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029자)
금괴에는 바코드가 없다
이세계 편의점 야간 알바는 시급이 금화다 · 채온유
밤새마트 신림삼거리점의 인수인계는 삼 분 만에 끝났다. 점장 도팔석은 포스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리고, 담배 진열장 열쇠를 다율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은 새벽 다섯 시에 뺀다고 말했다. 다음이 문제였다.
“자정 넘으면 지방 손님 와.”
“지방이요?”
“강원도 쪽. 창고 뒷문으로 들어와.” 도팔석은 쉰둘의 배를 앞치마로 눌러 넣으며 창고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앞문으로 내보내려고 애쓰지 마. 못 나가.”
옥다율은 스물넷이었고, 경영학과 3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지 두 달째였고, 휴대폰 은행 앱에는 「남은 원금 28,700,000원」이 떠 있었다. 이 숫자를 줄이려고 낮보다 시급이 세다는 야간을 골랐다. 그런 사람에게 점장이 처음 하는 말이 강원도 손님은 앞문을 못 나간다는 소리였다.
“왜 못 나가는데요?”
“지방 분들이 도시 문을 낯설어해.” 도팔석은 진지했다. “돈은 지방 화폐로 줘. 그건 포스에 넣지 말고 네가 가져. 물건값은 네 카드로 찍고.”
“그럼 제가 손해 아니에요?”
“손해 보면 그만둬. 앞 사람은 이득 봐서 그만뒀어.”
“앞 사람이 누군데요?”
“철구. 열하루 전에 말도 없이 안 나왔어. 앞치마도 안 돌려주고.” 도팔석은 패딩 지퍼를 올리다 말고 한 가지를 덧붙였다. “아, 그리고 상비약은 한 사람한테 한 번에 한 통. 지방 손님도 똑같아. 법이야.”
도팔석은 열 시 이십 분에 나갔다. 자동문이 닫히는 소리 뒤로 다율은 창고 철문을 한 번 열어 봤다. 초록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 밖은 그냥 신림동 골목이었다. 재활용 마대 셋, 고양이 한 마리, 누가 버린 전기장판. 철문 안쪽에는 점장 글씨로 쓴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자정 노크 시 문 열 것, 네 시 전에 꼭 닫을 것.
다율은 종이를 사진으로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우리 점장 사이비 같음.
*
자정에서 사 분이 지났을 때 철문이 울렸다. 세 번 두드리고, 쉬고, 두 번.
다율은 대걸레를 쥔 채 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먼저 들어왔다. 신림동의 겨울바람이 아니었다. 말똥과 장작 연기와 구운 밤 냄새가 한꺼번에 섞인 바람이었고, 이 바람에 실려 들어온 눈송이가 창고 바닥 박스 위에 앉았다가 녹았다. 문밖에는 골목 대신 돌 깔린 길이 있었고, 길 끝에서 횃불이 흔들렸다.
문간에 선 사람은 키가 다율보다 머리 하나는 컸다. 녹슨 빛이 도는 사슬 갑옷 위에 회색 망토를 둘렀고, 머리칼 사이로 귀 끝이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이 사람은 한 손으로 오른쪽 볼을 감싸 쥐고 있었다.
“밤의 상점이 맞소?”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이곳에 아픔을 끊는 하얀 알약이 있다 들었소. 나는 서쪽 숲의 기사 실레아요. 사흘을 못 잤소.”
“여기가 어딘데요?”
“고개 아래 국경 도시 하르펜의 쥐꼬리 골목이오.” 엘프는 다율이 이것도 모르냐는 얼굴이었다. “그대가 이 골목 끝에 문을 낸 상인이 아니오?”
다율은 대걸레를 내리지 않았다. “어디가 아프신데요?”
“어금니 뒤에 이가 하나 더 나고 있소.” 엘프 기사는 이 말을 하면서 진짜로 울 것 같은 얼굴이 됐다. “우리 일족은 백 년에 한 번 이런 일을 겪는다 하오.”
