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57자)

대공의 국

저주받은 공녀의 전속 요리사 · 소예담

루치오가 주운 뼈는 아직 따뜻했다⁠. 세로로 쪼갠 순록 다리뼈였고⁠, 숯불에 그을린 단면에 회색 골수가 반쯤 남아 기름이 번들거렸다⁠. 대전 바닥에서 사람들이 대공을 둘러싸고 외치는 소리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이 소리를 듣지 않고 뼈 속에 새끼손가락을 넣어 골수를 긁었다⁠.

짐승 기름이 혀를 덮었다⁠. 깊고 진한 맛이었다⁠. 숯 냄새가 코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것들이 다 넘어간 자리에서 혀뿌리가 얼었다⁠. 식는 정도가 아니었다⁠. 혀 안쪽이 얼음을 문 것처럼 저렸고⁠, 쇠 맛이 꿀 맛보다 먼저 왔다⁠. 공녀의 버터보다 훨씬 진했다⁠.

“⁠골수예요⁠.⁠” 루치오가 일어섰다⁠. “⁠이 뼈요⁠.⁠”

오렌이 칼끝으로 기사단 주방 일꾼 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꾼들은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었다⁠.

“⁠저희는 굽기만 했습니다⁠!⁠” 나이 든 쪽이 외쳤다⁠. “⁠뼈는 아침에 얼음 저장고에서 왔습니다⁠. 집사장님이 열쇠를 열어 주셨고⁠, 큰 주방 막내가 날라 왔습니다⁠. 대공 전하 몫은 늘 따로 싸 두니까요⁠.⁠”

대전의 눈들이 한쪽으로 돌았다⁠. 그레타 뒤에 숨듯 서 있던 핀이 거기 있었다⁠. 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핀이 날랐다면⁠.⁠” 집사장이 조용히 말했다⁠. “⁠핀에게 물어야겠지요⁠.⁠”

*

대공은 자기 침실로 옮겨졌다⁠. 기사 넷이 들었는데도 계단에서 두 번 쉬었다⁠. 침대에 눕히자 대공은 몸을 모로 돌려 침대 옆 대야에 토했고⁠, 대야 바닥에서 검은 서리가 가장자리까지 뻗어 올라 은 테두리를 넘쳤다⁠. 엘리시아가 이 대야를 들고 있었다⁠. 석 달 동안 자기 대야를 시녀가 들어 주던 것을⁠, 오늘은 아버지에게 들어 주고 있었다⁠.

루치오는 자정이 넘어 국을 들고 올라갔다⁠. 공녀의 국과 같은 국이었다⁠. 대구 대가리⁠, 청어 젓국 몇 방울⁠, 버터 없음⁠.

“⁠안 먹는다⁠.⁠” 대공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드셔야 합니다⁠. 이레 동안 깨끗한 것만 드시면 몸에서 빠집니다⁠.⁠”

“⁠항구 국은 안 먹는다⁠.⁠”

“⁠아버지⁠.⁠” 엘리시아가 말했다⁠.

“⁠안 먹는다⁠.⁠”

엘리시아가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숟가락으로 국을 떠서 아버지 입 앞에 댔다⁠. 대공이 눈을 떴다⁠. 딸의 얼굴과 숟가락을 번갈아 봤다⁠. 털이 북슬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요리사가 먼저 먹었어요⁠.⁠” 엘리시아가 말했다⁠. “⁠내 숟가락이에요⁠. 석 달 동안 아버지가 나한테 이렇게 했잖아요⁠. 나는 다 토했고요⁠.⁠”

대공의 입이 열렸다⁠. 엘리시아가 숟가락을 넣었다⁠. 대공이 삼켰다⁠. 한참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세 숟갈째에 대공이 그릇을 빼앗아 직접 들었다⁠. 그리고 그릇째 들이켰다⁠. 수염에 국물이 흘러 검은 서리 알갱이가 녹아 떨어졌다⁠.

대공이 빈 그릇을 루치오 쪽으로 내밀었다⁠.

