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27자) · 연희 · 삼월 스무닷새

널이라 불리는 사람

이름을 맡기면 일자리를 주는 목욕탕 · 백해원

삼월 스무닷새는 쉬는 날이었다. 첫 쉬는 날을 원주에게 빼앗긴 연희에게는 두 번째가 처음이었다. 열흘에 하루 오는 날이라 다들 아껴 썼다. 큰지게는 하루 종일 잤고, 큰수건은 절 아랫마을에 내려가 남의 집 혼삿말을 주워 왔다. 연희는 새벽 불을 넣어 놓고 산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나무가 바뀌었다. 온수각 둘레는 소나무와 잣나무뿐인데 중턱부터 참나무와 오리나무가 섞였고, 더 내려가자 산비탈이 온통 진달래였다. 분홍빛이 이슬에 젖어 무거웠고, 발밑 흙은 봄비를 먹어 짚신 바닥에 들러붙었다. 산 위와 산 아래가 다른 데라는 것을 나무가 먼저 알려 주었다.

연희는 걸으면서 강목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서른일곱 줄 가운데 가장 새 줄, 사 년 전에 그만둔 사람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제 이름은 장작 셋을 태워야 떠오르는데, 장부에서 한 번 본 남의 이름은 반나절을 걸어도 입에서 안 떨어졌다. 맡긴 것만 안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뒤에서 발 구르는 소리가 났다. 쇠돌이었다. 원주가 따라가 보라고 했다는 것을 쇠돌은 숨기지도 않았다.

“아궁이는 어디 가오?”

“국수 먹으러요.”

“나도 국수 좋아하오.”

“아저씨 몫은 아저씨가 내세요.”

쇠돌이 손가락을 접으며 제 주머니 엽전을 셌다. 열이 넘어가자 발을 굴렀고, 발을 구르다 진달래 덤불로 미끄러졌다. 연희는 웃음을 참느라 한참 앞만 보고 걸었다.

*

도리나루는 예성강 윗물이 굽이치는 자리에 초가 마흔 채가 붙은 마을이었다. 강가 모래톱에 배가 셋 엎어져 있었고, 비린내와 멸치 삶는 냄새가 강바람을 타고 골목마다 들어차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 국숫집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국숫집 할멈은 앞치마 끈에 놋방울 셋을 달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짤랑거려서 나루 사람들은 그 소리로 할멈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 할멈이 국수 두 그릇을 평상에 놓으며 쇠돌을 흘겨봤다.

“자네는 저번 국숫값도 안 냈지.”

“셌소. 이번에 같이 내겠소.”

“지난번에도 셌다고 했어.”

연희는 국물을 떠먹다가 물었다.

“할머니, 방울은 왜 셋이에요?”

“하나는 영감 거, 하나는 내 거, 하나는 딸년 거.” 할멈이 앞치마를 털었다. 방울이 울렸다. “둘은 먼저 갔어. 소리라도 나야 셋이 같이 있는 것 같잖아. 근데 아가씨는 온수각서 왔지? 김 냄새가 나.”

“티가 나요?”

“온수각 사람은 머리카락에서 송진 냄새가 나. 우리 딸년도 그랬어. 거기서 삼 년 물 길었지.” 할멈이 국물을 한 국자 더 부어 주었다. 국자를 든 손목이 굵고 거칠었다. “여섯 해 전 여름에 샘에서 물 긷다가 발을 헛디뎠다더라. 벼랑으로. 원주가 쌀 두 섬하고 삼베 한 필 들고 내려와서 그러더라. 할 말이 그것밖에 없다고.”

연희는 숟가락을 멈췄다. 장부 뒤쪽 한 줄, 그만둔 날 칸에 적힌 失足 두 글자가 떠올랐다. 할멈은 연희 얼굴을 보지 않고 쇠돌 그릇에 국수를 한 젓가락 덜 담았다.

“그래서 방울을 달았어. 걔가 어릴 때 하도 쏘다녀서 방울 달아 놓고 소리로 찾았거든. 지금은 내가 달고 다녀. 어디 있는지 걔가 알라고.”

쇠돌은 덜 담긴 국수를 두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날 쇠돌이 국숫값을 제대로 낸 것은 연희가 본 중에 그때 한 번이었다.

“여기 강목이라는 분이 계세요?”

할멈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목? 그런 사람 없는데. 온수각서 사 년 전에 내려온 사람은 널 하나야. 저기 모래톱에서 배 고치는.”

