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닫힌 바다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TMA(방위 변화로 거리를 푸는 계산) 수렴했습니다.”

지완의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다.

“거리 1만 8천. 침로 090. 속도 12노트. 오차 600.”

윤재는 해도대에서 자를 짚었다. 1만 8천이면 음파가 오는 데 12초다. 지금 듣는 것은 12초 전의 저쪽이다.

“블레이드?”

“갈라졌습니다. 축 둘, 오엽입니다. 회전수 120.”

축이 둘인 12노트짜리는 상선이 아니다. 상선은 축이 하나다. 둘을 다는 것은 한쪽이 죽어도 가야 하는 배들뿐이다.

“함장님.”

함장은 이미 옆에 있었다.

“오엽 백이십이면 상륙 지원함이야. 호위함은 이 속도로 곧게 안 가.”

“지그재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짐배야. 급하거나, 우리가 있는 줄 모르거나.”

윤재는 침로선을 연장했다. 090. 거의 정서. 그 끝에 대만 서해안이 있었다.

조타장이 물었다.

“부장님. 이 해역에 우리 수상함 왜 없습니까?”

“못 들어와.”

윤재는 해도 위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었다. 일본 남쪽에서 대만을 지나 필리핀으로 내려가는 선.

“이 안쪽이 육상 발사 대함미사일 권역이야. 1,500킬로미터가 넘어. 수상함은 크고 뜨겁고 위성에 잡혀.”

“항모는요?”

“개전 사흘째에 동쪽으로 물러났어.”

“밀린 겁니까?”

함장이 대답했다.

“사거리를 산 거야. 밖에서 띄우면 되니까. 대신 왕복이 길어져. 급유기를 붙여야 하고, 급유기는 느리고 커.”

“그러면요?”

“한 대가 하루에 세 번 나갈 걸 한 번 나가.”

조타장이 잠깐 계산하는 얼굴이 됐다.

“배는 못 오고, 비행기는 자주 못 뜨고.”

“그렇지.”

“그럼 뭐가 남습니까?”

발령소가 조용해졌다.

“우리요?”

“우리야.”

“이지스는요.”

“정조대왕급 한 척이 동쪽에 있어. 8,200톤짜리.”

“그건 왜 안 들어옵니까?”

“들어오면 잡히니까. 그리고 그 배는 지금 다른 걸 해.”

“뭘 합니까?”

“요격.”

윤재는 해도 위에 손가락을 짚었다. 저 배는 싸우러 온 게 아니다. 날아오는 것을 바다에서 잡으려고 서 있다. SM-6(함정에서 쏘는 요격탄, 탄도탄까지 잡는다) 한 발이 탄도탄 한 발을 잡는다.

“몇 발 싣습니까?”

“그건 나도 몰라. 아는 사람은 세는 중일 거고.”

“…….”

“요격탄은 유한해. 저쪽이 그걸 알아. 그래서 싼 걸 많이 쏘는 거야.”

지완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평생 안 보이는 게 서러웠는데, 지금은 그게 유일한 장점입니다.”

윤재는 다시 해도를 봤다. 물 위는 비어 있었다. 뜨는 순간 없어지니까 아무도 뜨지 않는다.

“함장님. 보고 올립니까?”

“올려야지.”

“부상하면 18분입니다.”

안테나를 내밀고, 위성을 잡고, 압축 전문을 쏘고, 다시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 18분 동안 우리는 물 위에 흔적을 남기는 배가 된다.

함장이 해도를 두 번 두드렸다.

“상륙 병력 추정 몇이지?”

“사만입니다.”

“일일 소요?”

윤재가 대답했다.

“1종(식량)만 200톤 넘습니다. 5종(탄약) 붙이면 1,000톤 단위입니다.”

“그게 어디서 와?”

“…바다에서 옵니다.”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건 그냥 배가 아니야.”

발령소의 공기가 바뀌었다. 지완이 헤드폰을 고쳐 썼다. 조타장은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부장.”

“예.”

“통신 부상 준비. 1번 3번 관 주수하고 유도선 점검해.”

“쏘십니까?”

“아니.”

함장이 잔을 내려놓았다.

“준비 안 해 놓고 나중에 하면 8분 걸려. 그 8분에 저 배는 3,000을 가.”

윤재는 시계를 봤다. 지금부터는 전부 분 단위였다.

부상은 17분 40초 걸렸다. 예상보다 20초 빨랐다.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

전문은 짧았다. 압축 전문은 항상 짧다. 길게 쓰면 오래 떠 있어야 한다.

윤재가 읽었다.

“해역 내 서향 군수 수송 자산 최우선 표적. 단독 항주 우선. 교전 승인.”

“…교전 승인.”

조타장이 그 네 글자를 다시 말했다. 열하루 만에 처음 나온 말이었다.

