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29자)

네 손가락

빙의한 엑스트라가 최종 보스의 누나였다 · 하진명

냉실 문에서 병자 방 문까지 열네 걸음이었다⁠. 이 열네 걸음 동안 나는 냉실에서 얼어붙은 손가락 끝이 녹는 것을 느꼈다⁠. 녹으면서 쑤셨다⁠. 쑤시는 손으로 병자 방 문을 밀었다⁠.

마정석 등 여섯 개가 푸른빛을 흘리는 길쭉한 방⁠. 간이침대 스무 개 가운데 넷이 비어 있었다⁠. 홑이불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냉실의 돌판 일곱 개가 어디서 왔는지⁠, 이 개어진 홑이불이 말해 줬다⁠.

맨 끝 침대 옆에 루벤이 앉아 있었다⁠.

침대에는 늙은 남자가 누워 있었다⁠. 손바닥이 밧줄에 쓸려 가죽처럼 굳은 손이었다⁠. 강 건너 나룻배를 끌던 사공의 손⁠. 이 손을 루벤이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붕대는 바닥에 풀려 있었다⁠. 루벤의 손목에서 검은 줄이 맥박처럼 불룩거렸고⁠, 맞잡은 두 손 사이로 검보랏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련장의 이 빛이었다⁠. 이때보다 훨씬 진하고 무거웠다⁠. 빛이 아니라 고인 물 같았다⁠.

사공의 숨이 목에서 그르렁거렸다⁠. 숨과 숨 사이가 길어지고 있었다⁠.

“⁠루벤⁠.⁠”

“⁠교수님이 그랬어⁠.⁠” 루벤이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차분했다⁠. “⁠마지막 통증이 제일 크대⁠. 사람이 평생 아픈 것보다 죽기 직전 한 번이 더 크대⁠. 그걸 받으면 누나가 아파할 것까지 내가 다 받을 수 있대⁠. 누나가 다시는 쓰러지지 않아도 된대⁠.⁠”

사공의 숨이 멎었다⁠. 한 박자⁠. 그리고 다시 쉬었다⁠. 마지막 숨이 오고 있었다⁠. 검보랏빛이 루벤의 손목 줄을 따라 팔뚝 안쪽으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팔꿈치를 향해⁠. 이 위로 어깨⁠, 이 위로 심장⁠.

나는 루벤의 손목을 잡았다⁠.

이번에는 불도⁠, 강물도 아니었다⁠. 바닥이 꺼졌다⁠. 가슴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멈췄다⁠. 내 심장이었다⁠. 한 박자 멈추고⁠, 두 박자 멈추고⁠, 이 사이로 남의 일흔 해가 쏟아져 들어왔다⁠. 밧줄이 손바닥 살을 벗기는 겨울 새벽⁠, 노에 부딪혀 부러진 갈비뼈⁠, 강물에 빠진 아들을 건지지 못한 팔의 저림⁠. 이 모든 아픔이 마지막 한 번에 몰려와 내 갈비뼈 안쪽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 위로 루벤의 술식이 끊기는 반동이 왔다⁠. 얼음물을 혈관에 붓는 이 차가움이 이번엔 심장까지 닿았다⁠.

세 박자째에 심장이 다시 뛰었다⁠. 아쉬포드의 피가 이걸 버텼다⁠. 보통 몸이었다면 거기서 멎었을 것이다⁠.

검보랏빛이 숨을 죽였다⁠. 루벤의 팔뚝을 기어오르던 빛이 손목 줄로 도로 빨려 들어갔다⁠. 줄은 손목 한 바퀴⁠, 그대로였다⁠. 더 길어지지 않았다⁠.

사공이 숨을 내쉬었다⁠. 길게⁠. 그리고 들이쉬지 않았다⁠. 사공의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다⁠. 찡그리지도 않았다⁠. 그냥 다 끝난 얼굴이었다⁠.

나는 침대 다리를 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귀에서 북소리가 났다⁠. 루벤이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루벤의 손이 내 어깨를 잡으려다 멈췄다⁠.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줄 생긴 손을⁠.

