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93자) · 강윤재 · 6월 26~27일
열셋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6월 26일 0208에 지완이 헤드폰을 두 손으로 눌렀다.
“부장님, 이상한 게 들립니다. 배 소리가 아닙니다. 작고 많습니다. 열둘까지 셌는데 더 있습니다. 속력이 40노트가 넘습니다.”
수상함이 40노트를 내는 일은 드물었다. 작은 것은 냈다. 무인 수상정이었다. 길이 5미터쯤 되는 배에 사람이 타지 않고, 앞에 폭약을 싣고 들이받았다. 한 척 값이 어뢰 한 발보다 쌌다. 열둘이 오는데 신채호함에 남은 어뢰는 여섯이었다.
그것이 이 전쟁의 셈이었다. 값싼 것을 많이 만들어 보내면 비싼 것으로 막는 쪽이 먼저 바닥났다. 막는 쪽은 하나도 놓치면 안 되고, 보내는 쪽은 하나만 닿으면 되었다. 어뢰로 저것을 잡는 것은 지는 셈이었다. 그래서 잡지 않고 피해야 했다.
“심도는?”
“180입니다. 저것들이 우리를 직접 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것들은 소리를 내면서 훑고 다녔다. 우리가 소리를 내면 그쪽으로 몰려왔고, 몰려와서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우리는 못 올라갔다. 못 올라가면 통신과 공기와 전지 충전이 한꺼번에 막혔다. 이 배는 산소와 수소를 실어 온 만큼만 물속에 있었다. 지금 남은 것으로 열이틀이었다. 저것들은 사람이 타지 않아서 잠을 자지 않았다. 우리는 잤다.
0230에 지완이 한 번 더 손을 들었다. 물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서 났다. 무인 수상정이 청음기를 뿌리고 있었다.
*
0248에 제하가 발령소로 왔다.
“부장님, 저것들 조종은 위성일 겁니다. 그러면 지연이 1초쯤 있습니다. 40노트로 1초면 20미터입니다. 급하게는 못 돕니다. 미리 정해 놓은 대로 돌 겁니다. 소리가 나면 그쪽으로 가고, 제일 큰 소리로 간다. 열두 척이 각자 판단하면 서로 부딪히니까, 그것 말고는 짤 방법이 없습니다.”
“자네라면 그렇게 짜겠나?”
“예.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 쪽 어느 사령관이 해협을 무인정 떼로 덮어서 건너오는 배마다 지옥을 보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저쪽이 그걸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제하는 마지막 무인 잠수정을 내보내자고 했다. 남은 것이 하나였다. 쓰면 없었다.
“쓸 자리가 지금입니다. 이걸 위로 올려서 우리 배 소리를 내게 하겠습니다.”
“우리 배 소리를 어떻게 아나?”
“최 하사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윤재는 지완을 돌아봤다. 자기 배 소리는 자기가 제일 못 듣는다. 늘 나니까 안 들린다. 추진기 회전수와 발전기 주파수와, 선체 어딘가에서 1분에 두 번쯤 나는 작은 떨림까지 알아야 흉내를 낼 수 있었다. 지완은 지난 사흘 동안 당직이 끝나면 음탐실에 남아서 그것을 하나씩 불러 줬다고 했다. 제하는 그것을 자료로 만들었다. 둘은 이 배에 탄 지 넉 달이 되도록 밥을 같이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왜 알려 줬나?”
지완이 헤드폰을 조금 들었다.
“물어봐서 알려 줬습니다. 저 사람이 이걸로 뭘 할지는 몰랐습니다.”
지완은 그렇게 말하고 헤드폰을 도로 썼다. 제하는 태블릿을 켜서 윤재에게 파일 하나를 보여 줬다. 파일 이름은 날짜와 숫자뿐이었다. 그 안에 이 배가 내는 소리가 줄마다 적혀 있었고, 줄 끝마다 괄호 안에 작은 글씨로 누가 불러 줬는지가 적혀 있었다.
