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64자) · 강윤재 · 6월 5~8일

12분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방위 210의 것은 컸다⁠. 축은 하나인데 날개가 여섯이었고⁠, 날개가 많으면 한 바퀴 도는 소리가 잘게 갈렸다⁠. 지완은 그 잘게 갈린 소리를 세어 회전수를 뽑았고⁠, 회전수에서 속력을 뽑았다⁠. 12노트⁠, 침로 040⁠, 해안 쪽이었다⁠.

“⁠큰 상선입니다⁠. 화물선 아니면 유조선입니다⁠.⁠”

함장이 해도 위에 손을 얹었다⁠. 40시간 뒤면 닿을 거리였다⁠.

한 점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소리가 오는 방향만 알 뿐 얼마나 먼지는 모르기 때문에⁠, 배가 자리를 옮겨 가며 여러 곳에서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리가 셋이 되면 삼각형이 생기고⁠, 삼각형이 생기면 거리가 나왔다⁠. 옮기는 동안은 조용해야 했다⁠. 우리 소리가 저쪽 소리를 덮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신채호함은 오후와 밤을 들여 그 삼각형을 세 번 그렸다⁠.

6월 5일 0210에 표적 제원이 확정됐다⁠. 만재 1만 8천 톤⁠, 침로 040⁠, 속력 12노트⁠, 호위 없음⁠.

“⁠호위가 없습니다⁠.⁠”

“⁠붙일 게 없거나⁠, 안 붙여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둘 중 하나야⁠.⁠”

“⁠안 붙여도 된다는 건⁠, 이 바다에 우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겁니까⁠?⁠”

함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윤재는 어제 아침에 읽은 요약의 마지막 줄을 떠올렸다⁠. 우리가 없다고 적어 놓은 것을 저쪽도 믿고 있었다⁠.

*

0244에 함장이 사격을 결심했다⁠.

“⁠1번⁠, 2번 어뢰 준비⁠.⁠”

중어뢰는 관을 나간 뒤에도 가느다란 유선으로 배에 묶여서 간다⁠. 실이 풀리듯 선이 풀려 나가고⁠, 그 선으로 배가 계속 방향을 준다⁠. 선이 끊기면 어뢰는 혼자 판단하고⁠, 혼자 판단한 어뢰는 엉뚱한 것을 문다⁠. 그래서 쏘고 나서도 배는 함부로 못 움직였다⁠. 어뢰가 표적을 스스로 잡기 전까지는 어뢰가 배를 묶어 두었다⁠.

관에 물을 채우는 소리가 났다⁠. 관 안을 바닷물로 채워 바깥과 압력을 맞추는 소리였는데⁠, 배 안에서는 욕조에 물을 받는 소리처럼 꽤 오래 들렸다⁠. 지완이 헤드폰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거리 1만 4천입니다⁠.⁠”

“⁠발사⁠.⁠”

0251에 1번이 나갔다⁠. 압축 공기가 밀어내는 짧은 소리와 함께 배가 아주 살짝 흔들렸는데⁠, 사람이 팔을 한 번 뻗는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2번이 뒤를 따랐다⁠.

1만 4천 미터를 가는 데 12분이 걸렸다⁠. 빨리 가면 시끄럽고 조용히 가면 느렸다⁠. 오늘은 조용한 쪽을 골랐다⁠. 12분 동안 발령소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훈련 때는 그 시간에 계기를 보라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다들 자기 손을 봤다⁠. 윤재는 그 12분 동안 저쪽 배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동안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어뢰 소나 작동 3분 전입니다⁠.⁠”

0303에 지완이 말했다⁠.

“⁠명중입니다⁠. 두 번째도 들어갔습니다⁠. 선체 파열음 들립니다⁠.⁠”

배가 부서지는 소리는 폭발음이 아니었다⁠. 폭발은 짧았고 그다음이 길었다⁠. 쇠가 휘는 소리와 격벽이 밀리는 소리와 물이 빈 곳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소리가 몇 분 동안 이어졌고⁠, 기울어진 배 안에서 실려 있던 것들이 한쪽으로 쏟아지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소나는 사람이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똑같이 잘 들었다⁠.

0311에 소리가 잦아들었다⁠. 1만 8천 톤이 물속으로 내려가는 데 8분이 걸렸다⁠.

훈련에서는 명중하면 다들 좋아한다⁠. 소리를 내지는 않아도 어깨가 풀린다⁠. 오늘은 아무도 어깨가 풀리지 않았다⁠. 조타장은 손잡이를 놓지 않았고⁠, 조타수는 볼 것 없는 계기를 계속 봤으며⁠, 함장은 식은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가 입에 대지 않고 도로 놓았다⁠.

