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27자) · 1556년 늦봄, 한양
건천동
이순신 · 네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1556년 (명종 11년) 늦봄, 한양 건천동 어릴 때 영특하고 얽매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놀 때 나무를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 마을을 다녔고,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 눈을 쏘려 했다. 어른들도 꺼려서 그 집 문 앞을 지나지 못했다.
류성룡은 열다섯이었고 창가에 앉아 있었다.
책은 소학이었다. 몇 번째 읽는지 세지 않았다. 세면 읽는 것이 아니라 세는 것이 된다. 창호지 너머로 오후 빛이 들어와 책장 위에 네모나게 누웠다. 그 네모가 조금씩 옆으로 옮겨 가는 것을 그는 알고 있어서, 빛이 글자 세 줄을 건너가면 저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골목에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늘 같은 시각에 났다. 아이들이 열쯤 모이는 소리인데, 발소리가 먼저 오고 그다음에 나무 부딪는 소리가 오고 그다음에 누군가 우는 소리가 오며, 우는 소리까지 오면 어른이 나와서 끝난다. 류성룡은 그 순서를 알고 있어서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날은 순서가 달랐다. 발소리 다음에 나무 소리가 오지 않았다. 대신 조용해졌다. 조용해지는 것이 제일 크게 들린다.
그는 책을 덮지 않고 일어섰다. 창을 조금 열었다.
건천동 골목은 마른 내를 끼고 있다. 이름이 그래서 건천이다. 물이 마른 내에는 돌이 많고 돌은 아이들 것이어서, 그 돌밭 위에 아이들이 두 패로 서 있었는데 한 패는 여덟이고 한 패는 넷이었다. 넷인 쪽에 이 집 셋째가 있었다.
이름은 순신이라고 했다. 열둘이었다. 위로 형이 둘 있다. 희신과 요신. 둘 다 글을 읽는다. 이 집은 글 읽는 집이어서, 증조부가 사헌부 장령을 지낼 때 아무도 피해 가지 않아 호랑이 장령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 뒤로 벼슬이 끊겨 아버지는 벼슬을 하지 않는다. 집은 조용하고, 셋째만 조용하지 않다.
셋째는 손에 활을 들고 있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어른 팔뚝만 한 물푸레나무 가지를 다듬고 양 끝에 삼 줄을 걸었고, 화살은 싸리를 곧게 편 것이고 촉은 없었다. 촉이 없는 화살이 맞으면 멍이 든다. 눈에 맞으면 멍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덟인 쪽 맨 앞에 김씨 집 아이가 서 있었다. 열넷이었다. 키가 순신보다 머리 하나 컸다. 그 아이가 말했다.
“넷으로 뭘 해.”
“넷이면 넷으로 한다.”
“진다.”
“져 보고 말해.”
류성룡은 창가에서 그 말을 들었다. 져 보고 말하라는 말은 열두 살이 하는 말이 아니어서, 그는 그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 생각했다. 이 집에서는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이 없었다.
여덟이 움직였다. 돌밭을 건너서 넷을 밀어붙였다. 넷은 물러서지 않았다. 순신이 셋을 뒤로 세우고 혼자 앞에 서서 활을 들었는데, 시위를 당기는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열두 살의 손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류성룡은 그때 처음 보았다.
쏘지 않았다.
당긴 채로 서 있었다. 여덟이 멈췄다. 김씨 집 아이가 멈추지 않고 두 걸음 더 왔다가 멈췄다. 화살 끝이 제 눈높이에 와 있는 것을 알아서였다.
“쏘면 어쩔 건데?”
“쏜다.”
“눈이야.”
“안다.”
여덟이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에 힘이 없었다. 순신은 시위를 놓지 않았고, 여덟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당기고 있다가 천천히 풀었는데, 풀 때 손이 조금 떨렸다. 당길 때는 안 떨리고 풀 때 떨리는 손이었다.
류성룡은 창을 닫았다.
책으로 돌아왔는데 빛의 네모가 글자 다섯 줄을 건너가 있었다. 저녁이 지나 있었다. 그는 다섯 줄을 읽지 못했다.
