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04자)
반으로 자른 케이크
이혼식 플래너 · 석다감
11월 27일 토요일 오후 두 시 이십육 분, 연희 유리홀 무대. 남보란이 서규환의 손바닥 위에 손을 얹었다. 바이올린이 두 번째 마디로 넘어갔다.
앞, 옆, 뒤, 옆. 첫 걸음에 규환이 보란의 발을 밟았다. 보란이 “아” 하더니 웃었다. 연습실에서 웃던 것과 같은 웃음이었고, 십 년 전 영상 속 웃음과도 같은 웃음이었다. 하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따라 났다. 망원시장 상인회 탁자에서 누군가 “한 번!” 하고 셌다. 무대 옆 계단에서 하늬가 입술만 움직여 박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두 번째 걸음부터 규환은 밟지 않았다. 팔을 높이 들었다. 하늬 키가 아니라 보란 키에 맞춰서. 보란이 팔 밑으로 한 바퀴 돌았다. 원피스 자락이 둥글게 퍼졌다가 내려앉았다. 닦아 둔 여덟 장의 창으로 든 햇빛이 무대 바닥에 긴 네모를 그렸고, 둘은 빛 네모 하나를 벗어나지 않고 돌았다.
주희는 헤드셋을 다시 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식장에서 사 분을 입 다물고 있어 본 적이 없었다. 헤드셋 너머로 솔지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주희는 마이크를 입가에서 밀어냈다.
출구 옆에서 차건우가 서 있었다. 일어난 채로 앉지 않았다. 손바닥은 내려가 있었다. 옆자리의 백명순이 가방을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두 손이 비자, 명순은 두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무릎 위에서 맞잡았다.
곡이 끝나고 하늬가 붙인 사십 초가 시작되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연회장 한가운데에서 규환과 보란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사십 초는 길었고, 누구도 기침을 하지 않았다. 규환이 입을 열었다. 마이크 없이, 무선 마이크가 꺼진 자리에서.
“고마웠어.”
보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규환의 넥타이 매듭을 바로잡았다. 오늘 아침 주희가 건우의 넥타이를 잡던 것과 같은 손짓이었다. 매듭을 다 맞춘 뒤 보란이 한 걸음 물러났다. 둘이 같이 고개를 숙였다. 사십 초가 끝났다.
*
“케이크 큐.” 주희가 헤드셋에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두 반쪽이 은빛 받침 위에서 손바닥 너비만큼 떨어져 있었다. 규환과 보란이 반쪽씩 들었다. 2단이라 무거웠다. 규환은 반쪽을 들고 무대를 내려가 사진 동호회 탁자로 갔다. 보란의 아버지 앞에 내려놓았다. 보란은 다른 반쪽을 들고 출구 옆으로 갔다. 명순 앞에 내려놓았다.
“이걸 나 혼자 어떻게 먹어.” 명순이 말했다.
“시장 분들이랑 드세요, 어머님.”
명순이 반쪽짜리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자른 면 안쪽의 얇은 판이 보였다. 명순은 한참 보다가 가방을 열었다. 손수건을 꺼내 풀었다. 금반지 하나가 나왔다. 명순은 일어나서 무대 위 탁자까지 걸어갔다. 하객들이 길을 비켰다. 명순이 유리 접시에 반지를 떨어뜨렸다. 금과 금이 부딪쳤고, 금이 플라스틱 반달에 부딪쳤다.
“녹이든지 말든지.” 명순이 말하고 도로 출구 옆으로 걸어갔다. 지나가면서 건우의 어깨를 툭 쳤다. “변호사 양반, 이건 돈 얘기 아니야.”
“네, 어머님.”
함께 퇴장. 규환과 보란이 같은 문으로 같이 나갔다. 문은 한 사람 반 너비였다. 이번에는 어깨가 부딪치지 않았다. 보란이 반 걸음 먼저 나가고 규환이 반 걸음 늦게 따라 나갔다. 보란의 아버지가 셔터를 눌렀다. 찰칵. 정면 카메라의 빨간 불은 꺼진 채였다. 아무도 다시 켜라고 하지 않았다.
*
하객이 다 빠져나간 저녁 다섯 시, 주희와 건우는 아치 창 아래에 양동이를 놓았다. 방도란의 조건이었다. 닦지 않은 창이 여덟 장 남아 있었다. 도란은 식초 탄 물과 신문지 한 묶음을 내주고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요즘 누가 신문지로 창을 닦느냐고 솔지가 물었을 때, 도란은 이게 제일 잘 닦인다고만 했다. 솔지는 하늬를 집에 데려다주러 갔다.
