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80자) · 강윤재 · 6월 3~4일
바이라인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6시간 가운데 네 시간이 지났다. 두 접촉은 같은 방위에 겹친 채로 서쪽으로 갔고, 지완은 그 네 시간 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식은 커피는 잔 바닥에 갈색 테를 남기고 반쯤 말라 있었다.
1012에 지완이 손을 들었다.
“분리됐습니다. 방위 변화율이 다릅니다. 앞엣것은 그대로고 뒤엣것이 처집니다.”
“제원 불러.”
“거리 3만 1천, 침로 095, 속도 8노트입니다.”
윤재는 해도대에서 손을 멈췄다. 짐배가 12노트로 가는데 뒤엣것은 8노트였다.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오가면서 짐배 뒤쪽 물을 훑고 있었다. 따라가는 배가 아니라 지키는 배였다.
함장이 발령소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자다 온 얼굴이 아니었다.
“몇 시간 걸렸어?”
“네 시간입니다. 저쪽이 조용해서 오래 걸렸습니다.”
함장이 화면을 봤다. 두 줄이 벌어져 있었고, 벌어진 만큼이 네 시간이었다.
“보고 올린다. 이거 갖고 나가야 다음 배는 다른 애가 잡아. 우리만 알고 있으면 아무 소용 없어.”
“지금 부상하면 저쪽 뒤엣것이 우리 쪽으로 옵니다.”
“그것도 알아.”
함장이 커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이 배에서 그것은 결정이었다.
*
1031에 부상을 시작했다. 얕은 물로 올라가자 파도가 선체를 옆으로 밀었고, 180미터 아래에서는 느낄 수 없던 흔들림이 발밑에서 올라왔다. 수면 가까이에서는 바다 소리가 달랐다. 깊은 데서 낮게 깔리던 잡음이 흩어지고, 대신 물결이 선체를 치는 소리와 먼 데 빗줄기 같은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지완은 그 소리들 사이에서 뒤엣것이 방향을 트는지를 들었다.
부상은 17분 50초가 걸렸다. 안테나를 올리고 위성을 잡고 압축 전문을 2분 만에 쏘았으며, 받는 데 6분이 걸렸다. 받은 것은 두 통이었다. 작전 전문은 짧았다. 접촉 제원 수신, 해당 항로 계속 감시, 교전 승인 유지.
다른 하나는 정세 요약이었고 길었다. 물속에 오래 있는 배에는 세상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따로 보내 준다. 윤재가 소리 내어 읽었다. 발령소에서 그것을 듣는 것이 이 배의 유일한 뉴스였다.
“유럽. 수바우키 회랑 남쪽 입구 골다프 일대에서 폴란드 제16기계화사단 예하 여단이 보름 넘게 버티고 있음. 리투아니아 방면 육로는 하루 6시간만 열림. 잔류 주민 추정 200명 이하.”
“잔류라는 건 안 나갔다는 겁니까?”
“못 나간 거지.”
조타장이 입을 다물었다. 윤재는 다음 줄로 갔다.
“대만. 상륙 병력 일일 소요 충족률 60퍼센트 이하로 추정. 대만 서해안 해저 케이블 2개 절단, 섬 인터넷 전면 두절.”
발령소가 잠깐 조용해졌다. 지완이 헤드폰을 한쪽만 벗었다.
“섬 전체가요?”
“전체라고 적혀 있어.”
윤재는 그 줄을 한 번 더 봤다. 케이블은 바다 밑에 깔린다. 누가 끊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바다 밑을 다니는 것이 이 배만은 아니었다. 전화가 끊긴 섬에서 사람들은 해안에 무엇이 내렸는지를 옆집 사람의 입으로 듣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우리 쪽이야. 무인 전력대 운용 개시. 해당 해역 무인 잠수정 두 척 투입. 진해에서 몰고, 통제관은 오서진 대위.”
“진해에서 몬다고요? 배는 여기 있고 사람은 거기 있는 겁니까?”
“위성으로 명령 넣고 결과를 받아.”