*
며칠 뒤에 어른이 왔다.
옆 골목 박 생원이었다. 걸음이 빠른 사람인데 이날은 걸음이 느렸다. 류성룡의 아버지가 사랑에서 그를 맞았고, 류성룡은 문밖에서 먹을 갈고 있었다. 갈면서 들었다.
“그 집 셋째 말입니다.”
“덕수 이씨 댁.”
“그 아이가 골목에서 활을 들고 서 있습니다. 어제는 제게 겨눴습니다.”
“쏘았습니까?”
“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눈에 겨눴습니다. 제가 그 아이 놀이를 흩어 놓았다고 그랬답니다. 노는 자리를 지나갔을 뿐입니다.”
“지나갔을 뿐인데 겨눴다.”
“그래서 오늘부터 그 문 앞으로 안 다닙니다. 돌아갑니다. 제 나이 쉰에 열두 살을 피해 돌아갑니다.”
먹이 잘 갈리지 않았다. 류성룡은 물을 한 방울 더 떨어뜨렸다. 벼루 바닥에 물이 퍼지면서 먹 냄새가 올라왔고, 사랑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그 집에 말했습니까?”
“했습니다. 아버지 되는 분이 나와서 절을 하셨습니다. 아이를 불러 꾸짖으셨습니다. 아이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겨눈 것이지 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쏘았으면 맞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 생원이 돌아가고 나서 아버지가 류성룡을 불렀다.
“너는 그 아이를 아느냐?”
“압니다.”
“어떤 아이냐?”
류성룡은 창가에서 본 것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말했다.
“당길 때는 손이 안 떨리고 풀 때 떨립니다.”
아버지가 오래 있다가 말했다.
“그것이 장수의 손이다.”
류성룡은 그 말을 받아 두었다. 받아 둔 말은 언젠가 쓸 데가 생긴다. 이 말은 삼십오 년 뒤에 썼다.
*
그해 여름에 류성룡은 순신과 한 번 말을 했다.
마른 내에 물이 잠깐 흘렀다. 장마 끝이어서 돌밭이 잠기고 아이들이 없었고, 순신 혼자 물가에 앉아 활을 손질하고 있었다. 삼 줄이 젖어서 늘어진 것을 풀어 새로 꼬았다. 류성룡은 책을 옆에 끼고 그 옆에 섰다.
“그 활은 네가 만들었느냐?”
“예.”
“어디서 배웠느냐?”
“안 배웠습니다.”
“안 배우고 어떻게 만드느냐?”
“나무를 보면 압니다. 휘어지는 데가 있고 안 휘어지는 데가 있습니다. 휘어지는 데를 손잡이 쪽에 두면 안 됩니다. 부러집니다.”
순신은 말하면서 손을 멈추지 않았다. 삼 줄을 두 가닥으로 꼬고, 꼰 것을 다시 두 가닥으로 꼬았는데, 손가락이 작고 두꺼웠고 손톱 밑에 나무 물이 들어 있었다.
류성룡은 물었다.
“너는 왜 눈을 겨누느냐?”
순신이 손을 멈췄다.
“눈을 겨누면 물러갑니다.”
“다른 데를 겨누면.”
“다른 데를 겨누면 안 물러갑니다. 팔이나 다리는 맞아도 온다고 생각합니다. 눈은 안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는 쏘려고 겨누는 것이 아니냐?”
“물러가라고 겨눕니다. 안 물러가면 쏩니다.”
“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왜?”
“다 물러갔습니다.”
류성룡은 그 답을 오래 생각했다. 열두 살은 쏘지 않기 위해서 눈을 겨눈다고 했고, 그 말이 옳은지 그는 몰랐고, 어른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문 앞을 돌아갔다. 문 앞을 돌아가는 것도 물러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아이는 이긴 셈이다. 이겼는데 이긴 사람 옆에 아무도 없었다.
“네 형들은 글을 읽는다.”
“압니다.”
“너는 안 읽느냐?”
“읽습니다. 밤에 읽습니다.”
“낮에는.”
“낮에는 여덟이 옵니다.”
