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4,736자)

묵힌 보드

보라카이 윈드서핑 · 이수

대근은 사고 난 날 밤 제주시의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이수는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발바닥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신양 바위가 찢은 발이었다⁠. 손바닥에도 붕대를 감았다⁠. 카이트 라인이 태운 손이었다⁠. 붕대 감은 손으로 이수는 칼을 쥐고 있었다⁠. 언제부터 쥐고 있었는지 몰랐다⁠. 은비가 이수의 손에서 칼을 빼 갔다⁠. 칼을 접어 이수의 주머니에 넣어 줬다⁠.

민하는 복도 끝 창가에 서 있었다⁠. 구명조끼를 들고 있지 않았다⁠. 조끼는 신양 바위 위에 두고 왔다⁠. 민하는 빈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창틀을 쥐었다 놓았다 했다⁠.

밤 열한 시 넘어 의사가 복도로 나왔다⁠. 의사는 은비의 외삼촌에게 말했다⁠. 외삼촌은 의사의 말을 다 듣고 이수에게 왔다⁠. 외삼촌의 목에 축제 명찰이 아직 걸려 있었다⁠. 외삼촌은 명찰을 손으로 덮었다⁠.

“⁠미안합니다⁠.⁠”

외삼촌이 말했다⁠. 이수는 외삼촌의 말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장례식장은 통영이었다⁠. 대근의 고향이었다⁠. 대근의 어머니는 작은 사람이었다⁠. 검은 한복이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조문객이 많지 않았다⁠. 선수촌 동기라는 사내 셋이 왔다⁠. 대근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었다⁠. 셋은 영정 앞에서 오래 절했다⁠. 아무도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동기 하나가 이수 옆에 앉아 소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바람 보고 세일 크기 고르는 건 대표팀에서 그 녀석이 제일이었어요⁠. 바람 세지면 남들보다 먼저 줄였어요⁠. 그 녀석이 큰 걸 들고 나간 날은 한 번도 못 봤는데⁠.⁠”

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동기는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이수는 대근의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보라카이에서 같이 지냈습니다⁠. 대근 씨한테 윈드서핑을 배웠습니다⁠.⁠”

어머니가 이수를 봤다⁠. 붕대 감은 손을 봤다⁠.

“⁠그 손으로 줄을 끊었다면서요⁠.⁠”

“⁠늦었습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애가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운동화 한 켤레를 사 주면 신발장에 넣어 두고 맨발로 다녔어요⁠. 아까워서⁠. 운동화가 닳을까 봐⁠. 발바닥이 다 갈라져서 들어와도 운동화는 새거였어요⁠.⁠”

이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영정 속 대근은 웃고 있었다⁠. 불라복 해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있었다⁠.

“⁠빚이 남았다고 들었습니다⁠.⁠”

이수가 말했다⁠. 어머니가 이수를 다시 봤다⁠. 이번엔 오래 봤다⁠.

“⁠그 애 빚은 그 애가 갚는 거예요⁠. 남이 갚아 주면 그 애가 싫어해요⁠. 그 애는 그런 애예요⁠.⁠”

이수는 꺼내려던 봉투를 꺼내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서 봉투가 칼에 닿았다⁠.

장례가 끝난 날 밤⁠, 섬에서 전화가 왔다⁠. 국제 전화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바람 소리가 먼저 들렸다⁠. 윈드피아 마당의 바람이었다⁠. 불라복의 바람은 4월 끝에도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사장님 손님 사장님⁠.⁠”

로엘이었다⁠. 대근의 말투였다⁠. 로엘은 대근이 없는 데서도 대근의 말투로 말했다⁠. 다른 말투를 배운 적이 없었다⁠.

“⁠보드 스무 장⁠, 세일 서른 장 있어요⁠. 손님들 와요⁠. 어떡해요⁠? 빨리빨리 말해 주세요⁠.⁠”

이수는 수화기를 귀에 대고 오래 있었다⁠. 로엘의 숨소리와 바람 소리가 섞였다⁠.

“⁠로엘⁠.⁠”

“⁠네⁠.⁠”

“⁠네가 빌려줘⁠. 손님들한테⁠. 대근 씨가 하던 대로⁠.⁠”

“⁠저 혼자요⁠?⁠”

“⁠세일은 저녁마다 민물로 헹구고⁠. 뒷면까지⁠.⁠”

“⁠뒷면까지⁠.⁠”

로엘이 따라 말했다⁠. 대근의 말투로⁠. 로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김치 있음은 지워⁠. 너 김치 못 담그잖아⁠.⁠”

로엘이 울면서 웃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바람이 한 번 크게 불었다⁠.

