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26자) · 무영곡 마당

밟으면 생긴다

천하제일 농부 · 한도윤

연오가 그것을 알아본 것은 그해 봄 내내다.

알아보는 법은 하나다.

밟아 본다.

연오가 묵힌 한 마지기 가운데에 자리를 하나 정했다.

가로 열 자 세로 열 자다.

거기를 날마다 밟았다.

아침에 백 번, 저녁에 백 번 왔다 갔다 했다.

하루에 이백 번이다.

닷새째에 아무 일도 없었다.

열흘째에 아무 일도 없었다.

보름째에 신을 벗고 대 봤다.

발바닥이 조금 이상했다.

서늘한 것은 아니고 미끈한 느낌이었다.

연오가 그것을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땅이 다져져서 그렇지.”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왜 그걸 하냐?”

연오가 말했다.

“…밭을 늘리려고요.”

어머니가 호미질을 멈췄다.

“밟아서 밭이 느냐?”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모르는데 보름을 했냐.”

연오가 말했다.

“예.”

어머니가 웃었다.

“네 아비 닮았다.”

한 달째에 서늘해졌다.

보름과 한 달 사이에 연오가 한 번 틀렸다.

스무하루째 되던 날 비가 사흘 왔다.

사흘 동안 밭이 진창이었다.

연오가 그 사흘을 걸렀다.

거르고 나서 스무나흘째에 다시 밟았다.

한 달을 채우고 대 봤다.

안 서늘했다.

연오가 그 자리에 앉았다.

사흘 걸렀다고 한 달이 헛것이 됐다.

다시 했다.

이번에는 비 오는 날도 했다. 진창을 밟으면 발이 미끄러져 두 배로 힘들었다. 종아리가 사흘 동안 뭉쳤다.

한 달을 채우고 대 봤다.

서늘했다.

연오가 그때 알았다.

한 달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이어지는 것이다.

쌓이는 것이면 사흘쯤 빼도 된다.

이어지는 것이면 하루만 끊겨도 처음부터다.

연오가 그것을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밥하고 같네.”

“…예?”

어머니가 말했다.

“사흘 굶고 나흘째 두 끼 먹는다고 그게 채워지냐.”

발목까지 왔다.

연오가 그 자리에 서서 한참 있었다.

한 달이다.

한 달 밟으니 생겼다.

연오가 그다음에 한 일은 그만 밟는 것이었다.

생기는 것을 알았으니 없어지는지도 봐야 한다.

사흘 안 밟았다.

사흘째에 대 봤다.

안 서늘했다.

사흘이 아니라 하루 만에 갔다.

연오가 그것을 이튿날 확인했다.

하루 안 밟으니 없어졌다.

한 달 밟아서 생긴 것이 하루 만에 간다.

연오가 그 셈을 하고 밭둑에 앉았다.

앉아서 생각했다.

무영곡이 삼백 해 됐다고 한다.

삼백 해 된 터가 있다.

그 터가 밟아서 생긴 것이면 삼백 해 동안 누가 날마다 밟았다는 뜻이다.

하루만 안 밟으면 없어진다.

삼백 해 동안 하루도 안 빼먹었다는 뜻이다.

연오가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영곡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말뚝 열일곱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길이 있었다.

길이 검다.

밟혀서 검다.

연오가 그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발밑을 봤다.

길만 검고 옆은 안 검다.

연오가 길 옆으로 한 발 나갔다.

발이 안 서늘했다.

길로 돌아왔다.

서늘했다.

연오가 그 자리에 앉았다.

무영곡의 터는 골짜기 전체가 아니다.

길만이다.

길 폭이 두 자쯤이다.

연오가 그 길을 따라 갔다.

가다 보니 넓어지는 데가 있었다.

마당이다.

마당이 넓다. 서른 걸음쯤이다.

마당에 사람이 스물쯤 있었다.

검은 띠를 매고 서 있었다.

서서 걷고 있었다.

걷는데 앞으로 안 가고 제자리에서 걸었다.

발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연오가 그것을 한참 봤다.

옆에 있던 늙은 사내가 물었다.

“…처음 보나.”

연오가 말했다.

“처음 봅니다.”

늙은 사내가 말했다.

“저게 수련이다.”

연오가 물었다.

“…걷는 게 수련입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밟는 게 수련이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늙은 사내가 말했다.

“하루에 두 시진 밟는다. 삼백 해 했다.”

연오가 물었다.

“…왜 밟습니까?”

늙은 사내가 웃었다.

“그건 나도 모른다.”

“…”

“스승이 밟으라고 해서 밟았고 나도 제자한테 밟으라고 한다.”

연오가 물었다.

“밟으면 뭐가 됩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발이 단단해진다.”

연오가 그 말을 들었다.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발이 단단해지면 초식이 잘 나온다고들 한다.”

연오가 물었다.

“…정말 그렇습니까?”

늙은 사내가 제 발을 봤다.

“…사십 년 밟았는데 내 발은 그냥 발이다.”

연오가 마당 흙을 봤다.

흙이 검다.

아주 검다. 연오네 밭 북쪽 귀퉁이보다 훨씬 검다.

연오가 알았다.

발이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이 단단해지는 것이다.

삼백 해 동안 이 문파가 한 일은 수련이 아니라 밭 다지기다.

연오가 그 자리에서 웃었다.

웃으니 늙은 사내가 물었다.

“…왜 웃나?”

연오가 말했다.

“…아닙니다.”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하면 이 문파가 삼백 해 동안 밭을 다졌다는 말이 된다.

