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84자)

가신의 식탁

저주받은 공녀의 전속 요리사 · 소예담

대전 탁자에 가신 일곱이 앉았다⁠. 해마다 첫눈이 무릎까지 쌓이면 북부의 영주들이 대공성에 모여 겨울을 어떻게 날지 정한다⁠. 엘리시아는 열여섯 살 이후로 이 자리에 빠진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석 달을 빠졌다가 오늘 나왔다⁠. 털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아버지의 왼편에 앉자 가신들이 엘리시아의 꺼진 뺨을 보고 눈을 피했다⁠.

집사장이 탁자 끝에 섰다⁠. 허리띠의 열쇠 꾸러미가 숨 쉴 때마다 작게 짤랑거렸다⁠.

“⁠소금 창고는 스무사흘 치 남았습니다⁠.⁠” 집사장이 말했다⁠. “⁠밀은 기사단과 하인을 합쳐 서른 날⁠, 등잔 기름은 보름입니다⁠. 상단은 고개 아래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고⁠, 보름을 넘기면 왕도로 돌아갑니다⁠. 재상 각하의 조건은 하나입니다⁠. 하사품을 버리게 한 요리사를 내보내는 것⁠.⁠”

서쪽 영주가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영주의 땅은 북부에서 가장 넓고 가장 가난했다⁠.

“⁠요리사 하나 때문에 북부가 소금을 못 받는다는 말이오⁠?⁠”

“⁠요리사 하나가 아닙니다⁠.⁠” 집사장이 고개를 숙였다⁠. “⁠아흐레 뒤 보름날 서리 판정이 열립니다⁠. 만에 하나 공녀께 저주가 내렸다고 판정이 나면 대공가 후계는 끊깁니다⁠. 북부 법이 그렇습니다⁠. 그러면 대공 전하 뒤로는 아무도 없습니다⁠.⁠”

대전이 조용해졌다⁠. 엘리시아는 아버지를 보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이 탁자 위 잔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집사장이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탁자에 펼쳤다⁠. “⁠재상 각하께서 천거하신 왕도 귀족의 자제가 있습니다⁠. 스물넷⁠, 북부의 먼 피가 섞인 집안입니다⁠. 판정 전에 그분을 양자로 들여 후계를 받쳐 두면⁠, 왕도는 북부를 믿고 상단을 올려 보낼 겁니다⁠. 공녀께서 판정을 넘기시면 그분은 공녀의 오라비로 남으시면 되고요⁠.⁠”

“⁠넘기지 못하면요⁠?⁠” 엘리시아가 물었다⁠.

“⁠그럼 북부는 끊기지 않습니다⁠.⁠”

서쪽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골 영주는 팔짱을 꼈다⁠. 다른 가신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엘리시아는 탁자 위 종이를 내려다봤다⁠. 이름 하나와 왕도 가문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종이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손끝이 시렸다⁠.

“⁠판정에서 흰 서리를 낼게요⁠.⁠”

“⁠공녀⁠, 그건 서리 신께서 정하실⁠—⁠”

“⁠제가 정해요⁠. 여드레 전만 해도 저는 대야를 끌어안고 있었어요⁠. 지금은 여기 앉아 있고요⁠. 꿀을 안 먹으니까 그렇게 됐어요⁠. 아흐레면 충분해요⁠.⁠” 엘리시아가 집사장을 봤다⁠. “⁠집사장은 서른 해 동안 우리 집 열쇠를 들었죠⁠. 그 열쇠로 왕도 사람을 우리 집 안에 들이자고요⁠?⁠”

집사장의 얼굴은 흔들리지 않았다⁠.

