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열셋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0208.

“…부장님. 이상한 게 들립니다.”

지완이 헤드폰을 두 손으로 눌렀다.

“배 소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뭔가.”

“…작습니다. 아주 작고 많습니다.”

0215.

윤재는 함장을 불렀다.

“…몇 개인가.”

“…열둘까지 셌습니다. 더 있습니다.”

“속력.”

“…40노트 넘습니다.”

수상함이 40노트를 내는 것은 드물다. 작은 것은 낸다.

0221.

무인 수상정이었다.

길이 5미터쯤 되는 배다. 사람이 안 탄다. 앞에 폭약을 싣고 들이받는다.

한 척 값이 어뢰 한 발보다 싸다. 우리 어뢰는 비싸고 적다.

열둘이 오는데 우리가 가진 것은 여덟이다.

이 셈이 이 전쟁의 셈이다.

값싼 것을 많이 만들어 보내면, 비싼 것으로 막는 쪽이 먼저 바닥난다. 막는 쪽은 하나도 놓치면 안 되고, 보내는 쪽은 하나만 닿으면 된다.

우리 어뢰 한 발은 저것 스무 척 값이다. 어뢰로 저것을 잡는 것은 지는 셈이다.

그래서 안 잡는다. 피한다.

0224.

“…심도.”

“180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못 친다.”

무인 수상정은 물 위에 있다. 물속에 있는 것은 못 친다.

다만 저것들이 소리를 낸다. 소리를 내면서 훑고 다닌다. 우리가 소리를 내면 그쪽으로 몰려온다.

몰려와서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우리는 못 올라간다.

못 올라가면 세 가지가 막힌다. 통신, 공기, 그리고 전지 충전이다.

이 배는 연료전지로 간다. 물속에서 전기를 만들지만 무한정은 아니다. 산소와 수소를 실어 온 만큼만 간다.

지금 남은 것으로 열이틀을 간다. 열이틀 안에 못 올라가면 그다음은 없다.

저것들은 사람이 안 타서 잠을 안 잔다. 우리는 잔다.

0230.

“…부장님. 저것들이 뭘 뿌립니다.”

“뭘.”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부이였다.

무인 수상정이 청음기를 뿌리고 있었다. 사람이 안 타니까 8시간이고 12시간이고 그 자리에 있는다.

0248.

제하가 왔다.

“부장님. 저것들 조종은 누가 합니까?”

“…위성일 겁니다.”

“그러면 지연이 있습니다.”

“얼마나.”

“…1초쯤입니다. 40노트로 1초면 20미터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급하게 못 돕니다. 미리 정해 놓은 대로 돕니다.”

“정해 놓은 대로라는 건.”

“…소리가 나면 그쪽으로 간다. 제일 큰 소리로 간다. 그렇게 짜 놨을 겁니다.”

“…자네라면 그렇게 짜겠나.”

“…예. 그것 말고 짤 방법이 없습니다.”

“왜?”

“…열두 척이 각각 판단하면 서로 부딪힙니다.”

0304.

제하가 무인 잠수정을 하나 더 내보내자고 했다.

“…남은 게 하나입니다.”

“압니다.”

“쓰면 없습니다.”

“…쓸 자리가 지금입니다.”

0322.

무인정을 흘려 냈다.

발사관에 물을 채우고 압력을 맞추고 문을 열고 흘려 낸다. 밀어내면 유선이 끊긴다.

흘려 내려면 배가 2노트 아래로 가야 한다. 4분 동안 키가 안 먹는다.

4분 동안 위에 열두 척이 있었다.

키가 안 먹는 4분에 저것들이 우리 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온다. 오면 우리는 못 피한다.

발령소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는 것도 소리다.

윤재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잡은 손에 땀이 났다. 손을 바꿔 잡았다.

0341.

무인정이 위로 올라갔다.

제하가 그것을 심도 40까지 올렸다. 그 위로는 안 올렸다.

“…소리 냅니다.”

무인정이 소리를 냈다. 우리 배 소리를 냈다.

제하가 그 소리를 만들어 넣어 뒀다. 신채호함 추진기 회전수와 발전기 주파수를 그대로 넣었다.

만들려면 우리 배 소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 자기 배 소리는 자기가 제일 못 듣는다. 늘 나니까 안 들린다.

제하는 그것을 지완에게 물어서 알았다. 지완이 우리 소리를 불러 줬고 제하가 그걸 자료로 만들었다.

“…최 하사님이 알려 주신 겁니다.”

지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0344.

열둘이 그쪽으로 갔다.

한꺼번에 갔다. 40노트로 갔다.

