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03자) · 연희 · 삼월 열여드레
별칭
이름을 맡기면 일자리를 주는 목욕탕 · 백해원
열흘이 지나자 연희는 아궁이라는 소리에 먼저 고개를 돌렸다. 온수각에서는 다 그렇게 불렸다. 물지게를 지는 사람은 물지게, 수건을 삶고 개는 사람은 수건, 셈을 맡은 노인은 그냥 셈이라 불렸다. 일이 곧 이름이었고, 일을 바꾸면 이름도 바뀌었다.
별칭에도 서열이 있었다. 먼저 온 사람이 좋은 자리를 가졌는데, 좋은 자리란 일이 편한 자리가 아니라 부르기 짧은 자리였다. 셈은 한 자라 제일 윗자리였고, 큰수건과 작은수건은 중간, 물지게 셋은 부르다 숨이 차서 맨 아래였다. 물지게 셋이 동시에 불리면 큰지게, 곰보지게, 막내지게가 한꺼번에 돌아봤다. 큰수건은 그 셋을 한 번에 부르는 방법을 안다고 했다. “지게들아.” 그러면 셋 다 안 돌아봤다.
“옮기면 다시 익혀야 하잖아.”
연희가 물지게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왜 아무도 수건 자리로 안 옮기느냐고 묻자, 작은수건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한 말이었다. 열일곱 살이고 말이 없는 처녀였다. 연희는 무엇을 익히느냐고 묻지 않았다. 열흘이 되니 알았다. 사람이 새 별칭에 몸을 맞추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열이틀째 새벽, 연희는 그게 편하다고 느꼈다. 아궁이 앞에 앉아 장작을 밀어 넣는 동안 아궁이에게는 갚을 쌀도, 불탄 가마도, 기침하는 막내도 없었다. 아궁이는 불만 보면 됐다. 불꽃이 누런빛에서 흰빛으로 오르는 동안 등이 가벼웠고, 그 가벼움이 좋아서 소름이 돋았다. 편한 게 무서웠다. 가벼운 것은 오래 들고 있을 수 있고, 오래 들고 있으면 원래 무거웠다는 걸 잊는다.
*
일은 저녁에 부엌에서 났다.
부엌 평상은 해 질 녘이 제일 붐볐다. 탕에서 올라온 김이 부엌 문으로 밀려 들어와 등잔 불을 흐렸고, 가마솥 보리밥 누룽지 냄새가 김에 섞여 배를 먼저 불렸다. 부엌어멈이 주걱을 들고 서서 밥을 퍼 주면, 큰지게는 늘 두 번 받고 세 번째를 눈으로 달라고 했다.
막내지게 개동이 곰보지게 옆에 앉아 있었다. 곰보지게는 얼굴에 마마 자국이 있는 스물여섯 사내였고, 사월 보름이면 기한이 끝난다고 했다. 개동은 그 말을 듣고부터 곰보지게 뒤를 강아지처럼 따라다녔다.
“형, 나가면 어디로 가? 형네 마을은 어디야? 형 원래 이름은 뭐야?”
평상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숟가락 소리가 멎었고, 솥에서 김 새는 소리만 났다. 곰보지게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대답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얼굴이었다. 이름이 떠오르는 데 장작 셋이 드는 건 연희만이 아니었다.
부엌 문에 탁문경이 서 있었다.
“막내지게.”
원주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개동이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계를 들었지? 여기서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사흘 끼니 없다. 그리고 장생고에 쌀 한 섬 더 적어 두마. 쌀 한 섬이면 두 달이다.”
개동의 입술이 떨렸다. 열다섯 살 아이에게 사흘 굶는 것보다 두 달이 더 무거웠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셈 노인은 입속으로 뭔가를 셌고, 큰수건은 국그릇에 코를 박았다. 연희는 숟가락을 놓았다.
“끼니를 끊으시면 내일 물지게는 누가 져요?”
탁문경이 연희를 봤다.
“아궁이 일이 아니오.”
“물이 안 올라오면 제 아궁이에 올릴 솥이 비어요. 제 일이에요. 그리고 굶은 애가 물지게 지고 샘에서 올라오다 벼랑으로 구르면요? 그것도 장부에 失足이라고 적으실 거예요?”
