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98자) · 도갑
내 것이 아니었어
천하제일 농부 · 한도윤
늙은 사내 이름은 도갑이다.
무영곡에서 사십 년 밟았고 제자가 없다.
제자가 없는 까닭을 도갑이 말했다.
“가르칠 게 없다.”
“…밟는 걸 가르치면 되잖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밟는 걸 뭘 가르치나? 발이 있으면 다 한다.”
도갑이 연오네 밭에 온 것은 그해 사월이다.
와서 묵힌 한 마지기를 봤다.
“여기를 밟으라고.”
“예.”
“얼마나?”
연오가 말했다.
“한 달입니다.”
도갑이 물었다.
“한 달이면 되나.”
연오가 말했다.
“제가 해 봤습니다.”
도갑이 그 자리에 섰다.
“…해 봤어?”
연오가 말했다.
“보름에 미끈해지고 한 달에 서늘해집니다.”
도갑이 물었다.
“…자네가 서늘한 걸 아나.”
연오가 말했다.
“압니다.”
도갑이 신을 벗었다.
벗고 발을 대 봤다.
“…나는 모르겠는데.”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은 사십 년 밟으셔서 발이 두꺼우십니다.”
도갑이 제 발바닥을 봤다.
굳은살이 손가락 한 마디쯤이다.
“…이래서 못 느끼나.”
연오가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도갑이 그 자리에 앉았다.
“…사십 년 밟았는데 밟은 데가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는구먼.”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는 압니다.”
“…”
“대신 저는 못 밟습니다.”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연오가 말했다.
“저는 밭일을 해야 합니다. 하루에 두 시진을 밟을 수가 없습니다.”
도갑이 웃었다.
“…자네는 알고 못 하고 나는 하고 모르고.”
연오가 말했다.
“그러니 바꾸면 됩니다.”
도갑이 그날부터 밟았다.
하루에 두 시진씩 밟았다.
무영곡에서 밟던 것을 여기서 밟는다.
무영곡에서는 아무도 안 물었다. 도갑이 어디서 밟든 상관 안 했다.
보름째에 연오가 대 봤다.
미끈했다.
한 달째에 서늘했다.
발목까지 왔다.
연오가 도갑한테 말했다.
“어르신, 됐습니다.”
도갑이 신을 벗고 대 봤다.
“…나는 모르겠는데.”
연오가 말했다.
“해 보십시오.”
도갑이 그 자리에 섰다.
서서 손을 뻗었다.
무영검 삼 초식이다.
손이 갔다.
밭둑 흙이 두 자쯤 파였다.
도갑이 제 손을 봤다.
“…나온다.”
연오가 말했다.
“나옵니다.”
도갑이 한 걸음 옆으로 갔다.
가서 다시 했다.
안 나왔다.
도갑이 도로 왔다.
나왔다.
도갑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십 년 만에 알았다.”
연오가 물었다.
“무엇을 아셨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내 것이 아니었어.”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도갑이 말했다.
“나는 내가 세진 줄 알았다.”
“…”
“세진 게 아니라 땅이 세진 거였다.”
연오가 그 말을 듣고 제 손을 봤다.
“어르신.”
“…왜?”
“저도 해 봐도 되겠습니까?”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자네가?”
“예.”
도갑이 일어섰다.
“해 봐라. 여기 서서 이렇게 하면 된다.”
도갑이 손을 뻗어 보였다. 팔을 어깨 높이로 들고 손목을 세워서 앞으로 민다. 미는 끝에 손가락을 편다.
연오가 그대로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갑이 말했다.
“발이 틀렸다. 왼발이 앞이다.”
연오가 발을 바꿨다.
아무 일도 없었다.
“허리가 안 돌았다.”
연오가 허리를 돌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갑이 연오 앞으로 와서 팔을 잡았다.
“이렇게.”
도갑이 연오의 팔을 잡고 같이 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갑이 손을 놓았다.
“…이상하다.”
연오가 말했다.
“…제가 안 배워서 그렇겠지요.”
도갑이 말했다.
“배우고 말고가 없다. 터에 서면 나온다.”
“…”
“내가 방금 자네 밭에서 처음 했다. 나도 이 밭에서는 처음이야.”
연오가 그 말을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터에 서면 누구나 나온다. 그게 터다.”
도갑이 연오를 봤다.
“자네는 왜 안 나오나?”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도갑이 밭 가운데로 걸어갔다. 걸어가서 손을 뻗었다.
나왔다.
도갑이 돌아왔다.
연오가 그 자리로 갔다. 도갑이 선 자리와 같은 자리다.
손을 뻗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갑이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참 있다가 물었다.
“…연오야.”
“예.”
“자네 발이 서늘하다고 했지.”
“…예.”
“지금도 서늘한가?”
연오가 발을 대 봤다.
정수리까지 서늘했다.
“…서늘합니다.”
도갑이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
“…”
“그런데 나는 나오고 자네는 안 나온다.”
밭에 바람이 지나갔다. 콩 싹이 한쪽으로 누웠다가 섰다.
도갑이 말했다.
“…둘 중 하나겠다.”
연오가 물었다.
“…무엇입니까?”
도갑이 말했다.
“느끼는 놈은 못 쓰거나.”
“…”
“쓰는 놈은 못 느끼거나.”
도갑이 한참 앉아 있다가 물었다.
“…연오야.”
“예.”
“이걸 남한테 말하면 어찌 되나?”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무영곡이 뒤집힌다.”
연오가 물었다.
“왜 뒤집힙니까?”
도갑이 말했다.