지완이 그것을 들었다.

“…다 갑니다.”

0347.

첫 번째가 무인정에 닿았다.

터졌다. 물속에서 터지는 소리는 길다. 낮고 길게 퍼진다.

물기둥은 안 보인다. 소리만 온다.

첫 번째가 터지고 나서 그 자리에 거품과 부서진 것이 남는다. 그것도 소리를 낸다.

두 번째가 그 소리로 갔다. 세 번째도 갔다.

“…셋이 같은 데 들어갔습니다.”

“…미리 정해 놓은 대로 돈다고 했지.”

0349.

남은 아홉이 그 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돌면서 계속 찾았다. 찾을 것이 이제 없었다.

0402.

“전속.”

배가 남쪽으로 갔다.

소리를 내도 됐다. 저쪽 귀가 저기 몰려 있었다.

0455.

30분 뒤에 조용해졌다.

지완이 헤드폰을 벗었다. 귀 위에 자국이 나 있었다.

“…아홉 남았습니다. 아직 거기 있습니다.”

“…얼마나 있을 건가.”

“…연료 떨어질 때까지 있을 겁니다.”

0530.

발령소에서 함장이 물었다.

“제하 하사. 그 무인정 값이 얼마인가.”

“…모릅니다. 제가 값을 몰라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엔 알아야겠네.”

“…….”

“하나로 셋을 바꿨어. 그건 남는 장사야.”

0612.

제하가 콘솔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 무인정이 보낸 마지막 자료가 있었다. 끊기기 0.4초 전 것이었다.

거기에 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부장님.”

“…뭔가.”

“…열셋이었습니다.”

0618.

열세 번째는 안 왔다.

열둘이 다 몰려간 동안 하나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건 뭐 하는 겁니까?”

“…보는 겁니다.”

“…뭘요.”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요.”

0700.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0221 무인 수상정 접촉 12. 0341 무인 잠수정 기만. 0347 3척 자폭. 0402 이탈.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미확인 1척 잔류.

0740.

제하가 어뢰실 쪽으로 갔다.

무인정 자리가 비어 있었다. 둘 다 나갔고 둘 다 안 돌아온다.

제하는 그 빈 걸이를 한 번 만졌다. 만지고 나서 손을 내렸다.

걸이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일련번호였다.

제하가 그것을 떼지 않았다.

0410.

진해.

민경 앞에 항공 보고가 하나 더 올라왔다.

미상 잠수함 1. 위치가 어제와 달랐다. 남서쪽으로 40킬로미터 내려와 있었다.

그 아래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식별 코드 수신. 적성 판단.

0418.

민경은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식별 코드는 배마다 다르다. 물속에서 쏘는 짧은 신호다. 우군이면 우군 코드가 오고, 안 오면 미상이다.

적성 코드라는 것은 없다. 저쪽이 우리에게 자기 코드를 보낼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이 줄이 뜻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우군 코드가 왔는데 우리 목록에 없는 코드였다는 것.

목록에 없으면 적성으로 본다. 그게 규칙이다.

규칙대로 가면 그다음이 시작된다. 그다음은 이 방에서 하는 일이 아니다.

“…이거 어디서 왔습니까?”

“항공에서 왔습니다.”

“항공이 코드를 받았다는 겁니까?”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0432.

민경은 초계기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

구재현 소령이 받았다.

“…어제 그 접촉 말입니다. 식별 코드 받으셨습니까?”

“…아니요.”

“보고에는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쓴 보고에는 그런 줄 없습니다.”

0447.

두 사람이 같은 문서를 각자 열었다.

재현이 보낸 것에는 세 줄이었다. 민경이 받은 것에는 네 줄이었다.

한 줄이 더 있었다.

“…소령님. 이 문서 어디를 거쳐서 옵니까?”

“…작전 회선으로 갑니다.”

“사람이 봅니까?”

“…자동으로 넘어갑니다.”

“몇 단계를 거칩니까?”

“…셋입니다. 부대에서 상급으로, 상급에서 통합 체계로, 통합 체계에서 각 사령부로.”

“그 셋 다 사람이 안 봅니까?”

“…하루에 몇 건 오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이천 건입니다.”

0512.

민경은 그 보고를 반려했다.

반려하면 절차가 멈춘다. 멈추면 그 접촉은 다시 미상이 된다.

반려 사유를 적는 칸이 있었다.

민경은 이렇게 적었다.

작성자 확인 결과 원문과 다름.

적고 나서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을 수 있는지 봤다. 칸이 하나뿐이었다.

한 줄에 다 넣어야 했다. 넣을 말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0530.

작전처장이 왔다.

