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59자)

사과 한 바구니

승부조작 경주마 흑진주 · 윤새벽

월요일 새벽 일곱 시가 되기 전에 트럭이 올라왔다⁠. 엔진 소리를 듣자마자 열한 칸이 한꺼번에 뒷벽으로 물러났다⁠. 굵고 낮은 소리⁠, 쇠와 녹과 마른 피⁠. 같은 트럭이었다⁠. 나는 마구간 문 앞으로 나갔다⁠. 일요일 저녁부터 내 칸 문은 잠기지 않았다⁠. 마구간지기가 경첩 빠진 문을 고치지 않았다⁠.

트럭 뒤에 붉은 불빛을 단 차가 따라왔다⁠. 운전석에서 굵은 목소리의 기사가 내렸다⁠. 기사는 짐칸 뒷문을 열고 발판을 내렸다⁠. 발판이 땅에 닿을 때 언덕이 쿵 울렸다⁠. 나는 발판 앞으로 가서 섰다⁠. 기사가 나를 보고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싣는 거 아니다⁠. 내리는 거다⁠, 이 녀석아⁠. 오늘은 내리러 왔어⁠.⁠”

짐칸 안에서 발굽 소리가 났다⁠. 한 박자가 늦게 따라오는 발굽 소리⁠. 왼쪽 앞다리가 굳은 말의 걸음이었다⁠. 회색 거세마가 짐칸 문턱에 나타났다⁠. 거세마는 발판을 내려다보며 오래 서 있었다⁠. 말은 비탈진 나무판을 싫어한다⁠. 내려가는 판은 더 싫어한다⁠. 덕춘이 발판 아래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손에 사과가 있었다⁠. 거세마가 사과를 따라 한 발을 내렸다⁠. 또 한 발⁠. 굳은 앞다리가 발판 턱을 긁고 넘어왔다⁠.

거세마는 땅에 내려서자마자 덕춘을 지나쳤다⁠. 사과도 지나쳤다⁠. 무리의 물통으로 곧장 절름거리며 걸어갔다⁠. 늙은 암말이 어깨에 붕대를 감은 채 물통 옆에 서 있었다⁠. 암말은 물통에 먼저 입을 대지 않았다⁠. 거세마가 마실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 거세마가 물을 마시는 소리가 공터까지 들렸다⁠. 꼴찌로 와서 맨 먼저 마시는 소리였다⁠.

덕춘은 내밀었던 사과를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내가 가서 먹었다⁠.

*

열흘 동안 언덕에는 종이가 많이 올라왔다⁠. 우편함에 꽂혀 오기도 하고⁠, 넥타이 맨 사람이 직접 들고 오기도 했다⁠. 마구간지기는 종이를 받을 때마다 마구간 통로에 의자를 펴고 앉아 말들에게 읽어 주었다⁠. 듣는 사람이 없으면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온다고 했다⁠.

「⁠마주 자격 정지⁠」 「⁠대상 경주 상금 지급 보류⁠」 「⁠조교사 경고⁠」 마구간지기는 한 장 읽을 때마다 욕을 한 마디씩 붙였다⁠. 「⁠기수 면허 취소 예정 통지⁠」를 읽을 때는 욕을 붙이지 않았다⁠. 기수가 통로 끝에서 삽으로 말똥을 치우고 있었다⁠.

종이 하나는 달랐다⁠. 「⁠대상 경주 결과 확정 — 일등 흑진주⁠」 마구간지기는 이 종이만 두 번 읽었다⁠. 두 번째에는 일어서서 읽었고⁠, 다 읽고 나서 종이를 내 칸 문에 테이프로 붙였다⁠. 나는 테이프 냄새를 맡고 종이 끝을 핥았다⁠. 마구간지기가 내 콧등을 때리는 시늉만 했다⁠.

기수는 일요일 이튿날부터 날마다 언덕에 올라왔다⁠. 승부복 대신 고무장화를 신었고⁠, 귤 대신 김밥을 먹었다⁠. 몸무게를 줄일 일이 없어진 사람의 냄새는 달랐다⁠. 땀이 덜 시었다⁠. 김밥은 내가 반을 먹었다⁠. 기수가 칸 청소를 하는 동안 칸 문 위에 올려 둔 김밥 은박지를 내가 입술로 끌어 내렸다⁠. 기수는 처음 이틀은 화를 냈고 사흘째부터는 김밥을 두 줄 사 왔다⁠.

