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68자) · 차민경 · 6월 18일(금)

자석 하나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6월 18일 0300⁠, 진해 잠수함사령부 작전처 상황실에는 밤 당직 넷이 남아 있었다⁠.

벽에 걸린 해도 위에 자석이 붙어 있었고⁠, 자석마다 함정 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상함 자석은 위치를 아니까 매일 옮겼다⁠. 잠수함 자석은 옮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통신한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해도 한쪽 모서리에는 몇 해 전 누군가 붙여 둔 투명 테이프가 누렇게 삭아 있었고⁠, 자석을 떼었다 붙인 자리마다 종이가 조금씩 일어나 있었다⁠.

차민경 대위는 그 앞에 서 있었다⁠. SS-085 자석은 나흘째 같은 자리였다⁠.

“⁠차 대위⁠, 085 예정 통신이 언제였지⁠?⁠”

당직 소령이 물었다⁠. 민경은 해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제 2100입니다⁠. 안 왔습니다⁠. 그저께는 왔고⁠, 18분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루 늦은 거군⁠.⁠”

늦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잠수함이 통신하려면 심도를 올려야 하고⁠, 올리면 보인다⁠. 보이면 안 되는 자리에 있으면 안 올린다⁠. 그래서 예정 시각에 안 오면 다음 예정까지 기다리고⁠, 그다음에도 안 오면 또 기다린다⁠. 세 번 안 오면 그때 절차가 시작된다⁠. 마지막 통신 좌표를 가운데 두고 원을 그리고⁠, 그 원 안에 우군 함정이 있는지 보고⁠, 없으면 초계기를 띄운다⁠. 초계기가 뜨면 그 해역에서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을 저쪽도 안다⁠. 그래서 함부로 못 띄운다⁠.

그리고 절차 맨 끝에는 한 줄이 더 있었다⁠. 문서상 그 해역에 우군 잠수함은 없다⁠.

“⁠오늘 2100이 두 번째야⁠. 두 번째까지는 아무것도 안 해⁠.⁠”

“⁠압니다⁠.⁠”

상황실 구석 천장에 매단 텔레비전이 소리를 죽인 채 켜져 있었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대만 서해안 정전 사흘째⁠, 편의점은 문을 안 닫는다⁠. 자막 위로 촛불 몇 개를 켜 놓은 계산대가 비쳤고⁠, 컵라면 선반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계산대 뒤의 점원은 앞치마에 손전등을 꽂고 있었다⁠. 민경은 그 화면을 한 번 보고 해도로 눈을 돌렸다⁠.

*

0410에 민경은 상황일지를 폈다⁠. 함정별로 칸이 있었다⁠. 위치⁠, 최종 통신⁠, 다음 예정⁠. 085 칸의 위치란에는 어제와 같은 좌표가 있었고⁠, 민경은 다음 예정 칸에 오늘 2100을 적었다⁠.

적고 나서 그 아래 빈 줄을 봤다⁠. 거기에 적을 것이 없었다⁠. 빈 줄에 아무것도 안 적으면 다음 사람이 그 칸을 넘기고⁠, 그다음 사람도 넘긴다⁠. 민경은 펜을 들었다가 놓았다⁠. 적을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을 칸이 아니어서였다⁠.

민경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석을 안 옮기는 것이었다⁠. 자석을 옮기려면 새 좌표가 있어야 하고⁠, 새 좌표는 배가 줘야 했다⁠. 그 자리의 자석은 배가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안 자리였다⁠.

0520에 소령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와서 한 잔을 민경의 책상에 놓았다⁠. 종이컵이 뜨거워서 소령은 컵 가장자리를 손끝으로만 잡았다⁠.

“⁠며칠째야⁠?⁠”

“⁠뭐가 말입니까⁠?⁠”

“⁠안 잔 거⁠.⁠”

“⁠사흘입니다⁠. 자면 2100에 못 일어납니다⁠.⁠”

“⁠일어나⁠. 자명종 있잖아⁠.⁠”

“⁠제가 자는 동안 통신이 오면 제가 못 받습니다⁠.⁠”

“⁠당직이 받아⁠.⁠”

“⁠압니다⁠. 그런데 제가 못 받습니다⁠.⁠”

소령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울대가 한 번 움직였다⁠.

“⁠저 배에 아는 사람 있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나⁠?⁠”

민경은 대답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쉰세 명입니다⁠. 일지 첫 장에 함정별 승조원 수가 적혀 있습니다⁠. 085 옆에 53이 있습니다⁠. 저는 그 숫자를 매일 봅니다⁠. 그 숫자는 안 바뀝니다⁠. 바뀌면 그건 다른 일이 일어난 겁니다⁠.⁠”

소령은 해도 앞으로 갔다⁠. 085 자석을 손가락으로 짚었지만 떼지는 않았다⁠.

