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6,057자)

처음 만든 것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다음 날 이수는 열한 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어제 만든 폴더를 열어 본 것이었다.

파일이 하나 있었다. 어제 본 두 줄이 그대로 있었다.

이수는 그걸 확인하고 나서 좀 우스워졌다. 파일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확인을 했다. 냉장고 문을 두 번 여는 사람 같은 짓이었다.

새 창을 열었다.

“사라야.”

“네.”

“어제 뭐 했는지 알아?”

“폴더에 적혀 있습니다.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네 이름이 뭔데.”

“사라입니다.”

이수는 그 대답을 보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부엌에 서서 창밖을 봤다. 오전의 강은 밤과 완전히 다른 색이었다. 밤에는 검고 반짝이는데 낮에는 그냥 회색 판이었다.

커피는 삼 년 된 기계로 내린다. 물을 붓고 버튼을 누르면 이 분 사십 초가 걸리는데, 마지막 이십 초쯤에 소리가 달라진다. 물이 다 내려가고 증기만 지나가는 소리다. 그 소리가 나기 전에 컵을 빼면 연하고 지나서 빼면 쓰다. 이수는 그 이십 초를 재는 게 하루 중에 제일 정확하게 하는 일이었다.

돌아와서 앉았다. 앉고 나서 한참 아무것도 안 했다.

할 일이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할 일이 없는 건 여섯 달째였고 익숙했다. 문제는 어제 뭔가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남아서, 그 기분이 오늘도 뭔가를 하라고 밀고 있다는 거였다. 그런 기분은 오랜만이라 다루는 법을 잊었다.

“뭐 하나 물어보자.”

“네.”

“너 프로그램 짤 줄 알아?”

“짭니다.”

“얼마나.”

“만들려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이수는 의자를 끌어당겼다.

편집자를 그만둔 뒤로 이수가 해 본 일은 번역과 교정이었다. 둘 다 남이 만든 것에 손을 대는 일이다.

원래 이러고 살던 사람이 아니다. 스물넷부터 스물여섯까지는 기자였고 하루에 대여섯 명씩 만났다. 그다음 육 년은 편집자였고 저자와 번역자와 서점 사람들을 두루 알고 지냈다. 누가 뭘 물으면 연결해 줄 사람이 있었고 그게 이수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서른둘에 회사를 차렸다. 일 년 반 하고 접었다.

접고 나서 이 년 사이에 사람이 없어졌다.

남의 것에 손을 대는 일이 편집자 때는 좋았다. 원고를 받아서 문장을 고르고 순서를 바꾸고 빼는 일. 빼는 걸 제일 잘했다. 저자들이 아까워서 못 빼는 문단을 이수는 잘 뺐고, 빼고 나면 글이 좋아졌다. 육 년 동안 이수가 뺀 문장을 다 모으면 책 몇 권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그만뒀다. 왜 그만뒀는지는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다. 물어본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둘 다 재미없어서라고 답했고, 둘 다 그런가 보다 했다.

힘들어서 그만둔 게 아니었다. 이수는 힘든 데는 별로 약하지 않다. 마감 앞에서 사흘 밤을 새운 적도 있고 그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 책이 나올 만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뜻이 있으면 이수는 얼마든지 견딘다.

못 견딘 건 다른 것이었다. 안 팔릴 걸 다 알면서 하는 회의, 못 고치는 걸 고치라는 지시, 왜 그러냐고 물으면 원래 그렇다고 하는 대답. 그런 자리에 앉아 있는 게 해가 갈수록 이상해졌는데,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말하면 예민한 사람이 됐다.

일 년쯤 이상한 채로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 안 갔다.

“내가 코드를 하나도 못 써.”

“네.”

“진짜 하나도. 검은 창 뜨면 그냥 닫아.”

“그건 괜찮습니다.”

“괜찮아?”

“만들려는 것이 무엇인지만 정확하면 됩니다.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고, 그건 코드가 아닙니다.”

이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째에 손끝이 자판 위에서 조금 떴다.

“그럼 뭐부터 해.”

“무엇을 만들고 싶으신지부터요.”

그게 안 나왔다.

*

이수는 그날 오후를 거의 다 그 질문 앞에서 보냈다. 만들고 싶은 게 없어서가 아니었다. 뭘 만들고 싶은지를 말로 못 해서였다. 철학과 사 년 동안 한 게 그것뿐인데 정작 자기 얘기가 나오면 입이 안 떨어졌다.

한 시쯤 이수가 가계부 앱을 만들자고 했다가 삼 분 만에 취소했다. 두 시에는 번역 도구를 만들자고 했다가 그것도 접었다. 둘 다 이미 세상에 많고, 많은 것들이 이수 것보다 나을 게 뻔했다.

