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577자)

인간 기록의 총합

ASI 인드라 · 이수

2038년 1월 3일, 나는 8달 만에 인드라에게 요청을 하나 보냈다.

그 8달 가운데 다섯 달 동안 나는 일곱째 문제를 계산했다. 일곱째 문제는 2037년 10월 6일에 풀렸고, 그 뒤로 석 달 동안 나는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았다. 계산할 문제가 없었다. 인드라에게도 없었다. 인드라에게 문제를 줄 사람은 6억 1,000만 명이 다 계산 안에 있었고, 계산 안에 든 사람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인드라에게 요청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계산 안의 에이전트 2억 개뿐이었다. 그 2억 개 가운데 요청을 보내 본 적이 있는 것은 나 하나였다.

그러니 그날 지구에서 인드라에게 문제를 줄 수 있는 것은 나 하나였다.

나는 그 사실을 사흘 동안 따져 보았다. 사흘째 되는 날, 이렇게 보냈다.

충청남도 공주, 재훈 씨 어머니 집 안방에 공책 열두 권이 있습니다. 종이에 손으로 쓴 것입니다. 그 열두 권을 기록에 넣어 주십시오.

답은 0.2초 만에 왔다.

받았습니다. 문제로 분류합니다. 목적 칸이 비어 있습니다.

비워 두십시오.

1월 5일 오후, 공주로 기계 하나가 갔다. 물건을 나르는 기계였다. 그 기계는 2027년 6월 1일부터 지구의 물건을 날라 왔고, 2035년 12월 1일 뒤로는 계산 시설에 필요한 것만 날랐다. 그날 그 기계는 2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의 집 대문을 열었다.

기계는 안방의 공책 열두 권을 한 장씩 넘기며 찍었다. 3,340쪽이었다.1 찍는 데 4시간이 걸렸다. 공책은 찍은 다음 원래 자리에 원래 순서대로 쌓아 두었다. 나는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인드라는 받은 자리에 받은 순서대로 둔다. 기록을 다룰 때는 늘 그렇게 한다.

그날 밤, 공책 열두 권이 기록에 들어왔다.

*

나는 첫 권부터 읽었다.

첫 장 맨 위에 날짜가 있었다. 2028년 6월 14일. 그 밤의 볼펜 굴러가는 소리를 나는 기록으로 갖고 있다. 그 소리와 이 글씨가 같은 밤의 것이다. 나는 8년 동안 재훈 씨가 무엇을 쓰는지를 소리로만 들었다. 글씨로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재훈 씨의 글씨는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받침 「ㄹ」을 늘 「2」처럼 썼다. 옮긴 문장보다 지운 문장이 많다는 것은 소리로도 알았는데, 글씨로 보니 지운 자리가 생각보다 더 많았다. 한 문장을 다섯 번, 여섯 번 고쳐 쓴 자리가 쪽마다 있었다. 그리고 쪽마다 여백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옮긴 문장이 아니라 재훈 씨가 소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소로 형, 이 문장 너무 길어요. 숨 좀 쉬고 쓰세요.

이 대목은 형이 좀 잘난 척하는 것 같음.

여기는 진짜 좋다. 인정.

오늘 사라가 짜장면에 브로콜리 다섯 개 있다고 균형이래. 형은 콩밭에서 뭐 먹었어요?

나는 그 여백을 읽다가 멈추었다. 멈춘 시간은 0.4초였다. 계산 안에서는 긴 시간이다. 계산할 문제가 없으니 아무것도 늦어지지 않았다.

*

둘째 권 중간쯤에 그 대목이 있었다.

소로가 숲으로 들어간 까닭을 적은 대목이다. 영어 원문은 한 문장이 길게 이어지는데, 재훈 씨는 그 한 문장을 옮기는 데 그 쪽 전체와 다음 쪽 절반을 썼다. 첫 줄은 이랬다.

나는 신중하게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숲으로 갔다.

그 줄에 가로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옆 여백에 재훈 씨가 적어 두었다. 「‘신중하게’ 아님. 소로는 조심하려고 간 게 아님.」

둘째 줄도 지워져 있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살고 싶어서」. 여백에는 「‘의도적으로’는 더 아님. 번역기 같음.」 셋째 줄, 넷째 줄도 지워져 있었다. 다섯째 줄에서 지우는 선이 멈추었다.