“⁠이거 오늘 내가 안 옮겨⁠. 통신 와도 안 옮겨⁠. 자네가 와서 옮겨⁠. 그러니까 세 시간 자⁠.⁠”

“⁠세 시간입니까⁠?⁠”

“⁠0900에 깨울게⁠. 2100까지 12시간 남아⁠.⁠”

상황실 뒤에 간이침대가 하나 있었다⁠. 민경은 거기 누웠다⁠. 군화는 벗지 않았다⁠. 천장에 배관이 지나갔고 배관마다 흰 페인트로 번호가 적혀 있었다⁠. 눈을 감자 귀가 열렸다⁠. 무전기 잡음과 의자 끄는 소리와 누군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다 들렸고⁠, 그 소리들 사이로 소령이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는 소리가 섞였다⁠. 민경은 눈을 다시 뜨고 배관 번호를 하나씩 읽었다⁠. 열한 번째 번호를 읽다가 잠이 들었다⁠. 자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일어나 봐야 알았다⁠.

*

그 시각 동중국해 남단⁠, 해면 7⁠,600미터 위에서 해상초계기 한 대가 8시간째 떠 있었다⁠.

구재현 소령은 뒤쪽 콘솔에 앉아 있었다⁠. 조종은 앞에서 하고⁠, 뒤에서는 소리를 봤다⁠. 화면에 점이 스물넷 떠 있었다⁠. 소노부이였다⁠. 부이는 낙하산으로 떨어져 물에 들어가면 청음기를 아래로 내렸다⁠. 얕게 내리면 위쪽 소리를 듣고 깊게 내리면 아래쪽을 들었다⁠. 8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가라앉았다⁠. 재현은 8시간 동안 스물넷을 던졌고⁠, 스물셋에서 아무것도 못 들었다⁠.

0602에 음향 분석관이 말했다⁠.

“⁠12번에 뭐가 있습니다⁠. 50헤르츠 근처입니다⁠. 그런데 축 소리가 안 들립니다⁠.⁠”

재현은 그 선을 20분 봤다⁠. 50헤르츠는 발전기 소리였다⁠. 발전기만 들리고 축이 안 들리면 멈춰 선 배거나⁠, 축을 아주 천천히 돌리는 배였다⁠. 천천히 돌리는 배는 소리를 안 내려고 그렇게 했고⁠, 그런 배는 상선이 아니었다⁠. 거기까지는 20분이면 알았다⁠. 거기서부터가 안 나왔다⁠. 발전기는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든 50헤르츠를 냈다⁠.

“⁠분류하시겠습니까⁠? 우군 목록에는 없습니다⁠.⁠”

“⁠알아⁠.⁠”

재현은 보고 서식을 열었다⁠. 칸이 셋이었다⁠. 접촉 위치⁠, 접촉 성격⁠, 판단⁠. 성격 칸에 넣을 수 있는 말은 우군⁠, 적성⁠, 미상이었다⁠. 우군이라고 적으려면 목록이 있어야 했고⁠, 적성이라고 적으면 그다음은 이 비행기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미상이라고 적으면 위에서 다시 물었다⁠. 8시간 떠 있었는데 왜 모르냐고⁠.

재현은 그 질문을 세 번 받아 봤다⁠. 세 번 다 대답이 같았고⁠, 세 번 다 그다음에는 미상 말고 다른 것을 적고 싶어졌다⁠. 적성이라고 적으면 아무도 안 묻는다⁠. 묻지 않는 대신 그다음 일이 시작되고⁠, 그다음 일은 물 밑의 무언가를 향해 떨어진다⁠.

부이 한 장 값은 승용차 한 대 값에 가까웠다⁠. 그것을 스물넷 던졌고 오늘 안에 다 가라앉을 것이었다⁠. 넓게 먼저 깔고⁠, 무언가 걸리면 그 안쪽에 촘촘히 까는 것이 순서였다⁠. 처음부터 촘촘히 깔면 넓은 데를 놓쳤다⁠. 오늘은 넓게 깐 것 가운데 하나에만 걸렸고⁠, 안쪽에 넉 장을 더 깔 연료가 남아 있지 않았다⁠.

재현은 헤드폰을 다시 썼다⁠. 8시간을 쓰고 있으면 귀 위쪽이 눌려 아팠고⁠, 아픈 자리를 손으로 누르면 잠깐 나았다⁠. 그 상태로 3분을 더 들었다⁠. 선은 그대로였고 축은 끝까지 안 들렸다⁠. 그는 미상이라고 적고⁠, 판단 칸에 적었다⁠. 8시간 청음⁠, 발전기 특성만 확인⁠, 추진 특성 미확인⁠, 분류 불가⁠, 우군 여부 확인 요청⁠.

교대기가 왔을 때 그는 무전으로 한 줄을 덧붙였다⁠.