*

널이라 불리는 사내는 엎어 놓은 배 곁에서 대패질을 하고 있었다. 마흔 몇쯤 되어 보였고 손이 컸다. 대패 밥이 모래 위에 동그랗게 말려 쌓였고, 송진과 강물 냄새가 그 사람 둘레에 엉겨 있었다.

“온수각에서 왔어요.”

대패가 멈췄다.

“거기 아직 있소? 물은 여전히 뜨겁고?”

“네.”

그가 웃었다. 입은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강목 아저씨.”

사내의 손이 다시 멈췄다. 대패를 뱃전에 내려놓고 그 곁에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듣소.”

“이름 찾으러 왜 안 오세요?”

“갔었소. 나가는 날 서기가 줄 끝에 글자를 적었고 손도 얹었소. 안 돌아옵디다. 종이에 글자는 그대로 있는데 내 쪽으로 오지를 않아.” 강목이 굳은살 박인 손바닥을 폈다. “삼 년을 일했는데 삼 년 동안 아무도 안 불렀소. 나는 널이었소. 널 대는 일을 했으니까.”

“지금 제가 불렀잖아요.”

“그래서 가슴이 좀 저리오. 그런데 아가씨는 해 지면 산으로 올라가지 않소? 산 위에서 부르는 소리는 산 위로 당기오. 여기 사는 사람이 불러야 여기로 오오. 그런데 여기서는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오.”

“나오신 날에는 어떻게 되셨어요?”

“산문 밖에 수레가 와 있었소. 개경 좋은 댁 수레라 했소. 이름 안 돌아온 사람은 제 마을에 가도 누구라고 댈 수가 없으니, 거기 가서 밥이나 얻어먹으라고.” 강목이 강 건너를 봤다. 물이 낮아 모래톱이 길게 드러나 있었다. “수레에 벌써 둘이 타 있었소. 목에 나무패를 걸었는데 패에 이름이 아니라 별칭이 적혀 있었소. 물지게, 부엌. 나는 그걸 보고 뛰었소. 이유는 모르고 그냥 뛰었소. 그 패가 무서웠소.”

연희는 저도 모르게 제 목을 만졌다. 목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모래톱 저쪽에서 여자아이가 뛰어왔다. 열 살쯤 되었고, 머리를 뒤로 한 갈래 땋았는데 땋은 끝이 풀려 있었다. 아이가 사내 등에 매달렸다.

“널 아버지, 할멈이 국수 가지러 오래!”

연희는 그 소리에 숟가락을 놓친 사람처럼 멍해졌다. 강목이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달래요. 제 어미가 이 년 전에 가고부터 이 애도 나를 널이라 부르오. 어미가 부르던 이름을 이 애는 들어 본 적이 없소. 내가 댈 수가 없으니.”

*

“원주 어른이 산 아래에 말 옮기지 말랬소.”

쇠돌이 어느새 등 뒤에 와 있었다. 쇠돌은 연희의 팔을 잡았다. 손아귀가 문고리처럼 단단했다.

“가오. 원주 어른한테 다 말하겠소.”

강목이 일어섰다. 쇠돌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는데, 강목은 대패 밥을 털듯이 쇠돌의 손목을 쳐 냈다. 쇠돌이 강목의 멱살을 잡았고, 강목도 쇠돌의 멱살을 잡았다. 둘은 모래톱 위에서 서로의 저고리를 쥐고 빙빙 돌았다. 배를 고치던 나루 사내 둘이 달려왔다가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몰라 곁에서 같이 돌았다.

“사 년 전에 나를 산문 밖으로 떠민 게 자네였지?” 강목이 이를 악물었다. “기한 끝난 날, 이름도 안 돌아왔는데 개경 수레에 태우려고 했지. 모래톱까지 도망 온 걸 자네가 쫓아왔고.”

“그땐 내가 셈을 잘못해서 놓쳤소!” 쇠돌이 소리쳤다. “이번엔 안 놓치오!”

“아직도 셈이 안 느는구먼.”

방울 소리가 달려왔다. 국숫집 할멈이 국자를 들고 와서 둘의 정수리를 번갈아 딱, 딱 쳤다. 쇠돌이 먼저 손을 놓았다. 머리를 감싸 쥐고 손가락을 접었다. 몇 대 맞았는지 세는 모양이었다.

*

연희는 달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가 풀린 머리끝을 입에 물고 연희를 봤다.

“달래야. 네 아버지 이름 알아?”

“널.”

“그건 일 이름이야. 네 아버지 이름은 강목이야. 강, 목.”

달래가 입속으로 강목, 하고 굴려 보더니 제 아비를 올려다봤다. 강목은 멱살 잡혔던 저고리 앞섶을 쥔 채 서 있었다.

