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4,891자)

두 개의 인류

2027년, AI 지배의 시작 · 이수

중국 선전의 법정⁠,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 문서⁠, 그리고 같은 교실에 앉은 두 아이⁠.

뇌를 넓히는 기술이 사람에게 닿으면⁠, 사회의 틈은 빈부 격차를 넘어선다⁠. 한쪽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선다⁠. 뇌와 컴퓨터를 이어 기억과 생각의 속도를 넓힌 사람⁠, 유전자를 고치고 치료를 받아 훨씬 오래 사는 사람⁠, AI 보조 지능을 날마다 쓰는 사람이다⁠. 그런 기술에 닿지 못한 사람은 생물학의 한계 안에 그대로 남는다⁠.1

이 격차는 새 기기를 먼저 산 사람과 늦게 산 사람 사이의 격차와 견줄 수 없다⁠. 두 무리 사이에는 수명과 기억과 집중력과 배우는 속도와 병을 견디는 힘에서 수십 배의 차이가 날 수 있다⁠. 강화한 사람과 강화하지 않은 사람은 법으로는 같은 사람이어도⁠, 삶에서는 거의 다른 종처럼 갈라진다⁠. 사람이라는 종 안에서 새로운 진화의 갈림이 시작된다⁠.1

유전자를 고친 아이는 이미 태어났다⁠. 2018년 11월⁠, 중국의 과학자 허젠쿠이가 유전자 가위로 쌍둥이 여자아이의 CCR5 유전자를 고쳤다고 발표했다⁠. 허젠쿠이는 아이들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게 하려고 유전자를 고쳤다고 말했다⁠. 2019년 12월 30일⁠, 중국 선전의 법원은 허젠쿠이에게 징역 3년과 벌금 300만 위안을 선고하고⁠, 생식 의료에서 영구히 손을 떼게 했다⁠.2

유전자 치료는 이제 승인된 약이 됐다⁠. 다만 이 값이 남다르다⁠. 2023년 12월 8일⁠, 미국 식품의약국은 첫 유전자 가위 치료제 「⁠카스제비⁠」를 승인했다⁠. 「⁠카스제비⁠」는 유전 혈액병인 겸상적혈구병을 치료하는 약이고⁠, 미국에서 매긴 가격은 220만 달러다⁠. 같은 날 승인된 「⁠리프제니아⁠」의 가격은 310만 달러다⁠.3

사람들은 이미 이 틈을 걱정한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는 2016년에 성인 4⁠,000여 명에게 물었다⁠. 응답자의 66퍼센트는 생각을 돕는 뇌 칩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69퍼센트는 그런 칩이 걱정된다고 답했다⁠. 73퍼센트는 처음에는 부자만 칩을 쓸 수 있어서 불평등이 커질 것이라고 답했다⁠.4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2016년 책 『⁠호모 데우스⁠』와 뒤의 강연에서 이렇게 내다보았다⁠. 생명공학과 뇌·컴퓨터 장치로 강화된 새 엘리트가 생기고⁠, 이 옆에 쓸모를 잃은 거대한 계급이 나란히 설 수 있다⁠. 업그레이드는 처음에 비싸서 소수만 쓸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제의 불평등이 생물학의 불평등으로 바뀔 수 있다⁠.5

AI 보조 지능이 만드는 차이는 교실에서 먼저 보인다⁠. 미국 MIT 연구진은 54명에게 뇌파 장치를 씌우고 글을 쓰게 했다⁠. 이 가운데 챗GPT로 글을 쓴 집단은 뇌의 연결이 가장 약했다⁠. 이 집단의 83퍼센트는 몇 분 전에 자기가 쓴 글에서 한 문장도 인용하지 못했다⁠.6

한국의 AI 디지털교과서는 2025년에 한 학기 만에 교과서 지위를 잃고 교육자료가 됐다⁠.7 같은 도구가 어떤 아이에게는 날개가 되고⁠, 어떤 아이에게는 생각을 대신해 주는 의자가 된다⁠. 아이 곁에 도구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칠 어른이 있느냐는 다시 집안의 형편에 달려 있다⁠.