“문하가 백이십이다. 백이십이 다 제가 센 줄 알고 산다.”
“…”
“땅이 센 거라고 하면.”
도갑이 말을 멈췄다.
연오가 말했다.
“…그만두겠지요.”
도갑이 말했다.
“그만두면 하루 만에 없어진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도갑이 말했다.
“삼백 해가 하루에 간다.”
도갑이 밭둑에 앉아 한참 있다가 물었다.
“…연오야, 나 하나만 부탁하자.”
“말씀하십시오.”
“이걸 무영곡에 말할 때는 내 이름을 빼 다오.”
연오가 물었다.
“…왜요?”
도갑이 말했다.
“사십 년 같이 밟은 놈들이다.”
“…”
“그놈들한테 내가 이 말을 하면, 그놈들은 내가 저희를 속인 걸로 안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이 속이신 게 아닙니다.”
도갑이 말했다.
“나도 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안 듣는다.”
“…”
“먼저 안 놈이 말하면 먼저 안 놈 탓이 된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도갑이 말했다.
“말은 자네가 해라. 자네는 밖에서 온 놈이니까.”
연오가 물었다.
“…그러면 제 탓이 됩니까?”
도갑이 웃었다.
“되지.”
“…”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는 거다.”
어머니가 그 말을 밭둑에서 들었다.
듣고 말했다.
“삼백 해가 하루에 가면 좋은 일 아니냐.”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좋은 일이오?”
어머니가 말했다.
“밟는 놈들이 없어지면 우리가 밟으면 되지.”
연오가 웃었다.
도갑이 웃지 않았다.
“…아주머니, 그 터가 없어지면 옆 골짜기 놈들이 옵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와서 뭐 하는데?”
도갑이 말했다.
“…아래 마을을 칩니다.”
어머니가 호미를 놓았다.
“지금은 안 치고?”
도갑이 대답을 못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마을은 무영곡 아래가 아니라 옆이오. 그래서 아무도 안 지켜 주오.”
“…”
“그런데 삼십 년 동안 아무도 안 왔소.”
도갑이 물었다.
“…한 번도요?”
어머니가 말했다.
“한 번 왔소. 십오 년 전에.”
“…”
“와서 소를 끌고 갔소.”
도갑이 물었다.
“무영곡이 안 도와줬습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도와줄 이유가 있소? 우리는 콩을 안 바치오.”
도갑이 그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 지켜 준다는 말은 콩 받는 집한테나 하시오.”
도갑이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날 저녁에 도갑이 연오한테 물었다.
“…연오야.”
“예.”
“자네 어머니 말이 맞나.”
연오가 말했다.
“맞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사십 년 동안 뭘 한 거냐.”
연오가 말했다.
“밟으셨습니다.”
도갑이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도갑이 물었다.
“…연오야. 자네 아버지가 누군가?”
연오가 말했다.
“…연가입니다. 십오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도갑이 그 자리에 섰다.
“…소 끌고 가던 놈들 막은 사람인가?”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아십니까?”
도갑이 말했다.
“안다. 그때 우리가 안 내려갔다.”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도갑이 말했다.
“그 마을은 콩을 안 바치니 우리가 갈 데가 아니라고 했다. 문주가 그렇게 말했다. 지금 문주 말고 그 앞 문주다.”
“…”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연오가 말했다.
“…맞습니다.”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맞다고?”
연오가 말했다.
“안 바쳤으니까요.”
도갑이 그 말에 한참 아무 말도 못 했다.
“…자네 어머니도 그렇게 말하시나?”
연오가 말했다.
“어머니는 지켜 준다는 말은 콩 받는 집한테나 하라고 하셨습니다.”
도갑이 웃었다. 웃는데 소리가 안 났다.
“…같은 말이구먼.”
도갑이 밭둑에 앉았다.
“연오야, 하나 물어보자.”
“예.”
“자네 아버지도 발이 서늘했나?”
연오가 말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그 어른은 초식이 나왔나?”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무공을 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소를 끌고 가던 놈들 앞을 막았고, 막고 죽었다.
연오가 말했다.
“…안 나왔을 겁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 어른도 밟았다며.”
“…열여덟 해 전에요.”
도갑이 말했다.
“밟아서 만들었으면 그 자리는 터다.”
“…”
“터에서 막았으면 나왔어야 한다.”
연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도갑이 말했다.
“…안 나왔으면 그건 자네하고 같은 거다.”
“…연오야.”
“예.”
“자네는 이걸로 뭘 하려고 하나?”
연오가 말했다.
“밭을 늘리려고 합니다.”
도갑이 물었다.
“밟으면 밭이 느나.”
연오가 말했다.
“밟은 데는 물이 안 빠집니다.”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연오가 말했다.
“위쪽 한 마지기를 묵힌 것은 물이 안 와서입니다. 와도 빠집니다.”
“…”
“다져 놓으니 안 빠집니다.”
도갑이 그 자리에 섰다.
“…그러면 콩이 되나.”
연오가 말했다.
“됩니다. 심어 봤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언제?”
연오가 말했다.
“보름 전에요.”
“…났나.”
연오가 밭 위쪽을 가리켰다.
콩 싹이 나 있었다.
묵힌 한 마지기에 콩이 나 있다.
도갑이 그것을 한참 봤다.
“…이게 되네.”
연오가 말했다.
“됩니다.”
도갑이 물었다.
“…그러면 여기서 초식도 나오나.”
연오가 말했다.
“나옵니다.”
도갑이 물었다.
“…콩밭에서 초식이 나온다고.”
연오가 말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