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27자) · 무영곡 마당

밟으면 생긴다

무공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있다 · 구슬안

연오가 이것을 알아본 것은 같은 해 봄 내내다⁠.

알아보는 법은 하나다⁠.

밟아 본다⁠.

연오가 묵힌 한 마지기 가운데에 자리를 하나 정했다⁠.

가로 열 자 세로 열 자다⁠.

거기를 날마다 밟았다⁠.

아침에 백 번⁠, 저녁에 백 번 왔다 갔다 했다⁠.

하루에 이백 번이다⁠.

닷새째에 아무 일도 없었다⁠.

열흘째에 아무 일도 없었다⁠.

보름째에 신을 벗고 대 봤다⁠.

발바닥이 조금 이상했다⁠.

서늘한 것은 아니고 미끈한 느낌이었다⁠.

연오가 이것을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땅이 다져져서 그렇지⁠.⁠”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왜 그걸 하냐⁠?⁠”

연오가 말했다⁠.

“⁠…밭을 늘리려고요⁠.⁠”

어머니가 호미질을 멈췄다⁠.

“⁠밟아서 밭이 느냐⁠?⁠”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모르는데 보름을 했냐⁠?⁠”

연오가 말했다⁠.

“⁠예⁠.⁠”

어머니가 웃었다⁠.

“⁠네 아비 닮았다⁠.⁠”

한 달째에 서늘해졌다⁠.

보름과 한 달 사이에 연오가 한 번 틀렸다⁠.

스무하루째 되던 날 비가 사흘 왔다⁠.

사흘 동안 밭이 진창이었다⁠.

연오가 이 사흘을 걸렀다⁠.

거르고 나서 스무나흘째에 다시 밟았다⁠.

한 달을 채우고 대 봤다⁠.

안 서늘했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사흘 걸렀다고 한 달이 헛것이 됐다⁠.

다시 했다⁠.

이번에는 비 오는 날도 했다⁠. 진창을 밟으면 발이 미끄러져 두 배로 힘들었다⁠. 종아리가 사흘 동안 뭉쳤다⁠.

한 달을 채우고 대 봤다⁠.

서늘했다⁠.

연오가 이때 알았다⁠.

한 달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이어지는 것이다⁠.

쌓이는 것이면 사흘쯤 빼도 된다⁠.

이어지는 것이면 하루만 끊겨도 처음부터다⁠.

연오가 이것을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밥하고 같네⁠.⁠”

“⁠…예⁠?⁠”

어머니가 말했다⁠.

“⁠사흘 굶고 나흘째 두 끼 먹는다고 그게 채워지냐⁠?⁠”

발목까지 왔다⁠.

연오가 이 자리에 서서 한참 있었다⁠.

한 달이다⁠.

한 달 밟으니 생겼다⁠.

연오가 다음에 한 일은 그만 밟는 것이었다⁠.

생기는 것을 알았으니 없어지는지도 봐야 한다⁠.

사흘 안 밟았다⁠.

사흘째에 대 봤다⁠.

안 서늘했다⁠.

사흘이 아니라 하루 만에 갔다⁠.

연오가 이것을 이튿날 확인했다⁠.

하루 안 밟으니 없어졌다⁠.

한 달 밟아서 생긴 것이 하루 만에 간다⁠.

연오가 이 셈을 하고 밭둑에 앉았다⁠.

앉아서 생각했다⁠.

무영곡이 삼백 해 됐다고 한다⁠.

삼백 해 된 터가 있다⁠.

이 터가 밟아서 생긴 것이면 삼백 해 동안 누가 날마다 밟았다는 뜻이다⁠.

하루만 안 밟으면 없어진다⁠.

삼백 해 동안 하루도 안 빼먹었다는 뜻이다⁠.

연오가 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영곡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말뚝 열일곱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길이 있었다⁠.

길이 검다⁠.

밟혀서 검다⁠.

연오가 이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발밑을 봤다⁠.

길만 검고 옆은 안 검다⁠.

연오가 길 옆으로 한 발 나갔다⁠.

발이 안 서늘했다⁠.

길로 돌아왔다⁠.

서늘했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무영곡의 터는 골짜기 전체가 아니다⁠.

길만이다⁠.

길 폭이 두 자쯤이다⁠.

연오가 이 길을 따라 갔다⁠.

가다 보니 넓어지는 데가 있었다⁠.

마당이다⁠.

마당이 넓다⁠. 서른 걸음쯤이다⁠.

마당에 사람이 스물쯤 있었다⁠.

검은 띠를 매고 서 있었다⁠.

서서 걷고 있었다⁠.

걷는데 앞으로 안 가고 제자리에서 걸었다⁠.

발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연오가 이것을 한참 봤다⁠.

옆에 있던 늙은 사내가 물었다⁠.

“⁠…처음 보나⁠.⁠”

연오가 말했다⁠.

“⁠처음 봅니다⁠.⁠”

늙은 사내가 말했다⁠.

