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438자)

감옥의 차

빙의한 엑스트라가 최종 보스의 누나였다 · 하진명

오웬의 맨손이 루벤의 손목을 감쌌다⁠. 장갑은 루벤의 허리띠에 꽂혀 있었다⁠. 손가락 끝이 검은 줄 위에 정확히 놓였다⁠.

나는 단상 아래에서 이 손을 봤다⁠. 오웬은 아쉬포드의 피가 아니었다⁠. 이 손으로는 아무것도 건너오지 않을 것이다⁠. 통증도⁠, 줄도⁠. 그냥 잡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줄의 굵기를 재듯이⁠.

대강당 높은 창으로 눈이 계속 내렸다⁠. 이백서른의 숨이 멎어 있었다⁠. 심문 주교는 지팡이에 두 손을 얹고 기다렸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의 기다림이었다⁠.

오웬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가 나기 전에 한 번 다물었다가 다시 열렸다⁠.

“⁠깨끗합니다⁠.⁠”

오웬이 루벤의 소매를 내렸다⁠. 소매 끝을 손목 아래까지 반듯하게 당겨 줬다⁠. 냉실에서 짐꾼의 홑이불을 턱 밑에 접어 넣던 이 손이었다⁠.

대강당이 웅성거렸다⁠. 단상 위에서 주교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오웬을 오래 내려다봤다⁠. 그리고 클라라를 봤다⁠. 주교의 미소가 얇아졌다⁠.

“⁠경의 눈도 피곤하군⁠.⁠” 주교가 말했다⁠. “⁠성녀님과 성기사의 눈이 함께 피곤한 날이오⁠. 첫눈 탓이겠지⁠.⁠”

주교는 이 이상 말하지 않았다⁠. 성녀와 성기사 둘이 이백서른 앞에서 깨끗하다고 한 것을⁠, 주교 혼자 더럽다고 하려면 이 손목을 직접 잡아야 했다⁠. 주교는 이 손목을 잡지 않았다⁠. 대신 단상에서 내려가며 오웬의 곁을 지났다⁠. 아주 가까이⁠.

“⁠오늘 밤⁠, 내 방으로⁠.⁠” 이 목소리는 나한테까지만 겨우 들렸다⁠.

루벤이 대강당 문을 나가 눈 속으로 걸어갔다⁠. 문밖에서 베티가 찐빵 바구니를 떨어뜨렸다⁠. 벨로가 떨어지는 바구니를 받았다⁠. 받으면서 하나를 입에 넣었다⁠.

*

강변에 눈이 발목까지 쌓였다⁠. 오웬은 대성당이 보이는 난간 앞에 서 있었다⁠. 장갑을 다시 끼지 않은 오른손이 붉게 얼어 있었다⁠.

“⁠왜 그랬는지 묻지 마라⁠.⁠”

“⁠왜 그랬어요⁠?⁠”

오웬이 숨을 내쉬었다⁠. 입김이 눈송이 사이로 흩어졌다⁠.

“⁠그 줄은 네 통증이었다⁠.⁠” 오웬이 말했다⁠. “⁠첫 삶에서 그 줄은 하녀의 통증이었고⁠, 하녀는 죽었다⁠. 이번엔 하녀가 살았고⁠, 줄은 네 통증으로 생겼다⁠. 같은 줄인데 다르다⁠.⁠” 오웬이 언 손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도린이 날마다 교단 사제가 우린 차를 마신다⁠. 첫 삶에서 나는 교단이 옳다고 믿고 서른 도시를 지났다⁠. 도시가 탈 때마다 교단이 그 재 위에 성당을 세웠다⁠. 그때는 그게 위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요⁠?⁠”

오웬의 대답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오웬은 대성당 첨탑을 봤다⁠. 이 첨탑 아래 어딘가에서 도린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성녀님은요⁠?⁠”

“⁠대성당에 묶였다⁠. 주교가 피로를 풀라며 기도실에 들였다⁠. 문은 밖에서 잠긴다⁠.⁠” 오웬이 장갑을 꺼내 꼈다⁠. “⁠나는 오늘 밤부터 주교의 칼이다⁠. 에이르 감찰은 끝났다⁠. 주교가 베라면 베야 한다⁠. 성도의 명이다⁠.⁠”

“⁠그럼 내일 아침 손목 검사는요⁠?⁠”

오웬이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눈송이가 오웬의 속눈썹에 앉았다 녹았다⁠.

