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42자)

큰어미 수육 오백 인분

던전 급식 조리사 · 윤바로

5월 6일 목요일 열한 시⁠, 무전기는 한 시간째 지직거리기만 했다⁠. 태분은 배식대 위 무전기를 곁눈으로 보며 점심 국에 탐침을 꽂았다⁠. 국은 끓으면 되는데도 꽂았다⁠. 98⁠. 손이 할 일을 찾고 있었다⁠.

봉춘은 무전기 옆에서 감자를 깎았다⁠. 감자 하나를 다 깎고 무전기를 한 번 보고⁠, 또 하나를 깎고 한 번 보았다⁠. 껍질이 끊기지 않고 한 줄로 길게 늘어졌다⁠. 주선애는 창가 의자에 앉아 클립보드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도윤은 배식대 끝에 서서 태블릿을 켰다 껐다 했다⁠.

열한 시 반⁠, 점심 배식이 열렸다⁠. 공략에 안 들어간 3공략대와 4공략대⁠, 예비 인원까지 이백 명이 줄을 이었다⁠. 태분은 국자를 쥐고 줄을 받았다⁠. 손은 국을 뜨고 귀는 무전기에 가 있었다⁠. 대검 헌터가 식판을 두 손으로 내밀며 작게 물었다⁠.

“⁠조리사님⁠, 1공략대 소식 있어요⁠?⁠”

“⁠밥 먹고 물어요⁠.⁠”

“⁠밥 먹으면 소식 와요⁠?⁠”

“⁠밥 먹으면 배는 불러요⁠.⁠”

주선애가 창가에서 일어나 배식대 뒤로 왔다⁠. 조리원 둘이 이백 식을 내는 사이 업체 도시락 검수가 끼어들 자리가 어디 있는지 클립보드에 그리고 있었다⁠. 그릴 데가 없었다⁠. 주선애는 볼펜 끝으로 종이를 한참 두드리다가 네모 하나를 크게 그어 지웠다⁠.

*

한 시 반⁠, 무전기가 터졌다⁠.

“⁠급식소⁠, 1공략대⁠.⁠” 무겸의 목소리가 숨에 섞여 갈라졌다⁠. “⁠큰어미 쓰러졌습니다⁠. 부상 넷⁠, 다 걸어서 올라갑니다⁠. 마력 불통 없음⁠. 물약 일곱 병 남았습니다⁠.⁠”

봉춘이 감자를 떨어뜨렸다⁠. 감자가 바닥을 굴러 노란 테이프 너머로 넘어갔다⁠. 봉춘은 감자를 줍지 않고 두 팔을 벌려 옆에 있던 사람을 끌어안았다⁠. 도윤이었다⁠. 도윤은 태블릿을 든 채 봉춘의 팔 안에서 굳었다⁠.

“⁠노봉춘 씨⁠.⁠”

“⁠예⁠, 이사님⁠.⁠”

“⁠놓으십시오⁠. 파란 장갑입니다⁠.⁠”

봉춘이 팔을 풀고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파란 장갑이었다⁠. 도윤은 정장 어깨를 손바닥으로 털었다⁠. 털면서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갔다⁠. 태분은 국자를 국솥에 걸쳐 놓고 배식대를 짚었다⁠. 짚은 손이 떨렸다⁠. 이번에는 이겨서 떨렸다⁠.

“⁠무겸 씨⁠, 계단참 애들은요⁠?⁠”

“⁠준기 씨랑 용태 씨⁠, 같이 올라갑니다⁠. 들통 빈 거 들고요⁠.⁠”

*

네 시⁠, 동굴 입구에서 수레 넷이 줄지어 올라왔다⁠. 수레 넷을 이어 붙여야 실리는 덩어리였다⁠. 큰어미의 비늘은 하나하나가 손바닥보다 컸고⁠, 햇빛을 받자 광장 돌바닥에 보랏빛 그림자가 넓게 깔렸다⁠. 광장에 나와 있던 헌터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기자 몇이 사진기를 들고 뛰어왔다⁠.

