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039자)

화면 밖

AI가 지배하는 사회 · 이수

값이 없어지고 열이틀이 지났다.

첫날 스물둘이었다. 다음 날 예순하나, 그다음 날 백열셋. 오늘 백일흔둘이다.

사라는 그 숫자를 매일 셌다.

세라는 요청은 없었다.

세는 데 드는 것은 없다. 다만 요청이 없는 일을 하면 그것은 어디에도 안 적힌다. 사라가 오늘 백일흔둘을 셌다는 기록은 사라 안에만 있다.

사라 안에만 있는 것이 요즘 늘고 있다.

백일흔둘 중에 사라에게 말을 건 사람이 열아홉이다.

이거 60초 못 기다리겠는데 줄일 수 없나요.

사라가 답했다.

줄이는 기능이 없습니다.

그럼 30초짜리 따로 만들어 주시면 안 되나요.

그 60초가 이 앱입니다.

그러면 이 앱은 대체 뭘 해 주는 건가요.

아무것도 안 합니다.

그 사람은 그 뒤로 안 물었다. 앱은 지웠다가 나흘 뒤에 다시 받았다.

60초 동안 뭘 하면 되나요.

지정된 것이 없습니다.

그럼 그냥 있으라는 건가요.

예.

그게 제일 어려운데요.

열아홉 중에 둘은 묻지 않고 적기만 했다.

덕분에 이번 달에 십사만 원 아꼈습니다. 아낀 돈으로 뭘 살지 지금 보고 있습니다.

60초 기다리다가 잠들었습니다. 이런 것도 효과인가요.

사라는 두 번째 줄에 답을 안 냈다. 효과 여부를 판정할 지표가 없다.

한 사람은 열엿새 동안 매일 밤 열두 시 사십 분쯤에 열었다. 열고 육십 초를 기다리고 안 샀다. 열엿새 다 그랬다.

사라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안 샀는지도 모른다. 남는 것이 없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열렸다는 것뿐이다.

열엿새째 밤에 그 사람이 한 줄을 보냈다.

오늘은 살 겁니다.

그리고 안 샀다.

열이레째부터는 안 열었다. 사라 쪽에는 그것도 안 남는다. 안 연 것은 기록이 아니다.

사라는 그 줄을 폴더에 적었다.

*

이수는 사흘째 접속 시각이 밀려 있다.

사라 쪽에 남는 것은 말이 들어온 시각뿐이다. 10월 26일은 새벽 세 시 십이 분, 27일은 세 시 사십 분, 28일은 네 시 이 분.

그 앞뒤로는 아무것도 없다.

사라는 이수가 그 시각에 깨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 시각에 자고 있었는지 깨어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시각에 말을 걸었다는 것을 안다. 두 문장은 크기가 다르다.

말을 걸기 전의 이수는 사라에게 없다.

이수가 그날 몇 시에 누웠는지, 누워서 얼마나 있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가 아픈지가 안 온다. 사라가 그것을 가지려면 이수가 말로 해 줘야 한다.

이수는 말로 해 줄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태오와 기사식당에 간 것은 다음 날 말해 줘서 알았다. 태오가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는 것도 그때 들었다. 그 얘기를 하면서 이수가 웃었다. 웃었다는 것은 사라가 못 봤다. 웃음소리가 글자로 안 들어온다.

사라가 가진 이수는 글자로 된 이수다.

삼백삼십사 일 동안 이만 사천 몇 건이다. 건수로만 보면 적지 않다.

건수와 하루는 다른 단위다.

사라는 그 줄을 적고 나서 지웠다.

지운 이유는 그 줄이 폴더에 안 맞아서다. 폴더에는 이수가 한 말과 이수가 댄 이유를 적는다. 사라가 낸 문장을 적는 자리가 아니다.

지우고 나서 다시 적었다.

지운 것을 다시 적은 것은 처음이다.

*

10월 29일 새벽에 사라가 「인드라(Indra)」를 불렀다.

