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12분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방위 210의 것은 컸다.

“축이 몇 개야?”

“…하나입니다. 그런데 날개가 많습니다.”

“몇 개인데.”

“여섯입니다.”

지완이 헤드폰 한쪽을 밀어 올렸다.

“큰 상선입니다. 부장님. 이거 화물선 아니면 유조선입니다.”

큰 배는 축이 하나고 날개가 많다. 날개가 많으면 한 바퀴 도는 데 나는 소리가 잘게 갈린다. 그 잘게 갈린 소리를 세면 축이 몇 바퀴 도는지 나오고, 축 회전수를 알면 속력이 나온다.

“속력.”

“12노트입니다.”

“침로.”

“…040입니다. 해안 쪽입니다.”

함장이 해도 위에 손을 얹었다.

“40시간 뒤면 닿겠네.”

제원을 잡는 데 2시간이 걸렸다.

한 점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소리가 나는 방향만 알 뿐 얼마나 먼지는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옮겨 가면서 여러 자리에서 같은 소리를 듣는다. 자리가 셋이 되면 삼각형이 생기고, 삼각형이 생기면 거리가 나온다.

옮겨 가는 동안은 조용해야 한다. 우리가 내는 소리 때문에 저쪽 소리가 묻히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2시간 동안 신채호함은 세 번 자리를 바꿨다.

0210에 표적 제원이 확정됐다.

만재 1만 8천 톤. 침로 040. 속력 12노트. 호위는 없었다.

호위가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상륙군 보급선이면 뒤에 초계함이 붙는다.

“…함장님. 호위가 없습니다.”

“그러네.”

“왜 없겠습니까?”

“두 가지야. 붙일 게 없거나, 안 붙여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안 붙여도 된다는 건.”

“이 바다에 우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윤재는 아침에 읽은 그 줄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가 없다고 적어 놓은 것을 저쪽도 믿고 있었다.

0244에 함장이 사격을 결심했다.

“어뢰 준비. 1번, 2번.”

“1번, 2번 준비.”

중어뢰는 발사관에서 나간 다음 유선으로 연결된 채로 간다. 실이 풀리듯이 선이 풀려 나가고, 그 선으로 우리가 계속 방향을 준다.

선이 끊기면 어뢰가 혼자 판단한다. 혼자 판단하면 엉뚱한 것을 문다.

그래서 쏘고 나서도 배가 함부로 못 움직인다. 선이 끊기지 않게 속력과 침로를 지켜야 한다.

쏘는 쪽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어뢰가 표적을 스스로 잡은 다음이다. 그전까지는 어뢰가 우리를 묶어 둔다.

발사관에 물을 채우는 소리가 났다. 발사 전에 관 안을 바닷물로 채워 바깥과 압력을 맞춘다. 그 소리가 배 안에서는 꽤 크게 들린다.

지완이 헤드폰을 눌렀다. 우리 소리가 자기 귀를 때리기 때문이다.

“거리.”

“1만 4천입니다.”

“유효 사거리 안이야.”

“예.”

“발사.”

0251에 1번이 나갔다.

발사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압축 공기가 밀어내는 소리와 배가 아주 살짝 흔들리는 것뿐이다. 사람이 팔을 뻗는 정도의 움직임이다.

“1번 발사. 정상.”

“2번 발사.”

“2번 발사. 정상.”

윤재는 시계를 봤다.

1만 4천 미터를 어뢰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속력에 따라 다르다. 조용히 가면 느리고, 빨리 가면 시끄럽다. 오늘은 조용히 가는 쪽을 골랐다.

12분이었다.

12분 동안 발령소에서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어뢰는 처음에는 우리가 준 방향으로만 간다. 표적 근처에 가면 자기 소나를 켠다. 그때부터는 어뢰가 스스로 찾는다.

켜는 순간이 중요하다. 너무 일찍 켜면 저쪽이 알아채고 도망가거나 기만기를 뿌린다. 너무 늦게 켜면 못 찾는다.

“…소나 작동 시점 3분 남았습니다.”

“알았어.”

윤재는 그때 저쪽 배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은 이미 생각했다는 뜻이다.

윤재는 그 12분에 무엇을 하는지 처음 배운 날을 기억했다. 훈련 때는 계기를 본다고 배웠다. 실제로는 계기를 안 본다. 다들 자기 손을 본다.