마구간지기의 라디오는 날마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바다 건너에 서버를 둔 불법 경마 도박 조직의 운영자들을 붙잡았다는 소리⁠, 경마장 승부 조작 수사가 다른 경주로 번진다는 소리⁠, 대상 경주 우승마의 기수가 스스로 털어놓은 것이 시작이었다는 소리⁠. 기수는 라디오 소리가 나면 삽질을 멈추고 듣다가⁠, 끝나면 다시 삽질을 했다⁠.

“⁠면허 없어도 똥은 치울 수 있어⁠. 그치⁠, 흑진주⁠.⁠”

나는 기수의 장화 끝을 앞발로 툭 쳤다⁠. 기수가 웃었다⁠. 기수의 손은 요즘 늘 따뜻했다⁠.

*

열흘째 되는 날 아침⁠, 낯선 차가 언덕을 올라왔다⁠. 짐칸이 달린 차였다⁠. 트럭보다 작고 깨끗했다⁠. 쇠 냄새 대신 새 고무 냄새와 다른 말들의 건초 냄새가 났다⁠. 마른 피 냄새는 없었다⁠. 차에서 남자 하나가 내렸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었고 말린 풀 냄새가 손등까지 배어 있었다⁠. 남쪽 먼 곳의 흙이 신발 밑창에 붙어 있었다⁠. 말을 기르는 사람의 냄새였다⁠.

“⁠남쪽 목장에서 왔습니다⁠. 이 녀석이 흑진주로군요⁠.⁠”

목장 사람은 나를 실장처럼 쓰다듬지 않았다⁠. 다리를 먼저 만졌다⁠. 조교사처럼⁠. 그다음 목을 두드렸다⁠. 기수처럼⁠. 마지막으로 내 입을 벌려 이빨을 보았다⁠. 나는 목장 사람의 점퍼 주머니에 코를 박았다⁠. 종이가 있었다⁠. 종이를 물었다⁠.

“⁠어⁠, 어⁠, 이건 계약서⁠…⁠.⁠”

조교사가 마구간 앞에서 소리쳤다⁠. 그거 먹는다⁠! 종이 먹는 말이다⁠! 목장 사람이 내 입에서 종이를 빼냈다⁠. 종이 귀퉁이가 젖어 있었다⁠. 목장 사람이 젖은 종이를 들고 웃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증거물도 씹은 말이라고요⁠.⁠”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목장 사람은 젖은 종이를 펼쳐 덕춘에게 내밀었다⁠. 덕춘이 종이를 읽고 얼굴이 굳었다⁠.

“⁠이건 아니죠⁠. 대상 경주 일등 말을 이 값에요⁠?⁠”

“⁠사장님⁠, 저도 압니다⁠. 이 녀석 다리 좋고 피 좋습니다⁠. 근데 지금 이 녀석 이름 뒤에 뭐가 붙어 다니는지 아시잖아요⁠. 조작 수사⁠, 상금 보류⁠, 마주 자격 정지⁠. 남쪽에서 이 녀석 새끼를 사 갈 사람들이 신문을 다 봤습니다⁠. 제가 위험을 지는 겁니다⁠.⁠”

“⁠그 위험은 내가 졌어요⁠. 기수가 졌고⁠, 저 할매가 어깨로 졌어요⁠.⁠”

덕춘이 늙은 암말을 가리켰다⁠. 암말은 붕대 감은 어깨를 하고 방목장 울타리에 서 있었다⁠.