“⁠공녀께서 그 요리사를 감싸시는 동안 북부 열두만이 소금 없이 겨울을 납니다⁠. 저는 그 열두만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럼 소금을 생각해요⁠.⁠” 엘리시아가 얼음골 영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얼음골에 옛날 소금 우물이 있었죠⁠. 할아버지 때까지 거기서 소금을 끓였다고 들었어요⁠.⁠”

얼음골 영주가 팔짱을 풀었다⁠. 늙은 사내였고 손등에 동상 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있습니다⁠. 왕도 소금이 싸게 올라오고부터 덮었지요⁠. 쉰 해가 넘었습니다⁠. 지금은 얼어서⁠—⁠”

“⁠녹여요⁠. 장작은 성에서 보낼게요⁠. 일꾼은 기사단에서 빌리고요⁠. 첫 솥이 끓으면 그 소금은 얼음골 몫부터 떼어요⁠.⁠”

가신들이 대공을 봤다⁠. 아버지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딸의 손바닥 아래 깔린 종이를 손가락으로 집어 화로 쪽으로 던졌다⁠. 종이가 불 위에서 한 번 뒤집히고 오그라들었다⁠.

“⁠들었으면 가라⁠.⁠” 아버지가 얼음골 영주에게 말했다⁠. “⁠잔치는 먹고⁠.⁠”

회의가 끝나고 엘리시아가 복도로 나서자 집사장이 뒤따라 나왔다⁠. 그녀보다 두 걸음 뒤에서 걸었다⁠. 어릴 때부터 늘 이 거리였다⁠.

“⁠공녀께서 어릴 적에 이 열쇠 꾸러미를 장난감으로 쥐고 노셨지요⁠.⁠” 집사장이 허리띠의 열쇠를 들어 보였다⁠. “⁠소리가 좋다고 하셨습니다⁠.⁠”

“⁠기억에 없어요⁠.⁠”

“⁠저는 기억합니다⁠.⁠” 집사장이 걸음을 멈췄다⁠. 복도 창으로 들어온 눈빛이 집사장의 얼굴 반쪽을 하얗게 비췄다⁠. “⁠서쪽 영주는 제가 달래 보겠습니다⁠. 양자 이야기는 판정 뒤로 미루자고요⁠. 대신 그 요리사를 고개 아래 마을로 보내십시오⁠. 상단이 그를 데려가 왕도에 넘기면 재상 각하도 체면이 서십니다⁠. 공녀의 국은 그레타가 끓이면 됩니다⁠. 서른 해를 끓였습니다⁠.⁠”

“⁠그레타 국을 석 달 먹고 대야를 끌어안았어요⁠.⁠”

“⁠그건 마타의 짓이었지요⁠. 마타는 이제 없습니다⁠.⁠”

엘리시아는 집사장을 봤다⁠. 서른 해 동안 이 성의 모든 문을 열고 닫은 손이었다⁠. 장갑을 낀 이 손이 열쇠 하나를 엄지로 쓸었다⁠. 쇠가 닳아 반들거리는 열쇠였다⁠.

“⁠기사단 주방 열쇠도 집사장이 가졌죠⁠?⁠”

“⁠이 성의 열쇠는 전부 제가 가졌습니다⁠. 주방장의 칼꽂이 열쇠만 빼고요⁠.⁠”

“⁠그럼 요리사가 오늘 기사단 주방을 좀 봐도 되겠네요⁠. 아버지 접시요⁠.⁠”

집사장이 부드럽게 웃었다⁠.

“⁠기사단 주방은 대공 전하의 기사들만 드나드는 곳입니다⁠. 백 년 동안 그랬습니다⁠. 오늘 같은 날 남쪽 요리사가 그 문을 넘으면 가신들 앞에서 기사들이 대공 전하를 의심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집사장이 고개를 숙였다⁠. “⁠공녀께서 원하신다면 열어 드리지요⁠. 다만 그 말은 공녀께서 감당하셔야 합니다⁠.⁠”

엘리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 걸음 뒤 복도 모퉁이에 오렌이 서 있었다⁠. 오렌은 엘리시아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저었다⁠. 기사인 오렌도 이 주방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열지 마요⁠.⁠” 엘리시아가 말했다⁠. “⁠아버지가 이십 년 드신 거니까⁠.⁠”

집사장의 장갑에서 짐승 기름 냄새가 났다⁠. 숯불에 구운 기름 냄새였다⁠. 잔치 준비로 바쁜 날이었고⁠, 집사장은 오늘 아침부터 성 안의 모든 주방을 돌았다⁠. 엘리시아는 이 냄새를 맡고도 걸음을 옮겼다⁠.

