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58자) · 다섯 해째
땅을 한 뼘 더 밟는다
천하제일 농부 · 한도윤
다섯 해째 가을에 연오는 스물여덟이 됐다.
마을이 서른네 채에서 쉰둘이 됐다.
늘어난 열여덟 가운데 열하나가 남쪽 읍에서 온 사람들이다.
열하나는 밟지 않는다.
콩을 고르고 새끼를 꼬고 아이를 본다.
마을에서 밟는 것은 쉰두 집이 나눠 한다.
한 집에 반 시진이다.
연오네 마을 터가 쉰 마지기가 됐다.
강호에서 제일 넓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세지 않는다.
도갑이 두 해 전에 세는 것을 그만뒀고 그 뒤로 아무도 안 센다.
나무패도 안 놓는다.
대신 도갑이 다니면서 밟는 법 다섯을 외워 준다.
다섯 해 동안 외워 준 데가 백 몇이라고 하는데 도갑도 정확히는 모른다.
세지 않으니까 모른다.
그해 가을에 강호 아홉 문파 가운데 여섯이 문을 닫았다.
셋이 남았다.
남은 셋은 밭이 있는 문파다.
문파가 밭을 갈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두고 「문파가 망했다」고도 하고 「문파가 밭이 됐다」고도 한다.
남은 셋이 그해 여름에 한자리에 모였다.
모여서 금령을 하나 냈다.
한 자리를 여럿이 오래 밟는 것을 금한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연오가 못 알아들었다.
도갑한테 물었다.
“…어르신, 이게 무슨 말입니까?”
도갑이 말했다.
“사람을 사서 밟게 하지 말라는 말이지.”
연오가 물었다.
“…그러면 좋은 것 아닙니까?”
도갑이 말했다.
“좋지. 그런데 한 번 더 읽어 봐라.”
연오가 그 말을 다시 들었다.
한 자리를 여럿이 오래 밟는 것.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저희 마을이 그렇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렇지.”
연오네 마을은 쉰두 집이 나눠 밟는다.
한 자리를 여럿이 밟는다.
오래 밟는다.
도갑이 말했다.
“저 사람들이 자네 마을을 잡으려고 낸 거다.”
연오가 물었다.
“…왜 잡으려고 합니까?”
도갑이 말했다.
“자네 마을이 제일 넓으니까.”
“…”
“그리고 저 사람들은 자네 마을이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를 아직도 모른다.”
연오가 물었다.
“…모릅니까?”
도갑이 말했다.
“모르지. 저 사람들은 여럿이 밟으면 흩어진다는 걸 모른다.”
“…”
“자네가 알아낸 거고 자네 마을만 안다.”
연오가 그 자리에 앉았다.
도갑이 말했다.
“저 사람들 눈에는 자네 마을이 쉰둘을 부려서 쉰 마지기를 만든 걸로 보인다.”
연오가 말했다.
“…저희는 부린 게 아닙니다.”
도갑이 말했다.
“부린 게 아닌 걸 어떻게 보이나?”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도갑이 말했다.
“밟는 사람이 밭 임자면 부린 게 아니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어르신, 제가 그 말을 했었지요.”
도갑이 말했다.
“했지. 두 해 전에.”
“…”
“그때 자네는 그게 막는 법이라고 했다.”
도갑이 웃었다.
“이제 그게 자네를 막아 주게 생겼다.”
연오는 둘 다 맞다고 생각했다.
마을이 금령에 어떻게 답할지 정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쉰두 집이 모였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연오야, 저 사람들이 오면 어쩌냐?”
연오가 말했다.
“오겠지요.”
“…와서 우리 밭을 못 밟게 하면.”
연오가 말했다.
“밭을 못 밟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
마당이 연오를 봤다.
연오가 말했다.
“금령은 한 자리를 여럿이 오래 밟는 것을 금한다고 했습니다.”
“…그랬지.”
연오가 말했다.
“저희는 한 자리를 안 밟습니다. 쉰두 집이 제 밭을 밟습니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그게 이어져 있잖냐.”
연오가 말했다.
“이어진 것은 이어진 것이고 한 자리는 아닙니다.”
셋째 집 어른이 물었다.
“…그게 통하냐?”
연오가 말했다.
“안 통할 겁니다.”
마당이 웃었다.
연오가 말했다.
“안 통해도 그렇게 말할 겁니다. 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려면 와서 재야 합니다.”
“…재면?”
연오가 말했다.
“재는 사람이 저희 편이 됩니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왜?”
연오가 말했다.
“발로 대 보면 압니다. 저희 밭은 금이 서 있고 저 사람들 마당은 번져 있습니다.”
“…”
“한 자리를 여럿이 오래 밟은 데가 어디인지는 발이 압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도갑이 그때 웃었다.
“…연오야, 자네 그거 셈이 고약하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이 가르치셨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나는 밟는 것만 가르쳤다.”
그해 시월에 도갑이 죽었다.
일흔넷이었다.
죽기 전에 연오를 불렀다.
“…연오야.”
“예.”
“나 좀 밟아 다오.”
연오가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예?”
도갑이 말했다.
“내 무덤 자리를 밟아 다오.”
연오가 물었다.
“…왜요?”
도갑이 말했다.
“…거기서 초식이 나오면 재미있지 않겠나.”
연오가 웃지 않았다.
도갑이 물었다.
“…왜 안 웃나.”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는 안 나옵니다.”
도갑이 말했다.
“안다.”
“…”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안 나왔지.”
연오가 말했다.
“…예.”
도갑이 말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연오야. 내가 사십오 년 밟으면서 알아낸 게 하나 있다.”
“…무엇입니까?”