평상 위 공기가 식었다. 셈 노인이 세던 것을 멈췄다. 문간이 부엌 밖 어둠 속에 서 있다가 한 걸음 물러났다. 탁문경은 오래 연희를 보다가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아궁이는 아직 모르는구먼. 안에서 부르면 이름이 안으로 기우오. 저 아이가 날마다 곰보지게를 불러 대면 곰보지게는 사월 보름에 기한이 끝나도 못 나가오. 산문 앞에서 발이 돌아서는 걸 오늘 저녁에 봤지? 그게 평생 가오. 그땐 누구 탓이오? 묻는 아이 탓이오, 막은 내 탓이오?”
말이 부드러워서 더 단단했다. 평상에 앉은 사람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는 그 끄덕임이 원주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원주 말이 익어서라는 걸 알았지만, 반박할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반은 맞는 말이었다.
“입이 빠르구먼. 그럼 아궁이 끼니도 사흘 끊지. 둘이 하나를 나눠 굶으면 되겠소. 그리고 아궁이는 첫 쉬는 날을 안 쓴다.”
원주가 돌아서 갔다. 등잔 불빛이 그의 등을 따라 부엌 문을 빠져나갔고, 그제야 평상에 숨소리가 돌아왔다. 큰지게가 제 두 번째 밥그릇을 슬그머니 연희 쪽으로 밀었다가, 연희가 쳐다보자 도로 당겨서 반만 덜어 주었다.
*
사흘 동안 연희와 개동은 아궁이 앞에서 굶었다. 굶는다고 했지만 온전히 굶지는 않았다. 부엌어멈이 누룽지를 아궁이 재 속에 묻어 놓고 갔고, 큰수건은 수건 삶는 솥에 감자를 넣었다가 잊어버린 척했다. 작은수건은 말없이 소금 한 줌을 종이에 싸서 두고 갔다.
“누나.”
“응.”
“누나 때문에 누나도 굶잖아요.”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지.”
“그러니까 미안하다고요.”
“미안하면 감자 큰 거 나 줘.”
개동이 감자 둘을 들고 오래 비교하다가 큰 걸 연희에게 줬다. 연희가 그걸 반으로 쪼개 도로 줬다. 개동이 입에 넣은 채로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등을 두드려 주는데 아이 등뼈가 손바닥에 하나하나 닿았다.
“누나, 나 진짜로 형 이름 알고 싶었어요. 형 나가면 누가 불러 줘요?”
연희는 대답을 못 하고 아궁이에 장작을 넣었다.
이튿날 아침, 연희는 굶은 배로 물지게 줄에 끼었다. 개동 대신이었다. 산문 밖 샘에서 탕채까지 물지게가 하루 예순 번을 오르내렸다. 샘 돌확에 동이를 담그면 쇳내 나는 찬물이 손목을 물었고, 어깨에 얹은 지게 끈이 젖은 삼베 저고리를 파고들었다. 벼랑 아래 계곡 물소리가 등 뒤에서 따라 올라왔다. 셈 노인이 산문 기둥 곁에 앉아 오르내리는 지게 수를 셌다. 서른, 서른하나. 큰지게가 지나가며 노인에게 오늘 제 몫은 스물이라고 우겼고, 노인은 열여덟이라고 받아쳤다.
“영감님, 제가 두 번 지나갈 때 한 번만 세셨잖아요!”
“자네 두 번 지나가는 걸 누가 두 번으로 치나? 동이가 반씩 비었는데.”
곰보지게는 말없이 돌확 곁에 동이를 내려놓고 한참 숨을 골랐다. 연희가 곁에 쪼그려 앉자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월 보름이면 나가오.”
“좋으시겠어요.”
“나가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소.” 곰보지게가 계곡 쪽을 봤다. “마을 이름이 안 떠오르오. 개울이 있고, 뒷산에 밤나무가 많았소. 어미가 늘 부뚜막 옆에 앉아 있었고. 그런데 그 마을을 뭐라 불렀는지, 어미가 나를 뭐라 불렀는지가 없소.”
샘 위 산길로 쇠돌이 내려오다가 그 말을 들었다. 쇠돌은 두 사람 앞에 쭈그려 앉더니 선심 쓰듯 말했다.
“걱정 마시오. 기한 끝나고 갈 데 없는 사람은 개경 좋은 댁에서 데려가오. 밥 주고 옷 주고, 원주 어른이 다 알아서 하오.”
“좋은 댁 어디요?”
“그건 모르오. 나는 거기까지 안 세 봤소.” 쇠돌이 손가락을 접어 보다가 일어섰다. “아무튼 좋은 데요.”