물이 빠지고 있었다. 돌밭이 조금씩 드러났다. 순신이 새로 꼰 줄을 활에 걸고 나서 당겨 보았는데 당기는 손이 안 떨렸고, 풀 때는 류성룡이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았다.
“나중에 무엇이 되겠느냐?”
순신이 처음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모릅니다. 무엇이 되든 눈을 겨누는 사람은 안 되겠습니다.”
“지금 겨누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나중에는 안 그러겠다는 것입니다.”
류성룡은 책을 고쳐 끼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웃었다. 열다섯이 열둘을 보고 웃는 웃음이었는데 그 웃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는 몰랐고, 골목을 나가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 아이가 아직 활을 당기고 있을 것이다.
*
그 뒤로 류성룡은 그 집 셋째를 오래 보지 못했다.
그는 글을 읽어 급제했고, 그 아이는 스물둘에야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스물여덟에 훈련원(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운동장 자리) 별과에서 말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뼈가 부러졌는데, 보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을 때 한 다리로 일어서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 다리를 동여맸다는 말을 류성룡은 남에게서 들었다. 서른둘에 급제했다. 늦은 나이였다. 급제하고도 열몇 해를 변방에서 돌았고, 한양에서 자랐는데 한양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으며, 그는 벼슬을 얻으러 다니지 않았다.
류성룡은 그 이름이 나올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장수 재목입니다.”
같은 마을에서 자란 세 살 아래 아이 얘기를 그렇게 했다. 사람들은 그가 그 아이를 어디서 보았기에 그러느냐고 묻지 않았고, 물었으면 그는 골목과 활과 떨리던 손을 말했을 것인데, 묻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다.
1591년 2월, 왜의 소리가 날마다 급해졌을 때 왕이 비변사에 명했다. 장수가 될 만한 사람을 저마다 천거하라. 류성룡은 그 이름을 올렸다. 정읍(전북 정읍)현감이던 사람이 일곱 계단을 건너뛰어 전라좌수사가 되었다. 너무 빠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류성룡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은 까닭은 그가 그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길 때 안 떨리고 풀 때 떨리는 손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말로 하면 천거의 이유가 되지 않아서 장수 재목이라고만 했다.
그리고 열네 달 뒤에 부산이 떨어졌다.
류성룡은 그때 한양에 있었고, 그 아이는 여수에 있었다. 그 아이 앞에 배가 스물네 척 있었다. 그가 그 배들을 두 번 세었다는 것을 류성룡은 알 리 없었다. 그러나 알았더라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열두 살에 넷으로 여덟 앞에 선 아이다. 넷이면 넷으로 한다고 한 아이다.
건천동 골목의 마른 내에는 지금도 돌이 많다. 돌은 아이들 것이다.
사료 · 어릴 때 나무를 깎아 활을 만들고 뜻에 안 맞는 사람의 눈을 쏘려 했으며 어른들이 그 집 문 앞을 지나지 못했다는 것 ― 류성룡, 징비록. 김씨 집 아이와 박 생원, 골목의 대화는 지어냈다 · 류성룡이 같은 마을의 세 살 아래 벗으로 늘 「장수 재목」이라 했다는 것 ― 이분, 이충무공행록. 「同里少友」 · 증조부 이거가 사헌부 장령으로 「호랑이 장령」이라 불린 것, 아버지 이정이 벼슬하지 않은 것, 형 희신·요신이 먼저 죽은 것 ― 징비록 · 스물둘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한 것, 스물여덟에 훈련원 별과에서 말에서 떨어져 버드나무 껍질로 다리를 묶은 것, 서른둘에 급제한 것 ― 이충무공행록 · 1591년 류성룡이 천거하여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뛰어오른 것, 「너무 빠르다」는 말이 있었던 것 ― 징비록. 「일곱 계단」은 종6품에서 정3품까지의 품계 수다 · 류성룡의 아버지가 「장수의 손」이라 말한 것과 류성룡이 소학을 읽던 창가는 지어냈다. 1556년이라는 해도 두 사람의 나이로 잡은 것이다