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84자)

빗속의 혼서

폐위된 황후의 두 번째 간택 · 백해원

도성 서문은 이레째 닫혀 있었다. 서북 쪽 고을에 역병이 돈다는 소문이 돌자 금군이 문 앞에 나무 울타리를 치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짐을 풀고 옷을 벗겨 살폈다. 역병이 어느 고을에 도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문 밖 주막에는 발이 묶인 장사치들이 들어차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금군 욕을 했다.

“역병이 돈다는 고을 이름을 대 보라니까 금군 놈이 뭐라는 줄 아나? 그건 나라의 비밀이라는 거야.”

“역병도 비밀로 도나?”

윤서련은 그 이야기를 홍매에게서 들었다. 홍매는 서문 밖 주막에 사는 이모를 찾아간다는 핑계로 하루를 다녀왔다. 이모는 사실 없었다. 홍매는 주막에서 국밥 두 그릇을 먹고 장사치들 욕을 실컷 들은 다음 돌아왔다.

“아가씨, 서문으로는 개미 한 마리도 못 들어와요. 개미가 들어오면 금군이 개미 짐도 풀어 볼 거예요.”

“그럼 문으로 오지 않으면 된다.”

“문 말고 어디로요? 날아서요?”

“물로.”

윤가의 쌀배는 서북으로 군량을 싣고 올라갔다가 빈 배로 마포에 돌아왔다. 강을 타고 내려오는 빈 배는 금군이 살피지 않았다. 쌀이 없는 배에는 볼 것이 없었다. 문하온이 세자 소경의 글씨로 쓴 두 번째 서신이 매에 실려 서북으로 갔고, 서북의 사자는 혼서를 품에 안고 윤가의 빈 쌀배 바닥에 엎드려 강을 내려왔다.

*

배는 아흐레째 새벽에 마포에 닿았다. 밤새 내린 비가 그치지 않아 나루 바닥이 진창이었다. 백도윤이 나루 끝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다가 배가 보이자 손을 들었다. 그는 배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데 배를 보는 것만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빈 쌀배 바닥의 거적이 들썩이더니 사내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서련은 그 사내를 보고 한 걸음 물러섰다. 사내는 키가 도윤보다 한 뼘이 더 컸고, 어깨에 쌀가마 두 개를 얹어도 될 만큼 넓었다. 얼굴의 절반을 수염이 덮고 있었고, 그 수염에 쌀겨가 잔뜩 붙어 있었다.

사내가 배에서 뛰어내렸다. 진창이 튀어 도윤의 바짓가랑이를 적셨다. 사내는 서련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품에서 붉은 보자기에 싼 작은 함을 꺼냈다. 그리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정서왕 전하 휘하 기병장 독고철이옵니다. 윤씨 댁 낭자께 정서왕 전하의 혼서를… 바치…, 아니, 드리…, 아니, 올리… 옵니다?”

뒤에서 하온이 낮게 말했다.

“전해 올립니다, 라고 하시면 됩니다, 장군.”

“전해 올립니다!”

독고철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나루의 갈매기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그는 머쓱했는지 수염을 긁었다. 쌀겨가 우수수 떨어졌다.

“말을 배우고 오라 하셨는데, 서북 말로는 혼서를 건넨다고만 하면 되거든요. 도성 말은 끝이 너무 많습니다. 바치고 드리고 올리고.”

“끝이 많은 건 저도 싫습니다, 장군.”

서련이 함을 받으려 하자 독고철이 함을 품으로 거두었다.

“여기서는 안 됩니다, 낭자. 혼서는 신부 집 대문에서, 신부 집 사람 손으로 받으셔야 혼인이 섭니다. 선황 폐하와 맺은 약조가 그렇습니다. 나루에서 받으면 그냥 상자 하나 받으신 겁니다.”

서련은 그것을 알았다. 알면서 손을 내밀었다. 대문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먼지 알았다.

*

윤가 대문은 사랑채에서 마흔 걸음이었다. 마포에서 윤가까지는 그보다 훨씬 멀었다. 서련 일행은 쌀 수레에 독고철을 거적으로 덮어 싣고 골목길을 돌았다. 수레가 덜컹거릴 때마다 거적 밑에서 큰 덩치가 신음했다. 비는 점점 굵어졌다.

