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듣는 배
심도 (3차대전 3부작 제2부) · 네오
잠수함은 보지 않는다. 듣는다.
신채호함. 함번 SS-085. 장보고-III 배치-I, 도산안창호급 3번함이다.
3,000톤. 디젤 전기 추진에 연료전지를 얹어 물 밖에 안 나가고 몇 주를 버틴다. 그 몇 주 동안 이 배가 하는 일은 거의 전부 듣는 일이다.
이름은 단재 선생에게서 왔다. 함명을 정할 때 독립운동가에서 고른다. 조국이 없던 시절에 조국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다. 그 이름을 배에 붙여 놓고 물속에 넣는다.
물속에서는 빛이 몇십 미터를 못 가고 전파는 더 못 간다. 소리만 간다. 그래서 이 바다에서 오가는 일은 전부 듣는 일이고, 듣는 일은 곧 들키는 일이기도 하다.
“부장님. 광대역(주파수에 퍼져 있는 소리, 물 가르는 소리가 그렇다) 접촉. 방위 020.”
하지완 중사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체계종합음탐기(함내 여러 소나를 한 화면에 모으는 장치)의 폭포수 화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세로 줄무늬. 대부분은 바다가 내는 잡음이다. 파도, 새우, 자기 배의 심장 소리.
지완은 이 함에 처음 온 여군 승조원 아홉 중 하나였다. 아홉 중 셋이 음탐이었다. 우연이 아니라고 다들 말했다. 지완은 그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귀에 성별이 있을 리 없다.
그 잡음 사이에 줄 하나가 서 있었다.
강윤재 소령이 뒤에 와서 섰다.
“획득 시각.”
“0342. 14분 됐습니다.”
“배열.”
“TASS(배 뒤로 끌고 다니는 청음 줄)입니다. 선수 배열(뱃머리에 붙인 소나)에는 안 잡힙니다.”
예인 배열에만 걸리고 뱃머리 배열에는 안 걸린다. 멀거나, 아주 조용하거나, 둘 다다.
“선 스펙트럼(특정 주파수에 곧게 서는 선, 기계가 내는 소리다)?”
“60헤르츠에 하나. 이차 삼차 조화 성분(기본 주파수의 정수배로 함께 나타나는 선) 보입니다.”
“블레이드 레이트(날개가 물을 때리는 주기, 이걸로 축수와 속도를 안다).”
“못 뽑습니다. 축 소리가 안 갈라집니다.”
윤재는 화면을 봤다. 축이 물을 때리는 소리가 안 잡힌다는 것은 저속이거나 원거리라는 뜻이다. 블레이드 레이트가 없으면 축수도 회전수도 모른다. 축수를 모르면 배의 종류를 모른다.
“거리 해.”
“수동으로는 방위밖에 안 나옵니다. TMA(방위 변화로 거리를 푸는 계산) 돌리려면 침로 두 번 꺾어야 하고, 그러면 30분입니다.”
“최소가 30분이야?”
“기선(거리를 재려고 배가 옮겨 간 두 지점 사이)을 충분히 벌려야 오차가 잡힙니다. 급하게 하면 1만 미터가 틀립니다.”
잠수함이 물속에서 아는 것은 지독하게 적다. 방위 하나, 소리의 성질 조금. 나머지는 전부 시간을 들여 계산한다. 그 시간에 상대도 움직인다.
뒤에서 조타장이 말했다.
“부장님. 함장님 깨웁니까?”
“깨워. 그 전에 하나만 정하고.”
윤재는 지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능동 한 발이면?”
지완의 손이 잠깐 멈췄다.
“거리 방위 심도 한 번에 나옵니다. 오차 몇십 미터입니다.”
“쓸 만하네.”
“쓰면 저쪽이 더 정확하게 압니다. 우리 위치를 우리보다 잘 알게 됩니다.”
“그건 알아.”
“그리고 이 해역에 열려 있는 귀가 몇 갠지 우리는 모릅니다.”
조타장이 조용히 말했다.
“…소리 내면 안 되고, 안 내면 저게 뭔지 모른다는 얘기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뭐 합니까?”
“계속 듣습니다.”
“그게 답입니까?”
“구할은 그겁니다. 듣고, 기다리고, 안 쏩니다.”
“나머지 일 할은요?”
“…그건 좀 시끄럽습니다.”
조타장이 웃다가 멈췄다. 웃을 자리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얼굴이었다.
윤재는 해도대로 갔다. 사흘째 잠항이었다.
전쟁은 열하루 전 새벽에 시작됐다. 2027년 5월 23일 0440, 대만 서해안 세 곳에 상륙이 붙었고 그날 오전에 해협이 닫혔다. 그 뒤로 벌어진 일은 대부분 바다에서 벌어졌다.
