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510자)

무대 앞

층간소음 전쟁 석 달째 · 지마루

12월 첫째 토요일 오후 네 시⁠, 육단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수간호사였다⁠.

“⁠단우야⁠. 오늘 밤 근무 내가 선다⁠.⁠”

단우는 202호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벽의 비닐은 걷혀 있었다⁠. 배관 공사가 끝나고 새 벽지가 발려 있었다⁠. 아직 풀 냄새가 났다⁠.

“⁠수간호사님이요⁠? 토요일 밤을요⁠?⁠”

“⁠서른 해 만이다⁠. 수간호사 되고 나서 토요일 밤을 한 번도 안 섰어⁠. 오늘 한번 서 보려고⁠. 연말 토요일 응급실이 어떤지 잊어버릴 것 같아서⁠.⁠”

“⁠크리스마스이브는 제가 서겠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랑 마지막 날 밤 둘 다 서⁠. 그리고 단우야⁠.⁠”

수화기 너머에서 수액 펌프 경고음이 들렸다⁠. 수간호사가 누군가에게 펌프 좀 끄라고 소리쳤다⁠. 수간호사의 목소리가 다시 단우에게 돌아왔다⁠.

“⁠드러머한테 전해⁠. 너 여덟 시간 재우는 거⁠, 의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전화가 끊겼다⁠. 단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조용했다⁠. 무헌은 오후 두 시에 북을 싣고 클럽으로 갔다⁠. 단우는 밀대를 들어 천장을 세 번 쳤다⁠. 아무도 없는 302호 바닥이 세 번 울렸다⁠.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들을 사람이 없어도 단우는 쳤다⁠.

*

저녁 여섯 시 반⁠, 차무헌은 「⁠망원 지하⁠」 무대 위에서 페달 나사를 조였다⁠. 오른발 자리를 세 번 밟아 보았다⁠. 둥⁠, 둥⁠, 둥⁠. 사장이 출입문 옆에서 초시계를 목에 걸고 서 있었다⁠.

“⁠무헌아⁠. 여덟 시 정각 시작⁠. 아홉 시 오십 분 끝⁠. 앙코르 없다⁠.⁠”

“⁠알아요⁠.⁠”

“⁠열 시 일 분에 북 소리 나면⁠.⁠”

“⁠사장님 손에 죽는다⁠.⁠”

사장이 초시계를 흔들며 웃었다⁠. 바랜 문신이 조명 아래에서 파랗게 보였다⁠. 스물두 해 동안 걸어 둔 포스터 가운데 몇 장이 벽에서 떼어져 있었다⁠. 사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헌은 떼어진 포스터들이 상자에 담겨 바 밑에 있는 것을 보았다⁠.

솔빌라 사람들이 하나씩 계단을 내려왔다⁠. 라이더가 배달 가방에 귤 두 상자를 싣고 왔다⁠. 유학생이 보온병 다섯 개를 들고 왔다⁠. 201호 남편이 아내를 부축해 내려왔다⁠. 아내의 배가 지난달보다 커져 있었다⁠. 2월이 예정일이었다⁠. 무헌이 무대 옆 소파를 비워 아내를 앉혔다⁠.

아내가 소파에 앉아 배를 쓰다듬다가 무헌을 불렀다⁠.

“⁠무헌 씨⁠. 아기가 북 소리 들으면 놀랄까요⁠?⁠”

“⁠모르겠어요⁠. 아기 앞에서 쳐 본 적이 없어서⁠.⁠”

“⁠병원에서 그러는데 다섯 달부터 소리를 듣는대요⁠. 그럼 우리 아기는 넉 달 동안 무헌 씨 킥 드럼 들었어요⁠. 2층에서⁠.⁠”

아내가 웃었다⁠. 남편이 옆에서 귤을 까다가 같이 웃었다⁠. 무헌은 머리를 긁었다⁠. 석 달 동안 쪽지를 주고받은 사람은 단우 하나인 줄 알았다⁠. 슬래브가 얇은 집이었다⁠. 2층의 배 속까지 북 소리가 내려갔다⁠.

