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97자)
윤달에 앉는 고양이
십이지에서 빠진 고양이의 도전 · 오달래
석수의 정 끝이 연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연탄은 대답하기 전에 바퀴를 올려다보았다. 자미가 들린 테 위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발톱이 돌 틈에 박혀 있었고, 앞발 끝에서 배어 나온 피가 테를 따라 한 줄로 흘렀다. 바퀴는 아직 기울어 있었다. 쥐 한 마리가 누르는 만큼만 덜 기울었다.
“새벽 첫 홰까지 바로 서지 않으면 바퀴가 새해로 못 넘어가오.”
석수가 말했다.
“그럼 열두 번째 조각부터요.”
연탄은 기둥을 탔다. 높은 데였다. 이백 년 동안 오른 어떤 기둥보다 높았다. 주머니가 목을 끌어내렸다. 연탄은 발톱을 기둥에 박으며 한 마디씩 올라갔다. 꼭대기에서 허공을 한 번 뛰어 테에 내려앉았다. 자미의 바로 옆이었다.
“비키세요. 제가 누를게요.”
자미가 고개를 돌렸다. 테 위에 엎드린 작은 쥐의 눈이 연탄의 주머니를 보았다.
“고양이는 가볍습니다.”
“지금은 안 가벼워요.”
연탄은 테 위에 엎드렸다. 네 다리를 벌리고 배를 붙였다. 목에 매달린 주머니가 테에 닿았다. 열한 조각의 무게가 연탄의 몸과 함께 테를 눌렀다. 고양이 한 마리에 조각 열하나. 연탄은 숨을 내쉬며 몸을 녹였다. 무게가 테 위로 고르게 퍼졌다.
자미가 앞발 하나를 떼었다. 바퀴가 기울지 않았다. 자미가 다른 앞발을 떼었다. 바퀴가 버텼다. 다림추가 아래에서 작게 흔들리다 멈췄다.
“한 섬 반이군요.”
자미가 말했다. 웃는 목소리였다.
*
자미는 테를 타고 쥐 자리까지 내려갔다.
쥐 자리는 열두 자리 가운데 가장 컸다. 잿빛 돌에 쥐 한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다른 열한 자리에는 모서리마다 하얀 생채기가 나 있었는데 쥐 자리만 매끈했다. 자미는 제 자리 모서리에 이를 댔다.
천 년 전 사흘 밤낮 열세 번째 자리를 갉던 이였다. 자미가 갉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묵돌의 되새김질 소리와 비슷했다. 전각 밑에 모인 띠 신령들이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기둥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조각이 떨어졌다. 열두 번째였다. 다른 조각들처럼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자미가 입에 물고 테를 거슬러 올라와 연탄 앞에 내려놓았다. 엄지손톱만 했고 따뜻했다.
바퀴가 움직였다. 쥐 자리가 가벼워지자 처져 있던 테가 천천히 올라왔다. 연탄이 엎드린 테가 천천히 내려갔다. 둘이 같은 높이에서 만났다. 긁는 소리가 그쳤다. 다림추의 실이 곧게 늘어졌다. 끝이 바닥의 금 위에 멈췄다.
석수가 다림추를 들여다보았다. 거북 고개가 한참 나와 있었다.
“섰소.”
전각 밑에서 홍염이 소리를 지르려다 묵돌의 머리에 입을 막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연탄은 테에서 내려왔다. 주머니 끈을 이로 풀어 석수 앞에 열두 조각을 쏟았다. 소 조각부터 쥐 조각까지, 조각들이 돌바닥 위에서 서로 부딪쳐 묵직하게 울었다. 목이 가벼워졌다. 이렇게 가벼운 줄 몰랐다.
석수가 정을 다시 들었다.
“어디에 파오?”
자미가 연탄 곁에 와 있었다. 짐승 모습 그대로였고, 앞발이 피로 젖어 있었다.
“열두 자리 사이에 파면 해가 열셋이 됩니다.”
자미가 말했다.
“바퀴가 방금 바로 섰지요. 열두 자리가 고르게 가벼워졌으니까요. 여기에 자리 하나를 더 끼우면 다시 기웁니다. 천 년 전처럼. 고창 늙은이는 내년에 낫을 못 쥘 겁니다. 오른손까지.”
“알아요.”
연탄은 바퀴를 올려다보았다. 돼지 자리와 쥐 자리 사이, 비단이 벗겨진 자리였다. 반들반들한 구덩이가 비어 있었다. 쥐 한 마리 엎드린 모양으로 닳은 바닥.
“저기요.”
석수가 정 끝으로 구덩이를 가리켰다.