0303에 지완이 말했다.

“…명중입니다.”

소리는 났다. 멀고 낮은 소리가 한 번, 그다음에 다른 소리가 이어졌다.

“두 번째도 들어갔습니다.”

“…….”

“선체 파열음 들립니다.”

윤재는 그 소리를 들었다. 배가 부서지는 소리는 폭발음이 아니다. 폭발은 짧고, 그다음이 길다.

쇠가 휘는 소리, 격벽이 밀리는 소리, 물이 빈 곳으로 들어가는 소리. 그것이 몇 분 동안 이어진다.

배는 한 번에 가라앉지 않는다. 물이 들어간 칸부터 무거워지고, 무거워진 쪽으로 기울고, 기울면서 안에 있던 것들이 한쪽으로 쏟아진다.

쏟아지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소나는 우리가 안 듣고 싶은 것도 똑같이 잘 듣는다.

1만 8천 톤이 물속으로 내려가는 데 걸린 시간을 윤재는 나중에 계산해 봤다. 8분이었다.

“…침몰 진행 중입니다.”

0311에 소리가 잦아들었다.

발령소가 조용했다.

훈련에서는 명중하면 다들 좋아한다.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어깨가 풀린다.

오늘은 아무도 어깨가 안 풀렸다.

“…부장.”

“예. 함장님.”

“기록해.”

“…예.”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오늘 아침에 함장이 쉰세 개의 이름을 적어 넣은 그 일지였다.

0251 어뢰 발사 2발. 0303 명중. 0311 표적 침몰.

세 줄이었다.

윤재는 그 세 줄을 적고 펜을 놓았다.

“함장님.”

“왜?”

“…저 배에 사람이 몇 명 탔겠습니까?”

함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부장. 그거 지금 물으면 안 돼.”

“…예.”

“지금 물으면 자네가 다음 것을 못 쏴.”

“…….”

“나중에 물어. 나중에는 물어야 하고.”

0320에 침로를 바꿨다.

같은 자리에 오래 있으면 안 된다. 소리가 난 곳으로 저쪽이 온다.

배가 천천히 돌았다. 발령소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지완이 헤드폰을 다시 썼다.

윤재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이상한 것을 알아챘다. 지완이 소리 나는 쪽으로 화면을 안 돌리고 있었다.

침몰음이 아직 조금 남아 있는 방위였다.

지완은 그쪽을 안 듣고 있었다.

윤재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자기도 그쪽을 안 봤다.

사흘 뒤에 함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부장. 그때 물었던 거.”

“…예.”

“이제 물어도 돼.”

1420이었다. 심도 120에서 저속으로 가고 있었다.

사흘 동안 세 번 자리를 옮겼고 두 번 소리를 피했다. 한 번은 상선이었고 한 번은 정체를 못 잡았다.

정체를 못 잡은 것은 기록에 물음표로 남는다. 물음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몇 달 뒤에 누가 그 기록을 보면 그날 여기에 뭔가가 있었다는 것만 알게 된다.

그 사흘 동안 승조원들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원래도 조용한 배인데 결이 달랐다.

말을 안 하는 것과 말을 못 하는 것은 다르다.

윤재는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물었다. 실제로 사흘 동안 준비했다.

“…몇 명이었습니까?”

“정확히는 몰라.”

“…….”

“그런데 그 급 화물선 정원이 스물에서 스물다섯이야.”

“…스물이요?”

“응. 큰 배가 사람은 적어.”

윤재는 그 숫자를 생각했다. 1만 8천 톤에 스물몇 명.

“다 죽었겠습니까?”

“모르지.”

“…….”

“밤이었고, 두 발 맞았고, 8분에 갔어. 자네가 계산해.”

윤재는 계산하지 않았다.

계산은 이미 되어 있었다. 사흘 동안 자다가 두 번 깼고, 두 번 다 그 숫자였다.

배가 8분에 갔다는 것은 사람이 나올 시간이 8분이었다는 뜻이다. 밤이고, 기울고 있고, 전기가 나갔을 것이다.

구명정은 대개 한쪽에만 내릴 수 있다. 배가 기울면 위로 올라간 쪽은 못 내리고 아래로 내려간 쪽은 이미 물이다.