“⁠부장⁠, 기록해⁠.⁠”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어제 함장이 쉰세 개의 이름을 적어 넣은 바로 그 일지였다⁠. 0251 어뢰 발사 2발⁠, 0303 명중⁠, 0311 표적 침몰⁠. 세 줄이었다⁠.

“⁠함장님⁠, 저 배에 사람이 몇 명 탔겠습니까⁠?⁠”

“⁠그거 지금 물으면 안 돼⁠.⁠”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물으면 자네가 다음 것을 못 쏴⁠. 나중에 물어⁠. 나중에는 꼭 물어야 하고⁠.⁠”

윤재는 펜을 내려놓았다⁠. 반대할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0320에 침로를 바꿨다⁠. 같은 자리에 오래 있으면 안 되었다⁠. 소리가 난 곳으로 저쪽이 온다⁠.

지완이 헤드폰을 다시 썼다⁠. 윤재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이상한 것을 알아챘다⁠. 지완이 침몰음이 아직 조금 남아 있는 방위로 화면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쪽을 안 듣고 있었다⁠. 윤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기도 그쪽을 보지 않았다⁠.

*

052D가 침몰 해역에 닿은 것은 0540이었다⁠.

해가 뜨기 직전이라 바다는 회색이었고⁠, 물 위에 기름띠가 넓게 번져 무지갯빛 막이 파도를 따라 접혔다 펴졌다⁠. 탐조등이 그 막을 훑을 때마다 부서진 널빤지와 구명조끼 하나와 뒤집힌 플라스틱 상자들이 빛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매캐한 연유 냄새가 함교 창문 틈으로 들어왔다⁠.

리 첸 중령은 함교 날개에 나가 서 있었다⁠. 난간이 이슬에 젖어 차가웠다⁠.

“⁠생존자⁠, 우현 30도 둘입니다⁠.⁠”

보트가 내려갔다⁠. 건져 올린 사람은 둘이었다⁠. 하나는 기관원 궈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필리핀에서 온 갑판원 레예스였다⁠. 둘 다 온몸이 기름에 절어 눈만 하얗게 남아 있었다⁠. 승선 명단에 스물셋이 있었고⁠, 스물셋 가운데 둘이었다⁠.

리 첸은 담요를 두른 궈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뢰가 오는 소리를 들었나⁠?⁠”

궈원은 이가 부딪혀 말을 잘 못 했다⁠. 한참 만에 대답했다⁠.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배가 두 번 들렸습니다⁠. 한 번 들리고⁠, 한 번 더 들리고⁠, 그다음엔 불이 나갔습니다⁠.⁠”

“⁠호위는 없었나⁠?⁠”

“⁠없었습니다⁠.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이 바다엔 아무것도 없다고⁠.⁠”

부하 하나가 뒤에서 말했다⁠. 참모 저우 소령이었다⁠.

“⁠기뢰일 수도 있습니다⁠. 표류 기뢰가 이 항로에 흘러들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기뢰는 두 번 들지 않아⁠.⁠”

저우 소령이 한 번 더 말했다⁠.

“⁠그러면 미국 잠수함입니다⁠. 동쪽에서 넘어온 겁니다⁠.⁠”

“⁠미국 것이면 이렇게 가까이 안 와⁠. 멀리서 쏘고 멀리 가지⁠. 이건 들어와서 기다렸다가 쐈어⁠.⁠”

“⁠누구 것이든 교범대로 해역을 넓게 쓸면 됩니다⁠. 소노부이 쉰 개면 이 구역은 덮습니다⁠.⁠”

리 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레예스가 담요 속에서 무어라 중얼거렸는데 영어였다⁠. 통역병이 옮겼다⁠. 식당에 있던 요리사가 아직 안 나왔다고⁠, 그 사람이 자기한테 담배 한 갑을 빌려 갔다고 했다⁠.

리 첸은 일어나 함교로 돌아갔다⁠. 항해일지를 펴고 만년필 뚜껑을 이로 물어 뺐다⁠. 그리고 적었다⁠. 잠수함 1⁠, 국적 미상⁠, 매우 조용함⁠, 어뢰 소리 들은 사람 없음⁠.

그는 마지막 구절 밑에 줄을 그었다⁠. 교관 시절 그는 생도들에게 들리지 않는 잠수함은 없다고 가르쳤다⁠. 여섯 해 동안 그렇게 가르쳤다⁠. 기름띠 위로 해가 올라왔다⁠.

*

사흘 뒤인 6월 8일 1420에 함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심도 120에서 저속으로 가고 있었다⁠.

“⁠부장⁠, 그때 물었던 거⁠. 이제 물어도 돼⁠.⁠”

사흘 동안 세 번 자리를 옮겼고 두 번 소리를 피했다⁠. 한 번은 상선이었고 한 번은 정체를 못 잡았다⁠. 정체를 못 잡은 것은 기록에 물음표로 남았다⁠. 물음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몇 달 뒤에 누가 그 기록을 펴 보면⁠, 그날 거기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만 알고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모를 것이다⁠. 그 사흘 동안 승조원들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원래도 조용한 배였지만 결이 달랐다⁠. 말을 안 하는 것과 말을 못 하는 것은 달랐다⁠.

