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여섯 킬로미터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0210.
부이 넷이 떨어진 지 열네 시간이 지났다.
배는 그동안 서쪽으로 갔다. 3노트로 갔다. 사람이 걷는 것보다 느리다.
느리게 가는 이유는 하나다. 빨리 가면 들린다.
윤재는 발령소에 서 있었다. 서 있는 것 말고 할 것이 없었다.
이런 시간이 이 배에서는 제일 길다. 쫓기는 것도 아니고 쫓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안 들리게 가는 시간이다.
0247.
제하가 왔다.
배에서 제일 오래 안 나온 사람이었다. 무인 체계 담당이고, 여태 쓸 일이 없었다.
“부장님.”
“…무슨 일인가.”
“무인정 하나 내보내려고 합니다.”
윤재는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0301.
배에 무인 잠수정이 둘 있다.
길이 3미터, 지름 30센티. 어뢰 발사관으로 내보낸다. 어뢰가 나가는 자리로 나가서, 돌아올 때는 못 들어온다. 회수는 수면에서 한다.
수면에서 회수하려면 배가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면 보인다.
그래서 한 번 내보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버리는 것이다.
“…한 대 값이 얼마인가.”
“…모릅니다. 제가 값을 몰라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정했나.”
“…값을 알면 안 쓰게 된답니다.”
윤재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어뢰도 그렇다. 값을 알면 한 발이 아까워지고, 아까우면 늦게 쏜다.
늦게 쏘면 안 맞는다.
0318.
제하가 하려는 것은 단순했다.
무인정을 앞으로 6km 보낸다. 무인정이 소리를 듣고, 들은 것을 유선으로 배에 보낸다.
유선은 6km까지 풀린다. 다 풀리면 끊긴다.
“…앞이 뭐가 있나.”
“모릅니다. 그래서 보내려고 합니다.”
“최 하사는 뭐라던가.”
“…아직 안 물었습니다.”
“왜 안 물었나.”
“…물으면 안 들린다고 하실 겁니다.”
“그러면?”
“…안 들리는 데를 보려고 내보내는 겁니다.”
0340.
윤재는 지완을 불렀다.
지완이 헤드폰을 목에 걸고 왔다. 귀 위가 눌려서 자국이 나 있었다.
“최 하사. 앞에 뭐가 있나.”
“…아무것도 안 들립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건가.”
“…아닙니다.”
“…….”
“안 들린다는 겁니다.”
0355.
제하가 그 말을 받았다.
“최 하사님. 그게 다르다는 걸 어떻게 압니까?”
지완이 제하를 봤다.
“…물이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압니다.”
“층 아래에서 나는 소리는 층 위로 안 넘어옵니다. 우리가 층 위에 있으면 아래는 안 들립니다.”
“…그러면 무인정을 아래로 보내면 됩니까?”
“…예.”
0412.
제하가 처음으로 웃었다.
“…그럼 됐습니다.”
“뭐가 됐다는 겁니까?”
“최 하사님이 안 들린다고 하셔서 보내는 겁니다. 들린다고 하셨으면 안 보냅니다.”
지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0450.
발사관에 무인정을 넣었다.
절차는 어뢰와 같다. 관에 물을 채우고, 압력을 맞추고, 문을 연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어뢰는 밀어내고 무인정은 흘려 낸다. 밀어내면 유선이 끊긴다.
흘려 내려면 배가 아주 느려야 한다. 2노트 아래로 내려야 한다.
2노트로 가면 배가 방향을 못 잡는다. 키가 물을 못 문다.
키는 물이 지나가야 듣는다. 지나가는 물이 느리면 키를 꺾어도 배가 안 돈다. 자전거를 아주 천천히 타면 못 서는 것과 같다.
그동안 위에서 무엇이 오면 피할 수 없다. 심도만 바꿀 수 있다. 심도를 바꾸려면 물을 넣고 빼야 하고, 그건 소리가 난다.
“…부장님. 4분입니다.”
“4분 동안 방향 못 잡는 건가.”
“예.”
윤재는 함장을 봤다.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0508.
무인정이 나갔다.
유선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실이 풀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제하가 화면을 봤다. 화면에 선이 하나 떴다. 무인정이 듣는 소리였다.
풀리는 동안 발령소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도 안 했다.
윤재는 벽에 손을 대고 있었다. 벽이 차가웠다. 손을 떼면 자국이 남았다가 사라졌다.
처음 2km는 아무것도 없었다.
0534.
3.5km에서 선이 섰다.
“…부장님.”
“뭔가.”
“…축입니다.”
지완이 그쪽으로 왔다. 헤드폰을 화면 옆에 대 봤다. 소리는 화면에만 있고 헤드폰에는 없었다.
