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98자) · 팔월 삼일

주호소: 상담사

고양이 상담소 영업일지 · 오세림

팔월 삼일 월요일 아침, 순애세탁 간판이 내려갔다. 넷째 계단참 할아버지가 사다리를 잡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올라갔다. 간판 뒤 벽돌은 사십 년 동안 햇빛을 안 받아서 거기만 색이 진했다. 아르바이트생이 그 진한 자리에 새 간판을 달았다. 흰 바탕에 초록 글씨. 순애동물병원. 글씨는 채린이 골랐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 줄은 오 여사가 골랐다. 고양이 있음.

채린은 부산 병원을 정리했다. 칠월 말에 내려가서 동료에게 지분을 넘기고 짐을 싸서 올라왔다. 동료는 전화로 마지막까지 소리를 질렀다. 세탁소 자리에 병원을 연다고? 그 계단 동네에? 채린은 대답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동료는 이번에는 무슨 손님이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개업 화분을 보냈다. 화분은 계단 서른 칸을 못 올라오고 계단 아래 편의점에 맡겨졌다. 아르바이트생이 들고 올라왔다.

병원이라고 해도 아직은 진료실 하나였다. 세탁소 카운터를 진료대로 쓰고, 셔츠 레일은 그대로 두었다. 찾아가지 않은 셔츠들은 오 여사가 골목에 다 나눠 줬다. 넷째 계단참 할아버지는 순애 할머니가 다려 둔 등산복을 받았다. 둘째 계단참 할머니는 남의 집 블라우스를 받아서 자기 것처럼 입었다. 레일에는 이제 청진기 두 개와 목줄 세 개가 걸려 있었다.

간판이 올라가는 동안 마 실장이 삼 층에서 내려왔다. 마스크를 쓰고, 서류 봉투를 겨드랑이에 끼고. 계단을 다 내려온 건 아니었다. 일 층 문 앞, 셔츠 레일이 보이는 자리에서 멈췄다. 바구니에서 수요가 고개를 들었다. 마 실장이 재채기를 했다. 한 번. 마스크가 들썩였다.

“약 먹었습니다. 아침에 두 알.”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고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두 부. 이 층 상담소 임대차 계약서와 일 층 동물병원 임대차 계약서. 제십이조 자리에 두 줄이 그어져 있고 그 옆에 오 여사 글씨가 있었다. 고양이는 됨. 개는 물어보고. 마 실장은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짚으면서 두 번째 재채기를 했다.

“이모가 이렇게 쓰셨는데 법무사가 이걸로는 안 된다고 해서 제가 정식으로 다시 쳤습니다. 반려동물 사육은 임대인과 협의하여. 협의는 했다고 봅니다. 사월에 세 번, 유월에 한 번, 구청에서 한 번.”

“다섯 번 다 실장님이 내보내라고 하신 거잖아요.”

채린이 말했다. 진료대 위에서 목줄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지 않고. 마 실장은 마스크 위로 눈만 끔벅였다.

“협의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한쪽이 계속 말하고 한쪽이 계속 안 듣고.”

명우는 이 층 계단참에서 그 말을 들었다. 십 년 동안 이 방에서 한 일이 그거였다. 그는 웃었다. 소리는 안 냈다.

마 실장이 계단을 올려다봤다. 명우와 눈이 마주쳤다.

“하 선생. 그 일지 뒷장, 일요 칸 옆에 날짜 하나 적어 주십시오. 오늘. 데려가는 날이 오늘입니다. 아내가 사진을 봤어요. 월요가 제 어깨에 올라탄 거. 그걸 보고 웃더라고요. 결혼하고 아내가 저 보고 그렇게 웃은 게 처음입니다. 흰 놈은 이모가 안 놓으시니까 저는 삼색이로 만족합니다.”

세 번째 재채기가 나왔다. 수요가 바구니에서 나와 마 실장 구두 옆에 앉았다. 마 실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코만 풀었다. 삼 층 창문에서 오 여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색 단발이 창틀에 걸쳐 있고, 그 옆에 흰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월요. 둘 다 표정이 없었다. 마 실장이 올려다보고 손을 흔들었다. 둘 다 안 흔들었다.