*

루치오는 잔치 음식을 둘로 나눴다⁠. 공녀의 그릇은 화덕 하나를 따로 써서 끓였고⁠, 가신들과 기사들 몫은 그레타와 함께 큰 주방에서 만들었다⁠. 대공의 몫만은 예외였다⁠. 북부 가신 회의 끝 잔치에서 대공은 기사단 주방이 구운 순록 골수를 기사들과 함께 먹는다⁠. 백 년 된 관습이라고 그레타가 말했다⁠. 기사단 주방은 기사단 숙소 옆에 따로 있었고⁠, 거기 일꾼들은 그레타의 손을 거치지 않았다⁠.

“⁠대공 나리 접시도 제가 볼 수 있을까요⁠?⁠”

“⁠기사단 주방 문지방에 네 발이 닿으면 기사들이 너를 순록 대신 굽는다⁠.⁠” 그레타가 기름을 달군 냄비를 흔들었다⁠. “⁠그리고 대공 나리는 저주 따위 안 걸린다⁠. 공녀님이 아니잖냐⁠?⁠”

루치오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청어를 집었다⁠. 가을에 절인 청어를 물에 하룻밤 담가 짠기를 뺀 것이었다⁠. 배를 갈라 뼈를 바르고⁠, 거친 보리 가루를 입혀 달군 라드에 하나씩 미끄러뜨렸다⁠. 기름이 터지는 소리가 주방을 채웠다⁠. 살레르 뒷골목에서 새벽마다 나던 소리였다⁠. 청어 껍질이 금빛으로 부풀어 오를 때 건져 내니 바삭한 껍질 안에서 흰 살이 김을 뿜었다⁠. 월귤을 짓이겨 소금 대신 청어 젓국 몇 방울로 간을 맞춘 붉은 소스를 곁에 놓았다⁠.

청어는 대가리를 붙인 채 튀겼다⁠. 항구에선 그렇게 먹었다⁠.

대전에 청어 접시가 들어가자 기사들이 조용해졌다⁠. 접시마다 튀긴 청어 다섯 마리가 나란히 누워 하얗게 익은 눈으로 천장을 보고 있었다⁠. 기사단의 젊은 기사 하나가 포크를 들었다가 청어와 눈이 마주쳤다⁠. 기사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옆자리 기사가 젊은 기사를 비웃다가 자기 접시를 내려다보고 똑같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게 뭐냐⁠?⁠” 서쪽 영주가 물었다⁠.

“⁠살레르 청어 튀김입니다⁠.⁠” 루치오가 말했다⁠. “⁠대가리부터 드시면 됩니다⁠.⁠”

“⁠이게 나를 보고 있소⁠.⁠”

“⁠먼저 드시면 안 봅니다⁠.⁠”

오렌이 먼저 움직였다⁠. 청어 대가리를 손으로 잡아 통째로 입에 넣고 씹었다⁠. 바삭하는 소리가 대전 끝까지 들렸다⁠. 오렌이 씹으며 기사들을 둘러봤다⁠. 기사들의 눈이 오렌의 턱으로 모였다⁠. 오렌은 다 삼키고 두 번째를 집었다⁠. 세 번째를 집으면서 허리띠를 풀어 구멍 하나를 또 뒤로 옮겼다⁠.

“⁠공녀님 호위 기사의 검사다⁠.⁠” 오렌이 입에 청어를 문 채 말했다⁠. “⁠독은 없다⁠. 맛은 있다⁠.⁠”

그제야 기사들이 하나씩 청어를 집었다⁠. 얼음골 영주가 대가리를 씹다가 눈을 크게 뜨고 하나를 더 가져갔다⁠. 서쪽 영주는 끝까지 대가리를 떼어 내고 몸통만 먹었는데⁠, 떼어 낸 대가리를 접시 가장자리에 열 개쯤 쌓아 놓고 이것들과 눈을 안 마주치려고 고개를 비스듬히 했다⁠.