“⁠일곱 시에 간다⁠. 주교의 칼이 아침밥을 어디서 먹든 주교는 상관하지 않는다⁠.⁠”

*

이튿날 아침 일곱 시⁠, 노크는 세 번이었다⁠. 오웬은 눈을 털고 들어와 칼을 식탁 다리에 기대 세웠다⁠. 눈 밑이 검었다⁠. 밤새 자지 않은 얼굴이었다⁠.

루벤이 소매를 걷었다⁠. 오웬이 봤다⁠. 그대로였다⁠. 루벤이 오웬의 잔에 보리차를 따랐다⁠. 어제처럼⁠.

“⁠주교 방에 갔어요⁠?⁠” 내가 물었다⁠.

“⁠갔다⁠.⁠” 오웬이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이 아직 붉었다⁠. “⁠주교는 내가 무엇을 아는지 묻지 않았다⁠. 무엇을 하려는지만 물었다⁠. 나는 흑마가 될 자를 벨 거라고 했다⁠.⁠” 오웬이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주교가 웃었다⁠. 그리고 명을 내렸다⁠. 동짓날 밤 시험장에 서라⁠. 흑마가 태어나면 그 자리에서 베라⁠. 태어나기 전에는 손대지 말라⁠.⁠”

방 안이 조용했다⁠. 베티가 국자를 든 채 오웬을 봤고⁠, 루벤이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태어나기 전에는요⁠?⁠” 내가 다시 물었다⁠.

“⁠손대지 말라⁠.⁠” 오웬이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두 달 동안 태어나기 전에 베려고 이 식탁에 앉았다⁠. 이제 교단이 그걸 막는다⁠.⁠”

루벤이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들썩이며⁠. 이 웃음이 무엇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자기를 베러 온 사람에게 교단이 자기를 베지 말라고 했다⁠. 이것도 흑마가 될 때까지만⁠.

베티가 오웬의 그릇에 국을 떠 넣었다⁠. 그리고 바구니에 찐빵 다섯 개를 싸서 루벤의 앞에 밀었다⁠.

“⁠이건 성녀님 거예요⁠. 기도실에 갇히셨다면서요⁠. 갇힌 사람은 배가 고파요⁠. 성기사님이 갖다 드리세요⁠. 주교 칼이면 기도실 문 앞까지는 가잖아요⁠.⁠”

오웬은 바구니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것을 받았다⁠.

*

대성당 감옥은 대성당 지하에 있었다⁠. 들어가는 데 세 가지가 필요했다⁠. 학관 일정 담당 패⁠, 베티의 찐빵 열 개⁠, 그리고 구실⁠.

“⁠마탑 교수가 수감 중이라 다음 달 강의를 누가 맡을지 본인과 협의가 필요해요⁠.⁠” 나는 감옥 문지기 사제에게 말했다⁠. “⁠강의 서른 시간이 걸려 있어요⁠. 학생 마흔 명 일정이 다 꼬여요⁠. 협의 반 시간이면 돼요⁠.⁠”

문지기 사제는 젊었고⁠, 찐빵 냄새를 맡고 있었다⁠. 찐빵 바구니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바구니를 받았다⁠.

감옥 복도는 습했다⁠. 돌벽에 이끼가 끼어 있었고⁠, 쇠창살 방 대여섯 개가 비어 있었다⁠. 맨 끝 방만 불이 켜져 있었다⁠. 이 방에는 털 담요를 깐 침상과 작은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 흰 찻주전자와 찻잔 둘⁠. 화로 위에서 물이 끓었다⁠. 감옥이 아니라 수도원 손님방 같았다⁠.

