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97자)

구덩이 앞에 두고 가 주세요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채온유

먼저 털어놓고 시작하겠다⁠. 나는 이 알을 주운 게 아니라 훔쳤다⁠. 주인이 있다는 걸 알았고⁠, 이 주인이 내 앞 다섯 걸음에 서 있었고⁠, 나는 배달통 뚜껑을 닫았다⁠.

2031년 7월 9일⁠, 밤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장마가 열하루째였고⁠, 구월동 반지하 내 방 벽지는 엄지로 누르면 물이 배어 나왔다⁠. 나는 서른 살⁠, 배달 육 년 차였다⁠. 남동구 골목은 눈 감고도 탄다⁠. 어느 골목 끝에 계단이 있고 어느 집 진돗개가 오토바이 소리에 미치는지⁠, 어느 빌라 공동 현관이 비밀번호 대신 발로 차면 열리는지 몸이 먼저 안다⁠. 이날 밤 마지막 콜은 족발 대자 하나였다⁠.

주소는 구월동 재개발 공사장 B구역이었다⁠. 요청 사항 칸에 이렇게 떠 있었다⁠. 「⁠가림막 안쪽 구덩이 앞에 두고 가 주세요⁠. 벨 누르지 마세요⁠.⁠」

공사장에 벨이 어디 있냐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콜을 잡았다⁠. 팁이 오천 원 붙어 있었다⁠.

가림막은 높이 삼 미터짜리 철판이었다⁠. 하늘색 바탕에 「⁠쾌적한 미래 도시⁠」가 인쇄돼 있었고⁠, 이 철판 하나가 사람 하나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족발 봉지를 들고 들어서자 빗소리가 바뀌었다⁠. 바깥에서 아스팔트를 두드리던 비가 안쪽에서는 진흙에 푹푹 박혔고⁠, 발목까지 빠지는 흙에서 쇠 냄새와 덜 마른 시멘트 냄새가 같이 올라왔다⁠. 서른 걸음쯤 들어가자 구덩이가 나왔다⁠.

바닥에서 파란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게이트였다⁠. 이 나라에서 이걸 못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스무 해 전 2011년 봄 서울 하늘에 처음 금이 간 뒤로⁠, 땅이든 하늘이든 아무 데나 열리는 저쪽 세상의 구멍이다⁠. 열리면 정부의 게이트 관리청이 노란 띠를 두르고 안내 방송을 틀고⁠, 허가받은 길드가 들어가 괴물을 정리한다⁠. 나는 뉴스로만 봤다⁠. 노란 띠도 방송도 없이 열린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검은 우비 넷이 엎드려 있었다⁠. 우비 등판에 검은 나무가 수 놓여 있었다⁠. 흑림이었다⁠. 버스 정류장 광고판마다 붙어 있는 S급 길드의 이 나무였다⁠. 넷 중 하나가 나를 보고 손을 휘저었는데⁠, 오지 말라는 건지 족발을 거기 두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족발 시키신 분⁠—⁠”

땅이 울렸다⁠. 발바닥으로 먼저 왔다⁠. 오토바이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처럼 쿵⁠, 그리고 한 번 더 쿵⁠. 구덩이 아래에서 누가 짧게 소리쳤고 파란빛이 꺼졌다가 켜졌다⁠. 다음에 뭔가가 구덩이에서 튀어 올라 가장자리 진흙에 떨어지더니 내 쪽으로 굴러왔다⁠.

수박만 했다⁠. 검은 바탕에 붉은 줄이 실금처럼 그어져 있었고⁠, 이 줄 안에서 무언가가 숨 쉬듯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이게 내 운동화 코앞에서 멈췄을 때 빗방울이 이 위에 떨어지면서 칙⁠, 하고 김이 올랐다⁠.

나는 이걸 들었다⁠.

