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32자) · 연희 · 삼월 초닷새
이름을 맡기는 날
이름을 맡기면 일자리를 주는 목욕탕 · 백해원
온수각 산문은 돌기둥 둘에 널문 한 짝이 걸린 것이 다였다. 삼월 초닷새 해 질 녘, 연희가 그 앞에 섰을 때 기둥 위로 김이 넘어오고 있었다. 담 안쪽 어딘가에서 물이 끓었고, 소나무 장작 타는 송진 냄새가 김에 섞여 문틈으로 흘러나와 산길의 찬 공기와 부딪혔다. 처마 끝에는 초록 유리 등 둘이 벌써 켜져 있었다. 원나라에서 들어온 물건이라고 쇠돌이 오는 길에 세 번 말했다.
“여기서부터 몇 걸음인 줄 아오? 나루에서 산문까지.”
쇠돌은 원주의 심부름꾼이었다. 어깨가 문짝만 했고, 걸음을 셀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열이 넘어가면 발을 굴렀다. 발가락까지 셈에 넣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연희는 나루에서부터 그 발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올라왔다.
“몇 걸음인데요?”
“스무 번 굴렀으니까, 이백 하고 조금이오.”
“반나절을 걸었는데 이백 걸음이면 아저씨 한 걸음이 십 리네요.”
쇠돌은 한참 손가락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널문이 안에서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머리가 반쯤 센 사내였고, 연희를 보지 않고 쇠돌만 봤다.
“새 사람이오?”
“아궁이 자리요. 문간 영감, 원주 어른 계시오?”
문간이라고 불린 사내가 턱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연희는 그때 그 사람이 이름 대신 제 자리로 불렸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직 몰랐다.
*
장부실은 탕채 끝에 붙은 방이었다. 창이 없었고 등잔 하나가 책상 모서리를 밝혔다. 먹 냄새와 기름 그을음이 벽에 배어 있었는데, 탕채의 습기가 벽 하나 너머에서 밀려오는데도 방 안 공기만은 손끝이 까슬할 만큼 말라 있었다. 책상 앞에 젊은 사내가 붓을 들고 앉아 있었다. 얼굴은 스물다섯쯤이었다. 눈은 그렇지 않았다.
그 옆에 선 사람이 원주 탁문경이었다. 쉰둘이라고 들었는데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절 사람도 아니면서 절 사람처럼 말을 골랐다.
“송골 옹기장이 덕보의 딸이지요. 장생고에서 쌀 스무 섬, 다섯 해 이자가 붙어 마흔 섬이오. 석 달 아궁이 일로 갚고, 먹이고 재워 주오.”
탁문경이 종이를 내밀었다. 연희는 끝까지 읽었다. 송골에서 옹기 주문 장부를 적은 것이 연희였고, 아버지는 글을 몰랐다. 맨 아래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역을 치르는 동안 이름을 맡긴다. 이게 뭐예요?”
“적힌 그대로요. 석 달 맡겼다가 돌려받는 거요.”
“이름을 어떻게 맡겨요? 이름이 무슨 보따리예요?”
“맡겨 보면 아오.”
“안 맡길래요. 불은 이름 없이도 때잖아요.”
탁문경은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았다. 소매에서 종이를 한 장 더 꺼내 책상에 펼쳤다. 같은 글이었고, 아래에 먹 묻은 엄지가 찍혀 있었다. 아버지 엄지는 가마 불에 데어 한쪽이 뭉개져 있었다. 연희는 그 뭉개진 자국을 열 살 때부터 봤다.
“아비가 딸 이름으로 수결했소. 딸이 안 적겠다면 아비가 와서 적으면 되오. 다만 아비는 나이가 있어 아궁이 일을 석 달에 못 끝내오. 아비 몫이면 세 해요.”
책상 앞의 사내가 붓을 내려놓았다. 말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희는 손바닥이 젖는 것을 느꼈다. 엄지 자국 옆에 쌀 스무 섬이라는 글씨가 아버지 대신 적혀 있었다.
“적으면 석 달이죠?”
“석 달이오. 유월 초닷새.”
연희는 붓을 받았다. 연희, 두 자를 적는 데 손이 잠깐 느려졌다. 서기가 말했다.
“이름 위에 손을 얹으십시오.”
손을 얹었다. 종이가 따뜻해졌다. 손바닥 아래에서 무언가가 종이 쪽으로 빠져나갔고, 아프지는 않았다. 아프지 않아서 더 이상했다. 아픈 것은 어디가 잘못됐는지라도 알려 주는데, 이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고 지나갔다.