사랑니였다.
다율은 계산대 뒤 상비약 칸에서 해열진통제 한 통을 꺼내 바코드를 찍고, 자기 체크카드를 꽂았다. 삐, 하는 소리에 실레아의 손이 칼자루로 갔다. 다율은 영수증을 뽑아 내밀며 말했다. “판결 아니고 결제예요. 두 알, 물이랑 같이.”
실레아는 알약 두 개를 손바닥에 올려 오래 들여다보다가 삼켰다. 그리고 계산대 위에 동전 하나를 놓았다. 형광등 아래서 노랗게 빛나는 동전이었다. 한쪽에는 탑이, 다른 쪽에는 읽을 수 없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오백 원짜리보다 작고 얇은데, 손바닥에 앉는 무게가 달랐다.
금이었다.
*
약이 듣는 데 이십 분쯤 걸린다고 말해 주고 있을 때 철문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노크도 없이 주먹으로 쾅쾅 쳤다.
들어온 사람은 다율의 가슴께까지밖에 안 왔고 어깨는 냉장고 문만 했다. 붉은 수염을 세 갈래로 땋아 허리띠에 찔러 넣었고, 등에는 빈 자루를 메고 있었다. 사내는 실레아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기사 양반! 알약 나라에 혼자 가기요?”
“그롬바, 조용히 하시오. 이가 울리오.”
그롬바라는 드워프는 다율에게 고개만 까딱하고는 곧장 진열대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컵라면 매대 앞에서 멈춰 코를 벌름거렸다. 비닐로 싸인 용기에서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는지 다율은 알 수 없었지만, 드워프는 조상 이름을 셋쯤 중얼거리며 용기 하나를 귀에 대고 흔들었다.
“안에 마른 국수가 들었군. 국수가 왜 종이 그릇에 사는가?”
“물 부으면 삼 분 뒤에 먹을 수 있어요.”
“삼 분?” 그롬바의 눈이 커졌다. “우리 집 국물은 사흘을 끓이네.”
다율은 하나를 뜯어 온수기 물을 부어 주고, 휴대폰 타이머를 맞춰 계산대 위에 세웠다. 그롬바는 숫자가 줄어드는 화면 앞에 무릎을 꿇다시피 쭈그려 앉았다. 숫자가 일 분을 넘어가자 수염을 한 가닥씩 세기 시작했고, 삼십 초가 남았을 때는 숨을 참았다. 실레아가 이 꼴을 내려다보다가 볼을 감싼 채 웃었다. 웃다가 깜짝 놀라 볼에서 손을 뗐다.
“안 아프오.” 엘프 기사가 말했다. “사흘 만에 내 이가 내 것 같소.”
타이머가 울리자 그롬바가 뚜껑을 젖히고 김 속에 얼굴을 묻었다가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모금을 더 마셨다. 짠맛이 혀 뒤를 때리고 매운 기가 코끝까지 올라오자 그롬바의 눈가에 물기가 돌았다. 국수를 건져 입에 넣고, 씹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짜고, 맵고, 조상님, 왜 이걸 이제야.”
이 사이 실레아는 매장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녹은 눈이 고인 타일 위였다. 칼을 칼집째 풀어 두 손으로 다율에게 내밀었다.
“서쪽 숲의 실레아는 오늘 밤 그대에게 빚을 졌소. 이 칼은 그대가 부르면…….”
“칼 말고요.” 다율이 말했다. “금화로 주시면 돼요. 아까 주셨고요.”
실레아는 칼을 든 채 잠시 그대로 있다가, 다율이 진지하다는 걸 알고 일어섰다. 그리고 진짜 용건을 꺼냈다. 고개 위 국경 성채에 병사가 이백인데 동상과 상처로 밤마다 앓는 소리가 난다고, 하얀 알약을 쉰 통 사 가고 싶다고 했다.