건우가 재킷을 벗었다. 셔츠 소매를 두 번 걷었다. 신문지를 구겨 식초 물에 적시자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건우는 창을 위에서 아래로 닦았다. 서면을 쓰듯 한 줄씩, 빠뜨리는 데 없이. 주희는 옆 창을 둥글게 닦았다. 둘 사이에 아치 하나가 있었다.
“월요일에 법원 갑니다.” 건우가 말했다.
“알아요.”
“제가 맞았습니다. 식장에서 재산 이야기가 나왔고, 합의는 깨졌습니다. 윤 변호사님이 퇴장하면서 월요일 아침에 접수한다고 하셨습니다.”
“네. 맞으셨어요.”
건우가 신문지를 새로 구겼다. “그리고 제 의뢰인이 웃었습니다. 첫 걸음에 발을 밟고 나서요.” 건우가 창 너머 저물어 가는 연희동 지붕들을 보았다. “그건 제가 틀렸습니다. 웃을 줄 몰랐습니다.”
주희는 창 닦던 손을 멈췄다. 닦인 유리에 둘이 나란히 비쳤다. 먼지가 걷힌 유리라 둘의 얼굴이 처음으로 또렷했다. 머리에 꽂힌 만년필도, 뿔테 안경도.
“변호사님, 아까 일어나셨을 때요.”
“네.”
“반대한다고 하시고 날짜를 고쳐 주셨잖아요. 그건 어느 진행표에 있었어요?”
건우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신문지에서 식초 물이 손목으로 흘렀다.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건우가 말했다. “아버지가 갈빗집에서 날짜를 틀리게 말씀하셨거든요. 어머니 변호사가 그걸 잡아서, 고맙다는 말까지 거짓말로 몰았습니다. 고맙다는 말이 증거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었지만, 틀린 날짜 때문에 거짓말이 되는 건 막을 수 있었습니다.”
주희는 젖은 신문지를 양동이에 넣었다. 창 여덟 장 가운데 여섯 장이 끝나 있었다.
*
11월 29일 월요일 오전 아홉 시 반,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삼 층 복도. 창으로 든 햇빛이 바닥의 회색 타일에 비스듬히 누웠다. 복도 끝 자판기 옆에 바나나우유가 진열되어 있었다. 건우가 진열대를 한 번 보고 지나쳤다.
주희는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유리 접시에 남은 것들이었다. 보란의 반지, 명순이 떨어뜨린 반지, 플라스틱 반달. 금은방에 맡기려면 두 사람이 같이 정해야 했다. 둘 다 오늘 여기 있었다.
윤 변호사가 서류 봉투를 들고 보란 옆에 서 있었다. 봉투 위에 USB 하나가 클립으로 집혀 있었다. 필름봄 정면 카메라의 원본이었다. 춤이 시작되기 전까지가 담겨 있었다. 규환의 원고, 접힌 원고, 건우의 손바닥, 3월 9일 밤.
“청구서는 오늘 냅니다.” 윤 변호사가 말했다. “영상은 증거로 붙이고요. 이보다 좋은 자료는 없습니다.”
“청구서는 내 주세요.” 보란이 말했다. “영상은 빼 주세요.”
윤 변호사가 보란을 보았다. “남보란 씨, 이게 제일 좋은 증거예요.”
“알아요. 들었어요. 그걸로 됐어요.” 보란이 USB를 클립에서 빼서 손바닥에 올렸다. “법정에서 그걸 또 틀면 그 사람 또 고개 숙여요. 한 번 들었으면 됐어요. 조정으로 해 주세요. 판사님 앞에서 같이 앉아서 나눌래요.”
복도 맞은편에서 건우가 규환과 같이 서 있었다. 보란이 건우를 보았다. 둘 사이로 서류를 든 사람들이 지나갔다.
“변호사님은 끝까지 반대하신다면서요.”
“반대는 했습니다. 의뢰인이 정하셨습니다.” 건우가 말했다. “말씀드려 두겠습니다. 영상이 없어도 아내분이 유리합니다. 제 의뢰인이 조정실에서도 같은 말을 할 테니까요. 날짜까지 맞게요.”
보란이 웃었다. 또박또박하지 않은,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보란은 USB를 하늬 책가방에 다는 열쇠고리처럼 손가락에 걸었다. “이건 하늬 거예요. 크면 보라고요.”
주희가 상자를 내밀었다. 규환과 보란이 상자 위에 손을 하나씩 얹었다. 규환이 말했다. “반지 둘은 녹여서 하늬 목걸이로요.” 보란이 말했다. “반달은 녹이지 마세요. 하늬가 갖고 싶대요.”