“강목 아버지.”

강목이 대답하지 않았다. 달래가 한 번 더 불렀다. 이번에는 크게, 강을 건너가라고 부르듯이.

“강목 아버지!”

“…오냐.”

대답이 나오고 나서 강목의 손이 떨렸다. 떨림이 손끝에서 팔꿈치로, 팔꿈치에서 어깨로 번졌다. 그는 모래 위에 한쪽 무릎을 꿇었고, 달래 어깨를 붙들었다. 입이 몇 번 벌어졌다 닫혔다.

“내 이름이…” 강목이 제 가슴을 짚었다. “내 이름이 강목이다. 강가 강, 나무 목. 우리 아버지가 나루에서 배 짓는 사람 되라고 지은 거다.”

사 년 동안 안 나오던 말이 한꺼번에 나왔다. 달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비 얼굴을 닦았다. 아비 얼굴이 젖어 있었다. 방울 할멈이 국자를 내리고 앞치마로 제 눈가를 훔쳤다. 방울 셋이 짤랑였다.

한참 뒤 강목이 코를 풀고 연희를 올려다봤다.

“아가씨, 이 애가 나를 불렀으니 이제 이 애가 내 이름을 든 사람이오. 이 애가 잊으면 나는 또 얇아지오. 그러니 이 애는 평생 나를 이렇게 불러야 하오.” 강목이 달래 풀린 머리끝을 다시 땋아 주었다. 땋는 손이 서툴렀다. “그 값으로 나는 이 애 이름을 부르오. 달래야. 아무도 이 애한테 이름을 맡기라고 못 하게.”

“그럼 저도…” 연희가 말을 꺼냈다가 멈췄다.

“아가씨 이름은 뭐요? 나도 들어 주겠소. 받은 게 있으니.”

연희는 입을 벌렸다. 두 자였다. 앞이 ㅇ이었다. 강물 소리가 들렸고, 모래톱에서 대패 밥이 바람에 굴렀다. 장작 셋이 탈 동안 기다려야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등성이 쪽으로 해가 기우는 게 보였다. 발끝이 산 쪽으로 저릿하게 당겼다.

“다음에요.” 연희가 일어섰다. “다음 쉬는 날에 꼭 말씀드릴게요.”

*

해가 기울었다. 연희는 산길을 뛰었다. 등성이 너머로 해가 반쯤 먹혀 들어갈 즈음 발이 저절로 빨라졌다. 제가 뛰는 게 아니라 밤이 끌어올리는 걸음이었다. 쇠돌이 뒤에서 헉헉대며 발을 굴렀다. 이번에는 걸음 수를 세는 게 아니라 숨이 차서 굴렀다.

“아저씨, 사 년 전 수레에 몇 사람 탔어요?”

“그걸 왜 묻소?”

“세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쇠돌이 뛰면서 손가락을 접었다. 하나, 둘, 셋. 다섯에서 멈췄다가 다시 폈다.

“그해는 셋이었고, 그 전전해는 둘이었고, 그 전에는 모르겠소. 열 넘게는 발가락을 써야 하는데 산길에서 발가락을 어떻게 세오?” 쇠돌이 숨을 몰아쉬었다. “근데 다 합치면 일곱이던가. 원주 어른이 일곱이라 하셨소. 좋은 댁에서 일곱을 잘 쓰고 있다고.”

연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부 뒤쪽 서른일곱 줄 가운데 몇 줄 끝에 아주 작은 점이 찍혀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그때는 먹이 튄 줄 알았다.

산문 앞에 탁문경이 서 있었다. 초록 유리 등 아래라 얼굴이 푸르스름했다.

“나루는 재미있었소?”

연희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국수가 맛있었어요.”

“국수만 먹었으면 됐소.” 원주가 쇠돌을 봤다. 쇠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접고 있었다. 원주는 그 손가락이 몇 개 접혔는지 보지 않아도 안다는 얼굴로 돌아섰다. “서기더러 오늘 밤 장부를 가져오라 하시오.”

해가 넘어갔다. 연희의 발은 이미 산문 안에 있었다. 등 뒤 먼 데서, 모래톱 쪽에서, 강목 아버지, 하고 한 번 더 아이 목소리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연희는 그게 제 귀에만 들리는 소리인 줄 알면서 한참 서서 들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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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줄2026.06.09· 3화

    대사 하나하나가 인물을 만들어 주네요.

    • 백해원작가2026.06.10

      인물마다 말버릇을 먼저 정해 두고 썼어요. 알아봐 주셔서 기쁩니다.

    • 조용한책상2026.06.10

      저도 그 장면에서 멈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