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84자) · 열일곱 집

밖으로 한 발

천하제일 농부 · 한도윤

소문이 도는 데 두 달이 걸렸다.

도갑이 말한 것이 아니다. 도갑은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

소문이 난 까닭은 콩이다.

연오네 콩이 잘됐다.

두 마지기에서 스물여덟 말이 났다.

전에 열두 말이었다.

읍 장터에서 사람들이 물었다.

“연오네 올해 뭘 했소?”

연오가 말했다.

“밟았습니다.”

“…뭘 밟아.”

“밭을요.”

사람들이 웃었다.

“밟으면 콩이 배로 나오나?”

연오가 말했다.

“나옵니다.”

사람들이 더 웃었다.

웃었는데 이듬해 봄에 셋이 찾아왔다.

같은 마을 사람 셋이다.

“…연오야, 어떻게 밟냐?”

연오가 말했다.

“한 달 밟으면 됩니다.”

“하루에 얼마나?”

“두 시진입니다.”

셋이 서로를 봤다.

하나가 말했다.

“…두 시진이면 일을 못 하는데.”

연오가 말했다.

“밟으면서 하시면 됩니다.”

“…밟으면서 뭘 해.”

연오가 말했다.

“새끼를 꼬시든지 콩을 고르시든지 하십시오. 서서 하실 수 있는 것이면 됩니다.”

셋이 그것을 했다.

한 달 뒤에 셋이 다시 왔다.

“…연오야.”

“예.”

“우리 밭이 서늘해졌는지 어떻게 아냐.”

연오가 말했다.

“제가 가서 보겠습니다.”

연오가 셋의 밭에 갔다.

신을 벗고 대 봤다.

첫째 밭은 서늘했다.

둘째 밭은 안 서늘했다.

셋째 밭은 조금 서늘했다.

연오가 물었다.

“둘째 어르신, 얼마나 밟으셨습니까?”

“한 달 했지.”

“…두 시진씩이요.”

“…한 시진쯤 했다.”

연오가 말했다.

“두 시진 하셔야 합니다.”

셋째한테 물었다.

“어르신은요.”

“두 시진 했다. 그런데 비 오는 날은 안 했다.”

연오가 말했다.

“비 오는 날도 하셔야 합니다.”

셋째가 말했다.

“…비 오는데 밟으면 진창이 되는데.”

연오가 말했다.

“진창이 됐다가 마르면 더 단단해집니다.”

셋째가 그것을 해 봤다.

보름 뒤에 서늘해졌다.

그해 여름에 마을에 밟는 사람이 아홉이 됐다.

가을에 스물둘이 됐다.

이듬해 봄에 마을 사람 절반이 밟았다.

마을이 서른네 채다. 열일곱 집이 밟는다.

연오는 그것을 세지 않으려고 했는데 세어졌다.

도갑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연오야.”

“예.”

“이 마을이 터가 되겠다.”

연오가 말했다.

“밭마다 따로입니다.”

도갑이 말했다.

“따로인데 붙어 있으면 하나다.”

연오가 그 말에 마을을 봤다.

열일곱 집 밭이 이어져 있다.

이어진 것이 열 마지기쯤이다.

도갑이 말했다.

“무영곡 마당이 두 마지기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도갑이 말했다.

“여기가 다섯 배다.”

그해 가을에 옆 골짜기에서 사람이 왔다.

넷이 왔다. 무영곡 사람이 아니다.

마을 어귀에 서서 물었다.

“여기가 새 터라고 들었소.”

아무도 대답 안 했다.

넷 가운데 하나가 밭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손을 뻗었다.

초식이 나왔다.

밭둑이 파였다.

그자가 웃었다.

“…나오네.”

그자가 말했다.

“이 터 우리가 가져가겠소.”

어머니가 그때 밭에 있었다.

호미를 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가져가시오.”

넷이 서로를 봤다.

어머니가 말했다.

“가져가려면 지고 가야지.”

“…뭐요?”