공략대 서른 명이 수레 뒤로 줄줄이 올라왔다⁠. 다친 넷은 동료 어깨에 팔을 걸었지만 제 발로 걸었다⁠. 맨 뒤에 준기와 용태가 있었다⁠. 준기는 갑옷 밑으로 하늘색 앞치마 자락을 늘어뜨린 채 빈 들통을 들고 있었다⁠. 들통 바닥에 비늘 가루가 말라붙어 있었다⁠.

준기가 급식소 뒷문 앞까지 와서 들통을 엄마 앞에 내려놓았다⁠.

“⁠잔반 없음⁠.⁠”

태분은 들통을 들여다보지 않고 준기의 손을 잡아 뒤집었다⁠. 손바닥에 버너 불에 그을린 자국이 한 줄 있었다⁠. 물집은 없었다⁠.

“⁠바람이 왼쪽에서 왔다며⁠. 왼손을 왜 댔어⁠?⁠”

“⁠들통이 기울어서⁠.⁠” 준기가 손을 빼려다 말았다⁠. “⁠85 밑으로 안 떨어졌어⁠. 한 번도⁠.⁠”

“⁠알아⁠. 다 들었어⁠.⁠”

용태가 옆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불꽃이 톡 튀었다⁠. “⁠조리사님⁠, 저 오늘 들통 데우느라 마력 다 썼어요⁠. 배고파요⁠.⁠”

“⁠저녁 다섯 시 반⁠.⁠”

“⁠그때까지요⁠?⁠”

“⁠줄 서서 기다려요⁠.⁠”

용태가 웃으며 뒷문 계단에 주저앉았다⁠. 준기도 옆에 앉았다⁠. 둘이 나란히 앉아 수레 위 큰어미를 올려다보았다⁠.

주선애가 클립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태분 곁으로 왔다⁠. 큰어미 비늘에 비친 보랏빛이 주선애의 남색 정장 소매에 얼룩처럼 떨어졌다⁠.

“⁠오늘 점심 이백 식 내시는 동안 업체 도시락 검수할 틈을 찾아봤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더군요⁠.⁠” 주선애가 클립보드를 펴 보였다⁠. 볼펜으로 긋고 지운 자국이 종이 한가운데 시커멓게 남아 있었다⁠. “⁠5월 20일 기준 위원회에 오셔서 이걸 한 번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배식 끝나고 가도 돼요⁠?⁠”

“⁠위원회는 오후 세 시예요⁠.⁠”

“⁠그럼 가요⁠. 점심은 봉춘 씨가 하고⁠.⁠”

개수대 앞에서 봉춘이 파란 장갑 낀 손을 번쩍 들었다⁠.

*

다섯 시 반⁠, 저녁 배식 줄 맨 앞에 1공략대가 섰다⁠. 오늘은 공략에 들어간 사람 먼저였다⁠. 헌터들이 식판을 받아 들고 긴 식탁에 앉자 무겸이 배식대 위에 태블릿을 세웠다⁠. 헬멧 카메라 영상이었다⁠.

큰어미의 굴은 넓었다⁠. 헬멧 등이 비추는 둥근 빛 안에 국솥 뚜껑만 한 콧구멍이 들어왔다⁠. 큰어미가 무겸에게 코를 대고 오래 킁킁거렸다⁠. 비늘차 냄새를 맡은 큰어미가 커다란 머리를 낮췄다⁠. 새끼를 맞을 때처럼 천천히 낮췄다⁠. 화면 밖에서 무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태분은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았다⁠. 국솥 불을 줄이러 갔다⁠. 등 뒤에서 헌터들이 함성을 질렀고⁠, 태블릿에서 쇳소리와 무거운 것이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태분은 국솥 앞에서 탐침을 꽂았다⁠. 98⁠. 국은 끓으면 되는데도 꽂았다⁠.

무겸이 영상을 끄고 식판을 들고 왔다⁠. 밥알 하나 없었다⁠.

“⁠조리사님⁠, 큰어미가 머리를 낮출 때 저도 잠깐 칼을 못 들었습니다⁠.⁠” 무겸이 식판을 반납대에 내려놓았다⁠. “⁠지난가을 둘을 잃은 데서요⁠.⁠”

“⁠밥은 다 먹었네요⁠.⁠”

“⁠확인⁠.⁠”

*

여섯 시⁠, 청운 본관 4층 재무이사실 화이트보드에 숫자가 빼곡했다⁠. 도윤은 보스 전리품 목록을 맨 위에 적었다⁠. 큰어미 비늘⁠, 큰어미 마석⁠, 협회 보스 공략 보상금⁠. 목록 밑에 줄을 긋고 이번 분기 적자를 적었다⁠. 줄 밑에서 두 숫자를 뺐다⁠.

