 그 말을 했었지요⁠.⁠”

도갑이 말했다⁠.

“⁠했지⁠. 두 해 전에⁠.⁠”

“⁠…⁠”

“⁠그때 자네는 그게 막는 법이라고 했다⁠.⁠”

도갑이 웃었다⁠.

“⁠이제 그게 자네를 막아 주게 생겼다⁠.⁠”

연오는 둘 다 맞다고 생각했다⁠.

마을이 금령에 어떻게 답할지 정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쉰두 집이 모였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연오야⁠, 저 사람들이 오면 어쩌냐⁠?⁠”

연오가 말했다⁠.

“⁠오겠지요⁠.⁠”

“⁠…와서 우리 밭을 못 밟게 하면⁠.⁠”

연오가 말했다⁠.

“⁠밭을 못 밟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

마당이 연오를 봤다⁠.

연오가 말했다⁠.

“⁠금령은 한 자리를 여럿이 오래 밟는 것을 금한다고 했습니다⁠.⁠”

“⁠…그랬지⁠.⁠”

연오가 말했다⁠.

“⁠저희는 한 자리를 안 밟습니다⁠. 쉰두 집이 제 밭을 밟습니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그게 이어져 있잖냐⁠.⁠”

연오가 말했다⁠.

“⁠이어진 것은 이어진 것이고 한 자리는 아닙니다⁠.⁠”

셋째 집 어른이 물었다⁠.

“⁠…그게 통하냐⁠?⁠”

연오가 말했다⁠.

“⁠안 통할 겁니다⁠.⁠”

마당이 웃었다⁠.

연오가 말했다⁠.

“⁠안 통해도 그렇게 말할 겁니다⁠. 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려면 와서 재야 합니다⁠.⁠”

“⁠…재면⁠?⁠”

연오가 말했다⁠.

“⁠재는 사람이 저희 편이 됩니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왜⁠?⁠”

연오가 말했다⁠.

“⁠발로 대 보면 압니다⁠. 저희 밭은 금이 서 있고 저 사람들 마당은 번져 있습니다⁠.⁠”

“⁠…⁠”

“⁠한 자리를 여럿이 오래 밟은 데가 어디인지는 발이 압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도갑이 이때 웃었다⁠.

“⁠…연오야⁠, 자네 그거 셈이 고약하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이 가르치셨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나는 밟는 것만 가르쳤다⁠.⁠”

같은 해 시월에 도갑이 죽었다⁠.

일흔넷이었다⁠.

죽기 전에 연오를 불렀다⁠.

“⁠…연오야⁠.⁠”

“⁠예⁠.⁠”

“⁠나 좀 밟아 다오⁠.⁠”

연오가 이 말을 못 알아들었다⁠.

“⁠…예⁠?⁠”

도갑이 말했다⁠.

“⁠내 무덤 자리를 밟아 다오⁠.⁠”

연오가 물었다⁠.

“⁠…왜요⁠?⁠”

도갑이 말했다⁠.

“⁠…거기서 초식이 나오면 재미있지 않겠나⁠.⁠”

연오가 웃지 않았다⁠.

도갑이 물었다⁠.

“⁠…왜 안 웃나⁠.⁠”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는 안 나옵니다⁠.⁠”

도갑이 말했다⁠.

“⁠안다⁠.⁠”

“⁠…⁠”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안 나왔지⁠.⁠”

연오가 말했다⁠.

“⁠…예⁠.⁠”

도갑이 말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연오야⁠. 내가 사십오 년 밟으면서 알아낸 게 하나 있다⁠.⁠”

“⁠…무엇입니까⁠?⁠”

도갑이 말했다⁠.

“⁠밟은 놈은 못 쓴다⁠.⁠”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도갑이 말했다⁠.

“⁠나는 무영곡 마당을 안 만들었다⁠. 그러니 거기서 나왔다⁠.⁠”

“⁠…⁠”

“⁠자네 밭은 자네가 만들었다⁠. 그러니 안 나온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은 제 밭에서 나오셨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내가 밟았지 않나⁠.⁠”

연오가 말했다⁠.

“⁠…그러면 어르신도 못 쓰셔야 합니다⁠.⁠”

도갑이 웃었다⁠.

“⁠나는 밟기만 했지⁠. 만든 건 자네다⁠.⁠”

“⁠…⁠”

“⁠자리를 정한 게 자네고 언제까지 밟을지 정한 것도 자네다⁠.⁠”

연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도갑이 말했다⁠.

“⁠만드는 건 발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다⁠.⁠”

“⁠…⁠”

“⁠그러니 내 무덤은 자네가 정해라⁠. 자리도 자네가 정하고 얼마나 밟을지도 자네가 정해라⁠.⁠”

연오가 말했다⁠.

“⁠…그러면 제가 만든 것이 됩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렇지⁠.⁠”

“⁠…그러면 저는 거기서 못 씁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럴까⁠?⁠”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해 보면 알지⁠.⁠”

연오가 웃었다⁠.

웃는데 눈에서 뭐가 났다⁠.

도갑이 말했다⁠.

“⁠연오야⁠.⁠”

“⁠예⁠.⁠”

“⁠내가 사십 년 밟았다⁠.⁠”

“⁠…압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섯 해 더 밟았다⁠.⁠”

“⁠…예⁠.⁠”

도갑이 말했다⁠.

“⁠사십오 년 밟았는데 내 발은 그냥 발이다⁠.⁠”

연오가 말했다⁠.

“⁠…예⁠.⁠”

도갑이 말했다⁠.

