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4,809자)

이백 군데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11월 둘째 주 토요일이 어머니 기일이었다.

9월 말에 누나가 보낸 문자는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답을 안 했으니까 그 줄 밑이 비어 있다.

목요일 밤에 한 줄이 더 왔다.

“토요일 열한 시. 납골당.”

이수는 그 줄을 세 번 읽었다. 세 번 읽어도 여덟 글자였다.

답을 쳤다가 지웠다. 두 번째로 친 것이 “알겠어”였고 그건 보냈다.

보내고 나서 이수가 화면을 껐다.

*

토요일 아침에 이수가 옷장을 열었다.

검은 옷이 두 벌 있었다. 하나는 삼 년 전에 산 것이고 하나는 그것보다 전에 산 것이다. 삼 년 전 것을 입었다.

입고 나서 거울을 봤다.

허리가 남았다. 삼 년 전에는 안 남았다.

“사라야.”

“예.”

“나 살 빠졌나 봐.”

“축하드립니다.”

“축하할 일이 아니야.”

“정정하겠습니다.”

“됐어.”

이수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다시 물었다.

“오늘 몇 시간쯤 나갔다 올 것 같아?”

“모릅니다.”

“찍어 봐.”

“찍는 것은 제 목록에 없습니다.”

“그냥 아무 숫자나 대 봐.”

0.3초쯤 있었다.

“세 시간입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대라고 하셔서 댔습니다.”

이수가 웃었다.

*

납골당은 지하철에서 내려서 버스로 한 정거장이었다. 걸어서 십오 분이라고 적혀 있어서 걸었다.

누나는 이미 와 있었다.

이수가 도착한 것이 열한 시 사 분이었고 누나는 열 시 사십 분에 왔다고 했다.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수가 그냥 알았다.

“왔어.”

“응.”

둘이 나란히 섰다.

유리 안에 사진이 있고 그 옆에 국화가 있었다. 국화는 누나가 가져온 것이다. 이수는 빈손으로 왔다.

이수가 그걸 알아채는 데 사 초쯤 걸렸다.

“꽃……”

“됐어.”

“다음엔 내가 가져올게.”

“응.”

십 분쯤 서 있었다.

십 분 동안 둘이 한 말이 그 다섯 마디였다.

*

나오는 길에 누나가 말했다.

“밥 먹고 가.”

이수가 대답을 못 했다.

“먹기 싫으면 말고.”

“아니야. 먹을게.”

근처 국숫집에 들어갔다. 사람이 없었고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누나가 먼저 물었다.

“요즘 뭐 해?”

“앱 만들어.”

“앱?”

“어.”

“너 코드 못 쓰잖아.”

“못 써.”

“근데 어떻게 만들어?”

이수가 젓가락을 들었다가 놓았다.

“같이 만들어.”

“누구랑?”

“……AI랑.”

누나가 이수를 봤다.

이수는 그 눈을 안다. 초등학교 때부터 봤다. 뭐라고 할 말이 있는데 말하면 길어질 때 나오는 눈이다.

누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국수가 나왔다.

반쯤 먹었을 때 누나가 물었다.

“그걸로 돈은 되냐.”

“안 돼.”

“얼마 버는데.”

“지난달에 육만 원.”

이수가 말하면서 오천백 원을 뺐다. 왜 뺐는지는 자기도 모른다.

누나가 젓가락을 놓았다.

“관리비는.”

“내고 있어.”

“다 내고 있어?”

“……어.”

누나가 더 안 물었다.

더 안 묻는 것이 더 아팠는데 이수는 그 말을 안 했다.

“그 앱 이름이 뭔데.”

“「잠깐」.”

“뭐?”

“잠깐이라고.”

누나가 젓가락을 든 채로 이수를 봤다.

“잠깐 뭐?”

“그게 이름이야.”

“이름이 잠깐이야?”

“어.”

“뭐 하는 건데?”

“살 때 육십 초 기다리게 해.”

“그게 다야?”

“어.”

