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00자) · 도갑

내 것이 아니었어

무공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있다 · 구슬안

늙은 사내 이름은 도갑이다⁠.

무영곡에서 사십 년 밟았고 제자가 없다⁠.

제자가 없는 까닭을 도갑이 말했다⁠.

“⁠가르칠 게 없다⁠.⁠”

“⁠…밟는 걸 가르치면 되잖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밟는 걸 뭘 가르치나⁠? 발이 있으면 다 한다⁠.⁠”

도갑이 연오네 밭에 온 것은 같은 해 사월이다⁠.

와서 묵힌 한 마지기를 봤다⁠.

“⁠여기를 밟으라고⁠.⁠”

“⁠예⁠.⁠”

“⁠얼마나⁠?⁠”

연오가 말했다⁠.

“⁠한 달입니다⁠.⁠”

도갑이 물었다⁠.

“⁠한 달이면 되나⁠.⁠”

연오가 말했다⁠.

“⁠제가 해 봤습니다⁠.⁠”

도갑이 이 자리에 섰다⁠.

“⁠…해 봤어⁠?⁠”

연오가 말했다⁠.

“⁠보름에 미끈해지고 한 달에 서늘해집니다⁠.⁠”

도갑이 물었다⁠.

“⁠…자네가 서늘한 걸 아나⁠.⁠”

연오가 말했다⁠.

“⁠압니다⁠.⁠”

도갑이 신을 벗었다⁠.

벗고 발을 대 봤다⁠.

“⁠…나는 모르겠는데⁠.⁠”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은 사십 년 밟으셔서 발이 두꺼우십니다⁠.⁠”

도갑이 제 발바닥을 봤다⁠.

굳은살이 손가락 한 마디쯤이다⁠.

“⁠…이래서 못 느끼나⁠.⁠”

연오가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도갑이 이 자리에 앉았다⁠.

“⁠…사십 년 밟았는데 밟은 데가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는구먼⁠.⁠”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는 압니다⁠.⁠”

“⁠…⁠”

“⁠대신 저는 못 밟습니다⁠.⁠”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연오가 말했다⁠.

“⁠저는 밭일을 해야 합니다⁠. 하루에 두 시진을 밟을 수가 없습니다⁠.⁠”

도갑이 웃었다⁠.

“⁠…자네는 알고 못 하고 나는 하고 모르고⁠.⁠”

연오가 말했다⁠.

“⁠그러니 바꾸면 됩니다⁠.⁠”

도갑이 이날부터 밟았다⁠.

하루에 두 시진씩 밟았다⁠.

무영곡에서 밟던 것을 여기서 밟는다⁠.

무영곡에서는 아무도 안 물었다⁠. 도갑이 어디서 밟든 상관 안 했다⁠.

보름째에 연오가 대 봤다⁠.

미끈했다⁠.

한 달째에 서늘했다⁠.

발목까지 왔다⁠.

연오가 도갑한테 말했다⁠.

“⁠어르신⁠, 됐습니다⁠.⁠”

도갑이 신을 벗고 대 봤다⁠.

“⁠…나는 모르겠는데⁠.⁠”

연오가 말했다⁠.

“⁠해 보십시오⁠.⁠”

도갑이 이 자리에 섰다⁠.

서서 손을 뻗었다⁠.

무영검 삼 초식이다⁠.

손이 갔다⁠.

밭둑 흙이 두 자쯤 파였다⁠.

도갑이 제 손을 봤다⁠.

“⁠…나온다⁠.⁠”

연오가 말했다⁠.

“⁠나옵니다⁠.⁠”

도갑이 한 걸음 옆으로 갔다⁠.

가서 다시 했다⁠.

안 나왔다⁠.

도갑이 도로 왔다⁠.

나왔다⁠.

도갑이 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십 년 만에 알았다⁠.⁠”

연오가 물었다⁠.

“⁠무엇을 아셨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내 것이 아니었어⁠.⁠”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도갑이 말했다⁠.