“그러면 저희가 그거하고 헷갈리면 어떻게 합니까?”
“식별 신호가 있어.”
“그게 안 오면요?”
윤재는 대답하지 않고 다음 줄을 읽었다.
“한반도. 서부 전선 국지 교전 계속, 전면 확전 징후 없음. 중동. 호르무즈 봉쇄 21일째, 유가 배럴당 210달러. 태평양. 미 항모타격단 필리핀해 복귀 확인.”
지완이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름값 걱정을 잠수함에서 하고 있습니다.”
“넌 차 있어?”
“진해에 세워 놨습니다. 6년 된 겁니다.”
“그럼 걱정 안 해도 돼. 그건 기름 넣어도 안 굴러가.”
조타장이 웃었고, 지완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꼬리만 한쪽으로 올렸다. 함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거 틀렸어. 어제 받은 거랑 달라. 중동에 잔류라고 왔었어.”
“복귀 명령이 난 건 사실일 겁니다. 복귀했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고요. 기자가 받은 게 그것뿐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저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항모가 온 줄 알겠네.”
“알겠죠. 그리고 안 오면 기자가 틀린 게 됩니다.”
정세 요약에는 출처가 붙어 있었다. 통신사 기사를 그대로 줄인 것이었고, 끝에 이름이 있었다. 서울통신 배소현, 바르샤바.
윤재는 그 줄에서 잠깐 멈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이를 쥔 엄지가 그 이름 위에 한 번 얹혔다가 비켜났다.
“부장, 잠항하자.”
“예. 잠항 준비.”
안테나가 내려갔다. 배가 다시 아래로 기울었고 커피잔 표면이 한쪽으로 밀렸다가 돌아왔다. 심도 180에서 멈췄다.
한 시간쯤 지나서 지완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그 기자, 바르샤바에 있답니다. 기사 끝에 어디서 썼는지 씁니다. 골다프에서 바르샤바까지 300킬로쯤 됩니다.”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까운 편입니다.”
“…그러네.”
윤재는 요약지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작전 전문은 일지 사이에 끼웠고, 정세 요약은 네 번 접어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단추를 채우고 나서 한 번 손바닥으로 눌렀다. 지완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화면만 보고 있었다.
*
윤재가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은 요약의 마지막 줄이었다. 대만 해협 및 인근 해역 내 우군 잠수함 없음.
정세 요약은 하루에 한 번 각 함에 뿌린다. 뿌리는 쪽에서는 큰 그림을 준다고 생각하고 뿌리는데, 받는 쪽에서 그 큰 그림에 자기가 안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자주 없다. 윤재는 그 줄을 세 번 읽었다.
이튿날인 6월 4일 0620에 윤재는 함장실로 갔다. 함장실은 사람 둘이 서면 무릎이 닿는 방이었고, 벽에 붙은 접이식 책상 위에 연료전지 잔량표가 연필 글씨로 빼곡했다.
“봤나?”
“예. 조금 놀랐습니다.”
“부장,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라고 생각하나?”
“작전 계통이면 열 명 안쪽 아니겠습니까?”
“여덟이야. 그중에 셋은 사흘에 한 번만 확인하고.”
윤재는 계산해 봤다. 최악이면 사흘이었다. 우리가 없어지면 사흘 뒤에야 누가 알아챘다.
“승조원들한테 알리실 겁니까?”
“자네 생각은?”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알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배 안에서는 사람이 한 번 가라앉으면 올라올 데가 없습니다.”
함장이 잔을 내려놓았다.
“맞는 말이야. 그래도 나는 반대야. 모르고 타는 것과 알고 타는 것은 달라. 모르고 탄 사람은 나중에 속았다고 생각해.”
“속인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안 알려 준 것도 속인 거야. 여기서는.”
윤재는 한 번 더 버텼다.
“그래도 방송은 배 전체를 흔듭니다. 스물몇 살짜리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들은 말이 내일 청음 당직에서 손을 떨게 할 수 있습니다.”
