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000자)
아흔두 번째
층간소음 전쟁 석 달째 · 지마루
오전 여덟 시 사십 분, 육단우는 솔빌라 계단을 한 칸씩 밟고 올라가며 쪽지를 다시 읽었다. 악기점 영수증 뒷면에 볼펜으로 눌러쓴 글씨였다. 영수증 앞면에는 「드럼 스틱 7A 한 조 14,000원」이 찍혀 있었다.
「오전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만 칩니다. 이 이상은 못 줄입니다. 저도 오후엔 출근입니다. 91.」
아흔한 번째였다. 단우는 2층 계단참에서 걸음을 멈추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302호는 202호 바로 위였다. 지금은 조용했다. 조용한 천장을 보면 단우는 오히려 목덜미가 굳었다. 두 시간 뒤에 무엇이 떨어질지 알았기 때문이다.
열네 시간 근무였다. 어젯밤 응급실에는 오토바이 사고 환자 둘과 소주병에 머리를 맞은 남자 하나, 숨이 넘어가는 할머니 하나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살았다. 단우는 할머니 손목에 손가락 두 개를 대고 맥을 셌다. 일 분 동안 백이십. 다음 일 분에 백. 그다음 일 분에 여든여덟. 숫자가 내려가는 동안 단우는 숨을 쉬지 않았다.
오늘 오후 다섯 시까지 자야 했다. 다섯 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곱 시에 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아흔한 장의 쪽지가 오가는 석 달 동안 단우는 여덟 시간을 하루도 채워 자지 못했다. 지난주에는 소아 환자 손등에 수액 바늘을 두 번 찔렀다. 아이 엄마가 단우의 눈 밑을 보며 괜찮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보호자에게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단우는 202호 문 앞을 지나쳤다. 계단을 한 층 더 올라갔다.
*
302호 문 앞에는 빈 생수 묶음이 놓여 있었고, 신발장 위에 운동화 세 켤레가 짝이 안 맞게 엎어져 있었다. 단우는 쪽지를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고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초인종이 고장 나 있었다. 단우는 손등으로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안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무 막대 두 개가 굴러가는 소리였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맨발이 장판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석 달 동안 단우가 천장 너머로 듣던 바로 이 발소리였다.
문이 열렸다.
남자는 단우보다 머리 반쯤 컸다. 회색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고, 어깨와 팔뚝이 생각보다 길고 단단했다. 머리는 방금 일어난 사람처럼 한쪽으로 눌려 있었다. 오른손에 드럼 스틱 두 개를 쥐고 있었다. 바닥에서 주운 것이었다. 맨발이었다. 발등에 하얀 반창고가 하나 붙어 있었다.
남자도 단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단우는 아직 병원 근무복 위에 패딩 조끼를 걸친 차림이었다. 바지에 소독약 냄새가 배어 있었다.
“누구세요?”
“202호입니다.”
남자의 눈이 조금 커졌다. 스틱을 쥔 손이 등 뒤로 슬쩍 돌아갔다. 숨기는 동작이 너무 늦었다.
“아. 쪽지.”
“네. 쪽지.”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생각보다 크시네요. 저는 키가 작고 고등학생인 줄 알았습니다. 북을 그렇게 성의 없이 치셔서.”
남자가 웃음을 참다가 실패했다. 짧게 코로 웃었다. 웃고 나서 스스로 놀란 얼굴이었다.
“차무헌입니다. 성의 없이 친 적은 없는데요.”
“육단우입니다. 오전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는 저한테 새벽 세 시입니다. 이 이상은 못 늘립니다.”
무헌이 단우의 말을 한 번 곱씹는 얼굴을 했다. 영수증 뒷면에 적은 자기 문장이 거꾸로 돌아온 것을 알아챈 얼굴이었다.
“들어오세요. 보여 드릴게요.”
*
302호 안은 202호와 구조가 같았다.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 하나. 다만 거실 한가운데를 드럼이 차지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드럼처럼 생긴 고무판들이었다. 동그란 고무 패드 다섯 개가 쇠 다리 위에 놓였고, 얇은 쇠판 모양의 심벌 대신 고무를 씌운 원판 두 개가 달려 있었다. 바닥에는 두꺼운 매트가 세 겹 깔려 있었다. 벽에는 계란판 대신 회색 흡음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몇 장은 떨어져 테이프가 덜렁거렸다.
“이게 연습 패드예요. 치면 이런 소리예요.”
무헌은 스틱으로 고무판을 두드렸다. 탁, 탁.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보다 조금 컸다. 무헌은 단우의 얼굴을 보며 고무판 다섯 개를 차례로 두드렸다. 소리는 다 비슷하게 작았다.
