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67자) · 강윤재 · 6월 3일(목)

닫힌 바다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0433에 TMA(⁠방위 변화로 거리를 푸는 계산⁠)가 수렴했다⁠.

“⁠거리 1만 8천⁠, 침로 090⁠, 속도 12노트입니다⁠. 오차 600입니다⁠.⁠”

지완의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다⁠. 윤재는 해도대에서 자를 짚었다⁠. 1만 8천이면 소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12초가 걸린다⁠. 지금 듣는 것은 12초 전의 저쪽이었다⁠.

“⁠축은 갈렸나⁠?⁠”

“⁠갈렸습니다⁠. 축 둘에 날개 다섯⁠, 회전수 120입니다⁠.⁠”

상선은 축이 하나다⁠. 축을 둘 다는 것은 한쪽이 죽어도 가야 하는 배들뿐이었다⁠. 함장이 옆에서 해도를 내려다봤다⁠.

“⁠상륙 지원함이야⁠. 호위함은 이 속도로 곧게 안 가⁠. 지그재그도 없고⁠.⁠”

“⁠그러면 짐배입니다⁠. 급하거나⁠, 우리가 있는 줄 모르거나⁠.⁠”

윤재는 침로선을 연장했다⁠. 090이면 거의 정서였고⁠, 그 끝에 대만 서해안이 있었다⁠. 사만이 건너가 붙은 해안이었다⁠. 사만이 하루에 먹고 쏘는 것이 1⁠,000톤 단위였고⁠, 그 1⁠,000톤은 전부 바다로 왔다⁠.

조타장이 물었다⁠.

“⁠부장님⁠, 이 해역에 우리 수상함은 왜 없습니까⁠?⁠”

“⁠못 들어와⁠. 일본 남쪽에서 대만을 지나 필리핀으로 내려가는 선 안쪽이 전부 육상 발사 대함미사일 권역이야⁠. 수상함은 크고 뜨거워서 위성에 잡혀⁠.⁠”

“⁠항모는요⁠?⁠”

“⁠동쪽으로 물러나서 밖에서 띄워⁠. 대신 왕복이 길어져서 한 대가 하루에 세 번 나갈 걸 한 번 나가⁠.⁠”

조타장이 잠깐 셈을 하는 얼굴이 됐다⁠. 배는 못 오고 비행기는 자주 못 뜨면 남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지완이 화면을 보며 대신 말했다⁠.

“⁠평생 안 보이는 게 서러웠는데⁠, 지금은 그게 유일한 장점입니다⁠.⁠”

“⁠그러면 저건 그냥 배가 아니야⁠.⁠”

함장의 그 말에 발령소의 공기가 바뀌었다⁠. 지완이 헤드폰을 고쳐 썼고 조타장은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부장⁠, 통신 부상 준비해⁠. 그리고 1번 3번 관 주수하고 유도선 점검해⁠.⁠”

“⁠쏘십니까⁠?⁠”

“⁠아니⁠. 준비 안 해 놓고 나중에 하면 8분이 걸려⁠. 그 8분에 저 배는 3⁠,000을 가⁠.⁠”

*

0452에 부상을 시작했다⁠. 심도 180에서 60으로⁠, 60에서 20으로 올라가는 동안 선체가 수압에서 풀리며 낮게 삐걱거렸고⁠, 배 안의 모든 사람이 그 소리가 멎기를 기다렸다⁠. 얕은 곳에서는 파도가 배를 흔들었다⁠. 180미터 아래에서는 없던 흔들림이라⁠, 몇몇은 계기판 모서리를 붙잡았고 누군가는 속이 올라오는지 입을 막았다⁠. 지완은 전자 지원 화면을 보며 머리 위 하늘에 전파를 내는 것이 있는지 들었다⁠. 조타장은 손목시계를 보며 입속으로 초를 셌다⁠.

부상은 17분 40초가 걸렸다⁠. 예상보다 20초 빨랐지만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 안테나를 내밀어 위성을 잡고 압축 전문을 쏘는 동안⁠, 신채호함은 물 위에 흔적을 남기는 배였다⁠.

전문은 짧았다⁠. 길게 쓰면 오래 떠 있어야 했다⁠. 윤재가 소리 내어 읽었다⁠.

“⁠해역 내 서향 군수 수송 자산 최우선 표적⁠, 단독 항주 우선⁠, 교전 승인⁠.⁠”

조타장이 마지막 네 글자를 입속으로 되뇌었다⁠. 열하루 만에 처음 나온 말이었다⁠. 함장은 전문을 두 번 읽고 앞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앞줄이 더 중요해⁠. 군함보다 짐배를 먼저 치라는 거야⁠. 상륙은 한 번이면 끝나지만 보급은 매일이니까⁠.⁠”

전문 아래쪽에는 한 줄이 더 있었다⁠. 우군 보급함 오스미 해협 통과 16시간 대기⁠, 사세보 하역 품목별 허가 진행 중⁠.