“⁠누나⁠, 숨⁠…⁠… 숨 쉬어⁠.⁠”

“⁠쉬고 있어⁠.⁠” 나는 말했다⁠. 쉬고 있지 않았다⁠. 쉬려고 하고 있었다⁠.

*

오웬이 문간에 서 있었다⁠. 회색 사무원 웃옷⁠, 짧은 토시⁠. 허리에 칼이 없었다⁠. 침대 위 사공과 바닥의 나와 루벤의 손목을 차례로 봤다⁠. 오웬의 손이 습관처럼 허리로 갔다가 빈 허리를 쥐었다⁠.

“⁠손을 댔다⁠.⁠” 오웬이 말했다⁠.

“⁠안 올랐어요⁠.⁠”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갈라졌다⁠. “⁠내가 끊었어요⁠. 줄 보세요⁠. 그대로예요⁠.⁠”

오웬이 성큼 걸어와 루벤의 손목을 낚아챘다⁠. 마정석 등에 비췄다⁠. 줄은 손목을 한 바퀴 감았을 뿐 팔뚝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오웬은 이 손목을 오래 보다가 놓았다⁠.

“⁠왜 손을 댔지⁠?⁠”

루벤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공의 얼굴을 봤다⁠. 손을 뻗어 사공의 반쯤 뜬 눈꺼풀을 내려 줬다⁠. 줄 생긴 손으로⁠. 그러고 나서야 말했다⁠.

“⁠누나 때문에⁠.⁠”

오웬은 이 말을 받아 들고 서 있었다⁠. 무언가 셈을 다시 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도린이 복도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오웬은 세 걸음 만에 이 앞에 닿아 회색 교수복 멱살을 쥐었다⁠. 칼 대신 맨손이었다⁠. 도린의 발뒤꿈치가 바닥에서 떴다⁠.

“⁠일곱⁠.⁠” 오웬의 목소리는 낮았다⁠. “⁠당신이다⁠.⁠”

“⁠성기사님⁠.⁠” 도린은 발이 뜬 채로도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는 마탑입니다⁠.⁠”

“⁠그 말은 들었다⁠.⁠”

“⁠그럼 저분 말도 들으시겠지요⁠.⁠”

복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여럿 났다⁠. 경비 마법사 넷⁠, 뒤로 은빛 수염을 기른 노인⁠. 사흘 전 흰 탑 세 번째 층 창 덧문을 닫던 이 노인이었다⁠. 마탑 학장은 잠옷 위에 교수복을 걸치고 있었다⁠. 특강이 이상하게 끝났다는 보고를 받고 내려온 모양이었다⁠. 노인은 오웬의 회색 웃옷을 아래위로 훑었다⁠.

“⁠교단 성기사가 학관 사무원 옷을 입고 마탑 지하에 숨어들었군⁠. 그것부터 따져야겠소⁠.⁠”

“⁠지하 냉실에 시신이 일곱 구 있습니다⁠.⁠”

“⁠그건 그다음에 따지겠소⁠. 순서가 있소⁠.⁠” 학장이 손을 들자 경비 마법사들의 손끝에서 푸른 실이 일어났다⁠. “⁠그 손 놓으시오⁠. 마탑 교수의 멱살이오⁠.⁠”

“⁠학장님⁠.⁠” 내가 바닥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무릎이 접혔다가 펴졌다⁠. “⁠이분은 학관 사무원이에요⁠. 제가 오늘 뽑았어요⁠. 일정 담당 권한으로요⁠.⁠”

학장이 나를 봤다⁠. 학관 서기 노인이 뒤에서 헐레벌떡 나타났다⁠. 잠옷 바람에 깃펜을 귀에 꽂고⁠. 학장이 노인을 돌아봤다⁠.

“⁠저 사람이 학관 사무원이오⁠?⁠”

서기 노인이 오웬을 봤다⁠. 오웬의 등은 이제 하나도 굽어 있지 않았다⁠. 노인이 침을 삼켰다⁠.