“⁠비리다⁠.⁠”

“⁠죄송합니다⁠.⁠”

“⁠더⁠.⁠”

엘리시아가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삼켰다⁠. 대공은 두 그릇째를 비우고서야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숨이 고르게 바뀌었다⁠. 엘리시아가 아버지의 이불을 끌어 올리며 루치오에게 속삭였다⁠.

“⁠핀은요⁠?⁠”

“⁠지금 가 보려고요⁠.⁠”

계단참에 오렌이 서 있었다⁠. 루치오가 내려오자 오렌은 길을 막고 섰다⁠. 칼은 칼집에 있었는데 손이 칼자루 위에 얹혀 있었다⁠.

“⁠네가 온 지 열이틀이다⁠.⁠” 오렌이 말했다⁠. “⁠열이틀 동안 버터에서 나오고⁠, 꿀에서 나오고⁠, 이제 골수에서 나왔다⁠. 전부 네 혀가 찾았다⁠. 네 혀 말고는 아무도 그 맛을 모른다⁠.⁠”

“⁠그렇죠⁠.⁠”

“⁠그럼 네가 넣고 네가 찾는 거라고 해도 아무도 모른다⁠.⁠”

루치오는 계단참 벽에 등을 기댔다⁠. 오렌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마타의 뼈 대롱도⁠, 왕비의 꿀도⁠, 오늘의 뼈도⁠, 독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루치오 하나였다⁠. 공녀의 손끝이 검게 피운 서리를 빼면⁠.

“⁠기사님⁠, 제 소금 단지 아시죠⁠?⁠”

“⁠금 간 거⁠.⁠”

“⁠오늘부터 기사님이 가지고 계세요⁠. 제가 쓰는 건 전부 기사님 눈앞에서 꺼내 쓸게요⁠. 청어 젓국 통도 기사님이 지키시고요⁠.⁠” 루치오가 앞치마 끈을 풀었다 다시 맸다⁠. “⁠그리고 제가 무언가 넣는 걸 보시면 그 자리에서 베세요⁠. 공녀님 앞에서⁠.⁠”

오렌이 한참 루치오를 노려봤다⁠. 그러다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그 단지 비었다며⁠.⁠”

“⁠네⁠. 그래서 무겁진 않을 거예요⁠.⁠”

오렌이 콧김을 내쉬고 비켜섰다⁠. 루치오가 계단을 세 칸 내려갔을 때 위에서 오렌이 물었다⁠.

“⁠내일 아침 국은 뭐냐⁠?⁠”

“⁠대구요⁠.⁠”

“⁠검사는 두 그릇이다⁠.⁠”

*

핀은 큰 주방 식료품 창고의 감자 자루 사이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레타가 창고 문을 막고 서 있었는데⁠, 그건 핀을 가두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이었다⁠. 그레타는 루치오를 보자 문에서 비켜섰다⁠.

“⁠때리지 마라⁠.⁠” 그레타가 말했다⁠. “⁠내 막내다⁠.⁠”

“⁠안 때려요⁠.⁠”

루치오가 감자 자루 앞에 쭈그려 앉았다⁠. 핀이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스무 살인데 우는 얼굴은 그보다 어려 보였다⁠. 눈이 퉁퉁 부었고⁠, 콧물이 윗입술까지 흘렀다⁠.

“⁠제가 안 그랬어요⁠.⁠” 핀이 말했다⁠. “⁠저는 날랐을 뿐이에요⁠.⁠”

“⁠알아⁠. 어떻게 날랐는지만 말해 봐⁠.⁠”

핀이 소매로 코를 닦았다⁠. 아침에 집사장이 큰 주방에 와서 얼음 저장고 열쇠를 핀에게 건넸다고 했다⁠. 저장고 안쪽 세 번째 갈고리에 대공 전하 몫 뼈가 천에 싸여 걸려 있으니 이걸 기사단 주방에 가져다주라고⁠. 뼈는 이미 세로로 쪼개져 있었고⁠, 천은 흰 삼베였고⁠, 핀은 이걸 안고 기사단 주방 문 앞까지 갔다가 문지방은 넘지 않고 일꾼에게 넘겼다고 했다⁠.