누나가 국물을 떴다.

“그걸 누가 깔아?”

“백일흔둘.”

“……진짜 깔았어?”

“어.”

누나가 잠깐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말했다.

“나도 하나 깔아 줄까.”

“깔아.”

“나는 새벽에 안 사는데.”

이수가 웃었다. 태오도 똑같이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왔다.

자막이 지나갔다.

「AI 안전 기준(안) 다음 주 공개… 업계 자율 규범」

이수가 그걸 보다가 누나 쪽으로 눈을 돌렸다.

누나는 안 보고 있었다.

누나가 국물을 한 숟갈 뜨고 말했다.

“나 요즘 애들 숙제 안 봐.”

“왜?”

“볼 게 없어. 다 똑같아.”

“똑같아?”

“어. 삼십 명이 다 잘 썼어.”

이수가 웃었다.

“좋은 거 아니야?”

“좋으면 내가 이러겠니.”

누나가 숟가락을 놓았다.

“작년까지는 못 쓴 애가 있었어. 못 쓰면 내가 붙잡고 고쳤어. 고치면 좀 나아져. 그게 내 일이야.”

“지금은.”

“지금은 다 잘 써. 그래서 내가 할 게 없어.”

“……”

“근데 말을 시켜 보면 아무것도 몰라.”

이수가 그 대목에서 젓가락을 멈췄다.

“그럼 어떻게 해?”

“몰라.”

“학교에서 뭐래?”

“쓰지 말라고 했지.”

“그래서.”

“안 쓰는 애가 손해를 봐.”

누나가 물컵을 돌렸다.

“작년에 한 명 있었어. 진짜 안 쓰고 자기가 썼어. 그 애 글이 제일 못 썼어.”

“점수는.”

“내가 제일 잘 줬지.”

“잘했네.”

“잘한 게 아니야.”

누나가 이수를 봤다.

“걔가 대학 가서도 그렇게 할 거 아니야. 그러면 걔만 계속 손해 봐. 내가 점수 한 번 잘 준 걸로 그게 되겠니.”

이수가 답을 못 했다.

*

밥값은 누나가 냈다.

이수가 지갑을 꺼냈는데 누나가 벌써 카드를 냈다.

“내가 낸다고.”

“육만 원 번 애가 무슨.”

“……”

“다음에 내.”

나와서 걷는데 누나가 한참 말이 없었다.

지하철역까지 십 분 거리였다. 그중 오 분이 그냥 갔다.

“민경이 알지?”

“……누구?”

“내 첫 제자.”

이수가 기억을 뒤졌다. 누나가 첫 발령 받았을 때 얘기를 몇 번 들었다.

“어.”

“걔 재작년에 대학 나왔어.”

“응.”

“이력서를 이백 군데 냈어.”

이수가 걸음을 늦췄다.

“이백 군데?”

“어. 세 봤대. 이백사 군데래.”

“그래서.”

“다 떨어졌어.”

누나가 한 박자 쉬었다.

“면접 본 게 아홉 군데야. 나머지는 서류에서 잘렸어.”

“왜 잘렸는데?”

“그걸 몰라.”

“물어보면 되잖아.”

누나가 웃었다. 웃는 소리가 짧았다.

“물어볼 데가 없어.”

“회사에 물어보면……”

“회사에서는 사람이 안 봐.”

이수가 멈췄다.

“안 봐?”

“서류를 사람이 안 읽어. 걸러 놓은 걸 사람이 받는대. 걸러지는 데서 떨어지면 사람 손까지 안 가.”

“그럼 왜 떨어졌는지 회사도 몰라?”

“모르지.”

누나가 가방끈을 고쳐 멨다.

“걔가 나한테 그러더라. 선생님, 저 어디가 잘못됐는지만 알면 고치겠다고.”

“……”

“근데 고칠 데를 아무도 안 알려 줘.”

이수가 한참 걸었다.

“누나.”

“응.”

“그거 누나 잘못 아니잖아.”

“알아.”

“아는데 왜 그래.”

