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23자) · 삼월 삼십일일 화요일
창틀의 스무 마디
사람들은 고양이 앞에서만 운다 · 오세림
해오름 계단길은 남산 아래에서 시작해 백스물네 계단을 올라가야 끝난다. 계단 양쪽으로 담쟁이가 벽을 덮었고, 담쟁이 사이사이 화분이 놓였다. 화분 주인은 대개 계단참의 집 할머니들이고, 할머니들은 화분에 물을 주면서 누가 몇 시에 올라가는지를 안다. 이 골목에서 비밀은 계단 서른 칸을 못 간다.
그 계단 중턱, 삼 층짜리 벽돌 건물 이 층에 상담소가 있다. 정식 이름은 마음정리 상담소 묘연. 묘할 묘에 인연 연. 간판을 단 지 십 년이 지나 묘 자의 여자 녀 변 페인트가 벗겨졌고, 벗겨진 자리가 하필 개 사슴록 변처럼 보여서 이제 간판은 고양이 묘로 읽힌다. 상담소 주인은 그걸 고치지 않았다. 고치려면 사다리를 빌려야 했고, 사다리를 빌리려면 계단참 할머니한테 이유를 말해야 했다. 그는 이유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인의 이름은 하명우. 서른여덟. 연애 상담을 십 년 했다. 오십 분 상담에 그가 하는 말은 평균 스무 마디다. 세어 본 사람이 있다. 삼 년 전 한 내담자가 휴대폰 녹음기를 켜 놓고 상담을 받은 뒤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오늘 스물한 마디 하셨어요, 그중 열네 번이 「네」였어요. 명우는 그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 답장을 하면 스물두 마디가 되니까.
그의 규칙은 세 가지다. 조언하지 않는다. 편들지 않는다. 다음에 또 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자주 어긴다. 내담자가 문 앞에서 머뭇거리면 입이 먼저 움직인다. 다음 주 이 시간 비어 있습니다. 그 말은 규칙 위반이고, 그는 그 위반을 십 년 동안 한 번도 뉘우친 적이 없다.
상담실은 열 평이 조금 안 된다. 창 하나가 남쪽으로 나서, 오후가 되면 햇빛이 책장 세 칸과 소파 팔걸이와 카펫 절반을 차례로 건너가는데, 그 빛이 건너가는 속도로 명우는 상담 시간을 가늠한다. 벽에는 전 임차인이 붙이고 간 글귀 두 장이 그대로 있다. 오늘도 괜찮을 거예요. 여기, 당신의 이야기가 머무는 곳입니다. 명우는 그 글귀가 부끄러웠지만 떼지 않았다. 떼면 벽지 색이 거기만 밝게 남을 것이고, 그러면 내담자들이 거기 뭐가 있었느냐고 물을 것이다. 묻는 것에 대답하는 일은 그가 가장 피하는 일이었다.
이천이십육 년 삼월 삼십일일, 화요일. 오전 열 시.
그날 첫 내담자는 K였다. 서른하나. 세 번째 이별. 세 번 다 같은 이유였다. K는 오십 분 가운데 사십 분을 말했고 명우는 사십 분을 들었다. 듣는 동안 그는 청록색 머그에 든 물을 두 번 마셨다. 물을 마시는 건 계속하라는 뜻이다. 십 년을 하면 물 마시는 소리에도 뜻이 붙는다.
사십일 분째에 K가 물었다.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이 방의 규칙이었다. 그 침묵이 삼 초쯤 이어졌을 때, 창가에서 소리가 났다.
“먀.”
창틀에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회색 바탕에 짙은 줄무늬. 초록 눈. 왼쪽 귀 끝이 조금 잘려 있었다. 누군가 돌보다가 중성화를 시키고 놓아준 고양이라는 표시였다. 창문은 환기하려고 한 뼘 열어 둔 참이었다. 고양이는 그 한 뼘을 제 몸 너비로 알았던 모양이다.
“어머, 얘 뭐예요?”
“모르겠습니다.”
스물한 마디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쓰였다.