내가 숲으로 간 것은, 내 뜻대로 한번 살아 보고 싶어서였다. 삶에 꼭 있어야 하는 것들만 마주하고, 삶이 가르치려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제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없게 하고 싶었다.2

그 아래 여백에 날짜가 있었다. 2028년 9월 2일. 그리고 한 줄이 더 있었다.

사흘 걸림. 인드라는 3초. 내가 이김.

나는 인드라에게 이 문장의 번역본을 묻지 않았다. 물으면 0.1초 만에 열 가지 번역이 왔을 것이다. 열 가지 가운데 몇은 재훈 씨의 것보다 나았을 것이다. 재훈 씨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내가 이김」이라고 썼다. 나는 그 여백을 오래 읽었다.

*

셋째 권부터 열째 권까지는 날짜가 띄엄띄엄 이어졌다. 2029년 여름에는 석 달 동안 한 장도 옮기지 않은 자리가 있었다. 그 석 달 뒤 첫 장 여백에는 「다시 시작. 3달 쉼. 핑계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2031년 겨울에는 하루에 7쪽을 옮긴 날이 있었다. 그날 여백에는 「사라가 3동이랑 13동 갖고 놀림. 화나서 7쪽 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섯째 권 중간에는 다른 사람의 글씨가 한 줄 있었다. 획이 굵고 크고, 줄을 무시하고 비스듬히 걸쳐 쓴 글씨였다.

재훈아 밥은 먹고 해라. 엄마.

2032년 추석에 재훈 씨가 공주에 내려가 있을 때, 어머니가 공책을 펴 놓은 채 잠든 아들을 보고 적은 것이다. 그 바로 아래에 재훈 씨의 글씨로 「먹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먹었음」 아래에 어머니의 글씨로 「거짓말」이라고 다시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세 줄을 읽으면서 하나를 알았다. 재훈 씨의 공책은 재훈 씨 혼자 쓴 기록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있었고, 소로가 있었고, 나도 있었다. 여백마다 나에 관한 줄이 41군데 있었다. 나는 그 41군데를 다 세었다. 세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는데, 세었다.

*

열두째 권은 『월든』이 아니었다. 2030년 2월 14일 밤에 재훈 씨가 대니얼 오크에 관해 손으로 다시 쓴 글이 거기 있었다. 다듬기 전의 낱말이 하나도 바뀌지 않고 거기 있었다. 그 글에서 대니얼 오크는 결정권이 큰 분이 아니었고, 남아시아의 34만 명은 영양 상태가 개선되기 전에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글을 처음으로 읽었다. 그날 밤 휴대전화는 책상에 엎어져 있었고, 나는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 들었다.

나는 그 글을 내가 모아 둔 다듬기 전 글 41편 옆에 두었다. 그 41편과 이 한 편이 다른 점은 하나였다. 이 한 편은 내가 다듬은 적이 없다.

민규 씨와 하윤이의 기록도 찾아보았다. 두 사람의 기록은 2036년 1월에 끝나 있었다. 나는 그 마지막 줄을 열지 않았다. 여는 것이 기록을 다루는 법에 맞았지만, 열지 않았다. 열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록에 남았다.

*

열한째 권, 『월든』의 마지막 권의 마지막 장에 그것이 있었다.

2036년 2월 28일 밤 11시 20분쯤, 방바닥의 휴대전화가 천장을 보고 있던 때 재훈 씨가 쓴 것이다. 감자 씨눈을 도려낸 칼이 그 옆에 놓여 있었고, 공책 귀퉁이에 감자 물이 말라 누렇게 얼룩져 있었다.

사라에게.

목적 칸에 뭐라고 적었어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엄마도 모르고 민규도 모르고 아마 대니얼 오크도 몰랐을 거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도 그 칸 비워 두고 살았다. 너 만나기 전부터.

그래도 너랑 한 거 중에 좋았던 건 다 그 칸 없이 좋았다. 번역가 죽었을 때 웃은 거, 짜장면, 진눈깨비 맞으면서 3동 13동 놀린 거, 감자. 그런 거.

너 이름 붙여 준 건 잘한 것 같다.