카운터 옆 바구니에는 고양이 둘이 있었다. 수요와 회색 첫째. 새끼 넷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회색 첫째는 채린 무릎에만 올라갔다. 수요는 병원 고양이가 됐다. 겁먹은 강아지가 진료대에 올라오면 수요가 옆에 와서 앉았다. 강아지가 조용해졌다. 판단하지 않는 눈이었다. 채린은 그 둘에게 이름을 새로 붙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붙인 이름 그대로 불렀다. 요일로.

명우는 그날 아침 영업일지 뒷장을 폈다. 요일 일곱 개와 새끼 넷.

화요, 이 층. 월요, 삼 층. 목요와 금요, 계단 급식소, 월수금은 둘째 할머니, 화목토일은 셋째 할머니. 토요, 넷째 할아버지 집. 일요, 마 실장 집. 수요와 회색 첫째, 일 층 병원. 수요 주니어, K. 회색 둘째, J. 회색 셋째, 백 사모 따님.

열하나.

그는 그 숫자를 오래 봤다. 사월 밤 계단참에 서서 울음소리 셋을 셌을 때부터 넉 달. 한 마리씩 모았다. 모았다고 하기엔 명우가 한 일이 적었다. 기다렸을 뿐이다. 고양이가 제 무릎을 고를 때까지, 사람이 제 차례에 손을 들 때까지. 그건 그가 십 년 동안 이 방에서 한 일과 같았다. 다른 점은, 이번에는 기다리는 동안 그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서서.

그날 오후 다섯 시. 명우는 여전히 그 시간을 비워 두었다. 대기자는 스무 명으로 줄었다. 스무 곳 가게가 열두 곳이 되면서 사람들이 고양이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쉬러 오기 시작했다. 명우는 그 차이를 목소리로 알았다. 쉬러 오는 사람은 말을 적게 한다. 사장님 앞에서도.

다섯 시 정각. 노크 소리가 났다. 두 번. 명우가 대답하기 전에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기다렸다. 명우가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채린이 들어왔다.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가운 가슴에 순애동물병원이라고 파란 실로 수놓여 있었다. 할머니 수건과 같은 실이었다. 계단참 할머니 누군가가 밤새 놓은 것이었다.

채린은 소파에 앉지 않았다. 카운터처럼 쓰는 명우 책상 앞으로 와서, 접수 카드 한 장을 책상 위로 밀었다. 카드가 책상을 미끄러져 명우 손끝 앞에서 멈췄다. 모서리가 손끝을 막 떠났다.

“당일 접수요. 예약 없이.”

명우는 카드를 내려다봤다. 이름 칸. 김채린. 나이 칸. 서른넷. 연락처. 그리고 주호소 칸.

상담사

글씨가 반듯했다. 볼펜 끝이 종이를 누른 자국이 뒷면까지 배어 있었다. 명우는 그 두 글자 반을 오래 봤다. 상담사. 마지막 글자 받침이 종이를 조금 찢었다.

“주호소가 상담사입니까?”

“네.”

“어떤 상담사입니까?”

“이 층 상담사요. 넉 달 동안 한 번도 안 앉는 사람. 남의 얘기는 십 년 들었는데 자기 얘기는 한 줄밖에 안 한 사람. 그 사람이 걱정돼서 왔어요. 조언은 필요 없고요. 편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오십 분 동안 그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보고 싶어요.”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이 방의 규칙이었다. 채린은 그걸 알았다. 그래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채린은 상담사 의자에 앉았다. 명우 의자. 넉 달 동안 내담자들이 앉던, 명우가 한 번도 못 앉은 의자. 채린이 거기 앉아서 소파를 가리켰다. 턱으로. 유월 십사일 밤에 접이식 의자를 가리키던 그 턱짓이었다.

명우는 소파를 봤다. 내담자 자리. 사장님이 소파 한가운데 식빵을 굽고 있었다. 명우가 다가가자 사장님이 눈을 떴다. 초록 눈. 표정은 없었다. 명우는 사장님 옆, 소파 끝에 앉았다.

