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자석 하나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0300.

진해.

작전처 상황실에 사람이 넷 있었다. 밤 당직이다.

벽에 해도가 걸려 있고 그 위에 자석이 붙어 있다. 자석마다 함정 번호가 적혀 있다.

수상함 자석은 매일 옮긴다. 위치를 알기 때문이다.

잠수함 자석은 안 옮긴다. 마지막으로 통신한 자리에 그대로 둔다.

차민경 대위가 그 앞에 서 있었다.

SS-085 자석은 나흘째 같은 자리에 있었다.

0312.

“차 대위.”

“…예.”

“085 예정 통신이 언제였나.”

“어제 2100입니다.”

“안 왔나.”

“…예.”

“그저께는.”

“왔습니다. 18분이었습니다.”

소령이 해도를 봤다.

“그러면 하루 늦은 거군.”

“…예.”

0325.

늦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잠수함은 통신하려면 심도를 올려야 한다. 올리면 보인다. 보이면 안 되는 자리에 있으면 안 올린다.

그래서 예정 시각에 안 오면 그다음 예정 시각까지 기다린다. 그다음도 안 오면 다시 기다린다.

세 번 안 오면 그때 절차가 시작된다.

절차는 순서가 있다.

먼저 마지막 통신 좌표를 중심으로 원을 그린다. 반지름은 지난 시간에 낼 수 있는 거리다. 사흘이면 원이 아주 커진다.

그다음에 그 원 안에 다른 우군 함정이 있는지 본다. 없으면 초계기를 띄운다.

초계기가 뜨면 그 해역에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저쪽도 안다. 그래서 함부로 못 띄운다.

그리고 마지막 절차가 있다. 안 찾는 것이다. 문서상 그 해역에 우군 잠수함은 없다.

“차 대위. 오늘 2100이 두 번째야.”

“…예.”

“두 번째까지는 아무것도 안 해.”

“…압니다.”

0410.

민경은 상황일지를 폈다.

일지에는 함정별로 칸이 있다. 위치, 최종 통신, 다음 예정.

085 칸의 위치란에 어제와 같은 좌표가 적혀 있었다. 최종 통신란에는 그저께 날짜가 적혀 있었다.

민경은 다음 예정 칸에 오늘 2100을 적었다.

적고 나서 그 아래 빈 줄을 봤다.

거기에 적을 것이 없었다.

빈 줄에 아무것도 안 적으면 다음 사람이 이 칸을 넘긴다. 넘기면 그다음 사람도 넘긴다.

민경은 펜을 들었다가 놨다. 적을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적을 칸이 아니어서였다.

0447.

민경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하고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석을 안 옮기는 것이었다.

자석을 옮기려면 새 좌표가 있어야 한다. 새 좌표는 배가 줘야 한다. 배가 안 주면 자석은 거기 있는다.

거기 있는 자석은 배가 거기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안 자리라는 뜻이다.

0520.

소령이 커피를 두 잔 들고 왔다. 한 잔을 책상에 놨다.

“차 대위. 며칠째야.”

“…뭐가 말입니까?”

“안 잔 거.”

민경은 계산하지 않았다.

“…사흘입니다.”

“왜 안 자나.”

“…자면 2100에 못 일어납니다.”

“일어나. 자명종 있잖아.”

“…….”

“차 대위.”

“예.”

“내가 자네한테 뭘 시키는 게 아니라 묻는 거야. 자면 뭐가 걱정되나.”

0538.

민경은 대답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제가 자는 동안 통신이 오면, 제가 못 받습니다.”

“당직이 받아.”

“…압니다.”

“…….”

“그런데 제가 못 받습니다.”

소령이 커피를 마셨다.

“차 대위. 저 배에 아는 사람 있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나.”

“…모르겠습니다.”

“…….”

“쉰세 명입니다.”

“그건 자네도 알고 나도 알아.”

“…예. 그런데 저는 그 숫자를 매일 봅니다.”

일지 첫 장에 함정별 승조원 수가 적혀 있다. 085 옆에 53이 적혀 있다.

숫자는 안 바뀐다. 바뀌면 그건 다른 일이 일어난 것이다.

0602.

소령이 해도 앞으로 갔다.

085 자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떼지는 않았다.

“차 대위. 이거 오늘 내가 안 옮겨.”

“…예.”

“통신 와도 안 옮겨. 자네가 와서 옮겨.”

“…….”

“그러니까 세 시간 자.”

민경이 소령을 봤다.