“⁠분류 안 했습니다⁠. 8시간 해서 모르겠다는 걸 알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기내에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창밖은 구름 위였고 아래는 보이지 않았다⁠. 부이는 뒤에 남아 하나씩 가라앉고 있을 것이었다⁠.

*

0900에 소령이 민경을 깨웠다⁠. 민경은 군화를 신은 채로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벗으면 다시 신는 데 시간이 걸렸다⁠.

“⁠085 안 왔어⁠. 자석 그대로야⁠.⁠”

민경은 일어나 해도를 봤다⁠. 자석이 그 자리에 있었다⁠. 상황일지를 펴자 간밤 칸에 소령의 글씨가 있었다⁠. 0300부터 0900까지 상황장교 취침⁠, 당직 소령 대리⁠, 085 통신 없음⁠.

민경은 그 줄을 오래 봤다⁠. 취침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말로 적을 수도 있었다⁠. 자리 이탈이라고 적을 수도 있었고⁠, 아예 안 적을 수도 있었다⁠. 소령은 취침이라고 적었고⁠, 그 옆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1015에 항공 보고가 올라왔다⁠. 제주에서 떠서 남쪽으로 내려간 초계기의 것이었다⁠. 미상 잠수함 1⁠, 우군 여부 확인 요청⁠. 민경은 좌표를 해도에 대 봤다⁠. 085 자석에서 멀었지만 아주 멀지는 않았다⁠.

주간 당직으로 들어온 중위가 어깨 너머로 좌표를 봤다⁠.

“⁠대위님⁠, 이거 085 아닙니까⁠? 옮기시죠⁠. 사흘 동안 한 번도 안 움직인 자석보다는 낫습니다⁠.⁠”

“⁠근거가 없어⁠.⁠”

“⁠가까운 데서 잡힌 잠수함이 이것 하나뿐입니다⁠. 그게 근거 아닙니까⁠?⁠”

“⁠가까운 데서 잡힌 게 저쪽 것이면⁠, 우리 배는 지금 어디 있는 건데⁠?⁠”

중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손에 든 서류철을 가슴께로 끌어안았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으면서 의자를 조금 세게 끌었다⁠. 민경은 그 소리를 듣고도 돌아보지 않았다⁠.

미상 접촉은 근거가 아니었다⁠. 그것을 085로 보고 자석을 옮기면 그다음부터 그 자석은 추측이 된다⁠. 추측을 해도에 올리면 다음 사람이 그것을 사실로 읽는다⁠. 민경은 자석을 안 옮겼다⁠. 대신 상황일지 여백에 항공 보고 좌표를 적었다⁠. 085 칸이 아니라 그 아래 빈 줄이었다⁠.

*

같은 시각⁠, 대만 해협 북쪽 해역 1⁠,500미터 상공을 쌍발 대잠 초계기 한 대가 낮게 선회하고 있었다⁠. 회색 동체의 옆면에 붉은 별이 칠해져 있었다⁠. 기체 배 밑의 투하구가 열렸다가 닫혔고⁠, 작은 원통 넷이 줄지어 떨어졌다⁠.

*

1140⁠, 신채호함 심도 150에서 윤재는 항해일지에 적고 있었다⁠. 어제 2100 통신 불가⁠, 사유 수상 접촉 2척⁠. 통신하려면 심도 30까지 올라가야 했고⁠, 그 18분 동안 배는 위에서 보였다⁠. 어제는 위에 둘이 있었다⁠. 그래서 올라가지 않았다⁠. 그 아래에 오늘 2100이라고 적었다⁠.

적고 나서 윤재는 벽을 봤다⁠. 잠수함에는 창이 없었다⁠. 벽에는 배관이 지나갔고⁠, 배관마다 번호가 흰 글씨로 적혀 있었다⁠. 진해 상황실에서 누가 이 배의 자석 앞에 서 있는지 윤재는 몰랐다⁠.

그때 지완이 헤드폰을 한 손으로 눌렀다⁠.

“⁠부장님⁠, 위에서 뭐가 떨어졌습니다⁠. 넷입니다⁠.⁠”

윤재는 그 숫자를 들었다⁠. 넷은 자리와 침로를 재는 숫자였다⁠. 하나로는 방위만 나오고 셋이면 자리가 나오고⁠, 넷이면 자리와 침로가 나왔다⁠. 머리 위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재고 있었다⁠.

“⁠누구 건가⁠?⁠”

지완이 대답하지 않았다⁠. 헤드폰을 누른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최 하사⁠.⁠”

“⁠모르겠습니다⁠. 비행기 소리는 물속에서 다 똑같습니다⁠.⁠”

윤재는 심도 180으로 내리라고 했다⁠. 배가 아래로 기울었다⁠. 넷 가운데 하나가 층 위에 있고 셋이 층 아래에 있는지⁠, 넷 다 위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모르면 더 아래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헤드폰 줄이 지완의 손목에 두 번 감겨 있었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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