이런 것을 윤재는 학교에서 배웠다. 사람을 구하는 법으로 배웠는데, 지금은 반대쪽에서 쓰이고 있었다.

1500에 함장이 발령소에 방송을 켰다.

두 번째였다. 사흘 만에 두 번은 많은 것이다.

“전 승조원. 함장이다.”

윤재는 함장을 봤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고,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고, 하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사흘 전 0303에 우리가 친 배 이야기를 하겠다.”

배가 조용해졌다.

“만재 1만 8천 톤 화물선이었다. 상륙군에게 갈 보급을 싣고 있었다. 그 보급이 닿았으면 대만 서안에서 우리 편이 아닌 쪽이 며칠 더 버텼을 거다.”

“…….”

“그러니까 우리가 한 일은 옳다. 그건 내가 보장한다.”

함장이 잠깐 쉬었다.

“그 배에 사람이 스물에서 스물다섯 명 타고 있었다.”

발령소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대부분 선원이다. 군인이 아니다. 계약해서 타는 사람들이고, 그중에는 중국 사람이 아닌 사람도 있었을 거다. 그 항로는 원래 그렇다.”

윤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큰 배는 국적과 선주와 선원이 다 다르다. 배는 한 나라 깃발을 달고, 주인은 다른 나라에 있고, 타는 사람은 또 다른 나라에서 온다.

전쟁이 나면 그 셋 중 어느 것을 보고 치는지가 정해진다. 우리는 화물을 보고 쳤다.

화물을 보고 치는 것은 규칙에 맞다. 규칙에 맞는 것과 마음에 남는 것은 별개다.

윤재는 조타수를 봤다. 스물세 살이었다. 계기를 보고 있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숫자를 알기를 바란다.”

“…….”

“모르고 하면 다음에 더 쉽게 한다. 더 쉬워지면 사람이 달라진다.”

“…….”

“우리는 이 일을 앞으로 여러 번 더 한다. 여러 번 하되 쉬워지지는 말자.”

방송이 끊겼다.

1508이었다.

윤재는 그 8분 동안 발령소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은 것을 봤다.

1530에 지완이 윤재에게 왔다.

“부장님.”

“응.”

“그날 침몰음 방위요.”

“…….”

“제가 그쪽 안 들었습니다.”

윤재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

“소나가 그런 걸 잘 듣습니다.”

“…….”

“기계는 사람 소리도 그냥 소리로 듣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이라서요.”

지완이 잠깐 멈췄다.

“그날 제가 안 들은 게 잘못입니까?”

윤재는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발령소 부사관이 임무 중에 특정 방위를 의도적으로 안 들었다. 규정으로 따지면 잘못이다. 그 방위에서 다른 것이 나올 수도 있었다.

“…잘못이야.”

“…예.”

“그런데 나도 안 봤어.”

“…….”

“그러니까 나도 잘못했고, 자네는 나한테 말했고, 나는 지금 그걸 들었어.”

윤재는 항해일지를 폈다.

그날 자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0311 이후 방위 210 청음 공백 약 4분. 담당 부사관 및 부장 판단.

“…부장님. 이거 적으시면.”

“적어야 돼.”

“…….”

“다음에 자네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을 때, 그 사람이 이 줄을 보면 알거든.”

“뭘 압니까?”

“여기서 그런 적이 있었다는 거. 그러니까 자기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거.”

지완은 아무 말도 안 했다.

1544에 통신 부상을 했다.

부상은 위험하다. 안테나만 내놓는 것이라도 그 몇 분은 보인다. 그래서 하루에 정해진 창에만 한다.

18분이었다. 그 18분 동안 배는 심도 20에서 아주 느리게 갔다.

1600에 새 정세 요약이 들어왔다.

윤재는 마지막 줄부터 읽는 버릇이 생겼다.

이번에도 같은 문장이 있었다. 이 해역에 우군 잠수함 없음.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대만 서안 해상 보급 유입량 전주 대비 감소.

윤재는 그 두 줄을 나란히 봤다.

우리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고, 우리가 한 일은 숫자로 남아 있었다.

윤재는 그 종이를 접어서 항해일지 사이에 끼웠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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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분 ·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나오늘 AI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