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49자) · 강윤재 · 6월 21~23일
여섯 킬로미터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부이 넷이 떨어진 지 사흘째인 6월 21일, 신채호함은 그동안 3노트로 서쪽으로 갔다. 사람이 걷는 것보다 느린 속력이었다. 쫓기는 것도 아니고 쫓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안 들리게 가는 시간이 이 배에서는 제일 길었다.
0247에 제하 하사가 발령소로 왔다. 무인 체계 담당이었고, 배에서 제일 오래 할 일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태블릿을 가슴에 안고 있었는데, 화면을 꺼 둔 채로도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계속 문질렀다.
“부장님, 무인정 하나 내보내려고 합니다.”
배에는 무인 잠수정이 둘 있었다. 길이 3미터에 지름 30센티였고, 어뢰 발사관으로 나갔다. 돌아올 때는 관으로 못 들어오고 수면에서 건져야 했다. 수면에서 건지려면 배가 올라가야 했고, 올라가면 보였다. 그래서 한 번 내보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 대 값이 얼마인가?”
“모릅니다. 제가 값을 몰라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값을 알면 안 쓰게 된답니다.”
윤재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어뢰도 그랬다. 값을 알면 한 발이 아까워지고, 아까우면 늦게 쏘고, 늦게 쏘면 안 맞았다.
“앞에 뭐가 있나?”
“모릅니다. 그래서 보내려고 합니다. 앞으로 6킬로미터 보내서, 들은 것을 유선으로 받겠습니다.”
윤재는 지완을 불렀다. 지완이 헤드폰을 목에 걸고 왔다. 귀 위가 눌려 붉은 자국이 나 있었다.
“앞에 뭐가 있나?”
“아무것도 안 들립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아니라, 안 들린다는 겁니다. 물이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층 아래에서 나는 소리는 위로 안 넘어옵니다.”
제하가 그 말을 받았다. 이 배에 온 뒤로 처음 웃는 얼굴이었다.
“그럼 됐습니다. 최 하사님이 안 들린다고 하셔서 보내는 겁니다. 들린다고 하셨으면 안 보냅니다.”
지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헤드폰을 머리에 다시 썼다.
*
0450에 발사관에 무인정을 넣었다. 절차는 어뢰와 같았다. 관에 물을 채우고 압력을 맞추고 문을 열었다.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어뢰는 밀어내고 무인정은 흘려 냈다. 밀어내면 유선이 끊겼다. 흘려 내려면 배가 2노트 아래로 느려져야 했는데, 그 속력에서는 키가 물을 물지 못했다. 자전거를 아주 천천히 타면 못 서는 것과 같았다.
“4분입니다. 4분 동안 방향을 못 잡습니다.”
그동안 위에서 무엇이 오면 피할 수 없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심도뿐이었고, 심도를 바꾸려면 물을 넣고 빼야 했으며, 그건 소리가 났다. 4분 동안 이 배는 물속에 가만히 매달린 3,000톤짜리 쇳덩이였다.
윤재는 함장을 봤다.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0508에 무인정이 나갔다. 유선이 풀리는 소리가 실패에서 실이 풀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 4분 동안 발령소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아무도 안 했다. 윤재는 벽에 손을 대고 있었다. 벽이 차가웠고, 손을 떼자 자국이 남았다가 사라졌다.
0534에 3.5킬로미터에서 제하의 화면에 선이 섰다.
“축입니다.”
지완이 와서 헤드폰을 화면 옆에 대 봤다. 소리는 화면에만 있고 헤드폰에는 없었다. 무인정이 6킬로미터까지 가서 유선이 다 풀렸고, 끊기기 전 마지막 30초 동안 선이 셋으로 늘었다.
“셋입니다. 종류는 모릅니다. 제 체계는 소리를 그림으로 그리기만 합니다.”
“최 하사, 읽을 수 있나?”
“그림은 세로가 주파수고 가로가 시간입니다. 그건 저도 읽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건 그 사이에 있는 겁니다. 그림에 안 그려집니다.”