*
12월 17일 금요일 오후 네 시, 연플래닝 사무실. 창밖에서 첫눈이 날렸다. 아래층 드레스 숍 마네킹 신부들의 어깨 너머로 눈이 사선을 그었다. 주희는 칸막이 뒤 접이식 침대를 마지막으로 접었다. 다음 주에는 사무실에서 두 블록 떨어진 원룸으로 옮긴다. 보증금은 이혼식 계약 세 건의 계약금으로 냈다. 쏟아지지는 않았다. 세 건이었다.
12월 2일 방송이 나간 뒤 문의가 다시 조금 늘었다. 준비 과정만 나온 방송이었고, 주희의 얼굴과 종소리와, 화면 가장자리의 손바닥 하나가 나왔다. 단톡방 소문은 하객 한 사람이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잦아들었다. 아내가 손바닥으로 카메라 렌즈를 덮는 사진이었다. 「소송 증거 찍는다던 데서 이혼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껐다」. 청담 웨딩인에서 신 실장이 사진에 처음으로 하트를 달았다.
계단에서 구두 소리가 올라왔다. 한 칸씩, 고르게. 문이 열리고 차건우가 들어왔다. 어깨에 눈이 앉아 있었다.
“오늘 아침에 조정이 끝났습니다.” 건우가 말했다. “아내분이 반달 카스텔라 상표와 가게 몫의 열에 넷을 가져가십니다. 오 년에 나눠 받으시고요. 제 의뢰인은 가게와 오븐 2번을 지켰습니다. 조정실에서 의뢰인이 같은 말을 했습니다. 3월 9일 밤.”
“변호사님이 맞으셨네요. 절반 가까이 넘어갔어요.”
“네. 제가 맞았습니다.” 건우가 서류 가방을 열었다. “그래서 새 의뢰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종이 한 장이 탁자 위에 놓였다. 이혼식 상담 신청서였다. 의뢰인 칸에 이름이 둘 있었다. 차씨 성의 남자와 다른 성의 여자. 나이는 둘 다 예순을 넘었다.
“제 부모님입니다. 이혼하신 지 스물세 해 되셨습니다. 아직 서로 인사를 안 하십니다.” 건우가 말했다. “방송을 보시고 두 분이 따로따로 저한테 전화하셨습니다. 같은 걸 물으시더군요. 그 종 치는 사람 아느냐고.”
주희는 신청서를 보았다. 식순 칸에 건우의 글씨로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서로 인사」.
“변호사님. 두 분이 같은 문으로 같이 들어오셔야 열리는 식이에요.”
“압니다. 두 분 다 오시겠답니다.” 건우가 서류 가방을 닫았다. “식순에는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하객으로 가겠습니다.”
“출구 옆이요?”
“맨 앞이요.”
건우가 돌아서서 문으로 향했다. 주희는 오른손을 들었다. 손바닥이 건우의 등을 향했다.
“잠깐만요.”
건우가 멈췄다. 돌아보았다. 주희는 손을 내리고 머리에 꽂힌 만년필을 뽑았다. 높게 틀어 올린 검은 머리가 어깨 위로 쏟아져 내렸다. 진주 귀걸이가 머리카락 사이로 숨었다.
“빼 보시면 안다고 했잖아요.”
건우가 한 걸음 다가왔다. 안경 너머로 눈이 한 번 깜박였다. 첫날 카스텔라 조각을 싸 가던 때의 깜박임이었다. 건우의 손이 주희의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손가락에서 식초 냄새는 이제 나지 않았고, 차가운 눈 냄새가 났다. 둘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다시 닿았다. 주희의 손에서 만년필이 탁자로 굴러떨어져 탁상종에 부딪쳤다. 딩.
둘은 떨어지지 않은 채로 웃었다.
*
다섯 시, 접이식 침대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건우가 앞에서 뒷걸음질로, 주희가 뒤에서 침대 다리를 쥐었다. 사층에서 삼층으로 꺾이는 계단참에서 건우가 말했다. “잠깐만요.” 둘은 침대를 벽에 기대 놓고 숨을 골랐다. 하늬가 도화지를 들고 앉아 있던 자리였다.
일층 드레스 숍 쇼윈도 앞을 지날 때 마네킹 신부들이 같은 각도로 웃고 있었다. 첫눈이 침대 위에 덮인 흰 식탁보에 내려앉았다. 둘은 같은 문으로 같이 나갔다. 문은 한 사람 반 너비였고, 침대가 걸리지 않게 둘 다 어깨를 조금씩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