십 년 만이었다. 명우가 이 방에서 그 자리에 앉은 것은. 소파가 명우 무게만큼 꺼졌다. 오래 쓴 스프링이 낮게 울었다. 맞은편에 채린이 있었다. 명우가 늘 서 있던 창가를 등지고. 오후 햇빛이 채린 뒤에서 들어와 명우 얼굴에 떨어졌다. 명우는 눈이 부셨다. 십 년 동안 내담자들이 이 자리에서 이 햇빛을 받았다는 것을 그는 처음 알았다. 눈이 부셔서 상대 얼굴이 잘 안 보인다. 안 보이니까 말이 나온다.

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록 머그에 물을 따라 명우 앞에 놓았다. 명우가 늘 하던 대로. 물을 마시는 건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명우는 그 뜻을 알았다. 계속할 것이 없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오 분. 십 분.

사장님이 일어났다. 기지개를 켰다. 앞발을 쭉 뻗고 등을 둥글게 말았다. 그러고는 소파 위를 걸어왔다. 명우 쪽으로. 명우 허벅지 앞에서 한 번 멈췄다. 명우를 올려다봤다. 명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내밀지 않았다. 넉 달 동안 한 번도 안 올라온 무릎이었다. 올라오라고 하면 안 올라온다. 부르면 안 온다. 명우는 그걸 제일 잘 알았다. 기다렸다.

앞발이 먼저 명우 무릎에 닿았다. 짙은 바지 위였다. 뒷발은 아직 소파 위에 있었다. 명우 손이 반사적으로 받치려다 멈췄다. 받치면 갈까 봐. 뒷발이 올라왔다. 사장님이 명우 무릎 위에서 한 바퀴 돌았다. 할머니가 다린 베이지 셔츠 소매 끝에 코를 한 번 대고. 그리고 앉았다. 앞발을 가슴 밑에 접었다. 식빵.

가르릉 소리가 났다.

백이십오 일. 명우는 그 숫자를 세지 않았다. 셀 수 있었는데 세지 않았다. 대신 들었다. 무릎 위에서 올라오는 작은 모터 소리를. 그 소리가 명우 허벅지 뼈를 타고 올라와 가슴까지 닿았다. 명우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스무 마디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다. 그런 걸 세던 사람이 이제 없었다.

“어머니는 말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세탁소에서 골목 사람들 앞에서 한 말과 같은 문장이었다. 그다음은 달랐다.

“동네 사람 얘기를 하실 때 저는 안 들었습니다. 밥 먹으면서 신문을 봤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안 듣는 걸 알면서도 하셨습니다. 듣는 사람이 없어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윗집 며느리가 어쨌다, 골목 끝 집 개가 새끼를 낳았다, 그런 얘기를요. 돌아가시고 나서 그 얘기들이 다 어디로 갔나 했습니다. 십 년 동안 이 방에서 들은 게 그 얘기였습니다. 남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오늘에서야 압니다.”

채린은 물을 마셨다.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명우는 계속했다.

오십 분이 지났다. 명우는 그 오십 분 동안 몇 마디를 했는지 모른다. 채린도 세지 않았다. 창밖 해가 책장 세 칸과 소파 팔걸이를 건너 카펫 끝에 닿았을 때 상담이 끝났다. 사장님은 아직 명우 무릎 위에 있었다. 자고 있었다.

채린이 일어섰다. 책상에서 예약 노트를 끌어당겼다. 다음 주 화요일 오후 다섯 시. 명우가 넉 달 동안 한 번도 채우지 않은 그 시간. 채린이 볼펜을 들어 그 자리에 첫 획을 긋기 시작했다. 명우는 무릎 위 고양이 때문에 일어나지 못했다. 소파에 앉은 채로 그 볼펜 끝을 봤다. 누구 이름을 쓰는지 아직 읽을 수 없었다.

채린이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명우를 봤다.

“다음에 또 오세요.”

그건 이 방의 세 번째 규칙 위반이었다. 명우가 십 년 동안 한 번도 뉘우치지 않은 그 위반을, 이번에는 맞은편 사람이 했다. 명우는 무릎 위의 무게를 느끼며 대답했다.

“네.”

스무 마디 가운데 하나였던 그 말이, 오늘은 처음으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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