왜 들었냐고 물으면 지금도 답을 못 한다⁠. 손바닥이 데일 만큼 뜨거웠다⁠. 방금 불에서 내린 뚝배기를 맨손으로 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놓을 수가 없었다⁠. 빗방울이 닿을 때마다 이 붉은 줄이 한 번씩 어두워졌고⁠, 나는 이게 꺼져 가는 불씨처럼 보였다⁠. 진흙 속으로 굴러가면 그대로 식을 것 같았다⁠. 나는 오토바이까지 뛰어가 이걸 배달통에 넣었다⁠. 족발이 빠진 자리에 딱 맞았다⁠. 뚜껑을 닫았다⁠.

이때 구덩이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사다리도 없이 진흙 벽을 계단처럼 밟고 올라온 남자는 흰 셔츠 차림이었다⁠. 칠월 장마 한복판에 남자의 어깨에는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남자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어깨 둘레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진눈깨비가 되어 사각거렸다⁠. 얼굴은 광고판에서⁠, 그리고 열두 해 전 뉴스에서 봐서 알았다⁠. 2019년 송도에서 드래곤을 잡고 S급이 된 사람⁠, 흑림 길드장 탁희준이었다⁠.

“⁠배달 기사님이세요⁠?⁠”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나는 족발 봉지를 내밀었다⁠.

“⁠족발 대자요⁠. 문 앞에⁠, 아니 구덩이 앞에 두라고 하셔서⁠.⁠”

탁희준이 봉지를 받았다⁠. 들고 있는 손가락 끝에서 봉지 비닐이 하얗게 굳었다⁠. 봉지를 내려다보지도 않고 나를 봤다⁠.

“⁠하나만 물을게요⁠. 방금 이쪽으로 뭐 굴러오지 않았어요⁠? 이만한 거⁠.⁠”

탁희준이 두 손으로 수박만 한 원을 그렸다⁠.

“⁠돌이요⁠?⁠”

“⁠돌 비슷한 거⁠.⁠”

“⁠공사장이라 돌이 좀 많던데요⁠.⁠”

탁희준이 웃었다⁠. 이를 보이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지나쳐 내 오토바이 쪽으로 갔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따라가면 뭔가 있다고 말하는 꼴이었다⁠. 탁희준이 배달통 뚜껑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뚜껑 둘레에 하얀 서리가 동그랗게 번졌다⁠. 거기까지는 이 남자의 솜씨였다⁠. 다음은 아니었다⁠. 서리가 번진 자리 한가운데부터 물기가 배어 나오더니⁠, 하얗던 뚜껑이 안쪽에서부터 녹아 김을 냈다⁠. 탁희준은 손을 떼지 않고 이 김을 오래 봤다⁠.

“⁠보온이 잘 되네요⁠.⁠”

“⁠통을 좋은 걸 써서요⁠.⁠” 내 입은 내 머리보다 빨랐다⁠. “⁠족발은 식으면 끝이거든요⁠.⁠”

“⁠길드장님⁠, 측정기 가져올까요⁠?⁠”

구덩이 쪽에서 우비 하나가 소리쳤다⁠. 탁희준이 대답하기 전에 가림막 틈으로 빨갛고 파란 불빛이 번쩍였다⁠. 사이렌은 없었다⁠. 순찰차 경광등만 돌고 있었다⁠. 땅이 울렸으니 누가 지진 신고라도 했을 것이다⁠. 탁희준이 이 불빛을 한 번 보고⁠, 구덩이를 한 번 보고⁠, 나를 봤다⁠. 노란 띠도 없는 구덩이였다⁠. 경찰이 이 안에 들어오면 곤란한 건 내가 아니었다⁠.

탁희준은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 헬멧 끈에 끼웠다⁠.

“⁠수고하셨어요⁠, 맹수동 기사님⁠.⁠”

배달 앱은 손님에게 기사 이름을 보여 준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이 기능을 미워했다⁠.

돌아오는 길에 블루투스 헬멧으로 전화가 왔다⁠. 배달 동료 주강산이었다⁠. 스물여덟⁠, 우리 대행 사무실에서 입이 제일 빠른 놈이다⁠.