*
0322에 무인정을 흘려 냈다. 배가 2노트 아래로 느려졌고 4분 동안 키가 먹지 않았다. 그 4분 동안 머리 위에 열두 척이 있었다. 키가 안 먹는 4분에 저것들이 우리 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올 것이고, 오면 피할 수 없었다. 윤재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잡은 손에 땀이 나서 손을 바꿔 잡았다. 머리 위로 작은 추진기 열두 개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선체를 타고 들어왔다. 파리 떼가 방 안을 도는 소리 같기도 하고 먼 데서 오토바이 여러 대가 지나가는 소리 같기도 했는데, 그 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질 때마다 발령소 사람들의 어깨가 함께 올라갔다 내려갔다. 말하는 것도 소리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0341에 제하가 무인정을 심도 40까지 올렸다. 그 위로는 올리지 않았다.
“소리 냅니다.”
무인정이 신채호함의 소리를 냈다. 지완이 불러 준 소리였다. 0344에 열둘이 그쪽으로 몰려갔다. 한꺼번에, 40노트로 갔다. 지완이 그것을 들으며 짧게 말했다.
“다 갑니다.”
0347에 첫 번째가 무인정에 닿아 터졌다. 물속에서 터지는 소리는 낮고 길게 퍼졌다. 물기둥은 안 보였고 소리만 왔다. 터진 자리에 거품과 부서진 조각이 남아 소리를 냈고, 두 번째가 그 소리로 갔다. 세 번째도 갔다.
“셋이 같은 데 들어갔습니다.”
남은 아홉은 그 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돌면서 계속 찾았다. 찾을 것은 이제 없었다.
0402에 함장이 전속을 걸었다. 소리를 내도 됐다. 저쪽 귀가 전부 저기 몰려 있었다. 배는 남쪽으로 갔다. 추진기가 속력을 올리자 발밑에서 떨림이 올라왔고, 사흘 동안 한 번도 듣지 못한 배의 목소리가 선체 전체에 울렸다. 조타장이 손잡이를 쥔 채 낮게 말했다. 오랜만에 제 배 소리를 듣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0455에 조용해졌다. 지완이 헤드폰을 벗었다. 귀 위에 자국이 나 있었다.
“아홉이 아직 거기 있습니다. 연료 떨어질 때까지 있을 겁니다.”
함장이 제하를 불렀다.
“그 무인정 값이 얼마인가?”
“모릅니다. 제가 값을 몰라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엔 알아야겠네. 하나로 셋을 바꿨어. 남는 장사야.”
*
0612에 제하가 콘솔 앞에서 무인정이 보낸 마지막 자료를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 끊기기 0.4초 전의 것이었다.
“부장님, 열셋이었습니다.”
열세 번째는 오지 않았다. 열둘이 다 몰려간 동안 하나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찾지 않고 보고 있었다.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를.
*
그 열세 번째를 떼어 두라고 한 사람은 052D 함교의 리 첸이었다. 교범은 무인정 떼를 한 번에 다 쓰라고 했다. 그는 하나를 뒤에 남겼다. 먼저 달려드는 것들은 미끼를 물 것이고, 미끼를 던진 쪽은 반드시 도망칠 테니, 도망치는 쪽을 볼 눈 하나가 필요했다.
*
0700에 윤재는 항해일지에 적었다. 0221 무인 수상정 접촉 12, 0341 무인 잠수정 기만, 0347 3척 자폭, 0402 이탈.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미확인 1척 잔류.
0740에 제하가 어뢰실로 갔다. 무인정 걸이 두 개가 비어 있었다. 둘 다 나갔고 둘 다 돌아오지 않았다. 제하는 빈 걸이를 한 번 만지고 손을 내렸다. 걸이에 일련번호가 적힌 이름표가 붙어 있었는데, 제하는 그것을 떼지 않았다.
*
이튿날 0410, 진해의 차민경 앞에 항공 보고가 하나 더 올라왔다. 미상 잠수함 1, 위치는 지난주 보고보다 남서쪽으로 40킬로미터 내려와 있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식별 코드 수신, 적성 판단.
민경은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식별 코드는 배마다 다른, 물속에서 쏘는 짧은 신호였다. 우군이면 우군 코드가 오고, 안 오면 미상이었다. 적성 코드라는 것은 없었다. 저쪽이 우리에게 자기 코드를 보낼 까닭이 없었다. 그러니 이 줄의 뜻은 하나였다. 코드가 오기는 왔는데 우리 목록에 없었다는 것. 목록에 없으면 적성으로 본다. 규칙대로 가면 그다음은 이 방에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0432에 민경은 초계기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 구재현 소령이 받았다.
