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55자)

예약곡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내지담

새벽 두 시 사십칠 분⁠, 3번 방에서 「⁠사랑의 미터기⁠」가 네 번째로 시작됐다⁠. 전자 오르간 전주가 복도 끝까지 굴러왔고⁠, 택시 기사의 목소리가 반 박자 늦게 오르간을 쫓아갔다⁠. 나는 계산대 의자에 앉아 가게의 소리를 하나씩 셌다⁠. 음료 냉장고 모터는 낮게 웅웅거렸고⁠, 천장 형광등 하나는 가늘게 지지거렸고⁠, 동전 교환기는 잊을 만하면 혼자 딸깍했다⁠. 음향제작과를 한 해 다니다 휴학하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았지만⁠, 들리는 소리마다 이름을 붙이는 버릇은 놓지 못했다⁠.

신촌 뒷골목 순갑빌딩 지하 1층의 별빛 코인노래방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면 계산대가 있고⁠, 계산대 뒤 좁은 복도 양옆으로 방들이 붙어 있었다⁠. 복도 맨 끝 왼편이 7번 방이었고 맞은편이 창고 문이었다⁠. 창고 안의 건물 계단은 위로는 고시원과 건물주의 집으로⁠, 아래로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을 붙인 기계실로 이어졌다⁠.

계산대 서랍을 열면 맨 위에 쪽지가 한 장 있었다⁠. 앞의 야간 알바가 남긴 인수인계였다⁠. 볼펜 글씨가 아래 줄로 갈수록 흔들렸다⁠.

「⁠7번 방은 손님 받지 마세요⁠. 세 시에 노래가 나와도 들어가지 마세요⁠. 사장님께 묻지 마세요⁠.⁠」

일한 지 나흘째였다⁠. 앞의 사흘은 사장 맹순갑이 새벽 두 시 반에 내려와 계산대를 넘겨받았고⁠, 나는 3층 고시원 302호로 올라가 잤다⁠. 오늘은 저녁에 문자가 왔다⁠. 「⁠오늘부터 네 시까지 혼자 봐⁠. 네 시에 국수 들고 내려갈게⁠.⁠」 맹순갑은 노래방 사장이면서 건물주였다⁠. 2층과 3층 고시원도 맹순갑이 직접 굴렸고⁠, 302호 방세를 십만 원 깎아 준 사람도 맹순갑이었다⁠.

한 시쯤에는 1층 치킨집 사장이 남은 닭다리를 은박지에 싸서 내려왔다⁠. 치킨집 사장은 복도로 들어오다가 6번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은박지 꾸러미를 계산대에 놓고 도로 올라갔다⁠. 6번 방 앞에서 끊기는 발소리를 나는 사흘 내내 들었다⁠. 늘 같은 자리였다⁠.

3번 방 문이 열리고 택시 기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육 년째 단골이라고 했다⁠. 새벽 두 시면 골목에 차를 대고 내려와 천 원에 세 곡을 넣고⁠, 세 곡을 전부 「⁠사랑의 미터기⁠」로 채웠다⁠. 점수는 언제나 백 점이었다⁠. 이 가게 기계는 크게만 부르면 백 점을 줬다⁠.

“⁠아가씨⁠, 사이다 하나⁠. 목이 미터기처럼 자꾸 올라가⁠.⁠”

“⁠기본요금만큼만 올라가세요⁠.⁠”

택시 기사는 크게 웃으며 사이다 캔을 받아 들고 들어갔다⁠. 오르간이 다시 울렸다⁠.

*

계산대 모니터에는 방 여덟 개가 작은 네모로 떠 있었다⁠. 3번만 주황색 「⁠사용 중⁠」이었고 나머지는 회색이었다⁠. 세 시 정각⁠, 7번 네모가 초록으로 바뀌었다⁠.

「⁠7번 · 사용 중 · 예약 1곡 · 5816 첫차를 기다리며⁠」

나는 복도 끝으로 고개를 돌렸다⁠. 7번 방 문에 난 손바닥만 한 유리창으로 푸른 화면 불빛이 새어 나왔다⁠. 피아노 전주가 흘러나왔다⁠. 오래된 반주기라 높은 음이 쇳소리처럼 갈라졌다⁠. 전주가 여덟 마디를 돌고 나서⁠,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마이크에 먼저 닿았다⁠.