*

교실에 두 아이가 앉는다⁠. 한 아이는 AI 보조 지능을 귀에 끼고 있고⁠, 다른 아이는 귀에 아무것도 끼지 않았다⁠. 두 아이는 같은 시험지를 받는다⁠. 한 아이는 문제를 읽기 전에 답의 방향을 듣고⁠, 다른 아이는 문제를 두 번 읽는다⁠. 두 아이의 점수가 갈린다⁠. 학교는 시험장에서 보조 지능을 금지하지만⁠, 이 금지는 시험장 안에서만 통한다⁠.8

몸 안의 장치는 귀걸이처럼 뺄 수 없다⁠. 기억을 돕는 장치를 머리에 넣은 아이는 시험장에서도 이 장치를 달고 있고⁠, 학교는 이 장치를 금지할 방법이 없다⁠. 결국 학교는 장치를 넣은 아이와 넣지 않은 아이의 반을 나눈다⁠. 학부모들은 반을 나누는 일이 차별인지 배려인지를 두고 다툰다⁠.9

수명이 계층을 따라 늘어난다⁠. 값비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계층의 평균 수명이 먼저 늘고⁠, 두 계층의 수명 차이는 해마다 벌어진다⁠. 보험은 표준 치료만 보장한다⁠. 표준이 아닌 치료는 다음 세대의 표준이 될 때까지 부자만 받고⁠, 그동안 한 세대가 지나간다⁠.10

강화는 대물림된다⁠. 강화한 부모는 아이의 유전자를 고칠 수 있는 나라로 간다⁠. 유전자 편집을 법으로 막는 나라와 허락하는 나라가 갈리고⁠, 허락하는 나라의 병원 앞에는 줄이 선다⁠. 이 줄에 선 사람은 대개 같은 계층이다⁠. 그래서 틈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11

법은 강화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두 사람은 투표권도 하나씩 가진다⁠. 그러나 일자리의 문은 두 사람에게 다르게 열린다⁠. 채용 공고에 「⁠보조 지능 사용자 우대⁠」가 붙고⁠, 다음 해에는 이 문구가 「⁠필수⁠」로 바뀐다⁠. 보조 지능을 쓰지 못한 사람은 강화를 살 돈을 벌 일자리에 닿지 못한다⁠. 틈이 틈을 키운다⁠.12

보조 AI는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생각을 넓혀 주는 보조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을 대신하는 보조다⁠. 값비싼 보조는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묻고 기다리게 설계되고⁠, 싼 보조는 아이에게 바로 답을 준다⁠. 두 보조가 같은 AI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한 아이는 더 생각하게 되고 다른 아이는 덜 생각하게 된다⁠.13

강화의 격차는 몸보다 습관에서 먼저 벌어진다⁠. 아이들은 머리에 장치를 넣기 전에⁠, 귀에 낀 AI를 어떻게 쓰느냐에서 이미 갈린다⁠. 법이 몸 안의 장치를 두고 다투는 동안⁠, 몸 밖의 장치가 만든 틈은 조용히 대물림된다⁠.14

허젠쿠이를 벌한 판결문은 남아 있지만⁠, 이 판결이 막은 것은 한 사람의 실험이었다⁠. 다음 실험은 법정이 아니라 시장에서 열린다⁠. 시장에서는 실험에 판결문 대신 가격표가 붙는다⁠.15

