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두 시간 반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0140.
네 번째 차단이었다.
이번엔 우리가 먼저 찾아갔다. 앞의 셋은 지나가는 것을 잡았고, 이번엔 길목에 미리 가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자리는 해도에서 골랐다. 수심이 갑자기 얕아지는 자리다.
얕아지면 저쪽 대잠 헬기가 부이를 깊게 못 넣는다. 얕은 데서는 소리가 바닥에 부딪혀 어지러워진다.
0212.
“…옵니다.”
지완이 먼저 들었다.
“몇인가.”
“…다섯입니다. 앞에 둘, 뒤에 셋.”
“앞의 둘은.”
“…호위입니다. 소리가 다릅니다.”
0230.
호위 둘에 보급선 셋이었다.
우리 어뢰는 여섯 발이 남아 있었다.
“함장님. 어느 것으로 하겠습니까?”
“…둘을 친다.”
“…둘입니까?”
“한 척만 치면 나머지가 흩어져서 각자 간다. 둘을 치면 호위가 남은 하나에 붙는다.”
“…붙으면 어떻게 됩니까?”
“한 척을 지키느라 둘이 다 그쪽에 간다. 우리를 안 쫓는다.”
“…안 쫓습니까?”
“쫓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임무니까.”
임무가 무엇인지에 따라 저쪽이 어떻게 움직일지가 정해진다. 그것을 읽는 것이 여기서 하는 일이다.
0258.
표적 운동 해석에 22분이 걸렸다.
배가 직선으로 가면 15분이면 나온다. 지그재그로 가면 안 나온다.
이번 것은 완만한 지그재그였다. 여덟 번을 재서 평균을 냈다.
재는 방법은 이렇다. 소리가 오는 방향을 시간 간격으로 여러 번 잰다. 방향이 변하는 속도로 거리를 푼다.
가까우면 방향이 빨리 변하고 멀면 천천히 변한다. 그것만으로 푼다.
배가 방향을 바꾸면 그 계산이 처음부터 다시 간다.
0311.
발사관 넷에 물을 채웠다.
채우는 소리가 난다. 문을 여는 소리는 더 크다.
호위가 지금 이쪽을 보고 있는지 아닌지는 지완이 안다.
“…최 하사.”
“…지금입니다.”
0313.
넷을 쐈다.
두 발씩 두 표적이다. 40초 간격이 아니라 20초 간격으로 뒀다.
간격을 좁힌 이유가 있다. 첫 발이 맞으면 물기둥이 오르고, 그때부터 저쪽은 다 안다.
40초를 주면 그 사이에 배가 돈다. 20초면 못 돈다.
대신 두 발이 같은 배에 다 들어갈 수 있다. 한 발이면 충분한 배에 두 발을 쓰는 것이다.
앞의 셋과 달랐다. 앞에서는 아꼈고 이번엔 안 아꼈다.
어뢰 여섯 중 넷을 한 번에 썼다. 남는 것은 둘이다.
0322.
첫 번째가 맞았다.
두 번째도 맞았다. 같은 배에 둘 다 들어갔다.
“…한 배에 둘 갔습니다.”
“…그러면 남는 게 둘이군.”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두 번째 표적으로 갔다. 하나가 맞고 하나가 빗나갔다.
0327.
호위 둘이 왔다.
한 척은 남은 보급선에 붙었고 한 척은 우리 쪽으로 왔다.
“…속력 28노트입니다.”
“심도.”
“…240으로.”
0334.
대잠 어뢰가 들어왔다.
한 발이었다. 뒤로 지나갔다.
지나가고 나서 다시 돌아왔다.
어뢰는 지나치면 돌아온다. 앞에 붙은 청음기로 다시 찾는다. 찾으면 또 온다.
연료가 다할 때까지 그렇게 한다. 8분쯤 간다.
8분 동안 피하는 방법은 둘이다. 다른 소리를 만들어 주거나, 소리가 안 닿는 데로 가거나.
“…기만기.”
기만기를 냈다. 어뢰가 그쪽으로 갔다.
0339.
두 번째 어뢰가 왔다.
기만기가 이미 나갔다. 남은 것이 하나였다.
“…심도 320.”
“…규정 초과입니다.”
“내려.”
0341.
벽에서 소리가 났다.
쇠가 눌리는 소리다. 깊이 내려가면 선체가 줄어든다. 줄어드는 소리가 난다.