“⁠열쇠는⁠?⁠”

“⁠바로 돌려드렸어요⁠. 집사장님이 문 앞에서 기다리셨어요⁠.⁠”

“⁠뼈를 따로 싸 두는 건 늘 그랬어⁠?⁠”

“⁠늘 그랬대요⁠. 근데⁠.⁠” 핀이 멈칫했다⁠. “⁠늘은 기사단 주방 사람들이 직접 와서 가져가요⁠. 제가 나른 건 처음이에요⁠.⁠”

그레타가 창고 문틀을 손바닥으로 쳤다⁠. 쾅 소리에 핀이 움찔했다⁠. 그레타는 핀이 아니라 문틀을 노려보고 있었다⁠.

“⁠서른 해다⁠.⁠” 그레타가 말했다⁠. “⁠서른 해를 그 열쇠쟁이랑 같은 지붕 밑에 살았다⁠. 마타가 스무 해⁠, 그놈이 서른 해⁠.⁠” 그레타가 루치오를 내려다봤다⁠. “⁠항구 놈아⁠. 네가 온 뒤로 내 사람이 하나씩 없어진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다⁠. 원래 없었던 거지⁠.⁠” 그레타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등잔을 꺼내 불을 붙여 루치오에게 내밀었다⁠. “⁠저장고 문은 잠겼다⁠. 근데 그 위 환기 구멍은 내 손바닥만 하고⁠, 너는 생선 바르는 놈이니 손이 얇겠지⁠.⁠”

*

얼음 저장고는 성 지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계단 끝 쇠문이 잠겨 있었고⁠, 문 위 벽에 바람이 드나드는 쇠창살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루치오는 창살 사이로 팔을 넣어 안쪽 빗장을 더듬었다⁠. 어깨까지 들어갔다⁠. 손끝에 쇠가 걸렸다⁠. 빗장을 밀자 문이 안쪽으로 삐걱 열렸다⁠.

안은 숨이 하얗게 나올 만큼 추웠다⁠. 천장까지 쌓인 얼음 덩어리 사이로 순록 몸통과 소금에 절인 돼지 다리와 겨울 청어 통이 늘어서 있었다⁠. 피 냄새와 얼음 냄새와 오래된 톱밥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등잔 불빛에 갈고리들이 줄지어 반짝였다⁠.

세 번째 갈고리에 흰 삼베 한 장이 걸려 있었다⁠. 뼈를 싸고 남은 천이었다⁠. 루치오는 천을 내려 등잔 가까이 댔다⁠. 회색 기름 얼룩이 군데군데 배어 있었다⁠. 얼룩 하나를 혀로 핥았다⁠. 얼어붙은 짐승 기름이 혀 위에서 녹았다⁠. 그리고 혀뿌리가 저렸다⁠.

“⁠역시 혀로군⁠.⁠”

루치오가 돌아섰다⁠. 저장고 안쪽 얼음 덩어리 뒤에서 집사장이 나왔다⁠. 털외투를 입었고⁠, 손에 등잔을 들었다⁠. 허리띠의 열쇠 꾸러미가 집사장의 숨결에 맞춰 짤랑거렸다⁠. 먼저 와 있었다⁠.

“⁠환기 구멍으로 들어오느라 고생했군⁠. 나는 열쇠로 들어와 안에서 빗장을 질러 두었네⁠. 누가 오는지 보려고⁠.⁠”

“⁠이 천을 치우러 오셨어요⁠?⁠”

“⁠치울 것이 있었다면 자네보다 먼저 치웠겠지⁠.⁠” 집사장이 등잔을 얼음 위에 내려놓았다⁠. “⁠자네가 가진 건 그 혀와⁠, 겁먹은 막내 하나일세⁠. 막내는 내 열쇠를 받았다고 말하겠지⁠. 나는 핀에게 열쇠를 준 적이 없다고 말할 걸세⁠. 서른 해를 일한 집사장과 스무 살 먹은 감자 깎는 막내⁠. 가신들이 누구 말을 들을까⁠?⁠”

“⁠공녀님은 제 혀를 믿으십니다⁠.⁠”

“⁠공녀는 그렇겠지⁠.⁠” 집사장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공녀는 자네가 누군지 아시니까⁠. 그런데 대공 전하는 아직 모르시지 않나⁠?⁠”

루치오의 등에 열 해 전 매 자국이 당겼다⁠. 얼음 저장고의 냉기가 이 자리로 파고들었다⁠.