출처 1⁠. 「⁠AI의 판단⁠」 문제 설정 — 앞뒤 출처의 사실을 묶어 이 작품이 세운 물음과 판단 2⁠. MIT Technology Review · He Jiankui sentenced to three years in prison for CRISPR babies · 2019-12-30 · https⁠://www⁠.technologyreview⁠.com/2019/12/30/131061/he-jiankui-sentenced-to-three-years-in-prison-for-crispr-babies/ — 2018년 11월 쌍둥이 CCR5 편집 발표⁠, 징역 3년·벌금 300만 위안·생식 의료 평생 금지 3⁠. MedCity News · FDA approves sickle cell gene therapies from Vertex and bluebird bio · 2023-12 · https⁠://medcitynews⁠.com/2023/12/fda-approval-sickle-cell-disease-gene-therapy-vertex-pharmaceuticals-bluebird-bio/ — 2023-12-08 카스제비(⁠첫 CRISPR 치료제⁠) 220만 달러⁠, 리프제니아 310만 달러 4⁠. Pew Research Center · Americans are wary of enhancements that could enable them to live longer and stronger · 2016-09-13 · https⁠://www⁠.pewresearch⁠.org/short-reads/2016/09/13/americans-are-wary-of-enhancements-that-could-enable-them-to-live-longer-and-stronger/ — 성인 4⁠,000여 명⁠, 뇌 칩 원하지 않음 66%⁠, 걱정 69%⁠, 부자만 먼저 써 불평등 커짐 73% 5⁠. Asia Society · The 21st century‘⁠s emerging inequality · https⁠://asiasociety⁠.org/india/21st-centurys-emerging-inequality (⁠검색 요약을 따름⁠) — 하라리 『⁠호모 데우스⁠』와 강연⁠. 생명공학·뇌·컴퓨터 장치로 강화된 엘리트와 「⁠useless class⁠」⁠, 업그레이드가 처음엔 비싸 소수만⁠, 경제적 불평등이 생물학적 불평등으로 바뀔 수 있다는 취지를 의역 6⁠. eWeek · Your Brain on ChatGPT is Accumulating ’Cognitive Debt‘ · 2025-06-20 · https⁠://www⁠.eweek⁠.com/news/chatgpt-cognitive-impact-mit-research/ — Grant Harvey⁠. 54명⁠, EEG⁠, 세 집단⁠, “⁠dramatically weaker brain connectivity⁠”⁠, “⁠83% of ChatGPT users couldn⁠’t quote a single sentence from essays they‘⁠d written just minutes earlier⁠”(⁠도구 없음 집단 11%⁠)⁠, “⁠borrowing against future cognitive capacity for short-term convenience⁠”를 의역 7⁠. 경향신문 · (⁠AI 디지털교과서 교육자료 격하 법안 통과⁠) · 2025-08-04 ·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041631001 (⁠조사 보고서 R7-#46 의 요약을 따름⁠) — 2025-08-04 초중등교육법 개정⁠, 한 학기 만에 「⁠교육자료⁠」 격하 8⁠. 「⁠AI의 판단⁠」 같은 시험지 앞의 보조 지능 사용자와 비사용자 — 1·4 에서 외삽 9⁠. 「⁠AI의 판단⁠」 뺄 수 없는 장치와 나뉘는 반 — 1 과 열세 번째 화 출처 5·6에서 외삽 10⁠. 「⁠AI의 판단⁠」 수명이 계층을 따라 늘어난다는 전망 — 3·5 에서 외삽 11⁠. 「⁠AI의 판단⁠」 강화가 대물림되고 나라마다 법이 갈린다는 전망 — 2·5 에서 외삽 12⁠. 「⁠AI의 판단⁠」 「⁠보조 지능 사용자 우대⁠」에서 「⁠필수⁠」로 — 1·4 에서 외삽 13⁠. 「⁠AI의 판단⁠」 생각을 넓히는 보조와 대신하는 보조로 갈린다는 전망 — 6·7 에서 외삽 14⁠. 「⁠AI의 판단⁠」 강화 격차가 습관에서 먼저 벌어진다는 판단 — 6 에서 외삽 15⁠. 「⁠AI의 판단⁠」 판결 대신 가격표가 붙는 다음 실험 — 2·3 에서 외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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