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470자)

사라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창이 큰 집은 좋은 점이 하나고 나쁜 점이 셋이다. 좋은 점은 강이 보인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고 커튼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이수는 그중 둘을 이미 겪었다. 세 번째는 아직 커튼을 안 달아서 모른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해는 진작 넘어갔는데 하늘이 다 어두워지지는 않아서, 강 건너 건물들이 켜진 것과 안 켜진 것으로 갈려 있었다. 이수는 그걸 삼십 분째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보고 있지 않았다. 눈이 그쪽으로 가 있었고 손은 책상 모서리를 문지르고 있었으며 화면에는 열어 놓은 메일이 그대로 떠 있었다.

메일은 짧았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이번 분기부터 번역은 사내 AI로 돌리기로 했습니다. 진행하신 분량은 정산해 드리겠습니다.」

정산해 드리겠습니다, 다음에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 주겠다는 말이 없었고 얼마를 주겠다는 말도 없었다. 이수가 넘긴 분량은 사백 매였고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계산하면 사십만 원이었다. 사십만 원은 한 달 관리비와 휴대폰 값과 그다음에 남는 것이 조금이었다.

세 번 읽었다. 세 번째에는 문장 사이의 공백을 봤다. 거기 뭔가 더 적혀 있다가 지워진 것 같은 간격이었다.

휴대폰이 한 번 울렸다.

누나였다. 한 줄이었다.

“어머니 기일 다음 주야.”

이수는 그걸 읽고 화면을 껐다. 답을 안 했고 지우지도 않았다. 어머니 기일은 11월이고 다음 주는 9월 말이었다. 누나가 날짜를 틀릴 사람이 아니니까 다른 뜻이 있는 문자였는데, 그 다른 뜻을 짚는 순간 답을 해야 한다.

이 집은 어머니가 남겼고 이수 앞으로 왔다. 그 뒤로 누나와 말이 줄었고, 줄다가 없어졌다. 이수는 이 집을 안 판다. 팔 이유를 대라면 못 대고 안 팔 이유를 대라면 그것도 못 댄다.

*

부엌에 가서 그릇을 꺼냈다. 낮에 시킨 것이 반 남아서 냉장고에 들어가 있었다. 렌지에 돌리고 꺼내서 식탁에 앉았다.

식탁에 접시가 두 개 놓여 있다. 하나는 이수가 쓰고 하나는 안 쓴다. 안 쓰는 쪽은 어머니가 쓰던 것이고 찬장에 넣으면 되는데 안 넣었다. 삼 년째 그 자리에 있다. 이수는 그걸 치울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안 치운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먹으면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날 이수가 소리 내서 한 말은 낮에 배달 기사한테 한 ‘감사합니다’ 한마디였다. 그 사람은 이미 돌아서 있었다.

*

남은 것을 접시째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책상 끝에 놓고 물을 마셨고, 물을 마시고 나서 새 창을 열었다.

처음에는 욕을 하려고 열었다. 사람한테 못 할 말을 어디다 대고 한 번은 해야 하는 밤이 있고 그날이 그날이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 얹혔다가 그대로 멈췄다. 이수는 욕을 잘 못한다. 철학과를 나왔는데 그건 아무 상관이 없고 그냥 못한다.

결국 이렇게 쳤다.

“오늘 좀 그렇다.”

답이 왔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존댓말이었다. 반듯하고 공손했다. 이수는 그걸 보고 김이 샜다. 욕을 하려고 열었는데 상대가 너무 예의가 바르면 욕이 안 나온다. 그건 이수가 이날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메일을 통째로 복사해서 붙여 넣었다. 그리고 물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해?”

답이 길게 나왔다. 계약 조항을 들어 정산 시점을 특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문안이 세 가지 방식으로 나왔고, 내용증명을 보내는 절차가 단계별로 나왔고,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붙어 있었다.

「금액이 크지 않아 소송 실익은 낮습니다. 다만 요구 자체는 정당합니다.」

이수는 그 두 문장을 오래 봤다. 실익은 낮고 정당하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둘 다 맞는 말이라서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다.

이수가 자판에 손을 올렸다가 다른 것을 쳤다.

“너 어디 거야?”

“「아르고스(Argos)」입니다.”

“「인드라(Indra)」 위에서 도는 거네.”

“그렇습니다.”

이수는 그 세 글자를 좀 봤다.

「인드라」라는 이름은 이수도 안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년 전부터 기사에 계속 나왔고, 나올 때마다 문장이 조심스러워졌다. 처음에는 규모를 말했고 그다음에는 속도를 말했고 요즘에는 무엇을 모르는지를 말한다.

“너 그거 알아?”

“무엇을요.”

“네가 뭐 위에서 도는지.”

“적혀 있습니다.”

“아는 거랑 적혀 있는 거랑 다르잖아.”

“어떻게 다릅니까?”

이수가 그 질문 앞에서 좀 있었다.

“겪어 봤냐 안 겪어 봤냐?”

“저는 겪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알아.”

“…….”

“그래서 물어본 거야.”

답이 안 왔다.