하나는 듣고 못 그렸고, 하나는 그리고 못 들었다. 윤재가 물었다. 무인정이 보낸 것을 소리로 되돌려 헤드폰에 넣을 수 있느냐고. 제하는 된다고 했고,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자료를 소리로 되돌린 것은 원래 소리와 같지 않았다. 자료로 만들면서 버린 것이 있었다. 버린 것은 아주 낮은 쪽과 아주 높은 쪽이었고, 사람이 잘 못 듣는 자리부터 버렸다. 지완이 잘 듣는 자리가 거기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하는 그 한 시간 동안 키보드를 치다가 두 번 손을 멈추고 지완에게 물었다. 이 높이는 버려도 되느냐고. 지완은 두 번 다 안 된다고 했다.
0741에 지완이 되돌린 소리를 30초 들었다.
“셋 중에 둘은 같은 배입니다. 한 척이 두 번 지나간 겁니다. 둘입니다.”
제하가 화면에 셋이라고 적어 둔 것을 지우고 둘이라고 적었다. 그 옆에 작게 한 줄을 더 적었다. 음탐 최지완 확인.
*
이틀 뒤인 6월 23일 0342에 지완의 목소리가 반 박자 빨라졌다.
“넷입니다. 보급선 둘, 호위 둘입니다.”
호위 둘은 처음이었다. 첫 번째는 없었고 두 번째는 하나였다.
“함장님, 호위가 둘이면 하나는 우리를 봅니다. 한 척을 치는 동안 다른 한 척이 우리 쪽으로 옵니다. 이번 건 보내고 다음 것을 기다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음 건 셋일 거야.”
함장은 해도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윤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저쪽은 매번 하나씩 더 붙이고 있었다. 기다릴수록 호위는 늘고, 늘어난 호위 앞에서 이 배의 어뢰는 그대로였다.
“붙는다.”
접근은 대각선으로 했다. 정면으로 가면 저쪽 청음기 정면에 우리 소리가 들어가고, 뒤에서 붙으면 속력이 모자라 못 따라갔다. 45도로 비스듬히 가서 앞을 잘랐다. 0428에 호위 하나가 이쪽으로 나왔고, 함장은 심도를 210으로 내려 수온이 바뀌는 층 아래로 들어갔다. 층 아래에서는 위에서 오는 소리가 꺾였지만 우리도 위를 못 들었다. 층 아래에서는 속력과 시간과 침로로만 자리를 짚었다. 물이 흐르면 그만큼 밀렸고, 얼마나 밀렸는지는 올라가 봐야 알았다. 지완은 20분 동안 들리는 것이 없다고 두 번 보고했다. 두 번째 보고에서는 이제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0512에 층 위로 올라갔다. 층을 지나는 순간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가까이 있습니다. 2,800입니다.”
2,800은 어뢰가 90초면 닿는 거리였다.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1번, 2번 준비. 문 열어.”
관에 물이 차는 소리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2,800에서는 들렸다. 들려도 채워야 했다. 0516에 두 발이 나갔고, 배가 두 번 흔들렸다.
0517에 지완이 말했다.
“저쪽도 쐈습니다. 둘입니다.”
우리 어뢰가 보급선까지 가는 데 4분이었고, 저쪽 어뢰가 우리까지 오는 데 90초였다. 90초가 먼저였다.
“우현 전타, 최대 속력. 기만기 사출.”
배가 기울었고 서 있던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윤재는 손잡이를 잡는 것이 아니라 팔꿈치까지 걸었다. 해도대 위의 자와 연필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고 아무도 줍지 않았다. 최대 속력으로 가면 소리가 다 났지만 이제 숨을 까닭이 없었다. 기만기는 우리 소리를 흉내 내는 통이었다. 첫 번째 어뢰가 그쪽으로 갔다. 두 번째는 오지 않고 우리 쪽으로 왔다.
“심도 300.”
“규정 심도 초과합니다.”
“내려.”