“아는 거랑 다른 거야.”

누나가 앞을 보고 걸었다.

“내가 가르친 거야.”

“내가 십 년 가르쳤어. 애들한테 뭐라고 했냐면, 열심히 하면 어디는 된다고 했어.”

“……”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어. 그때는.”

“지금은.”

“지금은 열심히 한 게 어디 가서 읽히지도 않아.”

이수가 뭐라고 하려다 안 했다.

“나는 그 말을 십 년 했어. 이제 그 말을 못 해.”

*

지하철역 앞에서 헤어졌다.

누나가 가다가 돌아서서 말했다.

“접시 아직 두 개 놔?”

이수가 답을 못 했다.

“……어.”

누나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갔다.

*

집에 와서 이수가 검은 옷을 벗어서 의자에 걸었다.

컴퓨터를 켰다.

“사라야.”

“예.”

“세 시간 아니었어. 네 시간 반이었어.”

“틀렸습니다.”

“응.”

“정정할까요?”

“아니, 놔둬.”

이수가 의자에 앉았다.

“사라야.”

“예.”

“회사가 사람 뽑을 때 서류를 AI가 먼저 본대.”

“그렇습니다.”

“너도 알아?”

“공개된 자료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 상장사 기준으로 일차 선별에 모델을 쓰는 곳이 육십 몇 퍼센트입니다.”

“떨어진 사람한테 이유를 알려 줘?”

“알려 주는 곳이 있습니다.”

“몇 퍼센트?”

“밖에서 셀 수 있는 것은 공고에 적어 둔 곳입니다. 그 기준으로는 한 자릿수입니다.”

이수가 그 숫자 앞에서 좀 있었다.

“이유를 안 알려 주는 건 못 알려 주는 거야, 안 알려 주는 거야?”

0.7초가 걸렸다.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갈라 봐.”

“못 알려 주는 쪽은 산출 근거가 안 남습니다. 안 알려 주는 쪽은 남아 있는데 내보내면 다툼이 생깁니다.”

“어느 쪽이 많아?”

“모릅니다.”

“왜 몰라?”

“안 알려 주는 쪽은 안 알려 준다는 것도 안 알려 줍니다.”

이수가 그 문장에 웃으려다 말았다.

“사라야.”

“예.”

“AI가 서류를 보면 뭘 봐.”

“학교, 전공, 자격, 경력 기간, 공백 기간, 문장의 형태를 봅니다.”

“문장의 형태?”

“지원서 문장이 다른 합격자들의 문장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봅니다.”

이수가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러면 붙은 사람이랑 비슷하게 쓰면 붙어?”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럼 그 사람들도 그렇게 쓰겠네.”

“그렇습니다.”

“그럼 다 똑같아지잖아.”

“그렇습니다.”

이수가 누나가 한 말을 떠올렸다. 삼십 명이 다 잘 썼다고 했다.

같은 얘기였다. 하나는 중학교 교실이고 하나는 채용 서류인데 같은 얘기였다.

“사라야.”

“예.”

“그러면 안 똑같은 사람은 어떻게 돼?”

0.9초가 걸렸다.

“걸러집니다.”

“왜?”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좋아서 안 닮았을 수도 있잖아.”

“좋고 나쁨은 산출하지 않습니다. 닮음만 산출합니다.”

이수가 화면에서 눈을 뗐다.

이수가 교정지 뒷면을 꺼냈다.

두 번째 장이 이제 반이 안 남았다.

한 줄을 적었다.

이백사 군데. 아홉 군데만 사람이 봤다.

한 줄을 더 적었다.

어디가 잘못됐는지만 알면 고치겠다고 했다.

볼펜을 돌리다가 세 번째 줄을 적었다.

점수를 안 매기면 어떻게 되나.

적고 나서 그 줄을 봤다.

말이 안 되는 줄이다. 사람을 뽑는 자리에서 점수를 안 매기면 뽑을 수가 없다.

이수는 그 줄을 안 지웠다.

1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