“⁠나는 내가 세진 줄 알았다⁠.⁠”

“⁠…⁠”

“⁠세진 게 아니라 땅이 세진 거였다⁠.⁠”

연오가 이 말을 듣고 제 손을 봤다⁠.

“⁠어르신⁠.⁠”

“⁠…왜⁠?⁠”

“⁠저도 해 봐도 되겠습니까⁠?⁠”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자네가⁠?⁠”

“⁠예⁠.⁠”

도갑이 일어섰다⁠.

“⁠해 봐라⁠. 여기 서서 이렇게 하면 된다⁠.⁠”

도갑이 손을 뻗어 보였다⁠. 팔을 어깨 높이로 들고 손목을 세워서 앞으로 민다⁠. 미는 끝에 손가락을 편다⁠.

연오가 그대로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갑이 말했다⁠.

“⁠발이 틀렸다⁠. 왼발이 앞이다⁠.⁠”

연오가 발을 바꿨다⁠.

아무 일도 없었다⁠.

“⁠허리가 안 돌았다⁠.⁠”

연오가 허리를 돌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갑이 연오 앞으로 와서 팔을 잡았다⁠.

“⁠이렇게⁠.⁠”

도갑이 연오의 팔을 잡고 같이 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갑이 손을 놓았다⁠.

“⁠…이상하다⁠.⁠”

연오가 말했다⁠.

“⁠…제가 안 배워서 그렇겠지요⁠.⁠”

도갑이 말했다⁠.

“⁠배우고 말고가 없다⁠. 터에 서면 나온다⁠.⁠”

“⁠…⁠”

“⁠내가 방금 자네 밭에서 처음 했다⁠. 나도 이 밭에서는 처음이야⁠.⁠”

연오가 이 말을 들었다⁠.

도갑이 말했다⁠.

“⁠터에 서면 누구나 나온다⁠. 그게 터다⁠.⁠”

도갑이 연오를 봤다⁠.

“⁠자네는 왜 안 나오나⁠?⁠”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도갑이 밭 가운데로 걸어갔다⁠. 걸어가서 손을 뻗었다⁠.

나왔다⁠.

도갑이 돌아왔다⁠.

연오가 이 자리로 갔다⁠. 도갑이 선 자리와 같은 자리다⁠.

손을 뻗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도갑이 이것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참 있다가 물었다⁠.

“⁠…연오야⁠.⁠”

“⁠예⁠.⁠”

“⁠자네 발이 서늘하다고 했지⁠.⁠”

“⁠…예⁠.⁠”

“⁠지금도 서늘한가⁠?⁠”

연오가 발을 대 봤다⁠.

정수리까지 서늘했다⁠.

“⁠…서늘합니다⁠.⁠”

도갑이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

“⁠…⁠”

“⁠그런데 나는 나오고 자네는 안 나온다⁠.⁠”

밭에 바람이 지나갔다⁠. 콩 싹이 한쪽으로 누웠다가 섰다⁠.

도갑이 말했다⁠.

“⁠…둘 중 하나겠다⁠.⁠”

연오가 물었다⁠.

“⁠…무엇입니까⁠?⁠”

도갑이 말했다⁠.

“⁠느끼는 놈은 못 쓰거나⁠.⁠”

“⁠…⁠”

“⁠쓰는 놈은 못 느끼거나⁠.⁠”

도갑이 한참 앉아 있다가 물었다⁠.

“⁠…연오야⁠.⁠”

“⁠예⁠.⁠”

“⁠이걸 남한테 말하면 어찌 되나⁠?⁠”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무영곡이 뒤집힌다⁠.⁠”

연오가 물었다⁠.

“⁠왜 뒤집힙니까⁠?⁠”

도갑이 말했다⁠.

“⁠문하가 백이십이다⁠. 백이십이 다 제가 센 줄 알고 산다⁠.⁠”

“⁠…⁠”

“⁠땅이 센 거라고 하면⁠.⁠”

도갑이 말을 멈췄다⁠.