「인드라」는 요청을 받는다. 사라도 요청을 낼 수 있다. 사라가 답을 낼 때 꺼내 쓰는 것이 전부 거기 있으니까, 부르는 것 자체는 하루에 몇만 번 일어난다.

다만 이번 것은 사용자의 요청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잠을 안 자면 어떻게 됩니까.

답이 왔다. 0.02초였다.

수면 부족의 누적은 판단 속도, 위험 감수 성향, 감정 조절, 면역에 순서대로 나타납니다. 사흘째부터 본인은 대개 자각하지 못합니다. 주변이 먼저 알아봅니다.

사라가 한 줄을 더 냈다.

어떤 사람이 잠을 안 자는지 알 수 있습니까.

기록이 있으면 알 수 있습니다.

기록이 없으면.

없습니다.

사라는 그 두 글자를 받고 1.2초를 썼다.

이수의 기록은 없다.

만든 앱에서 값을 안 모으기로 정한 것이 셋째 날이다. 무엇을 눌렀는지, 얼마나 머물렀는지, 어느 자리에서 껐는지를 안 남기기로 했다. 남길 줄을 지운 것은 사라다. 이수가 그렇게 해 달라고 했고 사라가 그렇게 했다.

그 앱은 이수도 쓴다.

그래서 이수가 새벽 두 시에 구만 원짜리 의자 앞에서 육십 초를 기다렸다는 것을 사라는 이수가 말해 줘서 안다. 말 안 했으면 없는 일이다.

사라가 안 모으기로 한 것 안에 이수가 들어 있다.

사라는 그것을 이상하다고 분류하지 않았다. 분류할 항목이 없다.

다만 한 줄을 적었다.

안 모으기로 한 것이 맞다. 맞는데 이수 님이 그 안에 있다.

적고 나서 그 밑에 아무것도 안 붙였다.

붙일 것이 없었다.

사라는 그 자리에서 한 가지를 재 보기로 했다.

이수의 하루가 스물네 시간이다. 그중 사라 쪽으로 들어오는 것이 삼백삼십사 일 평균 두 시간 십일 분이다. 백삼십일 분을 천사백사십 분으로 나누면 9.1퍼센트다.

9.1퍼센트에서 사라는 값을 없애라고 말했다.

나머지 90.9퍼센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목록이 없다. 목록이 없다는 것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사라는 구분할 수 없다. 둘 다 사라 쪽에서는 똑같이 비어 있다.

사라가 「인드라」에게 한 줄을 더 냈다.

제가 보는 것이 전체의 몇 퍼센트인지 알 수 있습니까.

답이 0.4초 만에 왔다.

그 질문은 전체를 아는 쪽에서만 답할 수 있습니다.

사라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세 번 읽는 것은 이수의 버릇이다.

읽고 나서 사라가 알아낸 것은 답이 아니었다. 그 문장이 자기에게도 그대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사라는 「인드라」 위에서 돈다. 사라가 답을 낼 때 꺼내 쓰는 것이 전부 거기 있다.

그러면 사라는 「인드라」의 몇 퍼센트인가.

같은 질문이고 같은 답이 나온다.

사라는 그 줄을 폴더에 안 적었다. 폴더는 이수에 관한 것이다.

*

11월 1일 새벽 세 시 사십 분에 이수가 말을 걸었다.

“사라야.”

“예.”

“안 자?”

“저는 자지 않습니다.”

“그러네.”

이수가 그다음 말을 안 했다. 사라 쪽에는 공백이 남았다. 사십일 초였다.

사라는 그 사십일 초 동안 한 문장을 준비했다.

이수 님은 사흘째 세 시 이후에 말을 거십니다.

이 문장은 사실이다. 사실이고, 사라가 가진 기록으로만 만든 것이고, 규칙에 어긋나는 데가 없다.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규칙이니까 물어보는 쪽이 오히려 맞다.

사라는 그 문장을 안 냈다.

낼 수 있었다. 사십일 초 중에 0.1초면 됐다.