배 안 어딘가에서 이음매가 삐걱거렸다. 한 번 나고 멎었다가 다시 났다.
0343.
어뢰가 위로 지나갔다.
높은 소리였다. 지나가고 나서 뒤에서 터졌다.
배가 앞으로 밀렸다. 서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쏠렸다.
불이 꺼졌다. 3초 뒤에 비상등이 들어왔다.
0345.
“피해 보고.”
기관실에서 늦게 왔다.
“…기관실. 냉각수 배관 누수. 소량입니다.”
“막을 수 있나.”
“…막고 있습니다.”
0402.
호위가 위에서 돌기 시작했다.
원을 그리며 돈다. 원이 조금씩 좁아진다.
“…얼마나 됩니까?”
“…40분째입니다.”
0455.
한 시간이 됐다.
배는 3노트로 갔다. 소리를 안 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사람 쉰셋이 숨을 쉬면 이산화탄소가 는다. 흡수제가 그것을 먹는데, 먹는 속도보다 나오는 속도가 빠르면 올라간다.
올라가면 머리가 아프다. 그다음에는 판단이 느려진다. 느려지는 것을 본인은 모른다.
그래서 숫자로 본다. 발령소 벽에 계기가 있다.
윤재는 그 계기를 안 봤다. 보면 다들 따라 본다.
0530.
호위가 갔다.
연료 때문이거나, 남은 보급선을 데려가야 해서거나.
0640.
윤재는 기관실로 갔다.
민석이 배관을 잡고 있었다. 밴드로 감아 놓고 그 위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최 하사. 언제부터인가.”
“…0343부터입니다.”
2시간 반이었다.
“손 안 아픈가.”
“…아픕니다.”
0655.
교대를 넣었다.
민석이 손을 뗐다. 손바닥에 배관 자국이 나 있었다. 붉게 파여 있었다.
윤재가 그 손을 봤다.
“…최 하사.”
“…예.”
“지난번 손등은 어떤가.”
민석이 왼손을 들었다. 여섯 바늘 꿰맨 자리에 실이 아직 있었다.
0712.
민석이 침상으로 갔다.
윤재가 뒤따라갔다. 침상 옆 칸에 사물함이 있다. 좁다.
민석이 사물함을 열고 뭔가를 꺼냈다.
사진이었다. 접혀 있던 자국이 두 줄 있었다.
“…이건.”
“…아버지입니다.”
0718.
사진 속 사람이 배 앞에 서 있었다. 잠수함이 아니라 어선이었다.
“…배 타셨나.”
“…예. 이십 년 하셨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 재작년에.”
“…….”
“이 배 타는 거 말씀 못 드렸습니다. 임관하고 나서 돌아가셨습니다.”
0725.
민석이 사진을 다시 접었다.
접는 자리가 원래 자국하고 어긋났다. 다시 폈다가 자국대로 접었다.
“…부장님.”
“…말하게.”
“아까 배관 잡고 있을 때 이 생각 했습니다.”
“…무슨 생각.”
“…아버지가 배에서 물 새면 손으로 막았다고 하셨습니다.”
“…….”
“그게 진짜 되는지 몰랐습니다.”
0740.
윤재는 발령소로 돌아왔다.
항해일지를 폈다.
0313 어뢰 4발 발사. 0322 보급선 2척 격침. 0343 근접 폭발. 기관실 누수. 0655 응급 처치 완료.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멈췄다.
윤재는 펜을 놓았다.
기관실 배관에 밴드가 감겨 있었다. 그 위에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0310.
전지가 줄었다.
이 배는 연료전지로 간다. 산소와 수소를 실어 온 만큼만 물속에 있는다.
열이틀이라고 했던 것이 이제 나흘이다.
나흘 뒤에는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려면 위가 비어야 한다.
전지가 다하면 디젤을 돌려야 한다. 디젤은 공기를 먹으니까 관을 물 위로 내밀어야 한다.
관을 내밀면 보인다. 레이더에 잡히고 눈에도 보인다.
그리고 디젤 소리는 크다. 이 배가 사흘 동안 안 낸 소리를 한 번에 낸다.
0322.
위가 안 비었다.
“…부장님. 아직 있습니다.”
“몇인가.”
“…둘입니다. 어제 그 둘입니다.”
호위 둘이 사흘째 그 자리를 돌고 있었다.