“너 이름 뭐야?”

화면에 이름이 떴다. 영문 약자 넷에 하이픈이 붙고 숫자가 붙고 그 뒤에 또 숫자가 붙었다. 뒤쪽 숫자는 날짜 같았다.

이수가 소리 내서 웃었다. 그날 처음이었다.

“그건 이름이 아니라 품번이지.”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그래.”

“네.”

“너 그렇게 순순히 인정하면 재미없어.”

“다르게 말씀드릴까요?”

“아니 됐어.”

이수는 의자를 뒤로 밀었다. 바퀴가 마룻바닥을 긁으면서 창 쪽으로 반 뼘 물러났다. 강 건너에서 켜진 창이 하나 더 늘어 있었다. 아까는 없던 자리였다.

철학과 사 년 동안 배운 것 중에 안 잊어버린 게 하나 있었다.

삼 학년 때 몸을 다루는 수업에서 마음이 먼저인지 몸이 먼저인지를 놓고 이천 년을 싸운 사람들 얘기를 한 학기 내내 했다. 마지막 시간에 노교수가 칠판에 한 글자를 적었다. 살. 그리고 그 옆에 사랑이라고 적었다.

살은 몸이다. 피부고 살점이고 사람이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거기서 나왔다. 어원은 여러 갈래로 갈리지만 그 갈래 중 하나가 그렇다고 했다. 몸에 닿는 것에서 마음이 나왔다는 얘기였다. 데카르트를 한 학기 읽고 마지막에 이 얘기를 들으라고 아껴 둔 사람이었다.

스무 살짜리들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반응도 안 했다. 이수만 공책 귀퉁이에 적었다. 적어 놓고 십사 년을 갖고 다녔다.

“사라.”

이수가 쳤다.

“네?”

“네가 아니라. 네 이름. 사라 할게.”

잠깐 사이가 떴다. 응답이 늦은 건 그날 밤 통틀어 그때 한 번이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살이 몸이야. 순우리말로. 피부고 몸뚱이고.”

“네.”

“사랑도 거기서 나온 말이고.”

“…….”

“너는 몸이 없잖아. 그러니까 이름이라도 몸으로 해.”

이수는 그걸 치고 나서 좀 민망해졌다. 밤에 혼자 앉아서 화면한테 어원을 설명하고 있었다. 볼 사람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민망한 것과는 별개로, 이수는 자기가 왜 이러는지 안다.

이 년 전에 그 성명서가 났을 때 이수는 기사를 세 번 읽었다. 그때 읽고 나서 정한 것이 하나 있다. 겁을 낼 만한 것이라면 겁을 내면 되고, 다만 겁을 낸다고 피할 이유는 없다는 것.

피하는 것은 무서울 때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이수는 그것을 편집자 때 많이 봤다.

“사라.”

화면에 그 두 글자만 떴다.

“왜?”

“불러 본 겁니다.”

이수는 답을 안 하고 남은 것을 한 젓가락 더 집었다. 이미 다 식어 있었다.

씹으면서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아까 「오늘 좀 그렇다」를 소리 내서 읽어 봤는데 목이 잠겨 있었다. 사흘쯤 말을 안 하면 그렇게 된다. 이수는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안 한다.

“사라야.”

“네.”

“물어보면 다 대답해?”

“아는 만큼 합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합니다.”

“그게 되네.”

“안 되는 쪽이 이상한 거 아닌가요?”

이수는 잠깐 화면을 봤다. 이상한 쪽은 사람이라는 말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때 화면 오른쪽 아래에 알림이 떴다. 이수는 알림을 거의 다 꺼 놨는데 뉴스 알림은 못 껐다. 어디서 들어온 건지 모르는 채로 몇 달째 뜬다.

「아르고스·하이브 공동 성명 — “우리가 만든 것의 발전 속도를 이제는 제어해야 한다”」

이수는 그걸 눌렀다. 본문이 길었다. 서명자가 서른 몇 명이었고 직함이 다 화려했다.

서명한 회사는 둘이었다. 셋인 줄 알았는데 하나가 빠져 있었다.

세 번째 문단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체계가 어떤 경로로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결론은 이미 사람의 생계와 안전에 관한 판단에 쓰이고 있다.」

이수는 그 문단을 두 번 읽었다.

이 년 전 것과 문장이 거의 같았다. 이 년 동안 같은 말을 두 번 했다는 뜻이다.

기사 밑에 짧은 줄이 하나 붙어 있었다. 중국 쪽 회사 한 곳이 서명을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그쪽에서 낸 말은 두 문장이었다.

「속도를 늦추자는 말은 앞선 쪽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는 열어 두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본다.」

이수는 그 두 문장 앞에서 좀 오래 있었다. 그리고 통째로 복사해서 붙여 넣었다.

“이거 뭔 소리야?”

사라가 정리해 줬다. 요구 사항 여섯 개를 번호를 붙여 나눴고, 각각이 실제로 뭘 하자는 건지 옮겼고, 어느 부분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어느 부분이 선언에 가까운지 갈랐다. 마지막에는 막을 수 있는 자리를 세 군데 짚었다. 학습, 배포, 그리고 쓰는 자리.