여자 목소리였다⁠. 젊고 가늘었고⁠, 끝이 조금 쉬어 있었다⁠. 첫 소절을 세게 들어가지 않으려고 아끼는 목소리였다⁠. 화면의 가사는 보이지 않았지만 귀로 따라갈 수는 있었다⁠. 불 꺼진 창을 세다가⁠, 손끝이 먼저 얼어요⁠. 처음 듣는 발라드였다⁠. 이천 년대 초에 흔하던 편곡이었고⁠, 현악기 소리를 흉내 낸 전자음이 목소리 밑을 받쳤다⁠.

3번 방 문이 다시 열렸다⁠. 택시 기사가 사이다 캔을 든 채 복도로 나왔다⁠.

“⁠7번에 누가 들어갔어⁠? 잘 부르네⁠. 내 다음 차례로 넣어 줘⁠.⁠”

“⁠아무도 안 들어갔어요⁠.⁠”

“⁠에이⁠.⁠”

택시 기사가 7번 방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댔다⁠. 나도 계산대에서 나와 택시 기사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방은 비어 있었다⁠. 무선 마이크 두 개가 탁자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고⁠, 소파 쿠션은 하나도 눌리지 않았다⁠. 화면에서 가사만 한 글자씩 파랗게 물들어 갔다⁠. 목소리는 천장 스피커에서 나왔다⁠. 아무도 쥐지 않은 마이크를 거친 목소리였고⁠,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택시 기사가 유리창에서 얼굴을 뗐다⁠.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고⁠, 캔을 든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가씨⁠. 귀신은 뽕짝을 싫어해⁠.⁠”

“⁠네⁠?⁠”

“⁠내가 택시를 삼십 년 몰았어⁠. 새벽 손님 별사람 다 태워 봤다고⁠. 뒷자리가 이상하다 싶을 때 트로트를 크게 틀면 조용해져⁠.⁠”

택시 기사는 3번 방으로 들어가 문을 열어 둔 채 리모컨을 눌렀다⁠. 「⁠사랑의 미터기⁠」가 다섯 번째로 시작됐다⁠. 복도 한가운데에서 두 노래가 부딪쳤다⁠. 오르간과 꺾는 목소리가 한편에서 밀고 들어왔고⁠, 갈라진 피아노와 가는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버텼다⁠. 가는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계산대 옆 분전함을 열었다⁠. 차단기마다 매직으로 방 번호가 적혀 있었다⁠. 「⁠7⁠」 차단기를 내렸다⁠. 유리창의 푸른빛이 꺼졌고⁠, 모니터의 7번 네모도 회색이 되었다⁠.

목소리는 꺼지지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노래가 계속 나왔다⁠. 반주도 그대로였다⁠.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용 녹음기를 꺼내 빨간 단추를 눌렀다⁠. 학교 다닐 때 산 녹음기였다⁠. 휴대전화 녹음 앱도 켰다⁠. 두 기계를 7번 방 문틈에 대고 쪼그려 앉았다⁠. 문틈으로 찬 바람이 나왔다⁠. 난방이 도는 복도보다 방 안이 차가웠다⁠.

1절이 끝나고 후렴으로 넘어갔다⁠.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첫차가 오면 나는 갈게요⁠, 아무도 깨우지 않고⁠. 마지막 음을 길게 끌던 목소리 위로 소리 하나가 떨어졌다⁠.

철컥⁠.

쇠붙이가 쇠붙이를 무는 소리였다⁠. 크고 무거웠고⁠, 물고 난 뒤에도 쇠가 한참 떨렸다⁠. 떨림이 잦아드는 사이 노래가 뚝 끊겼다⁠. 반주도 목소리도 숨소리도 한꺼번에 끊기고 3번 방의 오르간만 남았다⁠.

나는 문틈에서 귀를 떼지 않았다⁠. 오 초쯤 지나서 바닥 가까운 데서 소리가 났다⁠.

