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그냥 들립니다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0412에 지완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드는 것은 말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발령소에서는 급할수록 소리를 안 낸다.

지완이 종이에 적어서 넘겼다.

능동 소나(소리를 쏴서 되돌아오는 것을 듣는 방식, 쏘는 순간 내 위치도 알려 준다). 방위 340. 원거리.

능동 소나는 상대가 소리를 쏘는 것이다. 쏜 소리가 우리에게 맞고 돌아가면 우리가 어디 있는지 저쪽이 안다.

멀면 안 맞는다. 가까워지면 맞는다.

“…거리는?”

윤재도 종이에 적었다.

지완이 아래에 적었다. 2만 이상. 아직 안 닿습니다.

0420에 두 번째가 들어왔다.

“방위 340 하나 더. 다른 배입니다.”

“…둘이야?”

“둘입니다. 간격 4천쯤 됩니다.”

함장이 해도를 봤다.

“훑고 있어.”

두 척이 간격을 두고 나란히 오면서 번갈아 소리를 쏘면, 그 사이는 빠져나갈 수 없다. 빗자루로 쓸듯이 쓸어 온다.

“속력은.”

“…14노트입니다.”

“그러면 40분이네.”

40분 뒤에 저 소리가 우리에게 닿는다는 뜻이었다.

0424에 함장이 결심했다.

“침묵 항주. 3노트. 심도 200.”

“심도 200.”

“불필요 장비 전부 정지. 취사 중지. 화장실 사용 금지.”

“…예.”

침묵 항주는 배 안의 모든 소리를 끄는 것이다. 냉장고도 끄고, 환풍기도 끄고, 사람도 필요 없으면 안 움직인다.

환풍이 멎으면 배 안 공기가 층으로 나뉜다. 위쪽이 덥고 아래쪽이 차다. 사람이 많은 칸부터 먼저 무거워진다.

이산화탄소는 냄새가 없다. 그래서 나빠지는 것을 사람이 못 느낀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이미 꽤 올라간 것이다.

취사를 멈추면 그날 밥은 아침에 해 둔 것을 찬 채로 먹는다. 물도 못 끓인다.

화장실을 못 쓰는 이유는 물을 밖으로 밀어내는 소리 때문이다. 그 소리는 배에서 나는 소리 중에 가장 크고 가장 사람 냄새가 난다.

30분이면 견딘다. 2시간이면 공기가 나빠진다. 네 시간이면 사람이 어지러워진다.

0450에 배가 조용해졌다.

윤재는 그때 처음으로 자기 심장 소리를 들었다. 배가 조용해지면 사람 몸에서 나는 소리가 커진다.

0450부터 0458까지 8분 동안 배 안에서 나는 소리는 세 가지뿐이었다.

사람 숨소리, 선체가 수압에 눌려 아주 가끔 내는 소리, 그리고 지완의 헤드폰에서 새어 나오는 아주 작은 잡음.

윤재는 그 8분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배에서 부장이 할 일이 없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제일 길다.

0458에 첫 번째 능동 소나가 닿았다.

소리가 선체에 부딪히는 것은 실제로 들린다. 쇠를 손톱으로 튕기는 것 같은 소리다. 짧고 높다.

한 번.

발령소에서 아무도 안 움직였다.

두 번.

“…맞았습니까?”

지완이 아주 작게 말했다.

“…아직 아닙니다.”

“어떻게 알아.”

“맞으면 저쪽이 속력을 올립니다. 지금 안 올립니다.”

0511에 세 번째가 왔다.

이번에는 소리가 달랐다. 더 컸다.

“…가까워졌습니다.”

“몇이야.”

“…1만 2천입니다.”

함장이 해도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부장. 저 둘 사이 간격이 4천이라고 했지.”

“예.”

“지금은.”

지완이 확인했다.

“…5천으로 벌어졌습니다.”

“왜 벌어졌겠나.”

윤재가 대답했다.

“…한 척이 늦어졌습니다.”

“왜 늦어져.”

“…뭔가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니면 예인 소나를 내리고 있습니다.”

예인 소나는 배 뒤로 긴 줄을 끌고 다니는 것이다. 줄에 청음기가 달려 있고, 배 소음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기 때문에 잘 듣는다.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내리는 동안 속력을 못 낸다.

“…그러면 저쪽은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지.”

0518에 함장이 해도에서 손을 뗐다.

“부장. 선택지가 셋이야.”

“…예.”

“하나, 이대로 조용히 있는다. 저 둘이 우리 위를 지나가기를 바라는 거야.”

“…확률이 낮습니다.”