“⁠저게 수련이다⁠.⁠”

연오가 물었다⁠.

“⁠…걷는 게 수련입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밟는 게 수련이다⁠.⁠”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늙은 사내가 말했다⁠.

“⁠하루에 두 시진 밟는다⁠. 삼백 해 했다⁠.⁠”

연오가 물었다⁠.

“⁠…왜 밟습니까⁠?⁠”

늙은 사내가 웃었다⁠.

“⁠그건 나도 모른다⁠.⁠”

“⁠…⁠”

“⁠스승이 밟으라고 해서 밟았고 나도 제자한테 밟으라고 한다⁠.⁠”

연오가 물었다⁠.

“⁠밟으면 뭐가 됩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발이 단단해진다⁠.⁠”

연오가 이 말을 들었다⁠.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발이 단단해지면 초식이 잘 나온다고들 한다⁠.⁠”

연오가 물었다⁠.

“⁠…정말 그렇습니까⁠?⁠”

늙은 사내가 제 발을 봤다⁠.

“⁠…사십 년 밟았는데 내 발은 그냥 발이다⁠.⁠”

연오가 마당 흙을 봤다⁠.

흙이 검다⁠.

아주 검다⁠. 연오네 밭 북쪽 귀퉁이보다 훨씬 검다⁠.

연오가 알았다⁠.

발이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이 단단해지는 것이다⁠.

삼백 해 동안 이 문파가 한 일은 수련이 아니라 밭 다지기다⁠.

연오가 이 자리에서 웃었다⁠.

웃으니 늙은 사내가 물었다⁠.

“⁠…왜 웃나⁠?⁠”

연오가 말했다⁠.

“⁠…아닙니다⁠.⁠”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하면 이 문파가 삼백 해 동안 밭을 다졌다는 말이 된다⁠.

연오가 마당 가장자리로 갔다⁠.

가장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스물은 다 가운데 있었다⁠.

연오가 손을 뻗어 봤다⁠.

아까 본 대로 했다⁠. 팔을 어깨 높이로 들고 손바닥을 세워서 앞으로 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흙이 파이지도 않고 바람도 안 났다⁠.

연오가 제 손을 봤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배운 적이 없다⁠.

한 번 더 해 봤다⁠.

이번에는 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했다⁠. 아까 본 사람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늙은 사내가 이것을 보고 있었다⁠.

“⁠…뭐 하나⁠?⁠”

연오가 손을 내렸다⁠.

“⁠…해 봤습니다⁠.⁠”

늙은 사내가 웃었다⁠.

“⁠안 나오지⁠.⁠”

“⁠…예⁠.⁠”

“⁠당연하다⁠. 자네는 안 배웠잖나⁠.⁠”

연오가 말했다⁠.

“⁠…그렇지요⁠.⁠”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배워도 십 년은 해야 나온다⁠.⁠”

연오가 물었다⁠.

“⁠…십 년이요⁠?⁠”

늙은 사내가 말했다⁠.

“⁠그렇게들 말한다⁠.⁠”

연오가 마당을 봤다⁠.

스물이 제자리에서 걷고 있었다⁠.

연오가 이 자리에서 셈을 했다⁠.

십 년 밟으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당은 이미 삼백 해 밟혀 있다⁠.

그러면 십 년은 누가 밟는 십 년인가⁠.

연오가 늙은 사내한테 물었다⁠.

“⁠어르신⁠, 여기 들어온 지 한 달 된 사람도 있습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있지⁠. 저기 저 어린 놈⁠.⁠”

연오가 봤다⁠.

열대여섯쯤 된 아이였다⁠. 가장자리에서 밟고 있었다⁠.

연오가 물었다⁠.

“⁠저 아이는 나옵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안 나오지⁠. 한 달인데⁠.⁠”

연오가 물었다⁠.

“⁠해 봤답니까⁠?⁠”

늙은 사내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안 해 봤겠지⁠.⁠”

“⁠…⁠”

“⁠한 달짜리한테 누가 해 보라고 하나⁠.⁠”

연오가 이 말을 오래 들었다⁠.

연오가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 무영곡이 삼백 해 동안 밭을 다졌습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무슨 밭을⁠.⁠”

“⁠마당이요⁠.⁠”

어머니가 말했다⁠.

“⁠마당에 뭘 심냐⁠?⁠”

연오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심습니다⁠.⁠”

어머니가 호미를 놓았다⁠.

“⁠…삼백 해를 다져 놓고 아무것도 안 심어⁠?⁠”

“⁠예⁠.⁠”

어머니가 말했다⁠.

“⁠미친 놈들이네⁠.⁠”

어머니가 호미를 다시 들었다⁠.

“⁠삼백 해면 몇 대냐⁠?⁠”

연오가 셈을 했다⁠.