고양이가 창틀에서 뛰어내렸다. 네 발이 한꺼번에 공중에 떴다. 커튼이 빨려 들어갔다가 돌아왔고 창틀 먼지가 햇빛 속에서 흩어졌다. 고양이는 착지하자마자 카펫 위를 가로질렀다. 뒷다리가 늘어나고 카펫 결이 뒤로 밀렸다. 그러고는 K의 발 옆에 멈춰 앉았다. 앉아서 K를 올려다봤다. 표정은 없었다. 고양이는 원래 표정이 없다.
K가 울었다.
사십 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은 사람이 고양이 한 마리가 발 옆에 앉자마자 울었다. 손이 얼굴로 올라가는 도중에 어깨가 한 번 들썩였다. 명우는 청록색 티슈 상자를 K 쪽으로 밀었다. 티슈가 상자에서 솟아올랐다. 이 방에서 명우가 하는 일 가운데 제일 빠른 동작이었다.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이상하죠. 왜 갑자기.”
명우는 이유를 알았다. 말하지 않았다. 사람은 판단하지 않는 눈 앞에서 운다. 그는 십 년 동안 판단하지 않는 얼굴을 연습했다. 연습한 얼굴은 연습한 티가 난다. 고양이 얼굴에는 그게 없다. 고양이는 K가 세 번 같은 이유로 차였다는 사실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게 K를 울렸다.
K가 휴지로 코를 풀며 말했다.
“선생님, 얘 여기 두시면 안 돼요? 간판에 한 줄만 붙이세요. 고양이 있음. 그럼 저 같은 사람 줄 서요.”
명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소파 위로 올라가 내담자 자리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앞발을 가슴 밑에 접었다. 식빵처럼. K는 그 식빵을 오 분 동안 쓰다듬고 갔다. 나가면서 K는 문 앞에서 돌아서서 고양이한테 인사를 했다. 명우한테는 안 했다. 십 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열한 시 십 분. 문이 열렸다. 노크가 없었다.
들어온 사람은 쉰쯤 된 남자였다. 회색 점퍼 가슴에 해오름빌딩 관리라고 수가 놓여 있었다. 마동철 실장. 삼 층에 사는 건물주 오 여사의 조카다. 한 달에 한 번 전기 검침표를 붙이러 올라오고, 올라올 때마다 계단이 너무 많다고 한다. 오늘은 검침 날이 아니었다.
“하 선생, 일 층 세탁소 할머니 소식 들었어요?”
“못 들었습니다.”
“어제 가셨어요. 병원에서. 셔터 내려간 거 봤죠. 따님이 부산에서 올라온다던데.”
명우는 계단을 올라올 때 세탁소 셔터를 봤다. 셔터에 흰 국화 한 송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순애세탁. 십 년 동안 명우 셔츠를 다려 준 집이었다. 할머니는 명우 셔츠 소매 단추가 늘 하나씩 헐거운 걸 알고 말없이 달아 두었다. 명우는 그 단추 값을 한 번도 따로 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받지 않았다.
명우는 소매를 내려다봤다. 걷어 올린 베이지 셔츠 소매. 단추가 헐거웠다. 어제부터.
“그래서 말인데.”
마 실장이 방 안을 둘러봤다. 그리고 소파 위 식빵을 봤다. 그의 코가 먼저 반응했다.
“에취.”
“…….”
“이거, 이거 뭐예요.”
“고양이입니다.”
“누구 거예요?”
“모르겠습니다.”
“하 선생, 계약서 보셨죠. 제십이조. 임차인은 건물 내에서 반려동물을 기를 수 없다. 에취. 저 털 알레르기 있어요. 우리 이모도 싫어하시고. 당장 내보내요.”
“제 고양이가 아닙니다.”
“그럼 더 쉽네. 에취. 내보내요.”
명우는 일어섰다. 소파로 갔다. 고양이를 들어 올리려고 두 손을 내밀었다. 고양이는 그 손 사이로 빠져나갔다. 물이 빠져나가듯. 책장 위로 올라갔다. 책장 맨 위 칸, 조각상 옆. 명우가 의자를 끌고 가 올라섰다. 고양이는 조각상 뒤를 돌아 반대편으로 내려와 창틀에 앉았다. 마 실장이 창 쪽으로 가자 고양이는 창틀에서 소파로, 소파에서 명우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마 실장이 무릎을 꿇고 책상 밑을 들여다봤다.
“에취.”
책상 밑에서 고양이가 마 실장을 봤다. 초록 눈 둘. 표정은 없었다. 마 실장이 먼저 눈을 피했다.