“낮지. 둘째, 깊이 내려간다. 300 밑으로.”

“…그러면 저쪽 소리가 층에 걸려서 안 닿습니다.”

“대신 우리도 못 들어.”

“…예.”

“셋째.”

함장이 해도에서 뒤쪽을 짚었다.

0530에 함장이 방향을 정했다.

“침로 070. 저 둘 사이로 안 가. 뒤로 돈다.”

“…뒤로요?”

“지나간 자리는 다시 안 쓸어.”

배가 아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3노트에서 침로를 90도 바꾸는 데 11분이 걸렸다. 빨리 돌면 소리가 난다.

0553에 네 번째 능동 소나가 왔다.

이번에는 뒤쪽에서 왔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자리였다.

“…뒤에서 옵니다.”

“그러면 됐어.”

0620에 소리가 멀어졌다.

0645에 안 들렸다.

0700에 함장이 침묵 항주를 풀었다.

“환풍 돌려.”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그렇게 좋게 들린 적이 없었다.

승조원 몇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윤재는 지완에게 갔다.

“지완 하사.”

“예.”

“아까 두 번째 것. 헬기 아니라고 한 거 뭐 보고 알았어?”

“…헬기 소리 아니었습니다.”

“그건 아는데, 뭐로 알았냐고.”

지완이 잠깐 생각했다.

“헬기가 물에 청음기를 담그면 소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옵니다. 배는 옆에서 옵니다.”

“…옆인지 위인지가 들려?”

“들립니다.”

“…….”

“설명은 못 하겠습니다. 그냥 들립니다.”

윤재는 그 대답을 오래 기억했다.

배 안에는 수백 가지 계기가 있다. 그중에 「그냥 들립니다」를 표시하는 것은 없다.

0730에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0412 능동 소나 접촉 2척. 0424 침묵 항주. 0645 접촉 소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음탐 판단 정확. 담당 하사 최지완.

이름을 적는 칸은 없었다. 함장이 쉰세 개를 적어 넣은 그 자리 아래였다.

0512.

접촉이 하나 잡혔다.

지완이 먼저 들었다. 화면에 선이 뜨기 20초 전이었다.

“…부장님. 뒤에서 두 번째 소리 아닙니다.”

“다른 겁니까?”

“이번엔 앞에 하나 더 있습니다.”

윤재는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첫 번째 배는 열이틀 전에 잡았다. 만재 1만 8천 톤, 호위 없음. 그때는 배 한 척이 혼자 왔다.

이번엔 앞에 하나가 더 있다.

0524.

함장이 발령소로 왔다.

“부장.”

“…호위함으로 보입니다.”

“몇 척인가.”

“한 척입니다. 앞에서 3km 정도 나가 있습니다.”

“보급선은.”

“뒤에 있습니다. 속력 12노트입니다.”

함장이 해도를 봤다.

“열이틀 전보다 느리군.”

“…예.”

“왜 느린가.”

윤재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 생각했다.

“…선단이라 맞춰 갑니다.”

“선단이면 뒤에 더 있나.”

“…아직 안 들립니다.”

0603.

지완이 손을 들었다.

“…뒤에 두 척 더 있습니다.”

“거리는?”

“8km, 11km입니다.”

발령소가 조용해졌다.

보급선 셋에 호위 하나. 열이틀 전과 다른 그림이었다.

열이틀 전에 한 척이 혼자 온 것은 저쪽이 이 해역을 비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제 안 비어 있다고 본다.

바뀐 것은 저쪽만이 아니다. 우리도 바뀌었다. 그때는 쏘면 드러날까 봐 망설였고 지금은 쏘면 뭐가 오는지 안다.

윤재는 어뢰 잔량을 머릿속으로 셌다. 세지 않아도 아는 숫자였는데 셌다.

0640.

어뢰를 쏘는 절차는 정해져 있다.

먼저 표적 하나를 정한다. 셋 중 하나다. 세 개를 다 쏠 어뢰가 없다.

그다음 표적 운동 해석을 한다. 침로와 속력을 소리만으로 푼다. 배가 직선으로 가면 15분, 지그재그로 가면 못 푼다.

풀리면 발사관에 물을 채운다. 이때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저쪽 청음기에 들린다. 그래서 호위함이 우리 쪽을 보고 있지 않을 때 채운다.

문을 연다. 이것도 소리가 난다.

쏜다.

쏘고 나면 어뢰가 배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유선으로 어뢰를 붙잡고 있다. 유선을 끊으면 어뢰가 혼자 찾아가고, 혼자 찾아가면 엉뚱한 것을 문다.

“함장님. 어느 것으로 하겠습니까?”

