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82자) · 말뚝 열일곱

경계 한 발짝

무공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있다 · 구슬안

무영곡 경계에 말뚝이 열일곱 개 박혀 있다⁠.

연오네 마을에서 읍에 가려면 이 말뚝 옆을 지나야 한다⁠.

지날 때마다 어머니가 같은 말을 한다⁠.

“⁠말뚝 쪽으로 붙지 마라⁠. 저짝 놈들 성질이 콩깍지다⁠.⁠”

“⁠콩깍지가 어떤 겁니까⁠?⁠”

“⁠마르면 저 혼자 터진다⁠.⁠”

연오는 스물셋이다⁠.

지게를 지고 이 길을 갔다⁠. 콩 세 말을 읍에 내다 팔러 가는 길이다⁠.

세 말 팔아야 소금 값이다⁠.

지게끈이 어깨에 닿는 자리는 열여섯부터 굳어 있어서 무게가 거기까지는 안 아프다⁠. 아픈 것은 이 아래 등이다⁠.

말뚝 앞에 사람이 넷 서 있었다⁠.

셋은 무영곡 옷이다⁠. 검은 띠를 맸다⁠.

하나는 옷이 좋았다⁠. 웃고 있었다⁠.

연오가 지게를 진 채 멈췄다⁠.

멈춘 까닭이 있다⁠.

발바닥이 서늘했다⁠.

연오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터에 발을 들이면 정수리까지 서늘하다⁠. 안 들이면 아무렇지도 않다⁠.

이것 말고는 아무 쓸모가 없는 재주다⁠.

지금 연오는 말뚝 바깥에 서 있다⁠.

그런데 서늘했다⁠.

말뚝이 틀린 자리에 있다⁠.

“⁠거기 농부⁠.⁠”

검은 띠 하나가 불렀다⁠.

“⁠예⁠.⁠”

“⁠비켜라⁠.⁠”

“⁠지나가는 길입니다⁠.⁠”

“⁠여기가 무영곡 땅이다⁠.⁠”

연오가 발밑을 봤다⁠.

말뚝이 왼쪽으로 두 자쯤 떨어져 있다⁠.

“⁠…여기는 밖입니다⁠.⁠”

검은 띠가 말뚝을 가리켰다⁠.

“⁠저게 경계다⁠.⁠”

연오가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는 밖입니다⁠.⁠”

검은 띠가 한 걸음 나왔다⁠.

나오면서 손이 허리로 갔다⁠.

연오가 이것을 봤다⁠.

그러고 반 보 왼쪽으로 갔다⁠.

말뚝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다⁠.

검은 띠가 멈췄다⁠.

“⁠…뭐 하는 짓이냐⁠?⁠”

연오가 말했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

“⁠때리시려면 안에서 때리셔야지요⁠. 밖에서 때리면 그쪽이 잘못입니다⁠.⁠”

검은 띠가 손을 뗐다⁠.

옷 좋은 자가 웃었다⁠.

“⁠…저 농부 셈이 빠르구먼⁠.⁠”

연오가 지게를 고쳐 멨다⁠.

셈이 빠른 것이 아니다⁠.

안쪽이 덜 서늘했다⁠.

바깥이 더 서늘했다⁠.

이것이 이상해서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옷 좋은 자가 물었다⁠.

“⁠농부⁠, 이름이 뭐냐⁠?⁠”

“⁠연오입니다⁠.⁠”

“⁠연오야⁠, 너 발이 좋구나⁠.⁠”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그자가 말했다⁠.

“⁠말뚝이 틀린 걸 알았지⁠.⁠”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자가 말뚝을 발로 툭 쳤다⁠.

“⁠이거 내가 어제 옮겼다⁠.⁠”

검은 띠 셋이 이 말에 서로를 봤다⁠.

셋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자가 말했다⁠.

“⁠두 자 옮겼다⁠. 그런데 터는 안 옮겨졌더구나⁠.⁠”

연오가 물었다⁠.