“⁠라이언 사무원입니다⁠. 도축장 출신이고⁠…⁠… 칼 찬 사람처럼 걷습니다⁠.⁠”

학장이 한참 눈을 감았다 떴다⁠. “⁠학관 사람 뽑는 일은 다음 교수 회의에서 따로 따지겠소⁠. 아주 길게⁠.⁠”

*

“⁠제가 했습니다⁠.⁠”

목소리는 병자 방 구석에서 났다⁠. 열아홉쯤 된 청년이 서 있었다⁠. 도린의 조수였다⁠. 회색 실습복 소매가 팔꿈치까지 젖어 있었다⁠. 쪽빛으로⁠. 청년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냉실의 분들⁠. 제가 했습니다⁠. 교수님은 모르셨어요⁠. 제가 교수님 연구를 흉내 내다가⁠…⁠…⁠.⁠”

오웬이 도린의 멱살을 쥔 채 이 청년을 돌아봤다⁠. 오웬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는 것을 나는 봤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첫 삶에서 교단 재판에 세워 손을 잃게 한 이 얼굴⁠. 같은 소매⁠, 같은 숙인 고개⁠, 같은 문장⁠.

오웬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도린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도린이 교수복 깃을 고쳤다⁠. 멱살 잡혔던 자리에 오웬의 손가락 자국이 구겨진 채 남아 펴지지 않았다⁠.

“⁠이 아이가 그렇다고 하는군요⁠.⁠” 도린이 말했다⁠. 슬픈 목소리였다⁠. “⁠제가 제자를 잘못 가르쳤습니다⁠.⁠”

원작대로였다⁠. 오웬이 첫 삶에서 들은 그대로⁠. 이대로면 조수가 손을 잃고 도린은 증인석에 선다⁠.

나는 냉실로 갔다⁠. 열네 걸음⁠. 일곱 번째 돌판의 홑이불을 걷고 짐꾼의 손목을 들어 올렸다⁠. 차가운 손목이 내 손바닥에 들러붙었다⁠. 이걸 들고 병자 방으로 돌아왔다⁠. 짐꾼의 팔은 굳어서 들기 무거웠는데⁠, 이 무거움이 손목에 남은 것을 보여 주기에는 딱 알맞았다⁠.

“⁠학장님⁠. 이 손자국 좀 봐 주세요⁠. 손가락을 세어 주세요⁠.⁠”

학장이 마정석 등을 들고 다가왔다⁠. 경비 마법사 하나가 등을 더 가까이 댔다⁠. 검은 손자국이 짐꾼의 손목을 감고 있었다⁠. 엄지⁠, 검지⁠, 가운데⁠. 그리고 새끼⁠. 넷째 손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먹물에 담근 손으로 쥐었는데 손가락 하나만 먹물이 안 묻은 것처럼⁠.

냉실에서 머리가 돌지 않던 이 이상한 것이 이것이었다⁠.

“⁠넷이오⁠.⁠” 학장이 말했다⁠. 학장은 한 번 더 셌다⁠. 입술을 움직이며⁠.

나는 조수를 봤다⁠. “⁠손 펴 보세요⁠.⁠”

조수가 두 손을 폈다⁠. 열 손가락이 다 있었다⁠.

나는 도린을 봤다⁠. 도린은 장갑 낀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내가 처음 본 날부터 늘 하던 손짓⁠. 병자들의 통증을 걷을 때도 오른손만 벗고 왼손은 한 번도 벗지 않던 손⁠.

“⁠교수님⁠. 왼손 장갑 벗어 주시겠어요⁠?⁠”

도린이 웃었다⁠. 그리고 벗지 않았다⁠.

오웬이 벗겼다⁠. 장갑 끝을 잡아 한 번에 잡아당겼다⁠. 가죽이 손가락에서 빠지는 소리가 났다⁠. 드러난 왼손은 넷째 손가락이 뿌리부터 없었다⁠. 오래전에 아문 자리가 반들반들했다⁠. 그리고 이 손목 안쪽⁠, 핏줄이 지나가는 자리에 검은 줄이 두 바퀴 감겨 있었다⁠. 루벤의 것보다 굵고⁠, 오래되어 살갗에 파고든 줄이었다⁠.