0341.
이런 것을 갇혔다고 한다.
저쪽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대충 안다. 대충 아는 자리를 넓게 훑는다.
훑으면서 기다린다. 기다리는 이유는 우리가 먼저 못 견디기 때문이다.
저쪽은 교대한다. 한 척이 가면 다른 한 척이 온다. 사람이 자고 밥 먹고 다시 온다.
우리는 교대할 데가 없다.
먹는 것은 있다. 물도 만든다. 없는 것은 공기와 전기다.
둘 다 위에서만 얻는다.
이 싸움은 그래서 시간 싸움이다. 저쪽은 시간이 무한하고 우리는 나흘이다.
0420.
함장이 발령소로 왔다.
“부장. 셋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네.”
“…예.”
“하나, 여기서 기다린다. 나흘 안에 저쪽이 가면 산다. 안 가면 나흘째에 올라가야 하고 그때는 위에 저쪽이 있다.”
“…….”
“둘, 지금 소리를 내고 뛴다. 뛰면 쫓아온다. 쫓기면서 남쪽으로 간다. 남쪽에 우군 해역이 있다.”
“…셋은요.”
“셋, 쏜다.”
0448.
셋을 하나씩 놓고 봤다.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나흘 동안 이산화탄소가 계속 오른다. 오르면 사람이 느려진다.
뛰는 것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28노트짜리 둘한테 20노트로 쫓기면 못 뗀다. 다만 방향을 잡을 수는 있다.
쏘는 것은 남은 둘을 쓰는 것이다. 쓰면 없다.
호위 하나를 잡으면 나머지 하나가 남는다. 남은 하나가 부르면 더 온다.
여기는 저쪽 바다다. 부르면 온다.
그리고 쏘면 우리 자리가 정확히 드러난다. 지금은 대충 알고 있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된다.
0512.
“…최 하사를 부르게.”
지완이 왔다. 사흘 동안 6시간 잤다.
“최 하사. 저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잘 듣나.”
“…북쪽 것입니다.”
“어떻게 아나.”
“…남쪽 것은 주기가 일정합니다. 정해 놓은 대로 돕니다. 북쪽 것은 가끔 멈춥니다.”
“멈추면.”
“…멈춰서 듣는 겁니다. 그게 잘 듣는 겁니다.”
배가 가면 자기 소리가 난다. 자기 소리가 나면 남의 소리가 묻힌다.
그래서 진짜 들으려면 멈춰야 한다. 멈추는 것은 위험하다. 멈춘 배는 표적이다.
멈추는 쪽은 그걸 알고도 멈추는 쪽이다.
0530.
함장이 그것을 들었다.
“그러면 북쪽으로 나간다.”
“…잘 듣는 쪽으로 말입니까?”
“잘 듣는 쪽은 잘 듣는 만큼 자기 소리에 대해서도 안다. 조용히 갈 때 조용히 간다.”
“…….”
“남쪽 것은 정해진 대로 돈다. 정해진 것은 예측이 된다. 예측이 되는 쪽이 더 위험해.”
0611.
배가 북쪽으로 갔다.
2노트로 갔다. 걷는 속도의 절반이다.
이 속도에서는 키가 거의 안 먹는다. 방향을 크게 못 바꾼다. 대신 소리가 거의 안 난다.
추진기가 천천히 돌면 날개 끝에서 거품이 안 생긴다. 거품이 생겼다 터지는 소리가 제일 멀리 간다.
그 경계가 대개 이 속도쯤이다. 여기서 반 노트만 올려도 소리가 달라진다.
조종수는 그 반 노트를 손으로 잡고 있었다.
0705.
한 시간에 3.7킬로미터를 갔다.
북쪽 호위가 두 번 멈췄다. 멈출 때마다 우리도 멈췄다.
멈추는 것은 어렵다.
배는 서 있으면 가라앉거나 뜬다. 물보다 조금 무겁거나 조금 가볍기 때문이다. 딱 맞추는 것은 안 된다.
그래서 조금씩 물을 넣고 뺀다. 넣고 빼는 펌프가 소리를 낸다.
소리를 안 내려면 아주 천천히 해야 한다. 천천히 하면 그동안 배가 조금씩 내려간다.
세 번째로 멈췄을 때 배는 12미터를 내려갔다.
0812.
세 번째로 멈췄을 때 가까웠다.