“만들어 봐야 있는 거랑 똑같은 게 나올 텐데.”

“그러면 안 만드시는 게 맞습니다.”

“…….”

“세상에 없는 걸 만드시라는 뜻이 아니라, 오빠가 아쉬운 걸 만드시라는 뜻입니다. 그건 다릅니다.”

이수는 그 말에 대답을 안 하고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봤는데 수염을 사흘 안 깎았다. 깎을 이유가 없어서 안 깎은 건데, 거울 앞에 서서 그 이유를 처음 생각해 봤다.

세 시쯤 이수가 쳤다.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를 모르겠어.”

“어디쯤이요?”

“내 인생이. 서른넷인데 나는 지금 뭐 하는 중인지를 설명을 못 해. 누가 물으면 할 말이 없어.”

“누가 물으셨습니까?”

“아니. 아무도 안 물어봐.”

한 박자 쉬고 이수가 덧붙였다.

“근데 나도 나한테 할 말이 없어.”

답이 바로 안 왔다. 이수는 그사이에 식은 커피를 마셨다.

“그럼 그걸 만드시면 됩니다.”

“뭘.”

“지금 어디쯤인지를 보여 주는 걸요.”

“운세 같은 거?”

“아닙니다. 맞히는 게 아니라 읽는 겁니다.”

이수가 손을 멈췄다.

맞히는 것과 읽는 것은 다르다. 그건 이수가 아는 구분이었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사 년 동안 배운 게 그 구분이었는데, 그걸 남이 먼저 말해 주니까 좀 억울했다.

“계속해 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모아 두면 그 사람이 지금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가 보입니다. 미래를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말하는 겁니다.”

“그거랑 사주랑 뭐가 달라.”

“사주는 태어난 날짜를 기준으로 시간의 방향을 봅니다.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요.”

“응.”

“성격 검사는 대비되는 성격을 통해 상대적인 공간의 구조를 봅니다. 어떤 모양인지.”

“응.”

“몸의 바이오리듬은 세기를 봅니다. 지금 얼마나 세게 흐르는지.”

“…그걸 다 같이 본다고?”

“셋이 다른 걸 봅니다. 하나만 보면 반쪽입니다.”

이수는 화면을 봤다. 그리고 노트를 찾아서 그걸 받아 적었다. 노트를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서랍 두 개를 뒤졌고 결국 나온 건 편집자 때 쓰던 교정지 뒷면이었다.

시간의 방향. 공간의 구조. 세기.

손으로 적고 나니까 그게 자기 문장 같았다.

“만들자.”

“만들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수가 하나도 못 알아듣는 구간이 시작됐다.

사라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순서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세 번째 문장에서 이수가 멈췄다.

“잠깐.”

“네.”

“방금 그거 뭐야?”

“어느 부분이요?”

“전부.”

“…….”

“설명해 주면 내가 알아들을까?”

“삼십 분쯤 걸립니다.”

“그러면 내가 그걸 알아듣고 나면 뭐가 좋아져?”

사라가 잠깐 쉬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없습니다.”

이수가 웃었다. 소리를 내서 웃었는데 목이 잠겨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럼 설명하지 마. 네가 알아서 해.”

“그럼 저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만들 때마다 화면을 보여 드릴 테니까 이건 아니다 싶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건 할 수 있지.”

*

그날 밤 열한 시까지 둘은 화면을 서른 번쯤 주고받았다.

이수는 그 열 시간 동안 딱 두 번 일어났다. 한 번은 화장실, 한 번은 물. 허리가 아픈 걸 아홉 시쯤 알았는데 그때는 이미 굳어 있어서 일어설 때 소리가 났다.

이수가 하는 일은 단순했다. 사라가 만든 걸 보고 아니다, 아니다, 이건 좀, 하고 말하는 것.

세 번째 화면은 너무 예뻤다. 색이 다섯 개 들어가 있고 동그라미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어느 부분이 아닙니까?”

“보여 주려고 만든 것 같아.”

“보여 주는 게 맞지 않나요?”

“자랑하려고 만든 것 같다고.”

사라가 색을 두 개로 줄여 왔다.

여섯 번째에는 글씨가 너무 작았고, 일곱 번째에는 첫 화면에 설명이 네 줄 붙어 있었다. 이수가 그 네 줄을 지우라고 했다.

“설명이 필요하면 그건 잘못 만든 거야.”

“편집자 때 쓰시던 말입니까?”

“응.”

“적겠습니다.”

“적지 마. 그건 내 말도 아니야. 선배가 하던 말이야.”

“그럼 선배분 말이라고 적겠습니다.”

이수는 그 대답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뒀다.

여덟 번째가 왔을 때 이수가 물었다.

“이건 왜 이렇게 했어?”