“…최 하사. 들리나.”
“…안 들립니다.”
“화면에는 있네.”
“…예.”
0602.
층 아래에 배가 있었다.
무인정이 6km까지 갔다. 유선이 다 풀렸다.
마지막 30초 동안 선이 셋으로 늘었다.
“…셋입니다.”
“종류는.”
제하가 화면을 확대했다.
“…모릅니다. 제 체계는 소리를 그림으로 그리기만 합니다. 종류는 안 정합니다.”
“최 하사.”
지완이 화면을 봤다. 소리 없이 그림만 있는 화면이었다.
“…이건 제가 못 합니다.”
“…왜 못 하나.”
“…소리가 없습니다. 그림만 있습니다.”
“그림으로는 안 되나.”
“…그림은 세로가 주파수고 가로가 시간입니다. 그건 저도 읽습니다.”
“…….”
“그런데 제가 아는 건 그 사이에 있는 겁니다. 그림에 안 그려집니다.”
0625.
윤재는 그 두 사람을 봤다.
하나는 듣고 못 그리고, 하나는 그리고 못 듣는다.
“최 하사. 화면 보면서 들을 수 있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인정이 보낸 걸 소리로 바꿔서 자네 헤드폰에 넣으면 되나.”
제하가 먼저 대답했다.
“…됩니다. 자료를 소리로 되돌리면 됩니다.”
“얼마나 걸리나.”
“…한 시간입니다.”
0741.
한 시간 뒤에 지완이 헤드폰을 썼다.
무인정은 이미 없다. 유선이 끊겨서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남은 것은 기록뿐이었다.
소리로 되돌린 것은 원래 소리와 같지 않다. 자료로 만들면서 버린 것이 있다.
버린 것은 아주 낮은 쪽과 아주 높은 쪽이다. 사람이 잘 못 듣는 자리부터 버린다.
지완이 잘 듣는 자리가 거기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완이 30초를 들었다.
“…셋 중에 둘은 같은 배입니다.”
“같은 배라니.”
“한 척이 두 번 지나간 겁니다. 소리가 같습니다.”
“그러면 둘인가.”
“…예. 둘입니다.”
0808.
제하가 화면에 셋이라고 적어 놓은 것을 지웠다.
그리고 둘이라고 적었다.
적고 나서 옆에 작게 한 줄을 더 적었다.
음탐 최지완 확인.
지완이 그것을 봤다.
“…그건 왜 적으십니까?”
“제 화면이 셋이라고 했으니까요.”
헤드폰이 콘솔 위에 놓여 있었다. 줄이 한 바퀴 감겨 있었다.
0342.
“…부장님. 넷입니다.”
지완의 목소리가 반 박자 빨랐다.
“보급선 몇, 호위 몇인가.”
“…보급선 둘, 호위 둘입니다.”
윤재는 그 숫자를 함장에게 옮겼다.
호위 둘은 처음이었다. 첫 번째는 없었고 두 번째는 하나였다.
“함장님. 붙습니까?”
“…붙는다.”
0401.
접근은 대각선으로 한다.
정면으로 가면 저쪽 청음기 정면에 우리 소리가 들어간다. 뒤에서 붙으면 속력이 모자라 못 따라간다.
45도로 비스듬히 가서 앞을 자른다. 자르는 자리를 앞에서 미리 잡아 놓고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배는 소리를 안 낸다. 3노트로 간다.
0428.
호위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방위 변화 빠릅니다. 이쪽으로 옵니다.”
“우연인가.”
“…모르겠습니다.”
함장이 심도를 내렸다. 180에서 210으로.
수온이 바뀌는 층이 있다. 층 아래로 들어가면 위에서 오는 소리가 꺾인다. 대신 우리도 위를 못 듣는다.
층 아래로 들어갔다.
0450.
층 아래에서 20분을 갔다.
“…부장님.”
“말하게.”
“위가 안 들립니다.”
“그건 알고 들어왔네.”
“…그래서 지금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윤재는 해도를 봤다.
층 아래에서는 계산으로만 안다. 속력과 시간과 침로로 자리를 잡는다. 물이 흐르면 그만큼 밀린다.
0512.
층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데 4분이 걸렸다. 4분 동안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아무 소리도 안 낸다.
층을 지나는 순간 소리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가까이 있습니다.”
“거리.”
“…2,800입니다.”
발령소가 조용해졌다.
2,800은 어뢰가 90초면 닿는 거리다. 저쪽도 마찬가지다.
0514.
“발사관 1번, 2번.”
절차가 시작됐다.
관에 물을 채운다. 채우는 소리가 난다. 2,800미터면 그 소리가 들린다.