“⁠태어나면 첫 북은 제가 사 줄게요⁠. 장난감으로⁠. 아주 작은 걸로⁠.⁠”

“⁠소리 나는 거면 안 받아요⁠.⁠”

아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남편이 귤을 아내 입에 넣어 주었다⁠.

할머니는 딸의 팔을 잡고 내려왔다⁠. 인천에서 딸이 다시 온 것이다⁠. 할머니는 계단 맨 아래에서 멈춰 클럽 안을 둘러보았다⁠. 어두운 천장⁠, 빨간 조명⁠, 맥주 냄새⁠, 젊은 사람들⁠.

“⁠여기가 북 치는 데야⁠? 우리 옛날 다방 같네⁠.⁠”

할머니는 맨 앞 의자에 앉아 저고리 안주머니를 한 번 쓸었다⁠. 도장이 거기 있었다⁠. 무헌은 할머니의 손이 주머니를 쓰는 것을 보았다⁠.

고시생은 오지 않았다⁠. 고시생은 솔빌라 세입자 일곱 집의 위임장을 들고 경로당으로 갔다⁠. 이주비 숫자를 받아 적어 오겠다고 했다⁠. 받아 적기만 하고 아무것도 찍지 않겠다고 했다⁠. 떠나기 전에 무헌에게 말했다⁠.

“⁠형⁠. 녹음해 올게요⁠. 형 공연은 못 들으니까⁠, 형도 설명회는 못 들으니까⁠. 서로 녹음해서 바꿔 들어요⁠.⁠”

찬열이 무대 뒤에서 마이크를 들고 나왔다⁠. 곡 순서표를 무헌에게 건넸다⁠. 맨 위 첫 곡이 「⁠조용한 천장⁠」이었다⁠.

“⁠첫 곡 이거로 바꿨다⁠. 킥이 마지막에 딱 한 번 나오는 곡⁠. 단우 씨 오기 전에 북 치지 말라고⁠.⁠”

“⁠단우 씨 온대⁠?⁠”

“⁠설명회 들렀다 온대⁠. 여덟 시까지⁠. 안 오면 너 첫 킥을 언제 밟을 건데⁠.⁠”

무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맨 뒤 기둥 옆을 보았다⁠. 9월에 단우가 두 손을 패딩 주머니에 넣고 서 있던 자리였다⁠. 지금은 비어 있었다⁠.

*

저녁 일곱 시 사십 분⁠, 육단우는 경로당 2층 계단을 올랐다⁠. 설명회장 문 앞에서 추진위원장이 혈압약 봉투를 꺼내 약을 삼키고 있었다⁠. 물 없이 삼켰다⁠. 단우를 보고 위원장이 손을 내렸다⁠.

“⁠육 간호사⁠. 공연 안 가고 여기 왜 왔어⁠.⁠”

“⁠위원장님 혈압 재러 왔습니다⁠.⁠”

단우는 가방에서 휴대용 혈압계를 꺼냈다⁠. 위원장이 웃었다⁠. 웃다가 팔을 내밀었다⁠. 계단참 의자에 앉은 위원장의 팔에 단우가 혈압계 띠를 감았다⁠. 숫자가 올라갔다⁠. 백육십팔⁠.

“⁠높으십니다⁠.⁠”

“⁠오늘은 높을 날이야⁠.⁠”

위원장은 띠를 감은 채 설명회장 안을 보았다⁠. 의자 예순 개가 놓여 있었다⁠. 건물주들이 앉아 있었고⁠, 맨 뒷줄에 고시생이 위임장을 무릎에 올리고 앉아 있었다⁠. 앞에는 철거 일정표와 이주비 표가 걸린 화면이 있었다⁠.

“⁠육 간호사한테만 말할게⁠. 솔빌라가 블록 한가운데야⁠. 솔빌라를 빼면 블록이 두 쪽으로 갈라져⁠. 갈라지면 면적이 모자라서 신청이 안 돼⁠. 그리고 솔빌라 땅은 두 사람 거야⁠. 귀남이랑 반 씨 할머니⁠. 공유자는 한 사람으로 쳐⁠. 둘이 같이 도장을 찍어야 한 사람이야⁠.⁠”

단우는 혈압계 띠를 풀다가 멈췄다⁠.