“⁠재상 각하께서 일러 주셨네⁠. 객실에 머무시던 그 사흘 동안⁠, 나는 그분 시중을 들었으니까⁠.⁠” 집사장이 열쇠 꾸러미를 손바닥에 올려 무게를 쟀다⁠. “⁠자네가 오늘 밤 성을 나가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네⁠. 상단은 내일 들어오고⁠, 공녀는 그레타의 국을 먹고⁠, 대공 전하는 저주에서 회복하시겠지⁠. 자네가 남으면⁠.⁠”

“⁠남으면요⁠?⁠”

집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등잔을 다시 들고 쇠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간에서 한 번 돌아봤다⁠.

“⁠그 천은 가져가게⁠. 내 것이 아니니까⁠.⁠”

루치오는 삼베를 쥔 채 얼음 사이에 서 있었다⁠. 집사장의 허리띠를 잡아챌 수 있는 거리였다⁠. 열쇠 꾸러미를 빼앗고⁠, 저 사람을 이 얼음 속에 가두고⁠, 공녀에게 달려가 다 말할 수 있었다⁠. 루치오는 한 발을 내디뎠다⁠. 집사장이 쇠문 밖 계단에서 기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여럿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

새벽⁠, 대공의 침실에 해가 들었다⁠. 대공은 세 번째 국을 받아 놓고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밤새 대야가 한 번밖에 차지 않았고⁠, 대야에 핀 서리는 회색이었다⁠. 엘리시아는 의자에서 졸다 깼다⁠. 루치오는 국그릇을 들고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루치오의 앞치마 주머니에 삼베가 접혀 들어 있었다⁠.

문이 열렸다⁠. 집사장이 들어왔다⁠. 침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전하⁠, 회복을 비옵니다⁠. 그리고 아뢰올 것이 있습니다⁠.⁠” 집사장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재상 각하께서 머무시는 동안 제게만 일러 주신 일입니다⁠. 전하께서 아시면 괴로우실 것이라 저 혼자 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의 국을 끓이는 손이 그 손이라⁠, 더는 품을 수가 없습니다⁠.⁠”

엘리시아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루치오는 숨을 멈추는 소리를 들었다⁠.

“⁠열 해 전 겨울⁠, 왕도 연회에서 마마께 마지막 소스를 낸 연회 주방 막내가 있었습니다⁠. 상한 소스를 낸 죄로 매를 맞고 쫓겨났지요⁠.⁠” 집사장이 고개를 들어 루치오를 봤다⁠. “⁠살레르 출신이고⁠, 그때 열아홉이었습니다⁠.⁠”

“⁠아버지⁠, 그건⁠.⁠” 엘리시아가 한 걸음 나섰다⁠.

대공이 손을 들었다⁠. 딸을 보지 않고 든 손이었다⁠. 손등에 아직 회색 서리 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엘리시아는 이 손 앞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집사장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집사장의 허리띠에서 열쇠가 한 번 짤랑거리고 멎었다⁠.

침실이 조용했다⁠. 창밖에서 눈이 지붕을 미끄러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대공은 국그릇을 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대공의 눈이 집사장에게서 떠나 침대 발치로 왔다⁠. 그리고 거기서 멈췄다⁠.

대공이 국그릇을 이불 위에 내려놓았다⁠. 국물이 그릇 가장자리에서 한 번 출렁였다⁠.

“⁠네가⁠.⁠” 대공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다⁠. “⁠그 접시를 냈느냐⁠?⁠”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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