함장은 전문을 두 번 읽었다.

“앞줄이 더 중요해. 군함보다 짐배를 먼저 치라는 거야.”

“구축함이 더 위험하지 않습니까?”

윤재가 해도 앞으로 갔다.

“상륙은 한 번이면 끝나. 보급은 매일이야.”

“…….”

“사만이 하루에 1,000톤을 먹어. 10일 끊으면 5종(탄약)이 없고, 20일 끊으면 1종(식량)이 없어. 상륙군은 상륙하는 순간부터 바다에 목이 매여 있어.”

“그 목을 우리가 쥐고 있는 거군요.”

“그렇지. 그리고 짐배는 12노트야. 구축함은 30노트로 달아나고.”

“…짐배는 못 달아나겠네요.”

“못 달아나. 그래서 짐배부터야.”

지완이 손을 들었다.

“접촉 갱신. 거리 1만 4천. 침로 속도 불변.”

“지그재그 없어?”

“없습니다. 14분째 곧게 옵니다.”

“…호위가 없다는 얘긴데.”

“부장님. 그런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지완이 화면을 반쯤 돌렸다.

“접촉 앞쪽에 아주 작은 게 여럿 있습니다. 선이 안 서고 흩어집니다.”

“몇 개야.”

“…여섯에서 여덟입니다. 셀 수가 없습니다.”

“속도?”

“빠릅니다. 20노트 넘습니다.”

20노트짜리 작은 것이 여럿 앞서 간다. 사람이 타는 배는 그 크기로 그 속도를 못 낸다.

“무인정이야.”

함장이 말했다.

“선도로 깔아 놓은 거지. 짐배 앞에 뿌려 놓으면 어뢰가 그걸 먼저 문다.”

“…미끼입니까?”

“미끼이자 눈이야. 사람이 안 타니까 겁이 없어. 우리 쪽으로 곧장 와.”

조타장이 물었다.

“그럼 저건 어떻게 합니까?”

“상대 안 해. 상대하면 소리를 내야 되고, 소리를 내면 짐배가 아니라 우리가 표적이 돼.”

함장이 고개를 저었다.

“호위가 없는 게 아니라 호위를 붙일 게 없는 걸 수도 있지.”

“그 정도입니까?”

“두 번째 전문 봐?”

윤재가 아래쪽을 읽었다.

“연합 전력 재배치. 항모타격단 하나 중동 방면 잔류. 복귀 미정.”

발령소가 조용해졌다.

“중동이요?”

“호르무즈. 지난달부터 유조선이 못 나가고 있어. 이란이 기뢰 깔고, 이스라엘이 때리고, 그 사이에 유가가 세 배 됐어.”

“그게 여기랑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없어. 그래서 문제야.”

함장이 잔을 내려놓았다.

“상관없는 데다 항모 하나를 묶어 놨잖아. 우리는 그만큼 없이 싸우는 거고.”

조타장이 물었다.

“일본은요. 사세보에서 탄약 받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받고 있지. 절차대로.”

“절차대로가 무슨 뜻입니까?”

“하역 허가가 품목별로 따로 나와. 5종은 사전 통보 72시간, 통보 창구는 현지 지자체까지.”

“전시에요?”

“전시라 그런 거야.”

윤재가 덧붙였다.

“영해 통과도 조건부야. 사흘 전에 우리 보급함이 오스미 해협에서 16시간 대기했어.”

“이유가 뭡니까?”

“서류?”

조타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쪽도 조약국 아닙니까?”

“조약국이지.”

함장이 말했다.

“근데 조약국이라고 같은 걸 걸고 있는 건 아니야. 저쪽은 지금 두 개를 재고 있어. 하나는 우리가 이기느냐. 하나는 이기고 나서 저쪽이 어디 서 있느냐.”

“…….”

“그래서 문은 열어 두고, 경첩에 기름은 안 쳐 주는 거야.”

“그게 더 나쁜 거 아닙니까. 차라리 안 열어 주면.”

“안 열어 주면 나중에 계산이 남지. 열어 주고 늦추면 계산이 안 남아.”

지완이 화면을 보며 짧게 말했다.

“잘 배운 사람들이네요.”

“100년 배웠어.”

함장이 시계를 봤다.

“부장. 발사 제원 넣어. 쏘지는 마.”

“예.”

“지완. 저 배 뒤쪽에서 뭐 하나라도 잡히면 즉시 보고. 잡음 같아도.”

“…예.”

윤재는 그 지시의 뜻을 알았다. 짐배가 1만 4천을 혼자 곧게 오는 일은 잘 없다.

“부장님. 뒤에 하나 더 있습니다.”

지완의 목소리였다. 아까와 달랐다.

“방위?”

“같은 방위. 020. 접촉에 겹쳐 있습니다.”