“한 사람한테 한 번에 한 통이에요. 법이에요.”
“누구의 법이오?”
“대한민국이요.”
실레아는 이 나라가 어디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내일 밤에도 한 통, 모레 밤에도 한 통씩 사러 오겠다고 했다.
그롬바는 셈이 빨랐다. 컵라면 하나에 동전 세 닢을 부르다가 다율이 화면에 계산기를 띄우자 다섯 닢으로 올렸고, 다율이 “이거 하르펜에 들고 가서 몇 배 받으실 거잖아요.”라고 하자 수염을 쥐어뜯으며 은화를 꺼냈다. 은화 두 닢에 컵라면 하나. 열두 개를 사면서 그롬바는 매대의 「1+1」 띠를 가리키며 이게 무슨 축복이냐고 물었다. 다율은 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 축복이라고 했고, 그롬바는 이 자리에서 이 행사 상품을 전부 샀다.
계산을 마친 드워프는 자동문 쪽으로 걸어갔다. 바깥 구경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동문은 이 앞에 그롬바가 서도 열리지 않았다. 다율이 계산대 밑 수동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 주자, 드워프는 문턱 앞에서 오른발을 내밀었다. 발이 뒤로 미끄러졌다. 얼음판도 아닌데 신발 밑창이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문턱 앞에서 반 뼘을 물러났다. 세 번 해 보고 네 번째에는 아예 뛰었고, 뛰어서 제자리에 섰다.
“도시 정령이 날 싫어하는군.” 그롬바는 컵라면 자루를 고쳐 메고 창고 쪽으로 돌아갔다. 앞문으로 내보내려고 애쓰지 마. 못 나가. 다율은 점장의 말을 처음으로 농담이 아닌 말로 떠올렸다.
*
새벽 두 시 반에 다율은 계산대 밑에서 동전을 셌다. 금화 일곱 닢과 은화 스물세 닢. 은화 스무 닢이 금화 한 닢이라고 그롬바가 그랬으니 거의 여덟 닢이었다. 휴대폰으로 금 시세를 검색하고, 택배 저울에 금화를 한꺼번에 올려 한 닢 무게를 나눠 봤다. 한 닢에 육십만 원 가까이 나왔다. 네 시간 반 동안 금화 여덟 닢이면, 시급이 금화였다.
다율은 은행 앱의 숫자를 한참 보다가 끄지 않고 계산대 위에 엎어 놓았다.
세 시에 철문이 다시 울렸다. 한 번, 그리고 오래 쉬고, 한 번. 느린 노크였다.
들어온 사내는 쉰쯤으로 보였다. 검은 털가죽 외투가 발목까지 내려왔고, 허리띠에는 손바닥만 한 놋쇠 저울이 매달려 있었다. 접시가 둘 달린 작은 천칭이었는데 접시 하나에 검은 칠이 되어 있었다. 사내 뒤로 짐꾼 둘이 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문간에 섰지만, 사내가 손가락을 들자 이 자리에서 더 들어오지 않았다.
사내는 곧장 계산대로 오지 않았다. 통로를 하나씩 걸으며 물건을 집어 손바닥에 올렸다. 생수 한 병, 건전지 한 묶음, 일회용 라이터. 무게를 재듯 손을 두어 번 위아래로 흔들고는 제자리에 정확히 돌려놓았다. 라이터 앞에서만 오래 서 있었다. 엄지로 바퀴를 굴려 불꽃이 일자, 그롬바는 처음으로 웃었다.
그러고 나서 계산대 앞에 섰다. 외투 안에서 꺼낸 것을 다율의 엎어 놓은 휴대폰 옆에 내려놓았다. 손가락 두 개만 한 굵기의 누런 막대였다. 계산대 상판이 이 무게에 작게 울렸다.
“회원이세요?” 다율이 물었다. 입에 붙은 말이 먼저 나왔다.