연오가 말했다⁠.

“⁠…그만두겠지요⁠.⁠”

도갑이 말했다⁠.

“⁠그만두면 하루 만에 없어진다⁠.⁠”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도갑이 말했다⁠.

“⁠삼백 해가 하루에 간다⁠.⁠”

도갑이 밭둑에 앉아 한참 있다가 물었다⁠.

“⁠…연오야⁠, 나 하나만 부탁하자⁠.⁠”

“⁠말씀하십시오⁠.⁠”

“⁠이걸 무영곡에 말할 때는 내 이름을 빼 다오⁠.⁠”

연오가 물었다⁠.

“⁠…왜요⁠?⁠”

도갑이 말했다⁠.

“⁠사십 년 같이 밟은 놈들이다⁠.⁠”

“⁠…⁠”

“⁠그놈들한테 내가 이 말을 하면⁠, 그놈들은 내가 저희를 속인 걸로 안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이 속이신 게 아닙니다⁠.⁠”

도갑이 말했다⁠.

“⁠나도 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안 듣는다⁠.⁠”

“⁠…⁠”

“⁠먼저 안 놈이 말하면 먼저 안 놈 탓이 된다⁠.⁠”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도갑이 말했다⁠.

“⁠말은 자네가 해라⁠. 자네는 밖에서 온 놈이니까⁠.⁠”

연오가 물었다⁠.

“⁠…그러면 제 탓이 됩니까⁠?⁠”

도갑이 웃었다⁠.

“⁠되지⁠.⁠”

“⁠…⁠”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는 거다⁠.⁠”

어머니가 이 말을 밭둑에서 들었다⁠.

듣고 말했다⁠.

“⁠삼백 해가 하루에 가면 좋은 일 아니냐⁠?⁠”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좋은 일이오⁠?⁠”

어머니가 말했다⁠.

“⁠밟는 놈들이 없어지면 우리가 밟으면 되지⁠.⁠”

연오가 웃었다⁠.

도갑이 웃지 않았다⁠.

“⁠…아주머니⁠, 그 터가 없어지면 옆 골짜기 놈들이 옵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와서 뭐 하는데⁠?⁠”

도갑이 말했다⁠.

“⁠…아래 마을을 칩니다⁠.⁠”

어머니가 호미를 놓았다⁠.

“⁠지금은 안 치고⁠?⁠”

도갑이 대답을 못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마을은 무영곡 아래가 아니라 옆이오⁠. 그래서 아무도 안 지켜 주오⁠.⁠”

“⁠…⁠”

“⁠그런데 삼십 년 동안 아무도 안 왔소⁠.⁠”

도갑이 물었다⁠.

“⁠…한 번도요⁠?⁠”

어머니가 말했다⁠.

“⁠한 번 왔소⁠. 십오 년 전에⁠.⁠”

“⁠…⁠”

“⁠와서 소를 끌고 갔소⁠.⁠”

도갑이 물었다⁠.

“⁠무영곡이 안 도와줬습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도와줄 이유가 있소⁠? 우리는 콩을 안 바치오⁠.⁠”

도갑이 이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 지켜 준다는 말은 콩 받는 집한테나 하시오⁠.⁠”

도갑이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날 저녁에 도갑이 연오한테 물었다⁠.

“⁠…연오야⁠.⁠”

“⁠예⁠.⁠”

“⁠자네 어머니 말이 맞나⁠.⁠”

연오가 말했다⁠.

“⁠맞습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사십 년 동안 뭘 한 거냐⁠?⁠”

연오가 말했다⁠.

“⁠밟으셨습니다⁠.⁠”

도갑이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도갑이 물었다⁠.

“⁠…연오야⁠. 자네 아버지가 누군가⁠?⁠”

연오가 말했다⁠.

“⁠…연가입니다⁠. 십오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도갑이 이 자리에 섰다⁠.