“⁠그럼 할머니 도장이 없으면⁠.⁠”

“⁠블록 전체가 없어⁠. 귀남이가 그걸 오늘 오후에 알았어⁠. 내가 말했어⁠. 지금 클럽으로 갔어⁠. 도장 받으러⁠.⁠”

위원장이 단우의 손등을 두드렸다⁠. 단우가 응급실에서 백 번 짚은 손목에 달린 손이었다⁠.

“⁠육 간호사⁠. 나는 이 골목 노인들 엘리베이터 있는 집에 넣어 주고 싶어⁠. 그게 거짓말은 아니야⁠. 근데 할머니를 속여서 넣는 건 싫어⁠. 가 봐⁠. 할머니가 직접 고르시게⁠.⁠”

*

저녁 일곱 시 오십팔 분⁠, 육단우는 경로당 계단을 뛰어 내려가 골목으로 나왔다⁠. 망원동 골목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사백 걸음이었다⁠. 석 달 동안 퇴근길에 세어 본 숫자였다⁠.

순댓국집 앞을 지났다⁠. 가게 유리문에 추진위 현수막이 반쯤 가려 붙어 있었다⁠. 안에서 텔레비전 뉴스가 흘렀다⁠. 소규모 재건축 요건 완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이었다⁠. 앵커 뒤로 서울 골목 지도가 빨간 선으로 묶이고 있었다⁠. 순댓국집 사장이 국자를 든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세탁소 앞을 지났다⁠. 경로당에서 만난 세탁소 할아버지의 가게였다⁠.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설명회 갑니다⁠. 아홉 시 반에 엽니다⁠.⁠」 솔철물 앞을 지났다⁠. 불이 꺼져 있었다⁠. 진열대의 경첩들이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반짝였다⁠. 서른 해 동안 골목의 문짝을 달아 준 가게였다⁠.

골목 끝 3층 상가 건물이 보였다⁠. 지하 계단 입구에서 빨간 조명이 새어 나왔다⁠. 계단 위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가슴에 파일을 안고 있었다⁠. 단우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

저녁 여덟 시 삼 분⁠, 「⁠망원 지하⁠」 계단 위 출입구에 염귀남이 서 있었다⁠. 파일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 「⁠조용한 천장⁠」의 첫 소절이 올라왔다⁠. 브러시가 스네어를 쓰는 소리⁠, 찬열의 낮은 목소리⁠. 사장이 계단 중간에서 귀남을 막고 서 있었다⁠.

“⁠사장님⁠, 공연 중입니다⁠. 표 없으면 못 들어갑니다⁠.⁠”

“⁠나 건물주야⁠.⁠”

“⁠이 건물 건물주 아니시잖아요⁠.⁠”

단우가 계단 위에 멈췄다⁠. 숨이 찼다⁠. 일 분에 백사십⁠. 귀남이 돌아보았다⁠. 단우를 보고 웃지 않았다⁠. 지난달부터 귀남은 단우 앞에서 웃지 않았다⁠.

“⁠단우야⁠. 비켜 달라고 해라⁠. 어머니한테 할 말이 있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귀남이 파일을 열었다⁠. 동의서 맨 위에 할머니 이름이 이미 인쇄되어 있었다⁠. 이름 옆에 도장 자리가 동그랗게 비어 있었다⁠. 아래에 한 장이 더 있었다⁠. 새 아파트 배치도였다⁠. 1층⁠, 남향⁠, 엘리베이터 바로 앞 집에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어머니는 땅 주인이야⁠. 도장 찍으면 조합원이야⁠. 새 아파트 한 채가 어머니 거야⁠. 1층⁠. 엘리베이터 앞⁠. 서른 해 전세 산 101호보다 두 배 넓어⁠. 이주하는 동안 지낼 집도 내가 구해 드린다⁠. 계약서에 다 써 줄게⁠. 이번엔 전세라고 안 쓴다⁠.⁠”

단우는 배치도를 보았다⁠. 남향 1층⁠. 엘리베이터 앞⁠. 영하 1도에 보일러가 멈추지 않는 집⁠. 할머니가 살아서 들어갈 수 있다면 좋은 집이었다⁠.

