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838자)
손잡고 계세요
이혼 숙려 기간 · 여시결
커피 냄새가 먼저 안방 문틈으로 들어왔다. 채지애는 눈을 뜨기 전에 냄새부터 맡았다. 원두 가는 소리, 뜨거운 물을 두 번에 나눠 붓는 소리, 머그잔 두 개를 식탁에 내려놓는 소리가 차례로 이어졌다. 열한 해 동안 아침마다 나던 순서였고, 이혼 서류를 법원에 낸 이튿날에도 순서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지애는 일어나 어깨에 닿는 짙은 갈색 머리를 낮게 묶고 동그란 금테 안경을 썼다. 2027년 4월 2일 금요일이었다. 거실로 나가자 소파 가운데에 법원 봉투가 접힌 채 놓여 있었다. 봉투 겉에 볼펜으로 눌러 쓴 날짜가 보였다. 「5월 6일 오전 10시」 아이가 있는 부부는 석 달을 기다려야 하지만, 둘은 상담을 일찍 마쳤고 법원은 숙려 기간을 한 달로 줄여 주었다. 한 달 뒤 판사 앞에서 둘 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끝이었다.
한 달 동안 따로 나가 살 돈은 둘 다 없었다. 일산 물푸레마을 4단지 411동 1101호, 서른두 평짜리 이 집을 팔아야 대출 4억 2천을 갚고 남는 돈을 나눌 수 있었다. 팔릴 때까지 한집에서 버티자고 먼저 말한 사람은 지애였다. 성규는 “그래” 하고 커피를 내렸다.
식탁 앞에 마성규가 서 있었다. 덥수룩한 검은 머리는 베개 모양대로 눌려 있었고, 회색 후드 집업 소매가 손등을 반쯤 덮었다. 손에 머그잔 두 개를 들고 있다가 하나를 지애 자리에 놓았다. 이가 나간 손잡이가 지애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지애는 머그잔을 지나쳐 정수기에서 텀블러에 물을 받았다.
“엄마, 아빠 커피 또 버려?”
마율비가 책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방에서 나왔다. 열 살,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요즘은 어른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안 버려. 안 마시는 거야.”
“그게 버리는 거잖아. 식으면 아빠가 싱크대에 붓던데.”
성규가 웃음을 참느라 머그잔에 코를 박았다. 율비가 아빠 옆구리에 얼굴을 대고 킁킁거렸다.
“아빠한테 또 딸기우유 냄새 나.”
“아빠 회사가 딸기우유 냄새 만드는 데라서 그래.”
“알아. 그래서 친구들이 우리 아빠 딸기우유 공장 다니는 줄 알아.”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지나갔다. 「기준금리 동결…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석 달째 올라」 지애는 화면 아래 글씨를 보며 이번 달 상환액 230만 원을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렸다. 율비가 현관에서 운동화를 꿰다 말고 돌아보았다.
“오늘 집 보러 와?”
“열한 시랑 세 시.”
“그럼 내 방 슬라임 치워야 돼? 사람들이 슬라임 보고 집 안 사면 어떡해?”
“슬라임 때문에 집 안 사는 사람은 없어.”
율비는 납득하지 않은 얼굴로 문을 닫았다. 지애는 식탁 위 머그잔에서 김이 다 빠질 때까지 보지 않았다.
*
아홉 시 반에 초인종이 울렸다. 성규가 문을 열자 은단 냄새가 먼저 들어왔고, 포마드 바른 머리와 원두 봉지가 뒤따랐다. 단지 정문 앞 상가 1층 물푸레공인중개사의 방희철 소장이었다. 쉰여덟이라는데 운동화는 성규 것보다 새것이었다.
“자, 시작합시다.”
희철은 신발을 벗자마자 방향제를 꺼내 거실 네 귀퉁이에 두 번씩 뿌렸다. 흰 꽃 냄새가 퍼졌다. 성규는 향료 회사 연구원의 버릇대로 속으로 이름을 붙였다. 값싼 화이트 머스크, 알코올이 너무 많아서 끝이 맵다.
“집은 코로 팝니다. 손님이 현관에 들어와서 처음 삼 초, 그때 냄새로 정해요. 커피 냄새, 빵 냄새, 그리고 사이좋은 냄새.”
“사이좋은 냄새는 어떻게 내요?”
“두 분이 내셔야죠.”
희철은 소파 가운데 법원 봉투를 집어 텔레비전 장 서랍에 넣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소파에 나란히 앉혔다. 성규가 어색하게 팔을 들어 지애 어깨에 둘렀다.
“아니, 남편분. 그건 헤드록이고요. 팔을 내리세요. 손을 잡으세요.”
지애가 성규의 손목을 잡았다. 희철이 이마를 짚었다.
“사모님, 진맥하세요? 손목 말고 손이요. 손가락이 이렇게 엇갈리게.”