“…세 시간입니까?”

“0900에 깨워. 2100까지 12시간 남아.”

0614.

상황실 뒤에 간이침대가 하나 있다.

민경은 거기 누웠다. 군화는 벗지 않았다. 벗으면 다시 신는 데 시간이 걸린다.

천장에 배관이 지나갔다. 배관에 번호가 적혀 있었다.

눈을 감으니까 귀가 열렸다. 상황실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렸다. 무전기 잡음, 의자 끄는 소리, 누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

민경은 그 번호를 읽다가 잠들었다.

자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일어나 봐야 안다.

0900.

소령이 깨웠다.

“차 대위.”

“…예.”

“085 안 왔어.”

“…예.”

“자석 그대로야.”

민경이 일어나 해도를 봤다.

자석이 그 자리에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였다.

0918.

민경은 상황일지를 폈다.

간밤 칸에 소령의 글씨가 있었다.

0300~0900 상황장교 취침. 당직 소령 대리. 085 통신 없음.

민경은 그 줄을 봤다.

취침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말로 적을 수도 있었다.

1140.

같은 시각.

신채호함 함내 심도 180.

윤재는 항해일지에 적고 있었다.

어제 2100 통신 불가. 사유, 수상 접촉 2척.

통신을 하려면 심도 30까지 올라가야 한다. 안테나를 내밀고 자료를 압축해서 한 번에 쏜다. 18분이면 끝난다.

18분 동안 배는 얕은 곳에 있다. 얕은 곳에서는 위에서 보인다. 헬기가 있으면 18분이 아주 길다.

어제는 위에 둘이 있었다. 그래서 안 올라갔다.

그 아래 오늘 2100이라고 적었다.

적고 나서 창을 봤다. 창은 없다. 잠수함에는 창이 없다.

윤재는 벽을 봤다.

벽에 배관이 지나갔다. 배관에 번호가 적혀 있었다.

0540.

제주 남방 상공 7,600미터.

해상초계기가 8시간째 떠 있었다.

구재현 소령은 뒤쪽 콘솔에 앉아 있다. 조종은 앞에서 하고, 뒤에서는 소리를 본다.

화면에 점이 스물넷 떠 있었다. 소노부이다.

부이는 낙하산으로 떨어져 물에 들어가면 청음기를 아래로 내린다. 내리는 깊이를 미리 정해서 던진다. 얕게 내리면 위쪽 소리를 듣고 깊게 내리면 아래쪽을 듣는다.

부이는 8시간 쓰면 스스로 가라앉는다. 회수하지 않는다.

한 장 값이 승용차 한 대 값에 가깝다. 그것을 스물넷 던졌고 오늘 안에 다 가라앉는다.

던지는 순서도 정해져 있다. 넓게 먼저 깔고 뭔가 걸리면 그 안쪽에 촘촘히 깐다. 처음부터 촘촘히 깔면 넓은 데를 놓친다.

재현은 8시간 동안 스물넷을 던졌고 스물셋에서 아무것도 안 들었다.

0602.

“소령님. 12번에 뭐가 있습니다.”

음향 분석관이 그렇게 말했다.

재현이 화면을 옮겼다.

선이 하나 서 있었다. 가늘고 곧았다.

“…주파수.”

“50헤르츠 근처입니다.”

“상선인가.”

“상선이면 축 소리가 같이 납니다. 축이 안 들립니다.”

0615.

재현은 그 선을 20분 봤다.

50헤르츠는 발전기 소리다. 배 안에서 전기를 만들면 그 주파수가 물로 나간다.

상선은 발전기와 추진축이 같이 들린다. 축은 회전수가 낮아서 다른 자리에 뜬다.

발전기만 들리고 축이 안 들리면 두 가지다.

멈춰 서 있는 배거나, 축을 아주 천천히 돌리는 배다.

천천히 돌리는 배는 소리를 안 내려고 그렇게 한다. 소리를 안 내려는 배는 상선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20분이면 안다. 여기서부터가 안 나온다.

우리 배인지 저쪽 배인지는 소리로 안 갈린다. 발전기는 어디서 만들었든 50헤르츠를 낸다.

0641.

“소령님. 분류하시겠습니까?”

“…아직.”

“우군 목록에는 없습니다.”

“알아.”

문서상 그 해역에 우군 잠수함은 없다.

없다고 적혀 있으면, 그 해역에서 잡힌 잠수함은 우군이 아니다. 그게 규칙이다.

