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633자)

탕 안의 두 사람

목욕탕 남북 회담 · 모세담

12월 20일 수요일 오전 열 시 십오 분⁠, 통일탕 여탕 휴게실 평상에 남북 대표단이 셋씩 마주 앉았다⁠. 평상 가운데 짙은 갈색 탁자 위에 통일탕 수건 두 장이 개켜져 있었다⁠. 한 장은 양 머리 모양으로 말려 있었다⁠. 대표단 여섯이 다 맨발이었다⁠. 장관의 발가락은 아직 오므라든 채였다⁠.

옥자는 평상에 앉지 않았다⁠. 카운터 옆⁠, 여탕 문이 보이는 자리에 장화를 신고 서 있었다⁠. 기오가 옆에 서 있었고⁠, 방태건이 기오 옆에 서 있었다⁠. 채은은 평상 끝에서 노트북을 두드렸다⁠. 칸막이 벽 너머 남탕에서 할머니들이 수건 개는 소리가 사락사락 넘어왔다⁠.

전체 회의는 사십 분 만에 두 가지에서 멈췄다⁠. 하나는 낱말이었다⁠. 남측 문안에는 「⁠이산가족 생사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고⁠, 북측은 같은 자리에 「⁠흩어진 가족⁠, 친척⁠」이라는 말을 넣자고 했다⁠. 북측은 예전 합의문에도 그렇게 썼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날짜였다⁠. 남측은 생사 확인 명단을 이듬해 3월까지 주고받자고 했고⁠, 북측은 날짜는 다음 회담에서 정하자고 했다⁠. 다음 회담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정하지 않았다⁠.

“⁠단독 회담에서 두 분이 정하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기오가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열한 시였다⁠.

*

열한 시 오 분⁠, 두 대표가 탈의실에서 나왔다⁠. 1번과 2번 사물함에 옷을 넣고 수건만 둘렀다⁠. 영식은 양 머리 수건을 머리에 얹었고⁠, 장관은 수건을 어깨에 걸었다⁠. 정분의 이름이 매직으로 남은 1번 문짝이 탈의실 안에서 반쯤 열린 채 김을 맞았다⁠.

탕 계단 앞에서 두 사람이 멈췄다⁠. 난간은 하나였다⁠. 장관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영식이 손을 잡았다⁠. 예순여섯과 예순하나가 손을 잡고 세 칸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갔다⁠. 41도 물이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올라왔다⁠. 두 사람은 탕 가장자리 양 끝에 마주 앉았다⁠. 탕 너비는 두 미터 남짓이었다⁠. 탁자는 탕 밖에 있었다⁠.

옥자는 여탕 문을 닫았다⁠. 문 바깥에 기오와 방태건과 옥자⁠, 셋이 나란히 붙어 기다렸다⁠. 문틈으로 김이 새어 나왔다⁠. 목소리도 새어 나왔다⁠. 처음 십 분은 낮고 느렸다⁠. 물을 끼얹는 소리가 몇 번 났다⁠. 이십 분째에 웃음소리가 한 번 났다⁠. 기오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삼십 분째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흩어진 가족⁠」과 「⁠이산가족⁠」이 번갈아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3월⁠」과 「⁠다음 회담⁠」도 번갈아 나왔다⁠. 사십 분째에 목소리가 멎었다⁠. 물 소리만 났다⁠. 그것도 멎었다⁠.

기오가 넥타이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여탕 김 때문인지 다른 까닭인지 옥자는 묻지 않았다⁠. 방태건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문만 보았다⁠. 방태건의 엄지가 다른 엄지를 계속 문질렀다⁠.

“⁠막혔습니다⁠.⁠”

기오가 작게 말했다⁠. 방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북 의전 책임자 둘이 같은 말에 처음으로 같은 대답을 했다⁠.

*

막힌 탕 안의 고요 위로⁠, 칸막이 벽 너머에서 목소리 하나가 넘어왔다⁠. 천장까지 닿지 않는 벽 위로 남탕의 김과 함께 넘어온 목소리였다⁠. 귀가 어두운 사람이 제 목소리 크기를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복녀였다⁠.