연오가 마당 가장자리로 갔다.

가장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스물은 다 가운데 있었다.

연오가 손을 뻗어 봤다.

아까 본 대로 했다. 팔을 어깨 높이로 들고 손바닥을 세워서 앞으로 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흙이 파이지도 않고 바람도 안 났다.

연오가 제 손을 봤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배운 적이 없다.

한 번 더 해 봤다.

이번에는 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했다. 아까 본 사람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늙은 사내가 그것을 보고 있었다.

“…뭐 하나?”

연오가 손을 내렸다.

“…해 봤습니다.”

늙은 사내가 웃었다.

“안 나오지.”

“…예.”

“당연하다. 자네는 안 배웠잖나.”

연오가 말했다.

“…그렇지요.”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배워도 십 년은 해야 나온다.”

연오가 물었다.

“…십 년이요?”

늙은 사내가 말했다.

“그렇게들 말한다.”

연오가 마당을 봤다.

스물이 제자리에서 걷고 있었다.

연오가 그 자리에서 셈을 했다.

십 년 밟으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당은 이미 삼백 해 밟혀 있다.

그러면 십 년은 누가 밟는 십 년인가.

연오가 늙은 사내한테 물었다.

“어르신, 여기 들어온 지 한 달 된 사람도 있습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있지. 저기 저 어린 놈.”

연오가 봤다.

열대여섯쯤 된 아이였다. 가장자리에서 밟고 있었다.

연오가 물었다.

“저 아이는 나옵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안 나오지. 한 달인데.”

연오가 물었다.

“해 봤답니까?”

늙은 사내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안 해 봤겠지.”

“…”

“한 달짜리한테 누가 해 보라고 하나.”

연오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연오가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 무영곡이 삼백 해 동안 밭을 다졌습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무슨 밭을.”

“마당이요.”

어머니가 말했다.

“마당에 뭘 심냐?”

연오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심습니다.”

어머니가 호미를 놓았다.

“…삼백 해를 다져 놓고 아무것도 안 심어?”

“예.”

어머니가 말했다.

“미친 놈들이네.”

어머니가 호미를 다시 들었다.

“삼백 해면 몇 대냐?”

연오가 셈을 했다.

“…열 대쯤 됩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열 대가 밭을 다져 놓고 아무것도 안 심었다고.”

“…예.”

“그 집 조상이 처음에 뭘 하려고 다졌겠냐?”

연오가 그 물음에 멈췄다.

어머니가 말했다.

“다지는 건 심으려고 다지는 거다.”

“…”

“안 심을 거면 왜 다지냐?”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모르긴 뭘 몰라. 심으려고 했겠지.”

어머니가 콩자루를 당겨 놓았다.

“그러다 누가 죽었거나 흉년이 들었거나 했겠지. 그래서 못 심었을 거고.”

“…”

“그다음 대가 와서 보니 아버지가 날마다 거기를 밟더라 이거지. 왜 밟는지는 안 물어봤고.”

연오가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가 말했다.

“안 물어보고 따라 하면 그게 열 대 간다.”

연오가 말했다.

“…어머니.”

“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집도 그렇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시집와서 열두 해 동안 북쪽 귀퉁이로만 다녔다.”

“…왜요?”

어머니가 말했다.

“시어머니가 그리로 다녔으니까.”

“…”

“왜 그리로 다니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연오가 웃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그 마당이 몇 마지기냐?”

연오가 셈을 했다.

“…서른 걸음 네모면 두 마지기쯤 됩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두 마지기면 콩이 열두 말이다.”

“…예.”

“삼백 해면 삼천육백 말이다.”

연오가 그 수를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걸 안 심고 밟기만 했다고.”

연오가 말했다.

“예.”

어머니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 사람들 밥은 어디서 나냐?”

연오가 그 물음에 멈췄다.

무영곡에 밭이 없었다.

길과 마당뿐이었다.

연오가 이튿날 다시 갔다.

가서 늙은 사내한테 물었다.

“어르신, 여기 밥은 어디서 납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아래 마을에서 온다.”

“…사서 옵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받아 온다.”

“…왜 줍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우리가 지켜 주니까.”

연오가 물었다.

“…무엇에서요?”

늙은 사내가 대답을 안 했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옆 골짜기 놈들한테서.”

연오가 물었다.

“옆 골짜기 놈들은 왜 옵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터를 뺏으러 온다.”

연오가 물었다.

“터를 뺏어서 뭐 합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터가 있어야 세지.”

“…세면요.”

“세면 지킨다.”

“…무엇을요?”

늙은 사내가 말했다.

“터를.”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늙은 사내가 제 말을 듣고 웃었다.

“…셈이 돌았구먼.”

연오가 물었다.

“어르신, 사십 년 하셨다고 했지요.”

“했다.”

“밟는 것 말고 하신 게 있습니까?”

늙은 사내가 오래 생각했다.

“…없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희 밭에 오시면 콩을 드리겠습니다.”

늙은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했나?”

연오가 말했다.

“밟는 김에 저희 밭을 밟아 주십시오.”

늙은 사내가 웃었다.

“…농부가 사람을 부리려 드는구먼.”

연오가 말했다.

“부리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입니다.”

“…”

“어르신은 어차피 밟으실 거고 저는 밭이 필요합니다.”

늙은 사내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콩을 얼마 주나?”

연오가 말했다.

“한 달에 한 말 드리겠습니다.”

늙은 사내가 말했다.

“두 말.”

연오가 말했다.

“한 말 반.”

늙은 사내가 말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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