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17자)

아빠 왔다

회장님 유언은 앵무새 · 문들레

큰아들의 집은 땅에서 멀었다⁠. 창이 벽 하나를 통째로 차지했고⁠, 창밖에 나무가 없었다⁠. 밤이 되자 창밖에 불빛이 수만 개 켜졌다⁠. 불빛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감나무 까치도⁠, 기자들의 사진기도⁠, 언덕을 오르는 엔진도 없었다⁠. 나는 거실 탁자 위 새 이동장 안에서 소리 없는 불빛들을 오래 봤다⁠. 법원에서 데려온 지 나흘째 밤이었다⁠.

큰아들의 아내는 집에 없었다⁠. 큰아들이 전화기에 대고 말하는 소리로 알았다⁠.

“⁠응⁠, 데려왔어⁠. …알아⁠, 당신 새 싫어하는 거⁠. 그래서 친정 간 거 알아⁠. …며칠만⁠. 아니⁠, 오래 안 둬⁠.⁠”

전화가 끊겼다⁠. 큰아들이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빨랐다가 느려졌다가 멈췄다⁠. 숫자를 세는 소리였다⁠. 큰아들은 숫자를 셀 때 혀를 찼다⁠. 쯧⁠, 쯧⁠. 회장도 그랬다⁠. 나는 큰아들의 혀 차는 소리를 따라 했다⁠. 쯧⁠. 큰아들이 고개를 들었다가 도로 숙였다⁠.

변호사의 전화가 왔다⁠. 큰아들이 받았다⁠.

“⁠내일 아침에 접수하죠⁠. 소견서 사본은 실장님한테 받아야 하는데⁠, 안 주면 병원에 따로 신청하고요⁠. …네⁠, 유월 열아흐레⁠. 증언 기록 있으니까⁠.⁠”

큰아들은 전화를 끊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깡통 따는 소리가 났다⁠. 반쯤 마시고 남은 깡통을 식탁에 두고 현관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가 혼자 잠기는 소리가 났다⁠. 띠리릭⁠.

*

한 시간쯤 지나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무겁고 느렸다⁠. 편의점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현관 앞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손가락이 잠금장치 숫자를 눌렀다⁠. 삐⁠, 삐⁠, 삐⁠, 삐⁠.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

차가 대문에 닿는 소리는 아니었다⁠. 엔진이 숨을 고르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문이 열리는 소리 앞에는 늘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다⁠. 서른 해 동안 문이 열리면 나는 외쳤다⁠.

“⁠아빠 왔다⁠!⁠”

젊은 목소리였다⁠. 스물을 갓 넘긴 남자의 목소리⁠. 목이 덜 굵고⁠, 끝이 들떠 있는 소리⁠.

봉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캔 하나가 굴러 현관 턱에 부딪쳤다⁠. 큰아들은 신을 벗지 않고 현관에 서 있었다⁠. 그러다 무릎이 꺾였다⁠. 현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신 한 짝이 발에서 반쯤 빠졌다⁠.

“⁠…내 목소리네⁠.⁠”

큰아들의 얼굴이 붉어지지도 하얘지지도 않았다⁠.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서른 해 전 서재 문턱에서 나를 들여다보던 얼굴로⁠.

나는 큰아들의 얼굴을 알아봤다⁠. 목소리는 굵어졌고 귀는 털이 짧아졌는데 얼굴 밑바닥은 같았다⁠. 젊은 목소리의 주인은 이 집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큰아들이 되어 있었다⁠.

“⁠군대 가기 전에 가르쳤어⁠. 너한테⁠.⁠”

큰아들이 현관 바닥에 앉은 채로 말했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맨날 늦게 왔어⁠. 엄마 가고 나서는 더⁠. 내가 대문 앞에서 기다렸어⁠. 차 소리 나면 막내 깨워서 같이 뛰어 내려갔어⁠. 군대 가면 기다릴 사람이 없잖아⁠. 막내는 열 살이고⁠. 그래서 너한테 가르쳤어⁠. 차 오면 아빠 왔다고 해라⁠. 내가 없어도⁠.⁠”

큰아들이 웃었다⁠. 웃다가 손바닥으로 눈을 눌렀다⁠.

