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898자)
손가락 하나에 참돔 마흔 상자
용왕님 단골 경매사 · 석다감
2027년 12월 6일 월요일 새벽 영 시 사십 분, 노량진수산시장 하역장에는 남해에서 올라온 5톤 트럭이 꽁무니를 대고 줄지어 있었다. 짐칸 문이 열릴 때마다 얼음물 냄새가 쏟아졌고, 지게차가 스티로폼 상자를 들어 올리면 바닥에 바닷물이 줄줄 흘렀다. 남궁팔용은 고무장화로 물웅덩이를 피하지 않고 곧장 걸었다. 서른 해를 걸은 바닥이라 어디가 미끄러운지 발이 먼저 알았다.
활어 수조 유리에 몸이 비쳤다. 마르고 꼿꼿한 몸에 남색 방수 작업복, 남색 고무장화, 짧은 반백 머리 위에 경매용 노란 모자. 매부리코 끝이 추위에 빨갰다. 오른손에는 볼펜 한 자루를 쥐고 있었다. 젊을 때는 수첩도 들었지만 언젠가부터 볼펜만 남았다. 값은 손가락이 기억했고, 볼펜은 쥐고 있어야 손이 덜 떨렸다.
“경매사님, 차.”
아내 옥난주가 2층 초장집에서 내려와 보온병을 내밀었다. 둥굴레차였다. 난주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핫팩을 하나 더 꺼내 팔용의 작업복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오늘 참돔 많이 들어왔대. 연말이라 마트들이 눈이 벌겋대.”
“누가 그래?”
“두만이가. 그 양반 오늘도 빚 문자 받았더라. 화면 보면서 한숨 쉬는데 2층까지 들렸어.”
난주는 팔용의 모자 챙을 한 번 바로잡아 주고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중간에서 돌아보더니 덧붙였다.
“해일이가 어제 대게 첫 그물 걷었는데 반도 안 찼대. 당신한테는 말하지 말래.”
팔용은 대답 대신 보온병 뚜껑을 돌렸다. 아들 해일은 주문진에서 남의 배를 몰았다. 대게 자망 배 제7순풍호의 계약 선장이었다. 해일이 배를 타겠다고 했을 때 팔용은 왜냐고 묻지 않았고, 해일도 말하지 않았다. 이후로 둘은 명절에만 짧게 통화했다.
*
새벽 세 시, 활어 경매장. 선어 경매는 응찰기로 바뀐 지 오래였다. 중도매인들이 손바닥만 한 기계에 값을 누르면 전광판에 숫자가 떴다. 3번 자리만은 아직 손가락으로 값을 불렀다. 법인에서도 몇 번 바꾸자고 했지만 3번 자리 중도매인들이 버텼다. 활어는 숨이 붙어 있을 때 팔아야 하고, 기계를 누르는 손보다 손가락이 빨랐다.
참돔 마흔 상자가 줄지어 있었다. 통영 양식장에서 올라온 붉은 참돔이 얼음 사이로 아가미를 벌렁거렸다. 전광판에 출하자 이름이 떴다. 「통영 한산수산 · 참돔 활어 40상자」.
경매대 앞에 중도매인들이 모였다. 맨 앞에 32번 모자를 쓴 변두만이 있었다. 이마에 수건 머리띠를 질끈 묶고 고무 앞치마를 두른 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팔용은 화면 글자를 보았다. 「변두만 고객님, 금일 상환 예정 금액은」.
두만 옆에는 17번 중도매인과 함께 검은 패딩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새솔마트 수산 구매팀장 탁세윤이었다. 세윤은 태블릿을 품에 안고 팔용에게 목례했다.
“오늘 참돔 마흔 상자, 저희가 다 가져갑니다. 연말 기획전이에요. 17번이 들어갑니다.”
“손 드는 대로 가져가시면 됩니다.”
“법인에 정가 매매 얘기 넣은 거 들으셨죠? 이런 날 값 안 튀게요.”
“들었습니다. 상무님이 웃으시더군요.”
“웃을 일이 아닌데요.” 세윤의 말끝이 짧았다.
팔용은 경매대 맨 앞, 중도매인들이 서는 줄보다 한 걸음 더 앞에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까는 없던 의자였다. 의자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은빛 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왔다. 머리에는 손바닥만 한 금관을 얹었고, 푸른 비단 두루마기에는 파도 무늬가 굽이쳤다. 노인은 무릎 위에 엄지손톱보다 큰 진주 한 알을 굴리고 있었다. 경매장 형광등이 진주에 맺혀 우윳빛으로 번졌다.
“누가 촬영 허가 냈어?” 두만이 속삭였다. “요즘 유튜버들 아주 사극을 찍네.”
*
팔용은 볼펜을 쥔 손을 들었다. 서른 해 목에 붙은 가락이 저절로 나왔다. 경매사가 값을 노래처럼 이어 부르는 호창이었다. 처음 듣는 사람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중도매인들은 숫자만 골라 들었다.