“⁠…열 대쯤 됩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열 대가 밭을 다져 놓고 아무것도 안 심었다고⁠.⁠”

“⁠…예⁠.⁠”

“⁠그 집 조상이 처음에 뭘 하려고 다졌겠냐⁠?⁠”

연오가 이 물음에 멈췄다⁠.

어머니가 말했다⁠.

“⁠다지는 건 심으려고 다지는 거다⁠.⁠”

“⁠…⁠”

“⁠안 심을 거면 왜 다지냐⁠?⁠”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모르긴 뭘 몰라⁠. 심으려고 했겠지⁠.⁠”

어머니가 콩자루를 당겨 놓았다⁠.

“⁠그러다 누가 죽었거나 흉년이 들었거나 했겠지⁠. 그래서 못 심었을 거고⁠.⁠”

“⁠…⁠”

“⁠그다음 대가 와서 보니 아버지가 날마다 거기를 밟더라 이거지⁠. 왜 밟는지는 안 물어봤고⁠.⁠”

연오가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가 말했다⁠.

“⁠안 물어보고 따라 하면 그게 열 대 간다⁠.⁠”

연오가 말했다⁠.

“⁠…어머니⁠.⁠”

“⁠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집도 그렇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시집와서 열두 해 동안 북쪽 귀퉁이로만 다녔다⁠.⁠”

“⁠…왜요⁠?⁠”

어머니가 말했다⁠.

“⁠시어머니가 그리로 다녔으니까⁠.⁠”

“⁠…⁠”

“⁠왜 그리로 다니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연오가 웃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그 마당이 몇 마지기냐⁠?⁠”

연오가 셈을 했다⁠.

“⁠…서른 걸음 네모면 두 마지기쯤 됩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두 마지기면 콩이 열두 말이다⁠.⁠”

“⁠…예⁠.⁠”

“⁠삼백 해면 삼천육백 말이다⁠.⁠”

연오가 이 수를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걸 안 심고 밟기만 했다고⁠.⁠”

연오가 말했다⁠.

“⁠예⁠.⁠”

어머니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 사람들 밥은 어디서 나냐⁠?⁠”

연오가 이 물음에 멈췄다⁠.

무영곡에 밭이 없었다⁠.

길과 마당뿐이었다⁠.

연오가 이튿날 다시 갔다⁠.

가서 늙은 사내한테 물었다⁠.

“⁠어르신⁠, 여기 밥은 어디서 납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아래 마을에서 온다⁠.⁠”

“⁠…사서 옵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받아 온다⁠.⁠”

“⁠…왜 줍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우리가 지켜 주니까⁠.⁠”

연오가 물었다⁠.

“⁠…무엇에서요⁠?⁠”

늙은 사내가 대답을 안 했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옆 골짜기 놈들한테서⁠.⁠”

연오가 물었다⁠.

“⁠옆 골짜기 놈들은 왜 옵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터를 뺏으러 온다⁠.⁠”

연오가 물었다⁠.

“⁠터를 뺏어서 뭐 합니까⁠?⁠”

늙은 사내가 말했다⁠.

“⁠터가 있어야 세지⁠.⁠”

“⁠…세면요⁠.⁠”

“⁠세면 지킨다⁠.⁠”

“⁠…무엇을요⁠?⁠”

늙은 사내가 말했다⁠.

“⁠터를⁠.⁠”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늙은 사내가 제 말을 듣고 웃었다⁠.

“⁠…셈이 돌았구먼⁠.⁠”

연오가 물었다⁠.

“⁠어르신⁠, 사십 년 하셨다고 했지요⁠.⁠”

“⁠했다⁠.⁠”

“⁠밟는 것 말고 하신 게 있습니까⁠?⁠”

늙은 사내가 오래 생각했다⁠.

“⁠…없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저희 밭에 오시면 콩을 드리겠습니다⁠.⁠”

늙은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했나⁠?⁠”

연오가 말했다⁠.

“⁠밟는 김에 저희 밭을 밟아 주십시오⁠.⁠”

늙은 사내가 웃었다⁠.

“⁠…농부가 사람을 부리려 드는구먼⁠.⁠”

연오가 말했다⁠.

“⁠부리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입니다⁠.⁠”

“⁠…⁠”

“⁠어르신은 어차피 밟으실 거고 저는 밭이 필요합니다⁠.⁠”

늙은 사내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콩을 얼마 주나⁠?⁠”

연오가 말했다⁠.

“⁠한 달에 한 말 드리겠습니다⁠.⁠”

늙은 사내가 말했다⁠.

“⁠두 말⁠.⁠”

연오가 말했다⁠.

“⁠한 말 반⁠.⁠”

늙은 사내가 말했다⁠.

“⁠…가자⁠.⁠”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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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산책2026.10.02· 2화

    터는 밟아서 생긴다는데, 많이 밟은 땅일수록 무공이 센 거예요?

    • 구슬안작가2026.10.03

      많이 밟힌 땅일수록 짙어요. 그래서 장터 한복판이 명산 꼭대기보다 무서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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