“⁠정분아⁠, 내 가락지 젖지 않게 좀 들어 줘⁠.⁠”

“⁠목에 걸고 탕에는 왜 들어와⁠, 언니⁠.⁠”

“⁠빼면 잃어버려⁠. 엄마가 강 건너기 전에 걸어 준 거야⁠. 동생 목에도 하나 걸어 줬어⁠. 개풍에서 문산까지 걸어오다가 임진강 앞에서 동생이 할아버지 손 잡고 도로 갔어⁠. 두고 온 이불 가지러⁠. 이불 하나 가지러⁠.⁠”

남탕에서 할머니들이 조용해졌다⁠. 수건 개는 소리가 멎었다⁠.

“⁠그 애가 살아 있으면 여든여섯이야⁠. 나는 2018년에 명단에서 떨어졌어⁠. 그다음엔 명단이 없었어⁠.⁠”

“⁠언니⁠, 오늘 저 사람들이 명단 만든대⁠.⁠”

“⁠만들면 좋지⁠. 나는 물 좀 더 뜨겁게만 해 주면 돼⁠.⁠”

할머니 몇이 웃었다⁠. 웃음이 칸막이 벽을 넘어 여탕 김 속으로 떨어졌다⁠. 여탕 문 안쪽이 오래 조용했다⁠.

여탕 문이 안에서 조금 열렸다⁠. 영식의 목소리가 김 사이로 나왔다⁠. 방태건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방태건이 문틈에 귀를 댔다가⁠, 옥자를 돌아보았다⁠.

“⁠주인 선생⁠. 단장 선생께서 들어와 주시기를 청하십니다⁠. 등을 밀어 달라고 하십니다⁠. 이 탕 식으로⁠.⁠”

기오가 옥자를 보았다⁠. 의전 계획서 어디에도 없는 장면이었다⁠. 기오는 계획서를 꺼내지 않았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옥자는 장갑을 고쳐 끼고 여탕 문을 열었다⁠. 분홍 고무장화가 타일을 밟는 소리가 김 속에서 크게 울렸다⁠. 장관이 탕 안에서 어깨의 수건을 가슴께로 끌어 올렸다⁠. 영식은 탕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등을 옥자에게 돌리고 있었다⁠. 양 머리 수건이 김에 젖어 조금 주저앉았다⁠.

예순하나의 등은 넓었고⁠, 어깨뼈가 날개처럼 솟아 있었다⁠. 등 한가운데 척추를 따라 붉은 물 자국이 길게 났다⁠. 41도에 사십 분을 앉은 등이었다⁠.

옥자는 등 뒤에 쪼그려 앉았다⁠. 초록 장갑을 목덜미에 댔다⁠. 목덜미에서 어깨뼈까지⁠, 결대로⁠,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 툭⁠.

영식의 등이 굳었다⁠. 탕 물이 출렁이지 않았다⁠. 숨을 멈춘 등이었다⁠.

옥자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목덜미로 올라가 세 번 쓸고 두 번 두드렸다⁠. 이번에는 영식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영식이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아버지가 저를 이렇게 밀었습니다⁠. 세 번 쓸고 두 번 두드리고⁠. 자기 어머니한테 배웠다고 했습니다⁠. 일곱 살 때 딱 한 번 받아 본 손이라고⁠.⁠”

“⁠딱 한 번이면 오래 기억하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옥자는 장갑을 벗었다⁠. 맨손으로 영식의 등을 한 번 쓸었다⁠. 장갑 없는 손바닥에 41도의 등이 닿았다⁠.