집에 닿자 사랑채에서 아버지가 뛰어나왔다. 윤정겸은 수레의 거적을 들추었다가 수염투성이 얼굴과 눈이 마주치고는 거적을 도로 덮었다. 그리고 딸의 팔을 잡아 사랑채 처마 밑으로 끌고 갔다.

“저게 무엇이냐?”

“서북에서 온 사자입니다. 정서왕의 혼서를 가져왔습니다.”

윤정겸의 상투가 흔들렸다. 이번에는 동곳이 빠지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손이 떨렸다.

“너는 지금 이 집을 서북 번왕에게 팔아넘기려는 거냐?”

“아버지를 서북으로 안 보내려는 겁니다. 모레 아침 폐하께서 교지에 옥새를 찍으십니다. 아버지는 서북 군영 한가운데로 가십니다. 서북이 꺾이는 날 그 자리에 계시면, 아버지는 반역에 가담한 호조 판서가 됩니다.”

“혼서를 받아도 서북과 한편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마찬가지가 아닙니다. 혼서를 받으면 저는 세자빈이 되고, 아버지는 세자빈의 아버지가 됩니다. 폐하께서 세자빈의 아버지를 서북으로 보내시면 번왕에게 인질을 돌려주는 꼴이 됩니다. 그런 짓은 안 하십니다. 그분은 셈을 하십니다.”

윤정겸이 딸을 보았다. 빗소리가 처마를 두드렸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딸의 팔을 놓았다.

“나는 그 혼서를 받지 않는다.”

“아버지.”

“내 손으로는 안 받는다. 내 손으로 받으면 나는 폐하를 등진 신하가 된다. 나는 그렇게는 못 산다.”

아버지가 사랑채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안에서 붓을 벼루에 두드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서련은 닫힌 문을 보았다. 받지 않겠다는 것이 막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다.

“신부 집 사람 손이면 되지요.”

뒤에서 하온이 말했다. 비에 젖은 갓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가씨도 신부 집 사람입니다. 신부 본인이기도 하고요.”

*

금군은 점심 무렵에 왔다. 대문 밖 골목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쇠붙이 부딪는 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번졌다. 청지기가 대문 틈으로 내다보다가 뒷걸음질 쳤다. 골목 양쪽 끝을 금군이 막았고, 대문 앞에 창을 든 금군 열둘이 두 줄로 섰다. 그 가운데에 장복수 내관이 기름 먹인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

“윤 판서 댁에 서북의 사람이 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 내관의 목소리가 대문을 넘어왔다. 공손하고 느렸다.

“서문이 닫힌 이레 동안 서북의 사람이 들어올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 말은 헛소문이겠지요. 헛소문이라면 대문을 열어 보여 주시면 됩니다.”

서련은 마당에 섰다. 비가 머리와 어깨를 적셨다. 홍매가 우산을 들고 뛰어왔는데, 우산을 서련이 아니라 독고철이 안고 있는 혼서 함 위에 씌웠다. 서련이 홍매를 보자 홍매가 우산을 꼭 쥐고 말했다.

“아가씨는 젖으셔도 되는데 저건 젖으면 안 되잖아요. 글씨가 번지면 혼서가 무효예요? 무효면 어떡해요?”

“무효는 아니다.”

“그래도요.”

독고철이 함을 품에 안고 서련 뒤에 섰다. 그 옆에 백도윤이 칼자루에 손을 얹고 섰다. 하온은 대청 기둥 옆에서 젖은 소매를 짜고 있었다. 서련은 소매 안의 대나무 통을 손으로 쥐었다. 통 안에서 귀뚜라미가 몸을 떨었다.

“대문을 열어라.”

청지기가 빗장을 뽑았다. 대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골목의 금군 열둘이 일제히 창끝을 세웠다. 빗물이 창날을 타고 흘렀다.

독고철이 대문 문지방 바깥으로 한 걸음 나가 섰다. 혼서는 문 밖에서 들어와 문 안의 손으로 받아야 했다. 그는 금군 열둘의 창끝 앞에서 붉은 보자기를 풀었다. 옻칠한 함이 드러났다. 함 뚜껑에 서북의 문장인 늑대 머리가 새겨져 있었다. 그가 뚜껑을 열자 붉은 비단에 싼 혼서가 보였다.