엘리시아는 아버지 옆에서 루치오가 따로 끓인 대구국을 먹었다⁠. 루치오가 엘리시아의 숟가락으로 먼저 한 숟갈을 떴고⁠, 가신들이 이걸 이상하다는 얼굴로 봤다⁠. 엘리시아는 이 시선을 다 받아 내며 그릇을 비웠다⁠.

*

순록 골수 구이가 들어온 것은 잔치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었다⁠. 기사단 주방 일꾼 둘이 큰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뼈를 세로로 갈라 숯불에 구운 것이라 쩍 벌어진 뼈 속에 회색빛 골수가 기름을 머금고 지글거렸다⁠. 짐승 기름 냄새와 숯 냄새가 대전에 깔렸다⁠. 대공이 첫 뼈를 집었다⁠. 북부의 관습대로 대공이 먼저 먹어야 기사들이 먹을 수 있었다⁠.

엘리시아는 이 뼈를 봤다⁠. 엘리시아의 그릇은 비어 있었고 배는 따뜻했다⁠. 아버지가 은숟가락으로 골수를 떠서 입에 넣는 것을 그냥 봤다⁠. 아버지는 이십 년 넘게 이것을 먹어 왔다⁠.

아버지가 뼈를 내려놓고 잔을 들었다⁠. 대전이 조용해졌다⁠.

“⁠판정 전까지⁠.⁠” 아버지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굵었다⁠. “⁠양자는 없다⁠. 상단에는⁠.⁠”

아버지의 말이 끊겼다⁠. 잔을 든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엘리시아는 아버지의 턱 근육이 굳는 것을 봤다⁠. 아버지가 잔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잔이 탁자 모서리에 걸려 넘어졌다⁠. 붉은 포도주가 흰 탁자보 위로 번졌다⁠.

아버지가 탁자 모서리를 두 손으로 짚었다⁠.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에서 쏟아진 것이 탁자 위로 떨어졌다⁠.

검은 서리가 피었다⁠.

엘리시아의 대야에서 피던 것보다 컸다⁠. 탁자 위에서 피어난 검은 가지가 포도주 자국을 덮고 은 접시를 덮고 튀긴 청어 대가리 위로 기어 넘어갔다⁠. 아버지의 수염에도 검은 성에가 맺혔다⁠. 반백의 수염 끝마다 검은 얼음 알갱이가 매달려 떨렸다⁠. 대전의 화로들이 일제히 낮게 숨을 죽였고⁠, 가신 몇이 의자를 밀치고 일어섰다⁠.

“⁠아버지⁠!⁠”

엘리시아가 아버지의 어깨를 잡았다⁠. 털옷이 차가웠다⁠. 루치오가 탁자를 돌아 뛰어왔고⁠, 오렌이 칼을 뽑아 기사단 주방 일꾼 둘 앞을 막아섰다⁠. 일꾼들은 쟁반을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었다⁠. 구운 뼈들이 돌바닥 위를 굴렀다⁠.

대공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텼다⁠. 탁자를 짚은 팔이 떨렸고⁠, 이 팔에서 탁자 쪽으로 검은 서리가 뻗었다⁠. 딸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눈이 흐려져 있었다⁠.

집사장이 탁자 끝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열쇠 꾸러미가 짤랑거렸다⁠. 대공의 수염에 맺힌 검은 서리를 오래 내려다보고⁠, 가신들을 향해 돌아섰다⁠.

“⁠보십시오⁠.⁠” 집사장이 말했다⁠. 목소리는 슬펐고⁠, 아주 또렷했다⁠. “⁠공녀께 내린 저주가 피를 타고 대공 전하께 번졌습니다⁠. 이것은 공녀 한 분의 일이 아닙니다⁠. 대공가의 피 전체의 일입니다⁠.⁠”

엘리시아는 아버지의 어깨를 놓지 않은 채 바닥에 굴러다니는 골수 뼈를 봤다⁠. 루치오가 이 뼈 하나를 주워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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