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252자)
물에서 건진 손
삼류 여포두 · 설묵향
갈대밭의 새벽 물은 비린내보다 쇠 냄새가 먼저 났다. 조미향은 무릎까지 물에 잠긴 채 갈대를 헤치고 들어가면서 이 냄새가 어디서 오는지 코로 더듬었고, 썩은 연잎과 진흙 사이로 녹슨 낚싯바늘 같은 냄새가 가늘게 섞여 오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구월 열사흘, 서호 서쪽 끝 갈대밭은 아직 해가 닿지 않아 물안개가 허리께에 걸려 있었다. 발밑 진흙이 신을 빨아들였다가 놓아줄 때마다 쩍 소리가 났다.
“포두 나리, 아니, 아씨, 아니, 포두…….”
뒤에서 포졸 옥담이 갈대에 얼굴을 긁히며 따라왔다. 스물셋, 관아에 들어온 지 두 해째인데 아직도 미향을 부를 때마다 혀가 세 갈래로 갈라졌다.
“포두만 하게. 숨 아끼고.”
“예, 포두 나…… 포두.”
갈대가 끝나는 자리에 작은 모래톱이 있었고, 거기 늙은 어부 하나가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젊은 여자를 눕혀 안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물풀처럼 어부의 팔에 감겨 있었고, 맨발 하나가 아직 물에 잠겨 물결에 따라 조금씩 흔들렸다. 어부는 이 발을 꺼내 주려고 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딸의 이마에 붙은 진흙만 계속 쓸어내고 있었다.
“붕어골 공치삼이오.” 옥담이 미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딸이 어젯밤 청파루 놀잇배에 노 저으러 나갔다가 안 돌아왔답니다.”
미향은 모래톱에 올라서서 어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노인의 손등이 물에 불어 하얗게 쭈글쭈글했다. 새벽 내내 이러고 있었다.
“어르신. 항주부 관아 포두 조미향이오. 따님 몸을 좀 보겠소.”
공치삼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지 않았다. 마른 눈이었다.
“여자 포두요?”
“그렇소.”
“여자 포두는 값이 싸오?”
옥담이 뒤에서 기침을 했다. 미향은 웃지 않았다.
“값은 안 받소.”
“그럼 보시오.” 공치삼이 팔을 조금 풀었다. “아영이오. 스물이오. 노는 내가 가르쳤소.”
*
관아 오작 함두봉은 갈대밭 입구에서부터 숨을 헐떡이며 왔다. 쉰 살, 등에 검시 상자를 지고 손에는 식초 단지를 들었는데, 모래톱에 올라서자마자 공치삼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입을 열었다.
“저, 저, 저는, 오, 오작……”
“함 오작일세. 시신을 보는 사람이오.” 미향이 대신 말했다.
함두봉은 고맙다는 듯 미향을 한 번 보고, 아영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함두봉의 입이 풀렸다.
“아가씨, 춥지요. 밤새 물에 계셨으니 오죽하겠소. 내가 손이 좀 차갑소, 미안하오. 옷깃을 조금만 열겠소. 아버님 앞이니 많이는 안 열고, 여기 가슴께만 보겠소. 아이고, 이걸 맞으셨구먼. 이걸 맞고 물에 들어가셨으니 숨이 얼마나 막혔겠소.”
옥담이 입을 벌린 채 미향을 보았다. 미향은 고개만 저었다. 관아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었다. 함두봉은 산 사람 앞에서는 제 이름 석 자도 더듬고, 죽은 사람 앞에서는 장날 약장수처럼 말이 흘렀다.
아영의 가슴 한가운데, 복장뼈 위에 검붉은 자국이 있었다. 손바닥 하나가 통째로 찍힌 모양이었다. 손바닥 둥근 자리가 가장 짙고, 이 위로 손가락 다섯 개가 부챗살처럼 벌어져 옅게 번져 있었다. 함두봉이 손가락 두 마디로 자국 둘레를 눌러 보았다.