규칙대로 하면 재현은 지금 미상 잠수함으로 올린다. 올리면 위에서 다음 절차가 시작된다.

0703.

재현은 부이를 넉 장 더 던졌다.

던지는 데 이유가 있다. 하나로는 방위만 나오고 셋이면 자리가 나온다. 넷이면 자리와 침로가 나온다.

넉 장이 물에 들어가고 4분 뒤에 선이 다시 섰다.

“…움직입니다.”

“속력.”

“3노트입니다.”

“…느리군.”

3노트는 걷는 속도보다 느리다. 그 속력으로 가는 배는 소리를 안 내려고 가는 배다.

0728.

“소령님. 보고 올려야 합니다.”

“…알아.”

“8시간 다 됐습니다. 교대기가 옵니다.”

재현은 보고 서식을 열었다.

칸이 셋이었다. 접촉 위치, 접촉 성격, 판단.

위치는 적었다. 성격 칸에서 손이 멈췄다.

0741.

성격 칸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셋이다.

우군, 적성, 미상.

우군이라고 적으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는 목록이고 목록에는 없다.

적성이라고 적으면 그다음이 시작된다. 그다음은 이 배가 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한다.

미상이라고 적으면 위에서 다시 묻는다. 8시간 떠 있었는데 왜 모르냐고 묻는다.

재현은 그 질문을 세 번 받아 봤다. 세 번 다 대답이 같았다.

그리고 세 번 다, 다음에는 미상 말고 다른 걸 적고 싶어졌다. 적성이라고 적으면 아무도 안 묻는다.

0756.

분석관이 물었다.

“소령님. 뭘로 하십니까?”

“…자네는 뭐라고 보나.”

“…모르겠습니다.”

“왜 모르겠나.”

“…축이 안 들려서 배 종류를 못 정합니다.”

“들으면 알겠나.”

“…들으면 압니다. 그런데 안 들립니다.”

재현은 헤드폰을 다시 썼다.

8시간 쓰고 있으면 귀 위쪽이 눌려서 아프다. 아픈 자리를 손으로 누르면 잠깐 낫는다.

그 상태로 3분을 더 들었다. 선은 그대로였다. 축은 끝까지 안 들렸다.

0812.

재현은 미상이라고 적었다.

판단 칸에는 이렇게 적었다.

8시간 청음. 발전기 특성만 확인. 추진 특성 미확인. 분류 불가.

적고 나서 한 줄을 더 적었다.

우군 여부 확인 요청.

0824.

교대기가 왔다.

무전으로 인계했다. 부이 위치, 접촉 자리, 마지막 침로.

인계하면서 재현은 한 가지를 덧붙였다.

“…분류 안 했습니다.”

저쪽이 잠깐 조용했다.

“…미상으로 넘기신다는 겁니까?”

“예.”

“8시간 하셨는데요.”

“…8시간 해서 모르겠다는 걸 알았습니다.”

0901.

돌아오는 길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재현은 창밖을 봤다. 구름 위였다. 아래는 안 보였다.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방법은 소리뿐이고, 소리는 이제 안 들린다. 부이가 뒤에 남았고 배는 앞으로 왔다.

1015.

진해.

민경이 상황일지에 새 줄을 받았다.

항공 접촉 보고. 제주 남방. 미상 잠수함 1. 우군 여부 확인 요청.

민경은 그 좌표를 해도에 대 봤다.

085 자석에서 멀었다. 아주 멀지는 않았다.

옮기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항공 보고의 미상 접촉은 근거가 아니다.

미상을 085로 보고 자석을 옮기면, 그다음부터 그 자석은 추측이 된다. 추측을 해도에 올리면 다음 사람이 그것을 사실로 읽는다.

민경은 자석을 안 옮겼다.

대신 상황일지 여백에 좌표를 하나 적었다. 항공 보고 좌표였다. 085 칸이 아니라 그 아래 빈 줄이었다.

1140.

같은 시각.

신채호함 심도 150.

지완이 헤드폰을 한 손으로 눌렀다.

“…부장님.”

“…뭔가.”

“위에서 뭐가 떨어졌습니다.”

“몇 개인가.”

“…넷입니다.”

윤재는 그 숫자를 들었다.

넷이 떨어졌다는 것은 자리와 침로를 재고 있다는 뜻이다.

“…누구 건가.”

지완이 대답하지 않았다.

“최 하사.”

“…모르겠습니다.”

헤드폰 줄이 지완의 손목에 감겨 있었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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