“⁠윤달님⁠. 이 탕 때밀이였어⁠. 1951년 봄부터 2003년 겨울까지⁠, 쉰두 해⁠. 강 건너 간 아들 기다리면서 남의 등을 밀었어⁠. 내가 시집온 해에 내 손목 잡고 이 손을 가르쳤어⁠.⁠”

영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등만 내주고 있었다⁠. 옥자는 일어나 탕 옆 벽의 못으로 갔다⁠. 박 바가지를 못에서 내렸다⁠. 탕 물을 바가지 가득 떴다⁠. 바가지 안에 41도 김이 하얗게 찼다⁠.

“⁠이 바가지로 할매는 남한테 물 한 번 안 부었어⁠. 제 손만 헹궜어⁠. 아들이 깨뜨린 바가지라고⁠. 할매 마지막 겨울에 이 탕을 보고 소리쳤어⁠. 장수야⁠, 물 뜨겁다⁠, 천천히 들어가⁠.⁠”

옥자는 바가지 물을 영식의 등에 천천히 부었다⁠. 목덜미에서 허리까지 물이 흘러내렸다⁠. 철사 감긴 자리에서 물이 한 줄기 새어 영식의 어깨에 따로 떨어졌다⁠. 일흔일곱 해 동안 새던 자리였다⁠.

“⁠오늘 처음 남한테 붓는 거야⁠.⁠”

영식이 고개를 숙였다⁠. 탕 물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물방울인지 아닌지 옥자는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것이 이 탕의 예의였다⁠. 탕 맞은편에서 장관이 어깨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땀을 닦는 손이 아니었다⁠.

영식이 돌아앉았다⁠. 두 손을 내밀었다⁠. 옥자는 빈 바가지를 영식 손에 올려놓았다⁠. 영식은 바가지를 뒤집어 철사를 보았다⁠. 세 바퀴⁠, 서툰 매듭⁠.

“⁠아버지가 깨뜨렸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철사로 감았다고⁠. 아버지는 마지막 해에 이 매듭을 손가락으로 그리면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 이름은 끝내 몰랐습니다⁠. 엄마라고만 불렀으니까⁠.⁠”

“⁠윤달님⁠. 달님⁠.⁠”

영식이 입속으로 이름을 한 번 불렀다⁠. 두 번 불렀다⁠. 그러고는 바가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탕 맞은편의 장관을 보았다⁠.

*

“⁠장관 선생⁠.⁠”

영식의 목소리가 다시 반듯해졌다⁠. 반듯한데 아까와 달랐다⁠.

“⁠날짜는 3월로 합시다⁠. 명단은 3월까지 주고받는 것으로⁠.⁠”

장관이 수건을 어깨에 다시 걸었다⁠.

“⁠문구는 흩어진 가족⁠, 친척으로 하겠습니다⁠. 뜻은 같습니다⁠.⁠”

“⁠다음 회담은 봄에 합시다⁠.⁠”

“⁠어디서 하시겠습니까⁠?⁠”

영식이 탕 물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무릎 위 바가지를 두 손으로 쥐었다⁠.

“⁠여기서⁠. 같은 탕에서⁠. 주인 선생이 문을 열어 두신다면⁠.⁠”

두 사람이 동시에 옥자를 보았다⁠. 옥자는 장갑을 다시 끼었다⁠.

“⁠목욕날만 피하면 돼⁠. 수요일하고 토요일 아침⁠.⁠”

장관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영식도 웃었다⁠. 탕 물이 웃음에 출렁였고⁠, 노란 바가지 하나가 탕 가장자리에서 뒤집혔다⁠. 옥자는 바가지를 바로 세우고 여탕을 나왔다⁠. 문 밖에서 기오가 안경을 벗은 채 서 있었다⁠. 기오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옥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오는 넥타이를 끝까지 풀어 주머니에 넣었다⁠.

*

열한 시 오십 분⁠, 경호선 안으로 대통령이 탄 차가 들어왔다⁠. 현관 앞에서 경호관들이 길을 텄다⁠. 대통령이 구두를 신은 채 현관 매트를 넘으려 했다⁠.