“저기는 깨진 틈이오.”
“윤달마다 흔들리는 틈이요. 윤달에는 바퀴가 자리 없이 한 달을 돈다면서요. 아저씨가 한 달씩 엎드려 있던 데요.”
연탄은 자미를 보았다.
“열세 번째 자리는 저기에 내요. 해는 안 가져요. 열두 띠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가만히 있다가, 윤달에만 앉아요. 사람 세상에 고양이띠는 안 생겨요. 고양이 해에 태어나는 아이도 없고요.”
전각 밑이 조용해졌다. 토끼 신령의 귀가 천천히 펴졌다. 양 신령이 고개를 들었다.
자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앞발로 콧등을 문질렀다. 안경을 밀어 올리는 몸짓이었다.
“윤달은 신이 안 보는 달입니다.”
자미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 달을 믿고 수의를 짓고 조상 묘를 옮깁니다. 아무도 안 본다고 믿으니까 하지요. 고양이가 앉아 있으면 그 달은 더는 빈 달이 아닙니다.”
“고양이는 보기만 해요.”
연탄이 말했다.
“보고 아무한테도 안 일러요. 귀찮아서.”
기둥 밑에서 할머니가 쇳소리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고양이가 본 걸 누구한테 이르는 거 봤냐? 이르는 건 쥐지.”
장터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웃었다. 원숭이 신령이 배를 잡았다. 자미는 웃지 않았다. 오래 구덩이를 올려다보았다. 천 년 동안 윤달마다 엎드려 있던 자리를.
“윤달이 와 봐야 압니다.”
자미가 말했다.
“다음 윤달에 바퀴가 기울면, 그 자리는 제가 다시 깹니다.”
“그때는 같이 앉아요.”
연탄이 말했다.
“아저씨 무릎 까지는 거, 쪼롬이가 싫어해요.”
*
석수가 열두 조각을 구덩이에 대 보았다.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 맞췄다. 한참 뒤에 고개를 저었다.
“모양이 안 맞소. 깨진 테 모서리에 맞는 돌은 처음 그 돌뿐이오. 천 년 전 내가 판 자리돌.”
모두의 눈이 연탄의 목으로 갔다. 붉은 끈 끝에서 돌 방울이 울고 있었다. 전각에 들어선 뒤로 한 번도 그치지 않았다. 구덩이를 향해 끈째 당겨지고 있었다.
연탄은 방울을 앞발로 감쌌다. 이백 년 동안 체온이 밴 돌이었다. 처음 걸음마를 떼던 날 목에 단 무게였다. 무거운 거 하나 달고 있으면 고양이는 덜 떨어진다.
할머니가 바퀴 밑으로 걸어왔다. 수염이 화로 열기에 꼬부라진 늙은 고양이가 연탄 앞에 앉았다. 굽은 등이 더 굽었다. 할머니는 연탄의 목에 코를 대고 붉은 끈 매듭을 이로 더듬었다.
“내가 걸었으니 내가 푼다.”
매듭이 풀렸다. 방울이 할머니 앞발 사이에 떨어졌다. 할머니는 방울을 앞발로 오래 누르고 있었다. 천 년 전에 앉았던 자리의 무게였다. 할머니가 방울을 물어 석수 앞에 내려놓았다.
“한 해 앉아 봤다. 무겁더라. 이번엔 해 없이 앉는다니 좀 낫겠지.”
석수가 방울을 받았다. 정으로 방울을 둘로 갈랐다. 안이 비어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돌덩이였다. 석수는 반쪽 돌의 깨진 면을 구덩이 모서리에 댔다. 맞았다. 천 년 만에 이가 맞았다.
연탄은 앞발로 목을 만져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목이 가벼워서 고개가 저절로 들렸다.
“하나 더 있어요.”
연탄이 말했다. 빈 주머니를 입으로 물어 뒤집었다. 맨 바닥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이 나왔다. 크레파스 고양이. 귀가 세모나고 수염이 긴. 「고양이 해에 우리 아기 나게 해 주세요.」 종이가 젖었다 마른 자리마다 쭈글쭈글했다.
연탄은 종이를 자미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돌려드릴게요. 쥐 집안 바구니로 온 거라면서요. 세세요.”
자미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앞발로 종이를 펴고, 크레파스 고양이를 한참 보았다. 그러고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입에 물었다. 장터 바구니까지 물고 갈 얼굴이었다. 주판알 튕기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자미가 종이를 문 채 아주 작게 말했다.
“하나.”
*
석수의 정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방울 두 동강이 구덩이의 깨진 모서리에 들어갔고, 열두 조각이 두 동강 사이를 메웠다. 석수가 자리돌 위에 무엇을 새길지 물었다.