수상함은 못 들어온다. 제일도련선 안쪽은 육상 발사 대함미사일 사거리다. 항모는 개전 사흘째에 동쪽으로 물러났다. 남은 건 물속뿐이다.
물속에 있는 건 우리만이 아닐 것이다.
“지완.”
“예.”
“상선 확률.”
“낮습니다. 이 해역 상선 교통량은 열흘 전부터 영입니다.”
“어선?”
“어선은 축 소리가 갈라집니다. 이건 안 갈라집니다.”
“그러면?”
지완은 대답 대신 볼륨을 조금 올리고 헤드폰 한쪽을 내밀었다.
윤재가 받아 썼다.
바다는 시끄러웠다.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것 같고, 비가 오는 것 같고, 아주 먼 데서 누가 쇠를 긁는 것 같았다.
그 아래에 낮은 웅웅거림이 있었다. 일정했다.
“…14분째 저겁니다.”
윤재는 헤드폰을 벗었다. 벗어도 소리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함장님 깨워. 그리고 좌현 20도, 3노트 유지. 타 천천히 먹여.”
“기선 벌리시는 겁니까?”
“벌려야 30분에 끝나지.”
“예.”
“30분은 우리도 조용하고 저쪽도 조용해. 나쁜 30분은 아니야.”
배가 아주 천천히 기울었다. 커피잔 안에서 표면이 한쪽으로 밀렸다가 돌아왔다. 그게 이 배 안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이었다.
윤재는 화면을 다시 봤다.
줄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흐릿하고, 곧고, 아주 조금씩 오른쪽으로 갔다.
30분은 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30분은 더 길다.
배는 3노트로 갔다. 그 이상이면 선체가 물을 때린다. 이 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어뢰가 아니라 우리가 내는 소리다.
함장이 발령소로 들어왔다. 2시간 잤다는 사람 얼굴이었다.
“접촉?”
“방위 020, 우현 이초 이동 중입니다. 블레이드 레이트(날개가 물을 때리는 주기, 이걸로 축수와 속도를 안다) 아직입니다.”
“TMA(방위 변화로 거리를 푸는 계산).”
“22분 남았습니다. 기선(거리를 재려고 배가 옮겨 간 두 지점 사이) 4,000 확보했습니다.”
함장이 폭포수 화면 앞에 섰다. 한참 봤다.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따랐다. 이 배에서 무제한인 것은 커피와 시간뿐이다.
“지완.”
“예.”
“너 5월 23일에 어디 있었어?”
지완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욕조에 있었습니다.”
조타장이 웃었다.
“욕조요?”
“휴가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물 받아 놓고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뭐라고요?”
“티브이 켜 보라고.”
“켜셨습니까?”
“안 켰습니다. 물이 아까워서.”
함장이 짧게 웃었다.
“그러고?”
“20분 뒤에 부대 전화 받았습니다. 그때는 켰습니다.”
5월 23일 0440. 첫 탄이 떨어진 시각이다. 대만 서해안 세 곳이었다.
그 이야기는 10년 동안 있었다. 온다, 안 온다, 온다면 언제. 반복되는 경고는 소리로만 남는다. 익숙해지는 것이 억지가 실패하는 방식이다.
“왜 그때였습니까?”
조타장이 물었다. 함장이 잔을 내려놓았다.
“밖이 문제가 아니었을 거야.”
“…예?”
“안이 문제지.”
함장이 잔을 내려놓았다.
“작년에 저쪽 청년 실업이 20몇 퍼센트였어. 지방 정부는 이자도 못 갚고. 부동산은 3년째 내려가고.”
“그게 상륙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 게 10년 쌓이면 당이 흔들려. 흔들리면 누구 탓이냐를 찾아야 되고.”
“…….”
“밖에 적이 생기면 안이 조용해져. 한동안은.”
“한동안이요?”
“한동안. 그래서 급한 거야. 오래는 못 끌어.”
조타장이 물었다.
“길어지면 저쪽이 불리한 겁니까?”
“길어지면 처음 문제로 돌아가지. 실업은 그대론데 전쟁 비용이 얹히니까.”
“…….”
“통일했다고 못 박으면 그다음 10년은 버텨. 못 박으면.”
윤재는 해도를 봤다. 해협은 가장 좁은 데가 130킬로미터다. 그 거리를 사만이 건넜다. 상륙 자체는 성공했다. 성공한 상륙이 성공한 전쟁은 아니다.
“유럽은?”
윤재가 물었다. 함장은 잠깐 말이 없었다.
“어제 부상 때 받은 게 마지막이야. 엿새 전에 수바우키에서 시작됐다더군.”
“…거기도요.”
“거기가 먼저야. 우리보다 엿새 빨라.”
조타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한반도는요?”