성규가 손가락을 끼우자 지애의 손이 차가웠다. 약국 핸드크림 냄새가 났다. 시어버터에 소독용 알코올이 살짝 섞인 냄새였다. 열한 해 동안 맡은 냄새인데, 손을 잡은 채로 맡은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제가 이 단지에서 이십 년 집을 팔았어요. 작년에 7동 부부가 아침에 싸웠거든요. 손님이 현관에서 신발을 도로 신더라고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싸운 집은 냄새가 납니다.”
희철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넘기다가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희망가는 6억 2천으로 올려 뒀습니다. 사모님 말씀대로.”
성규가 지애를 보았다.
“6억 2천은 언제 정했어?”
“시세 봤어. 당신은 안 봤잖아.”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자, 지금! 지금 그 얼굴!” 희철이 손뼉을 쳤다. “그 얼굴은 안 됩니다. 손님은 그 얼굴 보고 오천 깎아요.”
*
열한 시 정각에 온 첫 손님은 혼자였다.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자가 줄자를 들고 현관에 들어왔다. 지애는 약사라서 사람이 들어오면 냄새부터 가렸다. 여자에게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향수도, 섬유유연제도, 화장품도 없었다. 사람이 그렇게 무향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지애는 처음 알았다.
여자는 인사도 짧게 하고 거실 폭부터 쟀다. 줄자가 벽을 따라 미끄러지며 딸깍 소리를 냈다. 성규가 부엌에서 커피를 내렸고, 지애는 소파에서 웃었다. 희철이 시킨 웃음이라 입꼬리 끝이 저렸다.
여자는 안방을 보고, 율비 방을 보고, 작은방 문을 열었다. 지애의 등에 땀이 났다. 성규의 이불을 안방으로 옮기라고 아침에 희철이 두 번 말했는데, 이불은 그대로 작은방 바닥에 개켜져 있었다. 여자가 허리를 숙여 베개에 코를 댔다가 일어났다.
“섬유유연제가 두 가지네요.”
“네?”
“안방 베개는 라벤더고 작은방 베개는 무향이에요. 욕실 칫솔은 컵이 따로고요.” 여자가 줄자를 감았다. “숙려 중이시죠?”
거실의 커피 냄새가 갑자기 짙어졌다. 성규가 주전자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지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씀이세요?”
“5억 1천.” 여자는 숫자를 또박또박 끊었다. “현금이고, 한 달 안에 잔금 드려요. 숙려 끝나는 날 오시면 그때는 5억이고요.”
“나가 주세요.”
“급하실 때 연락 주세요. 다들 연락 주시더라고요.”
여자는 신발장 위에 명함을 한 장 놓았다. 하얀 종이에 이름과 번호만 있었다. 「석묘진」 현관문이 닫히고 나서야 지애는 손이 떨리는 것을 알았다. 희철이 은단을 한꺼번에 서너 알 털어 넣고 씹었다.
“소장님, 아는 사람이에요?”
“동네 분이세요.” 희철이 명함을 집어 지애에게 건넸다. “이 동네는 뭐, 다 동네 분이죠.”
성규가 작은방에서 이불을 안고 나와 안방으로 옮겼다. 지애는 성규의 등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규도 돌아보지 않았다.
*
점심은 라면이었다. 성규가 끓였고, 지애는 젓가락을 들기 전에 냄비 뚜껑을 한 번 덮었다가 열었다. 지애는 면이 붇기 직전에 먹는 사람이었고, 성규는 붇기 직전을 맞추느라 시계를 보는 사람이었다. 숙려 기간에도 시계는 맞았다.
“작은방 이불, 소장님이 아침에 두 번 말했어.”
“깜빡했어.”
“당신은 늘 깜빡해. 율비 학부모 상담도, 결혼기념일도, 지난달 관리비 이체 바뀐 것도.”
성규는 면을 한 젓가락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관리비는 당신이 바꿨잖아. 나한테 말 안 하고.”
“말했어. 냉장고에 붙여 놨잖아.”
“냉장고에 붙이는 건 말하는 게 아니야.”
냉장고 문에는 지애의 글씨가 적힌 메모지가 여섯 장 붙어 있었다. 「율비 수학 학원 화목에서 월수금으로」 「관리비 계좌 바꿈」 「4월 1일 법원 오전 10시」 마지막 메모도 지애가 혼자 날짜를 잡고 붙여 둔 것이었다. 성규는 메모지를 볼 때마다 이 집에 하숙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하숙생은 주인이 정한 시간에 밥을 먹고, 주인이 정한 날에 방을 뺀다.