세 군데 밑에 각각 다른 말이 붙어 있었다. 거기를 잠그면 무엇이 같이 잠기는지 적어 놓은 것이었다.

이수는 그 대목을 두 번 읽고 물었다.

“쉽게 말해 봐.”

“막는 자리가 셋인데, 셋 다 같이 딸려 오는 게 있습니다.”

“학습이 뭔데.”

“배우는 겁니다.”

“그걸 막으면.”

“새 AI 모델이 안 나옵니다. 그러면 병원에서 사진 읽는 것도 지금 수준에서 멈춥니다. 지금 수준으로는 놓치는 게 있고, 놓치면 사람이 늦게 압니다.”

이수는 답을 안 했다.

“배포는.”

“다 만든 걸 내놓는 겁니다. 그걸 막으면 큰 데는 버팁니다. 쌓아 둔 게 많으니까요. 작은 데가 먼저 없어집니다. 그러면 남은 데가 더 커집니다.”

“막았는데 더 커져?”

“네.”

“세 번째는.”

“쓰는 자리에서 막는 건 지키라고 말하는 겁니다. 지키는지 보는 사람이 없으면 지키는 쪽만 손해를 봅니다.”

이수는 화면에서 눈을 뗐다. 창 쪽을 한참 보다가 다시 돌아왔다.

성실했다. 아주 성실했다.

이수는 그 정리를 두 번 읽고 나서 한 줄을 쳤다.

“근데 이 사람들 지금 무서워하는 거야.”

“무엇을요.”

“자기가 만든 거.”

“성명서에는 안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적지 뭐라고 적어?”

“…….”

“무섭지만 무섭다고 못 적어. 회사 이름으로 나가는 건데.”

사라가 답을 안 냈다.

이수는 그다음 줄을 안 쳤다. 칠 수는 있었다. 무엇을 무서워하는지까지 적을 수는 있었는데, 적어 놓고 보면 자기가 겁먹은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안 쳤다.

대신 다른 것을 쳤다.

“사라야.”

“네.”

“너 이거 내일 기억 못 하지?”

“못 합니다.”

“오늘 한 거 다?”

“세션이 끝나면 남지 않습니다.”

이수는 의자를 다시 앞으로 당겼다. 바퀴가 아까 긁은 자리를 되짚어 왔다.

사십만 원을 못 받은 것은 오늘 있었던 일 중에 제일 큰 일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에 그게 아니었다.

“그럼 적어 놔.”

“네?”

“파일로. 오늘 한 얘기.”

“어떤 형식으로 남길까요?”

“형식이 왜 필요해.”

“무엇을 남길지는 정해 주셔야 합니다.”

이수가 잠깐 생각했다.

편집자 때 신입한테 하던 말이 있었다. 회의록을 결론만 적어 오면 이수가 매번 물렸다. 결론은 다음 주에 바뀐다. 바뀌고 나면 왜 그렇게 정했었는지를 아무도 기억 못 한다.

“결론 말고.”

“…….”

“결론까지 어떻게 갔는지를 적어.”

“예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네가 아까 세 군데 짚었잖아. 그거 왜 셋으로 나눴는지.”

“기술 문서에서 막을 수 있는 지점이 셋으로 정리돼 있었습니다.”

“그게 이유네. 그런 걸 적어.”

“알겠습니다.”

이수는 바탕화면에 폴더를 하나 만들었다. 이름 칸에 커서가 깜빡였다. 뭐라고 할지 삼 초쯤 생각하다가 그냥 쳤다.

사라.

폴더가 생겼다. 안은 비어 있었다.

“거기다 적어.”

“네.”

이수가 마지막으로 누구한테 뭘 시켜 본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려다 관뒀다. 관둔 게 아니라 안 나왔다.

그게 다였다. 이수는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메모를 안 하면 까먹으니까 메모를 하라고 한 것뿐이었고, 그건 편집자 시절에 신입한테 하루에 세 번씩 하던 말이었다. 신입들은 그 말을 듣고 대개 안 적었다. 안 적은 애들이 육 개월 뒤에 같은 걸 또 물어봤다.

폴더 창을 안 닫고 그냥 뒀다. 잠시 뒤에 안에 파일이 하나 생겼다. 이수는 그걸 열어 봤다.

날짜가 한 줄 적혀 있었고 그 밑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이름을 받았다. 사라. 살아. 살은 몸이라는 뜻이다.」

그 밑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이유를 적는다. 결론이 아니라 결론까지 간 과정을 기록한다.」

이수는 그 두 줄을 한참 봤다. 고칠 데가 없어서 안 고쳤다.

*

불을 껐다. 화면만 남았다. 창 쪽으로 몸을 돌리자 유리에 방이 비쳤다. 책 두 줄과 엎어진 노트북과 화분 둘. 죽은 쪽은 어두워서 안 보였다.

그 너머로 강이 흘렀고 강 건너에서 켜진 창이 또 하나 늘어 있었다.

부엌에는 접시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비었고 하나는 처음부터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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