어머니가 호미로 흙을 찍었다.

“땅을 어떻게 가져가오?”

그자가 말했다.

“…여기 서 있으면 우리 거요.”

어머니가 말했다.

“서 있으시오. 우리는 밟을 테니.”

넷이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연오가 그때 말했다.

“어르신들, 하루만 여기 서 계시면 됩니다.”

그자가 물었다.

“…하루?”

연오가 말했다.

“하루 동안 아무도 안 밟으면 이 터가 없어집니다.”

넷이 서로를 봤다.

연오가 말했다.

“그러니 지키시려면 밟으셔야 합니다.”

그자가 물었다.

“…얼마나?”

연오가 말했다.

“하루에 두 시진씩 평생입니다.”

넷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연오가 말했다.

“저희는 어차피 밟습니다. 밭이니까요.”

“…”

“어르신들은 밭이 없으시잖습니까?”

넷이 그날 저녁에 갔다.

가면서 하나가 돌아서서 물었다.

“…농부.”

연오가 봤다.

“이 터 자네가 만들었나?”

연오가 말했다.

“저 혼자 만든 게 아닙니다. 열일곱 집이 했습니다.”

그자가 물었다.

“…그럼 자네가 제일 센가?”

연오가 말했다.

“저는 안 셉니다.”

그자가 웃었다.

“…겸손하구먼.”

연오가 말했다.

“겸손이 아니라 안 나옵니다.”

그자가 걸음을 멈췄다.

“…뭐라고?”

연오가 말했다.

“저는 이 터에서 초식이 안 나옵니다.”

그자가 연오를 한참 봤다.

“…자네가 만들었는데?”

“예.”

“만든 사람이 못 써?”

연오가 말했다.

“저만 그런지 다들 그런지는 모릅니다.”

그자가 옆 사람을 봤다. 옆 사람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자가 말했다.

“…그럼 자네는 뭐 하러 만들었나?”

연오가 말했다.

“콩 심으려고요.”

넷이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참 있다가 그자가 말했다.

“…우리는 그런 놈을 처음 본다.”

넷이 가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연오네 마당에 모였다.

열일곱 집이 다 왔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연오야, 또 오면 어쩌냐.”

연오가 말했다.

“또 오겠지요.”

“…그럼 어쩌냐고.”

연오가 말했다.

“밟으면 됩니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밟는 걸로 되나. 저놈들이 칼을 뽑으면.”

연오가 말했다.

“여기서는 저희도 나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셋째 집 어른이 물었다.

“…우리도 나오나?”

연오가 말했다.

“해 보셨습니까?”

셋째 집 어른이 고개를 저었다.

“…해 볼 생각을 안 했다.”

연오가 말했다.

“해 보십시오.”

셋째 집 어른이 제 밭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손을 뻗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안 나오는데.”

연오가 말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렇게 했지.”

연오가 보고 말했다.

“그건 손만 뻗으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냐?”

연오가 말했다.

“저도 모릅니다.”

마당이 웃었다.

그때 마당 뒤에서 누가 손을 들었다.

두치다.

두치는 연오와 동갑이고 옆집에 산다. 밭이 반 마지기다. 반 마지기인 까닭은 형이 나눠 가졌기 때문이고, 형이 나눠 가진 까닭은 형이 먼저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도 해 볼래.”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너는 밟았냐?”

두치가 말했다.

“밟았지.”

“얼마나?”

“한 달.”

연오가 물었다.

“두 시진씩?”

두치가 말했다.

“…두 시진이 얼마나 되냐?”

마당이 또 웃었다.

두치가 억울해했다.

“아니, 나는 해 뜰 때부터 밥 먹을 때까지 했다니까.”

연오가 물었다.

“밥을 언제 먹는데?”

두치가 말했다.

“…배고플 때.”

연오가 두치네 밭에 가 봤다.

신을 벗고 대 봤다.

발목까지 서늘했다.

“…됐네.”

두치가 좋아했다.

“봐라. 내가 했다고 했잖냐.”