“⁠…터는 안 옮겨집니까⁠?⁠”

그자가 웃었다⁠.

“⁠말뚝은 옮기면 옮겨지는데 터는 안 옮겨진다⁠.⁠”

“⁠…⁠”

“⁠말뚝 박는 놈들이 그걸 모른다⁠.⁠”

연오가 물었다⁠.

“⁠그럼 말뚝이 뭡니까⁠?⁠”

그자가 말했다⁠.

“⁠말뚝은 남 보라고 박는 거지⁠.⁠”

검은 띠 하나가 물었다⁠.

“⁠문주님⁠, 그러면 말뚝을 왜 옮기셨습니까⁠?⁠”

옷 좋은 자가 검은 띠를 봤다⁠.

“⁠네가 알아채나 보려고⁠.⁠”

“⁠…⁠”

“⁠못 알아챘지⁠.⁠”

검은 띠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 농부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문주가 웃었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문주가 연오 쪽으로 왔다⁠. 지게 앞까지 와서 콩자루를 툭 쳤다⁠.

“⁠연오야⁠,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

연오가 말했다⁠.

“⁠…발이 서늘해서요⁠.⁠”

“⁠서늘하면 터냐⁠?⁠”

“⁠…그런 것 같습니다⁠.⁠”

문주가 물었다⁠.

“⁠언제부터 서늘하냐⁠?⁠”

연오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누가 가르쳤느냐⁠?⁠”

“⁠아무도 안 가르쳤습니다⁠.⁠”

문주가 검은 띠 셋을 돌아봤다⁠.

“⁠이 농부는 발로 안다⁠.⁠”

셋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문주가 말했다⁠.

“⁠너희는 사십 년 밟고도 모른다⁠.⁠”

셋 가운데 하나가 말했다⁠.

“⁠…저는 십이 년 밟았습니다⁠.⁠”

문주가 말했다⁠.

“⁠그럼 십이 년 밟고도 모르는 거지⁠.⁠”

연오가 이 말을 들으면서 지게끈을 고쳐 잡았다⁠.

콩 세 말이 어깨에 얹혀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해 지기 전에 읍에 닿는 것이 급하다⁠.

“⁠…가도 되겠습니까⁠?⁠”

문주가 손을 저었다⁠.

“⁠가라⁠.⁠”

연오가 세 걸음 갔다⁠.

뒤에서 문주가 불렀다⁠.

“⁠연오야⁠.⁠”

“⁠…예⁠.⁠”

“⁠발이 서늘하면 무엇이 좋으냐⁠?⁠”

연오가 돌아봤다⁠.

“⁠…아무것도 안 좋습니다⁠.⁠”

“⁠…⁠”

“⁠콩이 더 나는 것도 아니고요⁠.⁠”

문주가 웃었다⁠.

웃고 나서 말했다⁠.

“⁠그거 아까운 재주다⁠.⁠”

연오가 말했다⁠.

“⁠저는 아까운 줄 모르겠습니다⁠.⁠”

연오가 지게를 지고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콩 세 말이 어깨에 얹혀 있다⁠.

그자가 물었다⁠.

“⁠연오야⁠, 너 어디 사냐⁠?⁠”

“⁠저 아래 마을입니다⁠.⁠”

“⁠밭이 있냐⁠?⁠”

“⁠두 마지기 있습니다⁠.⁠”

그자가 말했다⁠.

“⁠두 마지기면 콩이 몇 말 나오냐⁠?⁠”

“⁠…열두 말쯤 납니다⁠.⁠”

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해 벌이가 소금 값 넉 달 치구나⁠.⁠”

연오가 이 셈을 이 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자가 웃으면서 갔다⁠.

가면서 말했다⁠.

“⁠연오야⁠, 네 밭에 서면 발이 서늘하냐⁠?⁠”

연오가 대답하려다 말았다⁠.

대답하려던 말은 「⁠아니오⁠」였다⁠.