열흘 뒤 신양에서 전화가 왔다⁠. 은비였다⁠.

“⁠어머니가 바다에서 건지셨어요⁠. 섭지코지 너머 바위틈에서⁠. 카이트요⁠.⁠”

이수는 수화기를 쥔 채 말이 없었다⁠. 은비가 말을 이었다⁠.

“⁠물질하다가 보셨대요⁠. 천이 반은 찢어졌어요⁠. 어머니가 끌어 올려서 마당에 널어 두셨어요⁠. 어떻게 할까요⁠?⁠”

“⁠어머님이 건지셨으면 어머님 거예요⁠.⁠”

“⁠어머니는 바다에서 건진 건 바다 거래요⁠.⁠”

이수는 신양의 바위를 생각했다⁠. 구멍 숭숭 난 검은 돌⁠. 바다에서 건진 것을 마당에 널어 두는 해녀의 손⁠.

“⁠그럼 어머님 마당에 두세요⁠. 바다 가까우니까⁠.⁠”

은비는 한참 말이 없다가 그러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은비가 한 마디를 더 했다⁠.

“⁠신양은 성지 아니에요⁠. 그래도 내년 봄에 바람 순한 날 오세요⁠. 오전에⁠.⁠”

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은비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5월이 되자 이수는 장비를 정리했다⁠.

날개를 접어 우한에게 가져갔다⁠. 어섬이었다⁠. 우한은 이륙장 비탈에서 풀을 깎고 있었다⁠. 예초기를 끄고 날개 가방을 받았다⁠. 소나무에 찢겼다가 꿰맨 날개였다⁠. 우한은 가방을 열어 보지 않았다⁠.

“⁠어섬 노을은 그대로다⁠.⁠”

우한이 말했다⁠. 행글라이더 시절 대회장에서 단련된 목소리가 오늘은 작았다⁠.

“⁠날개 꿰매 둘게⁠. 언제든 와⁠. 바람 좋은 날 오후 늦게⁠. 해 지는 거 보러⁠.⁠”

“⁠응⁠.⁠”

이수는 대답했다⁠. 대답만 했다⁠. 둔덕 아래로 시화호가 보였다⁠. 물 위에 세일 몇 장이 떠 있었다⁠. 이수는 세일을 보지 않으려다 봤다⁠. 하얀 물살이 직선으로 그어졌다⁠. 빨랐다⁠. 날개보다⁠.

우한은 이수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예초기를 내려놓고 비탈 머리에 앉았다⁠. 이수도 옆에 앉았다⁠. 둘은 날지 않고 해 질 녘까지 앉아 있었다⁠. 바다 바람이 둔덕을 밀어 올렸다⁠. 날기 좋은 바람이었다⁠. 해가 대부도 쪽으로 내려가자 갯벌에 물길이 하나씩 불을 켰다⁠. 우한이 말했다⁠.

“⁠행글라이더 할 때 같이 타던 놈 하나가 떨어졌다⁠. 대회 날⁠. 나 그다음 해에 대회 그만뒀어⁠.⁠”

“⁠그래서 패러글라이딩 가르치는 거야⁠?⁠”

“⁠그래서 버클 푸는 거부터 가르치지⁠.⁠”

해가 수평선에 닿았다⁠. 우한이 일어나 예초기를 들었다⁠. 이수는 날개 없이 둑길을 걸어 내려갔다⁠.

드라이 슈트는 시화호의 만석에게 돌려줬다⁠. 만석은 슈트를 받아 들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동호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신양 일이 신문에 났다⁠. 「⁠제주 해변 축제서 카이트보딩 시범 중 사고⁠」⁠. 기사는 짧았다⁠.

“⁠마스트는 안 부러뜨리고 가네요⁠.⁠”

만석이 말했다⁠. 웃지 않고⁠. 이수도 웃지 않았다⁠. 만석다운 인사였다⁠.

이수는 날마다 출판사에 나갔다⁠.

송 실장이 처음 사흘 동안은 이수를 손님처럼 대했다⁠. 커피를 타 오고⁠, 의자를 빼 주고⁠. 나흘째 송 실장이 물었다⁠.

“⁠사장님⁠, 혹시 회사 파시려는 거예요⁠?⁠”

“⁠아니요⁠.⁠”

“⁠그럼 왜 날마다 나오세요⁠?⁠”

“⁠일하려고요⁠.⁠”

송 실장이 이수를 한참 봤다⁠. 그러고는 「⁠흑룡의 검⁠」 6권 표지 시안 네 장을 이수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수는 네 장을 오래 봤다⁠. 세 번째를 골랐다⁠. 표지 속 주인공이 바다를 등지고 서 있었다⁠. 주인공 손에 칼이 들려 있었다⁠. 이수는 표지를 고르고 나서 한동안 칼을 봤다⁠.