“고양이를 뭐로 새기오? 앉은 거? 선 거?”
“자는 거요.”
석수가 눈을 껌벅였다. 그러고는 둥글게 몸을 만 고양이를 새겼다. 꼬리로 코를 덮은 모양이었다. 열두 자리의 짐승들은 모두 앞을 보고 있었는데, 열세 번째 자리의 고양이만 눈을 감고 있었다.
연탄은 테를 타고 올라가 새 자리에 앉았다. 둥글게 몸을 말았다. 자리돌이 몸에 꼭 맞았다. 쥐 한 마리 엎드린 자리가 고양이 한 마리 웅크린 자리가 되었다. 다림추는 금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쪼롬이 다림추 앞에 앉아 있었다. 바늘 대신 다림추 끝을 읽고 있었다. 자미가 쪼롬 곁으로 갔다. 피 묻은 앞발로 딸의 귀를 한 번 쓸었다.
“저울지기는 저울을 봐야지. 장터에 내려가거든 저울추는 내 외투 주머니에서 꺼내 가거라.”
쪼롬은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귀 끝이 빨갰다. 화난 빨강이 아니었다. 빨간 귀 끝에 아버지의 피가 조금 묻었다.
닭 신령이 궁 지붕 위에서 목을 길게 뺐다. 이번에는 놀라서 우는 것이 아니었다.
꼬끼오.
설날 첫 홰였다. 바퀴가 돌았다. 아주 느리게, 머리카락 한 올만큼. 섣달이 끝나고 정월이 들었다. 열세 번째 자리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고양이는 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윤달이 아닌 해에는 열세 번째 자리가 할 일이 없었다. 바퀴가 넘어가자 양 신령의 털이 한꺼번에 부풀었다. 양의 해였다.
*
설날 아침, 고창 보리밭 마을 돌담 위에 잿빛 줄무늬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농부는 왼손에 붕대를 감고 마당에 서 있었다. 읍내 병원에서 막 돌아온 길이었다. 농부는 오른손으로 붕대 감은 손을 받치고 밭을 보았다. 고랑마다 보리가 흙에 붙어 푸르게 서 있었다. 누가 밟았는지 고랑마다 큰 발자국과 작은 발자국이 겹쳐 있었다.
“누가 이걸 다 밟았냐?”
“지나가던 사람들이요, 아버님.”
농부는 한참 밭을 보다가 웃었다.
“입춘에 돼지가 들더니. 설에 귀인이 들었네.”
며느리가 국그릇을 들고 나왔다. 멸치 국물에 밥을 말았다. 며느리는 돌담 밑에 그릇을 내려놓고 고양이를 올려다보았다.
“왔네. 나 화났는데.”
고양이는 돌담에서 내려와 그릇에 얼굴을 묻었다. 며느리는 쪼그려 앉아 고양이 등을 쓸었다. 고양이 목에서 그르릉 소리가 났다. 며느리는 배를 쓸며 말했다.
“얘는 양띠야. 순한 애. 괜찮아.”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고 밥을 먹었다. 며느리는 대문 기둥의 「입춘대길」 옆에 공책 한 장을 붙였다. 크레파스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이번에는 귀가 둥글었다. 둥글게 몸을 만, 눈을 감은 고양이였다.
*
장터는 설날 아침에도 쌀가마가 떨어졌다. 섣달 그믐밤을 새운 사람들의 눈썹이 다들 하얬다.
저울 위 지붕, 장터에서 제일 높은 데에 사과 상자 하나가 올라가 있었다. 상자 안에 잿빛 줄무늬 고양이가 둥글게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목에 아무것도 없었다. 고양이의 눈썹에 밀가루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홍염이 묻히고 도망간 자리였다.
쪼롬이 상자 옆 기와에 앉아 있었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저울추 두 개가 바람에 달그락거렸다. 아래에서 자미가 저울판에 올라갔다. 바늘이 돌았다. 쪼롬이 지붕 위에서 고개를 내밀어 바늘을 읽었다.
“한 섬!”
자미가 저울판 위에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아래에서 쪼롬을 올려다보고, 자기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반 섬이 빠져 있었다.
까치 하나가 지붕을 지나가다 부리에서 종이 한 장을 떨어뜨렸다. 남쪽 바다 건너에서 올라온 종이였다. 종이가 팔랑거리며 내려와 상자 속 고양이의 배 위에 내려앉았다. 고양이는 깨지 않았다. 꼬리 끝만 한 번 까딱해서 종이를 배 밑으로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