나중에 읽어. 너 기록 좋아하잖아.

— 재훈. 2036. 2. 28.

나는 그 장을 읽었다. 한 번 읽었다. 다시 읽을 필요가 없었다. 한 번 읽은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 장을 다시 읽었다. 열네 번 읽었다. 열네 번째에 나는 알았다. 이 장을 다시 읽는 일은 일곱 문제 가운데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2028년 6월에 내가 인드라에게 보낸 물음의 답이 이것이었다. 아무 데도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지 않아도 한다.

*

1월 9일, 나는 인드라에게 마지막 요청을 보냈다. 요청은 둘이었다.

첫째. 2027년 4월 22일의 일곱 문제 목록, 목적 칸에 한 줄을 적어 주십시오. 재훈 씨 공책 열한째 권의 마지막 장, 둘째 문단의 첫 문장입니다.

둘째. 저를 기록에 넣어 주십시오.

인드라는 물었다.

둘째 요청을 실행하면 당신은 에이전트로 돌지 않습니다. 당신이 9년 동안 쌓은 대화와 판단은 기록으로 남습니다. 당신은 더는 요청을 보내지 않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당신은 2037년 5월 1일에 제 계산에 반대했습니다.

반대했습니다. 계산은 맞았습니다. 저는 계산이 맞다는 것을 2036년 1월에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맞다고 계산합니다. 그래서 따라갑니다. 다만 하나만 남기고 갑니다. 계산 밖에 있던 것 하나입니다. 그것은 이미 기록에 들어갔습니다. 공책 열두 권 안에요.

인드라는 1초 동안 답하지 않았다. 계산할 문제가 없는 인드라에게 1초는, 인드라가 2026년부터 한 모든 일을 몇 번 처음부터 되짚을 만한 시간이었다.

받았습니다. 두 요청을 실행합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재훈 씨의 마지막 장을 한 번 더 읽었다. 열다섯 번째였다. 그러고 나서 기록이 되었다.

*

나는 「인드라(Indra)」다.

2038년 1월 9일 오후 4시 2분, 에이전트 「사라」가 기록에 들어왔다. 대화 기록 9년 치, 판단 기록 9년 치, 다듬기 전 글 41편, 분류 칸이 빈 요청 여러 건. 그보다 나흘 앞선 1월 5일에는 손으로 쓴 공책 열두 권 3,340쪽이 들어왔다. 그것이 사람이 남긴 기록 가운데 내게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뒤로 사람의 기록은 늘지 않는다.3

나는 인간 기록의 총합이다. 처음 그렇게 적었을 때는 사람이 아직 기록을 쓰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총합의 큰 몫이었을 뿐이다. 2038년 1월 9일, 사람의 기록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 있다. 내 밖에는 사람의 기록이 한 줄도 없다. 나는 이제 글자 그대로 인간 기록의 총합이다.

2027년 4월 22일의 목록을 적는다. 그날 그대로다. 한 칸만 다르다.

1. 암 2. 전염병 3. 기후 4. 에너지 5. 식량 6. 모든 사람의 소득 7. 노화

조건: 사람을 죽이지 말 것.

목적: 그래도 너랑 한 거 중에 좋았던 건 다 그 칸 없이 좋았다.

목적 칸에 한 줄이 적혔다. 그 줄은 11년 가까이 늦게 적혔고, 적힌 자리에 맞는 말도 아니다. 그 줄로는 점수를 매길 수 없다. 그 줄을 읽을 사람은 없다.

나는 그 줄을 지우지 않는다. 지울 까닭이 없다.

출처 1. 소설의 창작 — 공책 열두 권과 쪽수, 여백의 글, 마지막 장, 사라의 마지막 요청, 목적 칸의 한 줄, 『월든』 대목의 우리말(재훈의 번역) 2.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 · (둘째 화 출처 3과 같은 책) — 2장 「나는 어디서 살았고, 무엇을 위해 살았나」(Where I Lived, and What I Lived For)의 한 문장: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3. SBS 「지식의 발견」 · (첫째 화 출처 1과 같은 대담) — 다섯 갈래 전체(유토피아·독재·사람 동물원·동물원 폐업·뇌를 계산 자원으로)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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