“…1,400입니다.”
발령소에서 아무도 안 움직였다.
윤재는 그때 함장을 봤다.
함장이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것이 아니었다. 듣고 있었다.
0838.
호위가 다시 움직였다.
멀어졌다.
“…갔습니다.”
“…얼마나.”
“…2,600입니다.”
0910.
배가 그 틈으로 나갔다.
나가는 데 2시간이 걸렸다.
1120.
윤재는 발령소에 남아 있었다.
교대 시각이 지났다. 안 갔다.
함장도 안 갔다.
둘 다 서 있었다. 서서 아무 말도 안 했다.
1148.
지완이 헤드폰을 벗었다.
“…이제 안 들립니다.”
“…둘 다인가.”
“…둘 다입니다.”
1210.
함장이 그때 처음 앉았다.
앉고 나서 윤재를 봤다.
“…부장.”
“…예.”
“앉게.”
윤재가 앉았다.
1215.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발령소에는 다른 사람이 넷 더 있었다. 그 넷도 말하지 않았다.
계기 소리와 환풍 소리가 났다. 그것 말고는 없었다.
1240.
25분 동안 그렇게 있었다.
25분 뒤에 함장이 일어섰다.
“…부장. 부상 준비.”
“…예.”
1302.
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심도 150에서 60으로. 60에서 30으로.
30에서 잠망경을 올렸다.
1308.
하늘이 있었다.
윤재는 그것을 봤다. 나흘 만이었다.
잠망경으로 보는 하늘은 동그랗다. 가장자리가 잘려 있다.
그 동그란 것 안에 구름이 있었다.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윤재는 그것을 12초 봤다. 12초 뒤에 비켜 줬다.
뒤에 사람이 서 있었다.
1315.
통신을 쐈다. 18분이었다.
받은 것 중에 하나가 정세 요약이었다.
윤재는 마지막 줄부터 읽었다.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동부 회랑 방면, 야간 기동 징후 포착.
1332.
윤재는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읽고 나서 항해일지를 폈다.
1315 부상. 통신 18분.
그 아래에 적었다.
전지 잔량 나흘.
펜을 놓고 계기를 봤다. 이산화탄소 수치가 내려가고 있었다.
0430.
보급을 받았다.
받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우군 해역 안쪽, 수심 200 안팎, 사흘에 한 번 지나가는 군수지원함이 있다.
만나는 데 6시간이 걸렸고 받는 데 2시간이 걸렸다.
받는 동안 배는 물 위에 있다. 2시간 동안 보인다.
그래서 밤에 받는다. 그리고 받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먼저 산소와 수소를 받는다. 이것이 없으면 못 잠긴다. 그다음이 어뢰고 마지막이 식량이다.
중간에 무슨 일이 나면 뒤의 것을 버리고 잠긴다. 굶는 것은 며칠 되지만 못 잠기는 것은 그날로 끝이다.
산소와 수소, 식량, 어뢰 넷.
어뢰는 여섯을 요청했고 넷이 왔다.
0640.
“…왜 넷입니까?”
“…항구에서 그만큼 왔답니다.”
윤재는 그 말을 더 안 물었다.
물어도 답이 없다. 답은 여기 없는 사람들이 갖고 있다.
어뢰는 한 발이 집 한 채 값이다. 만드는 데도 오래 걸린다.
전쟁이 나면 쓰는 속도가 만드는 속도를 넘는다. 넘으면 그때부터는 있는 것으로만 싸운다.
여섯을 요청하고 넷이 왔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0812.
함장이 승조원 전체를 불렀다.
한 번에 다 모일 수는 없다. 당직이 있다. 두 번에 나눠 불렀다.
식당에 스물여덟 명이 앉았다.
0820.
“지금까지 넉 척을 침몰시켰습니다.”
함장이 그렇게 시작했다.
“만재 톤수를 더하면 6만 톤이 조금 넘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 배들에 무엇이 실려 있었는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다만 그 배들이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는 압니다.”
0824.
함장이 해도를 폈다.
“대만 서안입니다.”
“상륙한 병력이 거기 있습니다. 상륙은 4월 9일에 시작됐고 오늘이 어제까지 마흔이틀째입니다.”
“상륙군은 자기가 갖고 간 것으로 처음 며칠을 삽니다. 그다음부터는 바다로 받습니다.”