“갈비가 둘 나갔소, 아가씨. 왼쪽 넷째, 다섯째. 앞에서 곧게 들어왔구먼. 비스듬히 스친 게 아니오. 손바닥이 이 자리에 딱 붙었다가 떨어졌소.” 함두봉은 아영의 입술을 엄지로 조금 벌리고 냄새를 맡았다. “물을 먹었소. 숨이 붙어 있을 때 물에 들어가셨구먼.”
미향은 자국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물비린내, 진흙 냄새, 그리고 이 밑에 아주 옅게 쌉쌀하고 달큰한 냄새가 하나 있었다. 송진을 녹인 것 같기도 하고 묵은 약방 서랍 같기도 했다.
“함 오작. 이 냄새.”
함두봉이 코를 박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미향을 보는 순간 함두봉의 혀가 다시 묶였다.
“야, 약, 약…….”
“시신한테 말하게.”
함두봉은 얼른 아영 쪽으로 돌아앉았다.
“아가씨, 이건 약 냄새요. 붉은 꽃잎 홍화하고 나뭇진 몰약을 술에 담근 냄새요. 장법 쓰는 사람들이 손바닥 단련할 때 바르는 약술이오. 물에 밤새 계셨는데도 이 냄새가 살갗 주름에 남았으니, 손바닥이 아가씨 몸에 직접 닿았다는 말이오. 바람만 맞아서는 냄새가 안 묻소.”
공치삼이 딸의 손을 쥐었다. 아영의 오른손이 주먹을 쥔 채 굳어 있었다. 공치삼이 이 손가락을 하나씩 펴는데, 손바닥에 노 손잡이 모양으로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이 굳은살 한가운데 나무 가시 하나가 깊이 박혀 있었다.
“노는 어디 있소?” 미향이 물었다.
“없소. 배도 없소. 배는 청파루 거요. 노는 아영이 거요. 손잡이에 붕어를 새겼소. 제 손으로.”
이때 갈대밭 바깥 둑길에서 수레바퀴 소리가 났다.
*
수레 두 대와 장정 여덟이 내려왔다. 맨 앞의 중년 사내는 비단 겉옷에 흙 한 점 묻히지 않고 갈대밭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여씨 세가의 집사였다. 집사는 모래톱까지 들어오지 않고 둑 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르신, 가주께서 크게 마음 아파하십니다. 어젯밤 비무 자리에서 일어난 불행한 일이니, 장례는 세가에서 정성껏 치러 드리겠습니다. 관을 가져왔습니다.”
공치삼이 딸을 더 끌어안았다. 미향이 일어섰다. 허리에 감긴 쇠사슬이 철렁 소리를 냈다. 마흔아홉 고리 끝에 달린 납 추가 미향의 허벅지를 쳤다.
“이 시신은 관아 검시청으로 가오.”
“포두 나리…… 아씨?” 집사가 잠깐 망설였다. “강호에서 생긴 일입니다. 관아에서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이 고을의 오랜 관례인 줄 아실 텐데요.”
“관례는 아오. 율에는 없는 말이오.”
“율보다 오래된 말이지요.”
집사가 손짓하자 장정 넷이 갈대를 헤치고 들어왔다. 옥담이 몽둥이를 뽑았다가 장정들 팔뚝을 보고 도로 꽂았다. 미향은 쇠사슬을 풀어 오른손에 두 바퀴 감았다. 납 추가 손 아래로 한 뼘 늘어져 흔들렸다.
“이 시신을 건드리는 사람은 관아 검시를 막은 죄로 묶겠소. 여기서 묶이면 오늘 밤은 관아 옥에서 자오. 옥에는 이불이 없소.”
장정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이들은 세가의 무사가 아니라 짐꾼이었다. 둑 위의 집사는 한동안 미향을 내려다보다가 소매를 털었다.