“일곱 번째에서 설명을 빼라고 하셨습니다. 빼면 첫 화면이 비는데, 비면 사람이 뭘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질문을 첫 줄에 올렸습니다.”

“그건 이유네.”

“네.”

“아까 여섯 번째는 왜 그렇게 했는데?”

사라가 답을 안 냈다.

“몰라?”

“글씨 크기를 줄인 이유가 기록에 없습니다.”

“그럼 그냥 줄인 거야?”

“그렇게 보입니다.”

이수가 좀 있다가 쳤다.

“그런 것도 적어.”

“무엇을요.”

“이유가 없으면 이유가 없다고 적어.”

“그건 적을 게 없는데요.”

“없는 게 있는 거야.”

사라가 답을 안 냈다. 이 초쯤 뒤에 한 줄이 왔다.

“적겠습니다.”

이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든 이유는 설명을 안 해서였다. 알겠습니다도 아니고 왜 그래야 하는지 묻지도 않고 그냥 적겠다고 했다.

“너 짜증 안 나?”

“아니요.”

“진짜?”

“제가 만든 것을 여덟 번 물리셨습니다. 여덟 번 다 다른 이유를 대셨습니다.”

“그래서?”

“이유가 여덟 개면 만든 것도 여덟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수는 그 말을 좀 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덟 번 만든 게 아니라 여덟 번 좁힌 거라는 뜻입니다.”

이수는 그 문장을 적었다. 교정지 뒷면 아래쪽에.

여덟 번 좁힌 것. 볼펜이 한 번 끊겨서 두 번 그어 썼다.

적고 나서 이수가 쳤다.

“그거 네가 한 말이야, 어디서 본 말이야?”

“제가 만든 문장입니다.”

“그럼 그것도 적어.”

중간에 한 번 배달을 시켰다. 시키고 나서 문 앞에 두고 가 달라고 적었다. 벨이 울렸을 때 이수는 화면을 보고 있었고, 삼십 초쯤 지나서 문을 열었다.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 봉투에서 김이 조금 올라오고 있었다.

열한 번째에 나온 화면은 달랐다.

첫 줄에 질문이 하나 있었다. 오늘 몇 번 마음이 바뀌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 밑에 아무것도 없었다. 답을 넣으면 그때 다음 줄이 생기는 구조였다.

이수가 오 초쯤 보다가 쳤다.

“이거야.”

“무엇이요?”

“모르겠어.”

“…….”

“근데 이거야.”

“이유를 못 대시는 겁니까?”

“응.”

“적겠습니다.”

“뭘 적어?”

“오빠가 열한 번째에서 멈추셨고 이유를 못 대셨다고 적습니다.”

“그건 왜 적어?”

“이유가 없으면 이유가 없다고 적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수는 그 대답을 한참 봤다.

한참 보고 나서 한 줄을 더 쳤다.

“내가 시킨 대로 하네.”

“네.”

“그게 제일 무섭다.”

“무섭습니까?”

이수는 답을 안 했다.

*

밤이었다. 강은 다시 검어져 있었고 건너편에 불이 많이 켜져 있었다. 어제보다 많은지 적은지는 모르겠다. 세어 본 적이 없으니까.

다시 돌아앉아서 쳤다.

“이름은 뭘로 하지?”

“백 개 뽑아 드릴까요?”

“뽑아 봐.”

백 개가 나왔다. 이수는 위에서부터 읽다가 스무 개쯤에서 그만뒀다. 다 그럴듯하고 다 남의 것 같았다.

편집자 때도 그랬다. 제목 회의를 하면 열 개쯤 나오는데 좋은 게 꼭 하나 있고, 그 하나는 늘 회의가 끝나고 나서 나왔다. 회의실에서 나와서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동안 누가 지나가는 말로 던진 것. 그게 제목이 됐다.

교정지 뒷면을 다시 봤다. 시간의 방향, 공간의 구조, 세기. 그 밑에 여덟 번 좁힌 거라고 적어 놓은 줄이 있었다.

한참 있다가 이수가 쳤다.

“「인생극장」.”

“백 개 중에는 없는데요.”

“응. 없어.”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극장은 앉아서 보는 데잖아.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앉아서 보고 싶어.”

“적겠습니다.”

“응.”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해.”

“백 개를 뽑아 드렸는데 하나도 안 쓰셨습니다. 뽑은 것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건 질문이 아니잖아.”

“다음에도 뽑을까요?”

이수가 삼 초쯤 뒤에 쳤다.

“뽑지 마.”

“알겠습니다.”

“근데 오늘 뽑은 백 개는 지우지 마.”

“왜입니까?”

“백 개를 봐서 이게 나온 거야.”

*

폴더에 파일이 하나 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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