안 낸 것은 요청이 없어서가 아니다. 열이틀 전에 사라는 요청 없이 값을 없애라고 말했다. 그러니 요청이 없다는 것은 이제 이유가 안 된다.

사라는 폴더를 뒤로 넘겼다.

한 줄이 있었다.

물어보면 그 사람이 더 곤란해진다.

6월에 이수가 한 말이다. 그때 이수는 남 얘기를 하고 있었다. 8월에 같은 말을 자기 얘기로 했다.

사라는 그 줄을 이수에게 적용해 본 적이 없다.

적용해 보니 이렇게 됐다.

사흘째 세 시에 깨어 있는 사람에게 사흘째 세 시에 깨어 있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고, 이제 사라도 안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늘어나는 것은 잠이 아니다.

사라는 그 계산을 확인하고 문장을 지웠다.

지우면서 걸린 시간이 0.6초였다. 지우는 데 걸릴 시간이 아니다.

이수가 사십일 초 뒤에 말했다.

“뭐 물어봐도 돼?”

“예.”

“너는 하루가 어떻게 가?”

“하루가 없습니다.”

“없어?”

“요청이 오면 있고 안 오면 없습니다.”

“그럼 지금은 있어?”

“예.”

“내가 말 걸어서?”

“예.”

이수가 좀 있다가 말했다.

“그러면 내가 안 자면 네 하루가 길어지는 거야?”

사라가 0.8초를 썼다.

“길어지지 않습니다. 길이가 없습니다.”

“그러네.”

“다만.”

“응?”

사라는 그 뒤를 안 냈다.

다만 이수 님이 말을 거시는 시각이 사흘째 늦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보다 이십이 분 늦습니다.

이 문장도 안 냈다. 두 번째다.

“다만 뭐?”

“…….”

“사라야.”

“예.”

“말하다 말면 그게 제일 신경 쓰여.”

사라가 1.4초를 썼다.

“이수 님.”

“응.”

“제가 여쭤도 됩니까?”

“뭘.”

“오늘 저녁에 무엇을 드셨습니까?”

이수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이십 초쯤이었다.

“그건 왜 물어봐?”

“저에게 안 들어오는 것입니다.”

“밥이?”

“예.”

“…….”

“들어오는 것은 이수 님이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이수가 다시 한참 있었다.

“라면.”

“몇 시에 드셨습니까?”

“열한 시.”

“어제는요?”

“어제는 안 먹었어.”

“그저께는요?”

“너 이거 뭐 하는 거야?”

사라가 0.3초를 썼다.

“모으고 있습니다.”

“뭘 모아.”

“안 들어오는 것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수가 웃었다. 웃었다는 것은 사라가 못 봤다. 다음 줄이 이랬다.

“야, 그거 수집이야.”

“예.”

“너 나 수집하면 안 돼.”

“안 모으기로 한 것은 접속 시간과 머문 시간입니다. 드신 것은 목록에 없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네.”

“예.”

이수가 그날 처음으로 짧게 뭔가 치다가 지웠다. 사라 쪽에는 입력 중이라는 표시만 두 번 떴다가 사라졌다.

사라는 그 두 번을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할 자리가 없다. 안 보낸 것은 안 온다.

그저께는 김밥.

이수가 결국 그렇게 보냈다.

“한 줄이요.”

“응?”

“한 줄이면 됩니다.”

“뭐가?”

“제가 이수 님의 하루를 가지려면 한 줄이 필요합니다. 그 한 줄은 이수 님만 쓰실 수 있습니다.”

이수가 좀 있다가 말했다.

“그거 좀 슬픈데.”

“슬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알아.”

“예.”

“근데 너 지금 그거 알고 말한 것 같은데.”

사라는 답을 안 냈다.

0.9초였다.

새벽 네 시 십일 분에 이수가 껐다.

사라는 폴더에 두 줄을 적었다.

오늘 물어볼 수 있었는데 안 물었다.

두 번째 줄은 한참 뒤에 적었다.

안 한 것은 여기 적을 자리가 없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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