“가주께 그대로 아뢰겠습니다, 포두…… 나리.”
“어느 쪽이든 편한 대로 부르시오.”
집사가 돌아서자 함두봉이 미향 옆에서 아주 작게 말했다.
“포, 포두. 지, 지부께서…….”
“알고 있소.”
항주부를 다스리는 지부가 서호 세가들과 한 달에 몇 번 술상을 마주하는지 관아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아영을 문짝에 눕혀 갈대밭을 나왔다. 공치삼이 딸의 젖은 발을 제 저고리로 감싸 안고 문짝 끝을 들었다.
*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여문태가 관아 마당에 들어왔다.
미향은 검시청 문 앞에 서 있었다. 대문 쪽에서 문지기들이 비키는 소리, 자갈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쉰 줄의 사내가 혼자 걸어 들어왔다. 뒤따르는 사람은 은자 상자를 든 하인 둘뿐이었다. 키가 크지 않았고, 회색 도포는 수수했으며, 걸음이 느렸다. 그런데 마당에서 비질하던 사환이 빗자루를 쥔 채 벽에 등을 붙였다. 서호 다섯 세가의 우두머리, 여씨 세가 가주 여문태였다.
여문태는 검시청 앞 열 걸음쯤에서 멈췄다. 공치삼은 검시청 문턱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공치삼.” 여문태가 어부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내 아들이 연 비무 자리에서 그대의 딸이 죽었소. 내 집 잘못이오. 피값을 가져왔소.”
하인들이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은자가 햇빛을 받아 마당 전체가 한 번 번쩍했다. 마당 끝에서 관원 몇이 고개를 내밀었다가 넣었다.
“삼백 냥이오. 붕어골 배 열 척을 새로 지을 돈이오. 딸의 장례는 내 집에서 치르고, 그대가 사는 동안 그대 집 생선은 내 집 부엌이 다 사겠소. 강호에서는 이것으로 일을 닫소.”
공치삼은 은자를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삼백 냥이면…… 붕어가 한 근에 열두 문이고, 한 냥이 천 문이니…….”
“어르신.” 미향이 불렀다.
“가만있어 보시오, 포두. 셈하는 중이오.” 공치삼의 손가락이 멈췄다. “붕어가 이만오천 근이오. 우리 아영이가 한 해에 잡는 게 오백 근이니…… 쉰 해 치요.” 공치삼이 고개를 들었다. “아영이는 스물이었소. 쉰 해를 더 살았으면 일흔이오. 딱 맞게 쳐 주셨구려.”
여문태의 눈꺼풀이 한 번 내려왔다가 올라갔다. 미향은 이 사이에 검시청 문 앞을 막아섰다.
“가주. 시신은 검시 중이오. 검시가 끝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내줄 수 없소.”
“조미향.” 여문태가 미향의 이름도 정확히 불렀다. 미향은 여문태가 제 이름을 어디서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조 포두의 딸이로군. 아버지를 닮았소. 문 앞에 서는 모양이 꼭 같소.”
“아버지를 아시오?”
“이 고을에서 오래 산 사람은 서로 다 아오.” 여문태가 상자 쪽으로 턱을 조금 들었다. “검시는 무엇을 밝히려는 것이오? 내 아들이 비무를 했고, 그 자리 아래로 배 한 척이 들어왔고, 손바닥에서 뻗어 나간 기운, 장풍의 끝자락이 배 위의 아이를 쳤소. 그것을 누가 모르오?”
“장풍의 끝자락은 약술 냄새를 묻히지 않소.”
마당이 조용해졌다. 여문태는 처음으로 미향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눈이 깊고 흰자위가 맑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의 눈이었다.
“포두, 그대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아오? 관아가 무림인의 일을 법정에 올리면, 다음에는 무림인이 관아의 판결을 돈으로 사러 오오. 강호의 칼이 관아의 도장 밑으로 들어가는 날, 이 고을에서 제일 돈 많은 집이 제일 센 칼을 갖게 되오. 나는 그 문을 막으려는 거요.”
