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32자) · 강윤재 · 6월 3일(목)

듣는 배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잠수함은 보지 않는다⁠. 물속에서는 빛이 몇십 미터를 못 가고 전파는 그보다 더 못 가서⁠, 이 바다에서 오가는 일은 전부 소리로 오가고⁠, 듣는 일은 곧 들키는 일이 된다⁠.

신채호함은 도산안창호급 3번함이다⁠. 3⁠,000톤의 선체에 연료전지를 얹어 물 밖에 나가지 않고 몇 주를 버티는데⁠, 그 몇 주 동안 하는 일은 거의 전부 듣는 일이다⁠. 이름은 단재 선생에게서 왔다⁠. 조국이 없던 시절에 조국을 위해 싸운 사람의 이름을 배에 붙여서 물속에 넣었다⁠.

6월 3일 0342에 최지완 하사가 손을 들었다⁠.

“⁠부장님⁠, 광대역(⁠주파수에 퍼져 있는 소리⁠, 물 가르는 소리가 그렇다⁠) 접촉입니다⁠. 방위 020⁠.⁠”

지완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세로 줄무늬는 대부분 바다가 내는 잡음이었다⁠. 파도와 새우와 자기 배의 심장 소리가 흐르는 그 사이에 줄 하나가 곧게 서 있었다⁠.

지완은 이 함에 처음 온 여군 승조원 아홉 가운데 하나였고⁠, 아홉 가운데 셋이 음탐이었다⁠. 우연이 아니라고 다들 말했지만 지완은 그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귀에 성별이 있을 리 없다⁠.

강윤재 소령이 뒤에 와서 섰다⁠.

“⁠획득하고 얼마나 됐나⁠?⁠”

“⁠14분입니다⁠. 예인 배열에만 걸리고 뱃머리 쪽에는 안 걸립니다⁠.⁠”

멀거나⁠, 아주 조용하거나⁠, 둘 다였다⁠. 축이 물을 때리는 주기도 뽑히지 않았다⁠. 주기가 없으면 축이 몇 개인지 모르고⁠, 축을 모르면 배의 종류를 모른다⁠.

“⁠거리를 풀려면 얼마나 걸리나⁠?⁠”

“⁠TMA(⁠방위 변화로 거리를 푸는 계산⁠)를 돌리려면 침로를 두 번 꺾어야 합니다⁠. 30분입니다⁠. 급하게 하면 1만 미터가 틀립니다⁠.⁠”

뒤에서 조타장이 몸을 돌렸다⁠. 부산 사람이었고⁠, 이 배에서 제일 오래 탄 부사관이었다⁠.

“⁠부장님⁠, 능동으로 한 번 쏘면 끝납니다⁠. 거리 방위 심도가 한 번에 나오지 않습니까⁠?⁠”

“⁠나오지⁠.⁠”

“⁠그럼 30분을 왜 기다립니까⁠? 저게 뭔지 모르는 30분이 더 위험합니다⁠.⁠”

윤재는 대답 대신 지완을 봤다⁠. 지완은 여전히 화면을 보고 있었다⁠.

“⁠쏘면 저쪽이 우리보다 우리 자리를 더 정확하게 압니다⁠. 그리고 이 해역에 열려 있는 귀가 몇 개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럼 뭘 합니까⁠?⁠”

“⁠계속 듣습니다⁠. 구할은 그겁니다⁠. 듣고⁠, 기다리고⁠, 안 쏩니다⁠.⁠”

조타장이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나머지 일 할은요⁠?⁠”

“⁠그건 좀 시끄럽습니다⁠.⁠”

조타장이 웃다가 멈췄다⁠. 웃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안 얼굴이었다⁠. 윤재는 그 얼굴에서 반대가 다 가시지 않은 것을 봤다⁠. 조타장은 손잡이를 쥔 채 엄지로 가죽 이음매를 문지르고 있었다⁠.

“⁠좌현 20도⁠, 3노트 유지⁠. 타는 천천히 먹여⁠. 함장님 깨우고⁠.⁠”

“⁠예⁠, 좌현 20도⁠.⁠”

배가 아주 천천히 기울었다⁠. 해도대 위 커피잔 안에서 표면이 한쪽으로 밀렸다가 돌아왔고⁠, 그것이 이 배 안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이었다⁠.

3노트를 넘기면 선체가 물을 때린다⁠. 그래서 이 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어뢰가 아니라 우리가 내는 소리였다⁠. 공구는 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손에서 손으로 건넸고⁠, 문은 손바닥으로 받쳐서 닫았으며⁠, 복도에서는 아무도 뛰지 않았다⁠. 사흘째 잠항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도 저절로 작아졌다⁠. 시킨 사람이 없는데도 그랬다⁠.

지완이 헤드폰 한쪽을 벗어 윤재에게 내밀었다⁠. 윤재가 받아 귀에 댔다⁠.