“자, 통영 참돔 다섯 상자, 들어갑니다, 이만 이만 이만오, 이만오에 삼만, 삼만!”
중도매인들이 왼손으로 오른손을 가리고 손가락을 폈다. 남이 못 보게 손을 감싸는 것이 3번 자리의 예의였다. 팔용은 가린 손 틈으로 손가락만 읽었다. 17번이 셋, 두만이 셋에 하나를 더 걸었다.
나무 의자의 노인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가리지도 않고 머리 위로 높이.
“어르신, 손은 가리셔야 합니다.”
“무엇을 숨기느냐?”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나는 다 산다.”
경매장이 웃음으로 술렁였다. 팔용은 노인을 건너뛰고 17번을 보았다.
“삼만오, 삼만오 나왔고.”
노인이 손가락을 조금 더 높이 들었다. 형광등이 한 번 깜박였다. 수조의 물이 출렁여 넘쳤다. 젖은 바닥에 노인의 그림자가 길게 누웠는데, 그림자가 사람 모양이 아니었다. 비늘이 돋은 몸이 의자 밑에서 경매대까지 구불구불 이어졌고, 끝에 뿔 달린 머리가 있었다. 푸른 용이었다. 팔용이 눈을 비비는 사이 형광등이 다시 환해졌고 그림자는 그냥 그림자였다.
“어르신, 중도매인 아니시면 경매에 못 들어오십니다.”
“제일 높은 손이 가져간다고 들었다.”
“그건 맞습니다.”
“그럼 내 손이 제일 높다.”
두만이 갑자기 앞치마를 털며 끼어들었다.
“제 손님입니다! 32번 위탁입니다, 형님. 이 어르신이 저한테 사 달라고 맡기신 거예요. 그렇죠, 어르신?”
노인이 두만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네 이마에 수건은 왜 감았느냐?”
“땀 닦으려고요.”
“겨울인데.”
“빚 있는 사람은 겨울에도 땀 흘려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내 손이 되어라.”
*
이제부터는 손가락 싸움이었다. 17번이 넷을 펴면 두만은 노인의 손가락을 보고 다섯을 폈다. 17번이 여섯이면 일곱. 노인의 손가락 하나는 언제나 남보다 하나 더라는 뜻이었다. 세윤이 17번의 귀에 대고 뭐라고 하자 17번이 한 손을 다 폈다가 다른 손까지 보탰다. 두만이 노인을 돌아보았다. 노인은 같은 손가락 하나를 들고 있었다.
“칠만, 칠만오, 칠만오 낙찰! 32번!”
다섯 상자가 넘어가고, 다음 다섯 상자도, 그다음도 넘어갔다. 참돔 마흔 상자가 한 시간 만에 전부 32번으로 갔다. 낙찰가는 첫 상자의 세 배 가까이 올라 있었다. 전광판의 숫자를 본 중도매인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출하자 대신 따라온 통영 양식장 직원은 휴대전화로 전광판을 찍어 어딘가로 보내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세윤이 태블릿을 옆구리에 끼고 경매대로 걸어왔다.
“남궁 경매사님, 이게 경매예요?”
“제일 높은 손이 가져갔습니다.”
“코스프레한 할아버지가 손가락 하나 든 게 제일 높은 손이에요? 저 사람 돈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몰라요.”
“위탁은 32번이 받았습니다. 대금은 32번이 냅니다.”
“규칙이 사람 하나를 못 막으면 그게 규칙이에요?” 세윤이 전광판을 가리켰다. “오늘 이 값, 다음 주 마트 진열대에 그대로 붙어요. 사는 사람은 이 할아버지를 몰라요. 비싼 참돔만 알지.”
“서른 해 이렇게 불렀습니다.”
“서른 해 동안 이런 손님은 없었잖아요.” 세윤이 태블릿을 열어 무언가를 적었다. “법인에 정식으로 올리겠습니다. 이런 경매면 저희는 손 뺍니다.”
세윤이 돌아서 나가자 17번이 팔용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팔용은 볼펜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웠다. 서른 해 동안 낙찰을 부르고 손이 떨린 적은 처음이었다.
*
경매가 끝나자 노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키가 팔용과 비슷했다. 노인은 팔용 앞으로 와서 진주를 내밀었다.
“값은 이것으로 낸다.”
“경매사는 돈을 안 받습니다. 대금은 32번이 법인에 냅니다.”
“그럼 저 수건에게 주마.”
진주가 두만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두만이 진주를 들어 형광등에 비춰 보더니 침을 꼴깍 삼켰다.
“어르신, 이거 진짜예요?”
“바다에 가짜는 없다.”
팔용이 노인 앞을 가로막았다. “어르신, 누구십니까?”
“동해에서 왔다. 생선값을 걱정하러.”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사람들은 나를 용왕이라 부르더구나. 너는 서른 해 동안 손이 바르더라. 그래서 네 경매에 왔다.”
“서른 해를 어떻게 아십니까?”
“네가 판 고기들이 다 내 바다에서 왔다. 고기는 말이 많다.”