“⁠형⁠, 형⁠, 이건 진짜야⁠. 구월동 공사장에서 지진 났대⁠.⁠”

“⁠누가 그래⁠?⁠”

“⁠단톡방에서⁠. 아니 근데 다른 형은 연예인 촬영이래⁠. 흑림 길드장이 드라마 찍는대⁠. 형 지금 그쪽이지⁠? 사진 좀 찍어 와⁠.⁠”

“⁠나 지금 집에 가⁠.⁠”

“⁠형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뜨거운 데 있어⁠?⁠”

배달통이 등 뒤에서 난로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비닐 타는 냄새가 헬멧 안까지 들어왔고⁠, 빗물이 통에 닿을 때마다 칙칙 소리가 났다⁠. 신호 대기에 걸린 옆 차선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내 배달통을 봤다⁠. 연기 나요⁠,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군고구마예요⁠.

“⁠강산아⁠. 지진이라고 해⁠. 촬영 말고⁠.⁠”

“⁠왜⁠?⁠”

“⁠그냥⁠.⁠”

전화를 끊고 나서 알았다⁠. 강산에게 그냥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이 녀석은 그냥이라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이유를 지어낸다⁠. 이날 아침까지 구월동 단톡방에는 공사장 지진설과 촬영설과 맹수동 연루설이 나란히 돌았다⁠.

*

우리 집은 구월동 골목 안 이층 다가구의 반지하다⁠. 1층에는 집주인 곽복자 할머니가⁠, 2층에는 인사만 하고 지내는 혼자 사는 여자가 산다⁠. 반지하 창문은 골목 바닥과 높이가 같아서⁠, 비 오는 날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산 끝에서 떨어진 물이 내 창틀로 튄다⁠.

알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지 한 시간 만에 방이 달라졌다⁠. 벽에 걸린 습도계가 92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이 옆 온도계 바늘은 38도를 넘어갔다⁠. 장판에서 비닐 타는 냄새가 났다⁠. 선풍기를 알 쪽으로 돌렸더니 더운 바람이 내 얼굴로 되돌아왔다⁠. 젖은 수건을 덮으면 수건이 삼 분 만에 바싹 말라 뻣뻣해졌다⁠. 나는 수건 다섯 장을 번갈아 적시면서 화장실과 침대 사이를 오갔고⁠, 그사이 벽지 곰팡이 자국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천장이 울렸다⁠. 할머니가 바닥을 뭔가로 두드리고 있었다⁠. 이어서 반지하 창문이 열리고 할머니 얼굴이 거꾸로 들어왔다⁠. 골목에 쪼그려 앉아 창문 안을 들여다보는 일흔두 살 얼굴이었다⁠.

“⁠너 칠월에 보일러 틀었냐⁠?⁠”

“⁠아뇨⁠, 할머니⁠.⁠”

“⁠근데 우리 집 마루가 왜 뜨끈해⁠?⁠”

“⁠운동해요⁠. 땀 빼느라고⁠.⁠”

“⁠운동을 새벽 두 시에 보일러 틀고 해⁠? 가스비는 네가 내라⁠.⁠”

창문이 닫혔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검은 알⁠, 붉은 줄⁠, 게이트를 검색했다⁠. 맨 위에 뜬 건 2019년 9월 송도 사진이었다⁠. 검은 비늘 사이로 붉은 줄이 용암처럼 갈라진 거대한 날개가 아파트 열두 층을 덮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아래 사망 마흔한 명이라는 숫자가 있었다⁠. 기사 끝에는 이 드래곤의 목을 얼려 떨어뜨린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탁희준이었다⁠.

나는 관리청 신고 번호를 눌렀다⁠. 마지막 숫자 하나를 남겼을 때 알이 안에서 두드렸다⁠.

똑⁠, 똑⁠, 똑⁠.

세 번이었다⁠. 배달하는 사람이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박자와 똑같았다⁠. 나는 생각도 하기 전에 대답하고 있었다⁠.

“⁠네⁠, 나가요⁠.⁠”

*

새벽 네 시에 껍데기가 갈라졌다⁠. 붉은 줄을 따라 금이 가고⁠, 금 사이로 김이 쏟아지고⁠, 안에서 젖은 머리 하나가 껍데기를 밀어 올렸다⁠. 고양이만 했다⁠. 비늘은 아직 무르고 검었고⁠, 비늘 사이마다 알에 있던 이 붉은 줄이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눈은 노른자 색이었다⁠. 이것이 고개를 들고 내 방을 처음 둘러봤다⁠. 곰팡이 핀 벽지와 라면 박스로 만든 신발장과 빨래 건조대를 차례로 봤다⁠. 그러고는 재채기를 했다⁠.