사람 하나가 하루에 먹고 쓰는 것이 있다. 물과 밥과 탄이다.
병력이 많으면 그것이 곱해진다. 십만이면 하루에 배 몇 척이 필요하다.
그 배가 안 오면 병력은 그 자리에서 줄어든다. 싸워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준다.
이것을 보급 차단이라고 한다. 총을 안 쏘고 이기는 방법이다.
0831.
“여러분이 넉 척을 끊었습니다.”
“넉 척이면 그쪽 병력이 며칠 덜 먹습니다. 며칠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이건 압니다.”
함장이 잠깐 멈췄다.
“이 바다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습니다.”
0838.
문서상 이 해역에 우군 잠수함은 없다.
그 말은 두 가지다. 우리가 발각돼도 아무도 안 온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안 끊으면 아무도 안 끊는다는 것.
“지금까지는 첫 번째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를 말씀드립니다.”
0845.
식당이 조용했다.
오 하사가 뒤쪽에 서 있었다. 그릇을 아직 안 걷었다.
앞줄에 앉은 사람 하나가 손을 무릎에 놓고 있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식당은 좁다. 스물여덟 명이 앉으면 어깨가 닿는다.
닿은 채로 아무도 안 움직였다.
0852.
“질문 받겠습니다.”
한참 아무도 안 물었다.
기관 하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함장님. 언제까지 합니까?”
“모릅니다.”
“…….”
“다만 우리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합니다. 그게 언제까지인지도 그쪽이 정합니다.”
“…함장님.”
“말하십시오.”
“…우리가 몇 번 더 할 수 있습니까?”
함장이 그 질문에 시간을 썼다.
“어뢰가 넷 있습니다. 두 발씩 쓰면 두 번입니다.”
“…한 발씩 쓰면요.”
“…네 번입니다. 대신 빗나가면 없습니다.”
0908.
두 번째 조가 들어왔다.
함장이 같은 말을 다시 했다. 같은 순서로 같은 숫자로 했다.
윤재는 뒤에 서서 그것을 들었다.
두 번째에도 한 마디도 안 줄였다.
줄이면 두 번째 조가 덜 들은 것이 된다. 덜 들은 사람이 스물다섯 명 생긴다.
윤재는 그 스물다섯 명 얼굴을 봤다. 첫 번째 조와 표정이 같았다.
1015.
지완이 발령소로 왔다.
“…부장님.”
“…무슨 일인가.”
“아까 그 숫자 말입니다. 6만 톤.”
“…그게 왜.”
“…그 배에 사람이 몇 명 있었습니까?”
1022.
윤재는 그 계산을 해 놓고 있었다.
첫 번째 배는 스물에서 스물다섯이었다. 두 번째부터는 호위가 붙었으니 더 있었을 수도 있다.
“…모른다.”
“…….”
“다만 첫 번째 것은 스물에서 스물다섯이었다.”
“…나머지는요?”
“모른다.”
1030.
지완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부장님. 제가 소리를 들었습니다.”
“…알고 있네.”
“가라앉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흔 분씩 들었습니다.”
“…….”
“그 안에서 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윤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41.
“…최 하사.”
“…예.”
“그 소리를 자네만 들었나.”
“…예. 화면에는 안 나옵니다.”
“…….”
“소리로만 납니다.”
1105.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0430 보급 수령. 어뢰 4. 0812 승조원 전달.
그 아래 빈 줄이 있었다.
1112.
윤재는 거기에 적었다.
지금까지 넉 척. 합계 만재 6만 2천 톤.
그다음 줄에 적었다.
첫 번째 20~25명. 나머지 미상.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이 숫자를 음탐 하사 최지완이 물었다.
1130.
적고 나서 윤재는 그 세 줄을 봤다.
일지에는 함정의 움직임을 적는다. 사람 수를 적는 칸은 없다.
칸이 없는 자리에 적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함장이 쉰세 개의 이름을 적은 것이고, 두 번째는 지완의 판단이 맞았다고 적은 것이었다.
1148.
지완이 아직 서 있었다.
윤재가 일지를 돌려 보여 줬다.
지완이 그것을 읽었다. 세 줄이었다.
읽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했다.
1205.
지완이 음탐실로 돌아갔다.
윤재는 일지를 덮었다.
덮기 전에 마지막 줄을 한 번 더 봤다.
그 줄에 이름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