똑⁠. 똑⁠. 똑⁠.

노크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보다 낮고 작았다⁠. 7번 방 안⁠, 문 옆 바닥에 붙은 환풍구 철망에서 나는 소리였다⁠. 손가락 마디로 철망 안쪽에서 바깥을 두드리는 소리였고⁠, 세 번째는 앞의 두 번보다 약했다⁠. 다음은 없었다⁠.

*

네 시 정각⁠, 창고 문 안쪽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지르릉⁠. 작은 놋쇠 방울이 금이 간 채로 흔들릴 때 나는⁠, 끝이 지지직 떨리는 소리였다⁠. 방울은 계단을 한 칸씩 내려왔다⁠. 창고 문이 열리고 맹순갑이 냄비를 들고 나왔다⁠.

맹순갑은 예순하나였다⁠. 짧게 볶은 회색 파마에 누빔 조끼를 입었고⁠, 조끼 주머니 밖으로 열쇠 꾸러미가 삐져나와 있었다⁠. 방울은 꾸러미에 달려 있었다⁠. 맹순갑은 아무 말 없이 계산대에 냄비를 내려놓고 일회용 그릇 세 개에 잔치국수를 퍼 담았다⁠. 멸치 국물 냄새가 계산대 위로 퍼졌다⁠. 한 그릇은 3번 방 문을 열고 택시 기사에게 건넸다⁠.

“⁠기사님⁠, 드시고 가요⁠. 오늘 춥다⁠.⁠”

“⁠사장님 국수는 말이 필요 없지⁠.⁠”

맹순갑은 한 그릇을 내 앞에 밀어 놓고⁠, 남은 그릇을 들고 계산대 안쪽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국수를 반쯤 먹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세 시에 들었지⁠?⁠”

“⁠네⁠.⁠”

“⁠7번 반주기가 오래돼서 그래⁠. 혼자 켜져⁠. 고치는 기사도 모른대⁠.⁠”

“⁠차단기를 내렸는데도 나왔어요⁠.⁠”

“⁠그러니까 고장이지⁠.⁠”

맹순갑은 국물을 마저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이어서 손바닥을 위로 펴서 내 앞에 내밀었다⁠.

“⁠전화기⁠.⁠”

나는 맹순갑의 손바닥을 보았다⁠. 손금 사이에 하얀 가루가 끼어 있었다⁠. 시장에서 삼십 년 국수를 삶았다는 손이었다⁠.

“⁠녹음했잖아⁠. 앞의 애들도 다 하더라⁠.⁠”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앱을 열었다⁠. 「⁠새 녹음 3⁠」이 맨 위에 있었다⁠. 맹순갑이 보는 앞에서 휴지통 모양을 눌렀다⁠. 「⁠삭제하시겠습니까⁠?⁠」 한 번 더 눌렀다⁠.

“⁠최근 삭제에서도⁠.⁠”

최근 삭제한 항목에 들어가 한 번 더 지웠다⁠. 맹순갑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던 고개가 내 앞치마에서 멈췄다⁠.

“⁠주머니에 빨간 불⁠.⁠”

녹음 표시등이 앞치마 천을 뚫고 비쳤다⁠. 나는 녹음기를 꺼내 정지를 눌렀다⁠. 맹순갑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녹음기 옆구리 덮개를 열고 메모리 카드를 뽑아 맹순갑의 손바닥에 올렸다⁠. 손톱만 한 카드가 하얀 가루 위에 놓였다⁠. 맹순갑은 카드를 열쇠 꾸러미가 든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방울이 지르릉 울었다⁠.

“⁠소진아⁠. 302호 방세 얼마 내지⁠?⁠”

“⁠이십오만 원요⁠.⁠”

“⁠그 방 원래 삼십오야⁠. 창 있는 방은 그 층에 둘밖에 없어⁠.⁠” 맹순갑은 웃었다⁠. 웃는 얼굴로 한마디를 보탰다⁠. “⁠알바는 많아⁠. 방도 많고⁠.⁠”

맹순갑은 조끼 주머니에서 놋쇠 자물쇠와 짧은 쇠사슬을 꺼냈다⁠. 복도 끝으로 걸어가 7번 방 문손잡이와 옆 벽의 소화기 고리에 사슬을 감고 자물쇠를 채웠다⁠. 딸깍⁠. 아까의 철컥과는 다른 소리였다⁠. 가볍고 짧았다⁠. 자물쇠 몸통의 놋쇠가 닳아 반들거렸다⁠. 여러 번 채워 본 자물쇠였다⁠.