“이걸 석 달 동안 쳤어요. 매트도 세 겹 깔았고요. 합주실 월세가 두 배로 올라서 집에서밖에 못 해요.”
단우는 매트를 내려다보았다. 매트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다. 한 군데만 유난히 움푹 꺼져 있었다. 드럼 의자 바로 앞, 오른발이 닿는 자리였다. 거기에 쇠로 된 페달이 하나 놓여 있었다. 페달 위에 부드러운 털 뭉치가 달린 막대가 세워져 있었고, 막대 끝이 작은 북 모양의 고무판을 향해 있었다.
“그건요?”
“킥. 베이스 드럼 페달이요.”
“그거 밟아 보세요.”
무헌이 의자에 앉아 오른발로 페달을 밟았다. 털 뭉치가 고무판을 쳤다. 둥. 소리는 작았다. 그런데 단우의 발바닥이 먼저 알았다. 매트 아래 바닥이 한 번 울렸다. 울림이 발뒤꿈치를 타고 무릎까지 올라왔다.
“이거예요.”
단우가 말했다.
“다른 건 하나도 안 들립니다. 이것만 들립니다. 둥. 둥. 둥. 제 천장에서는 누가 망치로 바닥을 치는 것 같습니다.”
무헌이 페달에서 발을 뗐다.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반창고 붙은 맨발이었다.
“진짜요?”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
차무헌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드럼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단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우는 202호 자기 방에 누워 있다고 했다. 침대에, 천장을 보고.
“밟아 보세요. 한 번.”
무헌은 페달을 밟았다. 둥.
“들립니다. 이마 위에서요.”
“이번엔 살살.”
무헌은 발끝으로만 살짝 밟았다. 털 뭉치가 고무판에 겨우 닿았다.
“들립니다. 작아졌는데 들립니다. 침대 머리맡 벽으로 내려옵니다.”
“이건 어때요?”
무헌은 페달을 밟지 않고 오른쪽 스네어 고무판을 스틱으로 세게 쳤다. 탁.
“그건 안 들립니다. 아니, 들리는데 옆집 TV 소리 정도입니다. 괜찮습니다.”
무헌은 의자에서 일어나 매트 위를 맨발로 걸어 보았다. 꺼진 자리를 오른발로 꾹 눌렀다.
“그럼 이건요?”
“발소리입니다. 이건 석 달 동안 알았습니다. 아침 열 시 오 분 전에 냉장고 문 여는 소리, 물 마시는 소리, 그다음에 의자 끄는 소리. 그다음에 둥. 하루도 안 틀렸습니다.”
무헌은 할 말을 잃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단우가 하품을 참는 소리가 났다. 이불이 바스락거렸다.
“차무헌 씨.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네.”
“팔월 둘째 주 화요일 새벽 두 시에 왜 치셨습니까? 그날 저 쉬는 날이었는데, 그날만 새벽이었습니다. 엄청 세게.”
무헌은 페달 위에 올린 발을 내렸다. 팔월 둘째 주 화요일 저녁, 단우의 쪽지가 문틈에 끼워져 있었다. 쉰몇 번째였다. 처방 메모지에 정갈한 글씨로 한 줄. 「소리만 크고 박자는 엉망이시던데, 그만두시는 게 모두를 위한 길 아닐까요.」 무헌은 쪽지를 읽고 새벽 두 시까지 앉아 있다가, 두 시에 페달을 밟았다. 있는 힘껏.
“박자 엉망이라고 쓰셔서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한참 뒤에 단우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처음으로 정중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건 제가 잘못 썼습니다. 박자는 맞았어요. 일 분에 백이십 번. 제가 맥 세는 사람이라 압니다.”
무헌은 전화를 귀에 댄 채 웃었다.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천장 바로 아래에서 남자 하나가 자기 북소리를 맥처럼 세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열한 시, 무헌의 현관문이 열리고 송찬열이 김밥 두 줄을 들고 들어왔다. 「새벽배송」의 보컬이자 무헌의 열 살 때부터 친구였다. 찬열은 무헌의 얼굴을 보자마자 김밥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 있었지.”
“아무 일 없었어.”
“너 지금 웃고 있어. 너 이 얼굴 중학교 이 학년 이후로 처음이야.”
찬열은 무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 밑을 뒤졌다. 무헌이 말리기도 전에 운동화 상자 하나를 끄집어냈다. 뚜껑을 열었다. 안에 처방 메모지가 빽빽했다. 아흔한 장 가운데 단우가 쓴 마흔여섯 장이었다. 번호 순서대로, 고무줄로 열 장씩 묶여 있었다.
“찬열아.”
“이거 연애편지야. 내가 석 달 전부터 말했잖아.”
“욕이야. 다 읽어 봐.”