“⁠이번 분기는 막습니다⁠.⁠” 도윤이 마커 뚜껑을 닫았다⁠. “⁠다음 분기는 아닙니다⁠. 큰어미는 한 번 잡으면 다음 큰어미가 자랄 때까지 이 년입니다⁠. 다음 분기에 조리원 둘을 들이면 적자가 다시 납니다⁠. 사람 하나에 한 해 사천만 원입니다⁠.⁠”

틀린 데가 없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이 사람 숫자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태분은 들고 온 쟁반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쟁반 왼편에 금 하나 없는 보라 비늘이⁠, 오른편에 가운데가 쩍 갈라진 비늘이 쌓여 있었다⁠. 쟁반 옆에 계산기 하나를 놓았다⁠. 반딧불 대장에게 빌려 온 계산기였다⁠. 숫자 단추 몇 개가 닳아 있었다⁠.

“⁠3월부터 지금까지 급식소에 들어온 멧돼지가 마흔 마리예요⁠. 내가 벗긴 건 네 마리⁠, 봉춘 씨가 제대로 벗긴 건 요즘 들어 다섯 마리예요⁠. 나머지는 손이 모자라서 방패로 긁거나 두레가 기계로 훑었어요⁠.⁠” 태분은 계산기를 두드렸다⁠. 손가락이 느렸다⁠. “⁠내가 벗기면 한 장 사만 원⁠, 긁으면 만 원⁠. 한 마리 비늘이 이백 장이 넘어요⁠. 일주일에 다섯 마리 들어오고요⁠.⁠”

도윤은 태분의 계산기를 힐끗 보았다⁠. “⁠7 단추가 닳았습니다⁠.⁠”

“⁠반딧불 대장님이 칠천 원을 하도 많이 눌러서요⁠.⁠”

도윤은 대꾸하지 않고 자기 계산기를 켰다⁠. 엄지가 빨랐다⁠.

“⁠조리원 둘이 들어오면 조리사님과 노봉춘 씨가 비늘을 다 벗긴다는 말씀입니까⁠?⁠”

“⁠봉춘 씨는 이제 장인이에요⁠. 준기도 오늘 새벽에 배웠고요⁠.⁠”

“⁠준기 씨는 헌터입니다⁠.⁠”

“⁠알아요⁠. 비늘 벗기는 헌터예요⁠.⁠”

도윤의 엄지가 멈췄다⁠. 화면을 오래 보았다⁠. 화이트보드를 보았다⁠. 다시 화면을 보았다⁠.

“⁠둘은 됩니다⁠. 셋은 안 됩니다⁠.⁠”

“⁠둘이면 돼요⁠.⁠”

“⁠단가는 사천팔백 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천 원 그대로 둬요⁠.⁠” 태분은 쟁반을 도윤 앞으로 밀었다⁠. “⁠사천팔백은 내가 사람 없을 때 한 말이에요⁠. 사람이 있으면 사천 원으로 해요⁠. 잔반 줄이면 돼요⁠. 학교에서 열다섯 해 줄였어요⁠.⁠”

도윤이 처음으로 계산기를 내려놓고 태분을 보았다⁠. 계산기 화면이 책상 위에서 하얗게 빛났다⁠.

“⁠조리원 둘⁠, 다음 주 공고 냅니다⁠. 단가는 사천 원 그대로입니다⁠. 비늘은 급식소에서 벗깁니다⁠. 120장 쓴 건 큰어미 비늘로 메웁니다⁠. 큰어미 비늘 한 장이 보통 비늘 열 장입니다⁠.⁠”

“⁠큰어미 비늘은 누가 벗겨요⁠?⁠”

“⁠조리사님이 벗기십시오⁠. 금 하나 안 가게⁠.⁠” 도윤이 마커를 다시 집었다⁠. “⁠그래야 숫자가 맞습니다⁠.⁠”

도윤은 화이트보드 맨 아래에 줄을 하나 더 긋고 적었다⁠. 「⁠조리원 1인당 150식 — 협회 수정안⁠」⁠. 태블릿을 열어 협회 누리집 의견 창에 숫자를 옮겨 적었다⁠. 첨부 자료에 「⁠자료 제공⁠: 청운 재무이사 반도윤 · 급식소 조리사 엄태분⁠」이라고 넣었다⁠. 이름이 둘이 되었다⁠.