“⁠서른 해를 했네⁠. 내가 가르친 거를⁠. 아버지 차 올 때마다⁠.⁠”

나는 이동장 철망에 부리를 대고⁠, 서른 해 전에 이 소리를 처음 냈을 때 회장이 한 대답을 냈다⁠. 회장은 대문에서부터 웃으며 서재로 올라왔고⁠, 문턱에서 나를 보고 말했다⁠. 젊은 회장의 목소리였다⁠. 숨이 길었다⁠.

“⁠큰애냐⁠? 아니⁠, 앵두냐⁠. 허허⁠. 앵두가 큰애 목소리로 나를 맞네⁠.⁠”

큰아들은 현관 바닥에 오래 앉아 있었다⁠. 굴러간 캔이 현관 턱에 기대 있었다⁠. 큰아들은 캔을 줍지 않았다⁠. 전화기를 꺼냈다⁠.

“⁠변호사님⁠, 늦게 죄송해요⁠. 내일 접수 안 합니다⁠. …네⁠. 안 해요⁠.⁠”

*

사십구재 아침⁠, 큰아들의 차가 성북동 언덕을 올랐다⁠. 엔진이 언덕을 오르다가 대문 앞에서 한 번 숨을 골랐다⁠. 기사 아저씨의 차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숨이었다⁠. 나는 뒷자리 이동장 안에서 외쳤다⁠.

“⁠아빠 왔다⁠!⁠”

운전석의 큰아들이 핸들에 이마를 댔다가 뗐다⁠. 대문이 열리고 부엌 아주머니가 슬리퍼를 끌며 뛰어나왔다⁠. 앞치마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사십구재 상에 올릴 전을 부치던 손이었다⁠.

“⁠앵두 돌아왔어요⁠! 아가씨⁠, 앵두 돌아왔어요⁠!⁠”

앞소리와 끝소리가 같았다⁠. 가운데 한 소리가 달랐다⁠. 나는 이제 가운데 소리를 잘못 듣지 않았다⁠. 돌아온 것은 나였다⁠. 회장은 돌아가셨다⁠. 가운데 소리 하나가 다르면 다른 말이었다⁠.

서재 창으로 감나무가 보였다⁠. 잎이 다 떨어지고 까치집만 남았다⁠. 둥지 가장자리에서 은빛이 반짝였다⁠. 큰아들의 라이터였다⁠.

막내딸은 회장 의자 옆 카펫에 앉아 있었다⁠. 기철은 책장 앞에 서 있었다⁠. 기철의 발치에 종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서 손목시계 태엽 소리가 났다⁠. 기철은 시계를 차지 않고 상자에 넣어 왔다⁠.

큰아들이 이동장을 들고 서재에 들어섰다⁠. 뒤에 작업복을 입은 남자 둘이 따라왔다⁠. 막내딸이 벌떡 일어섰다⁠.

“⁠오빠⁠, 횃대 손대지 마⁠.⁠”

“⁠횃대 말고⁠.⁠”

큰아들이 이동장 걸쇠를 풀었다⁠. 나는 이동장에서 나와 곧장 회장 의자 등받이로 날아갔다⁠. 바퀴 네 개가 홈에 박힌 의자였다⁠. 이레가 일곱 번 지나는 동안 의자는 한 번도 홈을 벗어나지 않았다⁠.

기철이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소견서였다⁠. 큰아들에게 내밀었다⁠.

“⁠부회장님⁠, 가져가십시오⁠. 진짜입니다⁠. 소송하시면 이깁니다⁠. 열아흐레 일은 제가 다 말씀드렸습니다⁠.⁠”

“⁠실장님⁠.⁠”

“⁠그리고 이것도⁠.⁠”

기철이 흰 봉투를 종이 위에 얹었다⁠. 사직서였다⁠.