도갑이 말했다.
“밟은 놈은 못 쓴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도갑이 말했다.
“나는 무영곡 마당을 안 만들었다. 그러니 거기서 나왔다.”
“…”
“자네 밭은 자네가 만들었다. 그러니 안 나온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은 제 밭에서 나오셨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내가 밟았지 않나.”
연오가 말했다.
“…그러면 어르신도 못 쓰셔야 합니다.”
도갑이 웃었다.
“나는 밟기만 했지. 만든 건 자네다.”
“…”
“자리를 정한 게 자네고 언제까지 밟을지 정한 것도 자네다.”
연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도갑이 말했다.
“만드는 건 발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다.”
“…”
“그러니 내 무덤은 자네가 정해라. 자리도 자네가 정하고 얼마나 밟을지도 자네가 정해라.”
연오가 말했다.
“…그러면 제가 만든 것이 됩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렇지.”
“…그러면 저는 거기서 못 씁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럴까?”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해 보면 알지.”
연오가 웃었다.
웃는데 눈에서 뭐가 났다.
도갑이 말했다.
“연오야.”
“예.”
“내가 사십 년 밟았다.”
“…압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섯 해 더 밟았다.”
“…예.”
도갑이 말했다.
“사십오 년 밟았는데 내 발은 그냥 발이다.”
연오가 말했다.
“…예.”
도갑이 말했다.
“그런데 내가 밟은 데는 밭이 됐다.”
“…예.”
도갑이 말했다.
“…그럼 됐다.”
도갑을 마을 위쪽에 묻었다.
묻고 나서 연오가 그 자리를 밟았다.
한 달 밟았다.
한 달 뒤에 서늘해졌다.
연오가 그 자리에서 손을 뻗어 봤다.
무영검 삼 초식이 나왔다.
무덤 옆 흙이 두 자쯤 파였다.
연오가 제 손을 봤다.
다섯 해 만에 처음이다.
손이 떨렸다. 떨리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연오가 한 번 더 했다.
나왔다.
세 번째로 했다.
나왔다.
연오가 그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무덤을 봤다.
도갑이 말한 대로다. 자리를 정한 것도 연오고 한 달을 밟은 것도 연오다. 만든 사람이 연오다.
그런데 나온다.
연오가 그 까닭을 그 자리에서 알았다.
이 자리는 연오가 저를 위해 만든 자리가 아니다.
제 밭은 제가 쓰려고 만들었다. 콩을 심으려고 만들었다.
여기는 남을 묻으려고 만들었다.
연오가 웃었다.
웃으면서 말했다.
“…어르신, 나옵니다.”
무덤이 대답할 리 없었다.
연오가 한 번 더 말했다.
“…재미있으십니까?”
연오가 그것을 도로 덮었다.
덮으면서 웃었다.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물었다.
“…뭐 하냐?”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이 재미있어하실 것 같아서요.”
어머니가 말했다.
“무덤 파 놓고 웃냐.”
연오가 말했다.
“…예.”
어머니가 말했다.
“그 양반 닮았다.”
이듬해 봄에 연오가 마을을 떠났다.
떠난 것이 아니라 다니기로 했다.
도갑이 하던 일을 이어받았다.
밟는 법 다섯을 외워 주러 다니는 일이다.
어머니가 물었다.
“얼마나 다니냐?”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밭은 어쩌고.”
연오가 말했다.
“쉰두 집이 나눠 밟습니다. 저 하나 빠져도 됩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면 됐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다가 돌아섰다.
“연오야.”
“예.”
“다니면서 뭘 할 거냐?”
연오가 말했다.
“밟는 법 다섯을 외워 주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거 다섯 줄 아니냐.”
“…예.”
“다섯 줄 외워 주는 데 몇 해가 걸리냐?”
연오가 그 물음에 멈췄다.
어머니가 말했다.
“다섯 줄이면 하루에 열 집도 하겠다.”
연오가 말했다.
“…외워 주는 게 다가 아닙니다.”
“그럼 뭐냐?”
연오가 말했다.
“가서 대 봐야 합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대 봐?”
연오가 말했다.
“밟은 데가 됐는지 안 됐는지를 사람들이 모릅니다. 그걸 알려면 발로 대 봐야 합니다.”
“…”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습니다.”
어머니가 그 말을 들었다.
“…너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되냐?”
연오가 말했다.
“남쪽에서 하나 만났습니다.”
“…하나?”
“하나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둘이네.”
연오가 말했다.
“…둘입니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말했다.
“둘이면 다니겠다.”
연오가 지게를 졌다.
지게에 콩 두 말을 실었다.
가다가 밥이 떨어지면 팔 것이다.
떠나는 날 아침에 마을 어귀에서 신을 벗었다.
벗고 발을 대 봤다.
정수리까지 서늘했다.
다섯 해 전에 여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오가 신을 신었다.
신고 한 걸음 나갔다.
마을 밖이다.
발이 안 서늘했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그러고 신을 다시 벗었다.
벗고 그 한 걸음 밖을 밟았다.
두 발로 눌러 봤다.
흙이 물렀다.
연오가 웃었다.
여기도 한 달 밟으면 된다.
어머니가 밭둑에서 봤다.
“…뭐 하냐?”
연오가 말했다.
“…한 뼘 늘리고 갑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한 뼘 늘려서 뭐 하냐?”
연오가 말했다.
“…한 뼘이 늘잖습니까?”
어머니가 웃었다.
연오가 신을 신고 걸었다.
걸어가면서 한 번 뒤를 봤다.
마을 어귀에 발자국이 둘 남아 있었다.
그 두 발자국이 마을 밖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