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서른일곱 번째
목욕탕 장부의 이름들 · 백해원
서른일곱 번째 이름은 사 년 전 것이었다. 강목. 그만둔 날짜가 적혀 있고, 돌려받은 날은 비어 있었다.
나는 서기에게 물었다. “이 사람 어디 사는지 아세요?”
“산 아래요. 반나절 거리입니다.”
“왜 안 오셨을까요.”
서기가 붓을 놓았다. “가 보시겠습니까.”
쉬는 날은 열흘에 하루다. 나는 그날 산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나무가 바뀌는 것을 봤다. 온수각 근처는 침엽수인데 중턱부터 활엽수가 나온다. 여기가 다른 데라는 것을 나무가 먼저 알려 준다.
강목이라는 사람은 나루터에서 배를 고치고 있었다. 마흔 몇쯤 되어 보였고 손이 컸다.
“온수각에서 왔어요.”
그가 대패질을 멈췄다. “…거기 아직 있소?”
“있어요.”
“물은 여전히 뜨겁고?”
“네.”
그가 웃었다. 웃는데 눈이 웃지 않았다. 나는 그런 웃음을 아버지한테서 본 적이 있다.
“이름 찾으러 안 오세요?”
그의 손이 다시 멈췄다. 대패를 뱃전에 내려놓고 그 옆에 앉았다. “내 이름이 뭔지 아시오?”
“강목이요.”
그가 나를 봤다. 오래 봤다. “오랜만에 듣소.”
“왜 안 오세요.”
“사 년 전에 나갔소. 나가는 날 서기가 그럽디다. 장부 앞에 서면 돌려준다고.”
“그럼 서시면 되잖아요.”
“섰소.”
나는 그 말에 놀랐다. “서셨어요?”
“섰지.”
“그럼 왜.”
강목이 강 쪽을 봤다. 물이 낮았다. 갈수기였다. “안 돌아옵디다.”
“…안 돌아와요?”
“이름이 안 돌아옵디다. 종이에 글자는 그대로 있는데, 내 쪽으로 오지를 않아.”
나는 뱃전을 잡았다. 나무가 축축했다. “왜요.”
“내가 그동안 한 번도 안 불렸으니까.” 그가 손바닥을 폈다. 굳은살이 두꺼웠다. “삼 년을 일했는데, 삼 년 동안 아무도 내 이름을 안 불렀소.”
“별칭으로 불렸겠죠.”
“그렇지. 나는 널이었소. 널을 대는 일을 했으니까.”
“그게 왜 문제예요.”
강목이 나를 봤다. “이름은 부르는 사람이 있어야 살아 있소. 삼 년 동안 아무도 안 부르면 종이에 글자만 남소. 글자는 이름이 아니오.”
나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강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그가 다시 대패를 들었고, 나는 더 물을 것이 없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뒤에서 소리가 났다.
“낭자.” 그가 말했다. “거기 아직도 사람이 여럿 있소?”
“열 몇 명 있어요.”
“그럼 서로 이름을 부르시오. 서기 말고.”
“서로는 못 불러요. 아무도 모르니까요.”
강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못 나가는 거요.”
산을 오르면서 나는 셈을 했다. 내가 온 지 열나흘. 그동안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은 하나였고, 횟수는 한 번이었다. 나는 그 한 번을 자꾸 떠올렸다. 연희 씨.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선명해졌고, 선명해질수록 무서워졌다.
그러니까 서기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부르되 매일은 부르지 않는 이유를. 안 부르면 사라지고 부르면 남는다. 그는 그 사이에서 딱 한 번을 골랐다. 사람 하나가 사라지지 않을 만큼만, 그러나 갇히지는 않을 만큼만.
나는 산길 중턱에서 멈췄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순한 해 전에 매일 불린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