“어제 그 접촉 말입니다. 식별 코드 받으셨습니까?”
“아니요. 제가 쓴 보고에는 그런 줄 없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문서를 각자 열었다. 재현이 보낸 것은 세 줄이었고 민경이 받은 것은 네 줄이었다. 문서는 부대에서 상급으로, 상급에서 통합 체계로, 통합 체계에서 각 사령부로 세 단계를 거쳐 자동으로 넘어갔다. 하루에 이천 건이었다. 사람은 보지 않았다.
0512에 민경은 그 보고를 반려했다. 반려하면 절차가 멈추고, 멈추면 그 접촉은 다시 미상이 되었다. 반려 사유 칸은 한 줄뿐이었다. 민경은 적었다. 작성자 확인 결과 원문과 다름.
0530에 작전처장이 왔다.
“한 줄 때문에 반려했나?”
“그 한 줄이 적성 판단입니다.”
“누가 넣었다고 보나?”
“모릅니다. 모른다고 적겠습니다. 모르는데 안다고 적으면 그게 또 한 줄이 됩니다.”
“그 한 줄이 맞으면? 저게 정말 저쪽 잠수함이면, 자네가 반려하는 동안 우리 보급로에 그게 앉아 있는 거야.”
“그 한 줄이 틀리면 우리 배에 대잠 어뢰가 떨어집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를 때는 아무것도 안 떨어뜨리는 쪽을 고르겠습니다.”
작전처장은 반려 서류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서명란에 이름을 적지 않고 돌려줬다. 책임은 민경의 이름에 남았다. 민경은 서류를 받아 서랍에 넣었다.
*
0655에 구재현의 초계기는 부이 스물넷을 다시 던졌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여덟, 남서쪽으로 열여섯이었다. 어제는 청음기를 전부 층 위에 넣었다. 오늘은 절반을 층 아래로 넣었다. 어제 축이 안 들린 까닭이 거기 있을 수 있었다.
0810에 열한 번째 부이에 선이 섰다. 50헤르츠였고, 이번에는 축도 들렸다. 아주 천천히 돌았고 날개가 일곱이었다. 상선은 넷이나 다섯이었고 잠수함은 일곱이 많았다. 일곱이면 잠수함이었다. 어느 나라 것인지는 일곱으로 갈리지 않았다.
“어제 거하고 축 소리가 같습니다. 같은 배입니다.”
재현은 보고 서식을 열어 미상이라고 적었다. 판단 칸에는 추진 특성 확인, 어제 접촉과 동일 함정, 국적 미상, 우군 여부 확인 요청 재차. 그리고 한 줄을 더 적었다. 본 보고에 식별 코드 수신 사실 없음.
교대기에 인계하면서 재현은 그 한 줄을 소리 내어 읽어 줬다. 저쪽 통제관이 그건 왜 넣느냐고 물었다.
“어제 제 보고에 없던 줄이 붙어서 갔습니다. 다음 사람이 또 붙이면 이 줄하고 부딪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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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에 민경 앞에 재현의 오늘 보고가 왔다. 네 줄이었고, 마지막 줄은 그가 적은 그대로였다.
어제 붙었던 줄은 오늘 안 붙어 있었다. 붙이는 쪽이 한 번 시도하고 그만둔 것인지, 오늘은 붙일 자리를 못 찾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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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 신채호함 심도 150에서 지완이 말했다.
“위에서 또 던집니다. 열한 개째입니다.”
넷은 재는 숫자였고 열하나는 찾는 숫자였다. 찾는 쪽이 우군이면 우리를 못 알아본 것이고, 저쪽이면 우리를 잡으려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할 일은 같았다. 소리를 내지 않고 아래로 가는 것. 윤재는 일지에 적었다. 1310 상방 투하물 11, 국적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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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진해에서 민경은 해도 앞으로 갔다. 085 자석은 제자리에 있었다. 민경은 그것을 옮기지 않았다. 대신 그 옆에 자석을 하나 더 붙였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 자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