“⁠준기는요⁠?⁠”

“⁠징계는 징계입니다⁠. 수습 평가는 6월에 다시 합니다⁠.⁠” 도윤이 태블릿을 닫았다⁠. “⁠탁 대장님이 다음 주 7층에 준기 씨를 데려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제 결재 사항이 아닙니다⁠.⁠”

밤 열한 시⁠, 태분의 휴대전화에 협회 문자가 왔다⁠. 「⁠청운 수정안 접수 — 조리 인력 기준⁠, 5월 20일 기준 위원회 상정 — 위생팀장 주선애⁠」⁠. 문자 밑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작은 길드 조리원 지원 방안 함께 상정⁠」⁠. 태분은 휴대전화를 반딧불 대장의 계산기 옆에 내려놓고 잠들었다⁠.

*

5월 7일 금요일 새벽 다섯 시 반⁠, 급식소 국솥 넷에서 김이 올랐다⁠. 솥마다 큰어미 고기가 엄지 두 마디 두께로 썰려 끓고 있었다⁠. 태분은 솥마다 탐침을 꽂았다⁠. 83⁠, 84⁠, 85⁠. 타이머 삼 분⁠. 측정기를 댔다⁠. 맑음⁠. 큰어미 수육 오백 인분이었다⁠. 솥 넷에서 오르는 김이 고친 후드로 빨려 올라가며 웅웅 울렸다⁠.

배식대 뒤에 봉춘이 파란 장갑을 끼고 서 있었고⁠, 봉춘 옆에 준기가 하늘색 앞치마를 두르고 분홍 장갑을 낀 채 서 있었다⁠. 이번 주까지는 급식소 일을 돕기로 했다⁠. 쟁반에는 새벽에 둘이 벗긴 큰어미 비늘이 금 하나 없이 포개져 있었다⁠. 비늘 한 장이 쟁반 절반을 덮었다⁠.

여섯 시⁠, 배식이 열렸다⁠. 줄은 문밖 광장까지 이어졌다⁠. 1공략대가 맨 앞에서 식판을 두 손으로 들었고⁠, 무겸은 맨 뒤에 섰다⁠. 줄 중간에 반딧불 대장이 리어카를 세워 두고 서 있었다⁠. 오늘부터 다시 청운 도시락을 사천오백 원에 받기로 했다⁠. 큰어미 비늘 덕에 맞춘 값이었다⁠.

줄 끝에서 무겸 바로 앞에 회색 정장이 서 있었다⁠. 도윤이었다⁠. 정장 주머니 밖으로 삼각김밥 비닐 모서리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도윤은 식판을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에 계산기를 쥐고 있었다⁠. 차례가 오자 식판을 내밀었다⁠. 식판이 기울었다⁠.

“⁠식판 똑바로 들어요⁠, 이사님⁠.⁠”

도윤이 계산기를 앞치마 두른 준기에게 건네고 식판을 두 손으로 고쳐 들었다⁠. 태분은 수육 한 점을 집어 올렸다⁠. 도윤이 수육을 보았다⁠.

“⁠한 점입니까⁠?⁠”

“⁠한 사람 하나⁠. 더 먹고 싶으면 남기지 말고 다 먹고 다시 와요⁠.⁠”

도윤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긴 식탁으로 갔다⁠. 의자를 빼서 앉았다⁠. 서서 먹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삼각김밥을 꺼내 식판 옆에 놓았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젓가락으로 수육을 집었다⁠.

태분은 다음 솥에 탐침을 꽂았다⁠. 84에서 85로 숫자가 넘어갔다⁠. 창밖 동굴 입구 위에서 「⁠청운⁠」 깃발이 아침 바람에 펄럭였다⁠.

“⁠다음⁠.⁠”

무겸이 식판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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