들려도 채워야 한다. 안 채우면 못 쏜다.
“…1번 준비.”
“2번 준비.”
“문 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건 더 크다.
0516.
“1번 발사.”
배가 한 번 흔들렸다.
“2번 발사.”
두 번째로 흔들렸다.
어뢰 둘이 나갔다. 유선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0517.
“…부장님. 저쪽도 쐈습니다.”
“몇 발인가.”
“…둘입니다.”
윤재는 시계를 봤다. 0517이었다.
우리 어뢰가 보급선까지 가는 데 4분. 저쪽 어뢰가 우리까지 오는 데 90초.
90초가 먼저다.
0518.
“회피. 우현 전타. 최대 속력.”
배가 기울었다. 서 있던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윤재는 손잡이를 잡았다. 잡는 것이 아니라 걸었다.
최대 속력으로 가면 소리가 다 난다. 이제 숨을 이유가 없다. 저쪽이 이미 안다.
“기만기 사출.”
기만기는 소리를 내는 통이다. 우리 소리를 흉내 낸다.
어뢰가 그쪽으로 가면 산다. 안 가면 안 산다.
0519.
기만기 하나가 나갔다.
“…첫 번째 어뢰, 기만기 쪽으로 갑니다.”
“두 번째는.”
“…….”
“최 하사.”
“…두 번째는 우리 쪽입니다.”
0520.
“심도 300.”
“…규정 심도 초과합니다.”
“내려.”
배가 아래로 갔다.
벽에서 소리가 났다. 쇠가 눌리는 소리다. 깊이 내려가면 선체가 조금씩 줄어든다. 그 소리다.
배 안 어딘가에서 뭔가 떨어졌다. 금속이었다.
0521.
어뢰 소리가 위로 지나갔다.
지나가는 소리는 높다. 이번 것은 아주 높았다.
지나가고 나서 뒤에서 터졌다. 근접 신관이다. 맞지는 않고 근처에서 터진다.
배가 옆으로 밀렸다.
불이 한 번 꺼졌다가 들어왔다.
0523.
“피해 보고.”
각 구획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기관실, 이상 없음. 어뢰실, 이상 없음. 발령소, 이상 없음.
전기실에서 보고가 늦었다.
“…전기실.”
3초 뒤에 왔다.
“…이상 없습니다.”
0526.
우리 어뢰 첫 발이 맞았다.
멀리서 소리가 왔다. 낮고 길었다.
두 번째는 안 맞았다. 호위함이 앞을 막았다.
“…막았다는 게 무슨 뜻인가.”
“…호위가 보급선 앞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뢰가 호위를 물었습니다.”
0531.
호위함 하나가 맞았다.
보급선 하나가 맞았다.
남은 것은 보급선 하나와 호위 하나였다.
“함장님. 한 발 더 있습니다.”
“…쓰지 않는다.”
“…….”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저쪽이 안다. 한 발 더 쏘면 어디 있는지도 안다.”
0610.
배는 남서쪽으로 갔다. 4노트로 갔다.
2시간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0812.
윤재가 전기실로 갔다.
보고가 3초 늦었던 곳이다.
최민석 하사가 배전반 앞에 앉아 있었다. 왼손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었다.
“…최 하사.”
“…예.”
“손 보여 주게.”
민석이 손을 안 폈다.
“…최 하사.”
폈다.
손등이 찢어져 있었다. 배전반 모서리에 긁힌 것이었다. 아까 배가 밀렸을 때 났을 것이다.
피가 굳어 있었다. 작업복 소매로 눌러 놨다.
0818.
“…왜 보고 안 했나.”
“…이상 없었습니다.”
“이건 이상이네.”
“…….”
“3초 늦은 게 이것 때문인가.”
민석이 대답하지 않았다.
“최 하사.”
“…소리 나면 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윤재는 그 말을 들었다.
심도 300에서, 어뢰가 위로 지나가는 동안, 이 사람은 손이 찢어진 채로 소리를 안 냈다.
0840.
윤재는 위생병을 불렀다.
꿰매는 데 여섯 바늘이 들었다. 마취를 안 했다. 마취약은 더 큰 것에 쓴다.
민석이 그동안 아무 소리도 안 냈다.
여섯 바늘째에 위생병이 말했다.
“…소리 내셔도 됩니다.”
민석이 웃었다.
“…버릇이 됐습니다.”
0905.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0517 피뢰 회피. 0521 근접 폭발. 0526 보급선 1척 격침. 호위함 1척 피격.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멈췄다.
적으려던 것은 전기실 이야기였다.
윤재는 펜을 놓았다.
배전반 아래 바닥에 마른 자국이 하나 있었다. 닦은 자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