“차 대위. 항공 보고를 반려했나.”

“…예.”

“근거는.”

“작성자에게 직접 확인했습니다. 원문에 없는 줄이 있습니다.”

“…한 줄 때문에 반려했나.”

“…그 한 줄이 적성 판단입니다.”

0548.

“차 대위. 자네 이걸 누가 넣었다고 보나.”

“…모릅니다.”

“그러면 뭐라고 적을 텐가.”

“…모른다고 적겠습니다.”

“…….”

“모르는데 안다고 적으면 그게 또 한 줄입니다.”

0620.

같은 시각. 제주 남방 상공.

재현은 전화를 끊고 콘솔 앞에 앉았다.

어제 보고 사본을 다시 열었다.

세 줄이었다. 네 번째 줄은 없었다.

“…소령님. 오늘 임무 나갑니다.”

“…간다.”

0655.

부이를 스물넷 던졌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여덟, 남서쪽으로 열여섯을 던졌다.

던지는 순서는 넓게 먼저, 걸리면 안쪽에 촘촘히다.

부이마다 청음기 깊이를 다르게 넣는다. 물이 층으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

층 위에 넣으면 위쪽 소리만 듣고, 층 아래에 넣으면 아래쪽만 듣는다.

어제는 층 위에만 넣었다. 오늘은 절반을 층 아래로 넣었다.

어제 축이 안 들린 이유가 거기 있을 수 있었다.

0810.

열한 번째 부이에 선이 섰다.

“…50헤르츠입니다.”

“축은.”

“…이번엔 들립니다.”

재현이 화면을 봤다.

축 회전수가 낮았다. 아주 천천히 돌고 있었다.

축은 날개가 몇 개인지에 따라 소리가 갈린다. 한 바퀴에 날개 수만큼 소리가 난다.

날개 일곱이었다. 상선은 넷이나 다섯이다. 잠수함은 일곱이 많다.

일곱이면 잠수함이다. 어느 나라 것인지는 일곱으로 안 갈린다.

0828.

“…소령님. 이 축 소리 어제 거하고 같습니다.”

“같은 배라는 건가.”

“…같은 배입니다.”

0841.

재현은 보고 서식을 열었다.

위치를 적었다. 성격 칸에서 손이 멈췄다.

어제와 같은 자리였다.

0855.

“…분석관.”

“예.”

“어제 자네가 뭐라고 했지.”

“…들으면 아는데 안 들린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들리나.”

“…들립니다.”

“그러면 뭔가.”

“…잠수함입니다. 그건 압니다. 누구 건지는 모릅니다.”

0912.

재현은 미상이라고 적었다.

판단 칸에는 이렇게 적었다.

추진 특성 확인. 어제 접촉과 동일 함정. 국적 미상. 우군 여부 확인 요청 재차.

적고 나서 한 줄을 더 적었다.

본 보고에 식별 코드 수신 사실 없음.

0940.

교대기가 왔다.

인계하면서 재현은 그 한 줄을 소리 내어 읽어 줬다.

저쪽이 물었다.

“…그건 왜 넣으십니까?”

“…어제 제 보고에 없던 줄이 붙어서 왔습니다.”

“…….”

“다음 사람이 또 붙이면, 이 줄하고 부딪힙니다.”

1120.

진해.

민경 앞에 오늘 보고가 왔다.

네 줄이었다.

마지막 줄이 이것이었다.

본 보고에 식별 코드 수신 사실 없음.

민경은 그 줄을 봤다.

어제 붙었던 줄은 오늘 안 붙어 있었다.

붙이는 쪽이 한 번 시도하고 그만둔 것인지, 오늘은 붙일 자리를 못 찾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해도로 갔다. 085 자석은 그 자리에 있었다.

민경은 안 옮겼다.

대신 그 옆에 자석을 하나 더 놨다. 아무것도 안 적힌 자석이었다.

1310.

같은 시각. 심도 150.

지완이 헤드폰을 눌렀다.

“…부장님. 위에서 또 던집니다.”

“몇 개인가.”

“…열한 개째입니다.”

윤재는 그 숫자를 들었다.

열한 개면 찾고 있는 것이다. 넷은 재는 것이고 열한 개는 찾는 것이다.

찾는 쪽이 우군이면 우리를 못 알아본 것이고, 저쪽이면 우리를 잡으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지금 할 일은 같다. 소리를 안 내고 아래로 가는 것.

다른 것은 위에서 정한다. 여기서는 못 정한다.

“…누구 건가.”

“…모르겠습니다.”

윤재는 항해일지에 적었다.

1310 상방 투하물 11. 국적 미상.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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