“⁠열두 마리예요⁠. 경주 못 뛰는 말 열두 마리⁠. 이 녀석 값으로 다섯 해 건초를 사야 돼요⁠. 다섯 해면 할매가 스물다섯이에요⁠. 그 전에 갈 놈은 가겠지만⁠, 가는 날까지 굶기면 안 돼요⁠. 그거 맞춰 주시면 드리고 아니면 못 드려요⁠.⁠”

“⁠사장님⁠, 이 녀석 하나면 사장님이 다시 경주에 나갈 수도⁠…⁠.⁠”

“⁠자격 정지예요⁠. 나갈 데도 없어요⁠. 저는 이 언덕에서 늙은 말들 밥이나 줄 거예요⁠. 그게 내 일이에요⁠. 처음부터 그게 내 일이었어요⁠.⁠”

목장 사람은 한참 말이 없었다⁠. 젖은 계약서를 접었다 폈다 했다⁠. 내가 다시 목을 뺐다⁠. 목장 사람이 계약서를 등 뒤로 감췄다⁠. 감추고 나서 웃었다⁠.

“⁠알겠습니다⁠. 다섯 해 건초 맞춰 드리죠⁠. 대신 이 녀석 오늘 실어 갑니다⁠.⁠”

*

조교사가 마구간 앞에서 덕춘의 팔을 붙잡았다⁠. 오징어 냄새가 났다⁠. 조교사는 오징어를 씹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었다⁠.

“⁠덕춘 씨⁠, 와 흑진주를 파노⁠? 니 손으로 사 오고 내 손으로 키운 말을⁠. 상금 풀리믄 그걸로 건초 사믄 되잖아⁠.⁠”

“⁠언제 풀려요⁠, 선생님⁠? 수사 끝나야 풀린대요⁠. 일 년이 걸릴지 삼 년이 걸릴지 몰라요⁠. 열두 마리는 일 년을 못 기다려요⁠.⁠”

“⁠그라믄 열두 마리를 몇 마리 보내고⁠…⁠.⁠”

“⁠못 보내요⁠.⁠”

덕춘이 조교사의 손을 팔에서 떼어 냈다⁠. 세게 떼지 않았다⁠.

“⁠하나를 보내면 열둘이 살아요⁠. 열둘을 보내면 하나만 살고요⁠. 선생님⁠, 저 할매 스무 해 전에 세 번 뛰어서 세 번 다 꼴찌였어요⁠. 내가 그때 못 판 게 오늘까지 왔어요⁠. 흑진주는 꼴찌가 아니잖아요⁠. 남쪽 가면 저보다 잘 먹고 잘 살아요⁠. 암말이 마흔 마리래요⁠.⁠”

“⁠마흔 마리⁠.⁠”

조교사가 나를 보았다⁠. 나는 마흔이라는 소리를 몰랐다⁠. 조교사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오징어를 한 번 뜯었다⁠. 세게⁠.

“⁠니는 좋겠다⁠. 이 먹보야⁠.⁠”

조교사가 내 이마의 별을 엄지로 문질렀다⁠. 오래 문질렀다⁠. 덕춘이 하는 것보다 오래⁠.

*

떠나기 전에 덕춘이 나를 방목장에 풀어 주었다⁠. 혼자 쓰던 작은 방목장이 아니라 무리의 큰 방목장이었다⁠. 다섯 해 동안 처음이었다⁠. 울타리 문이 열리고 나는 풀밭으로 들어갔다⁠. 무리가 고개를 들었다⁠. 수말이 무리의 방목장에 들어오면 싸움이 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무리는 싸우지 않았다⁠. 고개를 다시 숙이고 풀을 뜯었다⁠.

늙은 암말이 걸어왔다⁠. 붕대 감은 어깨가 걸음마다 내려앉았다⁠. 암말이 내 옆에 섰다⁠. 내 어깨와 암말의 어깨가 나란했다⁠. 암말이 고개를 돌려 내 기갑을 앞니로 긁었다⁠. 갈기가 끝나는 자리⁠, 목과 등이 만나는 볼록한 자리를⁠. 이빨이 살갗을 긁을 때마다 등 근육이 저절로 떨렸다⁠. 말끼리 기갑을 긁어 주면 동무라는 소리다⁠. 다섯 해 동안 암말은 나를 문 적은 있어도 긁어 준 적은 없었다⁠.

나도 고개를 돌려 암말의 기갑을 긁었다⁠. 암말의 털은 늙어서 거칠었고⁠, 털 밑 살갗은 따뜻했다⁠. 우리는 오래 긁었다⁠. 회색 거세마가 절름거리며 와서 내 엉덩이에 코를 대고 섰다⁠. 거세마는 긁지 않았다⁠. 냄새만 맡았다⁠. 무리가 나를 기억할 때 쓰는 냄새를⁠.

