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화요일의 침입자
고양이 상담소 영업일지 · 오세림
화요일에는 침묵을 판다.
정확히 말하면, 말을 하지 않는 상담을 한다. 오십 분 동안 내담자는 말하고 나는 듣는다. 조언하지 않는다. 요약하지 않는다. 고개도 최소한으로만 끄덕인다.
이 방식은 인기가 좋다. 사람들은 대체로 조언을 원하지 않는다. 조언을 원한다고 말할 뿐이다. 오전 열 시, 첫 손님이 왔다.
“선생님, 저 헤어졌어요.”
“네.”
“세 번째예요.”
“네.”
“똑같은 이유로요.”
나는 이 대목에서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는 것은 ‘계속 말씀하세요’라는 뜻이다. 십 년 하다 보면 이런 동작에 뜻이 생긴다.
내담자는 사십 분 동안 말했다. 나는 사십 분 동안 들었다. 사십일 분째에 그녀가 물었다.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이 방의 규칙이다. 그런데 그때, 창가에서 소리가 났다.
“먀.”
고양이는 삼 주 전부터 창틀에 앉아 있었다. 회색이고, 왼쪽 귀 끝이 잘렸다. 중성화 표시다. 누군가 돌보다가 놓아준 아이라는 뜻이다. 나는 처음에 쫓지 않았고, 두 번째에도 쫓지 않았고, 세 번째부터는 창문을 열어 두었다.
“먀.”
고양이가 다시 울었다. 내담자가 창가를 봤다.
“어머, 얘 뭐예요?”
“모르겠습니다.”
“이름 없어요?”
“없습니다.”
고양이는 창틀에서 내려와 상담실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내담자 발 옆에 앉았다. 앉아서 그녀를 올려다봤다. 내담자가 갑자기 울었다. 사십 분 동안 말하면서 울지 않던 사람이, 고양이가 앉자마자 울었다.
나는 티슈를 밀어 줬다.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이상하죠. 왜 갑자기.”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이 방의 규칙이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판단하지 않는 눈을 견디지 못한다. 나는 십 년 동안 판단하지 않는 얼굴을 연습했지만, 사람의 얼굴에는 언제나 판단의 그림자가 남는다.
고양이 눈에는 그게 없다. 상담이 끝나고 나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고양이니까.
“저는 내담자를 울리면 안 됩니다. 정확히는, 제가 아닌 것이 내담자를 울리면 안 됩니다.”
고양이는 하품을 했다.
“들으십니까?”
고양이는 소파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내담자가 앉는 자리였다. 오후 두 시, 두 번째 손님.
“선생님, 저 회사를 그만둘까요?”
“네.”
“팔 년 다녔어요.”
“네.”
고양이가 소파에서 일어나 그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남자는 말을 멈췄다.
“...얘 뭐예요?”
“모르겠습니다.”
“만져도 돼요?”
“물어보십시오.”
“얘한테요?”
“예.”
남자는 잠깐 나를 보고, 고양이를 봤다.
“만져도 될까.”
고양이가 머리를 그의 손 쪽으로 밀었다. 남자는 그 뒤로 이십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이십 분 뒤에 그가 말했다.
“그만둘게요.”
“네.”
“지금 정했어요.”
“네.”
그날 저녁, 나는 영업일지를 폈다. 십 년 동안 매일 썼다. 내담자 이니셜, 회기 번호, 주요 호소, 특이사항. 오늘 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10:00 K, 3회기. 이별. 40분 진술. 41분에 고양이 개입. 종결 시 안정. 14:00 J, 1회기. 퇴사 고민. 20분 진술 후 무언. 고양이 무릎 착석. 종결 시 결정.
그리고 특이사항 칸에.
고양이 이름 없음. 오늘 두 건 모두 상담자보다 유효함.
밤 아홉 시에 나는 문을 잠그고 나왔다. 고양이는 따라 나왔다. 계단을 두 칸 내려가서 나를 돌아봤다.
“같이 가자는 뜻입니까.”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남의 연애만 십 년째 정리해 준 사람입니다. 제 것은 하나도 못 정리했고요.”
고양이는 계단을 더 내려갔다.
“이름은 아직 안 붙일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따라 내려갔다.
“이름을 붙이면 책임이 생기니까요.”
고양이가 멈춰서 나를 봤다. 그 눈은, 굳이 옮기자면, ‘알고 있다’는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