“⁠녹음을 지체 없이 내지 않았습니다⁠. 지우라는 말씀을 열흘 동안 듣고 지우지 못했고⁠, 지우지 못한 것을 넉 달 동안 숨겼습니다⁠. 제가 지웠어야 했는지 지금도 모릅니다⁠. 칠월의 회장님이 무엇을 지우라고 하셨는지 끝내 여쭙지 못했습니다⁠.⁠”

기철의 목소리 끝이 처음으로 갈라졌다⁠. 나는 의자 등받이를 부리로 한 번 쳤다⁠. 그리고 해가 가장 길던 여름의 첫날 밤⁠, 녹음이 끝나고 나서 회장이 낸 소리를 냈다⁠. 형님이라고 부른 녹음을 마치고⁠, 회장은 숨을 고른 뒤 기철을 보며 웃었다⁠. 맑은 목소리였다⁠. 둘째 날 밤에도 기침이 멎은 뒤 같은 소리를 냈다⁠.

“⁠지워라⁠, 기철아⁠. 다시 하자⁠.⁠”

기철이 고개를 들었다⁠.

칠월의 회장은 기철의 소매를 붙들고 같은 소리를 냈다⁠. 숨을 반쯤 들이쉬고⁠, 끝을 떨면서⁠. 지워라⁠, 기철아⁠. 지워라⁠. 다시⁠. 끝이 끊어져 있었다⁠. 기철은 끊어진 소리만 들었다⁠. 나는 두 소리를 다 갖고 있었다⁠.

“⁠…다시 하자⁠.⁠”

기철이 따라 했다⁠. 사람이 내 소리를 따라 하는 것을 나는 처음 들었다⁠.

“⁠회장님은 칠월에도 녹음을 하고 계셨습니다⁠. 서재에서⁠. 유월 밤으로 돌아가셔서요⁠. 처음 것 지우고⁠, 다시 하자고⁠. 다시 하자고 하신 것을 제가⁠…⁠.⁠”

기철이 말을 잇지 못했다⁠.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기철의 얼굴에 피가 돌아왔다⁠. 붉어졌다가 하얘지지 않고 그대로 따뜻한 색으로 머물렀다⁠. 오래 들고 있던 무거운 것을 내려놓은 새의 얼굴이었다⁠.

*

큰아들은 소견서를 받지 않았다⁠. 봉투만 집어 들었다가 기철의 상자 안에 넣었다⁠.

“⁠사직서는 이사회에서 받을게요⁠. 소견서는 실장님이 갖고 계세요⁠. 진짜니까⁠. 칠월부터 결재는 다시 보고⁠, 베트남에는 내가 갈게요⁠.⁠”

“⁠부회장님⁠.⁠”

“⁠소송 안 해요⁠. 어젯밤에 변호사한테 말했어요⁠.⁠”

막내딸이 큰아들을 봤다⁠. 큰아들이 막내딸을 보지 않고 창밖을 보며 말했다⁠.

“⁠상속세는 내 지분 조금 팔아서 내⁠. 골프장 회원권도 팔고⁠, 우리 집도 줄이고⁠. 언니는 새 없는 집이면 어디든 좋대⁠. 외국 펀드가 좋아하겠지⁠. 내가 가진 게 좀 줄어⁠. 회장 못 할 만큼은 아니야⁠.⁠”

“⁠오빠⁠.⁠”

“⁠집은 내 앞으로 한다⁠. 아버지가 그러라고 했으니까⁠. 너는 여기 살아⁠. 앵두도⁠. 빚은 아버지 몫에서 갚는다⁠. 아버지가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 들었으니까 이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

막내딸이 일어났다⁠. 무릎을 털지 않고 똑바로 섰다⁠. 그리고 숫자를 말했다⁠. 큰아들 앞에서⁠, 기철 앞에서⁠, 작업복 남자 둘 앞에서⁠. 빚의 크기를 처음으로 큰 소리로⁠. 숫자를 다 말하고 나서 막내딸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빠 집에 세 들어 사는 거네⁠, 나⁠.⁠”

“⁠세는 안 받아⁠.⁠”

“⁠세는 앵두가 낼게⁠. 아침마다 아빠 목소리로 됐다⁠, 그만 읽어 해 줄게⁠. 오빠 보고서 길면⁠.⁠”

작업복 남자 하나가 웃음을 참다 콧소리를 냈다⁠. 큰아들이 웃었다⁠. 두 번 짧게⁠, 한 번 길게 웃었다⁠. 회장의 기침과 같은 박자였다⁠. 반음 높았다⁠.