그런데 이 말을 하려는 순간에 생각났다⁠.

작년 가을부터 밭 북쪽 귀퉁이가 조금 서늘하다⁠.

연오는 이것을 콩이 잘돼서 그런 줄 알았다⁠.

읍에서 콩 세 말을 팔았다⁠.

읍 장터는 해가 기울어 있었다⁠.

곡식 자리가 여섯인데 넷만 폈다⁠. 연오가 끝자리에 지게를 내렸다⁠.

곡식 받는 자가 됫박을 들고 왔다⁠. 됫박 아가리에 손가락을 걸고 쓸었다⁠.

“⁠…세 말이오⁠?⁠”

“⁠세 말입니다⁠.⁠”

“⁠두 푼 싸게 쳐 드리리다⁠.⁠”

연오가 물었다⁠.

“⁠…왜 쌉니까⁠?⁠”

이 사람이 턱으로 장터 건너를 가리켰다⁠.

“⁠저기 무영곡에서 받아 온 게 어제 들어왔소⁠.⁠”

연오가 봤다⁠. 멍석 네 장에 콩이 쌓여 있었다⁠.

“⁠…저건 안 삽니까⁠?⁠”

“⁠사야지⁠. 받아 온 걸 여기다 파오⁠.⁠”

“⁠…받은 것을요⁠?⁠”

이 사람이 웃었다⁠.

“⁠받은 건 값이 없소⁠. 값 없는 걸 파니까 싸게 내놓지⁠. 그럼 자네 것도 싸져야 하오⁠.⁠”

연오가 됫박을 봤다⁠.

“⁠…그러면 저희가 갚는 셈입니까⁠?⁠”

이 사람이 됫박을 놓았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나는 사는 사람이오⁠.⁠”

연오가 콩을 부었다⁠.

부으면서 셈을 했다⁠. 저 멍석 네 장은 아래 마을 사람들이 바친 것이다⁠. 바친 것이 장터에 나와 연오네 콩값을 두 푼 내린다⁠.

값을 내린 것은 무영곡이 아니다⁠.

바친 사람들이다⁠.

값이 작년보다 두 푼 쌌다⁠.

돌아오는 길에 연오가 밭에 들렀다⁠.

밭은 두 마지기다⁠. 아래쪽 한 마지기는 콩이고 위쪽 한 마지기는 묵혔다⁠.

묵힌 까닭은 물이 안 와서다⁠.

연오가 북쪽 귀퉁이로 갔다⁠.

신을 벗었다⁠.

발을 대 봤다⁠.

서늘했다⁠.

정수리까지는 안 왔다⁠. 발목까지 왔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손으로 흙을 짚어 봤다⁠.

흙은 그냥 흙이다⁠.

연오가 일어나서 열 걸음 옆으로 갔다⁠.

거기는 안 서늘했다⁠.

다시 돌아왔다⁠.

서늘했다⁠.

연오가 이 자리를 발로 눌러 봤다⁠.

눌리는 데가 단단했다⁠.

다져져 있었다⁠.

연오는 이 자리를 안다⁠.

작년 가을에 콩을 털던 자리다⁠.

털 때 멍석을 깔고 이 위에서 도리깨를 쳤다⁠.

한 달쯤 쳤다⁠.

한 달 동안 같은 자리를 밟았다⁠.

연오가 이 자리에 서서 한참 있었다⁠.

어머니가 밭둑에서 불렀다⁠.

“⁠거기서 뭐 하냐⁠?⁠”

“⁠…어머니⁠.⁠”

“⁠왜⁠?⁠”

“⁠작년에 여기서 콩 텄지요⁠.⁠”

어머니가 말했다⁠.

“⁠텄지⁠.⁠”

“⁠얼마나 텄습니까⁠?⁠”

“⁠한 달쯤 했지⁠.⁠”

연오가 물었다⁠.

“⁠재작년에는요⁠?⁠”

어머니가 말했다⁠.