“정서왕 전하의 혼서를 윤씨 댁 낭자께 전해 올립니다.”

이번에는 끝이 틀리지 않았다. 독고철의 목소리가 골목 끝까지 울렸다. 골목 담 너머로 이웃집 사람들의 머리가 하나둘 솟았다.

장 내관이 우산을 기울였다.

“서북 기병장이시군요. 서문이 닫혀 있었는데 어디로 들어오셨습니까?”

“배로 왔소. 쌀 냄새 나는 배로.”

장 내관이 코를 찡그렸다. 젖은 쌀겨 냄새가 독고철의 수염에서 풍기고 있었다. 장 내관은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했다. 그 순간 서련의 소매 안에서 귀뚜라미가 울었다. 빗소리 사이로 가늘고 날카롭게 울었다. 금군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건 무엇입니까, 아가씨?”

“귀뚜라미입니다, 내관.”

“이름이 있습니까?”

“「장 내관」입니다. 겁이 나면 몸을 떱니다.”

담 너머의 이웃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장 내관의 얼굴이 처음으로 붉어졌다. 그러나 그는 웃지 않았고, 우산을 바로 세웠다.

서련은 대문 문지방 안쪽에 섰다. 문지방은 오래된 참나무였고, 한가운데가 사람들의 발에 닳아 오목하게 패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서북 군량길을 처음 맡던 날부터 쌀 수레를 끄는 사람들이 이 문지방을 넘었다. 서련은 그 오목한 자리에 발끝을 대었다.

독고철이 함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함과 서련의 손 사이는 한 걸음이었다. 서련은 손을 내밀었다. 빗물이 손등을 타고 손목으로 흘렀다. 옻이 올랐던 자리가 빗물에 젖어 다시 따끔거렸다.

손끝이 함에 닿기 한 뼘 앞이었다.

창대 하나가 그 한 뼘 사이로 내려왔다. 금군의 창이었다. 날이 아니라 창대였다. 옻칠한 검은 나무가 서련의 손등을 눌렀다. 무거웠다. 비에 젖은 나무의 차가움이 손등의 뼈까지 내려앉았다.

“아가씨, 손을 거두십시오.”

창을 든 금군이 말했다. 젊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서련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창대에 눌린 채로 손가락을 폈다. 손끝과 함 사이는 여전히 한 뼘이었다. 백도윤이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온이 대청 기둥에서 몸을 떼었다. 독고철은 함을 내민 채 움직이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 금군의 줄이 갈라졌다.

연휘가 걸어오고 있었다. 우산이 없었다. 남색 도포가 비에 젖어 검게 보였고, 흑립 챙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장 내관이 우산을 들고 달려가려 하자 그는 손을 들어 막았다. 그는 비를 맞으며 대문 앞까지 걸어와 섰다. 서련과 그 사이에 창대 하나와 혼서 함 하나가 있었다.

“매화정에서 담을 낮추면 도둑이 든다고 했지.”

연휘가 말했다. 빗소리 때문에 그는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래도 부드러웠다.

“대문을 열었구나, 윤서련.”

“도둑이 아니라 혼서가 들었습니다, 폐하.”

연휘는 혼서 함을 보았다. 늑대 머리 문장을 보고, 독고철의 쌀겨 묻은 수염을 보고, 마지막으로 창대에 눌린 서련의 손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없었다. 매화정에서도, 후원 다리 위에서도 그는 웃었는데, 지금은 웃지 않았다.

“그 손을 거두면 오늘 일은 없던 일이 된다. 서북의 사자는 길을 잘못 든 장사치로 돌려보내고, 너는 내일 재간택에 들어온다. 네 아비의 교지는 불태우마.”

“거두지 않으면요?”

연휘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빗물이 그의 눈썹에 맺혔다가 떨어졌다. 그는 창대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서련의 손등을 누르는 창대 위로 황제의 손이 겹쳐졌다. 무게가 더해졌다.

“그 혼서를 받으면 서북과 전쟁이다.”

서련은 손끝을 보았다. 함까지 한 뼘이었다. 그 너머에서 독고철이 함을 든 손을 조금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비가 함 뚜껑의 늑대 머리를 적시며 흘러내렸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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