도린은 침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왼손에 장갑이 없었다⁠. 넷째 손가락 없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누님⁠. 오실 줄 알았습니다⁠.⁠” 도린이 책을 덮었다⁠. “⁠차 드시겠습니까⁠? 교단 차는 저택 차보다 진합니다⁠. 찻잎이 한 장이 아니니까요⁠.⁠”

“⁠누가 우려 줘요⁠, 이 차⁠?⁠”

“⁠아침마다 사제 한 분이요⁠. 주교님이 보내시는⁠.⁠”

나는 창살 앞에 섰다⁠. 화로의 열기가 창살 사이로 건너왔다⁠. 도린이 찻잔에 차를 따라 창살 사이로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이 잔을 자기가 마셨다⁠.

“⁠연구비 어디서 받았어요⁠?⁠”

“⁠어디서 받았을 것 같으십니까⁠?⁠”

“⁠교단이요⁠.⁠”

도린이 빈 찻잔을 탁자에 엎어 놓았다⁠. 웃음기가 사라졌다⁠. 남의 통증을 말할 때의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

“⁠십 년 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래 도시에서 열병으로 돌아가실 때 교단 치유 값이 없었어요⁠. 저는 그 통증을 받아 보려고 했습니다⁠. 술식도 모르고⁠, 아쉬포드 피도 아닌 손으로⁠. 넷째 손가락이 그날 밤 검게 썩었습니다⁠. 그다음 해에 주교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통증을 다루는 법을 연구하라고⁠. 연구비는 교단이 대겠다고⁠.⁠”

“⁠왜요⁠? 교단은 그 술식을 금하잖아요⁠.⁠”

“⁠금하니까요⁠. 금한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금한 쪽이어야 하니까⁠.⁠” 도린이 왼손 손목을 들었다⁠. 두 바퀴 감긴 줄⁠. “⁠주교님은 흑마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고 싶어 하셨어요⁠. 셋째 계단을 오른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흑마가 태어나 마탑을 무너뜨리면⁠, 에이르는 교단의 도시가 됩니다⁠. 교단은 그 재 위에 성당을 세우지요⁠.⁠” 도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그건 관심 없었습니다⁠. 저는 아픈 게 끝나는 걸 보고 싶었어요⁠. 아쉬포드의 피라면 셋째 계단의 통증을 받고도 살 수 있으니까⁠. 제 몸으로는 안 되는 것을⁠.⁠”

“⁠냉실의 일곱 명은요⁠?⁠”

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찻잔을 들었다가 비어 있는 걸 알고 내려놓았다⁠.

“⁠누님⁠.⁠” 도린이 말했다⁠. “⁠하나만 여쭙지요⁠. 누님은 날짜를 어떻게 다 아십니까⁠? 첫 서리 날 성녀를 예약하셨고⁠, 첫눈 날 줄을 다시 짜셨지요⁠. 학관 서기한테 들었습니다⁠. 날씨를 아는 귀족 아가씨는 처음 봅니다⁠.⁠”

“⁠무릎이 시큰거려서요⁠.⁠”

도린이 웃었다⁠. 이번엔 진짜로 웃었다⁠. 넷째 손가락 없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저는 곧 나갑니다⁠. 주교님이 제게 할 일이 남았다고 하셨으니까⁠. 아마 동지쯤⁠.⁠”

*

도린은 사흘이 아니라 이틀 만에 나왔다⁠.

이튿날 오후 학관 접수대에 마탑 학장의 명이 내려왔다⁠. 서기 노인이 이것을 읽어 주는 동안 나는 분필을 쥔 채 굳어 있었다⁠. 동짓날 밤 승급 시험의 감독을 교단이 보낸다⁠. 교단이 정화한 마탑 교수 도린⁠. 이 명과 함께 도린이 회랑으로 들어왔다⁠. 심문 주교가 이 옆에서 지팡이를 짚었다⁠. 도린의 왼손에는 새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자주색 가죽⁠, 교단의 둥근 문장이 손등에 찍힌⁠.

나는 학장을 찾아 흰 탑 세 번째 층으로 올라갔다⁠. 학장은 덧문 닫힌 방 안에서 창가에 서 있었다⁠.