“⁠재작년에는 저 아래서 텄다⁠.⁠”

연오가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서 신을 벗고 대 봤다⁠.

안 서늘했다⁠.

연오가 다시 올라왔다⁠.

올라와서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 여기가 서늘합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서늘하면 좋지⁠. 여름에⁠.⁠”

“⁠그런 서늘한 게 아니고요⁠.⁠”

어머니가 물었다⁠.

“⁠그럼 무슨 서늘함이냐⁠?⁠”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말로 하면 이상하다⁠.

어머니가 호미를 내려놓았다⁠.

“⁠너 어릴 때부터 그 소리 했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요⁠?⁠”

어머니가 말했다⁠.

“⁠다섯 살에 무영곡 앞을 지나면서 발이 시리다고 울었다⁠.⁠”

“⁠…⁠”

“⁠내가 신을 새로 사 줬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도 시리다고 해서 업고 갔다⁠.⁠”

연오가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도 그러셨습니까⁠?⁠”

어머니가 호미를 집었다⁠.

집어서 흙을 두 번 찍었다⁠. 찍을 데가 없는 자리를 찍었다⁠.

“⁠…그 사람도 그랬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발이 시리다고 하셨습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시리다는 말은 안 했다⁠. 대신 아무 데나 안 앉았다⁠.⁠”

“⁠…⁠”

“⁠밭둑에 앉을 때도 자리를 골랐다⁠. 여기는 안 된다⁠, 저기는 된다 하면서⁠.⁠”

연오가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물어보면 웃기만 했다⁠.⁠”

어머니가 호미를 놓았다⁠.

“⁠한 번은 이랬다⁠. 열여덟 해 전인가⁠. 밭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저 위쪽으로 가더라⁠.⁠”

어머니가 묵힌 한 마지기 쪽을 가리켰다⁠.

“⁠가서 한참 서 있다가 왔다⁠.⁠”

“⁠…무엇을 하셨답니까⁠?⁠”

“⁠밟는다고 했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밟아서 뭐 하냐고 물으니까⁠, 밭을 늘린다고 했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밭을요⁠?⁠”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다⁠. 물이 안 오는 데를 밟아서 어떻게 밭을 늘리냐⁠?⁠”

“⁠…⁠”

“⁠그래서 그만하라고 했다⁠.⁠”

어머니가 다시 호미를 들었다⁠.

“⁠그만두고 두 달 뒤에 죽었다⁠.⁠”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소를 끌고 가던 놈들 앞을 막았다⁠. 십오 년 전 그때다⁠.⁠”

“⁠…⁠”

“⁠막을 것 없었다⁠. 소 한 마리다⁠.⁠”

연오가 물었다⁠.

“⁠…막으셨습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막았지⁠. 그러고 죽었다⁠.⁠”

어머니가 흙을 찍었다⁠.

“⁠발이 서늘한 게 좋은 거면 그 사람이 왜 죽었겠냐⁠?⁠”

연오가 이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예⁠.⁠”

“⁠발 시리면 신을 신어라⁠.⁠”

어머니가 밭둑을 내려갔다⁠.

연오가 이 자리에 남았다⁠.

남아서 신을 신었다⁠.

신고 다시 이 자리에 서 봤다⁠.

신을 신으니 덜 서늘했다⁠.

덜 서늘한 것이지 안 서늘한 것이 아니었다⁠.

연오가 물었다⁠.

“⁠…어머니⁠, 그때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할 말이 뭐 있냐⁠? 애가 발 시리다는데⁠.⁠”

연오가 웃었다⁠.

웃다가 멈췄다⁠.

한 달을 밟은 자리가 서늘하다⁠.

그러면 터는 밟아서 생기는 것이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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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도윤2026.10.09· 1화

    작가 한도윤입니다. 이 강호에서 무공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서려 있습니다. 1화의 경계 한 발짝을 읽고, 여러분이라면 어느 터에 발을 들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