병자 방이 조용해졌다⁠. 누운 병자 열다섯이 고개를 돌려 이 손을 봤다⁠.

학장이 마정석 등을 내렸다⁠. 도린의 손목을 오래 봤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섰다⁠.

“⁠흑선 있는 자는 교단의 일이오⁠.⁠” 학장의 목소리가 늙어 보였다⁠. “⁠마탑은 이 자를 감싸지 않겠소⁠.⁠”

도린이 장갑 없는 왼손을 내려다봤다⁠. 넷째 손가락이 없는 자리를 엄지로 쓸었다⁠. 슬퍼 보이지도⁠, 무서워 보이지도 않았다⁠. 시간을 재는 사람처럼 보였다⁠.

*

계단에서 또 발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고르고 무거운 발소리⁠, 여럿⁠. 쇠 장화가 돌계단을 밟는 소리였다⁠. 흰 외투 넷이 먼저 내려왔다⁠. 오웬이 데려온 기사들이 아니었다⁠. 벨로는 이 안에 없었다⁠. 이들 뒤로 마른 노인 하나가 내려왔다⁠. 자주색 사제복에 은 사슬을 목에 걸었고⁠, 지팡이 끝이 계단을 한 칸씩 짚었다⁠.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교단 심문 주교요⁠. 성도에서 왔소⁠.⁠”

오웬이 굳었다⁠. 오웬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첫 삶에는 없었다고⁠. 나는 이 입 모양을 읽었다⁠.

심문 주교는 냉실 쪽을 한 번 보고⁠, 장갑 벗겨진 도린의 손목을 봤다⁠. 그리고 도린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아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였다⁠.

“⁠도린 교수⁠. 교단이 모시겠소⁠. 대성당에서 심문하겠소⁠.⁠”

“⁠주교님⁠.⁠” 오웬이 앞으로 나섰다⁠. “⁠이 사건은 제가 맡았습니다⁠. 제가 재판에 세우겠습니다⁠.⁠”

“⁠오웬 경은 사무원 옷이 잘 어울리는군⁠.⁠” 심문 주교가 부드럽게 말했다⁠. “⁠성기사단 감찰은 성도가 정하오⁠. 경은 성도의 명을 받지 않고 에이르에 두 달을 먼저 와 있었소⁠. 그것도 따로 묻겠소⁠.⁠”

심문 주교의 눈이 바닥에 앉은 나에게로 왔다⁠. 주교는 내 손가락 끝의 죽은 마디와⁠, 아직 가쁜 내 숨을 차례로 봤다⁠. 눈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값을 매기는 눈이었다⁠.

“⁠아쉬포드 맏따님이시오⁠? 죽어 가는 사람의 마지막을 맨손으로 받고도 앉아 계시다니⁠. 귀한 피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것은 대답하지 않아도 알았다⁠.

흰 외투 둘이 도린의 양팔을 잡았다⁠. 도린은 저항하지 않았다⁠. 지나가며 내 옆에서 아주 잠깐 멈췄다⁠. 나를 보지 않고 루벤을 봤다⁠. 루벤의 손목⁠, 한 바퀴 감긴 줄⁠.

심문 주교가 지팡이로 바닥을 짚었다⁠. 병자 방의 모두가 주교를 봤다⁠.

“⁠그리고 마탑에 알리오⁠.⁠” 주교의 목소리가 지하 세 번째 층 벽을 타고 퍼졌다⁠. “⁠흑선 있는 교수가 여기서 나왔으니⁠, 교단은 마탑을 믿지 못하오⁠. 첫눈 오는 날⁠, 마탑의 모든 학생과 교수는 대강당에서 소매를 걷으시오⁠. 교단이 손목 하나하나를 보겠소⁠.⁠”

루벤이 내 옆에서 자기 손목을 소매로 덮었다⁠. 덮은 손이 떨렸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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