“⁠구두 벗고 들어오세요⁠!⁠”

옥자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쩌렁 울렸다⁠. 경호관 넷이 동시에 굳었다⁠. 곽도식만 굳지 않았다⁠. 곽도식은 허리를 굽혀 대통령 구두 뒤축을 잡을 자세를 잡았다⁠. 대통령은 웃으며 구두를 벗었다⁠. 기오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양말도 벗으시라고⁠. 대통령은 양말도 벗었다⁠. 대통령의 발가락도 타일에 닿자마자 오므라들었다⁠.

대통령은 휴게실 평상에서 두 대표를 만났다⁠. 영식은 젖은 머리에 외투를 걸치고⁠, 바가지를 통일탕 수건에 싸서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사진기자 한 사람만 들어와 사진 세 장을 찍었다⁠. 세 장 모두에 바가지는 수건에 싸여 보이지 않았다⁠. 기오가 그렇게 맞춰 두었다⁠.

한 시⁠, 경호구역이 풀렸다⁠. 북측 차량 행렬이 골목을 빠져나가기 전⁠, 영식이 차 문 앞에서 몸을 돌렸다⁠. 남탕에서 근무를 마치고 나온 할머니들이 노란 바가지를 든 채 현관 앞에 모여 있었다⁠. 영식은 맨 끝의 복녀 앞으로 갔다⁠.

“⁠어르신⁠, 명단은 제가 고를 수 없습니다⁠. 다만 3월에 명단이 오갑니다⁠.⁠”

복녀는 귀가 어두웠다⁠. 정분이 복녀 귀에 대고 크게 옮겼다⁠. 복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목의 가락지를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물 좀 더 뜨겁게 해 놓으라고⁠, 그 애한테⁠.⁠”

영식이 고개를 숙였다⁠.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바가지를 싼 흰 수건이 차창 안에서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순대국집 앞에서 학봉이 기자단에게 국밥을 나르다 말고 손을 흔들었다⁠. 사다리 위 렌즈 마흔 개가 골목 끝으로 돌아갔다⁠. 정분은 맡겨 둔 휴대전화를 돌려받자마자 단톡방에 대통령 사진을 올렸다⁠. 눈은 이번에도 감겨 있었다⁠.

*

오후 네 시⁠, 옥자는 여탕 탕 물을 다 빼고 새로 받았다⁠. 41도⁠. 겨울 해가 천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김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아침에 여탕에 남겨 둔 노란 바가지 하나를 탕 가장자리 맨 끝에 엎었다⁠. 탕 옆 벽의 못은 비어 있었다⁠.

단톡방에 정분이 올렸다⁠. 「⁠아침에남탕이라 서운함 오늘4시여탕 다시 사천원⁠」⁠. 옥자가 답했다⁠. 「⁠오늘은 공짜⁠」⁠.

네 시 십 분⁠, 할머니 열한 명이 여탕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근무 도구로 들었던 노란 바가지를 각자 제자리에 엎었다⁠. 정분은 1번 사물함을 열었다⁠. 문짝에는 새 이름판이 붙어 있었다⁠. 「⁠길정분 할머님 자리⁠」⁠. 정분은 이름판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고⁠, 아침에 꺼냈던 순서를 거꾸로 하여 물건을 하나씩 다시 넣었다⁠. 맨 아래 칸에 비닐에 싼 남자 때수건이 들어갔다⁠.

옥자는 장갑을 끼고 맨 안쪽으로 갔다⁠. 복녀가 탕 가장자리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목에 건 가락지가 김 속에서 작게 흔들렸다⁠. 옥자는 가락지를 복녀 어깨 너머 앞으로 넘겨 놓고⁠, 굽은 등의 목덜미에 초록 장갑을 댔다⁠.

천창의 햇빛이 김을 뚫고 탕 물 위에 길게 누웠다⁠. 옥자의 손이 목덜미에서 어깨뼈까지 내려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툭⁠, 툭⁠. 빈 못 아래에서 복녀가 눈을 감고 말했다⁠.

“⁠물 좀 더 뜨겁게⁠.⁠”

옥자는 장갑 낀 손으로 탕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복녀의 등에 천천히 부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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