“제일 무거운 것.”

“…세 번째입니다. 11km입니다.”

“소리로 무게를 아나.”

“…추진기 회전수와 배수량이 관계가 있습니다. 무거우면 같은 속력을 내는 데 더 돌립니다.”

“정확한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셋 중에 어느 것이 무거운지는 압니다.”

“제일 먼 것이군.”

“예.”

0721.

11km짜리를 골랐다.

이유는 셋이었다. 제일 무겁고, 제일 뒤에 있고, 호위함에서 제일 멀다.

윤재는 그 셋을 함장에게 말했다.

함장이 하나를 더 붙였다.

“그리고 제일 먼 것을 치면 앞의 둘이 뒤를 본다.”

“…예.”

“뒤를 보는 동안 우리는 앞으로 간다.”

0803.

두 발을 쐈다.

첫 번째는 12분 걸렸다. 열이틀 전과 같은 시간이었다.

두 번째는 안 맞았다. 배가 마지막에 방향을 틀었다.

틀 수 있었던 것은 첫 발이 맞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물기둥이 오르면 그때부터는 다 안다.

첫 발과 둘째 발 사이를 더 좁힐 수 있다. 좁히면 둘 다 맞고 어뢰 둘을 한 배에 쓴다. 넓히면 하나를 아끼는 대신 하나가 빗나간다.

윤재는 40초로 잡았다. 잡을 때 이유가 있었고 지금은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한 발이 맞았고 배는 가라앉는 데 40분이 걸렸다.

0847.

호위함이 왔다.

지완이 그것을 들었다. 방위가 빠르게 변했다.

“…옵니다. 속력 24노트입니다.”

“심도.”

“180입니다.”

“240으로.”

배가 아래로 기울었다. 벽에서 물 도는 소리가 났다.

0902.

폭뢰가 아니었다. 대잠 어뢰였다.

두 발이 들어왔다. 첫 번째는 뒤로 지나갔고 두 번째는 옆으로 지나갔다.

지나가는 소리는 높다. 가까울수록 높다.

두 번째 것이 지나갈 때 윤재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잡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손을 떼고 나서 손바닥에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자국이 없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발령소에서 아무도 위를 보지 않았다. 볼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보면 서로 얼굴을 보게 되기 때문이었다.

1140.

세 시간 뒤에 소리가 멀어졌다.

함장이 발령소를 나갔다. 나가면서 한 마디만 했다.

“식사 올려.”

1215.

식당에 스물두 명이 앉았다. 교대라 절반이다.

조리 담당은 오 하사였다. 스물여섯 살이고 배에서 두 번째로 어리다.

오늘 식단은 카레였다. 잠수함에서 카레를 하는 이유가 있다. 냄새가 세서 다른 냄새를 덮는다. 사흘 넘게 잠항하면 배 안에 사람 냄새가 쌓인다.

그리고 카레는 숟가락 하나로 먹는다. 반찬 그릇을 여러 개 안 쓴다. 설거지 물이 준다.

물은 만들 수 있지만 만들려면 전기가 든다. 전기는 전지에서 나온다.

스물두 명이 앉았는데 그릇이 열여덟 개만 나갔다.

넷은 안 받았다.

1231.

윤재도 안 받았다.

받으려고 줄에 섰다가 그냥 나왔다. 그 40분 동안 배 하나가 가라앉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소리로 들으면 배가 가라앉는 데 40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고 나면 잊히지 않는다.

1305.

오 하사가 발령소로 왔다.

손에 그릇 하나를 들고 있었다.

“…부장님.”

“…무슨 일인가.”

“이거 드십시오.”

“…나중에 먹겠네.”

“카레 아닙니다.”

윤재가 그릇을 봤다.

흰죽이었다.

“…이건 언제 만들었나.”

“아까 만들었습니다.”

“…카레 하면서.”

“예.”

1312.

“오 하사.”

“예.”

“몇 그릇 만들었나.”

“…넷입니다.”

윤재는 그 숫자를 들었다.

식당에서 안 받은 사람이 넷이었다.

“…어떻게 알았나.”

“…열이틀 전에도 넷이었습니다.”

“…….”

“그때 누구였는지도 압니다. 셋은 같은 사람입니다.”

1330.

윤재는 발령소 구석에서 죽을 먹었다.

따뜻했다. 카레보다 따뜻했다. 카레는 큰 솥에 오래 있어서 겉만 뜨겁다.

먹으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건 안 됐다.

다 먹고 그릇을 내려놨다.

그릇 바닥에 죽이 조금 남아 있었다. 오 하사가 그것을 안 보고 가져갔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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