송 실장은 이수가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다른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칸막이를 하나 더 세웠다⁠. 직원들은 금방 알았다⁠. 사장이 날마다 나오면 점심 메뉴부터 달라졌다⁠. 사장 몫까지 짜장면 한 그릇이 더 왔다⁠. 이수는 짜장면을 다 먹었다⁠.

이수는 전처럼 원고를 골랐다⁠. 첫 장을 읽으면 끝까지 읽힐 원고인지 알았다⁠. 전과 달라진 것은 이수가 고른 원고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이었다⁠. 첫 장만 읽고 넘기던 원고를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 송 실장이 그걸 보고 놀랐다⁠. 이수도 놀랐다⁠.

밤에는 제 글을 썼다⁠.

출판사 사무실에 혼자 남아 빈 원고지를 폈다⁠. 판타지가 아니었다⁠. 무엇인지 이수도 몰랐다⁠. 첫 줄을 썼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바다 이야기였다⁠. 바람이 날마다 같은 세기로 부는 바다⁠. 바다에서 장비를 제 몸보다 아낀 사내 이야기⁠. 사내를 말리지 못한 손님 이야기⁠. 이수는 첫 줄을 열한 번 고쳤다⁠. 열한 번째 첫 줄은 이랬다⁠. 「⁠섬의 길은 모래였고⁠, 섬 사람들은 맨발이었다⁠.⁠」

담배를 끊었다⁠. 술을 끊었다⁠. 저녁 여덟 시면 집에 들어갔다⁠. 병원 달력에 동그라미가 늘었다⁠. 아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바람 대신 붙잡을 것이 있어야 했다⁠. 이수는 그걸 누구에게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민하가 눈치챘다⁠.

“⁠형⁠, 요새 왜 이렇게 일찍 들어가요⁠?⁠”

“⁠집에 일이 있어서⁠.⁠”

“⁠형 집에 무슨 일이 있어요⁠? 보드밖에 없잖아요⁠.⁠”

7월이었다⁠. 민하가 원고 뭉치를 들고 이수의 집에 왔다⁠. 이수가 고른 다음 달 판타지였다⁠. 민하는 거실에서 원고를 내려놓고 베란다 쪽을 봤다⁠.

노란 보드가 베란다에 누워 있었다⁠. 석 달 전 열두 층 계단을 올라온 그대로였다⁠. 세 겹 비닐을 쓴 채⁠. 비닐에 먼지가 앉았다⁠. 비닐 너머로 노란색이 비쳤다⁠. 비닐을 붙인 검은 테이프 끝이 여름 볕에 조금 들떠 있었다⁠.

민하가 베란다로 나가 보드 옆에 쪼그려 앉았다⁠.

“⁠형⁠.⁠”

“⁠응⁠.⁠”

“⁠이거 시화호에 가져가요⁠. 제가 꼬리 쪽 들게요⁠. 저 이제 무릎까지는 들어가요⁠. 보라카이에서 무릎까지 들어갔잖아요⁠.⁠”

“⁠민하야⁠.⁠”

“⁠형이 안 타면 제가 탈게요⁠. 대근 형님이 이거 십 년 닦기만 했대요⁠. 형도 그러면 안 되잖아요⁠. 보드는 물에 띄우는 거라면서요⁠. 형이 그랬잖아요⁠. 제가 펀보드 모래밭에 놓고 앉아 있을 때⁠.⁠”

이수는 베란다 문간에 서서 보드를 봤다⁠. 비닐 위의 검은 테이프를 봤다⁠. 대근이 감은 테이프였다⁠. 창고 백열등 아래에서⁠, 바에 테이프를 감던 손으로 감은 테이프였다⁠.

이수는 시화호를 생각했다⁠. 비닐을 벗기는 건 물가에서 하기로 했었다⁠. 물가에서 비닐을 벗기려면 이 테이프를 뜯어야 했다⁠.

“⁠그냥 둬⁠.⁠”

민하가 이수를 올려다봤다⁠.

“⁠계속요⁠?⁠”

“⁠응⁠. 그냥 둬⁠.⁠”

민하는 한참 보드를 보다가 일어섰다⁠. 무릎을 털었다⁠. 더 묻지 않았다⁠.

이수는 베란다 문을 닫지 않았다⁠. 여름 바람이 베란다로 들어왔다⁠. 열두 층 높이의 바람이었다⁠. 비닐이 바람에 조금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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