“⁠흑선 있는 사람을 시험 감독으로요⁠?⁠”

“⁠교단이 정화했다 하오⁠.⁠” 학장은 나를 보지 않았다⁠. “⁠교단이 그렇다 하면 마탑은 그렇다 하오⁠. 그래야 다음 첫눈에 교단이 대강당을 또 빌려 달라 하지 않소⁠. 마탑은 시험 감독 한 자리를 내주고 문을 지켰소⁠.⁠”

“⁠그 문 안에 도린이 다시 들어왔는데요⁠.⁠”

학장이 그제야 나를 돌아봤다⁠. 은빛 수염 끝이 떨렸다⁠.

“⁠일정 담당⁠. 그대는 학관 강의실을 맡았소⁠. 마탑의 문은 내가 맡았소⁠.⁠”

접수대로 돌아오니 서기 노인이 회랑 종 앞에 서 있었다⁠. 학관의 일정이 바뀌면 이 종을 세 번 치고 회랑에 대고 외치는 것이 노인의 일이었다⁠. 종 줄을 쥔 채 치지 않고 있었다⁠.

“⁠아가씨가 치시오⁠.⁠”

“⁠제가요⁠?⁠”

“⁠나는 이 손으로 그 말을 못 외치겠소⁠.⁠” 노인이 종 줄을 놓았다⁠. “⁠마탑에서 마흔 해 일했소⁠. 흑선 있는 교수가 시험 감독이 되는 날 종을 치려고 일한 게 아니오⁠.⁠”

나는 종 줄을 잡았다⁠. 그리고 치지 않았다⁠. 줄을 놓고 접수대로 돌아가 다른 강의실 배정부터 했다⁠. 노인은 이걸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내내 종은 울리지 않았고⁠, 저녁에 회랑을 지나던 교단 사제가 자기 손으로 종을 세 번 치고 외쳤다⁠. 회랑의 학생들이 이 목소리를 듣고 서로를 봤다⁠. 교단 사람의 목소리가 마탑 회랑에서 일정을 외친 것은 처음이었다⁠.

*

이날 밤 일곱 시가 아니라 아홉 시에⁠, 셋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세 번이었다⁠. 그런데 오웬의 노크가 아니었다⁠. 오웬의 노크보다 가볍고⁠, 마지막 한 번이 조금 늦었다⁠.

베티가 문을 열다가 그대로 굳었다⁠. 문밖에 도린이 서 있었다⁠. 일곱 번째 계단을 밟지 않고 건너뛴 모양이었다⁠. 자주색 장갑 낀 손에 모자를 들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 실례합니다⁠. 시험 감독으로서 수험생께 직접 알려 드릴 것이 있어서요⁠.⁠”

루벤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 앞에 섰다⁠. 도린은 들어오지 않았다⁠. 문턱 밖에서 말했다⁠. 방 안의 셋을 다 보며⁠.

“⁠동짓날 밤 승급 시험⁠, 신입생 아쉬포드 루벤의 시험을 알려 드립니다⁠. 교단이 허락한 시험입니다⁠.⁠” 도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남의 통증을 말할 때의 목소리⁠. “⁠교단 감옥의 사형수 한 사람이 그날 밤 숨을 거둡니다⁠. 그 마지막 통증을 받아⁠, 마력으로 바꾸어 보이는 것⁠. 그게 루벤 군의 시험입니다⁠.⁠”

베티가 문고리를 놓쳤다⁠. 문이 벽에 부딪혔다⁠.

“⁠거부하시면 낙제입니다⁠. 낙제한 신입생은 마탑에서 나갑니다⁠. 마탑 밖의 손목은⁠, 아시다시피 교단의 것이고요⁠.⁠” 도린이 모자를 썼다⁠. 그리고 루벤의 소매를 봤다⁠. 소매 아래 감춰진 것을 아는 눈이었다⁠. “⁠깨끗한 손목이라면 걱정하실 것 없지요⁠. 첫눈 날 성녀님과 성기사님이 둘 다 그렇다고 하셨으니까요⁠.⁠”

12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