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레째

목욕탕 장부의 이름들 · 백해원

온수각의 하루는 물을 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새벽 네 시에 아궁이 열두 개에 불을 넣고, 물이 끓는 데 세 시간, 식혀서 온도를 맞추는 데 한 시간. 손님은 저녁에만 온다. 그래서 낮에는 할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와 보니 낮이 더 바빴다. 물을 데우지 않는 시간에는 물을 나르고, 물을 나르지 않는 시간에는 수건을 삶는다. 여기서 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레째다.

첫날 저녁에 서기가 나를 불렀다. 장부실은 온수각에서 가장 마른 방이다. 종이가 있으니 습기를 들이지 않는다. 그는 붓을 내밀며 말했다. “연희 씨. 여기 이름을 적으시고, 손을 얹으세요.”

나는 적었다. 연희. 두 자를 적는 데 손이 잠깐 느려졌던 것을 기억한다.

“손을요?”

“예.”

손을 얹었다. 종이가 따뜻해졌다. 한순간이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무언가가 종이 쪽으로 빠져나가는 감각이 있었고, 아프지는 않았다. 아프지 않아서 더 이상했다. 아픈 것은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려 주기라도 하는데 이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

“됐습니다.” 서기가 장부를 덮었다. “오늘부터 별칭으로 부르겠습니다.”

“…별칭이요?”

“이름을 맡기셨으니까요.”

나는 그때 계약서를 다시 봤다. 석 달, 빚 청산, 숙식 제공.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 줄이 있었다. 근로 기간 중 이름을 맡긴다.

“이거 무슨 뜻이에요.”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서기가 붓을 닦았다. “석 달 뒤에 돌려드립니다.”

“그동안은요.”

“그동안은 없습니다.”

손님은 초저녁부터 들었다. 온수각은 산에 하나뿐인 목욕탕이라 아랫마을 사람도 오고 고개 넘어온 장사치도 온다. 나는 첫날 저녁에 탕 옆에서 물 온도를 재다가, 손님 하나가 다른 손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들었다. 아주 평범한 소리였는데 그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때는 아직 몰랐다.

사흘째부터 이상해졌다. 사람들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 어이, 라거나 새로 온 애, 라거나. 그건 견딜 만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다른 쪽이었다. 내가 내 이름을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궁이 앞에서 불을 보다가 문득 내 이름이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자였다. 앞이 ㅇ이었다. 거기까지 오는 데 삼십 초쯤 걸렸다. 떠올리고 나서 나는 아궁이 앞에 주저앉았고, 불이 사그라들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그날 저녁에 나는 젖은 수건을 널면서 내 이름을 소리 내어 열 번쯤 말해 봤다. 말할 때는 있는데 말을 그치면 없었다. 물속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잡는 것과 비슷했다. 잡고 있는 동안에는 분명히 잡혀 있는데, 놓으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닷새째에 서기에게 물었다. “이거 원래 이래요? 내 이름이 안 떠올라요.”

“그건 정상입니다. 맡겨 두었으니까요.”

“그럼 석 달 뒤에는요.”

“돌려받으시면 다시 떠오릅니다.”

나는 그를 봤다. 얼굴은 젊었는데 눈은 젊지 않았다. “돌려받은 사람 보셨어요?”

서기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봤습니다.”

“몇 명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붓을 들어 다음 줄을 쓰기 시작했고, 나는 그 침묵이 무슨 뜻인지 이레째 밤에야 알았다.

장부실 청소는 내 일이었다. 종이가 있는 방이라 물걸레를 쓰지 않는다. 마른 천으로만 닦는다. 책상 위 장부를 옮기다가 떨어뜨렸는데, 펼쳐진 자리에서 나는 손을 멈췄다.

장부 뒤쪽에 따로 묶인 장이 있었다. 실로 꿰매서 앞장과 분리해 놓은 것이었다. 거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세었다. 서른일곱이었다.

각 이름 옆에 날짜가 두 개 있었다. 맡긴 날과 그만둔 날. 그리고 세 번째 칸이 있었다. 돌려받은 날 칸이었다. 서른일곱 개 전부 비어 있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예순한 해 전이었고, 가장 최근 것은 사 년 전이었다.

뒤에서 소리가 났다. “보셨군요.”

서기가 문가에 서 있었다. 나는 장부를 덮지 않았다.

“이 사람들 어디 있어요.”

그가 방으로 들어와 등불 심지를 올렸다. 방이 조금 밝아졌다. “그만두고 나갔습니다.”

“이름은요.”

서기가 장부를 봤다. “여기 있습니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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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에책2026.06.07· 1

    설정이 과하지 않게 깔려서 편하게 따라갔습니다.

    • 백해원2026.06.08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두 줄은 저도 오래 고쳤어요.

이레째 · 목욕탕 장부의 이름들 · 나오늘 AI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