“⁠16시간이요⁠?⁠”

“⁠서류야⁠.⁠”

함장은 그 한 단어만 하고 잔을 들었다⁠. 잔은 비어 있었다⁠. 함장은 빈 잔을 입에 댔다가 그대로 내려놓았고⁠, 조타장은 그것을 보고도 커피를 따르러 가지 않았다⁠. 윤재는 16시간이라는 숫자를 보며 그 시간 동안 해협 어귀에서 떠 있었을 보급함을 생각했다⁠. 떠 있는 배는 보이는 배였다⁠. 보이는 배가 서류를 기다리는 동안 누가 그 배를 보고 있었는지는 전문에 없었다⁠.

*

같은 시각⁠, 도쿄 총리 관저 지하의 위기관리센터는 형광등 불빛이 너무 고르게 퍼져서 얼굴마다 그늘이 없었다⁠. 긴 탁자 끝자리에 총리가 앉아 있었는데⁠, 벽의 화면들 쪽으로 등을 돌린 채 서류만 내려다보았다⁠.

방위성에서 온 사람이 먼저 말했다⁠.

“⁠한국 보급함이 사세보에 들어와 있습니다⁠. 식량과 연료는 허가가 났습니다⁠. 탄약만 남았습니다⁠. 오늘 내주셔야 합니다⁠.⁠”

외무성 쪽 사람이 곧바로 받았다⁠.

“⁠탄약 하역은 사전 통보 72시간입니다⁠. 존립위기사태를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절차를 건너뛰면⁠, 그다음부터 우리는 당사자가 됩니다⁠.⁠”

“⁠조약국입니다⁠. 우리가 늦추는 동안 그 배는 물속에서 기다립니다⁠.⁠”

“⁠조약국이라고 같은 것을 걸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기느냐와⁠, 이기고 나서 우리가 어디 서 있느냐⁠, 둘 다 재야 합니다⁠.⁠”

총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배석한 비서관이 그 곁으로 몸을 숙였다가 일어나 말을 옮겼다⁠. 절차대로 하라고 했다⁠.

탁자 끝의 참사관이 허가 서류를 품목별로 한 장씩 넘겼다⁠. 식량 칸에 도장을 찍고⁠, 연료 칸에 도장을 찍었다⁠. 탄약 서류 앞에서 그의 손이 멈췄다⁠. 인주를 한 번 더 묻혔다가 도장을 서류 옆에 내려놓았고⁠, 그 서류를 맨 아래로 옮겼다⁠. 문은 열어 두되 경첩에 기름은 치지 않는 손이었다⁠. 참사관은 서류 더미를 가지런히 두드려 모서리를 맞췄다⁠. 탄약 서류의 귀퉁이가 더미 아래에서 조금 비어져 나와 있었고⁠, 그는 그것을 손끝으로 밀어 넣었다⁠.

*

0512에 지완이 이상한 것을 들었다⁠.

“⁠부장님⁠, 접촉 앞쪽에 아주 작은 게 여럿 있습니다⁠. 선이 안 서고 흩어집니다⁠. 여섯에서 여덟까지는 세겠는데 더는 못 세겠습니다⁠.⁠”

“⁠속도는⁠?⁠”

“⁠20노트가 넘습니다⁠.⁠”

그 크기로 그 속도를 내는 배에는 사람이 탈 수 없었다⁠. 함장이 먼저 말했다⁠.

“⁠무인정이야⁠. 짐배 앞에 뿌려 놓으면 어뢰가 그걸 먼저 물지⁠. 사람이 안 타니까 겁도 없고 우리 쪽으로 곧장 와⁠.⁠”

“⁠상대합니까⁠?⁠”

“⁠상대하면 소리를 내야 되고⁠, 소리를 내면 짐배가 아니라 우리가 표적이 돼⁠.⁠”

윤재는 발사 제원을 넣으라는 지시를 받아 절차를 밟았다⁠. 관에 물을 채우는 소리가 배 안에서는 꽤 크게 들렸고⁠, 지완은 그 소리가 자기 귀를 때리지 않게 헤드폰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채우고 나서는 기다렸다⁠. 쏘지 말라는 지시였다⁠.

0556에 지완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부장님⁠, 뒤에 하나 더 있습니다⁠. 같은 방위에 겹쳐 있어서 떼어 내지 못하겠습니다⁠.⁠”

“⁠성질은⁠?⁠”

“⁠선이 안 섭니다⁠. 넓게 퍼진 소리입니다⁠. 물 가르는 소리만 있습니다⁠.⁠”

회전 기계는 특정 주파수에 선을 세운다⁠. 선이 서지 않으면 축이 아주 작거나 아주 조용했다⁠. 지완이 한 번 더 들었다⁠.

“⁠무인 잠수정일 수도 있습니다⁠. 축이 작으면 이런 소리만 남습니다⁠.⁠”

“⁠그게 더 나빠⁠. 사람이 타면 돌아갈 생각을 하는데⁠, 안 타면 안 하거든⁠.⁠”

짐배를 지키려고 붙은 것이 아니었다⁠. 짐배를 노리는 것을 잡으려고 붙은 것이었다⁠. 조타장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지금 미끼 앞에 서 있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그냥 조심하는 걸 수도 있어⁠. 그게 안 갈라지니까 어려운 거야⁠.⁠”

*

0610에 윤재가 해도 앞에서 함장에게 셋을 내놓았다⁠.