바다는 시끄러웠다⁠.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것 같고 비가 오는 것 같고 아주 먼 데서 누가 쇠를 긁는 것 같은 소리들이 겹쳐 있었는데⁠, 그 아래 바닥에 낮은 웅웅거림이 한 가지 높이로 깔려 있었다⁠. 일정했다⁠. 파도는 일정하지 않고 새우도 일정하지 않다⁠. 일정한 것은 사람이 만든 기계뿐이었다⁠.

윤재는 헤드폰을 돌려주었다⁠. 벗은 뒤에도 그 소리가 귓바퀴 안쪽에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상선일 확률은 얼마나 보나⁠?⁠”

“⁠낮습니다⁠. 이 해역 상선 교통량은 열흘 전부터 0입니다⁠. 어선은 축 소리가 갈라지는데⁠, 이건 안 갈라집니다⁠.⁠”

“⁠그럼 30분 기다려서 확인하지⁠. 30분은 우리도 조용하고 저쪽도 조용해⁠. 나쁜 30분은 아니야⁠.⁠”

조타장은 대답하지 않고 계기를 봤다⁠. 심도 180⁠, 침로를 유지하는 중이라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바늘을 오래 봤다⁠.

*

0401에 함장이 발령소로 들어왔다⁠. 2시간을 잤다는 사람의 얼굴이었고⁠,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따랐다⁠. 이 배에서 무제한인 것은 커피와 시간뿐이었다⁠.

“⁠지완⁠, 너 5월 23일에 어디 있었어⁠?⁠”

지완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욕조에 있었습니다⁠.⁠”

조타장이 고개를 돌렸다⁠.

“⁠욕조요⁠?⁠”

“⁠휴가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물을 받아 놓고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텔레비전 켜 보라고⁠.⁠”

“⁠켜셨습니까⁠?⁠”

“⁠안 켰습니다⁠. 물이 아까워서⁠.⁠”

함장이 짧게 웃었고⁠, 조타장은 소리를 삼키느라 어깨를 떨었다⁠. 지완은 그다음을 담담하게 이었다⁠. 20분 뒤에 부대 전화를 받았고⁠, 그때는 켰다고 했다⁠. 물은 받아 둔 채로 두고 나왔는데⁠, 열하루가 지난 지금도 어머니가 그 물을 뺐는지 모른다고 했다⁠.

“⁠뺐겠지⁠.⁠”

“⁠저희 어머니는 안 빼십니다⁠. 아까우시다고 걸레를 빠실 겁니다⁠.⁠”

이번에는 함장이 소리를 내서 웃었다⁠. 발령소에서 웃음소리가 난 것은 사흘 만이었다⁠.

2027년 5월 23일 0440에 대만 서해안 세 곳으로 상륙이 붙었다⁠. 그날 오전에 해협이 닫혔다⁠. 수상함은 제일도련선 안쪽으로 못 들어오고⁠, 항모는 개전 사흘째에 동쪽으로 물러났다⁠. 남은 것은 물속뿐이었다⁠.

“⁠왜 그때였습니까⁠?⁠”

조타장이 물었다⁠. 함장이 잔을 내려놓았다⁠.

“⁠밖이 문제가 아니었을 거야⁠. 안이 문제지⁠. 그런 게 쌓이면 밖에 적을 세워야 하고⁠, 세우면 한동안은 안이 조용해⁠.⁠”

“⁠한동안이면요⁠?⁠”

“⁠그래서 급한 거야⁠. 오래 끌면 처음 문제로 돌아가니까⁠.⁠”

“⁠유럽은 어떻게 됐습니까⁠?⁠”

“⁠어제 부상 때 받은 게 마지막이야⁠. 수바우키가 우리보다 엿새 먼저 시작했어⁠. 한반도는 서부에서 국지로 붙고 있고⁠.⁠”

조타장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버릇이었다⁠. 물 위는 여기서 180미터 위에 있었고⁠, 그 위로 원유와 곡물을 실은 우리 배들이 지나갔다⁠.

“⁠집이 저기 있는데 우리는 왜 여기 있습니까⁠?⁠”

“⁠저 위로 우리 배가 다녀⁠. 부산에 들어오는 물량 8할이 이 길목을 지나가⁠. 입구가 막히고 길목이 막히고 문까지 막히면⁠, 배가 몇 척 있느냐는 상관이 없어⁠.⁠”

함장은 해도의 세 군데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호르무즈와 이 해협과 서해였다⁠. 윤재는 그 손가락이 세 번째 자리에서 조금 오래 머무는 것을 봤다⁠.

“⁠세 군데가 한꺼번에 열렸으면 우연이 아니라 계획이야⁠. 미국은 항모도 요격탄도 한 벌뿐인데 셋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고⁠.⁠”

“⁠그럼 우리는요⁠?⁠”

“⁠미국이 셋으로 갈리는 만큼 우리 손이 커져⁠. 여기서 우리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해⁠. 작전 이름도 없어⁠. 호송이라고 부르면 호송 함대를 띄워야 하고⁠, 띄우면 신문에 나거든⁠.⁠”

조타장이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윤재는 함장의 말이 조타장이 아까 한 말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없는 배는 먼저 쏘지 않는다⁠.