찬열은 맨 위의 묶음을 풀어 한 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차무헌 씨의 킥 드럼은 제 이마 정중앙에 떨어집니다. 오늘 아침 제 이마는 참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88.」”
찬열이 무헌을 보았다.
“이 사람 시인이야.”
“202호에 와 봤어. 아까.”
찬열의 입이 벌어졌다. 김밥 한 줄이 탁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얼굴 봤어? 어때? 키는? 목소리는? 너보다 커? 작아? 너 왜 대답을 안 해. 너 귀 빨개졌어.”
*
오후 세 시, 무헌이 악기점에 나가려고 신발을 신을 때 초인종 대신 노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염귀남이 서 있었다. 솔빌라 건물주였다. 쉰 중반, 금테 안경을 썼고 손목에 굵은 은팔찌를 차고 있었다. 오른손에 투명한 서류 파일을 들고 있었다. 귀남은 웃으며 무헌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헌아, 바쁘지? 금방 갈게.”
귀남은 신발을 신은 채 현관 턱에 서서 파일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네 계약 11월 말이잖아. 갱신 안 할라고. 미안하다.”
무헌은 종이를 받았다. 「임대차 계약 갱신 거절 통지」라는 제목 아래로 사유가 적혀 있었다. 「소음으로 인한 이웃 민원 3회(경찰 신고 포함) — 임차인의 의무 위반」
“민원 세 번이요?”
“세 번. 구청 두 번, 112 한 번. 아래층에서 그렇게 넣었더라. 나도 할 만큼 했다. 너 내보내면 나도 속이 편하지는 않아. 근데 법이 그래.”
“아래층이 넣었다고요?”
“그럼 누가 넣겠냐.”
귀남은 웃었다. 웃으며 무헌의 팔뚝을 한 번 더 두드렸다.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며 한마디를 보탰다.
“북은 좋은 데 가서 쳐라. 넌 재능 있어.”
무헌은 종이를 든 채 현관에 서 있었다. 세 시간 전 전화기 너머에서 정중하지 않은 목소리로 박자는 맞았다고 하던 사람이 떠올랐다. 단우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무헌은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다시 반으로 접었다. 운동화 상자 위에 올려놓았다.
*
오후 네 시 반, 단우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 다섯 시 알람까지 삼십 분이 남아 있었다. 삼십 분은 단우에게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선물이었다. 단우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눈이 반밖에 안 떠졌다.
염귀남이 서 있었다. 금테 안경, 은팔찌, 투명한 파일. 귀남은 단우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아이고, 자는 걸 깨웠네. 미안하다, 단우야. 금방 간다.”
“무슨 일이세요?”
“너 석 달 고생했지? 내가 다 안다. 위층 놈 북소리.”
귀남은 파일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단우에게 내밀었다. 위쪽에 「소음 피해 사실 확인서」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아래쪽에 서명 칸이 있었다. 피해 기간, 피해 내용, 신고 횟수가 이미 채워져 있었다. 「2026년 6월~9월 · 매일 오전 드럼 소음으로 수면 불가 · 구청 민원 2회, 112 신고 1회」
“302호 계약 갱신 안 할 거다. 그놈이 소송하면 이게 필요해. 너는 여기 이름만 써. 그럼 너 12월부터 편히 잔다.”
단우는 종이를 보았다. 「112 신고 1회」 단우는 112에 신고를 한 적이 없었다. 구청에 민원을 넣은 적도 없었다. 쪽지 아흔한 장 말고는 아무것도 한 적이 없었다.
“저 신고한 적 없는데요.”
“넣은 걸로 하면 돼. 민원 넣은 건 다른 집인데, 피해는 네가 제일 크잖아. 위층 바로 아래니까.”
“다른 집 누구요?”
귀남은 대답 대신 웃었다. 현관 밖 계단참 창문으로 골목이 내려다보였다. 골목 건너편 다세대 주택 담벼락에 현수막이 하나 붙어 있었다. 단우는 어제까지 못 본 현수막이었다. 「망원 2블록 소규모 재건축 추진 — 주민 여러분의 동의를 기다립니다」
귀남이 단우의 눈길을 따라 현수막을 보았다. 보고 나서 펜 하나를 꺼내 종이 위에 얹었다.
“단우야. 넌 착한 애야. 착한 애가 여기 이름 하나 쓰면 다 편해져.”
단우는 펜을 받아 들었다. 펜이 손가락 사이에서 차가웠다. 귀남의 웃음이 현관 형광등 아래에서 반짝였다.
천장에서 소리가 떨어졌다. 둥.
한 번이었다. 오후 네 시 반, 연습 시간이 아니었다. 무헌은 악기점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킥 드럼이 단우의 이마 위에서 한 번 울리고 멈췄다. 단우는 펜을 쥔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