“⁠사장님⁠. 이건 거짓말 아닙니까⁠?⁠”

“⁠아니야⁠.⁠”

귀남이 단우를 똑바로 보았다⁠.

“⁠이번엔 아니야⁠. 거짓말로는 이제 안 돼⁠. 어머니가 등기를 꺼냈으니까⁠. 나도 늙은 다음이 무서워⁠, 단우야⁠. 어머니도 무섭고⁠. 둘 다 새 집 들어가면 되잖아⁠. 근데 너희 일곱 집은 이주비 받고 나가야 돼⁠. 그건 미안하다⁠. 그것까지 거짓말하면 또 거짓말이니까⁠.⁠”

계단 아래에서 찬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곡이 중간을 넘어갔다⁠. 천장이 조용하면 나는 잠들 수가 없어요⁠. 단우는 노래를 들으며 귀남의 파일을 보았다⁠. 사람을 나중에 세던 사람이 처음으로 사람 수를 먼저 말하고 있었다⁠. 일곱 집⁠. 미안하다⁠.

단우는 결정했다⁠. 정중하게 말했다⁠. 한 칸도 올리지 않았다⁠.

“⁠할머니께 직접 여쭤 보십시오⁠. 다만 공연 끝나고요⁠. 아홉 시 오십 분입니다⁠.⁠”

“⁠그때면 설명회가 끝나⁠.⁠”

“⁠그럼 설명회가 할머니를 기다려야 합니다⁠. 서른 해를 기다리신 분입니다⁠. 한 시간 오십 분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귀남이 단우를 오래 보았다⁠. 사장이 계단 중간에서 초시계를 보았다⁠. 계단 맨 아래에서 지팡이 소리가 났다⁠. 할머니였다⁠. 딸의 팔을 잡고 계단 아래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남아⁠.⁠”

할머니가 처음으로 귀남의 이름을 불렀다⁠. 총각이 아니었다⁠.

“⁠공연 끝나고 와⁠. 귤 하나 줄게⁠. 그때 도장 얘기 하자⁠. 내 도장이니까 내가 고를 거야⁠.⁠”

귀남은 파일을 닫았다⁠. 계단 맨 위에 그대로 섰다⁠. 내려오지도 돌아가지도 않았다⁠. 단우는 귀남을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사장이 단우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할머니가 단우의 손에 귤을 쥐여 주고 등을 밀었다⁠.

“⁠빨리 가⁠. 총각이 발 들고 기다려⁠.⁠”

*

차무헌은 「⁠조용한 천장⁠」의 마지막 마디를 세고 있었다⁠. 오른발이 페달 위 한 뼘 높이에 떠 있었다⁠. 찬열이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있었다⁠. 두 시간 뒤에 무엇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남은 박자는 여덟이었다⁠. 일곱⁠.

무헌은 맨 뒤 기둥 옆을 보았다⁠. 비어 있었다⁠. 객석은 꽉 차 있었다⁠. 솔빌라 사람들⁠, 골목 사람들⁠, 옥상에서 귤을 받았던 경로당 할머니 둘⁠, 「⁠새벽배송⁠」을 아는 사람들⁠, 처음 온 사람들⁠. 기둥 옆만 비어 있었다⁠. 여섯⁠. 다섯⁠.

객석 뒤쪽에서 사람들이 조금씩 비켜섰다⁠. 누군가 사람들 사이를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기둥 쪽으로 가지 않았다⁠. 앞으로 왔다⁠. 넷⁠. 셋⁠.

육단우가 무대 바로 앞에 섰다⁠. 패딩 조끼를 입고⁠, 한 손에 귤을 쥐고 있었다⁠. 숨이 찼다⁠. 무헌은 단우의 목에서 맥이 뛰는 것을 보았다⁠. 빨랐다⁠. 단우가 무헌을 올려다보았다⁠. 석 달 동안 천장을 올려다보던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천장 아래가 아니라 북 앞이었다⁠.

둘⁠.

무헌의 발이 페달 위에서 멈췄다⁠. 단우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무헌은 읽었다⁠. 아흔한 장을 읽은 눈이었다⁠.

밟으십시오⁠.

하나⁠.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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