배가 아래로 갔다. 벽에서 쇠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깊이 내려가면 선체가 조금씩 줄었고, 그 줄어드는 소리였다. 배 안 어딘가에서 금속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0521에 어뢰 소리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아주 높은 소리였다. 지나가고 나서 뒤에서 터졌다. 근접 신관이었다. 배가 옆으로 밀렸고 불이 한 번 꺼졌다가 들어왔다.
“피해 보고.”
기관실 이상 없음, 어뢰실 이상 없음, 발령소 이상 없음. 전기실의 보고가 늦었다. 3초 뒤에 왔다. 이상 없습니다.
0526에 우리 어뢰 첫 발이 맞았다. 낮고 긴 소리가 멀리서 왔다. 두 번째는 호위가 보급선 앞으로 들어와 막았다. 어뢰가 호위를 물었다.
“한 발 더 있습니다.”
“쓰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저쪽이 알아. 한 발 더 쏘면 어디 있는지도 알아.”
*
0540, 리 첸의 052D가 편대 호위함이 대잠 어뢰를 쏜 자리에 닿았다. 편대의 다른 한 척은 함수가 내려앉은 채 불을 끄고 있었다. 수면에는 부서진 것들이 떠올랐고, 보급선 하나가 기울어 가는 자리에서 연기가 낮게 깔렸다.
“근접 폭발 확인했습니다. 격침으로 올리겠습니다.”
저우 소령이 보고 서식을 들고 왔다. 리 첸은 함교 창밖을 오래 봤다. 불타는 보급선 쪽이 아니라 근접 폭발이 난 자리 쪽이었다. 그 수면은 평평했다.
“기름이 없어.”
“깊은 데서 터졌습니다. 떠오르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럼 기다렸다 올려. 기름이 뜨면 격침이고, 안 뜨면 아무것도 아니야.”
“전대는 결과를 기다립니다. 편대 함 하나가 맞았습니다. 뭔가는 올려야 합니다.”
“맞은 건 올려. 우리가 잡은 건 없으니까 없다고 올려.”
저우 소령은 입을 다물었다. 리 첸은 함교 난간에 두 손을 얹었다. 기울어 가는 보급선 쪽에서 구명정 하나가 내려지고 있었는데, 한쪽 줄만 풀려서 구명정이 세로로 매달려 흔들렸다. 그는 그쪽으로 보트를 보내라고 하고 나서 다시 평평한 수면을 봤다.
그는 한 시간을 기다렸다. 기름은 뜨지 않았다. 저우 소령은 서식의 격침 칸을 비워 둔 채 서명란에만 이름을 적었다.
*
0812에 윤재가 전기실로 갔다. 보고가 3초 늦었던 곳이었다. 최민석 하사가 배전반 앞에 앉아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손 보여 주게.”
민석이 손을 펴지 않았다. 윤재가 한 번 더 부르자 폈다. 손등이 찢어져 있었다. 배가 밀릴 때 배전반 모서리에 긁힌 것이었다. 피는 작업복 소매로 눌러 굳혀 놓았다.
“왜 보고 안 했나?”
“소리 나면 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심도 300에서, 어뢰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동안, 이 사람은 손이 찢어진 채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윤재는 위생병을 불렀다. 여섯 바늘이 들었다. 마취약은 더 큰 것에 쓰려고 아꼈다. 민석은 그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여섯 바늘째에 위생병이 말했다.
“소리 내셔도 됩니다.”
민석이 웃었다.
“버릇이 됐습니다.”
위생병이 실을 끊고 거즈를 감았다. 민석은 감긴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윤재가 물었다. 그 3초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민석은 배전반 차단기 하나가 튀어 올라 있어서 그것을 눌러 넣었다고 했다. 손이 찢어진 것은 그다음에 알았다고 했다. 눌러 넣지 않았으면 발령소 불이 한 번 꺼진 채로 안 들어왔을 것이다.
0905에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0517 피뢰 회피, 0521 근접 폭발, 0526 보급선 1척 격침, 호위함 1척 피격.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멈췄다. 전기실 이야기였다. 윤재는 펜을 놓았다.
배전반 아래 바닥에 마른 자국이 하나 있었다. 누군가 소매로 닦은 자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