식탁 위에서 지애의 휴대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율비 반 학부모 단톡방이었다. 「내일 체육복 챙겨 주세요」 밑에 다른 엄마의 글이 붙어 있었다. 「율비 어머님, 부동산 앱에 1101호 떴던데 이사 가세요?^^」 지애가 엄지로 답을 쳤다. 「아직 생각 중이에요」
성규가 화면을 넘겨다보았다.
“생각 중이래. 집도 생각 중이고 우리도 생각 중이고.”
“숙려 기간이 원래 생각하는 기간이야.”
“그럼 라면도 생각하면서 먹어. 지금 붇는다.”
지애가 젓가락을 들었다. 성규는 다 먹은 냄비를 싱크대에 두고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 한구석 선반에는 회사에서 얻어 온 향료 병이 줄지어 있었다. 딸기, 바나나, 바닐라, 볶은 보리. 성규는 병 하나를 열어 코끝에 대고, 오전의 검은 트렌치코트를 떠올렸다. 사람이 그렇게 아무 냄새도 안 나려면 일부러 지워야 한다. 향수를 안 뿌리는 것으로는 모자라고, 무향 비누와 무향 세제와 무향 로션을 몇 해씩 골라 써야 한다. 무엇을 숨기려고 그렇게까지 지우는지, 성규는 병뚜껑을 닫으며 생각했다.
*
세 시에 온 손님은 서른 초반의 연 씨 부부였다. 현관에서부터 다투고 있었다. 아내는 남향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고, 남편은 지하 주차장 자리가 몇 개냐고만 물었다.
성규는 희철이 시킨 대로 소파에 앉아 지애의 손을 잡았다. 지애의 손은 아까보다 덜 차가웠다. 부엌에서 커피 냄새가 거실까지 퍼졌고, 연 씨 아내가 코를 벌름거렸다.
“커피 냄새 좋다. 여보, 우리 집은 맨날 라면 냄새잖아.”
“라면은 당신이 끓이잖아.”
“내가 끓이는 건 당신이 먹으니까지.”
희철이 끼어들어 베란다 창을 열어 보였다. 오후 햇빛이 거실 바닥까지 들어왔다. 연 씨 아내가 소파 앞에 쪼그려 앉아 두 사람이 잡은 손을 보며 물었다.
“두 분은 안 싸우세요?”
“안 싸워요.”
“많이 싸워요.”
지애와 성규의 대답이 한꺼번에 나왔다. 거실이 조용해졌다. 희철이 은단 통을 흔들며 웃었다.
“많이 싸우고 잘 풀어요. 그게 이 집 기운입니다. 싸워도 손은 잡고 계시잖아요.”
연 씨 아내가 깔깔 웃었다. “우리도 많이 싸우는데.”
“우리는 안 풀잖아.” 남편이 말했다.
“지금 풀어?”
부부가 현관에서 또 다투며 나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연 씨 아내가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성규는 지애의 손을 놓았다. 손바닥에 핸드크림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일곱 시에 희철의 문자가 왔다. 「연 씨 부부 가계약금 오백 들어왔습니다. 내일 오전 열 시 사무실에서 계약서 씁니다. 두 분 꼭 같이, 손잡고 오세요.」
*
밤 아홉 시, 성규가 후드 지퍼를 목까지 올렸다.
“나갔다 올게.”
금요일마다 듣는 말이었다. 두 해째였다. 처음 몇 달은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성규는 바람 쐬러 간다고 했다. 지애는 언제부턴가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대신 금요일 밤마다 거실 불을 끄지 않았다.
새벽 네 시에 도어록 소리가 났다. 지애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법원 봉투가 있었다. 성규가 신발을 벗다가 지애를 보고 멈췄다.
“안 잤어?”
지애는 대답 대신 일어나서 성규의 후드 어깨에 코를 댔다. 담배, 새 가죽, 바닐라에 머스크를 섞은 달고 무거운 향수. 지애가 모르는 여자의 냄새였다.
“누구야?”
“손님.”
“어떤 손님이 당신 옷에 향수를 묻혀?”
“손님 차에서 묻은 거야.”
“차?”
성규가 입을 다물었다. 지애는 성규의 얼굴을 보았다. 피곤한 눈 밑이 거뭇했고, 머리에서 남의 차 방향제 냄새가 났다. 레몬 향을 흉내 낸 싸구려 방향제였다. 바람을 쐬러 간 사람한테서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성규는 지애를 지나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컵 마셨다. 식탁 위에는 아침에 내려 둔 머그잔이 그대로 있었다. 커피는 바닥에 갈색 테두리를 남기고 말라 있었다.
“내일 열 시지? 갈게.”
“말 돌리지 마.”
“돌리는 거 아니야. 열 시에 간다고.”
성규가 작은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지애는 문 앞에 서서 나무 문짝에 대고 말했다.
“내일 안 와도 돼. 도장은 나 혼자 찍을게.”
문 안에서 잠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낮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나왔다.
“그 말, 열한 해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