“하 선생이 내보내요. 오늘 안에.”
“노력하겠습니다.”
“노력 말고.”
“네.”
마 실장은 코를 훌쩍이며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또 재채기를 했다. 소리가 계단 서른 칸을 내려갔다. 계단참 할머니들은 그날 저녁까지 이 층에 고양이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다 알았다.
오후 두 시. 두 번째 내담자 J가 왔다. 스물아홉. 팔 년 사귄 사람과 결혼을 할지 말지. J가 이십 분 말하고 멈췄을 때 고양이가 책상 밑에서 나왔다. J의 무릎으로 뛰어올랐다. 앞발이 먼저 닿고 뒷발이 따라왔다. J는 말을 멈추고 고양이를 봤다. 명우를 봤다.
“만져도 돼요?”
“물어보십시오.”
“얘한테요?”
“예.”
J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만져도 될까. 고양이가 머리를 J 손바닥 쪽으로 밀었다. J는 그 뒤 이십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양이만 쓰다듬었다. 오십 분이 끝나기 삼 분 전에 J가 말했다.
“할게요. 결혼.”
“네.”
“지금 정했어요.”
“네.”
명우는 그날 스물세 마디를 했다. 평균보다 셋이 많았다. 늘어난 셋은 전부 고양이한테 한 말이었다.
저녁 여덟 시, 마지막 내담자가 가고 명우는 영업일지를 폈다. 오늘 두 건. 특이사항 칸에 그는 한 줄을 썼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고양이 개입. 두 건 모두 상담자보다 유효함. 쓰고 나서 그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십 년 동안 쓴 특이사항 중에 제일 정확한 문장이었다.
고양이는 창틀에 앉아 있었다. 방이 조용해지자 소리가 하나씩 들렸다. 고양이가 앞발을 핥는 소리. 혀가 털을 거꾸로 쓸 때 나는 사각거림. 창밖 계단에서 누가 비닐봉지를 들고 올라가는 소리. 명우는 영업일지를 덮고 그 소리들을 들었다. 십 년 동안 이 방에서 그가 들은 것은 사람 목소리뿐이었다. 골목 가로등이 켜졌다. 계단 아래 세탁소 셔터에 붙은 국화가 가로등 불빛에 하얬다. 고양이는 창틀에서 그 셔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래. 꼬리 끝만 한 번씩 움직였다.
명우는 문을 잠그기 전에 창문을 닫으려다가 손을 멈췄다. 한 뼘. 고양이가 알아서 나갈 수 있는 너비. 그는 창문을 한 뼘 열어 둔 채로 불을 껐다. 계약서 제십이조를 어기는 한 뼘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는 세탁소 앞에서 멈췄다. 셔터 아래 틈으로 종이 한 장이 삐져나와 있었다. 세탁물 인수증 뒷면. 연필 글씨가 삐뚤빼뚤했다.
화요 밥. 오른쪽 셋째 화분 밑.
명우는 오른쪽 셋째 화분을 들었다. 밑에 사료 봉지가 반쯤 남아 있었다. 그는 봉지를 들고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백스물네 계단 가운데 서른 칸. 이 층 문을 열었다. 고양이가 창틀에서 고개를 돌렸다.
“화요.”
명우가 불렀다. 그날 스물네 번째 마디였다. 고양이가 창틀에서 내려왔다. 처음으로, 명우 쪽으로.
사료 그릇이 없어서 그는 청록색 머그를 썼다. 고양이는 머그 안에 머리를 박고 먹었다. 명우는 옆에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사료 알갱이가 이빨에 부서지는 작고 단단한 소리. 십 년 동안 이 방에서 들은 소리 중에 제일 조용한 소리였다.
다음 날 아침 계단을 올라가는데 셋째 계단참 할머니가 화분에 물을 주다가 말했다. 이 층 총각이 밤에 고양이 밥 들고 계단을 두 번 오르내리더라고. 명우는 네, 하고 지나갔다. 할머니가 등 뒤에서 한마디 더 했다. 순애 언니가 그 고양이를 화요라고 불렀어, 화요일마다 와서. 명우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층에 올라가 보니 간판 아래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테이프가 반쯤 떨어진 채로. 누가 붙였는지 명우는 알았다. K의 글씨였다.
고양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