울타리 밖에서 덕춘이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대나무로 엮은 바구니였다⁠. 사과가 가득 들어 있었다⁠. 봉지가 아니라 바구니⁠. 목요일 밤의 봉지보다⁠, 경주 전날 밤의 봉지보다 많았다⁠.

나는 사과가 많은 날 무슨 일이 오는지 안다⁠. 몇 해에 걸쳐 배웠다⁠. 알면서 울타리로 걸어갔다⁠. 덕춘이 사과를 하나씩 내 입에 넣었다⁠. 하나 넣을 때마다 내 이마의 별을 엄지로 문질렀다⁠. 나는 다 먹었다⁠. 바구니 바닥이 보일 때까지⁠. 마지막 사과는 덕춘이 반으로 쪼갰다⁠. 반은 내가 먹었다⁠. 반은 늙은 암말에게 주었다⁠. 암말이 받아먹었다⁠. 암말이 덕춘의 손에서 사과를 받아먹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늘 내 건초를 지키느라 바빴던 입이었다⁠.

*

남쪽 목장의 짐칸 뒤로 발판이 내려와 있었다⁠. 깨끗한 나무판이었다⁠. 고무 냄새와 새 톱밥 냄새가 났다⁠. 기수가 내 굴레 줄을 쥐고 발판 앞에 섰다⁠. 기수는 줄을 짧게 잡지 않았다⁠. 내 목 아래로 줄이 길게 늘어져 땅에 끌렸다⁠.

“⁠흑진주⁠. 가자⁠.⁠”

기수는 끌지 않았다⁠. 줄을 쥔 손을 펴서 내 목에 얹었다⁠. 따뜻했다⁠.

나는 발판을 보았다⁠. 말은 비탈진 나무판을 싫어한다⁠. 발밑이 울리고⁠, 울리는 소리 밑이 비어 있다⁠. 회색 거세마가 이 판을 올라갈 때는 덕춘이 사과를 들고 끌었다⁠. 늙은 암말은 이 판 밑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발판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아무도 나를 밀지 않았다⁠. 덕춘도⁠, 조교사도⁠, 마구간지기도 발판에서 몇 걸음 떨어져 서 있었다⁠.

앞발 하나를 판에 올렸다⁠. 판이 울렸다⁠. 소리 밑이 비어 있었다⁠. 나는 발을 내리지 않았다⁠. 다른 앞발을 올렸다⁠. 뒷다리가 따라왔다⁠. 엉덩이 근육이 경주 날처럼 한꺼번에 땅을 밀었다⁠. 짐칸 안으로 들어갔다⁠. 짐칸 안은 좁았다⁠. 출발문만큼 좁았다⁠. 앞쪽 벽 높은 곳에 작은 창이 하나 있었다⁠.

발판이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쇠가 쇠를 긁지 않았다⁠. 고무가 고무에 닿는 조용한 소리였다⁠. 짐칸 문이 닫혔다⁠. 차가 움직였다⁠.

창으로 언덕이 보였다⁠. 고개를 반만 틀면 다 보인다⁠. 처마 한쪽이 내려앉은 지붕⁠, 경첩 빠진 문⁠, 울타리에 기대 손을 흔드는 사람 넷⁠. 기수가 안경을 벗어 닦고 있었다⁠. 방목장 안에서 무리가 물통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늙은 암말이 맨 앞에서 붕대 감은 어깨를 내려앉히며 걸었고⁠, 무리가 한 줄로 따랐다⁠. 회색 거세마가 맨 끝에서 절름거렸다⁠. 물통에 다다르자 암말이 입을 대지 않고 옆으로 비켜섰다⁠. 거세마가 먼저 마셨다⁠.

차가 흙길을 내려갔다⁠. 흙길 중간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바퀴가 웅덩이를 지날 때 짐칸이 한 번 출렁였다⁠. 나는 네 다리로 버텼다⁠. 창밖의 언덕이 기울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암말이 물통에서 고개를 들었다⁠. 귀가 이쪽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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