*

같은 시각⁠, 베이징의 벽시계는 한 시간 늦은 0301을 가리키고 있었다⁠.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실은 밤새 켜 둔 난방 때문에 공기가 말라 있었다⁠. 탁자 위의 찻잔들은 뚜껑이 덮인 채 식어 갔고⁠, 찻잎 냄새와 복사기에서 막 나온 종이의 더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긴 탁자 끝에 한 사람이 창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그 등 뒤 벽시계 아래에 계획서 한 장이 붙어 있었는데⁠, 가장자리가 손때로 검어진 그 종이 한가운데를 붉은 줄 하나가 가로질렀다⁠. 9월 1일까지 교두보 확정⁠, 미국이 결심하기 전⁠.

해군 쪽 배석자가 먼저 일어섰다⁠.

“⁠해상 보급이 계획의 육할을 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잠 전력을 보급로에 더 붙여야 합니다⁠.⁠”

연합참모부 쪽 배석자는 앉은 채로 받았다⁠.

“⁠붙일 배를 어디서 뺍니까⁠? 동쪽을 비우면 미국이 들어올 명분이 생깁니다⁠.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배 한 척 때문에 계획서가 틀릴 수 있습니다⁠.⁠”

“⁠계획서는 틀리지 않습니다⁠. 보급선이 늦을 뿐입니다⁠.⁠”

등을 돌린 사람은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배석자 하나가 그 곁으로 가서 허리를 굽혔다가 돌아와 말을 옮겼다⁠. 날짜는 그대로 둔다고 했다⁠. 해군 쪽 배석자는 한동안 선 채로 있다가 의자를 당겨 앉았고⁠, 앉으면서 자기 앞의 계획서 사본을 뒤집어 놓았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그 말은 곧 종이가 되어 방을 나갔고⁠, 동부전구의 전대들 앞으로 한 장씩 내려갔다⁠.

*

0418에 윤재가 조타장에게 물었다⁠.

“⁠우리 배 인원 몇이야⁠?⁠”

“⁠쉰셋입니다⁠. 어제는 쉰둘이었는데 하나 찾았습니다⁠.⁠”

“⁠어디 있었는데⁠?⁠”

“⁠기관실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조리 담당 오 하사입니다⁠.⁠”

“⁠왜 거기서⁠?⁠”

“⁠따뜻하답니다⁠.⁠”

함장이 한숨을 길게 쉬고 나서 말했다⁠.

“⁠…묵인해⁠. 여기서 유일하게 합리적인 판단이야⁠.⁠”

발령소의 여덟 명 가운데 셋이 웃음을 참았다⁠. 조타장은 참지 못하고 헛기침으로 덮었고⁠, 지완은 헤드폰 한쪽을 눌러 그 소리를 막았다⁠. 윤재는 그 웃음이 배 밖으로 한 뼘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도대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옮겨 간 거리 4⁠,000 확보했습니다⁠. 14분 남았습니다⁠.⁠”

지완의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다⁠. 발령소가 다시 조용해졌다⁠. 잠수함은 원래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에도 종류가 있었고⁠, 지금 것은 누군가 숫자를 기다리는 조용함이었다⁠.

윤재는 그 14분 동안 머릿속으로 발사관을 하나씩 짚었다⁠. 어느 관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을 채우는 데 몇 분이 걸리는지⁠, 채우는 소리가 저 줄에 닿을지를 차례로 셌다⁠. 세지 않아도 아는 숫자였는데 셌다⁠. 환풍기가 낮게 돌았고⁠, 누군가의 작업복 소매가 계기판 모서리에 스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함장은 해도대에 두 손을 짚고 서서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자는 것이 아니라 듣는 얼굴이었다⁠.

“⁠부장님⁠.⁠”

조타장이었다⁠. 아까보다 목소리가 낮았다⁠.

“⁠TMA 나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번에는 그냥 들으시는 겁니까⁠?⁠”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나오지 않은 숫자에 대해서는 정할 것이 없다고 믿고 싶었다⁠. 함장은 식은 커피를 마저 마셨고⁠, 조타장은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화면의 줄은 흐릿하고 곧았으며⁠, 아주 조금씩 오른쪽으로 가고 있었다⁠. 열하루 전에는 이 바다에 그런 줄이 없었다⁠.

해도대 위에서 식은 커피잔이 배의 기울기를 따라 반 뼘쯤 미끄러지다 멈췄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네오작가2026.10.09· 1화

    작가 네오입니다. 3차대전 3부작의 2부는 대만 해협 바다 밑에서 시작합니다. 1화의 듣는 배에서 아무도 우리를 못 보고 우리도 아무도 못 보는 시간, 여러분은 어떻게 견디셨나요? 수치는 예상 시나리오이며 사실이 아닙니다.

  • 단풍국2026.09.05· 1화

    잠수함은 보지 않는다는 첫 문장에 빠졌어요. 광대역 설명을 괄호로 풀어 주셔서 따라가기 편했어요.

    • 네오작가2026.09.06

      물속에서는 듣는 게 전부라 처음부터 그 말로 열었어요. 낯선 말은 처음 나올 때 풀어 드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