“됐습니다.” 서기가 장부를 덮었다. “오늘부터 아궁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탁문경이 문으로 가다가 돌아섰다.
“한 가지만 지키면 되오. 여기서는 이름을 묻지도 말하지도 않소. 남의 것도, 제 것도. 안에서 부르면 안에 묶이오. 묻지 않는 게 자비요.”
*
그날 해 질 녘에 연희는 물동이를 이고 산문 밖 샘으로 보내졌다. 샘은 산문에서 스무 걸음 아래, 바위 틈에서 솟는 물을 돌확에 받아 두는 곳이었다. 물에서 쇳내가 났고, 손을 넣으면 손목까지 저릿하게 찼다. 돌확 너머로는 땅이 뚝 끊겨 계곡 벼랑이었고, 그 아래에서 물소리가 올라왔다.
“해 넘어가기 전에 들어오시오.”
문간이 산문 기둥에 기대 서서 말했다. 연희는 대답 대신 물동이를 천천히 채웠다. 들어오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늦게 들어가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었다. 해가 서쪽 등성이에 걸렸다가 반쯤 먹혔다. 연희는 물동이를 내려놓고 산길 쪽으로 세 걸음을 옮겼다. 나루 쪽이었다.
네 걸음째에 발이 돌아섰다. 연희가 돌린 게 아니었다. 무릎 아래가 제 뜻과 상관없이 산 쪽을 향했고, 몸이 거기 끌려 반 바퀴 돌았다. 다시 나루 쪽으로 발을 내밀었는데, 내민 발이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산문 쪽 흙을 밟았다. 등 뒤로 해가 마저 넘어갔다. 연희는 물동이를 잊은 채 산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걸음이 제 것인데 가는 곳이 제 것이 아니었다.
문간이 물동이를 대신 들고 따라 들어왔다.
“다들 한 번은 해 보오.”
“이게 뭐예요?”
“밤이 이름 있는 데로 사람을 끌고 오는 거요. 낮에는 나루까지도 가오. 해만 넘어가면 이렇게 되오.” 문간이 물동이를 부엌 문턱에 내려놓았다. “석 달만 참으면 되오.”
“영감은 몇 해 참으셨어요?”
문간은 대답하지 않고 산문 쪽으로 돌아갔다. 연희는 그가 샘 아래 벼랑 쪽을 한 번도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그냥 지나쳤다.
*
새벽 네 시에 아궁이채 열두 아궁이에 불을 넣는다. 사흘째 새벽, 연희는 여섯째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장작을 밀어 넣다가 멈췄다. 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두 자였다. 앞이 ㅇ이었다. 거기까지 오는 데 장작 셋이 다 탔다.
떠올리고 나서 연희는 아궁이 앞에 주저앉았다. 불빛이 무릎을 붉게 물들였고, 소나무 옹이가 터지는 소리가 탁, 탁 났다. 송골 가마에서 아버지가 불을 볼 때 하던 대로 불빛 색을 봤다. 누런 불은 덜 탄 불이고 흰빛이 도는 불이 제대로 오른 불이었다. 그 색은 한 번에 알아봤다. 제 이름만 한참 걸렸다.
“연희. 연희. 연희.”
연희는 불에 대고 열 번 말했다. 말할 때는 있었는데 입을 다물면 없었다. 물속에서 손으로 뭔가 쥐는 것과 같았다. 쥐고 있는 동안은 분명히 쥐어져 있는데, 펴면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열한 번째에는 입술이 떨려서 소리가 안 났다.
“아궁이, 여섯째 불이 누렇소.”
셈이라고 불리는 노인이 뒤에서 말했다. 예순은 넘어 보였다. 노인은 아침마다 아궁이 앞을 지나며 불의 수를 셌다. 장작 수도 세고, 김 오르는 줄기도 세고, 제 숟가락질 수도 셌다.
“영감님은 여기 몇 해 계셨어요?”
“스물두 해 하고 백열하루.”
“그걸 다 세세요?”
“안 세면 잊어버리니까. 여기서는 세는 거라도 해야 사람이 안 흐려지오.” 노인이 제 이마를 톡톡 쳤다. “나는 내 이름은 잊었어도 오늘 아침 김 줄기가 스물아홉인 건 아오.”