불꽃이 튀었다⁠. 커튼 밑단에 옮겨붙은 불이 순식간에 무릎 높이까지 올라갔다⁠. 나는 젖은 수건으로 커튼을 내리쳤고⁠, 두 번째 수건으로 한 번 더 쳤다⁠. 화재감지기가 울었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감지기 배터리를 뽑는 동안 천장이 또 울렸다⁠.

“⁠이놈아⁠, 불냈냐⁠?⁠”

“⁠라면 끓이다가요⁠!⁠”

“⁠라면을 침대에서 끓여⁠?⁠”

할머니 목소리가 멀어지고⁠,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침대를 봤다⁠. 이것이 거기 없었다⁠. 방바닥을 따라 젖은 자국이 나 있었고⁠, 이 끝은 싱크대 위 비닐봉지였다⁠. 족발집 사장님이 기사님 드시라며 따로 싸 준 서비스 족발 한 줌이 든 봉지였다⁠. 이것은 봉지에 머리를 처박고 뼈째 씹고 있었다⁠. 오도독⁠, 오도독⁠. 족발 뼈가 과자처럼 부서지는 소리였다⁠.

다 먹은 뒤 이것은 싱크대에서 뚝 떨어져 내 발등에 기어올랐고⁠, 바짓가랑이를 타고 올라왔고⁠, 내 가슴팍에 와서 몸을 말았다⁠. 뜨거웠다⁠. 한겨울 핫팩을 셔츠 안에 넣은 것 같은 열이 칠월 새벽 반지하에서 내 가슴뼈를 지졌다⁠. 땀이 배꼽까지 흘렀다⁠. 이 열 속에서 작은 심장이 뛰었다⁠. 내 심장보다 두 배는 빨랐다⁠. 나는 손바닥을 이 등에 얹었다⁠. 이것이 내 손바닥 쪽으로 몸을 더 붙였다⁠.

육 년 동안 나는 하루에 문을 백 개쯤 봤다⁠. 문 앞에 봉지를 내려놓고⁠,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문 안쪽에서 누가 나를 기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새벽에 처음으로⁠, 내 방 안에서 무언가가 내 체온 쪽으로 기어 왔다⁠. 나는 땀에 젖은 셔츠를 벗지 않았다⁠. 벗으면 이것이 깰 것 같았다⁠.

*

새벽 다섯 시 이 분⁠, 휴대폰이 울렸다⁠. 배달 앱 알림이었다⁠.

「⁠지정 배차 요청 — 기사 맹수동⁠」

가게도 손님도 같은 주소⁠, 구월동 재개발 공사장 B구역이었다⁠. 음식 칸은 비어 있었고⁠, 요청 사항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까 그 통 그대로 가지고 와 주세요⁠.⁠」

이 밑에 배달비 500⁠,000원이 떴다⁠.

화면 아래쪽에서 수락 버튼이 깜빡였다⁠. 버튼 위 숫자가 15에서 14로⁠, 13으로 줄었다⁠. 가슴 위의 이것이 잠결에 꼬리를 내 손목에 감았다⁠. 꼬리가 감긴 자리가 화끈거렸다⁠. 거절을 누르면 탁희준은 내가 거절했다는 걸 안다⁠. 수락을 누르면 이 통을 들고 이 구덩이 앞에 다시 서야 한다⁠.

11⁠, 10⁠.

나는 엄지를 화면 위에 올렸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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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0.26· 1화

    배달통에 드래곤 알을 넣은 게 배달 기사가 주운 거예요?

    • 채온유작가2026.10.27

      네, 구덩이 앞에 두고 가 달라는 요청 사항을 읽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구덩이 앞에 두고 가 주세요 · 드래곤 알을 주웠더니 우리 원룸이 둥지가 되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