“분리?”

“못 합니다. 방위 분해능(두 소리를 따로 떼어 들을 수 있는 최소 각도) 밖입니다.”

“성질?”

지완이 말을 골랐다.

“광대역(주파수에 퍼져 있는 소리, 물 가르는 소리가 그렇다)입니다. 선이 안 섭니다.”

윤재는 그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회전 기계는 특정 주파수에 선을 만든다. 선이 안 서고 넓게 퍼진 소리는 유체음(물이 갈라지며 나는 소리)이다. 아주 조용한 무언가가 물을 가르고 있다.

“…잠수함이야.”

“…아니면 무인정입니다.”

지완이 말했다.

“무인 잠수정이면 이 소리가 납니까?”

“납니다. 축이 작아서 선이 안 서고 유체음만 남습니다.”

함장이 지완을 봤다.

“그러면 사람이 안 탔을 수도 있다는 거네.”

“…예.”

“그게 더 나빠.”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타면 돌아갈 생각을 해. 안 타면 안 해.”

함장이 말했다.

“추정입니다.”

“추정이지. 근데 짐배 뒤에 붙어서 같이 오는 조용한 물체를 우리는 하나밖에 몰라.”

호위가 아니다. 짐배를 지키려고 붙은 게 아니라, 짐배를 노리는 것을 잡으려고 붙은 것이다.

조타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가 지금 미끼 앞에 서 있는 겁니까?”

“그럴 수도, 그냥 조심하는 걸 수도.”

“구분됩니까?”

“안 돼.”

“…….”

“그래서 어려운 거야.”

윤재는 해도를 봤다. 1만 4천. 범상어 유효 사거리 30킬로미터의 절반이 채 안 된다. 지금 쏘면 맞는다. 문제는 발사 순간 우리 위치가 저 뒤엣것에게도 정확히 전달된다는 것이다. 어뢰는 소리를 낸다. 아주 큰 소리를 낸다.

그다음엔 우리가 표적이 된다.

“함장님. 셋입니다.”

“해 봐.”

“하나. 지금 쏩니다. 짐배는 잡고, 뒤엣것과 정면으로 붙습니다.”

“둘.”

“남쪽으로 크게 돌아 이탈합니다. 짐배는 해안에 닿습니다.”

“셋.”

“기다립니다. 둘이 분리되면 뒤엣것 제원이 나옵니다.”

“분리까지 얼마?”

“모릅니다.”

“짐배 도착까지는?”

“6시간입니다.”

함장은 커피잔을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식은 지 오래였다.

“지완.”

“예.”

“네가 저쪽 부장이면 지금 뭐 하고 있어?”

지완이 헤드폰을 반쯤 벗었다.

“듣고 있을 겁니다. 저희랑 똑같이 앉아서, 우리 소리 하나 나오기를요.”

“그러면?”

“먼저 소리 내는 쪽이 집니다.”

발령소가 조용해졌다.

조타장이 아주 작게 말했다.

“…6시간 동안 아무도 소리를 안 내면 저쪽이 이기는 거잖습니까?”

“이 판은 그렇지.”

“…….”

“근데 이 판만 있는 게 아니야.”

함장이 해도 앞으로 갔다. 손가락으로 해협을 따라 선을 그었다.

“이 항로로 매일 와. 오늘 하나 놓치면 내일 또 와.”

“…….”

“근데 오늘 우리가 없어지면, 내일 오는 걸 막을 수가 없어.”

“…….”

“조타장. 지금 큰 게 두 군데야. 여기하고 수바우키.”

“…서해는요.”

“서해는 아직 큰 게 아니야. 국지로 붙고 있어.”

“그럼 다행 아닙니까?”

“다행이지. 근데 국지는 크게 만들 수 있어. 저쪽이 원할 때.”

“…….”

“우리가 여기 묶여 있으면 그때 손이 없고.”

조타장이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셋 중에 어디도 이번 주에 안 끝나. 그러니까 우리도 이번 주에 죽으면 안 돼.”

윤재는 그 말이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다.

“함장님. 그러면.”

“이번 건 보낸다.”

“예.”

“대신 붙어. 조용히 따라가서 뒤엣것 제원 확보해. 위치 침로 속도 셋 다. 그거 하나 갖고 나가면 다음 배는 우리가 아니라 다른 애가 잡아.”

“예.”

“지완.”

“예.”

“오늘 네가 할 일은 안 쏘는 거야.”

지완이 헤드폰을 다시 썼다.

“…제일 잘하는 겁니다.”

배가 아주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커피잔 표면이 한쪽으로 밀렸다가 돌아왔다.

화면에는 줄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곧고, 하나는 흐렸다.

윤재는 둘 다 봤다. 6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닫힌 바다 ·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나오늘 AI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