두치가 밭에 들어가서 손을 뻗었다.

나왔다.

밭둑이 한 자쯤 파였다.

두치가 제 손을 봤다.

“…어?”

두치가 한 번 더 했다.

나왔다.

세 번째로 했다.

나왔다.

네 번째로 하려는 것을 연오가 막았다.

“밭둑 무너진다.”

두치가 말했다.

“…연오야.”

“왜?”

“나 이거 나온다.”

연오가 말했다.

“…나온다.”

두치가 물었다.

“너는?”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두치가 다시 물었다.

“너는 나오냐?”

연오가 말했다.

“…나는 안 나온다.”

두치가 웃었다.

“…뭐냐 그게. 네가 알려 줬잖냐.”

연오가 말했다.

“그러니까.”

두치가 웃다가 연오 얼굴을 보고 그쳤다.

“…진짜 안 나오냐?”

“안 나온다.”

두치가 밭에서 나왔다.

나와서 제 손을 봤다.

“…그럼 이거 내가 잘한 거 아니네.”

연오가 말했다.

“잘한 거다.”

두치가 말했다.

“…네가 안 나오는데 내가 나오면 그게 뭐가 잘한 거냐.”

두치가 흙을 손으로 긁어서 파인 자리를 덮었다.

호미로 안 하고 손으로 했다.

서툴러서 흙이 반만 덮였다.

두치가 그날 저녁에 연오네 마당에 왔다.

“연오야.”

“왜?”

“나 형한테 가서 말했다.”

연오가 물었다.

“…뭐라고 했는데?”

두치가 말했다.

“밭을 반씩 나눴는데 이제 내가 반 마지기를 더 만들 수 있으니까, 형 것 안 뺏겠다고.”

연오가 물었다.

“…형이 뭐라시냐?”

두치가 말했다.

“너 언제 내 것 뺏으려고 했냐고 하더라.”

연오가 웃었다.

두치가 말했다.

“…나는 열여덟부터 그 생각만 했는데.”

두치가 마당에 앉았다.

“형은 몰랐대.”

“…”

“나 혼자 십 년 미워했다.”

연오가 물었다.

“…이제 안 미워하냐?”

두치가 말했다.

“밭이 생기면 안 미워할 것 같다.”

두치가 제 손을 봤다. 손톱 밑에 흙이 껴 있었다.

“…연오야.”

“왜?”

“그러면 미워한 게 형 탓이 아니라 밭이 반이어서였냐?”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도갑이 그때 앞으로 나왔다.

“내가 가르쳐 주지.”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어르신이 아시오?”

도갑이 말했다.

“사십 년 했소.”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사십 년 하셨는데 왜 여기 계시오?”

도갑이 말했다.

“…콩 때문이오.”

마당이 또 웃었다.

도갑이 그날부터 가르쳤다.

가르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무영검 삼 초식이다. 제일 쉬운 것이라고 했다.

한 달 뒤에 열일곱 집 가운데 아홉이 나왔다.

여덟은 안 나왔다.

도갑이 그 여덟을 봤다.

“…자세가 안 됐소.”

연오가 그 여덟의 밭을 대 봤다.

여덟 가운데 다섯이 덜 서늘했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자세가 아니라 땅입니다.”

도갑이 그 자리에 섰다.

연오가 말했다.

“덜 밟은 밭에서는 덜 나옵니다.”

도갑이 물었다.

“…나머지 셋은.”

연오가 대 봤다.

셋은 서늘했다.

“…땅은 됐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럼 셋은 자세요.”

연오가 말했다.

“예.”

도갑이 웃었다.

“…그럼 내가 할 일이 셋이구먼.”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다섯은 제가 하겠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자네가 밟아 주려고.”

연오가 말했다.

“밟는 법을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밟는 걸 뭘 알려 줘. 발이 있으면 다 한다면서.”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이 그러셨지요.”

“…그랬지.”

연오가 말했다.

“그게 틀렸습니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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