“⁠다음 알바한테도 쪽지 똑같이 남겨⁠. 여기서 들은 건 여기 두고 올라가⁠. 그게 이 건물 규칙이야⁠.⁠”

맹순갑은 빈 냄비를 들고 창고 문으로 들어갔다⁠. 방울 소리가 문 뒤로 멀어졌다⁠.

*

네 시 이십 분⁠, 택시 기사가 3번 방에서 나왔다⁠. 모자를 눌러쓰고 계산대 앞에서 잠깐 서성였다⁠.

“⁠아가씨⁠, 사장님 국수는 맛있어⁠.⁠”

“⁠네⁠.⁠”

“⁠근데 국수 들고 내려오는 날은 꼭 무슨 일이 있는 날이야⁠.⁠”

택시 기사는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꼭대기에는 말아 올린 셔터가 녹슨 채 매달려 있었다⁠. 이 가게는 이십사 시간 문을 여니까 셔터를 내릴 일이 없다고⁠, 첫날 맹순갑이 말했다⁠.

계산대 구석의 작은 텔레비전에서 새벽 뉴스가 소리 없이 돌았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겨울철 보일러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 잇따라 … 환기 필수⁠」 휴대전화가 떨렸다⁠. 주말 알바 미루였다⁠. 미루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나와 함께 일했고⁠, 세 시가 되기 전에 늘 막차를 핑계로 퇴근했다⁠.

「⁠언니 세 시 넘었죠⁠?⁠? 7번 났어요⁠?⁠? 저 그거 무서워서 맨날 두 시 반에 도망가는 거예요 ㅠㅠ 구독자님들한테는 비밀이에요⁠」

미루는 겁쟁이탐방이라는 공포 유튜브 채널을 했다⁠. 구독자는 삼백 명 남짓이었다⁠. 공포 채널 주인이 7번 방이 무서워 막차 핑계로 도망친다는 사실을⁠, 구독자 삼백 명은 몰랐다⁠.

답장을 쓰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방울 소리가 다시 들렸다⁠.

창고 문 뒤에서 방울이 울렸다⁠. 소리는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계단을 한 칸씩⁠, 아래로 내려갔다⁠. 지르릉⁠, 지르릉⁠. 기계실로 가는 계단이었다⁠. 이윽고 깊은 데서 철문 여닫는 소리가 둔하게 울렸다⁠.

나는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7번 방 문에는 사슬이 감겨 있었고 유리창 너머는 캄캄했다⁠. 문틈에 귀를 댔다⁠. 찬 바람이 귓바퀴를 스쳤다⁠. 바람은 방 안 문 옆 바닥의 환풍구 철망에서 나왔다⁠. 철망 안쪽은 아래로 뚫려 있었다⁠.

바람에 목소리가 실려 왔다⁠. 작고 납작했지만 또렷했다⁠. 맹순갑의 목소리였다⁠. 아래층 어딘가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어⁠. 또 나왔어⁠.⁠”

말이 잠깐 끊겼다⁠. 방울이 한 번 울렸다⁠.

“⁠이번 애는 귀가 밝아⁠.⁠”

또 끊겼다⁠. 나는 숨을 참고 귀를 문틈에 더 바짝 붙였다⁠. 차가운 문틀이 광대뼈에 닿았다⁠.

“⁠치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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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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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세시2026.10.31· 1화

    사랑의 미터기가 네 번째 시작된다는 첫 줄부터 새벽 코인노래방 냄새가 나요.

    • 내지담작가2026.10.31

      새벽 노래방에는 같은 노래를 계속 부르는 손님이 꼭 있더라고요. 노래 소리부터 듣고 시작했어요.

예약곡 · 24시 코인 노래방의 비밀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