“거기는 전면이 아니야. 서부 전선에서 국지로 붙고 있어.”
“…국지요.”
“그래. 아직은.”
발령소가 조용해졌다. 조타장이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부산 사람이었다.
“함장님.”
“말해.”
“집이 저기 있는데 우리는 왜 여기 있습니까?”
“저 위로 우리 배가 다녀.”
조타장이 천장을 봤다. 버릇이었다. 물 위는 여기서 180미터 위다.
“…원유요?”
“원유하고 곡물하고 장비. 부산 들어오는 물량 8할이 저 위를 지나가. 지금도 지나가고 있어.”
“호송입니까?”
“호송이라고 부르면 호송 함대를 띄워야지. 그러면 신문에 나고, 신문에 나면 저쪽이 정확한 자리를 알아.”
“…그래서 우리 혼자입니까?”
“그래서 우리 혼자야. 작전 이름도 없어. 없는 게 이름이야.”
조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 달 닫히면 공장이 서. 두 달 닫히면 전선에 포탄이 안 올라가. 우리가 저기서 싸우고 있어도 그건 똑같아.”
“…….”
“그리고 저쪽도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알아. 정확히는 몰라도 있다는 건 알아.”
“모르면 그만 아닙니까?”
“모르니까 붙여야지. 짐배 한 척 내보내려면 호위를 달아야 돼. 달 게 없으면 못 내보내고.”
지완이 화면을 보며 짧게 말했다.
“그만큼은 서해로 안 가겠네요.”
“그만큼은 안 가.”
발령소가 다시 조용해졌다. 잠수함은 원래 조용하다. 그 조용함에도 종류가 있다.
“함장님.”
“왜?”
“그거 세 개가 따로입니까, 하나입니까?”
함장이 잔을 들었다.
“따로 시작했으면 우연이고, 같이 시작했으면 계획이야.”
“…….”
“근데 어느 쪽이든 세 군데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쪽은 미국이야. 항모전단도 요격탄도 한 벌뿐인데.”
“유럽에 보내면 여기 없고.”
“여기 보내면 서해에 없고.”
조타장이 잠깐 셈을 하는 얼굴이 됐다.
“…그럼 우리는요.”
“우리는 우리 몫을 해야지.”
“…….”
“미국이 셋으로 갈리는 만큼 우리 손이 커져. 여기서 우리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해.”
“그게 저쪽이 노린 겁니까?”
“노린 거지. 셋을 한꺼번에 열면 어디에도 결정적인 힘이 안 가.”
윤재는 해도를 폈다. 세계지도 쪽이었다.
“조타장. 우리 기름이 어디서 오지.”
“중동입니다.”
“어디를 지나서 오는데.”
조타장이 손가락으로 짚었다. 호르무즈에서 나와 인도양을 건너고, 말라카를 지나고, 남중국해를 올라와 대만 동쪽을 스쳐 제주 남쪽으로 들어온다.
“여기 세 군데가 막혔어.”
윤재는 그 선 위에 손가락을 세 번 눌렀다.
“하나. 호르무즈. 나오는 입구가 막혔어. 21일째야.”
“둘.”
“여기. 지나가는 길목이야. 지금 우리 머리 위고.”
“셋은요.”
“서해. 들어오는 문이야.”
조타장이 아무 말도 못 했다.
“입구가 막히고 길이 막히고 문이 막히면, 배가 몇 척 있느냐는 상관이 없어.”
“…….”
“우리는 원유를 다 사 와. 곡물도 사 와. 배가 안 들어오면 한 달 뒤에 공장이 서고 두 달 뒤에 발전소가 서.”
“그러면 전선은요.”
“전선은 그다음에 무너져. 총알이 없어서가 아니라 총알 만들 전기가 없어서.”
발령소가 조용해졌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야. 저 위로 지나가는 게 남의 배가 아니라 우리 배거든.”
윤재는 그 말의 뜻을 알았다. 전력은 나누면 반이 되지 않는다. 반보다 못해진다. 세 전선이 동시에 열리면 어디에도 결정적인 힘이 안 간다.
“조타장.”
“예.”
“우리 배 인원 몇이야?”
“백여섯입니다. 어제 백다섯이었는데 하나 찾았습니다.”
“어디 있었는데?”
“기관실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취사병입니다.”
“왜 거기서?”
“따뜻하답니다.”
함장이 한숨을 쉬었다.
“…묵인해.”
“예?”
“여기서 유일하게 합리적인 판단이야.”
윤재는 시계를 봤다. 14분 남았다.
화면의 줄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흐릿하고, 곧고, 아주 조금씩 오른쪽으로 갔다. 열하루 전에는 이 바다에 그런 줄이 없었다.
“부장님.”
“응.”
“TMA 나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나오지 않은 숫자에 대해서는 정할 것이 없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