“⁠하나⁠, 지금 쏩니다⁠. 짐배는 잡고 뒤엣것과 정면으로 붙습니다⁠. 둘⁠, 남쪽으로 크게 돌아 빠집니다⁠. 짐배는 해안에 닿습니다⁠. 셋⁠, 둘이 갈라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갈라지면 뒤엣것의 제원이 나옵니다⁠.⁠”

“⁠자네는 어느 쪽이야⁠?⁠”

“⁠하나입니다⁠. 1만 4천이면 범상어가 닿습니다⁠. 저 배 하나에 사만의 하루가 실려 있습니다⁠.⁠”

“⁠쏘면 뒤엣것이 우리 자리를 정확히 알아⁠.⁠”

“⁠압니다⁠. 그래도 오늘 저걸 보내면 내일 해안에 탄약이 내립니다⁠.⁠”

함장은 커피잔을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식은 지 오래였다⁠.

“⁠지완⁠, 네가 저쪽 부장이면 지금 뭐 하고 있어⁠?⁠”

지완이 헤드폰을 반쯤 벗었다⁠.

“⁠듣고 있을 겁니다⁠. 저희랑 똑같이 앉아서⁠, 우리 소리 하나 나오기를요⁠. 먼저 소리 내는 쪽이 집니다⁠.⁠”

함장이 손가락으로 해협을 따라 선을 그었다⁠.

“⁠이 항로로 매일 와⁠. 오늘 하나 놓치면 내일 또 오고⁠. 그런데 오늘 우리가 없어지면 내일 오는 것을 막을 배가 없어⁠. 이 바다에 우리밖에 없으니까⁠.⁠”

“⁠함장님⁠.⁠”

“⁠이번 건 보낸다⁠.⁠”

윤재는 한 번 더 입을 열려다가 닫았다⁠. 함장이 그를 봤다⁠.

“⁠대신 붙어⁠. 조용히 따라가서 뒤엣것 제원을 잡아⁠. 위치⁠, 침로⁠, 속도 셋 다⁠. 그거 하나 갖고 나가면 다음 배는 우리가 아니라 다른 애가 잡아⁠.⁠”

“⁠예⁠.⁠”

“⁠그리고 지완⁠, 오늘 네가 할 일은 안 쏘는 거야⁠.⁠”

지완이 헤드폰을 다시 썼다⁠.

“⁠…제일 잘하는 겁니다⁠.⁠”

조타장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웃은 것인지 숨을 고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1번 관에 채운 물은 그대로 두었다⁠. 빼는 것도 소리였다⁠.

그 뒤로 신채호함은 두 접촉의 뒤를 3노트로 따라갔다⁠. 떨어지면 놓치고 붙으면 들켰다⁠. 지완은 한 시간에 한 번씩 방위를 불렀고⁠, 윤재는 그 방위를 해도에 연필로 찍었다⁠. 점들이 서쪽으로 줄을 이었다⁠. 2시간이 지나자 연필심이 뭉툭해져서 점이 번졌고⁠, 윤재는 연필을 깎지 않고 뒤집어 반대쪽 심을 썼다⁠. 깎는 소리도 소리였다⁠.

*

052D 함교는 어두웠다⁠. 계기판 불빛만 켜 둔 그 안에서 리 첸 중령은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무인 잠수정이 보내오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마흔을 조금 넘긴 사람이었고⁠, 대잠전 교관으로 여섯 해를 보낸 뒤 이 배로 왔다⁠. 교관 시절 그는 생도들에게 가장 먼저 의자를 치우게 했다⁠. 앉으면 귀가 게을러진다고 했다⁠. 짐배 뒤에 붙여 둔 그것은 6시간째 아무것도 물지 못했다⁠. 앞의 짐배는 미끼였고⁠, 미끼 앞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화면 아래 칸에 한 줄을 적었다⁠. 이 해역⁠, 귀가 있음⁠.

*

배가 아주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커피잔 표면이 한쪽으로 밀렸다가 돌아왔다⁠.

지완은 그 뒤로 한 번도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중간에 조타장이 커피를 갖다 놓았는데⁠, 지완은 고맙다는 말 대신 턱을 한 번 끄덕였고 잔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커피는 김이 오르다가 멎었고 표면에 얇은 막이 앉았다⁠. 조타장은 그 잔을 치우지 않았다⁠. 치우면서 나는 소리와 두고 가는 것 사이에서 그는 두고 가는 쪽을 골랐다⁠.

윤재는 발사 제원이 떠 있는 화면 앞에 섰다⁠. 발사 버튼 위에는 투명한 덮개가 씌워져 있었는데⁠, 그 덮개 가장자리에 누군가의 손자국이 뿌옇게 남아 있었다⁠. 자기 것인지 남의 것인지 몰랐다⁠. 윤재는 소매 끝으로 그것을 닦지 않았다⁠.

화면에는 줄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곧고 하나는 흐렸다⁠. 6시간이 남아 있었다⁠.

1번 관 옆의 압력계 바늘은 물을 채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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