“떨겠지. 떨면 옆 사람이 알아. 모르고 떠는 것보다 나아.”
함장은 거기서 말을 끊고 잔량표 맨 아래 칸을 연필로 톡톡 두드렸다. 윤재는 더 말하지 않았다. 반대한 사람이 반대를 다 말했으니 이제 결정한 사람이 책임지면 되는 일이었다.
*
0710에 함장이 함내 방송을 켰다. 방송은 잘 안 쓴다. 소리가 배 밖으로 나가지는 않지만 버릇을 만들면 안 되기 때문에 급할 때 쓰려고 아껴 둔다. 그래서 스피커에서 나는 작은 잡음 하나만으로도 배 전체가 하던 것을 멈췄다.
“전 승조원, 함장이다. 오늘 받은 정세 요약 마지막 줄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이 해역에 우군 잠수함이 없다.”
발령소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문장은 틀린 게 아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적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적은 거다. 다만 그 말은, 우리가 없어져도 며칠 동안은 아무도 안 찾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
0713에 방송이 꺼졌다. 윤재는 발령소를 둘러봤다. 여덟 명이 있었고 아무도 서로를 안 봤다. 조타수는 볼 것이 없는 계기를 보고 있었고, 기관 쪽 하사는 아까까지 무언가를 만지던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스물몇 살짜리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윤재는 알 수 없었다.
식당에서는 오 하사가 점심 쌀을 씻던 손을 멈추고 있었다고, 나중에 조타장이 전했다. 물이 담긴 양푼 안에서 쌀뜨물이 뿌옇게 가라앉는 동안 오 하사는 방송이 끝나고도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고, 그러다가 쌀을 다시 씻었는데 평소보다 오래 씻었다고 했다.
지완이 소나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부장님, 그러면 지금 우리 이름은 어디에 있습니까?”
“승조원 명부에 있지.”
“그 명부는 어디에 있습니까?”
“진해에.”
“진해에 있는 종이에 있고, 여기 있는 어디에도 없는 겁니까?”
윤재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지완은 더 묻지 않고 화면을 다시 봤다.
*
1140에 함장이 발령소로 와서 항해일지를 달라고 했다. 항해일지는 매 시각 심도와 침로와 속력을 적는 책이고, 그것 말고는 적을 칸이 별로 없다. 함장은 그날 자 아래쪽 빈 곳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윤재가 보니 이름이었다.
“함장님.”
“가만있어.”
함장은 계급과 이름과 직별을 차례로 적었다. 명부는 가져오지 않았다.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발령소에서 제일 큰 소리였고, 다 적는 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중간에 한 번 펜이 멈췄다.
“기관 쪽 그 친구, 작년에 온.”
“최민석 하사입니다.”
“그래, 최민석.”
윤재는 그때 알았다. 함장이 이것을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다는 것을. 준비했으면 명부를 가져왔을 것이다. 가져오지 않은 것은 외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실제로 쉰두 명까지는 외우고 있었다.
“서식에 없는 줄입니다. 감사에서 지적받으실 겁니다.”
“받겠지. 부장, 이 일지는 배가 없어져도 남아. 함교 아래 방수함에 들어가거든. 정세 요약에는 우리가 없는데 여기엔 있어. 그러면 없는 게 아니야.”
지완이 소나 화면 앞에서 등을 조금 폈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조타장은 일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다가 그만두고 계기를 봤다. 자기 이름이 몇 번째쯤에 적혔는지 궁금한 얼굴이었지만, 끝내 묻지 않았다. 함장의 볼펜은 잉크가 나오다 말다 해서, 몇몇 이름은 획이 두 번 그어져 있었다.
1204에 지완이 손을 들었다.
“접촉 하나 더 있습니다. 방위 210, 이번엔 큰 겁니다.”
윤재는 일지를 덮으려다 마지막 줄을 봤다. 쉰세 번째 이름 아래에 함장이 자기 이름을 적어 넣고 있었다.
펜 끝이 마지막 획에서 종이를 한 번 더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