다섯 시, 하역장 끝에 참돔 마흔 상자가 쌓였다. 두만이 지게차를 부르려 하자 용왕이 손을 저었다. 용왕이 상자 앞에 서자 바닥의 그림자가 다시 길어졌다. 푸른 용이 그림자 속에서 몸을 일으켜 상자 위로 입을 벌렸다. 상자들이 그림자 속으로 하나씩 빨려 들어갔다. 철썩, 하고 파도 소리가 났다. 남은 것은 얼음과 바닷물이 고인 빈 스티로폼 상자 마흔 개였다.
“산 것은 바다로 돌려보낸다.” 용왕이 말했다. “내일 또 오마.”
용왕이 한강 쪽으로 걸어가 하역장 모퉁이를 돌았다. 팔용이 뛰어가 보았을 때는 젖은 발자국만 몇 개 남아 있다가 발자국마저 마르고 있었다.
두만이 빈 상자를 하나 들고 와서 냄새를 맡았다.
“형님, 이거 동해 냄새예요. 통영 냄새가 아니고.”
“냄새로 바다를 어떻게 알아?”
“제가 이 바닥 이십오 년이에요. 알아요.” 두만이 진주를 쥔 주먹을 가슴에 대었다. “형님, 저 오늘부터 용왕님 전담 중도매인 할래요.”
*
다섯 시 반, 1층 활어 수조 골목은 불이 반쯤 켜져 있었다. 수조마다 산소 거품이 보글거렸는데 참돔 수조만 물이 맑았다. 「영애수산」 앞에서 상인회장 피영애가 뜰채를 들고 서 있었다. 예순셋, 고무장갑을 낀 손목에 염주를 두 줄 감은 사람이었다. 영애는 팔용을 보자 뜰채로 빈 수조를 탕탕 쳤다.
“경매사 양반, 참돔 마흔 상자 다 어디 갔어?”
“바다로 갔습니다.”
“바다에서 온 걸 바다로 보내면 나는 뭘 팔아? 연말 손님들이 참돔 달라는데 내 수조엔 바지락만 남았어. 바지락 회 떠 줘?”
“32번이 낙찰받았습니다.”
“두만이가? 두만이가 그 돈이 어디 있어? 그 양반 지난달에 나한테 오만 원 꿔 갔어.” 영애가 뜰채를 어깨에 걸쳤다. “내가 상인회장 이 년째인데 이런 건 처음 봐. 손님이 고기를 사서 버리는 경매가 어딨어.”
“버린 게 아닙니다. 풀어 줬답니다.”
“그게 그거지.”
영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상인회 단톡방이었다. 「3번 자리 참돔 전부 32번 낙찰 실화?」「용왕이래요 ㅋㅋ」「웃을 일이 아님 수조 비었음」. 영애는 화면을 팔용 코앞에 들이밀었다가 거두었다.
법인 사무실 문이 열리고 상무 기창술이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기창술은 출력한 낙찰 내역서를 흔들며 팔용에게 다가왔다. 얼굴이 새벽 다섯 시 반에 어울리지 않게 발갰다.
“남궁 경매사, 이거 봤어? 참돔이 세 배야. 세 배면 우리 수수료도 세 배야.”
“새솔마트에서 법인에 정식으로 올린답니다.”
“올리라 그래. 새솔이 사는 것보다 비싸게 사 가는 손님이 생겼는데 뭐가 문제야?” 기창술이 팔용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내일도 그 어르신 오시지? 의자 좋은 걸로 하나 갖다 놔.”
*
여섯 시, 2층 초장집 「난주네」에서 팔용은 식은 둥굴레차를 마셨다. 난주는 맞은편에 앉아 휴대전화로 경매장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찍어 올린 영상에 벌써 「#노량진용왕」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조회수 숫자가 보는 동안 두 번 바뀌었다.
“당신 목소리 다 나왔어. 칠만오 낙찰, 하는 거.”
“지워 달라고 해.”
“이거 우리 가게 홍보야. 2층 용왕 정식 만들까?”
팔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해일」이 떴다. 영상 통화였다. 팔용은 잠깐 화면을 보다가 받았다.
해일의 얼굴 뒤로 겨울 바다가 출렁였다. 주문진 앞바다였다. 해일은 털모자를 눌러쓰고 갑판에 서 있었는데, 입김이 화면을 하얗게 덮었다 걷혔다.
“아버지.”
“어.”
“이상한 거 보여 드릴게요.” 해일이 휴대전화를 돌려 바다를 비췄다. 검푸른 물 위로 붉은 등이 떼 지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수십 마리였다. “참돔이에요. 12월에, 주문진 앞바다에. 선주님이 오십 년 배 타면서 처음 본대요.”
화면 속 참돔 한 마리가 물 위로 뛰어올랐다. 등이 새벽 경매장 얼음 위에서 본 참돔과 같은 빛깔로 붉었다.
팔용은 손에 쥔 볼펜을 내려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