곰보지게는 대꾸하지 않고 동이를 다시 졌다. 연희는 쇠돌의 등을 오래 봤다. 그 좋은 댁으로 간 사람 가운데 돌아온 사람이 있느냐고 묻고 싶었는데, 쇠돌은 그런 셈을 할 줄 모르는 얼굴이었다.
*
열나흘째 밤, 장부실 문이 열려 있었다. 이레째 밤에 연희가 서른일곱 줄을 본 뒤로 서기는 그 문을 늘 닫아 두었다. 그날은 일부러 연 것 같았다. 연희는 들어갔다.
“앉으십시오.”
서기가 청자 찻잔 둘에 차를 따랐다. 금이 간 찻잔이었는데 금을 따라 누렇게 차 물이 들어 있었다. 등잔 불이 잔 위에서 흔들렸다.
“연희 씨.”
연희는 찻잔을 놓쳤다. 깨지지는 않았다. 뜨거운 차가 손등에 튀었는데 뜨거운 줄을 몰랐다. 손등보다 먼저 가슴 안쪽이 뜨거웠다. 열나흘 동안 아무도 부르지 않은 것, 저 자신도 장작 셋을 태워야 겨우 떠올리던 것이 남의 입에서 나와 제 쪽으로 왔다. 저녁마다 거울 대신 물에 비춰 보면 뒤가 비칠 것처럼 얇아지던 제가, 그 한마디에 한 겹 두꺼워졌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이름을 불렀습니다. 장부에서 읽었으니 압니다.”
“그럼 매일 불러 주세요.”
서기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안 됩니다. 이름은 부르는 사람이 있는 쪽으로 기웁니다. 제가 여기, 산문 안에서 날마다 부르면 연희 씨 이름은 이 안으로 기웁니다. 날마다 기울면 유월 초닷새에 돌려받아도 산문을 못 나갑니다.”
“그래서 원주 어른이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거예요?”
“그 말은 반쯤 맞습니다.” 서기가 장부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나머지 반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한 사람 이름을 석 달에 세 번까지만 부릅니다. 원주 어른이 정한 게 아니라 제가 정한 겁니다.”
“왜 정하셨는데요?”
서기는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등잔 불이 한 번 흔들렸고, 벽 너머 탕채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아궁이 열둘 가운데 열하나가 살아 있는 소리였다. 연희는 버릇처럼 그걸 셌다.
“예순한 해 전에, 여기서 일하던 사람 하나가 날마다 불렸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못 나갔습니다.”
연희는 찻잔을 다시 들었다. 식어 있었다.
“그럼 밖에서 부르면요?”
서기가 처음으로 눈을 피했다.
“밖으로 기웁니다.”
*
아궁이가 돌아간 뒤 단향은 장부를 폈다. 앞장, 올봄 들어온 줄, 연희의 두 자 아래에 가로획을 하나 그었다. 석 달에 세 번 가운데 한 번이었다.
붓을 놓고 그는 제 손등을 봤다. 쉰 해도 넘게 먹을 갈아 온 손인데 주름이 없었다. 그는 가끔 제 이름을 떠올려 보려 했다. 첫 글자가 무슨 소리였는지부터 막혔다. 떠올릴 수 없는 것을 떠올리려 할 때마다 방 안이 조금 추워졌다. 벽 너머에서 아궁이가 연희, 연희, 하고 제 이름을 혼자 되뇌는 소리가 들렸다. 제 이름은 제가 불러도 어디로도 안 기운다. 단향은 그걸 알려 줄까 하다가 등잔 심지를 낮췄다.
그는 뒤쪽 묶음을 펼쳤다. 서른일곱 줄 가운데 서른한 줄이 제 글씨였다. 맡긴 날을 적었고, 그만둔 날을 적었고, 셋째 칸은 비워 두었다. 비워 둔 칸을 적을 때마다 원주는 곁에 서 있었다. 일곱 줄 끝에는 아주 작게 점이 하나씩 찍혀 있었다. 그 점은 원주가 찍으라고 해서 찍은 것이었고, 점 찍힌 사람이 산문을 나설 때마다 개경에서 온 수레가 나루에 서 있었다. 단향은 그 수레를 한 번도 따라 내려가 보지 않았다.
아궁이가 밖에서 부르면 밖으로 기우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눈을 피했다. 밖으로 기운다는 것을 예순한 해 동안 알았다. 알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 그의 나머지 반이었다. 단향은 찻잔 둘을 씻어 엎어 두었다. 금 간 잔 안쪽에 아궁이가 흘린 차 자국이 누렇게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자국을 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