“⁠의자 가져가요⁠.⁠”

큰아들이 작업복 남자들에게 말했다⁠. 남자들이 회장 의자로 다가왔다⁠.

“⁠회사 회장실로 가는 거예요⁠. 아버지가 서른 해 앉던 의자⁠. 이사회에서 내가 앉을 거예요⁠. 앵두야⁠, 내려와⁠. 이번엔 내가 가장 높은 가지에 앉을게⁠.⁠”

나는 등받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큰아들이 손을 내밀지 않고 기다렸다⁠. 넣어 달라는 소리가 없었다⁠. 큰아들의 얼굴은 아무것도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등받이를 한 번 더 부리로 쳤다⁠. 됐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큰아들의 어깨로 건너갔다⁠. 큰아들의 어깨는 회장 어깨보다 넓었다⁠. 귀는 털이 짧았고 뜨거웠다⁠. 큰아들이 숨을 멈췄다⁠. 나는 큰아들의 어깨를 한 번 디디고⁠, 횃대로 돌아갔다⁠.

*

작업복 남자들이 의자를 들어 올렸다⁠. 바퀴 네 개가 홈에서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아무도 도로 넣지 않았다⁠. 의자는 서재 문을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가죽이 계단참에서 한 번 길게 울었다⁠. 대문 밖에서 사진기 소리가 났다⁠. 찰칵⁠, 찰칵⁠. 까마귀들이 회장 의자를 찍었다⁠.

기철이 상자를 들었다⁠. 서재 문턱에서 돌아서서 나를 봤다⁠. 나는 기철의 목소리로 말했다⁠.

“⁠네⁠, 회장님⁠.⁠”

기철이 웃었다⁠. 소리가 나는 웃음이었다⁠.

“⁠네⁠, 앵두야⁠.⁠”

왼쪽 굽이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에서 멈추지 않았다⁠. 대문 밖에서 차 문이 한 번 닫혔고⁠, 손바닥으로 한 번 더 밀렸다⁠. 손목시계는 상자 안에 있어서⁠, 태엽 감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큰아들이 뒤따라 내려갔다⁠. 라이터 소리는 나지 않았다⁠. 라이터는 감나무 꼭대기에 있었다⁠.

서재에는 막내딸과 나만 남았다⁠. 카펫 한가운데 바퀴 자국 네 개가 움푹 남아 있었다⁠. 서른 해 동안 의자가 눌러 판 홈이었다⁠. 나는 횃대에서 내려가 카펫을 걸었다⁠. 똑⁠, 똑⁠. 홈 하나에 두 발을 넣고 섰다⁠. 의자가 있던 자리였다⁠. 의자가 있던 자리는 생각보다 낮았다⁠.

창밖 감나무에서 까치가 길게 울었다⁠. 내 나무다⁠.

나는 까치 소리로 대답하지 않았다⁠. 회장의 목소리로도⁠, 막내딸의 목소리로도⁠, 스물셋 큰아들의 목소리로도 대답하지 않았다⁠. 목 안 깊은 데서 짧고 맑은 휘파람이 올라왔다⁠. 보호소 복도 끝 방에서 늙은 회색앵무가 내던 소리⁠. 서른 해 동안 한 번도 내지 않은⁠, 회색앵무가 무리를 부르는 소리⁠. 여기 있다⁠.

까치가 대답했다⁠.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막내딸이 문 옆에 앉아 비닐봉지를 꺼냈다⁠. 바스락⁠. 막내딸은 쉿⁠, 하지 않았다⁠. 씨 여섯 알을 손바닥에 펴고⁠, 손바닥을 바퀴 자국 옆 카펫 위에 내려놓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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