연희는 웃었다. 웃다가 목이 막혔다. 노인은 그걸 못 본 척 아궁이 수를 다시 세며 지나갔다.
아침은 부엌 앞 긴 평상에서 먹었다. 조밥에 시래깃국, 짠지 한 종지였다. 열둘이 둘러앉았는데 말이 끊이지 않았다. 큰수건이라 불리는 아낙은 입이 쉬는 걸 못 견뎠다. 나루 국숫집 할멈 방울 소리가 요새 둘로 줄었다는 얘기, 절 주지 코털이 한 올 길어졌다는 얘기, 큰지게가 어젯밤 잠꼬대로 떡을 세 번 찾았다는 얘기가 숟가락 사이로 줄줄이 나왔다. 큰지게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네 번이었다고 고쳤다.
그렇게 떠드는데도 이름은 한 번도 안 나왔다. 누구네 딸, 누구네 아비도 없었다. 사람은 다 물지게, 수건, 셈, 더운탕이었고, 말이 그 자리 근처까지 가면 모두가 약속한 듯 국을 떠먹었다.
막내지게라는 열다섯 살 아이가 연희 옆으로 엉덩이를 붙였다. 볼이 트고 눈이 컸다.
“누나는 송골서 왔다면서요. 송골서는 누나를 뭐라고…”
큰수건이 숟가락으로 아이 입을 막았다. 국물이 아이 턱으로 흘렀다.
“먹어라. 먹는 입은 말을 안 하는 법이다.”
아이가 국물을 핥으며 연희를 봤다. 연희는 웃어 주었다. 아이가 물으려던 것을 연희도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대답이 떠오르는 데는 장작 셋이 드니까.
*
닷새째 밤, 연희는 장부실에 수건을 갖다 놓다가 물었다.
“이거 원래 이래요? 제 이름이 한참 있다 떠올라요.”
서기는 붓을 놓지 않았다.
“맡겼으니 그렇습니다.”
“석 달 뒤에는요?”
“돌려받으시면 다시 떠오릅니다.”
“돌려받은 사람 보셨어요?”
서기가 처음으로 붓을 멈추고 연희를 똑바로 봤다. 등잔 불빛이 그의 눈 밑에 그늘을 만들었다.
“봤습니다.”
“몇 명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붓을 들어 다음 줄을 쓰기 시작했고, 먹이 종이에 스미는 소리가 방 안에서 제일 컸다.
문밖에서 탁문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주는 밤마다 등잔을 들고 탕채를 한 바퀴 돌았다. 장부실 문 앞에서 걸음이 멎었다.
“아궁이가 여기서 뭘 하오?”
“수건 갖다 놨어요.”
“갖다 놨으면 나가시오. 서기 붓 잡을 때 말 거는 사람은 여기 오래 못 있소.”
연희는 수건을 한 번 더 반듯이 개어 놓고 나왔다. 일부러 천천히 갰다. 탁문경은 연희가 문턱을 넘을 때까지 등잔을 들고 서 있었고, 그 불빛이 연희 발뒤꿈치를 끝까지 따라왔다.
*
이레째 되는 날, 장부실 청소가 연희 몫으로 떨어졌다. 종이가 있는 방이라 물걸레는 안 쓴다. 마른 삼베로만 닦는다. 책상 위 장부를 두 손으로 들어 옮기다가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 장부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뒤쪽이 펼쳐졌다.
뒤쪽에 실로 따로 꿰맨 장이 있었다. 앞장과는 떼어 따로 묶여 있었다. 줄마다 이름이 하나씩 있었고, 연희는 손가락으로 짚으며 셌다. 서른일곱이었다.
이름 옆에 칸이 셋 있었다. 맡긴 날, 그만둔 날, 돌려받은 날. 셋째 칸이 서른일곱 줄 전부 비어 있었다. 가장 오래된 줄은 예순한 해 전이었고 가장 새 줄은 사 년 전이었다. 한 줄 그만둔 날 칸에는 날짜 대신 失足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발을 헛디뎠다는 말이었다.
뒤에서 기척이 났다.
“보셨군요.”
서기가 문가에 서 있었다. 연희는 장부를 덮지 않았다.
“이 사람들 어디 있어요?”
서기가 방으로 들어와 등잔 심지를 돋웠다. 방이 조금 밝아졌고, 서른일곱 줄의 먹빛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만두고 나갔습니다.”
“이름은요?”
서기가 장부를 내려다봤다.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