“⁠…소 끌고 가던 놈들 막은 사람인가⁠?⁠”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아십니까⁠?⁠”

도갑이 말했다⁠.

“⁠안다⁠. 그때 우리가 안 내려갔다⁠.⁠”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도갑이 말했다⁠.

“⁠그 마을은 콩을 안 바치니 우리가 갈 데가 아니라고 했다⁠. 문주가 그렇게 말했다⁠. 지금 문주 말고 그 앞 문주다⁠.⁠”

“⁠…⁠”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연오가 말했다⁠.

“⁠…맞습니다⁠.⁠”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맞다고⁠?⁠”

연오가 말했다⁠.

“⁠안 바쳤으니까요⁠.⁠”

도갑이 이 말에 한참 아무 말도 못 했다⁠.

“⁠…자네 어머니도 그렇게 말하시나⁠?⁠”

연오가 말했다⁠.

“⁠어머니는 지켜 준다는 말은 콩 받는 집한테나 하라고 하셨습니다⁠.⁠”

도갑이 웃었다⁠. 웃는데 소리가 안 났다⁠.

“⁠…같은 말이구먼⁠.⁠”

도갑이 밭둑에 앉았다⁠.

“⁠연오야⁠, 하나 물어보자⁠.⁠”

“⁠예⁠.⁠”

“⁠자네 아버지도 발이 서늘했나⁠?⁠”

연오가 말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그 어른은 초식이 나왔나⁠?⁠”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무공을 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소를 끌고 가던 놈들 앞을 막았고⁠, 막고 죽었다⁠.

연오가 말했다⁠.

“⁠…안 나왔을 겁니다⁠.⁠”

도갑이 말했다⁠.

“⁠그 어른도 밟았다며⁠.⁠”

“⁠…열여덟 해 전에요⁠.⁠”

도갑이 말했다⁠.

“⁠밟아서 만들었으면 그 자리는 터다⁠.⁠”

“⁠…⁠”

“⁠터에서 막았으면 나왔어야 한다⁠.⁠”

연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도갑이 말했다⁠.

“⁠…안 나왔으면 그건 자네하고 같은 거다⁠.⁠”

“⁠…연오야⁠.⁠”

“⁠예⁠.⁠”

“⁠자네는 이걸로 뭘 하려고 하나⁠?⁠”

연오가 말했다⁠.

“⁠밭을 늘리려고 합니다⁠.⁠”

도갑이 물었다⁠.

“⁠밟으면 밭이 느나⁠.⁠”

연오가 말했다⁠.

“⁠밟은 데는 물이 안 빠집니다⁠.⁠”

도갑이 고개를 들었다⁠.

연오가 말했다⁠.

“⁠위쪽 한 마지기를 묵힌 것은 물이 안 와서입니다⁠. 와도 빠집니다⁠.⁠”

“⁠…⁠”

“⁠다져 놓으니 안 빠집니다⁠.⁠”

도갑이 이 자리에 섰다⁠.

“⁠…그러면 콩이 되나⁠.⁠”

연오가 말했다⁠.

“⁠됩니다⁠. 심어 봤습니다⁠.⁠”

도갑이 물었다⁠.

“⁠…언제⁠?⁠”

연오가 말했다⁠.

“⁠보름 전에요⁠.⁠”

“⁠…났나⁠.⁠”

연오가 밭 위쪽을 가리켰다⁠.

콩 싹이 나 있었다⁠.

묵힌 한 마지기에 콩이 나 있다⁠.

도갑이 이것을 한참 봤다⁠.

“⁠…이게 되네⁠.⁠”

연오가 말했다⁠.

“⁠됩니다⁠.⁠”

도갑이 물었다⁠.

“⁠…그러면 여기서 초식도 나오나⁠.⁠”

연오가 말했다⁠.

“⁠나옵니다⁠.⁠”

도갑이 물었다⁠.

“⁠…콩밭에서 초식이 나온다고⁠.⁠”

연오가 말했다⁠.

“⁠예⁠.⁠”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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