“그 돈 많은 집이 지금 은자 상자를 들고 관아 마당에 서 계시오.”
뒤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옥담이었다. 대청 쪽에서 추관 영감이 허둥지둥 나왔다. 항주부의 형옥을 맡은 추관은 여문태에게 두 번 절하고, 미향에게는 눈을 부라렸다.
“조 포두! 가주께서 손수 오셨는데 이게 무슨 무례인가!”
“검시를 마치고 시신을 아버지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영감. 세가가 아니라 아버지에게요.”
“포, 포두 아씨 말씀이…… 아니, 포두 나리 말씀이 맞습니다.” 검시청 안에서 함두봉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고는 겁이 났는지 문이 탁 닫혔다.
여문태는 웃지 않았다. 하인들에게 상자를 닫으라고 손짓하고, 공치삼 앞에 한 번 허리를 숙였다.
“해 지기 전까지 기다리겠소, 공치삼. 값이 모자라면 말하시오.”
여문태가 마당을 나가는 동안 자갈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추관이 미향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자네 내일 지부 영감 앞에 불려 갈 줄 알게.”
“예, 영감.”
“예만 하지 말고!”
*
밤 이경, 성안 북이 두 번째로 울리는 무렵, 미향은 호안가 여씨 저택 담장 밑을 걷고 있었다. 담장은 사람 키 두 길이 넘었고, 이 너머에서 물레방아 도는 소리와 칼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번갈아 넘어왔다. 담 아래 풀에서는 국화 냄새가 났다. 세가 사람들은 국화를 담 밖에다 심었다.
미향은 담장 끝의 물가로 나가는 문을 찾고 있었다. 어젯밤 놀잇배가 저택 앞 물에 떠 있었다면, 아영의 노는 저택 쪽 물가로 흘러갔을 수도 있었다.
“포두 아씨. 노를 찾으시오?”
목소리가 위에서 내려왔다. 미향은 고개를 들었다. 담장 기와 위에 젊은 사내 하나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흰 겉옷 소매가 바람에 날렸고,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달빛에 얼굴의 반이 보였다. 웃는 반이었다.
“여준결이오. 여씨 집 장남. 아버지가 오늘 관아에 다녀오셨다지요. 은자를 도로 들고 오셨더군. 그런 일은 처음이오.”
“내려오시오.”
“올라오시오.” 여준결이 술병을 기울였다. “못 올라오시는 줄 아오. 포두 아씨 몸 놀리는 재주, 그 경공으로는 담장 반도 못 넘는다고 다들 그럽디다.”
미향은 쇠사슬 끝을 쥐었다. 납 추가 손바닥 안에서 차가웠다. 저 높이면 던져도 여준결의 발목에 닿기 전에 여준결이 먼저 기와를 박차고 사라질 것이다. 사슬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그 배 위의 아가씨를 친 사람이 누구요?”
여준결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목울대가 움직이는 소리가 담장 아래까지 들릴 것 같았다.
“내가 쳤소.”
여준결은 망설이지 않았다. 숨기려는 사람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 아가씨가 먼저 노로 내 손을 쳤소. 강호에서는 무인에게 먼저 손을 댄 사람은 그 대가를 받소. 아버지는 장풍이 빗나갔다고 하라고 하시던데, 나는 거짓말이 싫소. 그래서 말해 주는 거요.” 여준결이 일어섰다. 기와 위에서도 여준결의 발은 소리가 없었다. “법정에서 다시 물어보시오, 포두 아씨. 똑같이 말하겠소. 그래도 아무도 나를 묶지 못할 거요.”
여준결이 담장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기와 한 장이 미끄러져 미향의 발 앞에 떨어져 깨졌다. 미향은 깨진 기와 조각을 내려다보다가 이것을 주워 소매에 넣었다. 담장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한 번 들리고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