“⁠그런데 내가 밟은 데는 밭이 됐다⁠.⁠”

“⁠…예⁠.⁠”

도갑이 말했다⁠.

“⁠…그럼 됐다⁠.⁠”

도갑을 마을 위쪽에 묻었다⁠.

묻고 나서 연오가 이 자리를 밟았다⁠.

한 달 밟았다⁠.

한 달 뒤에 서늘해졌다⁠.

연오가 이 자리에서 손을 뻗어 봤다⁠.

무영검 삼 초식이 나왔다⁠.

무덤 옆 흙이 두 자쯤 파였다⁠.

연오가 제 손을 봤다⁠.

다섯 해 만에 처음이다⁠.

손이 떨렸다⁠. 떨리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연오가 한 번 더 했다⁠.

나왔다⁠.

세 번째로 했다⁠.

나왔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무덤을 봤다⁠.

도갑이 말한 대로다⁠. 자리를 정한 것도 연오고 한 달을 밟은 것도 연오다⁠. 만든 사람이 연오다⁠.

그런데 나온다⁠.

연오가 이 까닭을 이 자리에서 알았다⁠.

이 자리는 연오가 저를 위해 만든 자리가 아니다⁠.

제 밭은 제가 쓰려고 만들었다⁠. 콩을 심으려고 만들었다⁠.

여기는 남을 묻으려고 만들었다⁠.

연오가 웃었다⁠.

웃으면서 말했다⁠.

“⁠…어르신⁠, 나옵니다⁠.⁠”

무덤이 대답할 리 없었다⁠.

연오가 한 번 더 말했다⁠.

“⁠…재미있으십니까⁠?⁠”

연오가 이것을 도로 덮었다⁠.

덮으면서 웃었다⁠.

어머니가 이것을 보고 물었다⁠.

“⁠…뭐 하냐⁠?⁠”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이 재미있어하실 것 같아서요⁠.⁠”

어머니가 말했다⁠.

“⁠무덤 파 놓고 웃냐⁠?⁠”

연오가 말했다⁠.

“⁠…예⁠.⁠”

어머니가 말했다⁠.

“⁠그 양반 닮았다⁠.⁠”

이듬해 봄에 연오가 마을을 떠났다⁠.

떠난 것이 아니라 다니기로 했다⁠.

도갑이 하던 일을 이어받았다⁠.

밟는 법 다섯을 외워 주러 다니는 일이다⁠.

어머니가 물었다⁠.

“⁠얼마나 다니냐⁠?⁠”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밭은 어쩌고⁠.⁠”

연오가 말했다⁠.

“⁠쉰두 집이 나눠 밟습니다⁠. 저 하나 빠져도 됩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면 됐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다가 돌아섰다⁠.

“⁠연오야⁠.⁠”

“⁠예⁠.⁠”

“⁠다니면서 뭘 할 거냐⁠?⁠”

연오가 말했다⁠.

“⁠밟는 법 다섯을 외워 주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거 다섯 줄 아니냐⁠?⁠”

“⁠…예⁠.⁠”

“⁠다섯 줄 외워 주는 데 몇 해가 걸리냐⁠?⁠”

연오가 이 물음에 멈췄다⁠.

어머니가 말했다⁠.

“⁠다섯 줄이면 하루에 열 집도 하겠다⁠.⁠”

연오가 말했다⁠.

“⁠…외워 주는 게 다가 아닙니다⁠.⁠”

“⁠그럼 뭐냐⁠?⁠”

연오가 말했다⁠.

“⁠가서 대 봐야 합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대 봐⁠?⁠”

연오가 말했다⁠.

“⁠밟은 데가 됐는지 안 됐는지를 사람들이 모릅니다⁠. 그걸 알려면 발로 대 봐야 합니다⁠.⁠”

“⁠…⁠”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습니다⁠.⁠”

어머니가 이 말을 들었다⁠.

“⁠…너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되냐⁠?⁠”

연오가 말했다⁠.

“⁠남쪽에서 하나 만났습니다⁠.⁠”

“⁠…하나⁠?⁠”

“⁠하나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둘이네⁠.⁠”

연오가 말했다⁠.

“⁠…둘입니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말했다⁠.

“⁠둘이면 다니겠다⁠.⁠”

연오가 지게를 졌다⁠.

지게에 콩 두 말을 실었다⁠.

가다가 밥이 떨어지면 팔 것이다⁠.

떠나는 날 아침에 마을 어귀에서 신을 벗었다⁠.

벗고 발을 대 봤다⁠.

정수리까지 서늘했다⁠.

다섯 해 전에 여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오가 신을 신었다⁠.

신고 한 걸음 나갔다⁠.

마을 밖이다⁠.

발이 안 서늘했다⁠.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그러고 신을 다시 벗었다⁠.

벗고 이 한 걸음 밖을 밟았다⁠.

두 발로 눌러 봤다⁠.

흙이 물렀다⁠.

연오가 웃었다⁠.

여기도 한 달 밟으면 된다⁠.

어머니가 밭둑에서 봤다⁠.

“⁠…뭐 하냐⁠?⁠”

연오가 말했다⁠.

“⁠…한 뼘 늘리고 갑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한 뼘 늘려서 뭐 하냐⁠?⁠”

연오가 말했다⁠.

“⁠…한 뼘이 늘잖습니까⁠?⁠”

어머니가 웃었다⁠.

연오가 신을 신고 걸었다⁠.

걸어가면서 한 번 뒤를 봤다⁠.

마을 어귀에 발자국이 둘 남아 있었다⁠.

이 두 발자국이 마을 밖에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를 구독하면 다음 화가 올라올 때 알려 드립니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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