“나는 검은 저울 상회의 회장 바르텐이오.” 사내는 정중했다. “이 가게의 뒷문을 내게 빌려주시오. 새벽마다 네 시 전에 상자 하나를 이 앞문 밖으로 내보내 주기만 하면 되오. 받을 사람은 이쪽 거리에 있소.”
다율은 금괴를 보지 않으려고 바르텐의 얼굴을 봤다. “상자에 뭐가 들었는데요?”
바르텐은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를 풀어 손톱만 한 보랏빛 돌 하나를 계산대에 굴렸다. 형광등 아래서 돌 속에 무언가가 느리게 돌았고, 귀를 기울이면 냉장고 모터 소리와는 다른 낮은 울림이 들렸다. 설탕을 태울 때 나는 단내가 났다. 다율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손끝이 찌릿해서 거두었다.
“마정석이오. 하르펜에서는 등잔을 때는 돌이오.” 바르텐은 돌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이 문 너머에서는 값이 백 배라더군.”
“누가 그래요?”
“그대 앞의 일꾼이.”
다율은 금괴를 집어 바코드 스캐너에 갖다 댔다. 스캐너가 빨간 빛만 깜빡였다. “바코드가 없네요. 바코드 없는 건 저희 가게에서 못 받아요.”
바르텐은 웃지 않았다. “그 막대 하나면 그대의 빚은 끝나오. 일꾼이 그러더군. 이 나라 젊은이들은 공부하는 데 빚을 진다고.”
계산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돌았다. 금 한 돈이 육십만 원이면 저 막대는 대출을 세 번 갚고도 남았다. 다율은 숫자가 끝까지 돌기 전에 입을 열었다.
“계산대에 금괴 올려놓는 손님은 백 퍼센트 다음엔 칼을 올려놔요.”
“칼은 무게가 안 나가오.” 바르텐은 금괴를 외투 안으로 거두었다. “나는 무게 나가는 것만 올리오. 아가씨는 지금 거절한 게 아니라 값을 올린 거요.”
바르텐은 바나나우유 하나를 집어 은화 한 닢을 놓고, 빨대를 꽂아 주는 다율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 오래 굴리고 나서 말했다. “달군.” 이게 전부였다. 이 사람은 문간의 짐꾼들을 데리고 돌길 위 횃불 사이로 사라졌다.
*
세 시 오십팔 분, 다율은 점장의 종이대로 창고 철문을 닫으러 갔다. 문을 반쯤 밀었을 때 바깥에서 무언가가 이 틈을 막았다. 나무 상자 모서리였다. 짐꾼 하나가 어깨로 문을 밀며 상자를 창고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다율은 상자를 도로 밀어내려 했지만 상자는 쌀가마처럼 무거웠다.
“보관료는 내일 치르겠소.” 돌길 쪽에서 바르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짐꾼이 손을 뺐고, 문이 쾅 닫혔다. 다율은 숨을 고르고 문을 다시 열었다. 재활용 마대 셋, 고양이 한 마리, 전기장판. 네 시의 신림동이었다.
상자는 창고 바닥에 남아 있었다. 뚜껑 틈으로 보랏빛이 새어 나왔고, 창고 안에 단내가 천천히 찼다. 뚜껑 위에는 테이프로 쪽지가 붙어 있었다. 한글로, 비뚤어진 볼펜 글씨였다.
네 시 십 분에 찾으러 감, 철구.
다율은 상자를 창고 구석의 박스 더미 뒤로 끌어다 놓으려고 모서리를 잡았다. 앞문 쪽에서 띵동 하는 자동문 소리가 났다.
계산대 앞에 오토바이 헬멧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퀵서비스 조끼 아래로 밤새마트 앞치마 끈이 삐져나와 있었다. 철구는 헬멧을 벗지도 않고 창고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새로 왔구나. 거기 그 상자, 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