“⁠몇 명이었습니까⁠?⁠”

“⁠정확히는 몰라⁠. 그 급 화물선 정원이 스물에서 스물다섯이야⁠. 큰 배가 사람은 적어⁠.⁠”

“⁠다 죽었겠습니까⁠?⁠”

“⁠밤이었고⁠, 두 발 맞았고⁠, 8분에 갔어⁠. 자네가 계산해⁠.⁠”

윤재는 계산하지 않았다⁠. 계산은 이미 되어 있었다⁠. 사흘 동안 자다가 두 번 깼는데 두 번 다 그 숫자였다⁠. 배가 기울면 구명정은 한쪽으로만 내린다⁠. 위로 들린 쪽은 못 내리고 아래로 내려간 쪽은 이미 물이다⁠. 윤재는 그것을 학교에서 사람을 구하는 법으로 배웠는데⁠, 지금은 반대쪽에서 쓰이고 있었다⁠.

1500에 함장이 방송을 켰다⁠. 사흘 만에 두 번은 많았다⁠.

“⁠전 승조원⁠, 함장이다⁠. 사흘 전 0303에 우리가 친 배는 만재 1만 8천 톤 화물선이었다⁠. 상륙군에게 갈 보급을 싣고 있었다⁠. 우리가 한 일은 옳다⁠. 그건 내가 보장한다⁠.⁠”

함장이 잠깐 쉬었다⁠.

“⁠그 배에 사람이 스물에서 스물다섯 명 타고 있었다⁠. 대부분 선원이고 군인이 아니다⁠. 그중에는 중국 사람이 아닌 사람도 있었을 거다⁠. 나는 여러분이 이 숫자를 알기를 바란다⁠. 모르고 하면 다음에 더 쉽게 한다⁠. 우리는 이 일을 앞으로 여러 번 더 한다⁠. 여러 번 하되 쉬워지지는 말자⁠. 이상⁠.⁠”

발령소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윤재는 조타수를 봤다⁠. 스물세 살이었다⁠. 방송이 꺼지고 8분 동안 발령소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윤재는 그 8분 동안 함장의 손을 봤다⁠. 방송 수화기를 걸이에 거는 데 두 번이 걸렸다⁠. 처음에는 걸이 옆 벽을 짚었고⁠, 두 번째에 제자리를 찾았다⁠. 함장은 걸고 나서 손을 작업복 바지에 한 번 문질렀다⁠. 땀이 나는 방이 아니었다⁠. 발령소 온도는 늘 19도였다⁠.

*

1530에 지완이 윤재에게 왔다⁠.

“⁠부장님⁠, 그날 침몰음 방위요⁠. 제가 그쪽 안 들었습니다⁠. 기계는 사람 소리도 그냥 소리로 듣는데⁠, 저는 사람이라서요⁠.⁠”

“⁠알고 있었어⁠.⁠”

“⁠안 들은 게 잘못입니까⁠?⁠”

발령소 부사관이 임무 중에 특정 방위를 일부러 안 들었다⁠. 규정으로 따지면 잘못이었다⁠. 그 방위에서 다른 것이 나올 수도 있었다⁠.

“⁠잘못이야⁠. 그런데 나도 안 봤어⁠. 그러니까 나도 잘못했고⁠, 자네는 나한테 말했고⁠, 나는 지금 그걸 들었어⁠.⁠”

윤재는 항해일지를 펴서 그날 자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0311 이후 방위 210 청음 공백 약 4분⁠, 담당 부사관 및 부장 판단⁠.

지완은 그 줄을 오래 내려다봤다⁠. 헤드폰 줄이 손가락에 두 번 감겨 있었는데⁠, 지완은 그것을 풀지 않고 더 조였다⁠.

“⁠이거 적으시면 곤란해지십니다⁠.⁠”

“⁠다음에 자네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을 때 이 줄을 보면 알 거야⁠. 여기서 그런 적이 있었다는 거⁠. 자기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거⁠.⁠”

1600에 새 정세 요약이 들어왔다⁠. 윤재는 마지막 줄부터 읽는 버릇이 생겨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문장이 있었다⁠. 이 해역에 우군 잠수함 없음⁠. 그 위에 한 줄이 더 있었다⁠. 대만 서안 해상 보급 유입량 전주 대비 감소⁠.

우리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고⁠, 우리가 한 일은 숫자로 남아 있었다⁠. 윤재는 그 종이를 접어서 항해일지 사이에 끼웠다⁠.

일지를 덮자 접힌 종이 모서리가 한 치쯤 밖으로 삐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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